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169)
몽린 재단 재단장실 겸 회의실 내부에는 세 사내가 널브러져 있었다.
시간은 벌써 새벽 3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고, 그들이 각각 앉은, 아니 퍼져 있는 소파와 의자 주변에는 온갖 서류들이 배달시킨 음식의 흔적들과 뒤섞여 있었다.
누가 보면 세 사람이 육박전이라도 펼친 것처럼 보였지만, 그들은 엄연히 회의를 한 것이었다.
어떻게 보자면 일종의 육박전이랄 수도 있었다.
첨예하게 의견이 대립하여 혀끝으로 상대방을 쓰러뜨리려고 애를 썼으니까.
그 대립의 주제는 ‘중국에 대한 대책’이었다.
“후우, 이제 그만들 싸우시고, 정리 좀 해 보죠.”
먼저 기운을 차린 건, 그래도 직접 대립하여 싸우기보다는 심판 겸 소주제별 판정단 역할을 한 몽주였다.
몽주의 말에 창가 쪽 소파 팔걸이에 걸터앉아 팔짱을 끼고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던 두신이 먼저 회의 탁자 앞에 앉았고, 근처에 비스듬히 누워 있던 재상도 뒤늦게 몸을 일으켜 두신의 건너편에 앉았다.
“일단 명나라 인구수는 1억 안팎이라 가정하죠.”
몽주도 회의 탁자 앞에 다가오며 한 가지 가설부터 확정 지었다.
재상과 두신 둘 다 몽주의 가설 확립에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는데, 이는 두 사람의 주장 모두와 다소 동떨어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번 회의에서 재상과 두신 사이에는 수많은 충돌이 있었는데, 먼저 명나라의 규모를 추정하는 데에서부터 의견이 갈렸다.
명나라의 당대 영토야 몽주가 아는 바가 있으니,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었다.
흔히 밍-차이나(Ming-China)라 불리는 명나라의 영토에서 북방 영토와 운남 쪽 남방 영토를 제외한 것이 당대 명나라의 영토였다.
역사적으로 볼 때, 명나라가 그 본연의 영역을 확정 짓는 시기는 앞으로 10년은 족히 흐른 뒤였다.
한데, 그 영토 안에 살고 있는 인구수에 대한 추정은 재상과 두신 사이에 큰 차이가 있었는데, 재상은 1억 명은 절대 불가하고, 6천만 명 안팎일 것이라 하였고, 두신은 1억 5천만 명 이상, 어쩌면 3억 명에 가까울 수도 있다고 하였다.
재상은 원말명초의 혼란기가 이제 정리되는 시기이기에 그사이에 많은 이들이 죽어 나갔고, 아직 회복했을 리가 없다고 했는데, 원나라 시절의 쓸 만한 마지막 호구 조사를 통한 추정치가 1억 명이 안 되었음을 그 증거로 내밀었다.
이에 두신도 혼란기로 인한 인구 감소에는 동의하면서도, 한 가지 가정을 통해 그보다 많은 인구를 주장하였다.
그 한 가지 가정이란 바로 인두세(人頭稅)로 인한 호구 조사의 왜곡이었다.
청나라 이전까지, 즉 명나라 때까지 중국에는 인두세가 여러 이름으로 유지되고 있는데, 그 인두세를 회피하기 위해 호구 조사에 제대로 응하지 않거나, 자식을 감추는 등의 행위가 중국 역사 내내 있었다는 것이다.
좀 큰일이 일어났다 싶으면 수백만을 넘어 수천만의 인구가 줄어드는 곳이 중국이긴 하지만, 실상 그만큼의 인구가 죽은 것이기보다는 당대 중국 정부의 관리에서 벗어난 탓도 컸고, 실제로 난리가 일어나 행정력이 약화되면 난리의 여파가 미치지 않았던 곳에서도 인구가 격감하곤 했었다.
반례로 청나라 시대에는 중국 인구가 급증하는데, 이는 인두세 폐지로 인한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였다. 더 이상 자식을 감추거나 호구 조사를 피할 필요가 적어졌기 때문이다.
청나라 건국 이후, 고작 2백 년 동안 인구가 두 배 이상 늘어 3억 명을 훌쩍 넘은 것은, 전근대 시대의 수명을 생각하면 자연 증가만으로는 불가능했다.
어쨌든 두신은 인두세의 존재와 더불어, 아직 명국의 행정력이 완전하지 못함을 이유로 들어, 실제 인구는 조사된 인구의 곱절, 혹은 세, 네 곱절일 수도 있다고 주장하였다.
어느 쪽이든 제주는 물론이고, 고려나 왜국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은 인구긴 하지만, 재상과 두신은 명국의 인구를 두고 치열하게 다퉜다.
재상은 아무리 인두세로 인한 호구 조사의 부정확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숨은 인구가 그렇게 많을 리도 없고, 어차피 숨은 인구는 국력에 기여하는 바가 없으니 없는 셈 쳐야 한다고 하였다.
그에 두신은 적어도 혼란기 전후에는 숨은 인구가 충분히 많을 수 있고, 조사된 인구가 아니더라도 그들이 생활하는 것 자체가 국가의 경제력과 유관하기 때문에 결국 국력의 일환이 된다면서 절대 없는 셈 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사실 그리 중요한 부분은 아닐 것 같은 인구, 어차피 무지하게 많다는 사실 자체는 달라질 것이 없는 인구수를 두고 두 사람이 이처럼 다툰 것은 명나라의 규모가 명나라에 대한 대책을 결정하는 것에서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명나라에 대한 대책 중 가장 큰 관건은 ‘분열의 유도’였다.
일단 두 사람 모두 당대의 중국에는 이미 통합의 구심력이 존재하는 데에 동의했다.
진나라의 영정(시황제)이 중국을 최초로 통일하고 황제에 오른 이래로, 진한 시대를 거치면서 통합의 관성이 분명해졌고, 당송 시대에 이르러서는 5호 16국 시대나 5대 10국 시대 같은 뚜렷한 분열의 시기도 존재하지 않게 될 정도로 접착력이 강해졌다.
그러므로 이제 명국이 원나라를 쫓아내고, 건국한 시점에서 명나라를 분열시킨다는 목표는 달성하기 극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이는 단지 지배자들의 욕망이나 시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황제는 곧 천자(天子)이고, 천자는 천하(天下)라는 개념과 무관할 수 없으며, 천하를 일통(一統)한 자만이 진정한 천자일 수 있다는 관념이 긴 역사와 함께 중국인들에게 뿌리 깊게 내렸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를 근거로 재상은 분열 책동은 거의 불가한 일이고, 설령 일시적으로 분열한다고 하더라도 금세 다시 통합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반면, 두신은 전제에는 똑같이 동의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국을 분열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인구수를 두고 크게 다툰 것도 그 차원에서 있었던 일이니, 숨은 인구가 많은 것과 적은 것에는 분열의 원심력이 그만큼 다르기 때문이었다.
조사된 인구가 당대 지배층에 대한 협조를 의미하고, 숨은 인구가 지배층에 대한 반항을 의미한다면, 숨은 인구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분열될, 혹은 분열시킬 여지가 더 많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게다가 설령 분열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고려를 비롯한 주변국에 유리하다는 가정에 대해서도 두 사람 간에는 의견차가 있었다.
재상은 중국이 분열된다고 하더라도, 그 파편 한 조각 한 조각이 결코 고려보다 작을 수는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영토와 인구의 규모는 작아도, 좋은 땅과 적당한 인구를 가진 덕에 오히려 더 강대한 나라가 새로이 등장할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분열은 곧 경쟁과 다름없으니, 유럽처럼 경쟁에서의 생존과 승리를 위해 노력한 것이 시대의 변천을 앞당기는 결과가 될 수 있고, 그렇게 된다면 고려나 제주의 몽주에게 유리한 것이 절대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물론, 두신은 재상의 가정에 동의하지 않았다.
현대의 중국조차도 경제력이 밀집된 동부 해안 지역만 뚝 떼어 새로운 나라를 가정한다고 해도 그 경제력이 유지될 수가 없는데, 영토와 인구가 국력에 기여하는 부분이 컸던 전근대 사회에서는 더 심할 수밖에 없다.
분열은 그만큼의 약화이고, 경쟁은 발전의 동기이기도 하지만, 국력의 소모이기도 하니, 고려를 비롯한 주변국들에게 유리하다는 말이었다.
실제로 한반도든, 안남(安南 : 베트남 북부)이든, 서장(西藏 : 티베트)이든, 북방 초원이든, 중국인들이 오랑캐라 부르던 민족의 국가가 융성했던 시기는 결국 중국이 분열되거나, 혼란하던 시기였음을 기억하라고도 하였다.
이런 논쟁은 몽주의 힘으로 명나라를 분열시킬 수 있느냐는 문제에서는 더욱 격렬해졌다.
재상은 절대 불가를 외쳤고, 두신은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불가능은 아니라고 반박하였다.
일단 두신은 더 후대는 몰라도, 적어도 당대 명국에는 분열의 씨앗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연왕 주체가 있음을 상시키면서, 그가 남다른 욕망을 가지고 있음과 태자나 다른 친왕과 이복형제로서 그 입지를 지키기 위해서는 결국 분쟁이 있을 수밖에 없으니, 연왕을 지원함으로써 명나라를 남북으로 분열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여기에 가능성은 더 낮지만, 북원을 조금 도와준다면 관중 지방까지는 그들의 영역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가정에 가정을 더해야 하겠지만, 만약 티무르(Timurid)의 명국 원정까지 현실화되도록 지원할 수 있다면 중국은 더욱 크게 분열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데 재상은 두신의 가정을 망상쯤으로 치부하였다.
연왕은 절대 주원장의 생전에는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고, 그럴 필요도 없으며, 만약 독립을 기도한다면 단지 독립 정도로 끝날 수가 없다고 했다.
즉, 역사처럼 황위를 찬탈하든지, 아니면 몰락하든지 그 둘 중 하나일 뿐, 연왕이 따로 영토를 유지한 채 독립하는 건 결코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북원의 재기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북원의 마지막 기둥이랄 수 있던 코케 테무르(擴廓帖木爾 : 확곽첩목이, 1375년 사망)가 죽었으니, 당대 북원의 대칸인 아유르시리다르(孛兒只斤愛猷識理答臘 : 패아지근애육식리답랍, 원 소종)만 죽는다면 북원은 명국과의 충돌이 없더라도 끝이라고 장담했다.
북방과 요동의 원나라 계통의 군벌 역시 북원이 사라지면 함께 지리멸렬할 수밖에 없기도 하였다.
역사에서 나하추가 명군에 몰리다가 투항한 것처럼.
그리고 티무르의 동방 원정은 재상에게는 망상을 넘어 그야말로 판타지였다.
역사처럼 그 전에 티무르가 사망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물론,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원정이 성공할 리 없고, 운이 극에 달하여, 명나라의 영토를 점령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유지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두신은 몽주가 적극 지원한다면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다고 항변하였지만, 재상은 왜 그런 짓을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분열 책동의 손익 계산으로 논쟁이 번졌다.
재상은 결국 분열 책동은 대리전쟁이고, 이는 전쟁과 마찬가지로 막대한 물자가 소모된다면서, 분열로 취할 수 있는 이익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성공 여부도 불확실한 일에 그만큼의 물자를 소모할 필요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에 비해 두신은 중국의 분열이란 단지 당대의 손익으로만 계산할 수 없는 일이고, 차후의 역사에 끼치는 영향까지 감안하면, 큰 이익이라 해야지, 손해는 절대 아니라 말하였다.
당연히 재상은 절대 동의하지 않았다. 단지 지원으로 인한 손해뿐만 아니라, 명나라의 혼란으로 인한 시장성 악화에 따른 손해, 그리고 만에 하나 분열 책동이 명나라 사람들에게 알려졌을 경우, 그 배타적인 민심으로 인해 명나라라는 거대한 시장 자체를 잃을 가능성까지 생각하면 뒷날의 이익 같은 건 생각할 여지조차도 없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몽주가 명국에 반하는 세력을 지원한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는 건 곧 몽주가 공공의 적이 된다는 뜻이고, 공격을 받을 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중국인들을 명나라의 깃발 아래 규합시키는 역할이 될 것이며, 이것이 오히려 중국을 통합하게 만들 것이라고 하였다.
그 후에는 딱히 논쟁점 없이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몽주도 그 전까지는 쟁점별로 자신의 생각을 밝히며 판정단 역할을 하긴 했지만, 그쯤부터는 지친 머리와 마음으로 인해 두 사람의 다툼을 멀뚱히 지켜만 봐야 했다.
새벽까지 이어진 다툼이 체력 방전으로 일단락되자, 몽주는 잠시 휴식 시간을 갖기로 하였고, 이제 다시 논의를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몽주가 명국의 인구를 1억 안팎으로 가정하자, 두 사람 사이에서는 다시 서로의 의견을 주장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그 전에 몽주가 손을 뻗어 두 사람에게 모두 조용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우리가 근 열 시간 동안 중국의 분열을 두고 다투긴 했는데요. 두 분 모두 기억하셔야 할 것은 제가 오늘 회의의 주제로 꺼낸 것은 어떻게 하면 명국을 분열시킬지에 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죠?”
“…….”
몽주가 꺼낸 최초의 안건은 사실 명국 분열 계획같이 거창한 게 아니었다.
그저 상무교리 고신걸을 손에 넣은 연왕의 의도와 그 대응에 관한 것을 물었던 것이다.
물론, 그 주제는 장차 명나라를 어떤 식으로 대할 것이냐는 질문 하나로 인해 명나라에 대한 대계까지 번졌고, 자연 명나라의 분열 나아가 중국의 분열이라는 거대 주제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
“제가 명나라의 인구를 1억이라고 가정하자 한 것은 일종의 상징입니다. 정말 큰 나라라는 상징. 공식적인 자료로 추산할 수 있는 인구는 일억 이하일 것이고, 숨어 버린 인구를 더하면 1억이 넘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상품 시장이라는 점에서 보자면 1억 정도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숨은 인구의 소비력은 그렇지 않은 인구보다 적을 테니까요. 물론, 제주의 물산에 대한 시장은 1천만 이하겠죠. 평범한 양인들이 소비할 만한 건 거의 없으니까요.”
“명나라를 상대하는 계획은 미루자는 말씀이십니까?”
두신이 다소 볼멘소리로 물었다. 몽주가 그저 시장으로서의 명국만을 상정하니, 자연 명나라 분열 시도는 물 건너간 게 아닌가 싶었던 것이었다.
“네, 맞아요. 일단 미루죠. 지금은 생각하고 싶어도 생각할 거리가 너무 없어요. 두 분이 말씀하신 것들 모두가 지금 제가 겪고 있는 14세기 말이 아니라, 역사에 남은 14세기 말의 상황을 두고 하신 것들이죠. 중국이 별로 바뀐 게 없는 것 같긴 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바뀌지 않은 건 아닐 거예요. 나비 효과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죠. 그러니 명나라에 대한 계획은 명나라의 사정을 제가 좀 더 면밀히 살펴본 후에야 논의해야 해야 할 겁니다. 그러니 일단 작은 것부터 생각해 보죠. 거의 아홉 시간 전쯤에 두 분께서 동의한 것부터요.”
주제가 커지고 논쟁이 극렬해기 전에 재상과 두신이 쉽게 동의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태자 측은 물론, 연왕 주체도 현백군이 명군을 황해에서 수몰시킨 것에 대해 알거나, 강하게 의심하고 있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태자의 소총관이 고신걸을 연금한 것이 태자 측에서 명군 수몰 사건의 진상을 알거나, 의심하고 있다는 증거였고, 연왕 주체가 고신걸을 구한 것 또한 그 전에 혹은 그 과정에 같은 의심을 품고 있다는 추측을 가능하게 할 만한 일이었다.
“이것이 맞다면, 연왕이 절 명국으로 부른 것은 두 가지 중 하나일 겁니다. 하나는 명군을 수몰시킨 죄를 묻기 위해서일 테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이용하여 절 압박하고, 어떤 이점을 뜯어내기 위해서겠지요.”
몽주의 논리에 재상과 두신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쪽일까요? 일단 연왕이 보낸 서찰에서 풍기는 느낌은 부드러운 편이었습니다만, 그것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겠죠.”
“죄를 묻겠다는 건 이를 공론화하겠다는 의미나 마찬가지일 텐데, 이는 지금 명나라의 상황에서는 사실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닐 겁니다.”
재상이 손가락으로 턱을 매만지며 먼저 말문을 열었다.
“명군 3만이 몰살당한 일이 알려지면, 명국은 위신 때문이라도 복수를 해야 하는데, 고려를 치든 바다 건너 제주를 치든 어느 쪽이라도 명국에서 감행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건 마찬가지니까요. 그리고 그게 가능했다면, 애초에 태자 측이 먼저 몽주 씨를 의심했을 때부터 천자나 조정에 그것을 알렸을 겁니다.”
“연왕이 고신걸을 구했다면서 몽주 씨와 만나자고 청한 것 또한 연왕도 그 의심을 양지로 끌어올릴 생각이 없다는 의미라고 봐야겠죠. 아니었다면 굳이 몽주 씨를 부를 필요 없이 고신걸만 천자 앞에 내놓아도 충분하니까요. 물론, 몽주 씨의…… 목을 원할 수도 있긴 하겠지만요. 근데, 그리된다면 연왕과 태자는 그 순간 공개적인 적대 관계가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태자 주표가 몽주 씨에게 친근하고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태자가 국가지대사를 비밀리에 숨겼다는 것을 고발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죠. 후계자 자리를 은근히 노리는 주체라고 하더라도, 그 일만으로는 주표가 태자자리에서 낙마할 것도 아닐 텐데, 그렇게 미움을 사서는 살아남기 어렵죠.”
재상에 이어 두신도 같은 판단이었기에 몽주는 다음으로 넘어가기 쉬웠다.
“아닐 가능성도 충분히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연왕이 그 일을 빌미로 저를 협박하고, 마찬가지로 태자 쪽에도 입을 다물게 만들면서 저로부터 뭔가를 뜯어낼 생각이라고 봐야겠군요. 그렇다면 제게 뭘 뜯어내려는 것일까요. 역시나……?”
역시나 제주의 물산일 가능성이 컸다.
상무교리 고신걸이 상인으로 위장하여 명국에서 교역권을 얻기 위해 애를 쓰면서 제주의 물산들도 고위 관리들에게 쥐어졌을 것이다.
애초에 그러라고 다섯 척의 경함선에 물자를 잔뜩 싣고 간 것이니까.
그 물산들이 연왕에게까지 흘러들어갔을 가능성도 당연히 충분했고, 그 물산에 연왕이 욕심을 가질 가능성 또한 컸다.
그런 논리 끝에 두신이 뭔가를 생각하면서 말문을 열었다.
“제 생각에는 연왕이 연국에서 제주의 물산을 받아들이려 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그게 연국에서 생산할 수 있게 하는 것이든, 수입처의 역할을 하려는 것이든 어느 쪽이라도 연국에는 큰 도움이 될 테니까요. 그렇다면 역시나 연왕도 차후에 대비하려는 마음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걸 꼭 차후를 대비하는 것에 연관시킬 건 아니지. 단지 자신의 세력을 공고히 하려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어.”
차후를 대비한다는 말에 숨은 민감한 의미로 인해 재상과 두신이 다시 충돌하려고 하였다.
“자기 세력을 공고하게 하려는 게 차후를 대비하는 거나 마찬가지지, 뭐.”
“엄연히 다르지, 짜샤. 그건 농성과 요격만큼이나 다른 거라고.”
“어쨌든 싸우는 거네. 그리고 그게 분열의 씨앗이 될 수 있는 거고.”
몽주는 서둘러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만하세요. 또 열 시간 동안 입씨름하실 겁니까?”
몽주의 경고에 재상과 두신은 입을 다물었다. 경고도 경고지만, 그 이상 다투기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우선 작은 것부터 해결하고, 큰 건 차차 진중하게 논의하죠. 음, 연왕이 어쨌든 제게 이익을 요구한다면 어찌해야 할까요? 들어줘야 할까요?”
그 물음에 재상이나 두신이나 쉽게 대답이 나오진 않았다. 몽주도 사실 가늠하기 어려웠다.
“가장 편한 길은 연왕의 요구를 무시하는 거겠죠. 아니면 연왕의 요구를 태자 측에 알려서 태자와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는 데에 쓸 수도 있고요. 다만, 그 경우에는 상무교리 고신걸의 운명은 말 그대로 운명에 맡겨야겠죠.”
재상이 고심 끝에 한 말이었고, 이어 두신이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을 받았다.
“제 생각에는 구체적인 걸 알아보고 결정해야겠지만, 기본적으로 연왕의 요구를 수용하는 쪽이 나을 것 같습니다. 어찌 되었든 명나라라는 시장에 제주의 상품이 진출하는 결과가 될 것이고, 잘하면…….”
두신은 뒷말을 하려다가 도로 삼켰다.
물론,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는 몽주든 재상이든 다 짐작할 수 있었다.
연왕 세력의 성장을 통해 명나라의 분열을 유도할 수 있다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연왕이 제주의 물산을 통해 이익을 얻으려고 한다는 가정이 사실일 경우, 연왕의 요구를 받아들일지 말지는 몽주가 명나라를 어찌 처분(?)할지와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몽주는 맥이 풀리는 기분으로 앉은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파묻었다.
“오늘은 여기서 일단락하죠. 생각을 정리해서 고려로 가기 전에 다시 한 번 논의하고요.”
몽주는 급격히 밀려오는 정신적, 육체적 피로감에 지친 목소리로 회의의 종료를 선언하였다.
재상과 두신도 지친 건 마찬가지였기에 찜찜하더라도 그만 떠날 준비를 하였다.
그렇게 두 사람을 먼저 보낸 몽주는 잠시 더 그 방에 홀로 남아 한참 동안이나 고민하였는데, 결론은 딱히 없이 재상과 두신이 한 주장들만이 머릿속에서 충돌할 뿐이었다.
얼핏 중국이 분열한다면 한반도에는 유리한 듯하지만, 분열되기 어려운 중국을 분열시키는 것부터 문제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에 드는 노력과 감수해야 하는 위험을 염두에 둘 때, 과연 진정으로 유리한 것인지 의문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직접 물을 주지는 않되, 비구름이 오도록 기우제라도 열어야 하는 건가.”
명나라가 품고 있는 분열의 씨앗에 직접 물을 주어서는 안 된다. 그건 재상의 주장대로 위험한 일임은 물론, 오히려 명나라 백성들을 뭉치게 만드는 악수가 될지도 모른다.
그 와중에 몽주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예전에 재상과 두신이 언급했던 ‘카네기 인간 관계론’이었다.
상대방에게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먼저 그 행동을 하고 싶게 유도해야 한다는 것.
물론, 그것은 고려의 중란을 유도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고, 복잡한 일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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