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148)
* * *
경칩(驚蟄)에 이르러 제주 안이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그간 많은 사업을 펼치던 중에 잠시 숨고르기를 하던 제주현백이 다시금 새로운 사업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첫 시작부터 새로운 건 아니었고, 재배 중인 사탕무 일부를 수확하여 설탕을 제조해 보고자 한 것이었다.
이미 현대에서 제주에서 재배하는 사탕무는 4월에 이르러야 가장 당도가 높게 형성된다는 사실을 알아 왔지만, 시범적으로 미리 가루 형태의 설탕을 제조해 보고자 함이었다.
사탕무로 설탕을 만드는 과정은 익히 알려진 사탕수수 설탕 제조 과정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사탕무든 사탕수수든 원재료를 깨끗이 씻어 분쇄한 후, 그 당액을 여과 농축시켜 결정이 나오도록 건조하면 되는 것이었다.
다른 점이라면, 사탕수수의 즙액은 산성이라 석회 등으로 중화 과정을 거처야 하고, 사탕무는 분쇄한 뒤 온수에 넣어 당액을 따로 거둬야 하는 과정을 거친다는 점이었다.
이 과정에서 두 가지 간단한 기계가 제작되었는데, 하나는 원심 분리기였고, 다른 하나는 압축 분쇄기였다.
둘 다 원시적(?)인 수준으로, 원심 분리기는 회전시킬 수 있는 바퀴에 호리병을 매달아 돌리는 정도였고, 압축 분쇄기도 요철이 맞물리는 철판 사이를 톱니바퀴 회전수 차이를 이용하여 보다 쉽게 누를 수 있게 하는 정도였다.
원심 분리기는 당액과 당밀을 분리하기 위함이었고, 압축 분쇄기는 사탕무를 빠르게 분쇄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일단 설탕의 제조는 괜찮은 결과를 보였다.
첫 제조된 설탕은 눈같이 새하얀색은 전혀 아니었고, 흑설탕처럼 갈색이 두드러졌지만, 원심 분리기로 당밀 분리에 신경을 쓰니, 비교적 깔끔한 흰색의 설탕을 만들 수 있었다.
맛은 현대의 설탕에 비해 단맛이 떨어지는 느낌이었지만, 부드러운 맛을 느낄 수 있어 오히려 괜찮다는 평을 받을 만했다.
실제로 설탕을 제조하는 작업에 참여한 이들에게 맛을 보게 하니, 다들 눈이 동그래지며 감탄하였다.
그들 중에는 설탕, 정확히는 당시 주로 사탕(砂糖)이라 불리던 그 감미료의 존재 자체를 모르던 이들이 많았으니,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물질의 달콤한 맛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특히 상무교리 고신걸이 굉장히 좋아했는데, 그는 맛에 감탄함과 동시에 장차 그 설탕으로 얻을 이문에 흡족해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상업을 전담시켰더니 뭐라도 눈에 띄면 일단 팔아서 이익을 얻을 생각부터 하는 모양이었다.
하여, 당장에 사탕무의 재배량을 대폭 늘리자고 난리를 피웠는데, 몽주는 그것을 만류하였다.
후에 남방으로 진출한다면, 그곳에서 사탕수수를 재배할 수 있을 것이니, 효율 좋고 당도도 더 높은 사탕수수로 설탕을 만들 때를 생각해서 제주에서 사탕무 재배 산업을 너무 키울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 설탕이 크게 보급되면, 건강 문제가 두드러질 수밖에 없으니, 그로 인한 사회적 손실을 방지할 수 있는 의학 기술이 없는 상황에서는 설탕이 너무 흔하게 쓰이는 걸 억제하는 편이 낫다 여긴 것이었다.
하여, 몽주는 설탕의 생산량을 소폭 늘리는 것을 확정하고, 그중 십분지일만 제주에서 쓰되, 나머지는 왜국과 차후에 상황을 보아 명국에 수출하기로 하였다.
한데, 몽주가 설탕을 제조하면서 주목한 것이 있었으니, 압축 분쇄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것에 주목한 이유는 조금 변형시키면 초창기 인쇄기로 고쳐 쓸 수 있겠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서양 인쇄술의 효시인 쿠텐베르크의 인쇄기도 포도 압착기를 개조한 것이었으니, 몽주도 사탕무 압축 분쇄기를 보고 인쇄기로 개조하는 것을 떠올린 건 무리가 아니었다.
안 그래도 홍길도 교리가 최근에 책을 만들고 싶어 했었으니, 이 참에 인쇄기와 금속 활자를 만들어 책과 신문을 보급해야겠다 싶었던 것이다.
물론, 그 책과 신문에 담긴 내용은 몽주의 생각과 일치한 것일 것이니, 일종의 대민 선전 효과를 노리는 셈이기도 했다.
당연히 몽주가 이어 시도하려 한 것은 금속 활자를 주조하는 것이었다.
고려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금속 활자를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보급되어 널리 퍼진 건 아니었으니, 그 후에도 활자를 이용하여 책을 만들 때는 대개 목활자를 이용하였다.
당연히 제주에 금속 활자를 만들어 본 경험을 가진 이는 없었기에 몽주가 대략 아는 바를 화극과 논하여 금속활자 제조를 시도하였다.
물론, 한글로 된 활자였다.
이미 철과 구리 같은 금속을 숱하게 다루면서 거푸집을 만드는 작업에는 제법 이력이 난 화극과 그의 바치들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는데, 첫 제조품은 몽주의 맘에 들지 않았다.
“이대로 쓰면 손바닥만 한 종이에 한 다섯 자 정도 들어가겠군요.”
“아…….”
“게다가 한 글자를 통째로 새기면, 그 많은 글자들을 어찌 마련하겠습니까. 자모를 나누어 가능한 한 작게 만들어야 합니다.”
화극이 하루 만에 만들어 온 몇몇 글자를 보며 몽주는 실소할 수밖에 없었으니, 활자의 크기가 너무 큰 데다가 자음과 모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글자 하나를 한 활자에 넣어 온 것이었다.
그러니까, 몽주가 의도한 것은 ‘강’이라는 글자를 활자화기 위해 ‘ㄱ’, ‘ㅏ’, ‘ㅇ’의 활자를 주조하길 바랐는데, 화극은 ‘강’을 통째로 주조했다.
몽주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 설명 없이 가볍게 넘어갔었는데, 상형 문자인 한자에 익숙한 화극은 표음문자의 특성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렇게 하시죠. 한 글자를 사분(四分)하는 겁니다. 위의 두 면에 각각 초성과 중성이 들어가고, 아래의 두 면은 종성을 넣는 것에 쓰는 것이죠. 다만, 종성이 하나일 경우에는 한쪽은 비워두는 겁니다. 그러면 이런 식으로 나올 겁니다.”
몽주는 종이 위에 글자를 쓰니, 마치 구형 타자기로 글자를 치면 나올 법한 모양이었는데 그것이 사면 안에 나뉘어 있어 아래와 같은 모습이었다.
┌─┬─┐
│ㄱ│ㅏ│
├─┼─┤
│ │ㅇ│
└─┴─┘
화극은 그걸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했다는 모습을 보였는데, 다음 순간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몽주에게 물었다.
“하면 충이나 군과 같은 글자는 어찌하는가?”
“…….”
몽주는 아차 싶었다. 사실 인쇄술은 딱히 현대에서 논의하여 제주에서 시행한 것이 아니라, 압축분쇄기를 보고 번뜩 떠올라 시도한 것이라, 그도 활자나 활판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저 초성, 중성, 종성으로 나뉘는 한글의 원리를 이용하면 되겠지 싶었는데, 모음인 중성이 아래로 내려가니 4면으로 나누어 활자를 조합하는 것이 힘들다는 걸 깨달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먼저 든 생각은 나중에 현대에 가서 활자에 대해 공부한 후에 다시 시도할까 하였지만, 이 참에 고려에서 나름 자체적으로 시도해 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그런 문제가 있겠군요. 하면 어르신께서 한번 궁리해 보시지요. 한글은 사람의 말을 따서 지은 것이라, 자음과 모음을 따로 쓸 수 있으니, 통째로 만들지 않음을 명심하면 보다 적은 활자로 많은 글자를 조합할 수 있을 것입니다.”
“…….”
화극이 영 찝찝한 표정으로 일단 알겠노라 고개를 끄덕였지만, 자신 있는 표정은 아니었다.
후에 인쇄술에 관심이 많은 홍 교리나 책을 좋아하는 점녀가 동참하여 활자를 연구하였고, 여러 방법으로 시험한 뒤, 그들이 가져온 결론은 활자를 상하로 나누는 것이었으니 그 모양은 아래와 같았다.
┌─┬─┐
│꺼│추│
├─┼─┤
│ㅇ│ㅇ│
└─┴─┘
비록 초성과 중성을 나누는 것보다 필요한 활자의 종류는 많아지겠지만, 중성의 변화에 맞춰 활자의 분면을 더 나누면 글자를 알아보기 어렵거나 간격이 크게 달라지기에 그것이 최선이라는 것이었다.
몽주는 다소 아쉽지만, 일단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나중에 현대에서 알아본 후, 더 나은 방법이 있다면 차후의 활자는 고쳐 만들 작정이었던 것이다.
하나, 후에 정작 현대의 한글 활자는 글자를 통째로 주조한 것임을 알게 되었으니, 가독성과 미적 감각을 위해서 자음과 모음을 구분하여 조합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오프셋 인쇄(Offset printing, 平版印刷)로 대표되는 현대 인쇄 산업에서는 다 지나간 옛날 일이었다.
어쨌거나 일단 활자 체제를 정하자, 그것을 가급적 작게 만드는 것을 시도하였는데, 생각보다 결과물이 괜찮았다. 일 세미(센티미터) 안에 넉넉하게 한 글자를 조합할 수 있을 정도였던 것이다. 만약 ‘활’같이 획이 많고 이중 모음을 가진 글자만 아니었다면 더 작게 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다.
문제는 작게 만든 건 좋았는데, 그 작은 활자를 선명하게 찍어 줄 ‘잉크’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먹물은 종이에 많이 번지는 터라 인쇄될 글자가 제대로 찍히지 않았던 것이다.
하여, 다시 현대에서 적당한 잉크 제조법을 구해 와야 했으니, 들기름(건성유)에 그을음과 목탄을 섞어 만들 수 있었다.
사실 종이도 문제였다. 그건 종이가 인쇄에 적합한 것이냐의 문제뿐만 아니라, 수량을 확보하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안 그래도 혼란한 고려 말기인 데다가 근자에 중란까지 있어, 고려 종이의 주된 재료인 닥나무 재배 생산이 크게 피폐해져 종이가 귀해진 탓이었다.
제주에 종이의 재고량이 적지는 않았으나, 본격적으로 인쇄를 시작한다면 금세 동이 날 것이 분명한 바, 몽주는 질이 낮은 종이라도 얻고자, 제주에 야생하는 닥나무, 칡덩굴, 싸리나무 등 섬유소가 풍부한 나무를 구해다 종이를 만들었다.
껍질을 벗겨 섬유소가 풍부한 부분만은 남기고, 그것을 잘게 갈은 뒤, 생석회와 섞어 표백하여 물에 넣고, 실로 잘게 만든 망으로 섬유소를 걸러서 평평하게 말리면 원시적인 종이를 만들 수 있었다.
나름 품질을 높이고자, 풍차를 이용하여 최대한 섬유소를 잘게 분쇄하고, 섬유소가 담긴 물에 마를 갈아 넣어 식물성 점액질을 추가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얻을 수 있는 종이는 갱지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맘에 들지 않았고, 어지간하면 고려나 다른 나라에서 수입한 종이를 써야겠다 싶었지만, 일단 종이 산업도 계속 육성하기로 하였다.
갱지만도 못한 종이를 만드는 비용이 적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고려나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는 종이보다는 저렴했고, 종이도 당연히 발전시켜야 할 산업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인쇄할 준비가 된 것은 사탕무 압축 분쇄기에서 인쇄기를 착안한 지 약 5개월이 지난 후였으니, 몇 번의 실험적인 인쇄 이후 최초로 출판된 책은 ‘인묘 남방백하 만행지론’이었다.
* * *
몽주가 화극과 더불어 한창 활자 조합 원리를 궁리하고 있을 무렵, 경흥후 이성계는 소수의 사병들과 더불어 개경에서 곡산으로 이어지는 길 위에서 말을 달리고 있었다.
“서둘러라! 한 시진 안에 곡산에 닿을 것이다!”
“이랴!”
경흥후의 고함과 함께 기마들이 더욱 박차를 가하였다.
그는 북계로 진출했던 요동공을 견제하던 중에 요동공이 군을 움직여 서경 이남으로 나아가는 것을 따랐고, 급기야 개경의 북부를 침탈하자 급히 영공과 더불어 개경을 방어하는 데 힘을 썼다.
요동공과 수시중의 군력이 합하면 그 공격을 막는 것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판이었기에 모든 신경을 그것에 집중하였는데, 의외로 개경의 북쪽을 침탈하는 군력의 크기가 작았다.
그쯤에서야 그것이 성동격서의 계임을 직감했지만, 이미 그사이 개경에 잠입했던 수시중과 세족들의 사병들이 왕성을 범하고 있었다.
급하게 병력을 나누어 왕을 구하려 하였으나, 이미 궁이 불타고 있었고, 왕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길조차 없었다.
개경에는 수시중과 요동공이 왕을 시해하였다는 소문이 돌면서 민심이 흉흉해졌는데, 영공과 경흥후의 입장에서도 수시중 측에게 향하는 민심이 악화되었다고 좋아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왕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비난 또한 적지 않았던 데다가 왕이라는 중요한 패를 잃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작금의 상황에서 영공이 개경과 금상을 손에 쥐고 있는 건 대단한 이점이었다.
왕명을 받아 그들의 행사를 모두 적법한 것으로 만들 수 있고, 반대로 수시중 일파를 역적으로 몰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워낙에 세족들의 힘이 큰 덕에 수시중이 외통수에 몰리는 것을 피할 수 있었지, 그게 아니었다면 당장에 역적으로 규정되어 처단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고려의 군병들이 중란 중에 저마다 패가 갈릴 때, 영공 쪽으로 조금 더 많이 찾아온 건 바로 금상을 영공이 모신다는 명분 덕이었다.
어쨌거나 수시중 측이 왕을 시해하였다고 소문이 났다 하더라도, 왕을 지키지 못한 영공 측 또한 큰 비난을 받아 타격이 컸으니, 왕이 사라진 상황에서 이제 남은 건 실력대결뿐이었으며, 장차 중란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 뻔했다.
하여, 영공과 경흥후는 급히 논의하여 금상의 행방을 찾기 위해 노력하기로 하면서도 만약 금상이 정말 죽었거나, 행방을 찾지 못하게 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후계를 누구로 세울지에 대해서도 논의해야 했다.
한데, 바로 그쯤에 곡산에서 정도전이 경흥후에게 서찰을 급히 보냈는데, 그것이 경흥후를 곡산으로 달려가게 만들었다.
궁서//하륜이 금상을 모시고 곡산 진중에 찾아와 경흥후와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만약 경흥후께서 오지 않으신다면 금상을 해하겠노라 협박까지 하고 있으니, 경흥후께서는 가급적 빨리 오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다만, 오해를 살 수 있는 바, 영공에게는 비밀로 하십시오. 반드시 그러셔야 할 것입니다.//
곡산은 요동공과의 전투 후, 경흥후의 사병들이 물러나 있는 곳이었다.
아무리 연대하였다고 하더라도, 엄연히 따르는 자가 다른 군대가 개경에 머무는 것이 께름칙했던 영공의 요청으로 군을 물린 것이었다.
한데, 바로 그곳에 행방이 모연했던 왕이 등장하였고, 다른 이도 아니고 수시중의 조카사위인 하륜이 데리고 온 모양이었다.
‘어찌 금상의 안위를 두고 협박을 한다는 것인가? 게다가 삼봉은 어찌 영공에게 비밀로 하라고 한 것인가?’
마상에서 경흥후는 사태가 어찌 된 것인지 궁리하느라 바빴다.
하륜은 수시중의 조카사위로, 이미 중란 중에 수시중을 위해 견마지로를 다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바 있었다. 아마도 왕성을 범한 자들 중 하나였을 그가 왜 금상을 데리고 적인 자신의 진중을 찾은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더불어 삼봉의 처사도 이해 안 되긴 마찬가지였다. 금상이 생존하였음을 알았다면 그것을 널리 알려 흔들리는 민심을 바로잡고, 중란에서의 명분을 크게 높여야 할 것이 아닌가.
일단 삼봉의 말대로 영공에게는 금상의 존재를 알리지 않고, 그의 군중을 살피겠노라 핑계 대며 빠져나오긴 했지만, 자칫 이것이 오히려 나중에 크게 오해를 살 수도 있었으니, 염려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민이 많으나, 그 고민을 풀기 위한 아무런 실마리도 없었기에 경흥후가 할 수 있는 일은 말을 재촉하여 보다 빨리 곡산에 닿는 것밖에 없었다.
* * *
사람은 하루 사이에 일백 년 늙을 수도 있는 법, 지금 수시중 이인임을 보면 과연 그러했다.
필사(必死)를 감수하고 왕성을 범하여 금상을 얻으려 했던 시도는 오히려 사태를 크게 악화시켰다.
궁이 불타고 금상이 죽었다는 소문이 퍼져 세족들 중에도 심지가 크게 흔들려 발을 빼려는 자들마저 생기고 있었다.
정말이지 모든 것에서 손 떼고 어디론가 사라질 수 있다면 그리하고픈 마음마저 들었다.
하나, 고려 땅이든 아니든 어디로 숨든 간에 영공은 자신을 끝까지 잡기 위해 애를 쓸 것이니, 다 허망한 망상이었다.
그런 중에 다만 수시중이 희망을 걸고 있는 단 하나는 하륜이었다.
금상의 행방이 묘연한 중에 하륜 또한 사라졌으니, 어쩌면 그가 금상을 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겼다.
그가 왕성을 범한 이들 중 하나였으니, 금상을 모시던 중 뜻하지 않은 일을 겪어, 곧바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판단한 것이다.
그렇게 기대는 크지 않았지만, 작은 희망이라도 있어야 정신줄을 놓치지 않을 수 있고, 흔들리는 세족들을 달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억지로라도, 하늘에 비는 심정으로 기대하고 있는 중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수시중과 요동공의 군진 내 분위기는 엉망이었다.
전투의 결과, 목표였던 금상을 모셔 오는 것을 실패한 것은 물론이고, 성동격서를 위해 적은 군병으로 많은 군병을 친 탓에 그만큼 죽고 상한 자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요동군 1만 중 사상자가 3천 5백에 달했으니, 만약 요동공이 크게 분전하여 지휘하지 않았다면, 이마저도 완전히 무너져 군세가 흩어졌을 것이다.
수시중과 세족들의 사병들도 왕성을 침범하였다가, 급히 돌아온 영공과 경흥후의 병사들과 충돌하여 많은 이들을 잃어야 했다.
개경에 잠입하느라 제대로 무장을 갖추지 못한 탓에 더욱 많은 자들이 죽고 다쳤다.
사병들 중 돌아오지 못한 자들이 무려 5천에 이르렀는데, 아마 그중에는 포기하고 항복하거나 따로 도주한 자들도 적지 않은 듯했다.
본디 병력의 수를 따지면, 영공 측보다 수시중 측이 많았는데, 나하추로 인해 요동군 일부가 발이 묶여 비슷해졌고, 이번 작전의 실패로 인해 병력을 크게 잃은 탓에 이제는 병력에서도 영공 측에 밀리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당장의 상황만 봐도 암울하지 않을 수 없는데, 엎친 데 덮친 격의 일마저 이어졌다.
요동공 최영이 수시중의 진중에 들이닥쳐 분노하여 고함을 친 것이다.
자세히 듣지 않더라도 그가 명국에서 건너온 소문을 마침내 들은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수시중! 수문하시중! 어디 있소! 당장 모습을 드러내시오!”
한숨을 크게 쉬며 모습을 드러낸 수시중은 군막 앞에서 그의 사병들이 창검을 들어 전방을 경계하고 있는 걸 볼 수 있었고, 그 너머로 요동공이 군병 수십과 더불어 자신을 노려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요동공, 흥분하실 만한 이야기를 들으신 듯하외다. 일단 들어오시오. 나와 독대하여 이야기를 나눕시다.”
요동공이 다시 무어라 소리치기 전에 수시중이 담담히 말을 하니, 요동공이 무엇이 두려울까 싶은 태도로 창과 검이 겨눈 안으로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그와 동시에 수시중 또한 사병들을 물려 그를 공격할 생각이 없음을 비쳤다. 사실 그 순간부터는 오히려 수시중이 위험해진 것이었다.
전장에 이력이 쌓인 장수인 요동공이라면, 수시중과 같은 자는 능히 맨손으로도 죽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나, 두 사람 모두 다른 말이나 행동 없이 군진 안으로 들어갔다.
덕분에 한바탕 크게 충돌할 것 같았던 진중의 분위기도 다소 누그러졌지만, 요동공의 수하들이 가까운 곳에서 경계심을 풀지 않고 있어 여전히 날카로운 기운이 감돌았다.
* * *
삼봉이 서둘러 나와 마침내 곡산의 진중에 도착한 경흥후를 맞이하였다.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삼봉, 어찌 된 일인지 설명을 해 주시오.”
인사가 오가기도 전에 경흥후가 급히 물으니, 안으로 같이 발걸음을 하는 중에 삼봉이 사정을 대략적으로 말해 주었다.
“어제 오시에 이르러 하륜이 금상을 데리고 우리 진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그가 말하길 경흥후께 고할 것이 있다면서 만약 자신의 청을 거둬 주지 않는다면 금상을 해하고, 자신도 자결하겠노라 하였습니다. 실제로도 그가 단도를 들어 금상의 목을 겨눈 탓에 거절하기 어려웠습니다.”
“하면, 지금도 그러고 있소?”
“제가 하륜을 설득하여 진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군막을 펼쳐 그와 금상이 같이 머물 수 있게 해 두었습니다.”
“흠, 하면 금상을 본 자는 내 수하들뿐이겠군.”
“그렇습니다.”
곡산에 위치하였다고는 하나, 고을과는 동떨어진 산기슭 아래에 군진이 자리 잡은 덕에 적어도 하륜이 모습을 드러낸 이후에는 경흥후의 수하 외에 금상을 본 자가 없었다.
그것이 중요한 건은 경흥후가 사정을 파악하고, 결정을 하기 전에 영공의 귀에 경흥후가 금상을 모시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크게 위태로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잘하셨소. 혹여 영공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내가 금상을 숨겨 홀로 득세하려 한다고 오해할 수도 있지 않겠소.”
“…….”
경흥후가 안도하는 사이 삼봉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경흥후도 그것을 느끼고 그를 빤히 바라보니, 삼봉이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하륜과 만나시기 전에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말해 보시오.”
걸음을 멈춘 경흥후가 응하였다.
“하륜이 무슨 연유로 금상을 데려왔는지는 모르나, 이는 경흥후께 큰 기회일 것입니다.”
“……혹, 고려의 왕좌를 입에 또 올릴 생각이오?”
경흥후가 정색하며 물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이미 삼봉이 경흥후에게 단지 심양왕이나 심왕에 만족하지 말고, 고려를 노려야 한다 고한 바가 있었고, 그에 경흥후가 일언지하에 거절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어찌 이미 단호히 거절하신 것을 다시 논하려 하겠습니까. 다만, 금상을 쥐실 수 있다면, 고려의 왕이 아니더라도 심왕으로서 고려마저 평안케 하실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한 것입니다.”
심왕이면서 고려의 실권자가 되어, 허수아비 고려왕을 두고 고려마저 통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였다.
“금상은 보령이 적은 것은 물론이거나와, 총명하지도 못합니다. 힘도 없지요. 향후 중란이 멎는다 하더라도 고려왕은 나라를 다스릴 만한 인물이 아닙니다.”
“영공이 있지 않소?”
“영공은 힘은 가졌으나, 그가 백성들을 평안케 하리라 생각할 수 없습니다. 과거 빼앗긴 토지를 백성들에게 돌려주고, 억울하게 노비가 된 자들을 방면해 주는 등의 업이 있으나, 지금은 장사치들의 배후가 되어 백성들의 고혈이나 빨아먹고 있는 인물일 뿐입니다.”
“어쨌거나 삼봉은 중란 후에 내가 영공마저 도모하길 바라는 것이군.”
“그것이 백성들을 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백성이라…….”
경흥후는 씁쓸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유자들은 말문을 열 때마다 백성이란 말을 뱉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진정 가장 밑바닥의 백성들까지 포용하는 말인지는 의심스러웠다.
또, 그 스스로도 백성들을 위한다는 명분은 늘 부담스러울 따름이었다. 그가 중란에 끼어들어 영공을 돕는 건 단지 심왕좌를 위해서일 뿐이었다.
외적을 막고, 백성들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도 진심이었으나, 그것이 백성들을 평안하게 하는 전부는 아니지 않은가.
경흥후가 생각이 깊은 듯하자, 삼봉이 다시 말문을 열었다.
“더 진중한 이야기는 후에 따로 하시지요. 지금은 하륜을 설득하여 금상을 얻으시는 것에 집중하십시오.”
“알겠소.”
차후의 일은 어찌 되더라도 금상을 구하는 건 해야 할 일이었기에 경흥후는 걸음을 다시 옮겨 하륜과 금상이 있다는 군막으로 향하였다.
* * *
“요동을 명국에 돌려주는 건 명군을 얻기 위한 거짓 약속일 뿐, 실상은 차후에 고려를 일통하여 명군을 몰아내려 하였단 말이오?”
요동공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하니, 수시중이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찻잔을 가벼이 들어 찻물을 한 모금 마시기도 하였으니, 마치 나는 분명히 사실을 말하고 있으니, 믿든 말든 맘대로 하라는 것 같았다.
“지금 그걸 믿으라고 하는 말이오? 명국은 중원을 회복한 대국이오. 고려로 쳐들어오는 걸 막는 것도 힘든 판에 이미 고려에 끌어들여 놓고 내쫓는 것이 가능할 리가 없지 않소?!”
“명이 승천하는 나라임에는 틀림없으나, 실속은 그리 녹록하지 않소. 그들이 요동을 대가로 보낸다고 했던 군병은 고작 세 개의 위, 삼만에도 못 미쳤고, 그나마도 대개 신병이라 군력은 규모에 비해 많이 부족한 지경이었소. 물론, 그마저도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으니, 코웃음이 나지 않을 수 없지만 말이오.”
“신병이든 아니든, 단지 장정에 불과할지라도 삼만의 군력을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니오.”
“그렇다 한들 이만오천의 정예군을 가진 요동공께서 두려워할 필요는 없지요.”
“이보오, 수시중! 만약 내가 저항하여 요동을 사수하고자 한다면, 명국이 비단 그 삼만의 군으로만 요동을 치려 하였겠소? 따로 명군이 더 왔을 것이고, 만약 수시중이 한 말이 거짓이라면 고려의 군병마저 요동을 쳤을 것이 아니오!”
요동공은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양 목소리를 높이며 압박했지만, 수시중은 다시 찻물을 삼키며 담담히 반론하기 시작하였다.
“명군이 그 외 군병을 더할 수 있었다면, 지금 명군이 우리 곁에 있었을 것이오. 그렇지 않소? 하나, 명국은 저들 군병 삼만이 사라진 중에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소. 왜 그렇겠소? 추가로 군병을 동원할 힘이 없기 때문이오. 북방의 원이 버티고 있으니, 나라가 크고 백성들이 많다 하나, 단 한 명의 군병조차 아까울 수밖에 없는 게 명국의 현실이오. 그리고 이것이 내가 요동공에게 설명한, 고려를 일통한 후에 명군을 몰아낼 계획이 진정 가능하고, 거짓이 아니라는 근본적인 증거가 될 것이오.”
“…….”
요동공은 부리부리한 눈매로 수시중을 노려보며, 그가 거짓을 말하고 있는 건 아닌지 속내를 꿰뚫어 보려 하였다.
수시중 또한 태연히 그 날카로운 시선을 받으며 새로 말문을 열었다.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지금 우리의 사정을 살피는 것을 잊지 마시오. 우리는 이미 같은 배를 타고 풍랑의 위태로움 속에 함께 있으니, 자중지란마저 일어난다면 풍랑 속에 다 같이 죽는 길밖에 남지 않을 것이오.”
“……그 말이 차라리 진실 된 듯하외다.”
요동공은 앉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더는 말도 없이 그대로 그의 군중으로 떠났다.
그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제야 수시중의 표정이 암울하게 바뀌며 과거 하륜으로부터 전해 들은 명국의 사정으로 겨우 임기응변한 것임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소맷자락으로 감춘 그의 손이 크게 떨리고 있었으니, 안팎으로 압박해 오는 위기 속에서는 정치에 이력이 난 그마저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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