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200)
“지지를 쳤죠.”
재상과 두신 앞에 쓰러지듯 소파에 기대어 앉아 있는 몽주가 허탈하게 말했다.
현대에서 깨기 전 열흘가량, 황산 제조에 몰두하였던 몽주에게 남은 건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현실뿐이었다.
고작 10일 정도 힘쓰고 포기한 건 이르다 할 수 있었지만, 당장 공소에서의 생산을 위한 도전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이 서기에는 충분했고, ‘실험실 생산’을 통해 제조 과정을 당대 상황에서 성공적으로 이룩한 후에 다시 도전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 있었다.
황과 염초를 섞어 가열하여 나오는 이산화황과 산화질소를 자연 반응시켜 삼산화황으로 만든 후, 그것을 물에 녹여 묽은 황산을 만든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단순히 납 용기, 정확히 말하면 연실(鉛室 : 납 방)을 만든다고 해서, 황과 염초가 있고 물을 뿌릴 수 있다고 해서 황산이 짜잔 하고 나오진 않았다.
세 번의 실험 결과로 얻은 건 산성화된 물에 불과했고, 정체 모를 이물질들도 상당히 포함되어 있었다.
이산화황과 산화질소를 반응시켜 삼산화황을 만든다는 건 결국 삼산화황과 서로 반응하지 않은 이산화황 및 산화질소가 혼재된 상태를 의미했고, 삼산화황만 녹은 물을 원한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황과 염초를 태우는 과정에 생기는 분진도 해결하기 어려웠다.
분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연실과 배소로(焙燒盧)로 황과 염초을 가열하는 공간을 나눠야 했고, 실제로 시도해 보았으나 집진 장치를 제대로 구현할 수 없는 당대의 기술 상황에서는 결국 분진이 섞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가장 큰 장애는 수율이 너무 낮다는 것이었다.
100리타를 얻어 물을 제거하면 고작 찻잔 반잔의 황산만이 나올 뿐이었고, 그마저도 순수한 황산이 아니었다.
수율이 낮을 것이라고는 어느 정도 예상한 바이긴 했다. 몽주가 황산 제조를 위해 현대에서 빌린 기술은 흔히 연실법이라고 하는 질산식 황산 제조법 중 하나인데, 그 과정은 몽주가 고려에서 시도한 것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배소로와 분진 장치가 있는 것은 물론, 연실도 서너 개에 글로버탑과 게이뤼삭탑이라는 또 다른 장치들도 붙어 있었고, 연실과 두 탑들이 냉각기, 펌프, 조작 탱크와 배풍기로 연결되어 수없이 순환함으로써 황산 수율을 높이게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효율이 떨어져 현대에서 사양화되고 있는 중인데, 고려에서 연실 하나로 이루어진 단순한 과정으로 흡족할 만한 황산의 제조를 기대한 건 과욕도 심한 과욕이었다.
납과 자기 외에도 여과에 사용할 수 있는 내산성 물질의 발명이 선행되어야 하고, 내연 기관이든 전기 모터든 유의미한 동력기도 있어야 할 것이며, 화학적 지식이 쌓여 정확한 혼합비를 알고 그에 맞춰 재료를 사출할 수도 있어야 했다.
어느 것이든 당장은 물론 한동안 고려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꼭 황산이 있어야 유리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두신의 위로 섞인 말은 분명 맞는 말이었다.
“아시잖아요. 황산을 만들면 질산을 만들 수 있고, 그 두 강산을 구현할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것을 할 수 있는지. 비단 유리 때문만이 아니었죠.”
“그건 그렇죠. 면화약도 그렇고…….”
황산은 현대에서도 가장 많이 생산되는 화학 물질로, 그만큼 많은 산업에서 필요로 하는 물질이었다.
실제로 한 나라의 산업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황산을 포함한 삼대 강산의 생산 및 소비량을 따지곤 하니, 삼대 강산의 소비량이 많으면 그만큼 산업이 호황이라는 의미였고, 반대면 불황이라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두신이 말한 면화약도 황산과 질산이 모두 쓰이는 경우 중 하나다.
면, 즉 셀룰로오스를 황산과 질산의 혼합물에 2분간 담가 놓고 찬물로 씻어서 말리면 그게 면화약인 니트로셀룰로오스다.
그렇게 만들어진 면화약은 몹시 불안하여 여러 처리를 통해 안정화시킴으로써 무연 화약으로 발전시켜야 하지만, 어쨌든 흑색 화약에서 다이너마이트를 뛰어넘어 무연 화약으로 곧바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임에는 틀림없었을 것이다.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으셨잖아요. 그렇게 쉽게 되면 몇 년 후에는 탱크 몰고 싸움터에 나갔겠죠.”
“…….”
재상이 피식 웃으며 말하는 게 좀 얄미웠다.
그것이 맞는 말이라는 건 비단 황산뿐만 아니라, 여러모로 경험한 바이긴 했지만, 그래도 얄미운 건 얄미운 거였다.
“네, 알죠. 그래도 한번 크게 한 걸음 내딛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거죠. 천천히 한다곤 하지만, 두 달에 한 번 현대를 경험하는 저로서는 사실 답답할 때가 없진 않으니까요.”
“베이비 스텝이 그 당시에는 큰 한 걸음입니다.”
이 또한 맞는 말이었다.
현대의 시선에서는 거의 정체된 거나 마찬가지인 세상에서 아기 발걸음만큼만 더 나아가도 무척 대단한 변화일 것이다.
두신이 미소 띤 온화한 얼굴로 가볍게 박수를 치며 말하였다.
“일단 유리에 대한 것부터 정리하죠. 황산을 통해 소다회를 만들어서 유리를 만드는 건 나중에 황산을 생산할 수 있게 되거나, 호주나 아메리카에 닿아 천연소다회를 구할 수 있게 되면 시도하기로 하고요. 어쨌거나 유리를 만들지 못할 건 없죠. 재료 확보에 더 신경 써야 하겠지만요. 음, 방법은 여러 가지지만, 아무래도 탄산칼륨을 이용하는 게 낫겠죠?”
두신의 물음에 몽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탄산칼륨을 이용한 유리 제작은 말 그대로 소다회 대신 탄산칼륨을 넣는 것으로, 탄산칼륨을 이용한 유리는 현대에서 보통 화학 실험용으로 쓰이고 있다.
물론, 발열 반응이 심한 화학 실험에는 내열 유리를 써야 하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탄산칼륨 유리로도 감당이 가능했다.
장차 여러 실험과 과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탄산칼륨 유리가 필수적이었으니, 이참에 만드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공정상 탄산칼륨을 이용한 유리는 소다회 유리보다 비쌌지만, 그건 현대의 경우이고, 고려의 상황에서 보자면 오히려 탄산칼륨 유리가 더 저렴할 것이다.
비누 제작 때 그랬듯 식물을 태워 탄산칼륨을 얻는 것에 비해, 황산 제조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엄청난 비용이 드는 것을 생각하면 황산 및 소다회를 이용한 유리보다 탄산칼륨을 이용한 유리가 훨씬 쌀 수밖에 없었다.
하나, 고려 시대이기에 탄산칼륨 유리의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탄산칼륨으로 소다회를 대체하면 유리의 투명성이 상당히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화학적 제조를 통해 만든 순수한 탄산칼륨이 아닌, 식물을 태워 구하는 것이라, 재가 섞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비누를 만들 때야, 반응 후 면포로 걸러 내고, 다시 물에 씻어 낼 수 있었지만, 유리는 그럴 수도 없으니 말이다.
때문에 탄산칼륨을 이용한 유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른 재료, 즉 모래가 더 중요해졌다.
“규소 함유량이 많은 석영 모래를 써야 하는데, 제가 알기로 제주에는 석영 모래가 드물어요. 애초에 화강암이 별로 없는 곳이니, 뭐…….”
석영 모래는 화강암 지질과 떼려야 뗄 수 없었는데, 풍화 작용으로 화강암이 부서지고, 그 안에 단단한 석영 성분이 남아 생기는 게 석영 모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세상 도처에 볼 수 있는 게 석영 모래고, 흔히 학교 운동장에 깔린 모래도 석영 모래였다.
한데, 현무암투성이인 탐라에서는 그 흔한 석영 모래가 되레 귀한 몸이었다.
“한반도의 강 하구에 널려 있긴 하지만, 그것도 질이 그리 좋진 않아요. 아, 진짜 계속 느끼는 거지만, 한반도는 정말 자원 복이 없는 곳이에요. 종류만 많으면 뭐하나요. 양이 적든 질이 떨어지든, 초기 산업화에 제대로 쓰일 만한 게 좀체 없으니! 물론, 석유도 없고! 으유!”
철광석은 품위 떨어지는 적철광이 대부분이고, 석탄은 코크스로 써먹지 못하는 무연탄과 갈탄이 대부분이다. 다른 자원들도 마찬가지고, 심지어 채광하기 어렵게 땅속 깊숙이 묻혀 있었다.
모래도 마찬가지였다.
한반도 강 하구의 석영 모래는 철분이 많이 섞여 있어, 유리로 만들면 투명도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순도가 높은 석영 모래를 구하려면 다른 대륙으로 가야죠. 가장 가까운 곳이 호주나 남태평양 지역쯤이겠네요. 그전에는 뭐 그냥 있는 걸 써야죠.”
“좀 고생스럽겠지만, 지남철로 모래 훑어서 철분을 덜어 내고 쓰시면 크게 나쁘진 않을 겁니다. 동해안 쪽에 규소를 생산하는 곳이 있다던데, 고려에서도 그쪽 모래를 얻어서 만들어 보시죠. 당장은 힘들어도 나중에 팔리는 걸 보면 노고가 싹 가실 겁니다.”
두신이 한 말마따나 투명도가 떨어지는 유리라도 판유리로 만들어 내기만 하면, 고려 당대에는 엄청난 기물일 것이다.
“그래도 아쉽죠. 단지 창문에 끼는 유리 말고, 유리 거울이나 렌즈까지 많이 생산할 걸 기대했는데…….”
만들려면 할 수 있겠지만, 엄청 고가일 것이다.
비싸게 팔아서 고가가 아니라, 제조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모된 탓에 정말 고가일 수밖에 없다.
몽주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 * *
현대에서의 소중한 시간을 아쉬움과 미련만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고려와 탐라, 나아가 당대의 세상을 현대의 시선으로 볼 수 있는 기회는 고려 시간으로 두 달, 현대에서는 일주일마다 있어도 아깝고 소중한 법이었다.
“그럼, 시마즈씨에 대한 대처는 보류하는 게 나을 것 같군요.”
“시마즈씨를 몰락시키고 규슈를 통일하는 건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지만, 당장 급한 건 아니니까요.”
“시간이 흐를수록 차이가 벌어지는 건 운명이기도 하고요.”
시마즈씨에 대한 생각은 세 사람이 일치했다.
약 스무 척의 배와 추측컨대 최대 1천에 달할 수도 있는 병력의 손실을 입었음에도 아무런 반응도 없는 시마즈씨에 대한 대책은 일단 미루는 것이었다.
시마즈씨가 강경한 자세로 나오면 조금 무리해서라도 이참에 시마즈씨를 몰락시키고 규슈 남부를 석권할까 생각도 했지만, 정작 시마즈씨가 조용하니 굳이 먼저 소란을 일으킬 필요가 없었다.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시죠. 후우, 저희들 입장에서는 시마즈씨와 전쟁하는 것보다 이게 더 큰 문제죠.”
두신이 실소하며 말한 것은 행정 조직 변화였다.
현재 탐라의 교리 체제는 급증하는 행정 수요와 넓어진 영역을 감당하기에 곤란하다는 건 이미 인지상정이었으니, 보다 정밀한 관료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었다.
하여, 재상과 두신이 그에 대해 연구했는데, 준비한 방안은 크게 두 가지였다.
“당장 비용과 인력을 아낄 수 있지만, 분권적인 체계가 되는 방법이 있고, 중앙집권적이지만, 당장 비용과 인력이 크게 필요한 방법이 있죠.”
“대충 무슨 말인지 알겠네요. 제 선택은 당연히 후자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 않았음에도 몽주는 곧바로 선택하였고, 두신이나 재상도 그럴 줄 알았다 내지, 그게 맞다는 양 고개를 끄덕였다.
비용과 인력은 덜하지만 분권적인 체계는 봉건 체계의 관료제적 변형으로, 한 가문에게 영지를 주듯 특정 지역을 관할하는 관직을 독점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 경우, 그 가문의 재산과 인력을 쓰게 할 수 있으니, 자연 몽주가 신경 쓸 필요가 줄지만, 그만큼 그 지역에 대한 통치권이 그 가문에 속하게 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 지금 대마도가 그 경우에 해당하는데, 현 대마도 부주가 부씨 일족으로, 탐라의 부씨들 중 적잖은 이들이 대마도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지배층을 이루고 있었다.
덕분에 대마도 고신 가문들의 기세가 줄어들고, 탐라 영역화가 가속되는 장점도 있었지만, 고려와 왜국 간의 무역을 중계하면서 얻는 부가 가치 중 적잖은 부분이 부씨 일족의 소유가 되었다.
지난 고려의 중란 후에 신돈이 탐라가 대마도를 점령한 것을 눈치채게 된 것도 그 부작용 중에 하나였다.
부씨 일족이 대마도를 다스리면서 많은 결정을 자체적으로 판단하여 실행하다 보니, 몽주가 모르는 사이에 대마도에서 과도한 활동으로 들통 날 여지를 만든 것이다.
대마도를 다스리면서 부씨 일족이 약간의 치부를 한 것은 그들이 목호와 항쟁하면서 크게 무너졌던 바가 있고, 그간 대마도를 무난히 다스린 공이 있어, 어느 정도 감안해 줄 수 있었지만, 통치의 권역에서 벗어나는 건 몽주로서는 절대 용인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구체적으로 범법한 건 없기에 당장은 경고만 했을 뿐이었지만, 몽주는 대마도가 부씨의 사유지가 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었다.
물론, 후에 먼 곳까지 진출하게 되면, 교통과 통신의 불편함 때문이라도 먼 곳의 영토에서는 자치적인 성격이 강해질 수밖에 없겠지만, 대마도나 몽주가 땅을 밟은 바 있는 곳들은 전혀 해당 사항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관료제를 세워야죠.”
결론은 간단했다.
현대인이라면 경직성이라든지 무사안일주의라는 단어들과 함께 곧잘 듣곤 했던 바로 그 관료제.
현대에서는 과감하게 탈피해야 하는 구닥다리 체계의 상징처럼 되어 버린 관료제였으나, 근대 시기에는 반대로 새 시대의 상징과도 같았다.
왕이나 종교 지도자 같은 초법적인 특권 계급으로부터 벗어나 법과 원칙에 의한 통치를 위한 체계였으니, 인문사회학의 거두 중 하나인 막스 베버가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조직의 형태’라 관료제를 평가한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탐라의 교리들도 관료들이라 할 수도 있고, 특히 업무의 범위가 규정된 재무교리, 공무교리 같은 이들은 관료제의 한 부분이라고 명시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탐라의 행정 체계가 관료제인 것은 아니었다.
업무의 범위가 애매모호한 교리들도 많았고, 그 권한도 천차만별이었다.
보고 계통도 무분별하고, 문서를 통한 절차도 생략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몽주가 기록을 중시하여 어지간한 일들은 다 기록, 보관되었지만, 사후에 그렇게 되는 것이 많았으니, 문제 해결 자체가 ‘결재’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었다.
몽주로부터 직접 하달받은 명과 관련된 일이라면 그 교리는 월권을 할 수도 있었고, 그것을 당연히 여기는 분위기이기도 했으며, 이것저것 담당하는 범무교리들은 전문성을 갖출 기회조차 없었다.
“관료제의 단점은 수도 없죠. 레드 테이프, 보수주의, 할거주의, 훈련된 무능, 복지부동, 형식주의, 파킨슨의 법칙, 과두제의 철칙, 피터의 원리 등등…….”
준비한 보고서를 줄줄이 읊던 재상은 그 보고서를 툭 내려놓았다.
“근데 이건 조직이라는 게 존재하는 한 대체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단점들일 겁니다. 이중에 없는 게 있다면 대신 다른 단점이 생길 거고요. 게다가 지금 탐라의 체제를 생각하면 아무리 맛없는 밥이라도 먹어야 하는 상황이지요. 사실 무정부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몽주 씨만 사라진다면요.”
재상의 신랄한 평가에 몽주는 피식 실소하였다.
무정부까지는 아니라고 강변하고 싶지만, 따지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몽주가 아니면 선택할 수 있는 이가 없었다.
괜히 무슨 일만 있으면 몽주를 찾아 배를 띄워 장계를 보내는 게 아니다.
교리들의 능력 부족이기 전에 체제가 없으니, 만약 교리들끼리 결정하게 한다면, 그들 간의 권력 싸움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고,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몽주를 찾아서 보고하고, 결정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
나름 지난 수년간 탐라의 행정 체계를 가꾸긴 했지만, 엄연히 몽주가 있음으로 해서 존재할 수 있고 굴러갈 수 있는 체계였던 것이다.
‘왕권’을 높인다는 측면에서는 그게 좋을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인 영달보다는 역사 변화에 초점을 맞춘 몽주의 인생에서는 좋을 게 없었다.
갈수록 커져 가는 영역을 생각하면 분명 보다 체계화된 조직이 필요했다.
몽주의 최종 ‘결재’가 필요하지만, 원칙에 따라 구분되는 영역에서는 각자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계층적 관리들을 부려야 했으니, 그 방안으로 관료제는 최선일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큰 문제는 인력이죠. 관리로 쓸 인력. 지금 탐라의 관리는 몇 명이나 되죠? 그간 몽주 씨가 전해 온 걸로 보면…… 솔직히 저희로서는 셈하기가 어렵더군요.”
“……한 120명쯤?”
얼버무려 답하고 나니, 몽주는 괜히 얼굴이 붉어졌다. 생각해 보면 참 주먹구구식으로 탐라를 경영했다 싶었던 것이다.
그가 관리의 수를 정확히 모르는 건 관리의 수가 많기 때문이 아니었다.
정확한 수는 몰라도, 관리라는 자들을 명백히 구별할 수 있었다면 대략적인 수를 말했어도 부끄럽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 탐라의 현재 상황에서 누가 관리이고 어디까지 관리라 할 수 있는지 선을 긋기가 애매했다.
일단 몽주가 명확하게 ‘너 관리’라고 확정한 건 교리들과 현령들뿐이었으니, 교리 18인과 현령 13인을 더한 31명만이 분명한 관리들이었다.
하나, 각 교리와 현령들에겐 수하들이 있고, 그들도 관리라 할 수 있었다.
사실 현령들을 관리라고 해야 하는지도 애매했다. 애초에 탐라의 현은 대촌현을 제외하면 모두 속현들이라 향리가 다스렸는데, 몽주는 백성들의 원성이 높은 일부 향리만 삭탈시키고, 대부분을 유임시킨 바 있었다.
“봉록을 기준으로 삼으면 될 겁니다. 나랏일을 하는 대가로 봉록을 받는 이들이 몇 명이나 됩니까? 군인을 제외하고요.”
“…….”
“음, 하하, 잘 모르시는 모양이군요. 아하하…….”
나름 몽주를 도와줄 마음으로 입을 열었던 두신이 괜한 걸 물었다는 듯 무안해하며 웃음으로 때웠지만, 몽주는 그만큼 더 창피해졌다.
분명 봉록을 지급하는 이들은 교리들 외에도 많이 있었다.
다만, 그것을 명시하진 않았고, 그저 재무교리 점녀에게 필요하다 하면 봐서 적당히 주라고 명했을 뿐이었다.
생각해 보면 점녀가 엉망으로 일을 했거나, 교리들이 착복하려고 작심했다면 몽주의 재산이자, 나라의 재정은 구멍 난 양동이에서 물 새듯 빠져나갔을 것이다.
“인격적 통치의 전형을 보는 듯하군요. 후후.”
재상이 한쪽 입가를 올려 웃으며 말했다가 얼른 지우며 덧붙였다.
“……비웃는 건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세력의 초창기는 다 그런 법이니까요.”
“네에.”
인격적 통치에서 인격이란 사람의 품격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인정과 관계에 의지한다는 의미였다.
인정이 통하고, 관계가 있는 만큼 뛰어난 사람이 일을 맡는다면 더 열심히 잘할 수 있겠지만, 그만큼 나쁜 쪽으로도 열심히 잘할 가능성이 컸다.
그에 비해 관료제가 대표하는 비인격적인 통치는 인간관계가 아닌 문서 보고와 명백하게 한정된 권한에 의한 통치를 의미하였으니, 더 잘할 수 있는 관리의 활약을 억제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월권이나 부패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기도 했다.
몽주의 ‘실수’가 드러나면서, 분위기가 다소 저하되자, 두신이 다시 가볍게 박수를 치며 화제를 돌렸다.
“어쨌든 체제를 정돈할 필요성은 분명해졌네요. 그리고 몽주 씨가 바라는 형태라면 관료제가 최선의 방법일 거고요. 관료제야 근현대에서 착안할 거리가 많으니 큰 문제는 아닌데, 제 개인적으로는 몽주 씨가 공국의 왕으로서 관료제 밖의 조직을 따로 거느리는 게 좋다고 봅니다.”
“관료제 밖의 조직이요?”
“굳이 가까운 예를 들자면, 조선 시대의 어사 같은 거라고나 할까요. 물론 암행어사처럼 부정기적이고, 비조직된 걸 말하는 건 아니고요. 그저 정부 조직과 구분되는 조직, 오로지 몽주 씨에게만 충성하고, 몽주 씨의 명을 받드는 조직을 따로 가지시라는 말이죠.”
교통과 통신의 불편은 관료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어, 관료제의 단점이 더 부각될 가능성이 컸고, 이는 역사에서도 분명히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두신은 그런 부분을 감시하고, 감사(監査)할 수 있도록 초월적인 권한을 유지하고, 이용하라는 말이었다.
몽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관료제라곤 하지만, 현대의 한국이나 다른 여러 나라가 그러하듯 헌법과 제도화된 법체계 아래에만 존재하는 관료제는, 몽주가 일종의 왕으로서 공국을 다스리는 당대의 상황에서는 마냥 적합하진 않을 것이다.
분명 생각해 볼일이었다.
얼핏 명나라의 동창(東廠)이 가졌던 결함이 머리에 스치기도 했지만, 공국의 왕이자 독재자로서 앞으로도 탐라를 주도해야 할 몽주의 입장에선 그저 관료제만 믿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관료제는 홀로 살아 움직여, 최상위 권력자도 어찌할 수 없는 괴물로 변할 가능성을 내포했다는 건 아주 잘 알려져 있으니까.
탐라에서 세울 관료제에 대해 이런저런 논의를 이어 가며 정리하니, 다시 가장 처음 언급된 애로 사항이 언급되었다.
“무엇보다 관리의 수가 크게 늘어야 할 겁니다. 재정이야 여유가 있을 것 같은데, 인력 수급 자체가 문제겠죠. 물론, 아무나 뽑지 않을 거라는 걸 전제로 둔 말입니다.”
재상이 사람은 있어서 체제의 변화를 꿈꾸느냐는 속뜻의 물음을 던지자, 몽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 1, 2백 명은 충당 가능할 것 같군요.”
“혹시……?”
“네, 고학교가 개교한 지 거의 2년이 되었죠. 슬슬 인턴으로 써 볼 만하지 않을까요.”
몽주는 기대에 찬 표정으로 말하였다.
* * *
가죽공이 공중에 떠오르니, 수백의 눈동자들이 그 공을 따라 움직였다.
“가동이, 날래게 차!”
“세게 때려 버려!”
“막아!”
고학교 운동장 위의 선수들이나, 주변에서 구경하는 이들이나 저마다 응원하는 쪽을 향해 고함을 쳤다.
그 소란의 중심에서 한 선수가 거의 매달리듯 붙잡고 늘어지는 상대 선수를 뿌리치며 공중에서 떨어지는 공을 오른발로 강하게 때렸다.
“뻥!”
둔탁한 소리와 함께 공이 날아가니, 그 사이쯤에 있던 상대 선수가 공에 손이 닿지 않게 뒷짐을 진 채 힘껏 몸을 날렸지만, 공은 그의 몸이 닿지 않은 공간을 스쳐 지나갔다.
가로 3미, 세로 2미로 세워 둔 사각대 안으로 공이 들어가자, 심판이 크게 호령하여 득점을 알렸다.
“득점이오!”
“와! 역시 가동이가 최고라니까!”
“아우, 저 멍청이들! 후려쳐서라도 가동이를 막아야지, 또 점수를 주냐!”
실의한 선수들 사이로 득점한 가동이라는 선수가 양손을 들어 환호하였고, 같은 편인 선수들이 몰려와 그를 끌어안으며 좋아라 하였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물시계를 들여다보고 있던 부심판이 경기가 끝났음을 알렸다.
“홍로 고학교 청단이 예래 기술학교 홍단에게 삼 대 영으로 승리하였소!”
시끌벅적한 중에 심판이 승부를 선언하자, 청단 선수들은 더욱 환호하였고, 관중들은 박수로 그들을 칭찬해 주었다.
“역시 저 가동이란 놈은 축구를 위해 태어난 놈이라니까.”
“그러게 말이여. 달리 물 찬 제비 소릴 듣는 게 아니지.”
관중들 속에서 흘러나온 말이었으니, 모두 가동이를 크게 칭찬하는 것이었다.
오늘 경기에서 나온 삼 점 중 이 점을 그가 얻었고, 그 득점 자체도 보기만 해도 시원할 만큼 멋진 것이었다.
왜인답게 체구는 작았지만, 그만큼 날래 상대 선수들 사이로 재빠르게 움직여 공을 차니, 그를 막는 이가 잠깐만 시야에서 놓쳐도 득점을 시도하여 물 찬 제비와 같다는 평을 받았다.
“오늘도 재밌었어. 다음 경기는 언제 있지?”
“글쎄, 다음 순보를 봐야 알겠지. 나는 만날 했으면 좋겠구먼.”
아직 정기적인 ‘리그’가 없이, 축구단끼리 도전 및 호응하여 경기를 하는 터였다.
축구라는 놀이가 퍼지기 시작한 지 채 1년도 안 되었지만, 탐라 백성들 사이에서는 축구를 하고, 관람하는 것을 즐기는 이들이 근자에 부쩍 늘었다.
돼지 오줌보나 끈 묶음 따위를 발로 차고 노는 거야 세상에 없는 곳이 없었지만, 규칙을 정해 득점으로 승패를 겨루는 축구라는 놀이는 최근에 생긴 것이었다.
“국공 저하께서는 별걸 다 만드신다니까.”
“그러게 말이여, 참으로 하늘이 내리신 분이야.”
사실 몽주가 들으면 민망할 말이었다. 그가 의도적으로 축구를 보급한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제철 관련해서 공소 방문이 잦았을 무렵, 시험 생산을 기다리던 중에 무료했던 몽주가 공소의 직원들과 어울려 축국(蹴鞠)을 하다가 영 적응하기 어려워, 축구를 알려 주었다.
축국은 ‘세팍타크로’와 비슷한 형태로 공을 떨어뜨리지 않고 차서 주고받는 놀이였는데, 현대의 공과 달리 탄력이 별로 없는 무거운 가죽 뭉치 공으로 하려니, ‘나약한’ 몽주에겐 너무 어려웠던 것이다.
하여, 그나마 땅에서 공을 굴릴 수 있는 축구를 알려 주었고, 별 호응이 없었던 이들을 강제로 이끌었다.
그때 한 축구는 현대 축구와 달리, 공간도 좁았고, 골대도 작아서 차라리 ‘풋살’과 비슷했지만, 어쨌든 축국보다는 몽주가 즐길 수 있었다.
‘절대’ 한 식경 만에 혼자 12골을 넣어서 그런 건 아니었을 것이다.
워낙 바쁜 몽주인지라 그 후로 축구를 할 겨를이 없었지만, 일단 축구를 알게 된 공소 직원들 사이로 그 놀이가 전파되었다.
그러던 중에 축구가 크게 흥하게 된 계기가 있었으니, 고학교에서 따로 학생들끼리 축구를 하는 시간을 만든 덕분이었다.
이는 학생들이 왜인들과 고려인들로 나뉘어 서로 통하지 않는 걸 본 고학교 교사들이 그들을 한데 뭉치기 위한 방편으로 삼은 것이었다.
왜인과 고려인을 구분하지 않고 한편으로 삼아 축구를 하게 했는데, 처음에는 상대편이 아닌 같은 편끼리 다투기도 했지만, 일단 몇 차례 승패가 나뉘기 시작하자 승부욕이 솟아 서로 합동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규칙이나 반칙이 명확하지 않은 탓에 거친 행동이 난무하자, 자연스레 공동의 적이 생겼고, 그만큼 더 뭉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축구를 권한 교사들이 오히려 걱정할 정도로 분위기가 달아올랐지만, 이미 고학교 내에서 축구는 대세가 되었고, 주변의 기술학교에도 그 열기가 퍼져 이제는 각 학교들마다 축구단이 몇 개씩은 반드시 있을 정도였다.
그런 중에 고정 구성원을 가진 축구단을 만들어 경기를 하는 이들도 생겼는데, 경기 때 편을 확인하기 위해 양쪽 팔뚝에 차는 끈의 색상을 축구단의 이름에 더하여 내세웠다.
오늘 승리한 홍로 고학교 청단(靑團)은 가장 먼저 생긴 축구단 중 하나였다.
“가동이, 아까 좋았어!”
“뭘, 네가 잘 차서 보내 준 덕이지.”
구경꾼들이 떠난 시간, 운동장 한쪽에서 수건으로 땀을 닦고 쉬는 중에 같은 단의 선수로부터 칭찬을 받은 가동은 미소를 띠며 겸양하였다.
운동장에서와는 달리, 그는 조금 내성적이고 수줍음을 가진 청년이었다.
“다들 내일 보자.”
“잘들 쉬어. 아픈 데 있으면 의원한테 가보고.”
오후 늦게 시작한 축구 경기였기에 청단 선수들은 서둘러 귀가하였다.
탐라 백성인 학생들은 각자의 자택으로, 왜인들도 몇 명씩 배정되어 함께 살고 있는 집으로 떠난 중에 가동만이 홀로 학교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조금 무서울 정도로 어둑해진 곳에서 가동이 홀로 남은 것은 그가 가진 고민 때문이었다.
“말을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그 중얼거림에 담긴 고민은 같이 기숙하는 다른 왜인 도학생들 때문이었다.
정사년(丁巳年 : 1377년) 삼 월, 도학생들이 탐라에 온 지도 근 2년에 이르렀다.
처음의 서먹하다 못해 적대적이었던 분위기는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탐라 학생들 중에 왜인들을 경시하거나 미워하는 이들이 있었고, 반대로 왜인들 중에도 자기들끼리 뭉쳐 다니며 탐라 학생들과 어울리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가동이 함께 사는 다른 3인의 도학생들도 고려인들과 그렇게 어울리지 않는 이들이었다.
그래서 고려인들과 자주 어울리는 가동이 집에 들어가면 그들로부터 배타를 받을 지경이었다.
하나, 단지 그것뿐이라면 가동이 이렇게 고민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탐라공이 너희 또한 탐라 조정에서 견습하게 한다 하니, 이는 무척 좋은 기회일 것이다. 하여, 너희들 중 한 명이라도 군기를 다루는 곳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어렵겠지만, 운이 닿으면 화포의 비밀도 엿볼 수 있을 터. 그렇게 된다면 가급적 빨리 내게 그것을 전해야 한다.
가동의 머릿속에 집에서 우연히 본 서찰의 내용이 지나갔다.
같이 사는 도학생들이 화국의 누군가와 은밀히 통하는 게 분명했다.
그 서찰의 상대방이 누군진 알 길이 없지만, 그 내용이 의미하는 것은 분명했다.
“후우.”
가동이.
왜어로 가토 히로유키이자, 고려식으로 가등 전지(加藤 博之)인 청년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도학생들의 세작 행위를 고할 것인가, 말 것인가.
무엇이 옳은 것인지, 아직은 가늠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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