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18)
“오천만 원이 높은 겁니까?”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던 몽주가 묻자, 노인이 다시 그에게 시선을 돌리며 빙긋 웃었다.
“확실히 감정가를 받는 건 처음인 모양이군. 오천만 원이 높은 거냐라……. 허허, 당연히 높은 금액이지. 감정가는 이렇게 이해하면 쉽네. 경매를 붙일 때 최소 금액이 바로 감정가라고 말이야.”
“경매요?”
“이런 멋진 물건을 원하는 이가 한두 명이겠는가. 당연히 사고 싶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고, 자연히 경쟁이 붙으면 가격이 높아지겠지.”
“…….”
몽주는 만약 경매에 청자연적이 오른다면 낙찰가가 얼마나 될지 묻고 싶었다. 아마 그런 마음이 표정에 드러난 모양이었다.
“허허, 얼마나 나올지 궁금해하는 표정이군. 내가 돈이 많다면 수십 억을 주고서라도 사고 싶네. 사실 국보급 보물의 가치는 무한하다고 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경매 당시의 경제 사정이나 큰 손들의 취향에 많이 달라지네. 해서 정확한 낙찰가는 나도 모르겠구먼.”
노인 감정위원의 설명을 들은 몽주는 절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수십 억. 비록 노인이 청자연적에 반한 마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겠지만, 최대한 냉정하게 생각을 해도 감정가보다 훨씬 높은 가격이 나올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몽주를 가만히 보던 노인이 다시 말문을 열었다.
“내가 무료로 감정가를 말해 준 건 한 가지 부탁이 있어서일세.”
“……?”
“너무 긴장하지 말게. 이 연적을 나한테 싸게 팔라는 건 아니니. 껄껄.”
“일단 들어 보겠습니다.”
“자네가 이걸 어찌할지는 자네 마음이겠지만, 만약 팔 생각이 있다면, 내가 추천해 주는 이들과 먼저 만나 주길 바라네.”
“추천하는 이들이요?”
“우리나라에도 괜찮은 박물관들이 몇 곳 있네. 이 연적을 소중히 다뤄 주고, 많은 이들이 볼 수 있을 만한 곳들 말이야. 물론, 그 박물관들도 그네들 예산이라는 게 있으니, 연적을 경매로 팔 때에 비하면 가격이 낮을 수밖에 없을 거야. 하나, 적어도 문화재청에 환수당하는 것보다는 나을 걸세.”
그다지 맘에 들지 않는 표정을 짓던 몽주는 환수라는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환수요?”
“그래, 환수. 이런 국보급 문화재는 국외로 유출되거나, 특정 개인의 사적 소유물로 넘어갈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해 문화재청에서 적극적으로 환수하려 들지. 우리 협회도 문화부의 지원을 받는 만큼 오늘 감정에 대한 정보도 넘어갈 수밖에 없네. 당연히 문화재청에서 자네를 찾을 것이고.”
“자, 잠깐만요. 그럼 문화재청에서 제 걸 강제로 빼앗아 갈 수 있다는 말인가요?”
기겁하는 몽주의 물음에 노인은 다행히도 고개를 저었다. 하나, 이어진 노인의 대답은 그다지 다행스러운 게 아니었다.
“물론 개인의 사물을 국가가 강제로 빼앗을 순 없지. 특별히 불법이 아닌 이상 말이야. 엄연히 보상을 해 줘야 하지. 하나, 문화재청은 상당히 헐값으로 때우려고 할 걸세. 내가 조금 전에 말해 준 감정가가 아마도 그 기준일 거야.”
“거부하면 어떻게 되죠?”
“괴롭히겠지. 아, 물론 직접적으로 압력을 행사하진 않을 걸세. 하나, 간접적으로도 국가 기관이 사인을 괴롭힐 방법이야 많지 않나. 아마, 기본적으로 언론을 이용해서 괴롭히겠지. 국보급 문화재라면 기자들이 충분히 달려들 것이고, 그 와중에 자네가 국보를 빼돌려 큰 재산을 얻으려 하는 것을 비난하는 식으로 언론 플레이도 할 거고. 그랬는데도 자네가 버틴다면 은근슬쩍 자네의 신상 정보를 세상에 흘리기도 하겠지. 그러면 세상의 온갖 잡놈들이 달려들어 견디기가 어려울 걸세. 자네나 자네 가족들이나.”
몽주는 이맛살이 절로 일그러졌다.
“그럼, 박물관에 넘기는 건 괜찮은 건가요?”
“그렇지. 내가 추천할 박물관들은 정부의 지원도 받으니, 자연히 정부의 관장하에 있는 셈이지. 게다가 박물관에 보관되면 기본적으로 공공의 소유물로 인정되고, 실제로 전시도 될 테니, 자네가 비난 받을 이유는 일절 없겠지.”
이야기를 들어 보니, 고미술 협회에 괜히 찾아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공인된 기관으로부터 진품 인증을 받을 생각만 했었는데, 문화재청에 보고가 될 건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고려에서나 여기에서나 몽주는 자신의 생각이 깊지 않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노인 감정위원의 말대로 박물관에 넘기는 것이 나을 듯했지만,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바로 예스맨이 될 순 없었다.
어차피 큰돈을 얻기 위해 고려에서 가져온 만큼, 박물관들끼리라도 경쟁을 붙여야 하지 않나.
“일단 생각 좀 해 보겠습니다. 제가 이 연적을 처분할 수 있긴 하지만, 그래도 가족과 의견도 나누어 볼 생각입니다.”
“그런가. 그래도 내가 추천하는 박물관 측들과도 이야기를 나눠 줬으면 좋겠군.”
“그럴 겁니다. 연락 주십시오.”
몽주는 연적을 들어 다시 운동화 상자에 집어넣으려 했다. 한데, 젊은 남성 감정위원이 문득 몽주의 손을 잡으며 멈추게 하였다.
왜 이러나 싶은 눈으로 바라보자,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문을 열었다.
“귀한 물건인데, 이런 데 담아서야 되겠습니까. 제가 제대로 된 보관함을 가져오죠. 잠시 기다리십시오.”
맞는 말이었고, 다른 감정위원들도 그러길 권하였으므로 몽주는 그 남자가 보관함을 가져오길 기다렸다.
금방 가져올 것처럼 보이던 그 젊은 남성 감정위원은 20분 정도 지난 후에야 다시 모습을 보였다. 그의 손에는 딱 연적이 들어갈 정도의 목곽이 들려 있었다.
“아, 늦어서 죄송합니다. 하필 이 사이즈만 가져다 놓은 게 없어서, 창고까지 갔다 와야 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감정위원들이 힘들었겠다며 말을 늘어놓았다. 몽주가 보기에도 그 감정위원이 숨이 다소 거칠어져 있는 게 느껴졌다.
많이 늦은 것도 아니고, 공짜로 목곽도 얻게 되었으니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아, 문득 생각이 들었는데, 국내 다른 고려청자와 비교를 위해 연구 견본을 수집할 수 있겠습니까. 청자가 상하는 건 아닙니다.”
“그걸 지금 해야 하나?”
젊은 감정위원의 말에 노인 감정위원이 의아한 듯 물었다. 그러자 젊은 감정위원이 몽주의 눈치를 살피더니, 노인 감정위원에게 조그맣게 말하였다.
“혹시 몰라서 그럽니다……. 사라질 수도 있으니까요.”
조그맣게 말한다고는 하지만, 바로 근처에서 하는 대답이었으므로 몽주도 당연히 들을 수 있었다.
노인이 소개해 준 박물관이나 문화재청이 아닌 다른 곳으로 몽주가 팔아 버리면 연구 견본을 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사실 얼토당토않은 의심은 아니긴 했다.
노인 감정위원도 이맛살을 잠시 찌푸리며 고민하더니, 몽주를 향해 말문을 열었다.
“혹시 맘 상하지 않는다면, 협조를 부탁하네. 절대 청자의 가치가 훼손당하지 않을 거야.”
“……오래 걸립니까?”
“20분 정도면 충분합니다.”
대답은 젊은 감정위원이 하였다.
몽주는 그에게 그 연구 견본 채취를 어떻게 하는 건지 대략적인 설명을 듣고 허락하였다.
그러자 그 젊은 감정위원은 다시 서둘러 감정실을 나가더니, 몇 분 후에 가죽 가방을 하나 가져왔다.
잠시 후, 감정위원들이 저마다 역할을 하나씩 맡아 청자연적을 둘러쌌다.
“저건 내시경일세. 연적의 내부를 살피려는 게지. 사진도 찍고.”
노인 감정위원이 몽주의 곁에서 다른 감정위원들이 하는 걸 설명해 주었다.
구워진 고령토나 유약의 상태를 통해 당시 가마니의 온도와 압력을 알 수 있고, 그에 따라 다른 제작된 청자와 비교하여 특정 가마니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런 식으로 수많은 도기와 자기들의 견본을 통해 고려 시대의 도기 장인들의 기술과 예술혼의 모습을 개략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설명은 설명대로 들으며, 몽주는 자기에서 구운 고령토와 유약 견본을 어떻게 구하려는지 걱정했다. 긁어내다가 청자가 상하기라도 하면 곤란했기 때문이었다.
하나, 다행히도 긁어내는 식이 아니라 스카치테이프처럼 끈끈한 무언가를 붙였다 떼는 식이었다. 그것도 연적의 물구멍 안쪽으로 귀이개 같은 장비로 조심스럽게 했기에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견본도 확보하고 사진과 동영상도 찍고 나니 어느새 30분 정도 시간이 흘렀다.
“이런 수준의 고미술품은 오랜만이라 저희가 예상보다 시간을 많이 썼습니다. 죄송합니다.”
젊은 감정위원이 대표로 사과를 하였다.
‘뭐, 이 정도야…….’
시간을 생각보다 많이 잡아먹긴 했지만, 감정위원들의 학문적인 열정을 느낄 수 있어서 나름 흐뭇한 시간이기도 했다.
게다가 그런 열정을 불태우게 만든 게 그의 청자연적이었으니까.
“이걸로 택시 타고 가 주십시오.”
회관 앞까지 마중을 나온 젊은 남성 감정위원이, 몽주가 터덜거리며 지하철역 쪽으로 걸어가려 하자, 얼른 다가와 오만 원짜리를 건네었다.
몽주는 괜찮다고 거절했지만, 그는 단호한 표정으로 몽주의 손에 오만 원짜리를 기어이 쥐어 주었다.
“물건이 혹시라도 손상될까 봐 그러는 겁니다. 그게 깨지거나 상하면 제가 잠을 못잘 것 같거든요.”
“…….”
몽주는 미안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사실 아까 노인 감정위원이 5천만 원의 감정가를 말했을 때, 그가 가장 인상을 많이 찡그리는 걸 보곤 속으로 욕을 했었는데, 이제 보니 좋은 사람이었다.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그럼, 조만간 다시 뵙죠. 아, 저기 택시가 오네요.”
그는 거리로 한 걸음 나가 손을 들어 택시까지 잡아 주었다.
“어서 타십시오.”
“네, 나중에 뵙겠습니다.”
몽주는 택시에 탔고, 택시는 곧 출발하였다. 몽주는 뒤창으로 다시 협회로 돌아가는 젊은 감정위원을 힐끗 바라보았다.
어지간하면 이 청자연적은 박물관 쪽에 넘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협회 위원들이 보인 정성과 학문적 열의를 보고 있자니, 아무리 돈이 궁하다고 하지만 아무에게나 넘길 순 없을 것 같았다.
세상이 삭막하다곤 해도, 너무 각박하게 굴 건 없지 않은가.
“공 사장님, 협회의 박입니다. 물건은 보내 주신 택시에 잘 탔습니다. 하하, 아닙니다. 그간 돌봐주신 데에 보답한 것뿐입니다. 그럼, 뒤탈 없이 잘 수거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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