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187)
* * *
“그런데 어디로 들어가실지 결정은 하셨습니까?”
“…….”
아마미 섬의 중심지인 나제에서 출항하기 직전에 석삼이 물었다.
창 선장은 답하기가 궁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유구 섬으로 직항할 예정이고, 아마미 섬에서 기항할 만한 유구의 고을들에 대해서도 알아 두었지만, 어느 고을로 들어가야 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유구섬이 삼국으로 분열된 탓으로, 아무래도 기항하는 고을이 속한 나라와 유대가 생길 가능성이 크고, 반대로 다른 나라들과는 적대 관계가 형성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한참이나 뜸을 들이던 창 선장은 배에 오르면서야 대답하였으니, 일단은 가서 결정하자는 것이었다.
“만약 가서도 딱히 선택할 거리가 없다면, 그때는 제주공께서 조언하신 대로 따라야겠지.”
창 선장의 결정 아닌 결정은 결국 그것이었다.
제주에서 명을 받으며 조언을 들은 것 중에 만약 유구 섬에 혼란이 있어 곤란함이 있다면, 안전한 곳을 택하되, 가급적 어떤 세력과도 연을 맺지 말고, 서둘러 귀환하라는 것이었다.
어차피 이번 임무는 항로 개척인 만큼, 나머지 일은 제주공이 다시 명하는 것을 따르면 됐다.
“그러고 보면, 제주공께서는 유구 섬에 혼란이 있을 것이라 예상하신 모양이야.”
“설마요.”
……라고 답하긴 했지만, 석삼도 어쩌면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제주공이 앉아서 천리를 보는 것 같은 판단과 예지를 보여 준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물론, 틀린 적도 제법 있었지만.
어쨌든 제주의 선단은 가능한 한 현지의 일에 얽히지 않겠다는 수세적인 입장을 고수하기로 정하고 조심스레 남서향으로 배를 몰았다.
하나, 입장을 그렇게 정한 것과 달리, 고려의 역사가 뿌려 놓은 파편이 제주를 또 하나의 혼란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음을 알게 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몇 개의 작은 섬을 지나고, 북동과 남서로 길게 늘어진 유구 섬의 서안을 따라, 유구 섬의 최대 고을이라는 남부의 슈리(首里)로 향하던 제주 선단은 뜻밖의 조우를 하게 되었다.
“저 어선은 왜 도망치지 않는 게지?”
“에? 어라……?”
창 선장이 의아해 한 것처럼, 제주의 선단이 나아가는 방향 앞으로 한 척의 작은 어선이 떠 있었다.
이미 해안을 따라 남하하면서 유구의 많은 어선을 보았는데, 다들 거대한 배들에 놀라 서둘러 해안으로 도주하였다.
한데, 점점 가까워지는 어선은 무슨 생각인지 떡하니 버틴 채 제주 선단의 항로를 막고 있었던 것이다.
그 작은 배로 습격을 할 리도 없고, 부딪친다고 해도 홍로급 경함선에는 티도 안 날 터라, 창 선장을 비롯하여 제주 선단의 선원들은 모두 그저 호기심 어린 시선만을 보냈다.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그 작은 어선에 홀로 탄 사람이 문득 몸을 일으키는 것이 보였는데, 그가 일어서자마자 무언가를 들어 올리며 고래고래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가 외치는 소리는 들렸지만,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다. 대동한 역관이 귀를 기울였지만, 아예 왜어의 방언도 아니라고 말했다.
실제로 가만히 들어 보면, 왜어라기보다는 차라리 고려말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거리가 충분히 가까워져 그가 들어 올린 것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낡아빠지고 찢어진 깃발이었다.
그리고 그 깃발에 적힌 것은 한자로 된 두 자였다.
신의(神義).
“……!”
창 선장을 비롯하여 몇몇의 선원들이 그 깃발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렸고, 그제야 그 어선에 탄 사내가 외치는 말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발음도 엉망이고, 문장도 틀렸지만, 신의의 깃발을 들고 있었기에 알아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내 조부가 삼별초 신의군 김한정 지유(指諭)셨소! 고려의 사신과 통언하길 바라오!”
그것이 주름살이 가득한 초로의 사내가 외친 말이었고, 백 년 전 사라진 삼별초의 후예가 먼 남양의 섬에서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 * *
‘제주 상단의 고신걸 단장으로부터 듣기를, 제주공께서 요동에 가 계실 것이라 하였습니다. 더불어, 고 단장이 제가 그에게 한 제안은 제주공께서 직접 결단할 일이라 하였습니다. 이에, 저 또한 두 분 영웅께서 한 자리에 계신 김에 두 분께 공히 말씀을 올리고자 하니, 자세히 살피시고 부디 가납하여 주십시오.’
처음에는 심양왕이든 몽주든 그저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고려의 염흥방이 심양왕과 몽주에게 동시에 알릴 만한 일이 있다는 것 자체도 의아했지만, 그 내용이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것이기 때문이었다.
심양왕과 몽주에게 자신, 즉 염흥방과의 사적인 인연을 줄줄이 늘어놓으며, 서로 친분이 있음을 확인하는 글로 가득한 초반부 뒤로 쓰인 본론을 간단히 줄이면 ‘신돈 축출’이었다.
심양왕과 몽주가, 혹은 둘 중 한 세력이라도 호응하여 역적 신돈 처벌을 명분으로 군대를 보내 준다면, 염 현백이 안에서 내응함은 물론, 금상마저 빼내어 탈출할 것이라 쓰여 있었던 것이다.
그 서찰의 하단에 금상의 글과 옥새의 인이 선명히 남아 있었고, 고려를 망국으로 치닫게 하는 역적 신돈을 벌하라는 명도 쓰여 있었다.
“허, 염 현백이 이처럼 대범한 자인 줄은 미처 몰랐군요.”
몽주가 아직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고 일단 소감만을 남겼다.
신돈이 폐인지경으로 치닫고 있다는 소식은 전해 들은 바 있었지만, 그의 당여인 염흥방마저 그를 배신할 줄은 몰랐다.
아니, 단지 신돈으로부터 등을 돌린 것뿐만 아니라, 금상과 소통하여 심양왕과 자신에게 충군(忠軍)을 일으키라는 명까지 전할 줄이야.
만약 심양왕이나 자신 중 하나라도 영산왕 신돈에게 그 사실을 전한다면, 개경에 피바람이 불 것은 물론이고, 금상마저도 안전하다 확신할 수 없는 사태가 일어날 것이다.
또, 심양왕이나 자신이 충군인 양 쳐들어가 아예 역성혁명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그러니, 염흥방은 그의 인생뿐만 아니라 고려의 왕실의 안위마저 건 거대한 ‘베팅’을 한 셈이었다.
물론, 반대로 이 서찰이 신돈에 의해 꾸며진 음모일 가능성도 있었지만, 몽주는 이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여겼다.
지금 영산왕의 전력으로는 절대 심양왕과 자신의 군력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몽주 홀로 위협을 가해도 딱히 대응하지 못했던 영산왕이 남과 북에서 동시에 쳐들어오는 제주와 요동의 강병들을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그 서찰에는 금상의 글과 옥새마저 담겨 있었으니, 이는 심양왕과 몽주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명분인 셈이었다.
설령 그것이 가짜라고 해도, 승전 후 금상을 통해 진짜로 만들면 그만이었다.
차라리 금상이 심양왕과 자신에게 어떤 이유를 내세워 개성으로 불러들이는 명을 내렸다면 신돈의 계략일 가능성을 크게 의심했겠지만, 그건 아니었다.
신돈이 자살 행위나 다름없는 음모를 꾸몄을 리가 없으니, 진정 염흥방이 왕실과 모의했다 여기는 게 옳았다.
몽주의 좌측 상석에 앉은 심양왕 또한 그의 우측에 나란히 앉은 요동의 삼재상, 즉 의정령 이숭인, 좌찬성 정도전, 우찬성 윤소종과 시선을 마주하면서 복잡한 속내를 표정에 드러내고 있었다.
한데, 몽주의 눈에 심양왕과 요동의 재상들 사이에서 오가는 시선 속에 묘연한 물음과 동의가 함께 오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이내 심양왕이 말문을 열었다.
아직 생각을 정리하지 못한 몽주로서는 그 또한 놀랄 만한 속결이었다.
“나는 이 제안을 받아들여야겠소.”
“……좀 더 심사숙고하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양 북면을 온전히 다스릴 수 있다면, 나는 무슨 일이든 해야 하오.”
“…….”
이성계의 결정이 이와 같았던 것은 서찰에 쓰인 보상 때문이었다.
심양왕이 충군을 일으킨다면, 양 북면을 다스리게 해 줄 것이라 쓰여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몽주로서도 무조건 성급하다고 더는 지적할 수 없었다.
양 북면(北面)이란 서북면과 동북면을 가리키는 것이니, 그 대부분은 이미 심양왕이 다스리는 지역이라 얼핏 보상처럼 보이진 않았다.
하나, 서북면은 곧 현대의 평안도이고, 동북면이 실제로는 현대의 원산 이남까지 포함한 지역이라는 걸 생각하면, 심양왕이 양북면을 온전히 다스릴 수 있다는 건 한반도에서 그가 차치하는 영토가 좀 더 남하함을 의미했다.
그것은 요동의 영토가 나뉜 불안한 형국을 일시에 타파할 수 있다는 의미였으니, 서북면과 동북면을 나누는 백두대간이 미약해진 곳을 통해 서로 교통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심양왕이 북벌에 크게 관심을 가진 것도 애초에 요동의 영역을 늘려 북방을 통해 동북면까지 자신의 치세를 잇게 하고픈 마음에 있었으니, 만약 사나운 호인들과 싸울 필요 없이 양 북면을 온전히 얻을 수 있다면 그 선택이 더 나았다.
“제주공 또한 왕명을 받드는 것이 나을 것이라 보네만.”
이성계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말하니, 그건 비단 제주공에게 약속된 보상 때문만은 아니었다.
심양왕에게 양 북면을 보상으로 약속한 것처럼, 제주공에게도 양남 지역 즉, 현대의 경상도와 전라도에 해당하는 지역을 다스리게 해 준다는 약속이 있었으니, 오히려 심양왕보다 더 좋았다.
하나, 심양왕의 시선 속에 담긴 의미심장함은 그와 같은 보상에 기인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염흥방이 밝힌 요구 조건을 가리키는 것이었으니, 염흥방은 신돈의 축출 후 상을 약속하면서, 심양왕과 제주공에게 세세토록 고려의 왕실을 받든다는 맹세를 선행하길 요구했던 것이다.
“자네가 내게 고려를 따르도록 요구한 것과 결국은 같은 것 아닌가. 나로서도 별거 없는 북방의 영토보다는 서북면이 더 탐나기도 하고, 또 신돈을 축출하여 고려에 거리끼는 자를 두지 않을 수 있으니, 이 왕명을 거부할 수가 없네.”
그 또한 맞는 말이고, 결국 요동이 강대해지는 결과였으니, 심양왕을 설득할 때 몽주가 내세운 명분과도 같았다.
그러니 심양왕이 염흥방이 대리한 고려 왕실의 명을 받드는 것을 만류할 명분이 없었고, 오히려 몽주 또한 그 명을 받들어야 하는 이유만이 남은 것이다.
물론, 몽주에게도 큰 이익이 되는 일이긴 했다.
신돈을 축출하는 문제야 심양왕과 함께한다면 실패하기 어려운 수준이고, 그를 통해 양남을 다스릴 수 있게 된다면, 제주 상단이 간접적으로 진행하고 있던 고려 장악 ‘프로젝트’를 순식간에 진척시킬 수 있을 것이다.
고려 왕실을 받들겠다는 맹세가 조금 걸리긴 했지만, 어차피 힘 빠진 왕실을 명목상으로 따르는 것이야, 죽어도 고려를 품고 살아야 하는 몽주로서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나, 역시 문제는 요동, 아니 ‘만주’였다.
훗날 역사에 만주라 명명된 그 드넓은 대지는, 당대에는 쓸모없는 황무지와 초원에 불과한 곳이지만, 산업 시대의 시선으로 보면 보물 창고와 같은 곳이었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만주를 민족 영토화시키고 싶은 몽주로서는 염흥방의 제안으로 인해 심양왕이 북벌의 의지가 약해진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확실히 저하의 말씀이 옳긴 합니다. 다만, 이대로 북벌의 뜻을 접으신다면, 저하의 실질적인 치세는 좌우로 길기만 한 불안한 모양에 불과합니다. 만약 명국이 북벌하여 요동의 이북을 얻는다면, 명국의 마음대로 저하의 치세를 토막 낼 수 있으니, 그 위태로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먼저 북벌해야 하지 않습니까.”
몽주는 염흥방의 제안을 심양왕이 받아들이는 것은 그것대로 인정하면서도, 북벌의 의지를 북돋게 하고자 하였다.
하나, 몽주의 조언은 심양왕이 답하기 전에 좌찬성 정도전에 의해 막혔다.
그는 이성계의 허락하에 말문을 열었으니, 굳이 전쟁이 없어도 불안한 형국을 벗어날 수 있다고 하였다.
“제주공 또한 요하 포구에서 읽은 것을 통해, 저희가 온화한 호인들을 포섭하고 있음을 이미 알고 계실 겁니다.”
“……그렇소.”
“북방의 상황에 어두우셔서 미처 깨닫지 못하신 부분이 있는데, 이미 네 개의 호인 부족들이 요동을 따르기로 하였고, 그 부족들이 사는 곳은 모두 야루강의 북쪽과 백산의 서쪽입니다.”
“……!”
야루강, 즉 압록강의 북쪽, 그리고 백산, 즉 백두산의 서쪽이란 말은 곧 요동과 고려의 북면 사이의 비는 곳을 가리켰다.
즉, 심양왕 측이 호인들을 포섭한 것은 비단 북벌을 위한 전력을 높이는 것에만 있지 않고, 갈라진 요동의 영토를 잇는 것에도 목적이 있었다는 뜻이었다.
“물론, 그 외에 요동을 배척하는 사나운 호인들의 부족들도 있긴 합니다만, 요동이 고려의 북면을 얻어 이어지고, 요동을 따르는 호인들과 더불어 그 강역을 안정시킨다면, 굳이 북방의 강대한 나하추와 충돌하지 않아도 요동은 요하로부터 단주에 이르는 강대한 영토를 구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사실 명국이 북벌을 한다 하더라도, 나하추를 몰락시키고 구원을 옆에서 압박하는 것에 주된 목적이 있을 것이니, 쉽사리 요동과 적대하리라 여길 수 없지 않습니까. 물론, 이전에 요동과 함주가 나뉘어 요동이 고립되었을 때야 그 작은 가능성이 크게 두려웠지만, 고려의 북면을 얻는다면 만에 하나의 경우 때문에 강대한 적을 공격해야 하는 무리수를 선택할 이유가 없습니다.”
너무도 합리적인 삼봉의 의견에 몽주는 무어라 쉽게 대응할 수 없었다.
그의 말마따나 명국이 쉽사리 요동을 칠 수는 없으니, 그저 구원을 우측에서 압박할 뿐이라면 굳이 명국의 북벌을 경계할 이유가 없었다.
명국도 요동이 요하 유역 동편에 고립되었을 때와 달리, 이성계가 고려의 북면을 다 차지한 것을 안다면 쉽게 탐내기 어려울 것이고, 역사에서 이미 증명하듯 명국은 요동 북부를 직접 다스리는 대신 호인들에게 벼슬을 내려 명목상 명국을 따르게 하는 수준의 자치를 허락할 것이다.
그 정도야 어차피 ‘쓸모없는’ 땅을 포기하는 대가라면 요동으로서는 손해일 게 없지 않은가.
결국 몽주는 더는 설득하지 못하고 일단 물러나야 했고, 며칠간 고민하는 사이에, 오히려 심양왕 측으로부터 신돈을 축출하기 위한 계획을 논하자는 재촉만을 받아야 했다.
몽주는 그런 재촉을 차일피일 미루었는데, 염흥방의 제안이야 그에게 득이 되는 일이긴 했지만, 그에 응하는 것은 곧 북벌을 포기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하나, 그렇게 미루는 건 그리 길지 않았다.
* * *
닷새 만에 요성 대전에 모습을 드러낸 몽주가 요동의 신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심양왕에게 선언하였으니, 염흥방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이었다.
“단, 그에 앞서 저하께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오?”
몽주가 마침내 결심을 한 것에 흡족해하던 심양왕이 살짝 경계하는 기색으로 물었다.
“제가 알기로, 요동이 후르하(兀良哈) 부족과 오도리(斡者里) 부족과도 통교가 있다 하였습니다. 그 두 부족과 제가 만날 수 있도록 추천서를 써 주십시오.”
“그들 부족과는 우리 또한 친하다 할 수는 없소만, 추천서 정도야 써줄 수 있소. 한데, 어째서 그런 걸 바라시는 게요? 공이 그들과 만나실 생각이시오?”
몽주는 빙긋 웃음만 흘렸다.
며칠 고민하던 중에 요동에서 회유를 진행 중인 호인 부족들에 대한 녹계를 확인할 수 있었으니, 그중 후르하 부족과 오도리 부족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이 몽골계 제부족에 밀려 약해진 상태였기에 감히 나하추 세력에 비할 바는 아니나, 그래도 결코 작은 부족들이 아님을 알게 된 것이었다.
오도리 부족과 후르하 부족.
본디 건주 여진의 중심이 된 그 두 부족을 떠올림으로써 몽주는 발상을 전환할 계기를 얻었다.
* * *
몽주가 제주로 돌아온 건, 염흥방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지 열흘이 지난 후였다.
며칠간 신돈을 축출할 방법을 심양왕 측과 논한 후에야 출항한 것이었다.
애초에 요동을 지원하여 ‘만주’를 얻기로 한 계획은 크게 뒤틀려 몽주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하나, 넓은 의미의 요동에 사는 호인들이 실제로는 여러 큰 계열로 엄연히 구분되어 있다는 사실과, 오도리 부족과 무단 부족이 수세적인 상황임에도 상당히 대부족들임을 확인한 것이 몽주에게 새로이 만주를 얻을 방도를 제시해 주고 있었다.
물론, 그 방도를 이루기 위해서는 여러모로 어려운 고비를 넘겨야 하기에 몽주는 쉬운(?) 길을 돌아가는 것 같아 뱃속이 쓰렸다.
제주에 도착한 몽주는 고려의 일이 있기 전에 얼마간은 그저 머리를 식히며 쉬고 싶었다.
하나, 그의 바람과는 달리 남양 쪽에서도 몽주를 괴롭히는 소식들이 연이어 도착하였다.
시마즈씨가 벌써 아마미 섬에 발을 뻗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이미 제주에 닿아 있었던 것은 물론, 남양 항로 개척을 마친 선단이 돌아와 유구 섬의 상황과 삼별초의 후예로부터 받은 제안을 전하였던 것이다.
“아이고, 남과 북에서 나를 지치게 만들려고 아주 작정을 했나 보오.”
안방의 침상 위에서 앵도의 무릎을 베고 누운 몽주가 투덜거리자, 앵도의 따스한 손길이 몽주의 이마를 쓰다듬어 주었다.
“……가슴 만질래요?”
“응? 아, 우웅…….”
언젠가 속상한 남편을 위로하는 방법이라며, 반쯤 농으로 알려 주었는데, 잊지 않은 모양이었다.
부스럭부스럭.
만지작만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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