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202)
* * *
분고국 해안에서 100리는 족히 들어간 내륙에 오카 성이 있었으니, 분고국을 다스리는 오토모씨의 주성이었다.
쇼니씨의 정란 때 잠시 치쿠고국(축후국)을 노렸던 이래로 두문불출한 오토모씨는 그간 당대 정세와 연을 끊은 듯했다.
하나, 그날은 다른 때와는 달랐으니, 세토내해로 뻗은 오이타 강을 통해 속속들이 도착한 배에서 여러 귀한 자들이 가마를 타고 오카 성(岡城)으로 모여들었다.
모여든 자들의 면면을 아는 자들이라면, 그 모임에 절로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왜국 서국 주고쿠 및 시코쿠 지방을 다스리는 7개 가문, 11명의 슈고와 슈고다이묘들이 직접, 혹은 대리인을 통해 오카 성에 입성하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오카 성에서 그들을 맞이한 이는 오토모씨의 가독 사다토모 외에 시마즈씨의 가독 모리히사도 있었으니, 누가 봐도 흥미진진(?)한 모임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나 서국 최대의 슈고다이묘라 할 수 있는 오우치씨도 가까운 일족을 대리인으로 보내 참석했으니, 지난 쇼니씨의 정란 때 오우치씨가 현 탐라공과 손을 잡은 탓에 오토모씨와 시마즈씨의 야망이 실패로 돌아간 것을 생각하면 더욱 의미심장했다.
외부인의 주의를 피할 수 있는, 가파르기 그지없는 산 위에 자리한 오카 성, 그리고 그곳으로 모여드는 서국의 유력자들과 그 대리인들.
그것만으로도 절로 관심이 가지는 그 모임에 화룡정점을 더할 인물도 모였으니, 막부의 관령마저도 관리를 보낸 것이었다.
“관령께서 당부하시길, 큰 소란은 없어야 한다 하셨습니다.”
관령을 대리한 관리의 말은 간단했지만, 그 파급은 충분했다.
모여든 자들 사이에 웅성거림이 있는 중에 시마즈 모로히사는 입가에 미소를 띠니, 관령 또한 오늘의 모임이 결정할 바에 반대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구도 큰 소란이 일기를 바라지 않을 테지요. 그렇기에 조심하는 것이고요.”
주인인 오토모씨를 대신하여 말문을 연 모로히사의 말에 오카 성에 모인 이들이 주목하였다.
오늘 모인 곳은 오토모씨의 성이지만, 모임 자체는 시마즈씨의 가독인 모로히사의 주도하에 성사된 것이었다.
“여기 모이신 분들은 모두 서규슈로 인해 피해를 입고 동시에 이득을 얻으신 분들입니다. 하여, 이득은 취하면서도 피해를 입은 것에 대해서는 앙갚음하고 싶거나, 그 피해만큼 무어라도 얻길 바라는 마음이실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당연한 말이었다.
오카 성의 주인인 오토모씨는 치고쿠국(축후국)을 빼앗겼고, 시마즈씨는 히고국(비후국)을 잃은 데 더해, 영역화하던 아마미 섬마저 빼앗기고, 그 와중에 사이 좋진 않았지만 어쨌든 동생인 우지히사와 시마즈씨의 군병 800인을 잃었다.
서국의 슈고와 슈고다이묘들은 천한 백성들이 서규슈로 탈주하는 터라 골치아픈 중에 여러 호족들마저 서규슈로 도주하는 바람에 피해를 입은 데다 그들의 나라에 속한 상인들이 그들보다 서규슈를 추종하는 경향마저 있어 몹시 불만이었다.
그리고 막부는, 겉으로는 탐라공을 스승으로 모신 대장군 때문에 드러내고 있지는 않지는 않지만, 내심 탐라의 서규슈 지배가 공고화될 것을 몹시 우려하고 있었다.
특히 지난 명국행을 통해 명국의 황제가 서규슈를 화국이 아닌 탐라에 속한 것인 양 교역을 허락하여 더욱 불안해진 상태였다.
물론, 규슈의 오토모씨와 시마즈씨는 결국 세력 다툼 중에 패배한 것이고, 서국의 유력가들은 서규슈 덕에 큰 이문을 얻고 있으며, 막부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들이 그것까지 생각해 줄 리가 없었다.
“이대로 서규슈가 커지고, 단단해지는 것을 허락한다면 규슈 전체가 탐라공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것은 여반장이고, 나아가 서국 전체가 탐라공의 입김에도 벌벌 떨어야 할 것입니다.”
모로히사는 잠시 말을 멈추고 빈객들을 둘러보았다.
사실 이 자리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는 다들 대략 알고 있었으니, 그들을 오카 성에 초청하기 위해서라도 대략적인 계획을 미리 알려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계획에 찬동하는 분위기가 있었기에 이렇게 모여든 것일 터였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군을 일으켜 서규슈로 몰려가고 싶지만, 서규슈의 뒤에 있는 탐라공이 두려운 건 사실입니다. 하나, 다행히도 근자에 막부에서 제대로 된 화포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하니, 조만간 탐라의 위력도 마냥 두렵지마는 않을 것입니다.”
막부가 화포를 생산한다는 게 슈고들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꺼릴 만한 일이었지만, 이미 생산을 시작한 것을 막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오히려 막부에 잘 보여야 할 필요가 있었다.
관령이 파견한 관리가 고개를 크게 끄덕여 화포 생산을 시작한 것에 자부심을 보이자, 모로히사가 다시 말하였다.
“규슈가 오랫동안 막부를 따르지 않았으나, 존경해 마지않던 전 규슈탄다이 이마가와 사다요(료슌)을 따라 우리 가문도 막부를 따를 것을 마음먹은 바 있었습니다. 하나, 그때 하필 탐라의 무도한 자가 규슈에 개입하여 상황이 뒤틀렸지요. 다행히 오늘에 이르러 막부와 서국의 모든 이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서규슈와 탐라를 경계해야 함에 중지를 모았습니다. 시마즈씨의 가독으로서 저는 막부가 서규슈와 탐라의 폭도를 좌시하지 않는다면, 이제라도 막부에 충성할 것을 맹세하며, 여기 모이신 모든 분들께 이미 전해 드린 계획에 동참해 주실 것을 정중히 요청하는 바입니다.”
모로히사가 시마즈씨의 각오를 피력하며 분위기를 띄우니, 문득 오우치씨의 대리인이 손을 들어 발언을 요청하였다.
그에 모로히사가 발언을 허락하니, 그가 주변의 슈고와 슈고다이묘들에게 여러 번 고개 숙여 인사를 한 후 말문을 열었다.
“우리 가독께서는 오직 하나를 걱정하실 따름이시니, 모두 같은 걱정이 있으실 것입니다. 모든 일은 길면 결국 꼬리가 밟히는 법. 이번 일이 길어져 저들이 알게 되면, 저들이 횡포를 부릴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어찌 대처하실 것입니까.”
“그 점은 걱정 마시오. 탄로 나지 않도록 유의할 것은 물론, 설령 탄로 난다 하더라도, 가장 위급한 것은 서규슈와 닿아 있는 오토모씨와 우리 시마즈씨일 것이오. 일이 나빠지더라도 우리가 먼저 고난을 겪을 것이니, 다른 분들은 달리 대처할 여유가 있을 것이오.”
모로히사는 자신의 각오를 다시 피력하였으니, 그만큼 서규슈와 탐라에 대한 원한이 가득한 것이었다.
“설마하니, 아무리 탐라공이라고 해도 서국 모두와 싸우길 바라지는 않겠지요.”
입가에 웃음을 흘리며 말하는 모로히사의 표정에 냉랭한 중에 악이 스쳤다.
어차피 이대로라면 언제고 서규슈를 앞세운 탐라공의 위세에 무너지고 말 테니, 막부와 서국의 유력자들과 연합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을 각오였다.
* * *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탐라를 계승한 탐라공국은 고려국의 윤허하에 새로 건국하였으니, 나 탐라국공 석몽린은 나라와 백성에 대한 책임을 다할 것임을 하늘에 고한다. 이에, 공국을 다스리는 국공으로서, 탐라국 조정의 근간과 나라 경영의 대원칙을 밝히고, 조정을 따르는 백성의 권리와 의무를 명시하여 다음과 같이 훈유하니, 나를 포함한 탐라국의 모든 이들은 이것을 자세히 보고 명심하여 몸과 마음으로 익히라.
써 놓은 글을 보고 있으니, 몽주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스쳤다.
그것은 일종의 헌법 전문(前文)이었다.
나라의 성립을 공포하고, 그 대의와 목표를 간략하게 기술하는 것인데, 결론적으로 이것은 헌법 전문이라 할 수 없었다.
주권이 몽주에게 오롯이 주어진 이 나라의 대의와 목표는 결국 몽주 개인의 대의와 목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시대에 헌법의 존재를 기대하는 건 불가능하고, 몽주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 헌법의 존재가 이득인 것도 아니었다.
장차 탐라의 영역이 넓어지게 되면 여러 곳에서 예기치 못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고, 그런 일들에 몽주가 자유로이 대응하고자 한다면, 헌법과 같이 주권통치자마저도 제한하는 족쇄는 없는 게 나을 것이다.
하나, 헌법이 없으면, 법률도 없고, 정부도 없다.
헌법이 그 존재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헌법이 없는 중에 만든 법률은 임의의 규칙에 불과하고, 정부 또한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공국과 공국에서 파생된 정치 세력이 역사에 존재하는 한, 그 역사와 더불어, 함께 성장하고 변화하는 반영구적인 관료제를 키울 생각인 몽주로서는 자가당착적 상황에 빠진 셈이었다.
결국 몽주의 선택은 ‘애매모호함’이었다.
헌법은 아니지만, 헌법의 역할을 하는 훈유(訓諭)를 반포함으로써, 정부 조직의 근간을 마련하고, 그 훈유를 훗날 ‘유훈(遺訓)’으로서 역할하게 만들어, 후대의 통치자들이 따르게끔 한 것이다.
“최초의 헌법으로 역사에 기록될 리는 없겠군.”
전문 아래 헌법 총강 및 조항에 해당하는 부분, 대한민국 헌법을 예로 들자면,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으로 시작되는 부분을 훑어본 몽주는 자조적인 실소와 더불어 중얼거렸다.
국민의 주권과 기본권에 대한 언급이 불가능한 헌법의 내용이 충실할 가능성은 없었다.
그저 주권통치자인 국공의 배려와 방침에 불과한 것이다.
두 달에 한 번 현대를 경험하는 그이기에 더 절실한 시공의 차이를 느끼며 몽주는 가장 위에 몇 글자를 적었다.
공국경론(公國經論)
헌법은 결코 아니지만, 헌법의 역할을 애매모호하게나마 수행할 반포문의 이름이었다.
관료제를 도입함은 물론, 그 뿌리를 최대한 튼튼하게 만들기 위한 고난은 이미 시작되었다.
* * *
현대에서 많은 연구를 하고 ‘정부 조직’의 예시까지 작성해 보았지만, 그대로 탐라에서 시행할 수는 없었다.
그간 몽주의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던 탐라 조정의 상황을 세세히 살피니, 수정해야 할 게 한두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단 몽주가 가장 놀라운 것은 탐라 조정의 규모가 그가 막연히 알던 것보다 훨씬 커져 있었다는 점이었다.
재상과 두신에게 대략 120명쯤의 관리가 있다고 대답한 건 실상의 삼분지 일만을 말한 것에 불과했다.
거의 400명에 가까운 인원들이 크고 작은 봉록을 받아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 재무교리 점녀로부터 그에 관한 녹계를 받아보았을 때는, 점녀가 너무 방만하게 일을 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는데, 녹계를 살펴보니 그런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점녀가 몽주의 녹을 받는 자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애를 쓴 것을 분명 느낄 수 있었다.
공국군과 겹치는 부분에 드는 인력은 군병으로 처리하게 하고, 한 가지 임무로 녹을 받기에는 그 임무의 크기가 크지 않으면 연관된 다른 임무까지 겸하게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400에 가까운 인원이 녹을 받아, 공식 혹은 비공식으로 관리의 역할을 하고 있었으니, 그것도 공식적으로 ‘경찰, 소방관’이 존재하지 않고, 교사도 배제하고 따진 것임을 생각하면, 현대 한국의 소도시가 고용하는 공무원 수에 못지 않을 듯했다.
하여, 현대에서 만들어 본 예시는 예시로만 역할을 할 뿐, 몽주가 탐라에서 새로 만들어야 했다.
현대에서 구성해 본 정부의 예시에서 살아남은 건 탐라 조정의 구성을 고려 초기 조정의 구조를 본따기로 한 점뿐이었다.
고려 개국 직후 초창기 조정의 조직은 기본적으로 동아시아 조정의 기본 구조인 ‘육부(六部)제도’를 따르나, 명칭은 육관(六官)으로 하였다.
선관(選官), 민관(民官), 병관(兵官), 형관(刑官), 예관(禮官), 공관(工官)이 그것이었으니, 이후 고려가 흥한 시기에는 이부(吏部), 병부(兵部), 호부(戶部), 형부(刑部), 예부(禮部), 공부(工部), 정확히 육부를 상서성 예하에 두었다.
그러나 원의 간섭기에 이르러 황제가 아닌 왕이 ‘부(部)’를 거느릴 수 없다 하여, 사사(四司) 즉 전리사(典理司), 판도사(版圖司), 군부사(軍簿司), 전법사(典法司)로 구성하였다.
본디 공양왕 때에 육조(六曹)로 변경되어 조선에도 그대로 인수되나, 이제 역사가 바뀌어 고려에 육조 체제가 설지는 알 수 없게 되었다.
어쨌든 몽주는 육관을 본 따 조정을 구성하고자 하였고, 현대에서 육관을 수정하고 조정하여 맞춰 오긴 했는데, 생각보다 큰 관리의 수를 감안하고 보니, 육관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 부서가 통합된 특정 관부가 너무 비대해지는 건 옳지 않았고, 탐라의 상황이 동아시아 전반과 어느새 많이 달라져, 특정 분야를 관부로 독립시키는 것이 옳았기 때문이었다.
하여, 머리 싸매고 고민하였으니, 교리들과 논의하기에 앞서 몽주가 뼈대를 만들 필요가 있기에 혼자 끙끙 앓아야 했다.
특히나 고민스러운 것은 관료제란 일이 있는 곳에 부서를 만들기도 하지만, 부서가 만들어지는 곳에 일이 생기기도 하는 법이라는 점이었다.
쉽게 말해 장차 몽주가 육성하기 바라는 분야를 담당하는 관부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관료제의 장점 중 하나가 일단 특정 부서가 생기면 뭐가 되든 결과가 나온다는 점이었으니, 이를 잘 이용하고 경계해야 관료제를 세우는 보람이 있을 것이다.
사실 그저 바라는 것을 모두 따지자면, 현대 국가의 행정부처럼 세세하고 다양한 부서가 생겨야 하겠지만, 시대 상황과 탐라의 능력을 감안해야 했다.
몇 날을 앓듯 고민하여 온갖 번뇌와 고민을 누른 채 일차로 확정한 것은 ‘10관 12청 1원’과 ‘6품제’였다.
다만, 10관은 외부적으로 조정의 구성을 알릴 때 쓰는 것으로 하되, 내부적으로 ‘10관부(官部)’라 칭하고자 하였다.
이는 나중에 명국에 탐라국의 조정 구조가 알려져 시비가 걸릴 것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10관부는 육관제를 해체 분리하였으니, 먼저 선관을 폐지하고, 1원에 해당하는 비서원(秘書院)으로 하였다.
현대의 인사처나 보훈처에 해당하는 선관은 몽주가 직접 인사권을 관리하기 위해 본래 두려 했던 비서원에 흡수시킨 것이었다.
내무부와 재정부 및 국세청 등에 해당하는 민관은 내관부(內官部)와 재관부(財官部)로 나누었다.
재관부 예하에는 조세청과 조폐청, 그리고 전당청(錢堂廳)을 두었으니, 이름대로 조세와 조폐, 그리고 은행의 운영을 전담하는 곳이었다.
관부 예하에 따로 관청(廳)을 두는 것은 관부에 속하는 업무 중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의미였고, 관부 내 따로 관청이 나뉜 만큼 관료제의 성질상 그 분야의 일에 더욱 집중하게 될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내관부 예하에는 따로 관청이 없었다. 본디 치안청과 소방청도 두려 했으나, 관리 인원이 감당되지 않고, 현재 군병들이 그 일을 겸임하고 있으며, 아직 크게 무리되지 않은 상황이라 뒤로 미룬 것이다.
병관은 군관부(軍官部)로 바꾸고, 예하에 군기청을 두었고, 형관은 법관부(法官部)로 바꾸고 예하에 재판청을 두었다.
두 관부 모두 그 분야가 명확한 부분이었고, 군기청 또한 군기를 담당하는 관청임에 분명했으나, 재판청은 몽주가 새로 도입한 것이었다.
재판청은 문자 그대로 재판을 하는 관청이지만, 그렇다고 현대의 법원과 같은 건 아니었다.
독립된 사법권에 대한 개념이 없는 시대에 법원을 세울 건 아니기에, 현령으로 개칭될 수령의 판결권을 유지하되, 그 처벌이 큰 경우에는 반드시 재판청에 알려 허락을 얻고 시행하거나, 재판청에 의해 처벌이 재조정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는 현령에게 과도한 권한을 주지 않기 위함은 물론, 속내로 노비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함이었다.
차후에 공국경론을 근거로 공시될 예정인 몇 가지 법 중에 노비에 대한 주인의 사적인 처벌을 금지하고, 현령에게 판결을 얻게 하는 대목이 있었던 탓이다.
이어서 외교부와 교육부, 그리고 과학부 등을 포괄하는 예관은 외관부(外官部)와 교관부(敎官部)로 나누었고, 외관부 예하에는 사교청(使敎聽)을, 교관부 예하에는 교사청(敎師廳)과 진리청(眞理廳)을 두었다.
외관부는 외교부로, 사교청은 특명전권대사의 육성을 전담하는 관청이었다.
장차 해외 여러 곳으로 몽주를 대리할 대사들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임은 분명했기에 사교청을 따로 세운 것이었다.
교관부는 교육을 담당하는 관부로, 교사청은 교사의 육성을 담당하는 것으로 명백한 데 비해, 진리청은 낯선 것이었으니, 쉽게 말해서 과학 연구를 담당하는 관청이었다.
다만, 아직 진리청을 크게 세울 단계는 결코 아니었으니, 한동안은 몽주가 밝히거나 여러 공소 등에서 경험적으로 쌓이는 지식을 정리하는 역할에 불과할 터였다.
하나, 그렇게 쌓이고 쌓인 지식들이 언젠가 과학의 새싹을 틔울 것이니, 그것을 위해서라도 진리청을 따로 두기로 한 것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일이 있는 곳에 부서가 생기기도 하지만, 부서가 있는 곳에 일이 생기기도 하니, 진리청을 안배함으로써 과학의 형성이 촉진되길 바랐다.
건설, 교통, 산업, 상업, 농수축산 등 가장 많은 분야를 아우르는 공관은 그만큼 가장 크게 분할된 부서로 공관부(工官部), 농관부(農官部), 상관부(商官部), 그리고 체관부(遞官部)로 나뉘었다.
현대의 산업자원부쯤에 해당하는 공관부 예하에는 기술청을 두어, 몽주가 밝힌 지식을 공소에 전하거나, 공소에서 보고한 새로운 기술을 정리하게 하였다.
다만, 기술청은 기술을 널리 퍼뜨리는 데에 목적이 있지 않고, 기술의 중요도를 선별하여 유출을 방비하는 데에 더 큰 의의를 두게 하였다. 또, 훗날 특허권의 발생에 대비 내지 준비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농관부는 농산, 수산, 축산을 담당하는 관부로, 예하에 농기청을 두기로 하였다.
농기청은 공관부의 기술청에 해당하는 것으로 농수축산업을 위한 지식 축적에 목적이 있었고, 특히 장차 더 번창할 특수 작물의 재배를 연구하고, 그 기술을 보존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상업을 담당할 상관부는 몽주가 관료제의 도입과 더불어 탐라 백성들에게 가장 크게 체감할 변화를 도모하는 관부였으니, 그 예하에 회사청이 있었다.
회사청은 공국경론 및 조직 개편의 반포와 함께 공시할 예정인 ‘회사령(會社令)’과 관련이 있는데, 회사 즉 기업에 대한 등록과 관리를 담당하는 관청이었다.
회사령은 축약하면 회사의 설립을 관청(회사청)에 등록하고 관리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인데, 애초에 회사라는 개념이 없는 세상에서 회사령을 선포한다는 건 회사를 이 세상에 도입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는 사실 관료제의 성립과 함께 어쩔 수 없이 도입하게 된 것으로, 현재 국고와 몽주의 재산 간에 구별이 없는 상황을 타파하기 위함이었다.
법에 의한 문서적 통치로서 관료제는 정해진 예산에 따라 수행해야 하니, 몽주의 사적 재산과 나라 재정을 구분할 필요가 있었다.
한데 그 경우 몽주의 재산에 속하는 수많은 작업장과 고려에서 활동하는 탐라 상단 등이 분분이 존재하게 되니, 몽주는 따로 회사를 세워 자산을 통합하고자 하였고, 이참에 탐라에 회사를 도입하기로 마음먹었다.
실상 탐라 조정 살림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몽주의 재산이 떨어져 나가 나라 재정이 흔들리는 것을, 회사를 세워 회사에 조세를 가함으로써 막고, 또 다른 회사의 설립을 촉진시켜 상업의 진흥과 나라 재정의 풍족함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체관부는 교통과 통신을 담당하는 부서로, 체신청(遞信廳)은 쉽게 말해서 ‘우체국’이었다.
탐라를 중심으로 사방팔방에 뻗어 영토가 있고, 앞으로도 더 커질 것이 명백한 바, 체관부는 당연히 그 어떤 관부 못지 않게 중요했고, 우편의 교환을 담당하는 관청 또한 반드시 필요했다.
이렇게 정해진 조정에서 일할 관리들의 관직은 6품으로 나뉜 관급에 따라 결정되었다.
관부의 수장인 대신(大臣)은 1품이고, 관청의 수장인 청장(廳長)은 2품으로 고정되었고, 3품은 관부 및 관청 내 특정 부서를 이끄는 중간 관리층이 될 것이고, 4품 이하는 실무를 담당하게 할 예정이었다.
본디 정품계와 종품계로 나뉘는 9단계의 관급 대신 통합하여 6품으로 줄인 것은 외적으로는 공국으로서 겸양하기 위함이었고, 내적으로는 몽주가 회사를 통해 실무진을 거들게 하고자 함으로써, 굳이 많은 수의 관리를 채용하지 않고, 또 몽주의 조정 장악력을 높이기 위한 노림수가 있기도 했다.
“국정원이랑 암행어사는 나중에 생각하자, 아이고…….”
* * *
몇 날의 고민에 이어 전날 밤새워 정리한 몽주는 조정 구조의 뼈대를 확정할 수 있었다.
그는 아침 일찍 교리들을 불러 공국경론과 몇 가지 법령을 함께 그들 앞에 던져 주었다.
“이것이 내가 생각한 탐라 조정의 개요이고, 탐라 조정을 위해 만든 경영론이며, 빠른 시기에 공표하여 시행할 몇 가지 법령이오. 교리들은 그것들을 검토하고, 논하여 보강할 점이 있거든 내게 말하시오.”
총무회의실 상석에 앉은 몽주는 그렇게 말하곤 얼마 전에 목공소에서 바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의자는 다리 밑에 둥근 목재가 달려 있었으니, 몽주가 몸을 뒤로 젖히자 크게 넘어간 상태에서 앞뒤로 흔들흔들거렸다.
즉, 흔들의자에 앉다 못해 드러누운 것이었다.
“…….”
이른 아침부터 소환된 교리들은 잠시 국공을 바라보았다. 회의 탁자 위에 쌓인 문서를 보란 명을 받긴 했지만, 그리고 근자에 국공께서 탐라 조정의 구성에 대해 고심하고 계심을 알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뭔가 더 추가적인 말씀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묻은 시선이었다.
하나, 그런 기다림과 무관하게 그들에게 들린 것은 흔들의자에 기댄 직후부터 들리기 시작한 국공의 낮은 코골이뿐이었다.
“……어제도 잠을 주무시지 않으신 모양입니다그려.”
“대체 무엇을 그리 구상하신 건지 궁금하군요. 어서들 보시지요. 저하께서 기침하시기 전에 다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화극과 홍 교리가 말을 나누며 문서를 하나씩 잡아 드니, 다른 교리들도 문서를 들고 같이 나누어 보기 시작하였다.
문서를 본 교리들은 그 내용에 대해 대화하기 시작했으니, 처음에는 그 내용의 이해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는 정도였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몇 가지 부분에서 논쟁이 생겼다.
특히, 인사 문제에 닿아서는 고성까지 터지며 말다툼이 심해졌으니, 탐라의 내부에 잠재되고 쌓인 갈등에서 비롯된 다툼이었다.
“그르렁…….”
물론, 그 와중에도 고민에서 일단은 해방되어 달콤한 잠에 취한 몽주는 그저 코골이만 이을 뿐이었다.
* * *
“장조 어르신, 오늘은 좀 어떠십니까?”
“음, 자네 왔는가. 어허, 내가 죽을 때가 오긴 온 모양이네. 도무지 기력이 솟질 않으니, 맘 같아서는 이부자리를 바로 떨치고 싶네만, 몸이 따라 주질 않네. 자네에게 폐만 끼치고 있으니 민망하기 그지없어.”
장조 어른이 앓은 음성으로 말하니, 고 단주가 고개를 저으며 그런 말씀하지 마시라 어르신을 위로하였다.
반 년 전까지만 해도 정정하여, 동경에서의 사업을 진두지휘하던 그였지만, 지난 가을 환절기에 크게 고뿔을 앓은 뒤로는 기력이 크게 상하고 말았다.
그에 얼마간 병치레를 하다 더는 예전처럼 일하지 못할 것임을 안 장조 어른은 그동안 거부했던 탐라행을 결정했다.
사실 대공부인은 오래전부터 장조 어른과 사촌들을 탐라로 모셔 가길 바랐는데, 굳이 장조 어른이 아니더라도 탐라의 상행에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국공께서 크게 높아지신 중에, 반대로 장조 어른과 처사촌들은 정적들의 목표가 될 위험이 커졌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선견지명이 있고, 또 운이 따라 줘서 위험한 일을 겪지는 않았지만, 이제 장조 어른의 건강이 좋지 않으니, 더는 탐라로 가는 것을 거절하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별채를 나온 고 단주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색은 장조 어른 앞에서보다 더 어두워져 있었다.
“얼른 기력을 회복하셔야 하는데…….”
고신걸을 중얼거림 끝에는 말이 숨어져 있었다.
‘그놈의 면상을 보지 않으려면 말이야.’
“이보게, 고 단주!”
‘아놔! 호랑이도 제 말하면…… 아니지, 말도 안 하고 생각만 했는데도 나오는 걸 보면 호랑이보다 더 한 놈일세. 에휴!’
찰나로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가 서둘러 안색을 회복한 고신걸은 곧바로 종도를 향해 고갤 숙이며 인사하였다.
“하하, 좋은 아침일세.”
“일찍 일어나셨군요.”
‘어제도 밤 늦도록 기방에 있었으면서…….’
“그러게 말이네. 이곳 공기가 맑고 풍류가 넘쳐 기운을 돋우니 절로 눈이 떠지는 모양일세.”
‘뭔 놈의 풍류 타령을 아침부터 하냐. 그냥 네가 놀고 먹는 체력이 좋은 게지.’
“하하, 기운이 좋으시다니 다행입니다.”
대충 대화를 마무리하고 지나치려 했으나, 어느새 종도는 고신걸의 곁에 바짝 붙어 또 어깨를 팔로 감싸며 은근히 말하였다.
“오늘도 부탁함세.”
“……또 나가실 요량이십니까?”
“또라니? 그제는 안 나갔지 않은가.”
딱 그제만 빼고 지난 칠일간 계속 기방을 출입하였다.
“알겠습니다.”
“하하, 내 자네를 절대 잊지 않을 것이네. 매형에게도 크게 상찬하라 청할 것이야. 하하하.”
“…….”
웃으며 발걸음도 가벼이 떠나는 종도의 뒷모습을 보며 고신걸은 크게 한숨지으며 상단청으로 향하였다.
“단주님, 국공 저하께서 서찰을 보내셨습니다요.”
청사 안에 들어가자마자, 수하가 서찰을 들고 달려와 바쳤다.
고 단주는 서둘러 서찰을 훑어보았는데, 장조 어른에 대한 질의와 탐라행 계획을 묻고, 상단의 지난 보고에 대한 하명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고 단주 개인에 대해 묻는 바가 있었는데, 그것이 고신걸로 하여금 고민에 빠지게 하였다.
그 자신 개인에 대한 고민이자, 어쩌면 그의 가문의 미래가 달린 고민이었기에, 고 단주는 일을 처리하면서도 내내 뇌리 속에 국공의 질문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었다.
오후에 잠시 한적한 틈에 뒤뜰에 나아가 서성이며 고민을 정리하려는데, 뜰에 누군가가 먼저 있어 말소리가 들렸다.
“……그러니까, 제발 형님도 자중하십시오. 그런 행각이 자형의 귀에 들어가면 저희가 중히 쓰이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자형에게 빼앗긴 우리 재산을 되찾는 것도 불가능하게 되는 겁니다.”
“허허, 녀석, 자형이 우리 재산을 빼앗았더냐?”
“빼앗았지요! 아니면 그 많던 토지들이 어디 갔겠습니까?”
“네가 억울하게 생각하는 것도 일리가 있긴 하다만, 사실을 말하자면, 누님의 결혼과 더불어 자형에게 그 재산이 넘어간 것이고, 할아버님의 허락하에 자형이 그것을 처분한 것이지 않느냐.”
“그게 그거 아닙니까.”
“……좀 다른 것 같은데?”
“형님!”
고 단주는 나무 뒤에 숨어 형제 간의 대화를 들으니, 제법 흥미로웠다. 두 형제의 새로운 모습을 보는 느낌이랄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내가 흥청망청 노는 게 나쁜 것 같지는 않다. 그만큼 자형도 외척인 우리를 덜 경계할 것이고, 또 나 같은 망나니와 비교되어 네가 더 돋보일 것이니, 너에게도 좋은 게 아니냐.”
“어찌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저 혼자 무얼 하라고요.”
“너 혼자 못할 일이면, 내가 돕는다 한들 크게 달라질 건 없을 것 같은데…….”
“형님!”
“그만 좀 불러라. 어쨌든 나는 내 풍류를 즐길 것이다. 너는 네 꿍꿍이를 시행하든 말든 네 맘대로 해라.”
부시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종도가 발걸음을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하나, 직후에 그 소리가 멎더니, 다시 종도의 말소리가 들렸다.
“하나만 충고하마. 자형은 이미 큰 사람이시다. 헛된 생각으로 뭔가 통할 거라 여긴다면 오산이니, 작은 걸 얻으려다가 오히려 큰 것을 잃을 수도 있다. 물론, 너도 이미 알고는 있겠지.”
다시 발걸음 소리가 들렸고, 고신걸은 서둘러 숨어 있던 곳을 떠났다.
그 와중에도 그가 들은 대화가 의미심장하게 기억되었으니, 종도, 청도 형제의 진면목에 평판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지. 그놈은 진짜 나쁜 놈인데…….”
고 단주의 머릿속에 예전 동경에서 있었던 일이 다시 떠올랐다. 그때 종도가 저지른 일은 인면수심을 가진 자나 할 법한 일이었다.
“아휴, 내가 지금 이런 걸 고민할 때가 아닌데…….”
고신걸은 머리를 저어 최씨 형제에 대한 생각을 떨치고는 국공저하께서 안겨 준 고민에 집중하였다.
“관리로 남느냐, 저하의 상단에 남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