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152)
축후국을 얻은 지 반년도 지나지 않은 상황이란 건 다의홍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아무리 제주현백이 지원해 주어 축후국을 장악하고 지배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축후국의 호족들이 마음으로 복종하기에는 너무 짧은 기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외부의 공세가 있고, 그들에게 승산이 충분해 보인다면 얼마든지 호족들은 고개를 숙이는 방향을 달리 할 수 있는 법이다.
지금이 딱 그러했다.
5천여로 추정되는 쇼니씨의 사병들이 북쪽에서 내려오자, 축후국 북부에 위치한 구루메(久留米)현의 호족들은 즉각 항복하여 쇼니씨를 맞이했다.
덕분에 다의홍이 어떤 대처를 하기도 전에 축후국과 쇼니씨의 히젠국 및 지쿠젠국 사이의 경계를 이루는 지쿠고강의 이남을 쇼니씨에게 허락하게 되었다.
이는 단지 축후국의 영토를 잃었다는 의미만은 아니었다. 지쿠고강을 이용한 방어도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의미였고, 쇼니씨의 전력이 상승하고, 다의홍의 전력은 하락하였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쇼니씨가 축후국을 압박하기 위해 따로 꾸린 군력은 대략 5천 정도였는데, 쿠루메현의 호족들이 그들의 사병을 바쳐 6천에 이르게 되었고, 그 사병들이 본디 축후국의 슈고에게 주어졌어야 했으니, 다의홍이 부릴 수 있는 군력은 3천에서 2천으로 줄어들었다.
이제 다의홍에게 남은 전략이란 축후성에서 농성하면서 제주현백의 도움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하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제주현백으로부터 아무런 연락도 없었으니, 언제 도와줄지, 도와주긴 할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니, 애초에 제주현백이 뜻하여 다의홍에게 전한 것과는 상황 자체가 달랐다.
도대체 달콤한 혈연의 소식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물론, 다자이후의 혈연(血宴)에 대한 이야기는 금세 전해 들었다.
하나, 그와 같이 온 소문은 고려인이 규슈탄다이 이마가와 료슌을 살해했다는 것이었으니, 전혀 달콤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규슈에서 규슈탄다이를 죽일 만한 고려인은 뻔하지 않은가.
제주현백이 말한 달콤한 혈연이 무언가 잘못된 게 분명했다.
제대로 된 상황이었다면, 제주현백으로부터 무어라고 전언이 왔어야 마땅했다.
문제는 그걸 기다릴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축후국에 쇼니씨의 군력이 몰려온 것 자체가 급박한 것이었으나, 다의홍으로 하여금 더욱 마음을 졸이게 한 것은 쇼니씨의 군병들이 미쓰히로를 데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대로 둘째…… 미쓰히로 님을 죽게 놔둔다면, 영원히 오우치씨로 돌아가기 어려울 것입니다.”
다의홍이 부젠의 슈고였던 시절부터 함께한, 그리고 실상 오우치씨의 무사인 수하 무사들은 모두 쇼니씨의 요구에 응하자는 분위기였다.
쇼니씨가 사절은 보내 항복하라 말하면서, 그렇지 않으면 미쓰히로를 죽이겠다고 겁박한 것이다.
대신, 항복하면 미쓰히로를 살려 주는 것은 물론이고, 다의홍을 중용하거나 원한다면 오우치씨로 보내 줄 수도 있다고 하였다.
쇼니씨가 원하는 건 축후국의 영토뿐이니, 굳이 죽을 자리에 서 있지 말고, 항복하라는 뜻이었다.
하나, 다의홍은 묵묵히 눈을 감은 채 고민에 빠져 있었다.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 부유하고 있었으나, 그중 가장 큰 고민은 진정 제주현백이 료슌을 죽였을지에 관한 것이었다.
제주현백이 무언가 획책하고 있음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설마 료슌을 살해하는 것이었을까?
다의홍은 그가 아는 제주현백이라면 그렇게 경망스럽게 료슌을 해치울 것 같지는 않았다.
퍼진 소문만 봐도 마치 제주현백이 독단적으로 료슌에 대한 불만을 그런 식으로 푼 것 같은데, 정말 제주현백이 료슌을 해치려고 들었다면, 더 정밀하고 뒤탈도 적은 방법을 선택했을 것이다.
하나, 이는 그저 다의홍만의 추정일 뿐이었고, 세상은, 심지어 다의홍의 무사들마저 제주현백이 료슌을 죽였다고 믿었다.
분명 제주현백은 규슈탄다이에게 유감이 많았을 것이다. 지난 싸움에서 료슌이 오우치씨와 손을 잡으면서 제주현백을 외면한 덕에, 히고국이 오우치씨의 것이 되었으니, 불만이 없을 수 없었다.
“그래도 이건 말이 안 되지…….”
다의홍은 문득 중얼거리며 눈을 떴고, 그 시선을 돌려 그의 앞에 있는 무사들을 훑어보았다.
“누가 좀 설명을 해 보게. 대체 료슌의 복수를 위해 군력을 일으켰다는 쇼니씨가 어찌 미쓰히로의 목숨을 두고 나를 협박하는 것인지 말이야.”
“……그야 미쓰히로님이 주군의 아우님이시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비록 본가에서 외따로 나오셨지만, 혈연의 정마저 아무렇지 않게 씻어 낼 수는 없는 법이지요.”
“아니, 내가 물은 건 그게 아니야. 미쓰히로는 료슌의 조카딸과 혼인하기로 했지. 아니, 이미 혼례를 치른 몸이니, 만약 정말로 쇼니씨가 료슌의 복수에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면, 미쓰히로의 목숨을 가지고 누군갈 협박할 수는 없어야 하는 거 아닌가?”
“쇼니씨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오우치씨가 료슌과 동맹한 것이지, 쇼니씨와 동맹한 건 아니었으니까요. 당장 제주현백과 동맹한 주군을 항복시키는 것이 급선무라 생각하면 미쓰히로 님을 두고 협박하는 것도 가능할 것입니다.”
“정말 다들 그렇게 생각하나?”
다의홍이 무심한 어조로 무사들에게 다시 물으니,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도 몇몇 있긴 했으나, 다들 선뜻 무어라 반응하지 못했다.
다의홍은 실소를 머금으며 말하였다.
“쇼니씨가 정말 그런 뜻으로 미쓰히로를 협박용으로 썼다면, 그의 목숨을 걱정할 필요는 없겠군. 내가 협박에 응하지 않는다고 해도, 정말 미쓰히로를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
“하, 하나…….”
다의홍의 말에 당황한 무사들이 어물쩍거리며 무어라 반박하려 하였으나, 다의홍의 말이 먼저였다.
“만약 정말 미쓰히로를 죽인다면, 쇼니씨가 료슌의 복수를 명분으로 세운 것이 거짓이라는 의미일 테고, 또 제주현백이 료슌을 살해했다는 소문에 다른 진실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 않나?”
“…….”
확실히 쇼니씨가 료슌의 복수를 명분으로 세운 것에 부합하고자 한다면, 료슌의 사위 격인 미쓰히로를 절대 죽여서는 안 된다.
그 말은 반대로 만약 쇼니씨가 미쓰히로를 죽인다면, 료슌의 복수라는 명분이 거짓이고, 쇼니씨에게 다른 의도가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건 비단 미쓰히로의 생사 여부를 두고 판단한 것만은 아니었으니, 료슌이 살해된 것으로부터 만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쇼니씨가 발 빠르게 군력을 동원한 것이나, 료슌이 사라졌을 때, 그 어떤 가문보다 쇼니씨가 큰 이익을 얻는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어쩌면 료슌의 죽음에 쇼니씨가 개입되어 있을 수 있다는 정황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료슌이 북규슈의 실세로 자리 잡고, 근래에 이르러 규슈 전체를 아우르게 될 상황에서 쇼니씨는 얼핏 비굴하다 싶을 정도로 료슌에게 엎드렸다.
가독 후유스케가 료슌의 일개 가신처럼 굴었으니, 규슈에서 쇼니씨의 명성을 생각하면 비참하다 싶을 정도였다.
다만,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지금 다자이후를 비롯하여 북규슈를 쇼니씨가 장악한 탓에 누구도 료슌의 죽음에 대해 파헤쳐 확인해 보거나 쇼니씨를 의심하지 못하기에 그 정황에 대한 의구심이 두드러지지 않을 뿐이었다.
“그러다 정말 미쓰히로 님이 일을 당하시면 어쩌시려고…….”
다의홍이 뭔가 결단을 내렸다는 분위기로 자리에서 일어나자, 무사들 중에 크게 당황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다의홍은 문득 미쓰히로를 떠올렸다.
그의 머릿속에는 두 가지 미쓰히로가 있었으니, 하나는 어릴 적 다의홍이 요시히로라는 이름으로 차기 가독으로서 유력한 시절에 그를 열심히 따르던 어린 동생 미쓰히로였고, 다른 하나는 다의홍이 오우치씨에서 내쳐진 이후, 아버지의 지원을 받아 다음 가독으로 유력해진, 그래서 다의홍을 거만하게 무시했던 미쓰히로였다.
다이묘의 혈연으로 태어나고, 한 지역의 권력가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것은 가족의 정마저도 권력에 좌지우지될 수 있음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뜻함을, 그 두 미쓰히로의 차이를 통해 실감할 수 있었다.
“만약 미쓰히로가 죽는다면 오우치씨에게는 유감이겠지.”
“……!”
다의홍이 마치 그저 아는 집안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행동하자, 수하 무사들이 그들의 주군이 마음먹은 것을 눈치채고 한숨을 숨겨 뱉었다.
주군이 노선을 확정하자, 더는 할 수 있는 말도 없었다. 설령 그에 반대하더라도 그것을 빌미로 주군을 떠날 수도 없었다.
그건 무사로서의 도리도 아닐뿐더러, 이제 와서 오우치씨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들이 설 곳은 없기 때문이었다.
한 번 따른다면 영원히 따라야 하는 것을 오래전 오우치씨를 떠날 때부터 알고 있었으니, 지금 마음을 바꿀 수는 없었던 것이다.
다의홍이 마침내 결단을 내려, 구루메현에 진을 친 쇼니씨의 군세에 전령을 보내, 요구에 응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자 한 시진 만에 쇼니씨의 군병들이 축후성으로 몰려들었다.
성벽 위에서 그것을 지켜보던 다의홍과 수하 무사들은 그 모습에 격동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것은 다가올 전투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쇼니씨의 군병 가장 앞에 누군가가 몰골이 엉망인 상태로 끌려오고 있었으니, 그자가 미쓰히로임을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쇼니씨의 군이 축후성에서 멀찍이 떨어져 진을 세우더니, 다시 일단의 무리들이 미쓰히로를 앞세워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들은 성벽에서 200미까지 다가와 목재를 세우기 시작하였고, 그사이 전령이 다시 성벽 앞으로 달려와 소리쳤다.
“마지막으로 권한다! 항복하라! 그렇지 않으면, 네 동생이 고통스럽게 죽을 것이다!”
다의홍은 아무런 반응 없이 무심하게 전령을 내려다볼 뿐이었으니, 잠시 대답을 기다리던 전령이 돌아갔다.
그 직후에 미쓰히로가 무릎 꿇리고 그의 목에 밧줄이 묶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동시에 울먹임에 묻은 고함 소리도 들려왔다.
“손노타로(孫太郎)! 손노타로, 정녕 나를 죽게 둘 셈이냐!”
그것은 미쓰히로의 고함이었으니, 다의홍의 어릴 적 이름을 부르며 애원하는 것이었다.
수하 무사들이 고개를 숙이며 애통해하고, 무심하게 바라보던 다의홍도 마른침을 삼키며 지금의 상황에 마음이 흔들렸지만, 그래도 다의홍은 끝끝내 새로운 명을 내리지 않았다.
그사이 목에 줄이 걸린 미쓰히로가 쇼니씨가 세운 목봉에 매달렸다.
연이어 소리치던 것도 꺽꺽 소리와 함께 막혔으니, 저녁 석양 아래 미쓰히로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이 먼 거리를 격하여 눈에 선하게 들어왔다.
그때, 다의홍의 옆에 서 있던 한 무사가 활을 들어 성벽에 가까이 붙자, 다의홍이 재빨리 그 무사의 팔을 잡아끌었다.
“저대로 죽게 두느니, 차라리 단숨에 숨을 끊어야 하지 않습니까!”
눈물이 가득한 무사가 항의하자, 다의홍 또한 잔뜩 붉어진 얼굴로 고함쳤다.
“그리된다면, 미쓰히로는 내 손에 죽은 것이지 않느냐!”
“어찌 지금에 와서도 그런 상황의 유불리를 따지신단 말입니까?”
“이런 머저리 같은 자들을 보았나!”
다의홍은 잡고 있던 무사의 팔을 내팽개치더니 곧바로 허리춤에 달린 칼을 빼 들었다.
“너희나 나나 아직 멀었다! 나는 이미 오우치씨의 아들이 아니다! 너희도 더는 오우치씨의 무사가 아니다! 나는 이제 다의홍이고, 너희는 나 다의홍의 무사일 뿐이다! 그러니 울지 마라! 지금은 저들의 오판을 비웃을 때이지, 눈물을 흘려야 할 때가 아니란 말이다!”
다의홍이 소리치며 투구를 벗어 던지곤, 칼로 촌마게(丁髷 : 일본식 상투머리, 무로마치 시대부터 시작됨)의 틀어 올려 묶은 머리를 잘라 내었다.
싹뚝!
잘려 나간 상투머리가 성벽 위에 떨어지고, 다의홍이 꼴사나운 봉발인 채로 그렁그렁한 눈물을 애써 억누르니, 무사들도 감히 다른 말을 하기 어려웠다.
그저 이제는 진정 오우치씨와 완전히 절연하게 되었다는 사실만이 모두에게 깊숙이 각인될 따름이었다.
한참이나 수하들을 노려보던 다의홍은 문득 성벽 밖으로 몸을 기울이며 크게 소리쳤다.
“나는 다의홍이다! 죽어도 이 성을 내어 줄 수 없다!”
더는 소년의 목소리가 아닌 우렁찬 고함이 축후성의 북쪽에 울릴 때, 미쓰히로의 고통스러운 몸부림도 잦아들기 시작했다.
이제 약관의 나이인 다의홍은, 겨우 성인식을 치른 미쓰히로의 죽음과 함께 위험한 홀로서기를 시작하였다.
* * *
시마즈씨의 가독 우지히사(島津氏久)는 답답함에 몸을 뉘여도 잠이 오지 않았다. 도무지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 것인지 짐작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미 규슈의 남쪽 끝에 있는 그에게도 다자이후에서 일어난 비극에 대한 소식이 전해졌다. 그것은 오토모씨를 통해 전해진 것이었고, 두 가문 모두를 당황하게 만들 만한 것이었다.
료슌이 죽었다는 건 시마즈씨와 오토모씨가 내부의 많은 반론을 이겨 내고 결정한 막부로의 귀순이 무의미하게 변한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료슌이 있었기에 규슈의 막부 세력이 곧추설 수 있었으니, 반대로 그가 사라졌다면 막부 세력 또한 지리멸렬할 수밖에 없었다.
본디 남조를 따라 독자적인 노선을 추구하던 시마즈씨의 입장에서는 얼핏 더 나은 상황인 듯하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앞으로 규슈의 세력 판도가 어찌 변할지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게 변한 탓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고려인이 규슈탄다이를 죽였다고 하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최악의 경우 고려와의 전쟁도 가능할 것이고, 사실이 아니라도 북규슈에서는 쇼니씨와 오우치씨, 그리고 제주현백이 내세운 다의홍 사이에 충돌이 발생할 것이다.
문제는 그 양상이 어찌 돌아가고, 어떤 결론이 날지 도저히 가늠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차라리 혼례에 사람을 보냈어야 했던가.”
어두운 밤, 침상에 누워 중얼거리니, 시마즈 우지히사는 아직 막부로의 귀순이 결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료슌과 오우치씨의 혼인 동맹식이나 마찬가지인 혼인식에 참석하길 거부했던 걸 후회하였다.
혹시라도 막부가 시마즈씨와 오토모씨의 귀순을 거부할 경우에 대비한 것이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사람을 보냈을 것이다.
그랬다면 보다 자세한 소식이 전해졌을 수도 있었을 터이니.
하나, 이미 지나간 결정이었고, 지금은 다음 소식이 전해지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하여, 우지히사는 다시 상황을 따져 보며, 오지 않는 잠을 대신하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밖이 소란스러워지더니, 그의 심복인 가신이 목소리를 내어 침실에 들어가겠노라 고하였다.
우지히사도 서둘러 일어나 그를 맞이하니, 그가 전해 온 소식은 대단히 충격적인 것이었다.
“정녕 쇼니씨의 군병들이 오우치 미쓰히로를 죽였다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오토모씨가 전해 오길, 그들이 축후국에 들인 첩자가 두 눈으로 확인한 것이라 합니다. 미쓰히로를 내세워 축후국의 요시히로에게 항복을 권하였는데, 요시히로가 거부하자, 미쓰히로를 목매달아 죽였다 합니다.”
우지시하의 머릿속이 일순 크게 복잡해졌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수가 사라지면서 전후사정이 명쾌하게 변하였다.
“즉시 가신들을 소집하라!”
우지히사가 침복 차림으로 침실을 뛰어나가며 소리치니, 시마즈씨의 주성 내에 급한 움직임이 일었다.
이미 상황의 급박함으로 언제든 호출될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시마즈씨의 가신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모이니, 우지히사가 논의 따위는 필요치 않다는 양 선언하였다.
“지금 즉시 전군을 몰아 히고를 칠 것이다. 쇼니씨가 오우치씨와의 관계에 있어,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으니, 오우치씨는 히고를 돕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하늘이 준 기회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가독 우지히사가 주장하니, 가신들이 그에 반론하지 못했다. 아니, 할 필요가 없었다.
히고국은 규슈 남부의 핵심인 곳으로, 시마즈씨가 오래토록 탐내고 있었던 지역이었다.
다만, 예전에는 규슈 남조의 중심 세력인 키쿠치씨가 자리하였던 곳이라 넘보지 못했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료슌과 손을 잡은 오우치씨가 점하고 있어 아쉬워할 뿐이었다.
하나, 이제 료슌이 죽었고, 북규슈를 장악한 쇼니씨는 오우치씨와 원수가 되길 택했으니, 오우치씨의 힘이 규슈의 남부에 닿기 어려워졌다.
지쿠고국의 다의홍 또한 쇼니씨와 충돌하였다고 하니, 히고국은 완전히 동떨어진 상태이며, 앞으로도 그를 도울 세력이 나올 가능성은 없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었다.
그러니, 시마즈씨가 숙원을 눈앞에 두고 가만히 있을 이유는 없었다.
다의홍이 쇼니씨의 거센 공격에 저항하고 있을 때, 시마즈씨의 군세가 히고국으로 향하니, 규슈의 중남부는 한층 더 혼란스러워졌다.
* * *
규슈의 혼란이 가중되기 직전, 쇼니씨가 자신을 기만한 것을 확인한 몽주의 선택은 동쪽이었다.
즉각 쇼니씨를 치거나, 축후국의 다의홍을 지원하는 대신, 뱃머리를 동쪽으로 돌려 막부로 향한 것이다.
하루 만에 세토 내해를 가로질러 교토의 입구라 할 수 있는 셋츠국 앞바다에 닿으니, 검선(檢船)을 위해 온 막부의 관리에게 다자이후의 비극에 대해 알려, 곧바로 막부에 소식이 전해졌다.
다시 불과 반나절 만에 셋츠국에 칸레이 호소카와 요리유키가 충격에 놀란 표정으로 직접 행차하였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여, 몽주는 배에서 내리지 않고 포구 근처 바다에 있었는데, 칸레이는 그런 비례에 개의치도 않고 직접 배를 타고 건너와 소식을 캐물었다.
확실히 그는 료슌을 진정으로 아끼고, 친우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나포한 쇼니씨의 배에서 나온 증좌로 료슌이 죽었음을 재차 확인시키니, 칸레이는 사람이 큰 충격을 받았을 때 보이는 증상을 고스란히 드러내었다.
불신하고, 분노하다가 끝내 체념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으니, 칸레이는 료슌의 죽음을 믿지 못하겠다는 양 몽주의 말이 거짓임을 증명하려고 마구 따져 댔고, 그것이 실패하자 마치 몽주가 료슌을 죽이기라도 한 것처럼 분노하였다.
물론, 그 분노에는 아주 이유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몽주는 거짓말을 섞은 참말이자 참말을 섞은 거짓말을 하였으니, 쇼니씨의 가독 후유스케가 자신에게 함께 료슌을 도모하자고 청한 사실을 밝히면서, 그에 응하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그것을 료슌이나 막부에 알리지도 않았다는 것을 미안한 양 말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쇼니씨로부터 받은 서찰들을 보여 주었으니, 혹시 쇼니씨가 또 다른 음모를 계획하였을 경우, 대응할 때 필요할까 싶어 제주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물론, 칸레이의 의심이 그걸로 끝난 건 아니었다.
그는 대체 어찌 고려인인 제주현백이 그 소식을 막부에 전한 것인지를 캐물었고, 몽주는 서찰에 나오듯 쇼니씨가 단독으로라도 일을 진행할 것을 알렸기에 상황을 주시하기 위해 왔다가 쇼니씨가 자신에게 료슌을 죽인 누명을 씌우려 하고 있음을 알려 주었다.
그 말 또한 약간의 거짓이 섞여 있었으나, 쇼니씨가 막부에 보내려던 선편을 모는 자로부터 제주현백에게 누명을 씌우려 했다는 증언을 약간의 고신을 통해 이미 구해 놓은 상태라 무리 없이 칸레이를 설득할 수 있었다.
몽주의 의도대로 칸레이가 상황을 알고 일단 물러갔으니, 그의 어깨는 축 처져 있었다.
친우 료슌을 보내 골칫덩이였던 규슈의 문제를 해소하나 싶었는데, 이제 규슈는 다시 혼란스러워지고 친우를 잃는 결과만을 얻었으니, 그가 낙담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다시 칸레이로부터 연락이 온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으니, 셋츠국의 관청에서 만나자고 하였다.
여전히 상륙하는 것에 위험성이 있었으나, 몽주는 여러 수하들과 더불어 뭍에 올라 칸레이와 만났다.
몽주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모를까 일단 들은 것이 있으므로 무턱대고 해하려 들진 않을 것이라 믿은 덕이기도 했고, 칸레이에게 삼십여 척의 대형 군선들과 배들마다 가득 실린 화포를 보여 주었으니, 셋츠국이 망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라도 자신을 해할 수 없다 믿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셋츠국의 관리들은 고려의 정식 사신을 대하듯 극진하였고, 칸레이도 정중히 몽주를 맞이하였다.
잠을 자지 못한 듯 피곤한 얼굴에 눈까지 충혈되어 있는 칸레이가 몽주를 맞이한 직후에 던진 질문은 몽주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아무 생각이 없이 이곳까지 소식을 전해 온 것은 아닐 것이오. 아무리 누명을 썼다고는 하나, 그대가 화인(和人)이 아닌 이상 위험을 무릅쓸 이유는 없을 테니까. 그러니 말해 보시오. 무슨 생각으로 나를 보려 한 것이오?”
몽주는 고개를 끄덕여 칸레이의 짐작이 맞다는 신호를 보내며 말문을 열었다.
“쇼니씨는 내게 료슌을 죽인 누명을 씌워 적대하고, 그것을 빌미로 막부와 친선하여 료슌이 누리고 있던 위치를 점하려 하였을 것입니다. 확실히 쇼니씨가 북규슈를 장악하여 막부의 뜻에 맞춰 규슈를 일통하고자 하였다면 적어도 쇼니씨가 규슈를 얻을 때까지는 막부의 명에 충실했을 것입니다. 하나, 쇼니씨는 규슈탄다이를 죽였으니, 속내로 언제고 막부를 벗어날 작정을 하였을 것입니다.”
“굳이 그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되오. 이미 쇼니씨가 사다요(료슌의 속명)를 죽인 것을 알게 된 이상, 그들은 나나 막부와 돌이킬 수 없게 되었으니.”
칸레이는 피곤함 속에 분노가 잠긴 음성으로 필요 없는 소리는 이제 그만하라는 듯 선언하였다.
몽주로서는 반가운 반응이었다.
권세를 다루는 자들은 때로는 원수와도 손을 잡는 법인데, 칸레이가 이처럼 료슌의 죽음 앞에 냉정하지 못하니, 쇼니씨에 대한 막부의 결정 또한 한 가지로 귀결될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하면, 규슈의 상황만 살피면 되겠군요. 그에 관해 제가 원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오우치씨를 규슈탄다이에 임명하여 주십시오.”
“……?”
몽주의 말에 칸레이는 눈매를 좁히며 그 의도를 따지려는 듯 고민하였다.
“……오우치씨가 막부에서 이탈하는 것을 막고자 함이오?”
칸레이가 잠깐의 생각 끝에 물으니, 몽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막부를 따른 것은 규슈에서 료슌이 크게 흥하였기 때문입니다. 막부의 관리인 료슌이 가까운 곳에서 크게 흥하였으니, 막부를 외면해서는 살아남기 어려울 수 있다 여긴 것이지요. 한데, 이제 료슌이 죽었고, 다시 규슈가 혼란스러워질 것이니, 그들이 다른 마음을 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 오우치씨가 쇼니씨의 속내가 그러하듯 규슈를 일통할 때까지만 막부를 따르려 하고, 그 후에 더 거만해질 수도 있지 않소?”
“그렇게 되지 않게 만들면 될 것입니다. 지쿠고국(축후국)의 요시히로에게 히젠국과 히고국의 슈고직을 더하여 하사해 주십시오. 이것이 제가 원하는 두 번째 요구입니다.”
“그것은 곧 그대가 규슈의 서쪽을 가지겠다는 의미가 아니오?”
칸레이가 코웃음을 치며 물으니, 몽주는 이번에도 태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실질적으로 그럴 것입니다. 하나, 이를 통해 칸레이와 막부는 세 가지 이점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세 가지?”
“하나는 오우치씨와 더불어 제가 쇼니씨를 축출할 것이니, 료슌의 원수를 갚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저와 오우치씨는 긴장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으니, 오우치씨가 막부와의 선을 먼저 끊을 수 없게 될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규슈의 남부마저 막부에 귀순케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몽주의 말에 고심이 많아진 듯 손톱마저 물어뜯는 모습을 보이던 칸레이가 마지막 이점에 되물음을 던졌다.
“이미 료슌으로부터 전해 받아, 시마즈씨와 오토모씨의 귀순을 허락하기로 내부적으로 결정이 났으나, 이제 그 이야기가 물 건너간 것은 알겠소. 하나, 그대의 요구가 그들로 하여금 막부에 귀순하게 만들 것이라는 건 대체 어떻게 그리하겠다는 것이오?”
“아니라면 그들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우치씨가 막부를 추종하고, 저 또한 교역을 위해서라도 막부와 친선할 것이니, 시마즈씨와 오토모씨 또한 막부에 척을 지지 못할 것 아니겠습니까?”
“반드시 그럴 것이라는 보장은 없소.”
“하면, 제가 직접 그들을 쳐서 돌려 드리지요. 물론, 그때는 약간의 상이 있길 바랍니다.”
몽주가 자신만만하게 말하니, 칸레이가 눈을 감고 고민하였다.
솔직히 말해서, 외국인인 제주현백이 규슈의 일부를 간접적으로라도 지배하는 것에 거부감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나, 그래서 오히려 믿을 만한 구석이 있었으니, 제주현백은 석상(昔商)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하듯 교역에 중점을 둘 것이고, 그렇다면 막부와 척을 지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칸레이의 고민은 쉽게 해결될 만한 것은 아니었으나, 몽주의 입장에서는 다행히도 반나절 만에 결론이 났으니, 오우치씨로부터 전해 온 소식 덕이었다.
시마즈씨가 군을 움직여 히고국을 치고 있다는 소식이었고, 겸사로 축후국이 쇼니씨의 공세에 끈질기게 저항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오우치씨는 히고국을 지원하기 위해 군을 움직일 작정이니, 막부의 표면적인 허락을 구하려고 했다.
상황이 긴박하게 흘러가고, 오우치씨가 쇼니씨의 기만을 아직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자, 칸레이와 막부 또한 마음이 급해졌으니, 몽주가 제안한 세력 구도가 더욱 설득력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칸레이의 동의를 얻어 다시 몽주가 바다로 나서니, 쇼니씨의 기만을 확인한 지 삼 일 만의 일이었다.
몽주의 마음은 축후국에 닿아 있었지만, 일단 함대가 향한 곳은 오우치씨의 스오국이었으니, 오우치씨에게 사실을 알려 칸레이와 몽주가 합의한 계획에 합류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다만, 몽주가 궁금해한 것은 미쓰히로의 생사 여부였는데, 그에 대한 소식은 스오국에 닿은 후 알 수 있었다.
시마즈씨와 손을 잡은 오토모씨가 오우치씨와 쇼니씨의 충돌을 야기하기 위해 따로 선편으로 미쓰히로가 죽은 사실을 오우치씨에 전하였고, 그로 인해 오우치씨가 발칵 뒤집혔을 때, 마침 몽주가 그곳에 닿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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