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186)
* * *
왕성을 나서는 염흥방의 마음은 무거웠다.
이틀을 기다려 겨우 만난 영산왕과의 대화는 고작 일 각에 불과했고, 그 일 각 동안 확인한 것 또한 영산왕에게 이제는 희망이 없다는 것뿐이기 때문이었다.
“권세란 참으로 부질없군.”
지난날 수많은 정적들로부터 목숨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칼날 같은 정신을 유지하였으며, 이인자의 자리에서 위아래의 압박을 견뎌 냈던 신돈이었건만, 정작 최고의 자리에 잠시 앉았다가 실권을 잃었다는 실의 한 번에 폐인이 되어 버렸다.
염 현백은 걸음을 옮기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며 왕성을, 정확히는 왕성 중에 영산왕의 궁내 거처인 별궁 쪽 지붕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거 아십니까, 오늘이 제 마음을 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는 것을요.”
아직 영산왕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던 염흥방은 금상의 좌승직으로부터 영산왕 축출에 대한 제안을 받았을 때, 지금이라도 영산왕이 정신을 차린다면 오히려 그것을 빌미로 영산왕의 권위를 높일 생각이 있었다.
하나, 어제 궁에 일찌감치 들어와 영산왕에게 배알을 요청하였지만, 하루를 넘게 기다려야 했으니, 과거 길어야 한 시진 안에 만났을 때와는 너무나 대조가 되었다.
게다가 달리 정무가 있어 바쁜 이유로 만나지 못한 것도 아니고, 취기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잠이 들었다가 잠을 깬 후에는 다시 첩실들을 불러 난잡하게 어울리고 또 술자리를 마련하여 대취한 뒤에야 그를 부른 것이었다.
그런 중에 중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리도 없고, 염흥방도 영산왕에 대한 마음을 다잡을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게 다 저하께서 자초한 일이 아닙니까. 지난날 새끼 호랑이들을 사방에 풀어 놓으셨었으니까요. 알아서 죽기를 바랐다면 정말 어리석은 생각이지요. 야생에서 살아남은 호랑이야말로 진정한 대호(大虎) 아닙니까.”
이상하게 한스러운 마음이 깃든 중얼거림을 하던 중에 문득 염 현백의 뒤로 인기척이 있었다. 하나, 염흥방은 굳이 뒤를 돌아보지 않았으니, 그 인기척이 누구의 것인지 이미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큰 욕심이 없습니다. 사방에 호랑이들이 가득한 중에 산중왕(山中王)을 자처할 생각은 없다는 게지요.”
“결정을 하신 겝니까.”
그 목소리는 예상대로 좌승직의 것이었다.
“하고 싶지 않아도, 영산왕께서 억지로 등을 떠미시더군요.”
“뜻을 세우셨다 알아듣겠습니다.”
“대신 한 가지만 명심해 주십시오.”
염흥방이 몸을 돌려 좌승직을 직시하며 말하니, 조금 전까지 힘을 빼고 말하던 것과는 기세가 달라졌다.
“내가 욕심이 많지 않은 만큼,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마십시오. 나는 왕실의 존치에만 최선을 다할 뿐, 금상께 고려를 되찾아 드릴 수는 없습니다. 심지어, 만약 금상께서 욕심을 부려 나에게 과한 일을 채근하신다면 나는 그에 응할 수 없음은 물론, 감히 말씀드리건대, 내가 살아남을 길을 우선적으로 강구할 것입니다.”
“…….”
그 말에 좌승직의 안색이 다소 어두워졌다. 그의 말에 얼핏 비친 금상에 대한 평가절하 때문은 아니었다. 사실 어느 정도 예상한 바이기도 했다.
“적어도 금상께서는 그러시지 않으실 겁니다.”
좌승직의 대답이 그렇게 간단했으나, 금상이 패기가 없어 왕좌만을 보존한다면 그에 만족하겠지만, 그 후대는 어찌 할지 그도 모른다는 의미가 들어 있었다.
“나 또한 적어도 금상께서 하륜에게 당했던 치욕과 같은 일은 다시 겪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은 해 드리지요.”
금상의 목숨을 위협했던 하륜의 예를 든 염 현백의 대답에 좌승직의 얼굴은 씁쓸함으로 가득했다.
하나, 그것이야말로 금상이 바라는 모든 것일 것이니, 좌승직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요동에서도 놀고만 있지는 않았군요.”
탁기는 요하 포구에 닿자마자 요동의 관리가 건네준 몇 개의 서찰을 제주공과 함께 훑으며 말하였다.
그 서찰들은 오 일 전부터 하루에 한 번씩 요성에서 포구로 보내 둔 것으로, 북벌을 위한 요동의 준비를 적은 보고서나 다름없었다.
몽주가 제주에서 돌아오는 즉시 그 서찰을 통해 요동이 진행한 준비를 확인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었다.
“심양왕이 확실히 전쟁에 일가견이 있긴 하군.”
몽주도 미소를 띠며 서찰들을 훑었으니, 장수로서의 이성계는 정말 최고였다.
그는, 지난번 만남에서 결정된 것이 없음에도, 전쟁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몇 가지 준비 특히,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일들을 미리 진행했다.
게다가 그 전쟁의 동맹이 될 자신에게 그 진행 상황을 가능한 빨리 전할 수 있게 해둔 것은 이성계의 장수로서의 전천후적 능력을 엿볼 수 있게 하였다.
“다섯 개의 부족이 이미 북벌에 응할 수 있다 하였고, 두 개의 부족과 더 협상할 여지가 있다라……. 심양왕의 이름이 생각보다 대단한데.”
“아무래도 먼 곳의 나하추보다는 가까운 곳의 심양왕이 두렵지 않았겠습니까. 게다가 명국이 곧 북벌을 한다는 걸 그들도 알았다면, 나하추보다는 차라리 심양왕이 더 튼튼한 줄이라고 여길 수도 있었겠지요.”
“그도 그렇지만, 서찰을 보면 북벌에 참여하기로 한 다섯 부족 중 네 부족은 거의 즉시 응한 것 같아. 이를 보면, 애초에 그 부족들은 심양왕에게 호의적이었어.”
보름 만에 돌아온 것이니, 심양왕에게 주어진 시간도 고작 그뿐이었음을 생각하면 분명 그랬다.
심양왕이 접촉한 호인 부족들의 위치 중에는 말을 달려 오가도 보름 가까이 시간이 걸리는 곳도 있으니, 설득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심양왕을 좆는 부족들이 있었던 것이다.
“음?”
몽주는 심양왕 측이 협상 중이라는 두 부족을 유심히 보다가 한 부족의 이름이 낯익었다.
오도리 부족.
그리고 그 부족을 이끄는 몇몇의 족장들 이름 중에 맹특목(孟特穆)이 있었으니, 몽주는 그 오도리 부족이 그가 아는 오도리 부족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오도리 부족은 훗날 건주여진의 시발이었고, 맹특목은 먼터무, 몽골식으로 몽케테무르였으니, 청 태조 누르하치의 6대조이자 택왕(澤王), 조조(肇祖)로 추존되어, 청나라의 국시로 받들어진 인물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그냥 이 오도리 부족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서 협상하기 어려운 모양이라 여겼을 뿐이네.”
몽주는 굳이 오도리 부족과 몽케테무르에 대해 아는 바가 있음을 밝히진 않았다.
호인 부족들을 끌어들이는 건 어차피 심양왕이 해야 할 일이었고, 오도리 부족과 몽케테무르가 역사에서 훗날 청나라의 건국 시조로 받들어진 것과 무관하게, 당대에는 사실 별볼 건 없었다.
오도리 부족은 다른 부족의 압박에 밀려, 부족명의 원류인 오도리 지역 즉 송화강과 무단강의 합류 지역에서 두만강 이북까지 길게 흩어진 부족에 불과했고, 몽케테무르 역시 아직 오도리 부족조차 장악하지 못한 여러 족장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가 청 태조의 조상이긴 하지만, 역사에 기록된 몽케테무르의 인생은 여기저기 시달리다가 조선에도 초무되고, 결국 명나라에 귀부하여 벼슬을 얻은 정도였으니, 인물 자체도 그리 매력적이진 않았다.
다만, 한 가지 흥미로운 건, 본디 오도리 부족은 친원 세력인데, 지금 심양왕이 원의 유신인 나하추를 공격하려 함에 있어 오도리 부족과 협상하려고 한다는 점이었다.
물론, 역사에서도 나하추와 오도리 부족 사이에 끈끈한 관계를 찾아볼 수는 없지만, 엄연히 원나라 세력이라 할 수 있는 나하추에 대항하는 협상에 임했다는 것 자체가 역사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음을 엿볼 수 있었다.
몽주는 현대에서 공부한 역사적 사실을 떠올리면서도 동시에 그에 경계하고자 했다.
두 번째 천몽이 시작된 지도 8년. 몽주가 직접 변화를 꾀하지 않은 곳에서도 다른 역사가 새로 진행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 * *
아마미 섬은 혼란에 빠졌다. 아니, 논과 밭을 일구고 물고기를 낚는 아마미의 백성들이야 다른 날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아마미 섬에서 턱 좀 치켜들고 다닐 만한 호족들 사이에는 분명 어수선한 움직임이 있었다.
물론 제주의 선단이 아마미 섬에 닿았기 때문이었다.
다른 이유로 지나가다 들린 것도 아니고, 우연히 표류한 것도 아닌, 분명 항로를 개척할 목적으로 온 것이라 밝혀졌으니, 장차 아마미 섬에 제주의 영향이 미칠 가능성이 있었다 여긴 것이다.
이는 아마미 섬의 호족들을 당황스럽게 하였는데, 이미 먼저 시마즈 씨가 아마미 섬에 진출하여 호족들을 포섭하고 아마미 섬을 시마즈 씨의 영역으로 합류시키는 작업을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아마미 섬에서 제주는 그리 존재감이 없었다. 최근에서야, 규슈의 남단과 종종 교류하면서 규슈의 서쪽에 제주라는 섬이 있고, 근래에 규슈의 일부를 다스리고 있다는 정도가 전부였다.
하나, 막상 보기에도 남다름이 확실한 크고 아름다운 배들로 이뤄진 제주의 선단을 보자, 제주의 세력이 예상보다 더 크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자연히 아마미 섬의 호족들 사이에서는 제주와 시마즈 씨를 두고 저울질을 하느라 바빴으니, 아직 외부 세력에 대해 탐탁지 않아 하는 호족들은 물론, 이미 시마즈 씨에 포섭된 호족들마저도 다시 머릿속으로 셈을 하며 어떤 결정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게 된 것이다.
“다행히 시마즈 씨가 아마미 섬을 완전히 접수한 건 아니군.”
“그래도 벌써 시마즈 씨의 관직을 받은 호족들도 있으니, 우리가 늦은 건 분명합니다.”
“어쨌든 우리가 아미미 섬을 지나치지 않고 일단 정박한 건 잘한 결정이었어.”
창 선장의 말에 석삼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항해 중에 시마즈 씨의 배가 아마미 섬 쪽에서 나타나 스쳐지나간 것을 두고, 아마미 섬에 이미 시마즈 씨가 진출했을 가능성을 높이 여겼었다.
하여, 괜히 첫 항로 개척 중에 시마즈 씨의 과도한 견제심을 살까 싶어, 아마미 섬을 그냥 지나칠 생각도 했었는데, 그래도 상황 판단을 위해서 일단 기항했던 것이다.
이미 이틀 전에 아마미 섬의 북쪽 중심 고을인 나제(名瀨)에 정박하여 하루 동안 섬의 상황을 살핀 후, 한 척을 돌려보냈으니, 시마즈 씨의 아마미 섬으로의 진출을 제주에 빨리 알리기 위함이었다.
“근데 대체 그자들은 뭘 믿고, 우리를 따르겠다고 하는 걸까?”
“아무래도 시마즈 씨에 대한 반발심 아니, 시마즈 씨를 믿고 위세를 부리는 경쟁 호족들에 대한 반발심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제주가 좀 먼 곳이니, 그만큼 이곳에 대한 간섭이 덜할 것이라 여겼을 수도 있겠지요.”
창 선장이 의아해하는 건, 그날 낮에 제주의 선단을 찾아온 몇몇 호족들이 제주를 따를 수 있다며 은근히 청한 것이었다.
분명 선단을 이끄는 창 선장은 그저 항로를 파악할 따름이라고 분명히 선을 그어 항해의 목적을 알렸음에도, 아마미 섬의 호족들에게는 그렇게만 보이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듣자하니, 시마즈 씨가 직접 진출하지 않았을 때도, 시마즈 씨의 영향력이 큰 곳이었다고 하더군요. 하기야 달리 물산을 얻을 곳이 시마즈 씨 쪽이나 남쪽의 유구 제도뿐인데, 유구 제도가 오랫동안 혼란 중이라 하니, 실질적으로 시마즈 씨밖에 없는 상황이었겠죠.”
아마미 섬에서 모은 정보 중에는 유구섬에 관한 것도 있었으니, 유구섬은 지금 혼돈의 삼국시대였다.
길게 늘어진 섬이 북, 중, 남으로 나뉘어져 패권을 다투고 있었던 것이다.
뭔가 유구 제도 특히 유구 섬을 영역화하려고 하면 복잡한 상황에 휘말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한 모양일세.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 섬들이 있고,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렇게 전혀 모르는 곳에서도 고려나 중국과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니, 재밌지 않나.”
“제주공께서 유구를 접수하려 하신다면 더 재밌어지겠지요. 골치가 아플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장차 제주공이 어떤 선택을 할지 가늠하긴 어려웠고, 지금 그들이 해야 할 일도 그와는 무관했다.
그저 유구 섬까지의 항로를 개척하고 확인, 기록하여 제주로 무사히 가져가는 게 우선이었다.
* * *
몽주가 요성에 가져간 ‘북벌 성공의 증거’는 당연히 신무기 ‘개복포’였다.
요성에 닿아 심양왕을 만나니, 그와 그의 관리들이 개복포의 위력을 서둘러 보길 원하였고, 몽주는 탁기에게 명을 내려 휘하 해병대로 하여금 개복포를 시험하게 하였다.
요성의 동쪽 산 밑에서 선보인 시험은 위력 시험과 기동성 시험이었으니, 위력 시험은 화살형 천뢰탄의 폭발력을 선보인 것이고, 기동성 시험은 10인 1조로 구성된 해병대가 하나의 개복포와 삼십여 발의 포탄을 들고 구보하다가 명령이 떨어지면, 빠르게 포를 설치하고 방포하는 시험이었다.
그간 약간의 설계 변경이 있어, 개복포 자체는 포가와 분리할 수 있었는데, 두 사람이 각각 하나씩 들고 움직일 만했고, 다른 여덟 명의 군병들도 각각 네 발의 화살형 천뢰탄을 짊어졌으니, 비록 일반 무장일 때보다는 더디었으니, 화포를 무장한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가벼운 몸놀림을 보여 주었다.
기동 후 방포까지의 시간도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빨랐으니, 포가 설치 및 개복포 장착까지 숨 몇 번 쉬는 시간에 불과했고, 화살형 천뢰탄 안쪽에 들어 있는 화약포를 빼내어 포에 장약하고 방포하기까지 다 합하여도 일다경에 불과했으며, 어느 정도 능숙한 군병들이라면 그 후에도 일다경에 최소 두 번씩 방포할 수 있었다.
“너무 충격을 줬나, 쩝.”
몽주는 시험 후 심양왕 측의 분위기를 살피다가 탁기에게 조용히 말하였다.
아닌 게 아니라, 심양왕을 비롯한 요동의 신하들의 표정은 오히려 어두웠으니, 제주가 가진 위력이 한층 커졌음을 절감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지난 요동에서의 전쟁 때도, 기존에 알려진 화포와는 달리, 비교적 쉽게 우마로 끌고 이동할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화포를 선보여 감탄하게 하였는데, 이제는 아예 사람이 짊어지고 움직일 수 있으면서도, 그 위력 또한 모자라지 않는 화포를 선보였으니, 감탄하기에 앞서 두려움마저 느끼게 된 것이다.
“저들은 그저 공께서 저들과 같은 편임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탁기는 자부심 넘치는 얼굴로 답하였으니, 심양왕 측이 받은 충격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딱 군인다운 대답이었고, 탁기에게 바라는 것이 그것이었으니, 몽주는 실소할 따름이었다.
시험을 마치고 요성으로 돌아오자, 심양왕이 곧바로 대담을 청하였다.
“제주공께서는 참으로 대단하시오.”
“제가 대단하기보다는 제 아래 군기를 담당한 공인들의 실력이 대단한 것이지요.”
무엇이 대단하다는 것인지 뻔히 아는 만큼, 몽주는 겸양하여 답하였다.
물론, 제주의 공인들이나 화극이 듣는다면 오히려 민망해할 말이었을 것이다. 애초에 ‘박격포’라는 개념부터 설계의 변경 및 제조 중 봉착한 난관에 대한 해결방향까지 몽주가 번번이 나서 도와주었기 때문이었다.
현대의 지식을 바탕으로 한 몽주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개복포는 개념조차도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심양왕은 몽주에게 부럽다는 말을 연신 하다가, 문득 눈빛을 발하며 물었으니, 개복포를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아직은 많지 않습니다. 이제 겨우 스무 문 정도 만들었을 뿐이고, 개중에는 아직 검사를 필하지 못한 것들도 있습니다. 또 포탄 역시 많지는 않습니다. 다만, 노력한다면 북벌에서 중요한 전투에서 힘을 보탤 정도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몽주의 대답에 심양왕은 다소 실망스러운 반응을 보였는데, 몽주가 보기에 그건 전투에 투입할 개복포의 수가 많지 않은 탓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혹시 개복포를 요동에서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을 접어야 하는 데에서 기인한 듯하였다.
아무래도 개복포가 많지 않다면, 제주에서 요동으로 개복포를 줄 가능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 여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직 논의하기에 이른 듯하나, 만약 저하께서 개복포를 요동에 두는 것을 원하신다면 가능한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
몽주가 넌지시 말문을 열어 말하니, 역시나 이성계의 눈빛이 다시 반짝거렸다.
“그 방법이 무엇이오?”
“빌려 드리는 것이지요. 다만, 개복포의 운용이 남다른 만큼, 따로 제주에서 군병을 파견하여 그들로 하여금 개복포를 운용하는 것을 지휘하게 하는 방법이라면 저도 생각해 볼 만하다 여기고 있습니다.”
심양왕은 이맛살을 살짝 찌푸렸는데, 말을 듣자하니, 결국 요동에 제주의 장수가 지휘하는 군대를 두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오가지 않았지만, 빌려 주고 따로 지휘하는 자를 둔다는 건 결국 심양왕이 원할 때 직접 명하여 부릴 수 없는 군병이라는 의미일 터이니, 그로서는 맘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몽주는 심양왕의 반응을 살피곤 실소를 감추었다.
북벌에 성공하든 아니든, 심양왕은 결국 개복포를 더욱 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성공하면 더 넓은 영토에 더 많은 호인들을 다루기 위해서라도 압도적인 무력이 필요하고, 실패한다면, 살아남기 위해서 필요하니, 결국 자신이 제시한 대로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여긴 것이다.
물론, 그때가 오면 다른 조건들을 더 내세워 요동의 이권에 개입할 수 있을 것이니, 몽주야 급할 게 없었다.
“그나저나 이제 북벌하시는 것에 대해 요동의 결정을 듣고자 합니다만……?”
몽주가 대화의 주제를 바꿔 물으니, 심양왕도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요하 포구에 서찰을 보내 두신 것을 보면, 저하께서도 북벌에 마냥 부정적이지 않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제가 북벌에 크게 도움이 될 병기 또한 시험해 드렸으니, 저하께서도 결정을 내리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공의 말이 맞소. 다만, 작은 문제가 생겼소.”
“……문제요?”
몽주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으니, 심양왕이 그가 앉은 곁에 놓인 서탁의 서랍을 열어 한 통의 두루마리 서찰을 꺼내어 건네주었다.
그것을 받아 펼치는 중에 심양왕이 말하였으니, 서찰을 보기도 전에 몽주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연왕이 명국의 북벌을 밝히며 그에 참여할 것을 종용하는 서찰로, 어제 당도한 것이오. 보면 알겠지만, 이번 달 안에 답을 달라 하니 어찌하면 좋겠소?”
“…….”
심양왕의 물음은 마치 ‘이제 네가 어쩔 것이냐?’라고 묻는 듯했다.
확실히 몽주로서는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명국이 이미 요동의 나하추를 비롯하여 구원의 세력을 축출하고자 정하였음에도, 몽주는 명국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해가 바뀌어 날이 풀릴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여겼었다.
섬서에 집중된 명군을 옮기는 데 필요한 시간을 생각해도 그렇고, 군병 중 많은 이들이 남방 출신인 탓에 추위를 피하고자 할 것을 생각해도 그랬다.
그렇기에 심양왕이자 요동왕에게 북벌에 참여하라 요구하는 것도 시간적 여유가 아직 있다 생각했는데, 의외로 빠르게 연락이 온 것이다.
물론, 그 서찰은 명의 조정에서 발송한 것이 아니라, 연왕이 보낸 것으로 공식적인 참전 요청이랄 수는 없었다.
하나, 단독으로 북벌을 계획함에 있어, 명국으로부터 먼저 북벌에의 동참 여부를 묻는 서찰이 당도했다는 것은 아닐 때와는 분명 다른 상황이었다.
연왕의 개인적인 서찰일 뿐이라고 무시하고, 단독으로 북벌한다면, 자칫 상황에 따라서는 연왕이 아니라 명국을 무시했다는 ‘죄명’이 붙어 후에 명국과 요동이 갈등을 빚을 수 있다.
그렇다고, 연왕에게 명국의 북벌에 동참하겠노라 하고 따로 먼저 북벌을 하겠다는 식으로 대응한다면, 후에 고생은 고생대로 해 놓고, 막상 점령한 북방 영토에 대한 종주권을 명국에게 넘겨줘야 할 수도 있었다. 그런 식의 단독 북벌은 형식상 명국 북벌의 일환으로 여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단독 북벌을 포기하고 명국의 북벌을 따르는 것은 애초에 몽주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요동이 고려의 영구적인 영토로 남기 위해서는 명국의 견제를 이겨 낼 힘이 필요하고, 그렇기 위해서는 명국이 지금보다 더 넓은 영토에서 더 큰 국력을 얻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니, 명국에게 넓은 의미의 요동을 넘겨 줄 수는 없었다.
여러모로 진퇴양난인 상황에 대해 한참이나 고민하던 몽주는 심양왕을 직시하며 물었다.
“만약 연왕의 서찰이 없는 일이 된다면, 북벌하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혹시 연왕과 접촉해 보실 생각이오?”
“내키지는 않지만 저하께서 북벌에 대한 의지만 확실히 보여 주신다면, 연왕에게 교언영색이라도 보일 것입니다.”
몽주가 의지 어린 표정으로 답하니, 심양왕이 그런 몽주를 보며 실소와 더불어 감탄하였다.
“공을 보면 공이 요동의 주인인 것 같소.”
그 자리에 요동의 신하들이 배석하였다면, 다들 기겁할 소리였지만, 다행히 두 사람만의 독대였다.
몽주는 심양왕의 말에 담긴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요동의 영토가 넓어지는 일에, 요동의 군왕이 그보다 몽주가 더 적극적인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저는 고려가 더 크고 강한 나라이길 바랍니다. 요동이 고려의 신하국인 이상 요동이 강대해진다는 것은 결국 고려가 강대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
몽주는 답하면서, 은근히 지난번에 언급한 조건을 피력하였으니, 심양왕의 얼굴에 씁쓸한 웃음이 흘렀다.
“참으로 충신이시오, 제주공은.”
몽주는 굳이 답하지 않았다.
요동북부에 대한 정벌을 두고 민감한 선택에 대한 고민이 가득한 그날이 흘렀지만, 결정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정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일마저 새로 겹쳤으니, 고려의 염흥방으로부터 서찰이 당도한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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