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183)
* * *
“이사장님?”
“아, 네.”
“하하, 무슨 생각을 하시고 계십니까?”
건너편에 앉은 강지혁이 웃으며 물었다.
“양쪽에 미녀들을 두고 딴생각을 하실 수 있다니, 참 대단하시네요.”
“아, 미안합니다. 좀 피곤한 일이 있어서…….”
살짝 비꼼이 묻은 지혁의 말에 몽주는 어물쩍 변명하곤 양쪽의 여인들에게도 사과하였다.
사각의 테이블 앞에 4명의 남녀가 앉아 있었다.
몽주의 시야 좌우에는 황진주와 홍시안 즉, 강지혁의 약혼녀인 여배우가 있었고, 건너편에 강지혁이 앉아 있었다.
“피곤해 보이시긴 하시네요. 잠을 못 주무셨나 봐요?”
지혁의 약혼녀 시안이 반달 같은 눈웃음을 지으며 묻자, 몽주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 강지혁을 처음 만났을 때, 그가 스마트폰으로 그녀의 사진을 보여 주어 누군지 알고는 있었지만, 오늘 본 그녀는 여배우는 여배우구나 싶을 정도로 예뻤다.
찹쌀떡같이 하얀 피부에 입체적인 이목구비, 작고 갸날픈 몸매임에도 글래머러스함까지.
사진으로 봤다면 어지간히도 많이 고쳤겠다고 한마디 뱉었겠지만, 막상 눈앞에 두고 보면 미모에 넋이 나갈 만한 모습이었다.
아마 다른 때라면 몽주도 곁눈질하느라 지칠 정도로 바빴을 것이다.
“어제 또 선배들하고 밤 늦게까지 있었어요?”
이번엔 진주가 물었고, 그 또한 사실이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회의는 간만에 길게 이어졌었다. 연왕의 제안을 포함하여 북방의 분위기가 수상하여, 그에 대해 추리하고 논의하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밤늦게까지 이어진 거야 익숙하지만, 제대로 결론을 내리는 대신 가능성들만 확인하고 말았으니, 그 답답함이 피곤함으로 이어진 듯했다.
무엇보다 연왕이 요동왕을 제안한 이유가 가장 오리무중이었다.
여러모로 추론해도 마땅치 않았고, 혹시 그냥 테스트해 본 거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는데, 그렇다 쳐도 그러면 테스트한 이유가 뭐냐는 물음에는 답이 궁했다.
회의에서 재상, 두신과 함께 답답하던 중에 몽주는 발상을 전환하기로 마음먹고 한 가지 제안을 했는데, 그에 대한 논쟁도 한참 이어졌다.
그 제안이란…….
“드시죠.”
강지혁의 말에 고개를 돌려 보니, 테이블 위에 어느새 주문한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툭.
테이블 아래로 몽주의 신발을 누가 살짝 찼다. 방향으로 보건대, 그리고 직후에 째려보는 시선으로 보건대, 진주가 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또 혼자 생각에 빠져 버린 것이었고, 그에 그녀가 핀잔을 준 것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늘 밝고 명랑한 표정의 강지혁도 살짝 불쾌한 기색으로 고기에 나이프질을 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 ‘양진이’호 이후 예정된 대형 목선 프로젝트에 대한 논의를 위해 몽린 재단 직원들과 회의를 하던 중 휴식 시간에 강지혁이 약혼녀와의 결혼 날짜가 잡혔음을 알렸다.
더불어 몽주에게 약혼녀 소개 겸해서 식사를 하자 청하여 이렇게 만난 것이었다.
차라리 나중에 보기로 할 걸 그랬다는 후회를 하면서, 몽주는 정신 차리고 그때부터 그 자리의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였다.
홍시안의 미모를 칭찬하고, 그녀에게 강지혁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과장스레 말해 주기도 하고, 심지어 재밌자고 고려에서 쓰던 말투를 흉내 내기도 했다.
“호호, 사극 매니아신가 봐요?”
“일주일마다 두 달치 사극을 보고 있죠.”
“일주일에 두 달요? 호호, 말도 안 돼요. 호호호.”
다행히 홍시안이 웃음이 많은 여자인 덕에 금세 다시 분위기는 밝아…….
찌릿!
문득 다른 쪽에서 전해지는 사나운 기세에 몽주는 움찔해야 했다. 어느새 진주가 짜증이 난 표정으로 몽주를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 홍시안 위주로 말을 붙이다 보니, 아무래도 오해가 생긴 모양이었다.
좀 억울했다.
그저 강지혁이 기분 나쁜 것 같아 좀 풀어 주기 위해 노력한 것뿐이었다.
그는 목선 건조에 반드시 필요한 인물이었다. 질란트 사의 기술 고문에 맞서, 양진이호를 동양풍으로 유지시킨 게 그였고, 장차 대형 목선 건조에서도 그의 역할은 중요했다.
아무래도 동양 목선이 대형으로 발전하지 못했으니, 대형일수록 서양식 목선 일변이 될 가능성이 높았고,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강지혁이 필요했던 것이다.
“몰랐는데, 아주 달변가셨네요? 그런 사람이 왜 처음에는 멍 때리고 있었대요?”
좋은 분위기에서 강지혁 커플과 헤어진 후, 진주를 데려다 주기 위해 같이 차를 타고 가는 중에 쀼루퉁하던 진주가 문득 쏘아붙였다.
“피곤해서 그랬다고 했잖아요. 그러다가 분위기가 안 좋은 것 같아서, 애써 말을 늘린 거고요.”
“흥, 예쁜 여자 때문에 몽주씨 기분이 좋아진 탓이 아니라요?”
“예쁜 여자랑 있으면 기분이 좋긴 하죠. 지금 기분이 최고인 것처럼.”
“쳇! 진짜 말은…….”
“오호, 그러고 보니, 질투한 거군요?”
“지, 질투요? 누가요? 허어! 정말 기가 막히네요!”
‘후후.’
몽주는 운전하는 틈틈이 그녀를 곁눈질하였다. 토라진 진주의 표정이 너무 귀여웠다.
“그나저나 준비됐어요?”
“……뭘요?”
“내 고백을 받을 준비.”
몽주의 말에 진주가 급격히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지, 지금요?”
“아뇨. 당장은 아니고…….”
“아오!”
진주는 ‘빡친’ 듯 시트를 퉁퉁 주먹으로 쳤다. 그 모습에 몽주는 웃음을 터뜨렸지만, 내심 그 주먹이 자신에게 날아올까 대비해야 했다. 고려에서나 현대에서나 무서운 건 무서운 거니까.
“있잖아요, 한 가지 명심해 둬야 할 게 있어요!”
진주의 집 근처 거리에 정차하자, 그녀가 내리려다가 문득 퉁명스레 말하였다.
“뭔데요?”
“나한테 고백하면, 그다음부터는 다른 여자랑은 1분도, 아니 10초도 말을 나누면 안 된다는 거요. 알았어요?”
“에이, 아무리 그래도 …….”
“흥! 이만한 미녀를 얻으려면 그 정도는 포기하셔야죠!”
그렇게 통보한 진주는 차에 내려서 차문을 쿵 닫아 버렸다.
차창 너머로 쿵쾅 소리가 들릴 만큼 센 발걸음으로 멀어져 가는 진주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몽주는 실소하며 중얼거렸다.
“그렇지, 포기할 건 포기해야지. 일단은 말이야.”
비단 진주의 말에 대한 반응만은 아니었다.
몽주의 마이바흐가 다시 차도로 달려갔다.
* * *
선창이 빈 덕에 몽주의 배들이 가볍게 발해를 건넜다. 요하 하구 동편에 위치한 고려촌 포구는 예전에 봤을 때보다 한층 정비되어 있었고, 전에 비해 정박해 있는 배들도 많이 보였다.
“함주와의 교통이 어려워, 해로를 이용하려 한다 들었습니다.”
몽주가 포구를 유심히 살피니, 탁기가 말해 주었다.
직선거리 자체는 육로에 비해 해로가 훨씬 멀지만, 제대로 된 도로도 없고, 그사이에 사나운 호인들도 들끓은 탓에 육로 교통을 포기하고 해로를 이용하려는 모양이었다.
“그럼, 우리 배가 탐이 나겠군.”
“……?”
몽주의 말에 탁기가 놀랍고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제주의 배, 즉 홍로급 경함선이야 누구나 탐내는 배지만, 그것을 원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는 이들은 없었다.
어차피 팔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한데, 지금 몽주가 제주의 배를 상품인 양 말하니, 혹시 배를 요동에 팔 의향이 있는 것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물론, 그 궁금함은 내키지 않음과 이어져 있었다. 군무교리로서 바다를 배경으로 싸워야 하는 제주군의 입장을 생각하면, 탁월한 성능의 경함선은 제주만이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혹시 심양왕이 원하면 배를 파시려 하십니까?”
“불안한가?”
“솔직히 말하면, 그렇습니다. 요동이라고 저희와 충돌하지 않으리란 법이 없지 않습니까.”
“너무 걱정말게. 바다에서의 우위는 언제나 제주의 것일 터이니.”
몽주는 진심으로 요동에 경함선, 정확히는 상선을 팔 생각이었다.
어디까지나 심양왕이 원해야 하는 일이지만, 그가 청하지 않으면, 몽주가 먼저 말을 꺼낼 생각이었다.
그것이 요동이 강해지는 길이기 때문이었다.
“나라도 줄 판에 배가 아까우랴.”
포구에 정박한 배에서 내리며 몽주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 * *
몽주가 요성에 닿은 것은 다음 날 점심 무렵이었다.
곧 방문할 것임을 미리 알린 덕에 포구에 마차와 말들이 대기하고 있어, 몽주는 탁기 및 소수의 군병들과 더불어 요성까지 급행할 수 있었다.
“어서 오시오.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기다리고 있었소.”
요성의 남문을 거치고 나니 내성의 동문 앞에 심양왕이 나와 있었다.
“듣자 하니, 연국에 들렸다가 오는…….”
“저하, 안에 들어가서 말씀을 나눌 수 있겠습니까?”
몽주가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곤 곧바로 성안으로 들어가길 청하자, 심양왕이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주공이 예를 몰라 이렇게 급하게 굴었을 리도 없고, 그가 얼마 전까지 있었던 곳이 연국이기도 하여, 급히 전할 말이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이성계와 더불어 주성에 들어간 몽주는 대전 대신 내전에 들기를 다시 청하였고, 이어 심양왕에게 정도전을 포함한 믿을 만한 신하들을 부르길 요구하였다.
“어째서 이러는 겐가?”
이성계는 그가 알던 제주공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의 몽주를 어이없이 보면서도, 일단 신하들 몇몇을 지정하여 부르게 하였다.
내관이 물러나고, 내전 안에 심양왕과 홀로 마주 앉은 몽주는 주위를 살핀 후 말하였다.
“일단 저하께만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저는 연국에서 오는 길이고, 그곳에서 연왕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요동왕을 제안받았지요.”
“……!”
“자신을 도와 북벌에 참여하면, 지금 저하께서 가지신 그 작위를 제게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놀란 표정의 이성계 앞에 그렇게 놀라게 만든 말을 순식간에 내뱉은 몽주는 심양왕을 주시하였다.
그는 놀라움 뒤로 잠시 분노 어린 표정이 스치더니, 다음 순간 다시 평온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어째서 거절했는가.”
마침내 심양왕이 첫 반응을 보이니, 몽주는 그것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
역정을 내거나, 그것이 가능할 것 같냐는 식의 물음 대신 거절한 이유를 물은 것은 적어도 하나는 증명하고 있었으니까.
심양왕도 북벌 후, 명국이 군사를 돌려서 요동을 칠 수도 있다는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요동은 탐나는 곳이나, 그것을 얻는 것만큼 짊어져야 하는 부담도 크니까요.”
“부담?”
“그렇습니다. 제 거점은 남방의 섬이고, 바다입니다. 그리고 제 정치는 그것에 기반한 것이지요. 한데, 요동은 그에 비해 이질적인 곳입니다. 게다가 명국과 닿아 있기도 합니다. 다른 건 둘째치고, 만약 명국이 구원의 세력을 물리치고, 중원에 확고한 제국을 정립한다면, 그때부터 요동은 불안하기 짝이 없는 곳이 됩니다. 언제 명국이 요동의 소유권을 요구하며 군사를 일으킬지 모르니까요. 물론, 지금도 다를 바 없습니다. 명국이 북벌하여 요동 북부의 구원의 세력을 물리친다면 지금 저하의 요동은 그야말로 동쪽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명의 압박을 받게 될 것이고, 명국이 작정한다면, 혹은 어떤 계기가 있다면 서슴없이 요동을 취하려 할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제게 요동은 달콤한 먹잇감을 놓아 둔 덫처럼 보입니다.”
몽주가 빠르게 설명하니, 심양왕의 표정은 한결 딱딱하게 굳었다.
그도 이미 아는 것이지만, 제주공이 요동을 굳이 마다할 정도로 상황을 심각하게 여기고 있었으니, 자신이 진정 위태로운 곳의 왕좌에 앉았음을 새삼 실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심양왕은 무어라 입을 열듯 말듯 입술을 달싹거렸지만, 쉽사리 말을 꺼내진 못했다.
그사이 불러 모은 신하들이 하나둘씩 도착하였으니, 가장 먼저 좌찬성 정도전이 왔고, 의정령 이숭인과 호부승지 노숙진이 연달아 입실하였다.
이어, 부총관 조준과 우찬성 윤소종이 들어온 뒤, 마지막으로 청해백 이두란이 도착하였다.
그 여섯이 심양왕이 부른 전부인지, 청해백이 모습을 보인 뒤에 심양왕은 몽주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몽주는 의아한 표정이 가득한 신하들과 한번씩 시선을 마주하여 눈인사를 건넨 후, 말문을 열었다.
“여기 계신 분들이라면 아마도 제가 요동의 실권을 쥐어 볼까 시도했음을 아실 것입니다.”
“……!”
몽주의 첫 마디부터가 민감한 이야기였으니, 일부 신하들의 표정이 격동하였다.
하나, 정작 심양왕이 담담하게 가만히 있어, 다들 무어라 입을 열지 못하고, 그저 사나운 시선만을 몽주에게 보낼 따름이었다.
짐작하고 있던 것과 의심의 당사자가 직접 밝힌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제가 왜국의 구주 땅에 영토를 얻고, 그곳에 다의홍이라는 자를 세워 대신 다스리고 있는 것도 아실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요동을 그 구주의 땅과 같게 만들 생각이었지요.”
“이보시오, 제주공!”
기어이 큰 소리가 터졌으니,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청해백 이두란이었다.
“아무리 솔직한 것이 좋다 하나, 지금 저하의 면전에서 어찌 그런 망발을 하시는 것이오! 그대의 검은 속내야 이미 짐작할 만한 자들은 다 하고 있었던 바, 그럼에도 그것을 탓하지 않은 것은, 그것을 밝히지 않음으로써 대국적인 면에서 저하와 공 사이의 관계에 누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소! 그 정도는 공이라면 충분히 알고 있었을 터인데, 어찌 이 자리에서 그것을 밝혀 저하의 위신을 상하게 하는 것이오!”
이두란이 한바탕 고함을 치자, 안 그래도 고함쳐 제주공을 훈계하려 했던 부총관 조준이 뒤따라 소리쳤다.
“공이 아무리 이 요동을 세우는 데에 큰 공이 있고, 그 가진 위력이 크다 하나, 이곳 요동이 공의 말처럼 쉽게 몰락하지는 않을 것이니, 공은 결코 오만해서는 안될 것이오! 또한, 공이 채굴의 권한을 가졌다 하나, 엄연히 이는 저하의 윤허하에 있을 수 있는 바, 당장에라도 없던 일로 분할 수 있는 이득을 두고, 요동을 잡아먹을 수 있는 것처럼 말하다니, 그 어리석음에 통탄할 지경이외다!”
두 번의 호통이 이어지는 동안, 몽주는 가벼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척하였다.
그 후에 잠시 기다리다 다른 신하들을 둘러보며 말문을 열었으니, 시작은 더 할 말이 있는 이가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더 없으면, 다시 내 할 말을 하겠습니다. 일단, 저하의 신하들의 충성심을 엿볼 수 있어서 훈훈합니다. 그리고 제가 가졌던 욕심에 대한 훈계 또한 가슴에 담고 새겨들었습니다. 다만, 이제는 그와 같은 마음을 품지 않았으니, 길게 이야기의 주제로 삼을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진심이오?”
심양왕이 물으니, 몽주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 답하였다.
“이제부터 제가 드릴 말씀을 들으신다면, 제 말이 사실임을 알 수 있으실 것입니다.”
몽주는 잠시 말을 끊고 다시 신하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명국이 북벌을 결심한 것은 이미 다들 잘 아실 것이고, 저하께 요동왕의 작위를 내린 것이 북벌에 요동을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라는 점 또한 잘 아실 것이오. 또, 명국이 북벌에 성공한다면, 이후에는 명국이 요동에 대해 딴마음을 품을 수도 있다는 것 또한 다들 짐작하고 계실 것이오.”
“…….”
모두 말이 없는 걸 보니, 그리고 몇몇 신하들의 표정에 수심이 깃드는 걸 보니, 요동에서도 그 문제를 두고 걱정이 많았던 게 분명했다.
몽주는 다시 심양왕에게 시선을 돌려 물었다.
“혹시 명국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참전의 요청이 온 적이 있습니까?”
“그건 아니오.”
“하면 되었군요. 명국으로부터 받은 요동왕위의 명분을 지키면서도, 명국의 배신을 걱정하지 않을 방도가 하나 있습니다.”
몽주의 말이 떨어지자, 내전 안에 숨소리도 안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
심양왕도 굳은 표정으로 잠시 제주공을 바라만 볼 뿐이었고, 그가 겨우 다시 말문을 열 때까지 적막이 이어졌다.
“그게 무엇이오?”
“요동이 먼저 북벌을 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 명분은 북방을 어지럽히는 구원의 무리를 척결하고, 또 요동왕으로서 대명의 은혜를 갚는 것이라 하면 누가 무어라 하겠습니까.”
적막하던 내전 안은 순식간에 시장판처럼 시끄러워졌다. 신하들끼리 그게 가능할 법한 이야기인지 수군거렸고, 어떤 이는 혀를 찼으며, 누군가는 손으로 관복 자락을 움켜쥐곤 몽주를 노려보았다.
“조용히 하라!”
몽주를 응시한 채 심양왕이 일갈하니, 다시 내전이 조용해졌고, 그 사이로 왕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 방책이 실현되기 위해선 공이 나를 도울 것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할 것이오.”
“왜 아니 그러겠습니까. 저와 제주가 가진 위력을 남김없이 쏟아부을 것입니다.”
“저하, 귀에 새겨듣지 마시옵소서. 이는 천부당만부당한 말이옵니다!”
그때, 한 사람이 읍하며 심양왕에게 고하니, 그는 의정령 이숭인이었다.
“북방의 나하추가 가진 군병이 최대 20만에 이른다 합니다. 게다가 비단 나하추만이 있는 것이 아니니, 북벌을 한다는 것은 수십 만의 호인들을 물리쳐야 한다는 뜻입니다. 지금 요동이 가진 군병은 3만을 조금 넘길 뿐이고, 아무리 제주공의 위력이 크다 하나, 군병의 수는 요동보다 훨씬 적습니다. 대적과 싸워 이기는 것이 불가한 것은 아니나, 이는 대개 지키는 것에서 이기는 것일 뿐, 먼저 나아가 공격하여 대적을 물리친 일은 고래로부터도 거의 찾기 어렵습니다. 더욱이 북방의 호인들은 모두가 기마의 전사들이니, 넓은 평원이 있는 곳에서는 그 위력이 가중될 게 분명하고, 우리 군병이 정예라 하나, 수적으로 크게 열세인 중에 별수 없이 몰락하게 될 경우가 십중팔구라 할 것입니다.”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몽주는 심양왕이 무어라 반응하기 전에, 한발 먼저 이숭인의 말을 받았다. 의정령이 얼굴을 붉히며 따지려는 듯하였지만, 몽주는 이미 시선을 돌려 이성계를 보며 말하였다.
“하나, 지난날 요동공과 부딪치며, 이미 저하와 저는 적은 군병으로 큰 적을 맞아 승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건 그렇소. 하나, 그 당시 요동공의 군병과 북방의 호인들을 같이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오. 호인들이 더 사나운 것은 물론, 수도 더 많지 않소?”
심양왕은 그렇게 되묻곤, 문득 무언가 떠올린 것처럼 연이어 물었다.
“혹시 화포를 크게 쓸 수 있게 된 것이오?”
몽주는 빙그레 웃으며 답하였다.
“비슷합니다. 그 구체적인 것은 제가 이곳을 떠난 후, 보름 안에 다시 돌아와 낱낱이 선보일 것입니다.”
몽주는 이어 시선을 신하들에게 돌려 말을 이었다.
“그때, 그것을 보고 내 제안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다시 따지는 것이 어떻겠소?”
그 물음에 신하들도 자기들끼리 말을 나누면서도 딱히 반발하진 않았다. 대신, 좌찬성 정도전이 마침내 나서 말문을 열었다.
“제주공께서 그토록 자신만만해하시니, 이유가 없진 않다 여겨집니다. 정녕 공의 도움으로 요동이 명국과 상관없이 북벌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좋은 일일 것입니다. 다만, 소신은 공께서 결코 이유 없이 요동을 도우려하시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스스로 밝히신 바, 한때라도 요동의 실권을 노렸다 하셨으니, 이번에도 따로 원하시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만약 그것이 요동의 입장에서 가납하기 어려운 것이라면, 공께서 북벌에 성공할 만큼 큰 위력을 가지고 계시다고 하더라도, 저하께서는 응하실 수 없을 겁니다.”
한마디로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이었으니, 몽주는 가벼이 고개를 끄덕이며 심양왕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도 세 가지나 되지요.”
“그게 무엇이오.”
“첫째, 채굴의 권한을 지금의 요동이 아닌 북벌 이후의 요동 전역으로 확대시켜 주십시오.”
사실 조건이랄 것도 없는 것이기에, 심양왕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둘째, 포로로 잡은 호인들 중 절반은 제게 주십시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하께서는 물론, 그 후손들까지 영원히 고려의 신하임을 천명해 주십시오.”
“…….”
두 번째 조건에도 대수롭지 않아 하던 심양왕은 마지막 조건에 문득 께름칙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이미 고려의 신하요.”
“물론입니다. 하나, 제 생각대로 북벌에 성공한다면, 요동은 고려보다 더 큰 영토를 얻을 것이고, 머지않아 더 강대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저는 그때도, 설령 저하의 왕위가 심양왕이 아닌 심왕이 되더라도, 요동이 고려의 영역임을 확실히 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이 몽주가 애초의 계획보다 이성계의 요동을 장수하게 만들기로 작정한 대가였다.
이성계로서는 순순히 응하기도, 그렇다고 단번에 거부하기도 어려운 조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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