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199)
* * *
“호외요, 호외입니다!”
“제주군공께서 탐라국공에 임하시어, 탐라공국을 여셨습니다!”
“탐라공께서 남면통관안찰사를 겸임하시어, 경상과 전라를 다스리시게 되었습니다!”
순보를 돌리는 일을 하는 청년들이 크게 소리쳐 알리니, 수많은 이들이 몰려들어 순보를 받아 가기 시작했다.
몽주가 고려에서 돌아오기 전에 이미 순보가 호외로 발간되어 탐라 전역에 퍼졌다.
신돈을 축출함으로써 심양왕과 더불어 고려의 양대 기둥이 되었음을 모두 알고 있었지만, 그 구체적인 결과물이 발표되니 탐라의 백성들이 크게 흥겨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 흥겨움 중에 큰 몫은 탐라의 이름을 다시 찾은 것에 있었다.
탐라라는 이름이 제주에 가린 지 적잖은 시간이 흘렀으나, 탐라에 흐르는 민심에 독립적인 성향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었으니, 독립의 의미가 깃든 탐라의 이름을 다시 되찾은 것에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이는 탐라 원주민들에게서만 강하게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외부에서 탐라로 유입된 백성들의 경우에는 탐라라는 이름보다는 공국이라는 낯선 형태로 나라를 세운 것에 더 감격했고, 또 탐라국공이 남면통관안찰사로서 고려의 남부를 다스리게 된 것에 기뻐하였다.
탐라로 온 유민들 중 대부분이 바로 그곳에서 왔으니, 그들의 고향땅도 탐라공국 아래에서 복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었다.
어쨌든 탐라 전체가 이토록 흥에 겨우니, 몽주가 입항하는 그날에 홍로현의 포구와 그 주변에는 탐라 백성들이 일제히 모여 크게 환호하고 천세를 부르짖었다.
“많기도 하군.”
“오늘 입항하심을 알고, 대촌현에서 이곳까지 찾아온 자들도 숱하다고 합니다.”
하선하여 교리들의 마중을 받으며, 군병들이 질서를 단속하는 곳 뒤에 늘어선 백성들을 바라보니, 진정 탐라 사람들은 모조리 모여든 느낌이었다.
“크게 잔치라도 열어야 하나?”
“명하신다면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점녀가 나서서 말하니, 이미 명을 받은 양 행동하였다.
“딱히 그럴 일인가 싶네만, 저리도 좋아하니,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 자네가 알아서 준비해 보게. 너무 떠들썩하지는 말고.”
“알겠습니다, 주군.”
“……자네도 주군이라 부르고 싶나?”
“어디 저뿐이겠습니까. 모두가 주군을 주군이라 칭할 날을 고대하였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점녀가 다른 교리들을 보며 물으니, 모두들 재무교리의 말이 옳다며 저마다 주군이라고 크게 불러 댔다.
“흠, 이거 적응하려면 오래 걸리겠군.”
“주군께서 주군이라 불리시는 것에 적응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게…….”
몽주는 또 간지러운 뺨을 긁었다. 주군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안색을 붉힌 탁기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좀 징그럽다고나 할까.
그나마 탁기는 오랫동안 나가 있던 함대를 정비하기 위해 아직 배 위에 있었으니, 그가 이 자리에서 주군 타령을 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때, 문득 마차 한 대가 들어와 가까운 곳에 멈춰 섰다.
“웬 마차인가?”
“이제 국공으로서 탐라공국의 군주가 되셨으니, 예전처럼 걸어다니실 수는 없지 않습니까.”
홍 교리가 부연하니, 몽주가 고려로 떠난 뒤, 공국을 세우는 것과 무관하게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고 하였다.
여태 몽주는 말을 타거나 어지간한 거리는 그냥 걸어다녔는데, 그것이 교리들이 보기에 제주의, 아니 이제 탐라의 주인으로서 권위가 떨어진다 여겼다.
사실 고려 본토도 그렇고 탐라에서도 마차는 흔한 것이 아니었다. 도로가 형편없고 크고 작은 물줄기가 길을 끊어 놓으니, 보통 권세 있는 자들은 가마를 이용했다.
한데 교리들이 가마 대신 마차를 준비한 것은 몽주가 사람이 지고 이는 가마에 탑승하길 꺼려한 탓이었다.
그저 꿈이라고만 여겼던 첫 천몽에서는 노예들 수십 명이 짊어지는 거대한 가마를 이용했었지만, 이제 천몽이 단순한 꿈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으니, 가마에 타는 것이 영 맘에 불편했던 것이다.
어쨌든 뜻하지 않았던 것이지만, 몽주는 마차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폈다.
심지어 바닥에 닿을 듯 몸을 굽혀 마차 아래를 열심히 살피니, 교리들이 헛기침을 하며 체통을 지키라는 신호를 보냈으나, 몽주는 그에 상관없이 마차의 설계를 확인하였다.
“이거 내가 말했던 걸 장착한 게로군.”
“그렇습니다. 저희가 마차를 준비해야겠다고 결정하니, 화극 어른께서 안 그래도 주군께서 말씀하신 게 있다 하시며 열심히 만드셨습니다.”
몽주가 화극에게 말했던 것은 바로 ‘판스프링(leaf spring)’이었다.
강철판의 탄성을 이용한 간단한 충격 완화 장치.
언젠가 탐라에 환형의 도로를 건설할 것이라 말하면서, 마차의 보급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는데, 그때 판스프링을 설명해 주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충격을 덜 받아야 더 빠르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다면서 용수철도 쓰일 수 있지만, 용수철은 좌우요동이 커서 오히려 불편할 수 있으니, 크기가 다른 강철판을 차례대로 쌓아 붙인 판스프링이 더 좋을 거라고 조언해 주었던 것이다.
아래에 이어 위도 살피니, 위쪽 좌석은 무늬 없는 무개차 형태로, 태양빛과 비를 막기 위해 커다란 산선(傘扇 : 우산 모양의 휘장)이 달려 있었고, 한쪽에 삼태극의 조그마한 문장기가 달려 있어, 그것이 탐라국공의 마차임을 표시하고 있었다.
그냥 말을 타는 게 편할 것 같기는 하지만, 준비한 성의도 있고, 판스프링을 직접 시험해 보고 싶은 생각에 몽주는 선뜻 마차에 올라탔다.
산선 아래 비단방석을 깔고 앉으니, 마부역을 담당한 군병이 두 필의 말을 몰아 마차가 출발하였다.
홍 교리와 점녀가 동석하고 다른 교리들은 따로 말을 타고 뒤따랐다.
“천세, 천세, 탐라국공 천세!”
“탐라공국 천세!”
몽주가 부두를 떠나 길 위로 올라오니, 사방에서 탐라 백성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록스타가 된 기분을 느끼며 몽주는 여기저기 둘러보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미소 띤 입모양을 유지하고 손 흔들어 보이길 계속하면서도, 복화술처럼 맞은편에 거꾸로 탄 홍 교리와 점녀에게 물었다.
“화극 어르신은 내가 시킨 일로 바빠서 못 나온 모양이지?”
“예, 그렇습니다.”
“일이 잘 안 되는 모양이군?”
“잘 알지는 못하나, 공무교리가 노심초사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점녀가 조심스럽게 답하니, 몽주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황산 제조를 위한 납 용기 개발이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납 용기라고는 하지만, 밥그릇이나 냄비 사이즈가 아닌, 높이 10미짜리 거대한 상자와 같은 형태라, 여러모로 제작이 쉽지 않을 것이다.
천천히 움직이는 마차 위에서 다시 백성들의 환호성에 화답하던 몽주는 살짝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석삼이 녀석은?”
“이미 집무실에서 주군께서 당도하길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점녀가 조심스레 답하니, 얼굴에 남편에 대한 걱정이 가득했다.
개경을 떠나기 직전에 탐라에서 보낸 장계를 받아 보았으니, 그것엔 석삼이 남양에서 저지른 일들에 대해 간략하게 적혀 있었다.
몽주가 직접 갔더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일들이 적잖이 적혀 있는 가운데 특히 몇 가지는 절로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게 만들 만한 것이었다.
“그 사토왕이라는 자는 어디 있지?”
“홍로현에는 두기 어려워 행재청에 연금해 두었습니다. 대접은 소홀치 않으니, 너무 걱정 마십시오.”
석삼은 중산국을 도모한 후, 중산왕 사토를 탐라까지 잡아 왔다.
장계에는 사토왕이 왕성이 함락될 때 탈주하였고, 항복을 종용함에도 끝까지 도주를 감행한 것을 보고, 장차 유구 경영에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 여겨 아예 잡아 왔다고 쓰여 있었다.
“시마즈씨에서는 소식이 없었나?”
“아직은 없습니다.”
이제 거리에서 환호하는 백성들의 모습도 드물어지자, 몽주도 손을 흔드는 걸 멈추고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석삼이 녀석이 몰고 온 산더미 같은 일감에 벌써 몸이 지치는 기분이었다.
“다 내 죄로소이다…….”
덜커덕.
편석으로 다진 길 위에서 문득 마차가 크게 흔들렸지만, 판스프링 덕에 충격이 직접적으로 몽주를 강타하진 않았다.
* * *
“하나.”
“……정신을!”
“둘.”
“차, 차리자!”
“일어나.”
몽주가 명하니, 석삼이 벌떡 일어났다. 얼굴에 땀기운이 가득하니, 제법 얼차려를 받은 티가 확연했다.
“거기 앉아.”
“넵!”
군기가 바짝 든 표정과 행동으로 석삼은 재빠르게 명에 따라 회의 탁자 앞에 앉았다.
몽주는 상석에 천천히 앉으며 장계들을 탁자 위에 두었다.
석삼이 쓴 것, 창 선장이 쓴 것, 그리고 몽주가 비밀리에 보고하게 한 자들이 쓴 것까지.
“일단은 네가 잘한 것도 있다는 건 인정하지.”
“가, 감사합니다!”
“말소리 낮춰. 누가 목소리가 크기 가지고 뭐라 했나?”
“아, 알겠습니다.”
“내가 군력을 최대한 이용하라 한 대로 네가 군력을 십분 발휘했다. 십분이 아니라, 백분 발휘해서 그렇지.”
“…….”
“남산국의 오사토왕에게 무력 시위를 한 거나, 중산국이 자존심을 부리는 걸 눌러버리고 나하 호족을 포섭한 거 좋았다, 좋은 판단이야.”
“감사합니다.”
“아마미 섬에서 그곳 양민들 납치하는 시마즈씨를 공격한 것도 좋아. 물론 양민들의 피해가 없었더라면 더 좋았겠지.”
“……죄송합니다.”
“내게 죄송할 거야 없지. 죽은 아마미 백성들에게 죄송해야지. 그리고 아마미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시마즈씨에게 경고한 것도 나쁘진 않아. 물론, 네가 한 짓은 월권이지. 네 관할은 유구와 아마미 섬 등 남양에 국한된 거지, 왜국은 아니니까.”
“하, 하지만…….”
“하지만, 아마미 섬에서 시마즈씨를 공격한 건 잘했다고 해 놓고, 왜 그러냐고?”
“네…….”
“말하지 않았느냐. 네 관할이 아니라고. 예를 들어, 만약 명국이 이곳 탐라에 갑자기 쳐들어오는 걸 경계 중이던 연안함대가 싸워서 물리쳤다면 나는 칭찬을 아끼지 않겠지만, 그 직후 연안함대가 명국으로 달려가 연안에 화포질을 했다면 나는 그 함대를 이끈 자를 장교직에서 삭탈시켰을 것이야. 명국에 보복을 하더라도 내가 하거나 내 명을 받은 후에 해야 하는 거지. 네가 한 일도 이와 마찬가지지. 나 또한 아마미 섬을 지키기 위해 시마즈씨에게 강력하게 경고했을 것이니, 네가 한 일과 대동소이하겠지만, 내가 한 것과 네가 독단으로 저지른 것은 엄연히 다른 법이지.”
“하나, 이번 일은 시일이 급하다 여겼습니다. 제주공께…… 아니, 탐라공께 보고하고 허락을 구하는 사이에 시마즈씨가 아마미 섬으로 군력을 보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몽주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괜한 변명을 해서가 아니라, 나름 일리 있는 이유를 대었기 때문이었으니, 기분 나쁜 반응은 아니었다.
“창 선장의 장계를 보니, 시마즈씨가 군력을 준비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하더군. 이에 동의하나?”
“그건…… 그렇긴 합니다. 하나, 전에 주인께서 선장들에게 말씀하시길, 상황의 변화로 인하여 더 나은 방책이 있을 경우나 군령이 오히려 패배의 빌미가 될 경우에는 명에 얽매이기보다는 스스로 판단하여 승리를 얻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라 하셨지 않습니까. 저는 이번이 그와 같다 여겼습니다. 아무리 군력을 준비하는 기미가 없었다곤 하지만, 저희가 탐라에 돌아오고 다시 시마즈씨로 함대를 파견하려 한다면 못해도 닷새는 걸릴 터이니, 그 닷새면 시마즈씨가 아마미 섬에 군력을 보내기에 충분하지 않습니까?”
“확실한가?”
“네?”
“내가 전에 선장들에게 말한 것은, 상부에 고하여 명을 얻기 불가능하거나, 그와 같은 절차를 밟으면 명백히 늦을 경우에 한하여 그리하라 허락한 것이지, 결코 군령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굴라는 말은 아니었다. 그걸 네가 모르진 않을 터, 이번 경우에 네가 판단하기에 그 닷새가 골든 타임…… 아니, 절대 미룰 수 없는 금쪽 같은 시간이라 확신하느냐는 말이다.”
“……저는 그랬습니다.”
“그래? 아쉽군. 하나, 아니었다. 만약 그렇게나 그 닷새의 시간을 위태롭고 아쉽게 생각했다면 근방에 정박하고 시마즈씨를 감시하되, 탐라로 따로 배를 한 척 보내 연락을 기다리면 되었을 것이다. 내가 없더라도 이곳의 교리들이 논의하여 적절한 판단을 내렸을 것이고, 적어도 네가 혼자 판단하는 것보다는 여러모로 나았겠지.”
“아…….”
몽주의 대안에 석삼은 고개를 푹 숙였다. 왜 그걸 생각지 못했을까 하며 후회하는 것이었다.
“사람은 본디 말 타면 경마(牽馬 : 고삐) 잡히고 싶은 법이다. 네가 군력을 부리게 되니, 자연 그것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 싶었을 테고, 그럴 수 있다 여겼을 게다. 실제로 시마즈씨가 곧바로 대응하지 못했고, 지금까지도 항의 한 번 하지 못하고 있으니, 그럴 만하긴 했지. 하나, 그렇게 할 능력이 있다는 것과 그럴 권한이 있는 것은 분명히 구분해야 하는 법. 내가 보기에 너는 네가 임시로 가진 자리에 취해 뭐든 할 수 있다 여긴 것으로 보이는구나.”
몽주가 석삼의 월권으로 지적하는 것은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유구섬 나하 고을의 수령으로 그곳의 호족을 임한 것이나, 중산국왕을 압송한 것도 엄연히 월권이었다.
다만, 나하의 경우는 본디 유구에 있는 삼별초의 후예들에게 남산국 영토를 할양하여 그들로 하여금 탐라를 따르게 하라 명한 바가 있고, 그곳 촌장을 수령으로 임하게 하였으니, 그에 준하여 나하도 같은 식으로 처리했다고 어렵사리 이해할 수 있었다.
인사권을 대사에게 준 바 없지만, 그렇게라도 억지로는 이해가 가능했던 것이다.
하나, 중산왕을 압송한 것은 분명 도를 넘는 것이었다.
아무리 왕권이 약하다고는 하나, 엄연히 한 왕국의 국왕을 잡아 온 건 곧 그 나라를 몰락시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었으니, 그로 인한 혼란은 오롯하게 탐라의 책임이 될 것이다.
그냥 내버려 두면 그 혼란으로 인한 유구 백성들의 원성이 탐라로 향할 것이고, 다 감당하고자 한다면 그것대로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해외로의 진출을 시도하고 있긴 하나, 아직 그 투사력이 미흡하여 고을 하나를 얻고 차근히 그 영향력을 넓히고자 했던 몽주의 계획에서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아마미 섬에서 시마즈씨와 연루된 호족들을 처…… 리함에 다른 호족들의 손을 빌린 것은 어찌 생각하느냐.”
“그들을 죽게 한 것은 안타까우나, 아마미섬의 나제 포구를 제주…… 탐라의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아니, 내가 묻는 것은 그들을 희생시키는 것은 불가피하여도, 다른 호족들로 하여금 그들을 죽이게 한 것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아마미 섬에서 일부 호족들을 정리한 것은 탐라를 따르기로 한 호족들이었다.
먼저 통첩하여 호족의 일족이 아닌 자들은 도주하라 명한 후, 시간을 주어 탈주하는 자들을 잡아들인 뒤, 시마즈씨를 따른 호족들이 모인 관청에 폭죽 화살을 쏘고, 불을 질렀다.
그 와중에 뛰쳐나온 자들은 호족들의 사병들이 베었고, 나머지는 타 죽었는데, 탐라군이 한 것은 오직 폭죽 화살을 사병들에게 주어 쓸 수 있게 한 것뿐이었다.
“……그것이 잘못입니까?”
석삼은 주군이 지적하는 바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되물었고, 그에 몽주는 한마디 더 부연하였다.
“그 명을 받은 호족들이 기꺼이 응하였나? 창 선장의 장계에 보면 아니라고 나와 있더구나.”
“그렇긴 합니다. 하나, 제깟 놈들이 따르지 않을…… 아!”
석삼은 무어라 대꾸하다가 문득 스친 생각에 기함하였다. 그 모습에 몽주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네가 올린 장계에 네 스스로 써 놓길, 그들을 죽이기로 한 것은 앙심을 품은 그들이 훗날 음모를 꾸밀 게 자명하니, 그를 방비하기 위함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였다. 하면, 이제 아마미 섬에 앙심을 품은 자는 없는 것이냐? 아니면 또 다른 이들이 앙심을 품었겠느냐?”
“…….”
“모르긴 몰라도, 네 강요를 따른 호족들 사이에 불만과 불안이 생겼을 것이다. 아마미 섬의 같은 호족들을 학살하게 강요한 것에 대한 불만과 자신들도 언젠가 같은 꼴을 당할 수도 있다는 불안. 전에는 앙심을 품은 자들이 명확했으나, 이제는 우리를 따르는 이들 중에 정확히 누구일지 판가름할 수 없는 상태로 앙심을 품은 자들이 생겨났을 것이란 말이지.”
석삼의 고개는 더 이상 떨어질 수도 없을 만큼 내려가 있었다.
“죽이는 대신 그들을 탐라로 압송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들을 죽이고자 마음먹었다면, 차라리 우리 군병의 손으로 했어야 했다. 하면, 아마미의 호족들은 불안할지언정, 자신들의 손을 더럽힌 것에 대한 불만은 없었겠지. 불안이야 잘만 이용하면 오히려 맹목적인 추종으로 이끌 수 있도 있으니…….”
몽주는 그쯤에서 말을 끊고 석삼을 바라보았다. 울상으로 고개를 숙인 채 죄인처럼 앉아 있는 걸 보고 있자니, 불쌍하기도 했고, 우습기도 했다.
“고개를 들어라.”
“…….”
“고개 들어. 지금 동정심을 사려는 게냐?”
“아닙니다요…….”
석삼이 고개를 조금 드는 체 하였다.
“쯔쯧, 야단 좀 쳤기로 서니, 풀이 죽은 꼴이라니. 이래 가지고 앞으로 대사로서의 중임을 어찌 감당하려는 게냐?”
“……네?”
석삼은 문득 들린 말에 놀란 눈을 크게 뜨며 주군을 바라보았다.
“네가 처음이다.”
“…….”
“특명전권대사에 임한 것이 네가 처음이라는 말이고, 나를 완전히 대리하여 외국에서 모든 결정을 어깨에 짊어진 것도 네가 처음이라는 게다.”
“주군…….”
“처음에는 뭐든 실수가 있는 법이지. 내가 이렇게 앉아서 네 실수를 지적하지만, 나 또한 막상 그 상황에서 모든 일에 옳은 판단을 내렸으리라고는 확신할 수 없다. 어쨌든 너는 내가 명한 대로 유구에 나를 따르는 세력을 만들었고, 명한 바 없음에도 아마미 섬마저 얻은 데다 시마즈씨의 납치 행각도 막았다. 여러 오판이 있었으나, 그 와중에 해야 할 건 한 셈이지. 내가 바라는 특명전권대사라는 위치에는 족하지는 않았으나, 처음 중에 처음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석삼의 눈매가 붉어지더니,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다음엔, 다음번엔 더 잘하겠습니다요. 진짜 잘하겠…… 흐어엉, 으어엉!”
“…….”
기어이 석삼은 울음을 터뜨리더니 양 소매에 얼굴을 묻고 어깨마저 떨면서 통곡하기 시작했다.
그때, 문득 쿵쾅 소리가 들리더니, 집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아빠, 왔어?! 언제 왔……? 어? 석삼이 아저씨, 우네?”
강영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가 석삼의 울음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뒤로 몽건이가 뒤따라 들어와 형에게 서둘러 인사를 하고는 강영이의 팔을 잡아끌며 다시 나가려 했다.
“잠깐, 잠깐만! 석삼 아저씨, 왜 울어? 아빠가 때렸어? 많이 때렸나 보네.”
“…….”
“아, 놔아, 이거 놔! 아이씨!”
강영이가 툭닥대며 자길 끌어내는 몽건 삼촌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몽건은 꽤 아픈지 인상을 썼지만, 그래도 사내라고 힘은 조금 더 센지 어렵게나마 강영이를 끌고 나갔다.
뭔가 순식간에 지나간 느낌에 몽주는 멍하다가 입맛을 다시며 아직도 꺼이꺼이 굵은 눈물 방울을 흘리고 있는 석삼을 보았다.
“생각해 보니, 미처 말 못한 게 있었네. 너 인마, 시마즈씨에게 경고를 하려면 외교적으로 잘 돌려 말해야지, 대놓고 파멸시키겠다고 하면 어쩌냐? 시마즈씨가 그렇게 만만해? 다른 일로 형편이 안 되어서 시마즈씨와 싸우지 못하게 되면 뱉은 말을 어떻게 책임질 거야?”
좀 전과는 달리, 경박하게 튀어나오는 몽주의 꾸중에 오히려 석삼은 눈물을 멈추고는 의아하게 몽주를 바라보았다.
“뭘 봐, 짜샤. 그만 나가라, 얼른 나가. 밖에서 네 부인이 걱정을 산더미처럼 이고 있을 테니, 나가서 부인한테나 잘해 줘.”
“예, 주군, 다시 부르십시오.”
“아, 몰라, 일단 내 눈앞에서 사라져.”
꾸벅.
석삼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곤 물러났다. 문이 닫히며, 밖에 있던 점녀가 석삼을 맞이하는 소리가 얼핏 들렸다.
“많이 혼났어요? 자내, 울었어요? 주군께서 때렸어요?”
멀어져 가는 점녀의 목소리 사이로 석삼이 훌쩍이는 소리만 있을 뿐, 아니라는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저거…… 일부러 저러나?’
에잉.
책상 앞 의자로 옮겨 털썩 앉던 몽주는 이내 다시 일어났다.
몽주도 앵도를 찾아갈 셈이었다. 언제나 그의 편인 아내 품에서 뭔가 억울한 마음을 달래야 할 것 같았다.
하나, 몽주의 휴식은 길지 않았다.
둘째 아이가 콩알보다도 작게 자리 잡고 있을 앵도의 배를 만지작거리며 저녁도 미루고 서서히 알콩달콩 ‘무드’를 잡아가려던 참에 화극이 찾아온 것이었다.
“조카사위, 나 좀 도와주게!”
울상이 되어 찾아온 화극의 모습에 몽주는 차마 내일 보자는 말을 하기 어려웠다.
“날 때려도 좋으니, 좀 도와주게. 납 용기가 영…….”
“제가 어르신을 왜 때립니까.”
“아니, 자네가 석삼이 녀석을 때렸다길래.”
“누가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를……?!”
“강영이가 그러던데? 오던 길에 본 석삼이 녀석도 시무룩하고 있고.”
“…….”
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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