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20)
“……!”
이미 놀란 표정에 놀라움이 한 꺼풀 더 드리워졌다.
“설마 그 청자연적의 주인이라는 건가요?”
“네. 정확히 말하면 주인이었죠.”
“……벌써 파신 건가요?”
“빼앗겼죠.”
“네?”
“공태수라는 자에게. 아니, 그 자가 부리는 자들에게.”
“아……!”
방 실장은 공태수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상황 판단이 끝난 듯했다.
‘역시 그 이름을 아는 건가.’
협회의 감정위원들, 혹은 그들 중 하나와 연을 이어 두고, 곧바로 연락을 받을 정도라면 고미술이나 골동품 쪽에서 꽤 큰손일 거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이 회사에서도 곧바로 알 만큼 대단하신 인물인 모양이었다.
몽주는 가방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무언가를 손아귀에 움켜쥐면서 말문을 열었다.
“당신들도 공태수에게 연락을 할 겁니까?”
말을 하며, 몽주는 가방 안에서 움켜쥔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건 장도리였다.
방 실장은 몽주가 손에 쥔 장도리를 보곤 흠칫하며 물었다.
“그걸 왜……?”
“당신들도 공태수라는 작자와 한통속이면 이것들을 다 박살 내려고.”
몽주는 앉아 있던 소파에서 일어나며 장도리를 치켜세웠다.
그때, 우당탕 소리와 함께 그 고객 응접실로 경호원으로 보이는 두어 명의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뛰어들어 왔다.
아마도 어딘가에 감시 카메라가 있었던 모양이다.
“멈춰욧!”
방 실장이 고함친 대상은 몽주가 아니라, 검은 양복들이었다.
그들은 아마도 가스총으로 짐작되는 총기를 꺼내 들어 몽주를 겨누다가 방 실장의 고함에 멈칫거렸다.
“별일 아니에요. 다들 나가세요.”
“저 사람은 지금 흉기를 들고 있습니다. 위험…….”
“별일 아니라고 했습니다.”
실장이라는 지위를 고스톱으로 따낸 건 아닌지, 방 실장이 두 번 말하자, 경호원들은 머뭇거리면서도 천천히 물러났다.
다시 몽주와 방 실장만이 응접실에 남았다.
“일단 그 망치를 내려놓으세요.”
“저는 아직 대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일단 저희와 공태수는 아무 관계가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리죠. 맹세할 수도 있어요.”
“맹세 따위로 쉽게 사람을 믿기엔 제가 요새 당한 게 많아서요.”
방 실장은 ‘그러면 나보고 어쩌라고!’라는 식의 짜증이 담긴 표정을 드러냈지만, 이내 긴 날숨과 함께 다시 말문을 열었다.
“공태수는 이 바닥에서 공공의 적입니다.”
“이 바닥이 무슨 바닥인데요?”
“무슨 바닥이긴요, 고미술품과 골동품 업계를 의미하죠.”
“근데 왜 공태수가 공공의 적이죠? 당신들은 고미술품과 골동품 팔아서 먹고 사는 거 아닌가요? 오히려 공태수가 중요한 고객일 것도 같은데?”
몽주의 말에 방 실장이 실소를 머금었다.
“공태수에게 당했다면서 몰라요? 그 인간이 물건을 제값 주고 살 것 같아요?”
“……그건 아니죠.”
제값까지 바라는 것도 아니고, 감정가만큼만 줬어도, 물론 때리지도 말았어야겠지만, 공태수라는 얼굴도 모르는 자를 향한 분노가 이처럼 크진 않았을 것이다.
“고미술이나 골동품 쪽에서 공태수에게 뒤통수 맞지 않은 곳은 거의 없을 거예요. 만약 없다고 해도 공태수의 끄나풀 같은 관계겠죠. 우리도 공태수 때문에 경매에 올릴 예정이었던 물건을 여럿 잃었어요.”
몽주는 살짝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렇게 나쁜 놈인데, 왜 대응을 안 하는 거죠? 방 실장이 말한 그 바닥에서 공동으로 대처할 수 있지 않나요?”
“어머, 정말 공태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물론 모른다.
오늘 처음, 아니 몇 시간 전에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뿐이었다.
“공태수는 포츈 캐피탈의 전 사장이자 대주주예요. 포츈 캐피탈 알죠?”
“TV 광고를 본 적은 있죠.”
그는 종편이나 케이블 채널에서 숱하게 본 그 회사의 광고를 떠올렸다.
여러 유명 연예인들을 내세운 대출 광고.
“공태수 별명이 현금왕이에요. 어지간한 재벌가보다 휘두를 수 있는 현금이 많아요. 게다가 전직 경찰 간부이기도 해서 정관계에 끈도 탄탄해요. 그런 인간을 상대로, 고만고만한 이 바닥의 업체들이 뭉친다한들 뭘 할 수 있겠어요?”
“그렇게 무서운 사람입니까?”
“네. 그러니까 당신이 당한 일 같은 걸 수없이 저지르고도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거죠.”
몽주는 그쯤에서 소파에 다시 앉으며 장도리도 내려놓았다.
그걸 본 방 실장이 실소를 머금었다.
“한 짓에 비하면 생각보다 빨리 믿는군요. 고작 공태수에 대한 설명을 조금 했을 뿐인데.”
“그 때문이 아니라, 이 회사의 대주주 중 하나가 크리스티라는 걸 믿는 겁니다.”
“허!”
방 실장은 기가 막힌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걸 알고 있고, 그것 때문에 믿을 거였으면 애초에 몽주가 장도리를 들 필요도 없었으니까.
“설마하니, 세계적인 경매 회사인 크리스티가 상당 지분을 소유한 이 회사가 공태수가 같은 모리배와 손을 잡진 않겠죠.”
“맞는 이야기긴 하지만, 제 입장에서는 허탈하군요.”
“어차피 서로 기분 좋아지려고 만나고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원래 그렇게 틱틱거리는 성격인가요?”
몽주는 피식 웃었다.
“한 고등학교 2학년까지는 건방지고 사나웠다가 그 후에 개과천선해서 착하게 살고 있었는데, 최근 힘 좀 있는 인간들에게 두 번이나 당하고 나니, 도로 원래 성격이 나오는 모양입니다.”
“두 번 당했다라…… 한 번은 공태수일 거고, 다른 건 뭐죠?”
“알 필요 없잖습니까.”
몽주의 단호한 거절에 방 실장은 살짝 무안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분위기를 일신하기 위해 화제를 전환했다.
“그렇죠. 그럼, 용건이나 해결하죠. 목갑 안을 보여 주세요.”
몽주의 손에 의해 목갑 덮개가 다시 열렸다.
그리고 그 이후엔, 이전까지의 모든 대화와 화제들이 잊혔다.
“맙소사, 대체 이것들이 어디서 난 거죠?”
이미 한 번 눈으로 훑었건만, 목갑 안의 물건을 유심히 관찰하던 방 실장은 더 이상 표정 관리를 포기하고 물은 질문이었다.
“조상님의 은덕이죠.”
“물려 내려왔다는 건가요?”
“그런 셈이죠.”
“설마 장물은 아니겠죠?”
그녀의 질문에 몽주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장난치나. 고려에서 직수입한 겁니다만.’
“제가 공태수에게 빼앗긴 청자연적을 더해서 이만큼의 고미술품들이 어디에서 도난당했다면, 그쪽 귀에도 들어가지 않았겠습니까.”
“그야 그렇지만…….”
몽주가 청자연적을 언급하자, 방 실장으로서도 더는 의심할 수 없었다.
이미 협회를 통해 진품 고려청자, 그것도 최고급 품질과 보관 상태를 가진 국보급 연적이 등장했다는 사실은 고미술품과 골동품을 취급하는 이들에게는 죄다 알려져 있었다.
몽주를 만나기 직전까지 방 실장도 한창 들떠서 그 청자연적과 그 주인의 정체에 대해 알아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당연히 그 청자연적이 어디서 나온 건지, 혹시 도난당한 사실은 없는지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아봤다.
도난 신고가 없음은 물론, 애초에 그와 같은 물건을 누군가 소지했었다는 소문조차 없었다.
“확실히 그런 건 없죠.”
“그럼, 장물 걱정 따위는 던져 버리고,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죠. 몇 대 몇?”
그 질문은 당연히 경매가 성사되었을 때 얻은 금액을 한양 옥션과 몽주가 나누는 비율을 의미했다.
물론 이미 한양 옥션 홈페이지에 그 비율이 나와 있긴 했다.
“저희를 통해 경매한 내역이 없으시니, 삼 대 칠입니다. 물론, 저희가 삼이죠.”
“일 대 구.”
“네?”
“십 퍼센트만 가져가시라고요.”
“어머, 이봐요. 분할 비율은 저희 회사의 방침에 따라 정해지고, 수많은 경매 참가자들이 그에 따라왔어요. 그쪽이 가져온 물건이 상당히 매력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저희가 물러설 수는 없다고요. 이건 이제까지 우리 회사를 믿고 경매를 맡겨 주신 다른 고객분들을 생각해서라도 불가능해요.”
몽주는 그녀가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 신상 정보를 철저히 지켜 주신다면, 이 대 팔로 하죠.”
“그건! 당연하고요. 일 대 구나 이 대 팔이나 저희로서는 받아들일 수…….”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한양 옥션이 홍콩 경매에도 나선 적이 있더군요.”
“……?”
비율을 두고 옥신각신하던 중에 갑자기 홍콩 경매에 대해 몽주가 이야기를 꺼내자, 방 실장은 짜증스런 표정을 애써 감추며 말을 받았다.
“네, 했습니다. 크리스티 홍콩 지사와 연계해서 한 거죠. 다만, 고미술품이 아니라 일반 미술품을 대상으로 한 거였죠.”
“그 말은 중국 고미술품을 홍콩에서 경매할 수도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군요.”
“그야 하려면 얼마든……! 잠깐만요, 혹시……?!”
그제야 몽주가 홍콩 경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에 대한, 설마…… 하는 추측을 한 방 실장이 기대 어린 표정을 지었다.
“제가 다 가져온 건 아니거든요. 두 점은 두고 왔죠.”
“그런데요?”
“그 두 점이 아무래도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 같거든요. 송나라나 원나라 때?”
몽주가 두루뭉술하게 말하자, 방 실장이 기대했던 표정을 지우며 허탈하게 말했다.
“중국 고미술품이라는 건 둘째치고 송이나 원의 것이라는 걸 어떻게 알죠? 그런 건 전문 감정위원이 해야 알 수…….”
“같이 있었거든요.”
“네?”
“목갑 안에 같이 들어 있었다고요.”
“아니, 그렇다고 해도 꼭…….”
말을 하던 방 실장은 이내 입술을 닫았다.
“아시겠지만, 이 물건들 전부 연대가 비슷하죠.”
몽주야 직접 알아보고 넣은 것이기에 은행 개인 금고 안에 넣어 둔 두 물건들에 대해 확신하고 있지만, 그걸 말할 순 없기에 일부러 돌려서 말했다.
“이 물건들 전부 고려 시대의 것이라는 건 알아요. 대부분 중후기의 것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말씀하시는 그 중국 고미술품까지도 그 시대의 것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방 실장은 애써 가능한 반박을 하였지만, 목소리의 톤은 반쯤 줄어들어 있었다.
몽주가 말하는 그 중국 고미술품이 실제 당대의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일 가능성이 만의 하나라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거야 나중에 확인하면 되겠죠. 그래서 말인데…… 이 대 팔로 하죠. 대신 만약 제가 가져온 물건들 중 송이나, 원대의 것이 없다면 삼 대 칠로 하고요. 물론 이 물건들부터 경매에 내놓은 후에 확인하는 걸로요.”
“…….”
방 실장이 몽주를 피해 시선을 돌리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엔 단 하나, 만약 정말 송이나 원대의 고미술품이 있고, 그 품질과 보관 상태가 지금 본 고려의 것들에 준한다면, 정말 대박이라는 생각뿐이었다.
경제가 발전하고, 거대 자본들이 많은 나라일수록 그 나라의 미술품 역시 가치가 뛴다. 고미술품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그런 나라들 중에서도 중국처럼 외국에 나가 있는 자기네 고미술품을 환수하는 데에 열정을 보이는 정부가 있고, 그 정부에 잘 보이려 하는 큰손들이 있는 나라라면, 엄청난 돈을 지불해서라도 사들이려 했다.
가장 인기 있는 고미술품은 한나라와 당나라의 것이고, 중국의 국보들 중 많은 것들이 그 당시의 것이지만, 송이나 원의 것 역시 중국인들에게는 굉장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원이야 역사에 길이 남을 대제국이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송나라 특히 금나라에 밀려 내려가기 전인 북송 시절의 물건은 한이나 당의 것 못지않았다.
한족 중화 제국의 것이니까.
사실 당나라의 경우 황실은 북방 선비족 계통이긴 하지만, 지난한 오호 십육국 시절과 짧은 수나라 시대를 거치면서 한화(漢化)된 터라 보통 한족 중화 제국으로 이해되고 있었다.
지금 중국인들 모두를 한족이라고 박박 우기면서 한때 중원을 지배했던 이민족의 것까지 중화의 역사라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 속마음은 다르기에, 진정한 한족 중화 제국의 유물이 더 많은 선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방 실장은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고 결론은 간단히 났다.
“좋아요. 그렇게 하죠. 하나, 이 고려 고미술품들의 경매금은 말씀하신 송이나 원의 고미술품들을 확인한 후에 지급하도록 하겠어요.”
몽주는 고개를 끄덕이곤 손을 내밀었다. 경매 계약서를 가져오라고 시키기 위해, 그리고 전문 감정위원을 부르기 위해 수화기를 들던 방 실장도, 잠시 몽주의 손을 쳐다보다가 이내 맞잡았다.
“피차간에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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