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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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이천이라…….”
몽주는 홍길도 교리가 가져온 녹계를 보며 중얼거렸다.
1만 2천이라는 수는 조만간 제주 곳곳에 개교할 기술 학교에 입학을 청한 이들의 수로써,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였다.
훗날 의무 교육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마음에 비쳐 보면 상당히 적은 수였다.
제주 백성들 중 13세 이상에 해당하면서 따로 교육을 받지 못한 인구수를 생각하면 그 몇 배여야 마땅했기 때문이다.
하나, 그에 해당하는 이들 중 대부분이 생계를 위해 일해야 하는 이들이었으니, 실상 부모나 형제의 지원으로 입학할 수 있는 자들을 따져 보면 십중팔구는 지원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교육을 위한 준비, 즉 교사(校舍)와 교사(敎師), 그리고 교과서를 마련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예상한 바지만, 그럼에도 엄청나게 부담이 되는 수였다.
일단 학교 건물이야 대략 구하였는데, 큰 마을에는 새로 크게 지었고, 작은 마을에는 기존에 있던 마을 건물 중 빈 것이 있으면 그곳을 이용하려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생도들을 크게 둘로 나누어 오전과 오후에 각각 가르쳐야 할 듯합니다.”
홍 교리가 송구한 양 고하였다. 쉽게 말해 현대에서도 오래전 베이비 붐 시절에 있었던 오전반, 오후반 형태로 가르친다는 말이었다.
학교 건물이 부족한 것도 이유겠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교사(敎師)와 교과서에 있었다.
가르칠 교사와 생도들이 보고 익힐 교과서가 충분하지 않은 탓이었다.
일단 교과서는 크게 3종을 준비하기로 하였는데, 한글, 한문, 산학이 그것들이었다. 현대로 치면 국영수라고나 할까.
한글 교과서는 기본적으로 맞춤법의 보급을 목표로 한 것으로, 제주와 고려의 역사나 설화를 맞춤법에 맞춰 이야기 형태로 쓴 것이었다.
다만, 맞춤법은 몽주가 현대의 것을 보급하는 대신, 홍길도에게 어간과 어미의 정의와 그 구분에 대해 알려 주고, 이어 적기에 비해 끊어 적기 및 띄어쓰기가 가독성이 좋음을 이해시켜 그로 하여금 당대의 고려말에 맞게 정하도록 하였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아 했던 홍길도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와 그의 수하들은 끙끙 앓는 소리를 내야 했으니, 맞춤법이라는 게 실상 창조에 가까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몽주는 그들의 고통을 모른 척했으니, 바쁘기도 하거니와 그가 참여하면 자연 현대의 맞춤법에 가까워질 것이고, 당대의 고려말과 그만큼 멀어질 것이기 때문…… 이라기보다는 그 고통에 동참하기가 두려운 탓이었다.
어쨌든 여러 역사와 설화의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그 안에 적힐 말들에 한하여 맞춤법을 정리한 모양이었다.
물론, 제대로 된 맞춤법이 정해지고, 그것이 백성들에게 널리 알려지기까지는 기약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나마 한문 교과서의 경우에는 비교적 쉽고 빠르게 정비되었는데, 기본적으로 ‘천자문’이 있기 때문이었다.
훗날 명나라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그것이 교역이든 전쟁이든 어떤 식으로든 그 중요성은 줄어들 리가 없는 터라, 기본적인 한문 교육은 필수였다.
다만, 조심스러운 것은 한문 교육을 위한 서책을 인용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사상, 특히 유학과 중화사상이 보급될 수 있다는 점으로, 차후에 시행할 예정인 한문 심화 과정 내지 중국어 교육의 교과서는 몽주가 직접 감독할 생각이었다.
몽주가 홍길도에게 가장 강조하고, 직접 그 교과서를 검수한 건 산학 교과서였다.
과학의 시대를 아는 몽주로서는 과학의 도구이자, 그 과학을 파헤치는 상상력의 기원인 수학 교육에 심혈을 기울이고자 하였다.
천만다행인 것은 당대에 동양 수학서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산학계몽’이 이미 나와 있다는 점이었다.
산학계몽은 1299년 원나라 주세걸이 지은 것으로, 그 수준이 천원술이라는 일종의 대수학에까지 닿아 있었다.
참고로, 산학계몽은 조선 초기 세종대에는 여러 번 출판되어 널리 쓰였고, 그러던 중에 왜국에도 흘러가 왜국 수학의 원류로 자리 잡기도 하였다.
하나 조선이든, 산학계몽의 출생지인 중국이든 유학 일변도의 풍토 속에서 어느 순간부터는 잊힌 학문이 되었고, 심지어 중국에 경우에는 산학계몽 자체가 사라져, 19세기 청나라 시절에 다시 조선에서 수입해 갈 정도였다.
어쨌든 당대 고려에서도 소수 들어와 있던 산학계몽을 근간으로 산학 교과서를 편성하였다.
본래 목표는 대수학의 입구라 할 수 있는 1차 방정식까지 익히게 하는 것이었으나, 당대의 상황과 현대에서의 논의를 통해 수 체계의 확장(정수, 실수 등)에 중점을 두기로 하였고, 계산은 기본적인 사칙연산에 국한하기로 하였다.
그보다 더 중히 여긴 것은 인도-아리비아 숫자 및 사칙 연산 기호의 보급이었다.
가장 근본적인 산수에 필요한 사회적 약속을 보급함으로써, 생활에 쓰이는 셈을 간편하게 하고, 동시에 더 고차원의 산학을 위한 준비에 중점을 둔 것이다.
여기에 현대에서 초등학생의 학부모답게 두신이 열띠게 강조하여 도입하려는 교육방법론이 하나 있었으니, 산학에서 새로운 개념을 가르칠 때, 처음부터 공식을 알려 주는 대신 공식 없이 먼저 알아서 문제를 해결해 볼 여유를 주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손가락 발가락을 이용해서라도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 봄으로써 스스로 개념을 깨닫거나, 차후에 공식을 배울 때보다 정확하게 그 개념을 이해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아직 산학의 범위가 사칙연산에 불과하여, 크게 도움이 될 방법론은 아니었지만, 1차 방정식 수준부터는 먼저 해결을 시도해 보는 것과 아닌 것은 큰 차이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렇게 3개 교과목을 정하고 교과서도 대략 정해졌는데, 그것을 학생들에게 하나씩 나눠 줄 정도로 대량 제작하는 부분에서 부족한 제주의 출판 기술이 지닌 한계가 드러났다.
“아무래도 올해는 교사에 교과서를 남겨 두고, 생도들이 배울 때 나눠 주는 식으로 해야 할 듯합니다.”
“아쉽군. 생도들 중에서 배우고자 하는 열의가 있는 이들은 집에서도 다시 보고자 할 터인데…….”
“그저 송구할 따름입니다.”
“최선을 다한 것을 아니,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그나저나 교사가 부족해서 큰일이군.”
홍 교리의 녹계에 적힌 교사의 수는 채 50여 명에 불과했다. 홍 교리가 주도하여 제주에 영민하다는 자들을 찾아 응하게 하였는데, 상당히 좋은 대우를 약속했음에도 생각보다 지원하는 자가 많지 않았다.
아무래도 교사라기보다는 스승 내지 사부라는 개념이 강한 탓에 부담스러워하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몽주와 논의하여 교사를 선발하는 기준에 따라 홍 교리가 교직을 권한 자들은 기존의 스승이나 사부와는 동떨어진 평범한 자들이었다.
제주에 소수나마 존재하는 기존의 한학자들, 즉 훈장이라 부를 만한 자들은 배제하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엄연히 있는 학자들을 두고 왜 자신들을 교사로 임명하느냐며 의아해하길 일쑤였던 것이다.
물론, 그 이유야 교과서를 편성하면서 유학과 중화사상에 유의하던 것과 일맥상통했다.
중화사상은 마땅히 배제해야 할 것이었고, 몽주에게 있어 유학은 ‘염산’과 같은 것이었다.
쓸 수 있게 된다면 상당히 유용할 것이나, 다루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설프게 쓰다가는 큰 사고를 낼 수 있는 것.
유학은 과학적 합리성이 사회의 근간이 된 이후, 오직 학문으로서 다시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어쨌든 제주 사회에서 교사의 역할을 하던 자들을 제외하고 나니, 그 자질과 열의를 동시에 갖춘 자를 뽑기 어려웠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교사의 수보다는 교사의 실력이었다.
교과서에 담긴 내용에 한하자면, 교사로 뽑힌 자들이나 장차 생도가 될 자들이 거기서 거기였기 때문이다.
물론, 교과서의 원본이나 초판을 보며 교사들이 먼저 공부를 하고 있긴 하지만, 결국 그들은 ‘선생’이라기보다는 ‘선배’에 불과한 실력을 가질 뿐이었다.
이는 장차 교육 제도가 완비되고, 사범 대학을 세워 졸업생을 내기까지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차라리 기술 학교의 개교를 미룰까 하는 마음마저 들 정도였으나, 아쉬움은 그저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것으로 애써 삭히고자 하였다.
“화극 어른과는 이야기가 잘되었소?”
“그 점은 염려치 마십시오. 화극 어른께서 먼저 청한 것이라 그런지, 매우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셨습니다.”
기술 학교가 그냥 학교가 아닌 것은 기술 또한 교과목 중 하나이기 때문이었다.
열흘 중 삼 일은 가까운 공소에 나가 실습생으로서 기술을 배우게 되어 있는데, 목공, 철공, 선반을 각각 하루씩 잡아 두었다.
이 세 가지가 제주 산업의 가장 기초적인 부분들이기 때문이었다.
본디 기술 또한 따로 교과서를 편성할까 하였으나, 그보다는 현장에 쌓인 기술에 대한 기록을 실습과 더불어 익히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였다.
물론, 교과목화하여 이론 교과서를 제작하는 것이 현 상황에서는 다소 부담스럽고, 교과서를 제작할 만한 인재나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몽주는 그쯤에서 녹계에 날인하여 결재하곤 홍 교리에서 돌려주었다.
그는 녹계를 받다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자시에 이른지 한참입니다. 내일 출항하셔야 하니 서둘러 주무시지요.”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네.”
몽주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기지개를 펴다가 문득 홍 교리에게 물었다.
“요사이 백성들이 일터에서 몇 시까지 있지?”
“보통이라면, 유시쯤이면 집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유시(酉時)는 오후 5-7시였다.
제주의 산업이 확대되면서 몽주는 제주의 모든 일터에 피치 못할 경우를 제외하곤 유시 이후에는 문을 닫게 명하였었다.
야근이 당연시되는 풍토의 현대 한국과 같은 사회 분위기를 지양하고자 한 것이었다.
사실 굳이 명을 내리지 않더라도, 극초기 이후에는 산업의 확대와 노동자의 확대가 동시에, 그리고 몽주와 교리들의 계획하에 진행된 터라, 야근까지 할 상황 자체가 별로 없었다.
다만, 몽주가 문득 퇴근 시간이 궁금했던 것은 퇴근 후에 백성들이 어찌하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글쎄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집안일이나 소일거리를 하든지, 자녀나 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겠습니까.”
홍 교리는 대답을 하면서도, 왜 그런 걸 묻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백성들이 즐길 거리가 없다면 그 또한 모자란 것이 아니겠소?”
“하하, 괜한 걱정이십니다. 이곳 제주만큼 먹고 살기에 풍족한 곳이 없으니, 노는 것이야 알아서 하지 않겠습니까. 안 그래도 요사이 객주의 수가 늘고 있다는데, 일을 마친 후 탁주 한 사발을 즐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족할 겁니다.”
몽주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는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여겼다.
퇴근 후 술 한잔 마시는 것도 여가 문화라 할 수 있겠지만, 여가 문화가 음주만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술은 인류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긴 하나, 그것이 여가와 스트레스 해소의 모든 방법을 차지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사회 문제가 될 것이다.
유흥을 위한 시설이나 산업 또한 장차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긴 한데, 아직은 몽주의 머릿속에만 담아 둬야 했다.
그러기에는 신경 써야 할 게 너무나 많았다. 당장 내일은 명국으로 떠나야 하지 않은가.
“자네도 이만 쉬게. 그러고 보면, 야근은 나나 교리들만 하는 모양이군.”
“억울하시면, 백성들 모두가 야근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만.”
“이게 좋은 거라는 말이네.”
* * *
“왜국 사신들은 어찌 소일하였던가.”
“간혹 대촌현을 거닐기도 했지만, 대체로 행재청에 머물었고, 도학생들 대표와 만난 것을 제외하면 외부인과 접촉한 적도 없었습니다.”
“특별히 뭘 캐묻거나 대촌현을 벗어나려고 한 자는 없었고?”
“그런 일 없이 모두 지시에 잘 따라 주었습니다.”
몽주는 행재청에 머물며 왜국 관원들을 보호 내지 감시하던 관원에게 수고하였노라 칭찬하곤 돌려보냈다.
홍로현에서 20척의 경함선과 더불어 출항하여, 대촌현에 닿아 왜국 사신들을 승선케 하고 있었는데, 그사이에 사신들의 행재청 생활에 대해 물은 것이었다.
왜국 사신들은 명국행 준비를 하는 동안 제주현의 행재청에 머물게 하였는데, 제주현 외의 지역으로는 가지 못하게 하였다.
“너무 얌전하다는 게 더 이상하군.”
“그리 생각하십니까?”
몽주의 말에 차 교리가 얼른 물어 왔다. 왜국에서의 임무를 잘 수행한 덕에, 그리고 다른 교리들이 너무 바쁜 탓에 차현유 교리는 명국행에서 탁기와 더불어 유이하게 몽주와 함께하게 되었다.
“자네가 정보를 다루니 어느 정도 알고는 있겠지만, 마땅히 나와야 할 반응이 나오지 않는 건 언제나 유심히 살펴봐야 할 신호일 걸세. 아무리 행동 자체가 의심스럽지 않다고 하더라도 말이야.”
대촌현을 벗어나지 못하게 한 것은 당연히 제주 산업의 중심인 제주 남부 지역을 보지 못하게 함이었다.
하나, 제주의 산업이 확대되면서 대촌현 또한 많이 바뀌었으니, 목조 건물과 초가 사이에 세망으로 지은 집이 서고, 곳곳에 풍차와 수차가 놓여 있으며, 공소가 생겨 많은 이들이 그곳에서 일하고 있었으니, 왜국인의 눈에 궁금함이 절로 생겨야 마땅할 것이다.
“그저 괜한 의심을 받기 저어하여 자제한 것은 아니겠습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하나, 기본적으로 저들을 왜국의 세작이라 여기는 게 좋을 걸세.”
“그 정도로까지 의심해야 하는 것입니까.”
“원칙을 그리하라는 말일세. 일국의 관리가 다른 나라에 간다면 마땅히 그 나라의 강성한 부분과 유약한 부분을 파악하고 싶지 않겠나.”
“……하면, 저희도 명국에서 세작과 같은 마음이어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몽주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절로 보고 듣는 것이 있을 것이고, 조금 노력하면 더 보고 들을 수 있을 것이니, 그것들을 두고 못 보고 못 듣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책임을 방기한 것이 아니겠나.”
결론적으로 비단 첩자가 아니더라도 외교를 수행하는 자들, 즉 외교관은 공인된 스파이라는 말과 같은 것이었다.
특히 사대의 유구한 역사가 있는 중화제국 중심의 동아시아에서 아그레망(agrement)부터 페르소나 논 그라타(persona non grata)에 이르는 외교관 파견 개념은 없으니, 더 유의해야 함은 당연했다.
몽주가 차 교리와 대화를 하는 사이에, 왜국 사신들의 짐이 모두 배에 실렸다.
이제 ‘go west’해야 할 때였다.
* * *
이번 함대의 기함은 창 선장의 배였다.
본래 기함으로 쓰던 배가 개선을 위한 작업을 받게 된 터라, 임시로 창 선장의 배가 기함으로 선정된 것이었다.
그 말은 그 배의 항해사가 석삼이라는 말이었다.
“잘 지냈느냐?”
“물론입죠.”
잘 지내고 있음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점녀와 늘 일에 관한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니니까. 그냥 인사 삼아 건네 말이었고, 그의 뒤에 함께 온 젊은이가 누구인지 묻기 위해 먼저 꺼낸 말이었다.
“인석은 감태라고 합니다. 저랑 훈련소 동기죠.”
“중병 감태입니다.”
인사를 올리는 젊은이의 구릿빛 피부 아래로 어린 티가 느껴졌다.
“어려 보이는군. 올해 몇 살이지?”
“올해로 열여덟이 되었습니다.”
“열여덟에 중병이라면, 열여섯쯤에 입대를 하였겠군.”
“그렇습니다.”
몽주가 스스럼없이 대화를 주도함에도, 청년은 긴장한 티를 벗지 못하였다. 하기야 군공을 처음 보는 그 자리에서 넉살 좋게 대답할 만한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나저나 날 찾아온 이유가 뭐지?”
몽주는 석삼을 보며 물었다.
이곳은 몽주의 선실로, 출항 후 한 시진쯤 되자 석삼이 감태와 더불어 만나기를 청한 것이었다.
석삼은 다소 주저하다가, 감태와 시선을 한 번 마주치고는 말문을 열었다.
“요사이에 제주에 학교가 많이 생기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고학교에 이어, 기술 학교들도 곧 여럿 개교할 거야. 음, 혹시 이 친구를 학교에 보내고 싶어서 그러는 겐가?”
몽주는 대화의 본론에 빠르게 다가가기 위해 그렇게 추측해 보았다. 하나, 석삼과 감태가 찾아온 이유는 그것이 아니었다.
“이미 군병이 된 자가 어찌 외부 학교에 입교하고자 하겠습니까.”
“……군 내에 학교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이로군.”
말에 맥을 다시 짚어 물으니, 석삼이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군병을 위한 학교인 만큼 보다 우수한 군인을 만들기 위한 학교가 있으면 좋지 않겠습니까.”
“일리 있는 말이네.”
사실 고학교나 기술 학교 이전에 사관 학교를 먼저 생각하기도 했었다. 하나, 손자강독회가 나름 자리를 잡은 상황 덕에 장교 교육이 다급하지 않아,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교에 먼저 집중한 것이었다.
“한데, 자네들이 왜 그런 청을 하게 된 건가?”
“그것이…… 솔직히 말씀드리면, 군공군 내에 장교 발탁과 관련해서 불만 어린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
몽주로서는 금시초문인 소리였고, 놀라운 말이었다.
“본래 위급 군병이 되었어야 할 탁가 출신들이 대거 해병대로 옮기면서, 그 외 출신들이 장교로 발탁되기 시작했는데, 그를 두고 공평하지 않다며 불만을 가진 이들이 많습니다.”
“공평하지 않다는 건 무슨 뜻인가. 내가 알기로 탁 장군은 해당자들의 공과 실을 통해 판별하였을 터인데.”
“탁 장군께서야 공평무사하시려 노력하셨을 겁니다. 하나, 그 공과 실의 기록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예컨대, 어떤 자가 크게 전공을 세운 배의 사급 군병이었고, 그 공을 평가 받아 위급 군병이 되었다면 얼핏 공평한 듯하나, 만약 그자가 그저 전투 중에 두려워 벌벌 떨기만 하다가 다른 군병들의 힘으로 얻은 승리에 묻어 간 격이라면 그가 위급 군병이 되는 건 공평하다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육전도 크게 다를 건 아니지만, 수전의 경우에는 배 단위로 싸움이 있는 터라, 다른 배의 상황을 제대로 알기가 어렵다.
석삼의 말대로, 한 배의 지휘자가 그저 두려워만 했을 뿐인데, 부하들의 힘으로 전공을 얻는다면, 과연 그 전공은 누구의 것이 되겠는가.
“그 외에도 전공을 단지 승패나 피해 여부 등 몇몇의 기준만으로 판가름하는 것 또한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적이 크고 강하면 잘 싸워도 지거나 큰 피해를 입을 수 있고, 적이 작고 약하면 잘 싸우지 못하더라도 이길 수 있는 게 싸움이니까요.”
“탁 장군이 그런 이치를 알지 못하고 공을 판가름했다는 것이냐?”
“탁 장군이 모든 전투에 참전하셨던 건 아니지 않습니까.”
몽주가 그러하듯 탁기 또한 직접 참여하지 못한 싸움은 장계로 받아 볼 뿐이었다.
석삼이 전한 말을 그르다 탓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
몽주의 표정이 어둑해지자, 석삼이 마른침을 삼키곤 조심스럽게 말하였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한 건 탁 장군이나, 먼저 장교가 된 자들을 비방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어쩌면 다른 이들은 모르는 마땅히 승진할 만한 이유가 따로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엄연히 군내에 불만이 떠돌고 있는 건 분명하므로 이것이 누적된다면 언젠가 크게 탈이 날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영감께서도 이런 상황을 아시고, 상황이 허락된다면 보다 많은 이들이 수긍할 만한 승진의 기준을 정하시는 것이 옳다고 청하는 바입니다.”
석삼의 말을 가만히 듣던 몽주는 심각한 표정 중에 문득 석삼을 보며 실소하였다.
“석삼이, 자네도 철이 들었군.”
“예?”
“말하는 투나 그 표정이나 예전에 촐랑대던 놈하고는 영 딴판일세.”
“왜 갑자기 옛날 말씀을…….”
석삼은 감태를 힐끗 보며 ‘쪽팔린’ 양 하였다. 그도 이제 사급 군병이자 한 배의 항해사가 되어 있었다. 원래 노안이었던 터라, 나이를 더 먹은 느낌은 없었지만, 대신 눈매에 차분함이 조금 더 묻어 있었다.
그건 나이도 나이지만, 점녀와 혼인함으로써 생긴 변화일 터였다.
석삼을 보며 미소를 짓던 몽주는 다시 석삼과 감태가 가져온 문제에 집중하다가, 그들이 처음에 군병을 위한 학교를 청한 것을 상기하였다.
“하면, 네가 군병을 위한 학교를 세우자 한 것도, 군내의 불만과 관련이 있는 것이냐?”
“사실 그렇습니다. 군병의 승진에 전공과 패전에 대한 평가는 당연히 쓰여야겠으나, 단지 운이 좋아 전공을 얻은 무능력한 자가 승진하는 일이 없기 위해서는 애초에 무능력한 자가 없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하니, 만약 학교가 따로 있어 군병 중에 장교가 되고자 하는 자를 교육시키고, 그 과정을 마친 자들 중에 장교를 임한다면 여러모로 자연스레 불만이 줄어들 것입니다.”
석삼의 제안은 결국 사급 및 병급 군병 중에 우수한 자를 장교 학교에 입교시키고, 그 졸업자에 한하여 장교에 임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사관 학교이긴 한데, 대학교의 지위보다는 장교 훈련소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잘 알겠네. 괜찮은 생각이군. 설마 이 자리에서 당장 내 결정을 받기를 기대한 건 아니겠지?”
“물론입죠. 그저 충심으로 고하고자 한 것일 뿐입니다.”
“고맙네. 그만 물러가게.”
몽주의 말에 석삼과 감태가 인사를 하곤 선실을 빠져나갔다.
“아, 잠깐, 자네…… 감태라고 했던가?”
“네!”
“만약 그 학교가 세워진다면 자네도 입교하고픈 생각이 있나?”
“……네, 그렇습니다.”
감태라는 젊은 군병은 다소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하였다.
“다른 군병들도 자네와 같을까?”
“그럴 것이라 생각합니다.”
“알겠네. 물러가게.”
두 사람이 사라지자, 몽주는 선실에서 홀로 고민하였다. 군공군은 몽주가 가진 힘 중에서도 핵심이었다.
아무라 산업이 발전하고, 교육에 힘쓴다고 하더라도, 군력이 없다면 제주는 그저 잡아먹기 좋은 먹잇감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기에 군대는 몽주가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할 곳이었다.
“너무 순진하게 여긴 것인가?”
혼잣말하며 짚어 보니, 그런 면이 없지 않았다.
사관 학교의 개설을 미루면서 내심 모든 장교들이 하병부터 시작하는 것을 낭만적으로 여기기도 했었다.
가장 아래에서부터 힘든 과정을 거쳐 장교가 되고, 장군이 되는 군대.
얼핏 멋지지 않은가.
하나, 아래로부터 승진한다는 건 그 많은 승진의 단계마다 공평한 평가가 진행되었음을 가정할 때야 아름다울 수 있었고, 그중 부정이나 실수가 있다면 당장에 빛이 바랄 수밖에 없었다.
군공군의 경우, 사급 군병과 병급 군병 사이에는 위계가 크지 않으나, 장교인 위급 군병부터는 달랐다.
위급 군병 중부터 선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배에 탄 모든 군병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선장임을 생각하면, 위급 군병으로의 승진에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을 수 있음을 생각했어야 했다.
“쩝, 골치가 아프군.”
아직 절대적인 면에서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군공군을 위한 사관 학교를 세우는 것에 대한 타당성을 고민하고, 만약 타당하다면 그를 위한 필요한 자원의 조달 여부를 따지려니 골이 절로 아팠다.
아무리 풍족한 제주라고 해도, 벌여 놓은 일이 많은 만큼 쓸 곳도 많았으니, 필요하다고 무턱대고 새로 일을 벌일 수는 없었다.
게다가 사관 학교를 짓는다고 하더라도, 그건 차후의 일이고, 지금 당장 있는 군내의 불만을 무마시키기 위한 방법도 필요했다.
그냥 무시하는 방법부터 자격 미달인 자를 색출하여 장교 발탁을 취소하는 방법까지 몽주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 * *
몽주가 군내 인사 문제로 고민할 때, 응천부의 대전에서 홍무제 주원장 아래 대신들이 국정의 중요한 결정을 위해 논하고 있었다.
“원의 무리를 뿌리 뽑고자 하신다면, 마땅히 요동부터 노리셔야 할 것입니다.”
위국공 서달이 저음의 무거운 목소리로 천자에게 고하였다.
상승(常勝)의 장군으로 불리다가, 몇 해 전에 원의 수도 화령(和寧 : 카라코룸)을 공격하다 크게 당한 뒤로 더 이상 상승장군이라 불리지 못하는 그였지만, 여전히 군의 문제에 관하여 그의 청원은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무게감을 가지고 있었다.
“요동에는 고려가 있지 않은가.”
서달의 청을 들은 홍무제는 턱을 괴며 물었다.
“어찌 그 넓은 요동의 땅을 고려가 다 지닐 수 있겠습니까? 고려의 요동은 모든 요동의 땅 중 남쪽 일부일 뿐이니, 그 북쪽의 요동은 원을 따르는 무리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일전에 그곳에 있는 원 태위 나하추를 초무하자는 제안이 있어 시행한 바도 있었고. 단칼에 거절당했던 게 기억나는군. 고얀…….”
“지금 원은 장안을 노리고 그 힘을 모으는 바, 이때 요동의 세력을 물리칠 수 있다면, 원은 크게 당황할 것이고 더는 공세를 펼칠 수 없을 것입니다.”
서달의 이어진 말에 천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말로는 곤란함을 내뱉었다.
“하나, 장안에서 원나라 군을 막으면서 요동을 치기에는 아직 힘이 부족하지 않은가.”
“고려의 힘을 빌리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고려가 요동을 얻으며 대명의 은혜를 입었으니, 마땅히 대명의 정벌을 따르라 요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흠…….”
홍무제 주원장은 턱을 괴던 자세를 풀고 눈을 감아 고민하였다. 청원을 한 서달과 대전의 모든 대신들이 천자의 반응을 기다렸으나, 쉽게 나오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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