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2)
몽주는 도서관 내 일반 자료실 중 경영 관련 서가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서가에 꼽혀 있는 어느 책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 이거 반갑다기보다 당황스러운데…….’
머릿속에서 흘러간 가요의 한 구절이 재생되었다.
‘왜 이제야 나타난 거야, 그렇게 찾아 헤맬 때는 안 보이더니.’
그러고 보니 이 노래도 6년 전에야 처음 들은 노래였다. 물론 그를 제외한 한국인들 중 젊은 층은 대부분 알고 있었다.
그렇게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겉으로 드러난 몽주의 모습은 심각했다. 떨리는 손길로 서가에서 그 오래된 책, 천몽을 뽑아 들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이지, 노래 가사처럼 그렇게 찾아 헤맬 때는 안 보였던 천몽.
세상이 바뀐 걸 알고, 다시 바꿀 기회를 얻기 위해, 온갖 도서관과 고서점이나 중고 서적상, 심지어 인사동의 골동품 가게들까지 돌아다니며 천몽을 찾았었다.
그래도 찾지 못하고, 결국 그 자신이 바뀐 세상에 적응했는데,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때에 천몽이 눈앞에 등장한 것이다.
손에 쥐어진 천몽. 찾아 헤맬 때는 발견하면 즉시 펼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손에 쥐어지자 선뜻 펼칠 수가 없었다.
그간 나이를 먹고, 나름대로 시련 아닌 시련을 이겨 내면서 철이 든 덕에 천몽을 통해 다시 꿈을 꾼다고 해도 세상이 더 좋게 바뀔 것이라고, 그의 집안 사정이 더 좋아질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다시 그 꿈속에서 부족장이 되어 한반도로 내려오지 않고, 초원에서 초원의 법도를 따라 그저 그렇게 살다가 끝난다고 해서 세상이 본래 그가 알고 있었던 역사로 돌아갈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 누구도 모른다.
사실 그간 자신이 역사를 엉망으로 바꾸었다며 후회하고 자책했지만, 어떻게 바꾸었는지는 모른다.
자신 때문에 신라가 생겼다고 추정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키운 세력이 신라인지는 모른다.
후에 따져 보았을 때, 그가 부족을 이끌고 한반도로 내려온 건 한반도가 아직 청동기를 쓰던 기원전 수 세기 전이었으니, 신라의 건국 시기와는 꽤나 시간 차이가 있었다.
똑같이 부족을 이끌고 내려온다고 해도 또 신라가 생길지, 생기더라도 그 신라가 한반도를 통일할지, 통일하더라도 그 후의 역사가 지금과 같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초원에서 노닥거리기만 해도, 한국의 역사나 세계의 역사가 어떻게 변할지는 예상할 수 없다.
원래의 역사와 똑같거나 비슷하게 변할 수도 있겠지만, 전혀 엉뚱한 역사가 펼쳐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룰렛을 한번 돌려 봐야겠지.”
몽주는 천몽을 말아 움켜쥐며 중얼거렸다. 군대에서 절실히 느낀 바가 있었다.
그로 인해 바뀐 역사의 단편들 중 최악을 뽑자면 6.25를 포함한 남북 분단이라는 것을.
전쟁 가능성이 높아진 건 물론, 분단 자체가 이 사회의 역량을 너무 많이 잡아먹고 있지 않은가.
비단 징병제로 군대 생활에 들인 시간이 아깝다는 말만은 아니었다.
어차피 원래 역사에서도 형태는 다르지만, 한국의 군사제도는 기본적으로 징병제였기 때문이다.
하나, 지금과는 달랐다.
좁고 긴 분단선을 사이에 두고 양측 군대가 밀집되어 있는, 그리고 그 밀집된 곳에 끓어오르는 스트레스가 온갖 사고로 이어지는…….
어디 군대만 그럴까. 남한 사회 자체가 북한의 존재 덕에 그만큼 경직되어 있지 않은가.
당연히 경제에도 커다란 짐이고, 외교적으로도 마이너스가 된다.
그런 부담들이 결국 현재 남한에 사는 국민들, 특히 젊은이들을 한층 힘들게 하고 있었다.
“자식…….”
몽주는 역사를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얻었음에도 집안 사정의 변화에 대한 기대보다 한반도의 분단을 먼저 생각한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고 조금 놀라면서 몸을 돌렸다.
그는 천몽을 펼칠 것이다. 그 빛을 받고 다시 꿈속 삶을 시작할 것이다.
다만, 빛을 받으며 기절하고, 여기서 기절하면 도서관 서가 앞에서 널브러질 테니 그걸 피하기 위해서라도 아까 도서관으로 오면서 본 간의 의자에 앉아서 천몽을 펼칠 생각으로 일단 움직인 것이다.
한데,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은근히 흥분했던 걸까. 뒤쪽 서가가 가까이 붙어 있음을 생각지 못하고 급하게 몸을 돌린 덕에 그는 서가에 왼쪽 어깨를 부딪쳤고, 일순 중심을 잃었다.
“헛! 어라…….”
비틀거리다가 겨우 균형을 잡았지만, 그는 손에 말려 있던 천몽이 손을 벗어나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몽주의 시야에 마치 슬로우 비디오처럼 천천히, 책등부터 바닥에 닿은 천몽이 반으로 쪼개지듯 펼쳐지는 게 명확하게 들어왔다.
그의 시선은 정확하게 펼쳐진 천몽을 향해 있었다.
화악!
빛이 터져 나왔다. 기대대로, 예상대로였기에 다행이다 싶긴 했다만.
털썩…….
* * *
“뭐,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니?”
어머니의 물음에 몽주는 고개를 흔들면서도 웃어 보였다.
“그래. 웃으니 보기 좋네. 엄마는 피곤해서 먼저 잘게. 너도 너무 늦게까지 공부하진 말고 충분히 자.”
“알았어요. 주무세요.”
어머니는 안방으로 들어가셨고, 열리고 닫히는 문틈으로 아버지가 이미 이부자리에 누워 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밤 11시 40분.
두 분은 장사를 마치고 집에 오시면 언제나 피곤에 지쳐 있으셨고, 곧장 주무셔야 했다.
동네 치킨 집.
하나 아침에도 일찍 문을 열고 출근길 직장인들을 상대로 김밥이나 샌드위치 같은 걸 팔아야 하기에 정말이지 부모님은 잠만 집에서 잘 뿐 가게에서 살고 있는 셈이었다.
그렇게 피곤하게 살아가시는데도 정작 매출은 떨어지고 있다고 늘 걱정하시면서 말이다.
“한번 잘해 볼게요.”
몽주는 닫힌 안방의 문을 향해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새롭게 시작하는 꿈의 결과가 드러나는 건 몇 년 후에나 있겠지만,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떨지는 그도 모르지만, 어떻게든…….
“적어도 지금보다는 낫겠죠.”
평양의 부잣집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조금 더 여유로운 삶을 가진 부모님을 바랄 뿐이었다.
몽주는 불을 끄고 그의 방에 펼쳐 놓은 이부자리에 누웠다.
작은 임대 아파트의 작은 방, 그나마 독자라서 다행이지. 여동생이나 누나라도 있었다면 자기 방도 없을 뻔했다.
11시 57분.
12시쯤 되면 그는 잠에 빠질 것이고, 꿈을 꿀 것이다. 예전에 그랬으니까.
꿈을 꾸던 그 시절엔 피로와 상관없이 12시만 되면 미칠 듯이 잠이 쏟아졌었다. 마치 서둘러 꿈속의 인생으로 가라고 재촉이라도 하는 듯.
정작 잠을 깨는 건 대중없었으니, 수면 시간 자체는 별 상관이 없었던 것 같긴 한데…….
‘몇 시지?’
몽주는 어둠 속에서 베개 옆에 놓인 핸드폰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무래도 12시가 지난 듯했기에 정확한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툭.
하나, 그의 손은 핸드폰 위에 놓일 뿐 그걸 집어 들진 못했다.
어느새 몽주의 눈은 감겨 있었고, 고른 숨결이 작은 방에 흐르기 시작했다.
* * *
“아이고, 우리 아들! 살았구나, 살았어! 네가 죽으면 나도 따라 죽으려 했단다! 흐흑, 부처님, 감사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
떠들썩한 호들갑.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였다. 그러니까 새롭게 시작한 꿈속에서의 아버지 말이다.
정작 어머니로 추정되는 여성은 누워 있는 그의 발치에 침착하게 앉아 계셨고, 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옅은 미소와 함께 가볍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지끈!
문득 가벼운 두통이 머리를 스쳤다. 이맛살이 잠시 찌푸려졌다.
“왜 그러느냐?! 어디가 아픈 게냐?!”
놀란 아버지가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몽주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이제야 말이 나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제대로 알아듣는 것이 가능해진 것도 두통이 스친 뒤부터였다.
“정말 괜찮은 게야?”
“네.”
“그래, 내 새끼. 너를 먼저 보내는 줄 알고 얼마나 애가 탔는지 아느냐. 흐흑.”
다시 그를 끌어안고 훌쩍이는, 지금 처음 본 아버지의 등을 몽주가 오히려 토닥여 주었다.
이미 새로운 육신과 ‘동기화’가 완료되었다. 조금 전 가벼운 두통은 동기화가 완료되었다는 신호나 마찬가지였다.
예전에 부족장의 장남으로 시작할 때도 그랬다.
죽을 것처럼 아픈 상태의 누군가로 정신을 차렸고,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다가, 가벼운 두통을 겪은 후 상황 파악이 되는 것이다.
아마도 원래 육신이 가지고 있던 정보를 획득하는 통과 의례 내지 성장통 같은 것이리라.
물론, 이건 중학생이었던 시절에 깨달은 건 아니고, 후에 후회와 죄책감 속에 수없이 꿈속 삶을 되새기다가 깨달은 것이었다.
그런데 새로운 아버지의 말을 들으니 적어도 예전 꿈속처럼 아주 오래전은 아닌 것 같았다.
동기화가 되기 전에도 아버지가 하는 말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현대 한국어와는 많이 달랐지만, 그래도 한국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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