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203)
* * *
“뭐하나? 얼른 안 싸우고?”
“…….”
고개를 숙인 교리들은 말이 없었다.
“또 멱살 잡고 드잡이 한판 벌이라니까 못하겠나? 내 앞이라서? 어제는 내 앞에서 잘도 싸웠다더만?”
“……송구합니다.”
“어제는 송구한 짓이라는 걸 몰랐나?”
“…….”
교리들을 대표해서 아니, 드잡이의 당사자들 중 하나이기에 홍 교리가 사과하였지만, 몽주의 화난 표정을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어제 총무회의는 결국 엉망진창으로 끝났다.
몽주가 교리들에게 국공경론과 조정의 개편안, 그리고 몇몇 법령을 훑어보라고 자유 시간(?)을 준 것은 몇 년간 탐라의 내부에 쌓인 갈등이 폭발하는 계기만 되었다.
그 갈등이란 탐라 원주민과 외부 이주민 간의 불화였고, 그로부터 야기된 교리들 사이의 파벌 및 권력 다툼이었다.
그간 워낙에 몽주의 권위가 높았고, 관직 체계가 단순하여 권력 쟁투의 여지가 적었는데, 이제 조정 구조가 개편되어, 아마도 교리를 대신할 대신(大臣) 직위가 여럿 생기고, 직급도 상하로 세분화되자 그 자리들을 어찌 채워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를 두고 인사 갈등이 폭발한 것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교리들 사이에 기존에 엄청난 적대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원주민과 이주민으로 나뉜 탐라 백성들의 상황에, 각각 지지 기반(?)이 다른 교리들끼리 다소 어색한 경우는 있을지언정 겉으로 표현될 다툼은 없었다.
그렇기에 몽주도 교리들끼리 몸싸움을 할 정도로 갈등이 깊었을 줄은 상상도 못한 것이었다.
사실, 정작 교리들 간의 싸움을 몽주는 잠에 깊이 빠진 탓에 보지 못했다.
당시 소란이 일어난 것이 알려지자, 앵도가 서둘러 찾아와 크게 호통 쳐서 사태를 무마시키고, 총무회의를 종료시킨 후에, 죽은 듯 자고 있던 자신을 들어 집으로 돌아갔다고 들었다.
교리들 간의 싸움도 앵도로부터 들은 것이었고.
“초고불이랑 홍길도, 앞으로 나오게.”
차디찬 어조로 몽주가 부르자, 원래 앞에 있던 홍길도는 곧바로 두 걸음 나와 섰고, 약간 뒤쪽에 있던 초고불은 교리들 사이로 서둘러 나와 몽주 앞에 섰다.
그 두 사람이 드잡이의 실질적인 두 주인공들이었다.
몽주는 그의 앞에 나와 고개 숙인 두 자들을 가만 보다가 헛웃음을 흘렸다.
“허, 어이가 없네…….”
짧은 말과 냉소에 담긴 국공의 분노를 느낀 두 사람은 일제히 어깨를 움츠렸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지만, 자네들 둘이야말로 자중해야 할 자들이 아닌가. 두 사람 모두 자신들이 어찌 살아남고, 어찌 이곳 탐라에서 교리에까지 오른 것인지 잊은 겐가?”
“…….”
“이제 좀 살 만하니, 좁쌀만 한 권력으로 위세를 부리고자 함인가? 다시 목숨이 칼날 위에 선 꼴이 되고 싶은 게야!”
“죄, 죄송합니다…….”
초고불이 울먹이며 사죄하였고, 홍길도도 안색이 하얗게 변하여 부르르 떨었다.
지금 국공이 명하기만 한다면, 그들은 당장 불구덩이에 던져져 불타 죽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아쉬워하는 자는 있을지언정, 국공께 무어라 항의 한 마디 하지 못할 것이다.
몽주는 두 사람을 한참 노려보고 있다가 다시 교리들을 둘러보며 호통하였다.
“다른 자들도 마찬가질세! 아무리 백성들 사이에 불협화음이 있다 한들 그것에 부화뇌동하여 편파할 생각을 하다니! 오히려 백성들을 다스려 서로 협심하도록 노력해도 모자란 판에!”
여기저기서 죄송하고, 송구하고 면목 없다는 소리들이 흘러나왔다.
몽주는 다시 앞에 나와 있는 초고불과 홍길도를 보았다. 이 두 사람이 내외 갈등의 주인공이 된 건 사실 그럴 만도 했다.
홍길도는 외부 출신들 중 몇 안 되는 교리들 중 하나고 특히 몽주의 최측근 다섯 꼽으면 반드시 들어갈 만한 자이니 그만큼 외부 이주민들을 대표하려 했을 것이다.
초고불의 경우는 엄밀히 말해서 반쪽 원주민이겠지만, 지금도 알게 모르게 배타당하고 있는 목호 출신의 한계를 벗고, 목호들의 생존을 위해 내외 갈등 중에 원주민의 편에 서서 자기편을 얻고자 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몽주가 그들의 잘못을 이해해 줄 생각은 없었다.
“너희들에게 대표로 묻지. 나는 뭔가? 탐라 원주민인가, 이주민인가?”
“어, 어찌 그런…….”
“어찌 그런 소리 같은 소리는 집어치우게. 자네가 어제 나 또한 이주민이라 고성하였다는 얘기를 들었으니까.”
홍길도가 경악하다가 몽주의 타박에 고개를 푹 숙였다.
정확히 같은 말은 아니었지만, 비슷한 소리를 한 바가 있었으니, 인사 문제가 출신 문제로 번져 다투는 중에 이주민을 괄시하지 말라 하면서, 따져 보면 국공께서도 이주하신 분이지 않느냐고 했던 것이다.
스스로 호민을 깨우친 자로서 분명 똑똑한 이임에 분명하거늘, 고작 출신 문제에 얽매여 헛소리를 했다는 걸 전해들으니 몽주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초고불, 내가 원주민 편이어야 하는가? 그게 천리인가?”
“…….”
이번에는 초고불을 향해 물으니, 그 또한 고개를 더 숙였다.
홍 교리가 한, 국공도 이주민 소리에 격분하여, 그가 말하길, 지금의 탐라는 국공이 탐라에 임하심으로서 생겨난 것이나 마찬가지니, 국공이야말로 진정 탐라의 사람이라 주장하며, 원주민들이 가장 먼저 국공을 도와 탐라를 높이 세웠으니, 그것이 탐라에서 원주민이 먼저여야 하는 이유이고, 천리라고 소리쳤다.
그걸 전해 들은 몽주는, 현대에서 뻔히 아닌 걸 가지고 국민의 뜻이라고 말만 주절대는 정치 모리배들이 절로 연상되었으니, 무거운 한숨이 크게 나올 판이었다.
“나는 원주민도, 이주민도 아닌, 그저 고려인이고 탐라인일 뿐이다. 이전 제주의 이름으로 작위를 받아 이곳 탐라에 임하는 순간부터 그러하니, 이는 지금 탐라의 모든 백성들 또한 마찬가지다. 내가 그들을 다스려 탐라의 백성으로 인정한 이상, 탐라에서 태어났든 아니든, 오래 살았든 아니든 상관없이 그저 탐라의 백성일 뿐이란 말이다.”
낮은 음성으로 몽주는 교리들을 훈계하고 이어, 경고하였다.
“앞으로 관리된 자가 출신을 두고 파벌을 짓거나, 싸움을 일으킨다면 나는 그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백성들을 선동하여 자기 권세에 동원하는 자가 있다면, 그 본인은 물론 가문마저 멸족시켜 탐라에서 아예 도려낼 터이니 다들 명심하라.”
“예, 저하.”
몽주는 기죽은 교리들을 내보냈다. 당장 총무회의를 열어 논할 것이 많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도 기분도 아니었다.
교리들이 나간 후, 홀로 남은 몽주는 무거운 고민을 머리에 얹어야 했다.
당장은 교리들에게 경고하여 내외 갈등을 억누르긴 했지만, 언제고 다시 터질 게 분명했다.
지금이야 교리들이 아무리 잘났다 하더라도, 몽주에 비할 바가 아니니 으름장 한 번이면 다 죽는시늉도 하게 만들 수 있지만, 나라가 커지고 그만큼 권력도 커져 몽주가 통찰하기 어렵게 된다면, 몽주의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을 날이 올 수도 있었다.
설령 몽주는 아니더라도, 후대에 크게 폭발할 것이다.
그에 대한 해결책은 사실 간단하다.
백성들 사이에 원주민과 이주민의 구분이 없게 하면 된다.
하나, 그것을 이룰 방법을 도통 찾기 어려웠으니, 아무리 몽주가 탐라에서 군림하다고 해도, 백성들의 머릿속 생각까지 바꿀 수는 없지 않은가.
시간이 해결해 줄까 싶기도 하지만, 해묵은 감정은 시간과 함께 더 깊은 골을 만드는 경우가 오히려 더 많음을 알고 있기에 시간에 의지할 수도 없었다.
얼핏 내부의 갈등은 외부의 적으로 해결하는, 아주 보편적인 방법도 떠올렸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내부의 갈등을 봉합할 정도의 외적은 나라에 큰 위협이 되는 정도여야 한다.
지금 탐라의 경우에서 따지면, 명국은 아니더라도, 왜국과의 충돌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탐라 백성들도 몸소 위기감을 느낄 테니까.
하나, 그건 몽주가 피하고 싶은 일이지, 내부의 갈등 때문에 유도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스포츠’를 통해 갈등을 표출하고 해소하게 만드는 방법도 머리에 스쳤지만, 작금의 상황에서는 오히려 일을 크게 만들 수도 있었다.
요사이 축구가 유행한다는데, 혹여 ‘훌리건’ 사태라도 일어나면 사라져야 마땅한 갈등을 오히려 고착시키는 결과만 빚을 수도 있다.
게다가 내외 갈등이 출신의 갈등이라곤 하지만, 지역 출신이 아닌 탐라 전체를 두고 원주민과 이주민 사이에 생긴 갈등이기에 갈등의 ‘바운더리’가 애매하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같은 고려인이고 좀 많이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어찌 저찌 통하는 말을 쓰는 이들도 이렇게 융화되지 않는데, 차후에 더 먼 곳에서 더 많이 다른 이들과는 어찌 화합할지 벌써부터 걱정이 되었다.
“끄응.”
몽주는 결국 앓는 음성을 뱉으며 답답함을 표하였다.
이런 종류의 문제는 현대인이라는 이점으로도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굳이 현대적 해결책이 있다면, 갈등을 균열로 인정하여 그것은 민주적 체제 안에 녹이는 것, 그 균열을 받아들인 정당에 대한 지지를 통해 정치권력적으로 타협하게 하는 것인데, 지금 탐라에서 그 방법을 응용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지 않은가.
하기야 현대에서도 그게 잘되는 나라가 드문 판이다.
* * *
다시 총무회의가 소집된 건 오후였다.
어제의 사태(?)에 대한 짜증과 분노를 누그러뜨린 몽주는 그가 구상한 조정의 구조 등에 대해 교리들이 가지고 있는 오해부터 풀어 주었다.
“다들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부터 알려 주겠소. 비서원은 그렇게 대단한 관부가 아니오.”
몽주가 비서원부터 언급한 건, 어제 내외 갈등이 크게 촉발한 계기가 비서원에 대한 인사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즉, 비서원장에 누가 자리해야 하는지를 말하다가 그 사태까지 번진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교리들이 논의하면서 비서원을 권력의 핵심으로 잘못 해석한 것이 있었다.
그건 사실 몽주의 잘못도 있었다.
몽주가 탐라 조정의 구조를 표로 구분하면서 국공 아래 10관부를 두되, 비서원은 따로 빼어 10관부와 구별하게 둔 탓이었다.
그러면서 딱히 비서원의 지위에 대한 언급은 없이, 그저 국공의 명을 출납하는 관부라는 설명만 해 놓았으니, 교리들이 비서원을 당대 고려의 밀직사(密直司)로 오해한 것이었다.
이는 본래 밀직사가 중추원(中樞院)에서 개명한 것으로 중추원의 주된 역할이 왕명 출납과 숙위였기 때문인데, 밀직사로 분하면서 군사 기무까지 장악하게 되었으니, 비서원을 밀직사쯤으로 생각한 교리들의 입장에서 비서원이 권력의 핵심일 수밖에 없었다.
“비서원은 오직 내 명을 수발하는 임무만을 수행하는 관부로서, 다른 관부보다 우위에 있지 않고 오히려 낮으니, 관청의 지위에 불과한 곳이오.”
정확히 말하자면, 국공이라는 최상위 1인 관부에 속한 관청이니, 각 관부에 속한 관청보다는 지위가 높다고 여길 수도 있었다. 또, 공식적인 지위가 어떻든 최고 권력자와 자주 만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대단한 권력이니, 아무래도 비서원과 그 수장의 자리에 중요하게 여겨질 터였다. 하나, 국공인 몽주가 아니라면 아닌 거였다. 몽주는 비서원장을 ‘무소불위의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만들 생각은 없었다.
“각 관부의 일은 비서원을 통하지 않고, 내가 직접 보고 받을 것이니, 각 관부대신이 될 자들은 비서원과 비서원장을 상위 관부나 관직으로 여길 필요가 없소. 만약 아직도 비서원장을 이인자의 자리쯤으로 여기고 있다면 그 생각을 바꾸시오. 오히려 나는 누구라도 자신을 이인자라 위세 부리는 자가 있다면 그자부터 제거할 생각이니…….”
“…….”
여전히 냉랭함이 남아 있는 국공의 말에 교리들은 그저 머리만 조아렸다.
몽주가 조정의 구조에 대해 부연하는 동안에도 경직된 분위기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허심탄회하게 탐라 조정의 구성에 대해 논하고자 했던 몽주로서는 아쉽고 못마땅했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어쩔 수 없었다.
교리들 중에 다른 생각이 있고, 그 다른 생각이 더 좋은 것일 수도 있어, 그것을 솔직하게 듣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어차피 조정의 구조가 고정된 건 아니니 차후에 수정하면 될 것이다.
탐라의 관료제라는 게 세상에 없던 것도 아니고, 그저 탐라의 상황에 맞춰 더 조밀해졌을 뿐이었다.
조정의 구조가 법제화되어, 다른 곳과 달리 왕명이나 조정의 결정에 따라 변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법 개정과 함께 백성들에게 공표되는 것이 어쩌면 유일한 다른 점일 것이다.
그 법 개정도 결국은 주권자인 몽주의 의사나 마찬가지라는 걸 생각하면 공표를 제외하면 차이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쨌거나, 그래도 조정 조직 개편에 대한 이야기가 끝날 무렵에는 경직된 분위기가 살짝 풀리기 시작하여, 잠시 휴식 후 공국경론과 몇 가지 법령에 대한 말을 할 때쯤에는 몇몇 교리들이 질문을 던지기도 하였다.
물론, 홍길도나 초고불을 비롯하여 어제 싸움에서 드잡이질을 한 교리들은 여전히 풀이 죽어 있었지만, 아닌 교리들, 특히 몽주와 함께 탐라로 오면서 원주민과 이주민 사이에 애매하게 위치한 셈인 교리들은 상대적으로 조금 더 말문을 열 심적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장차 관리들이 임무를 수행하거나 고소를 판결함에 있어, 이 경론에 나온 조항을 참고하여야 하는 것입니까?”
점녀의 물음에 몽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였다.
“내가 구체적인 명을 내리거나, 따로 법을 만들어 반포한다면 그것을 따라야겠지만, 그런 것이 없을 때는 경론의 조항을 살펴 그에 족하게 일을 수행하고 판결해야 할 것이다. 물론 법령들도 다 공국경론에서 비롯된 것이어야 한다. 내 명 또한 그럴 것이고.”
이미 나랏일을 하는 자들이나 학생들이라면 만행지론을 통해 인본을 중심으로 상도와 병도를 따라야 함을 익히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당연히 부족했다.
만행지론에 몽주가 지난 갑인년과 을묘년 사이에 행한 여러 일을 예시로 적어 참조가 되긴 하나, 지금은 물론 앞으로 더 커지고, 복잡해질 탐라의 관무를 수행함에 있어 충분할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공국경론은 부족하나마 헌법의 역할을 하여, 모든 판단과 결정의 기준이 되어야 했다.
“하면, 혹시 조항을 추가하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추가? 무얼 말이냐.”
점녀의 제안에 몽주는 서둘러 말하라 재촉하였다.
그러자 점녀는 교리들을 훑어보고 말하였으니, 원주민과 이주민 사이에 차별과 적대를 금지하라는 조항을 넣자고 하였다.
“저하께서도 이미 원주민과 이주민 사이의 갈등을 용납하지 않으실 뜻을 저희에게 밝히셨으니, 그 근본이 되는 백성들에게도 이를 알려야 하지 않습니까. 또, 장차 관리들이 일을 함에 있어 분명 그 갈등에서 비롯된 문제와 고소가 있을 터이니, 그에 참조가 되도록 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음, 맞는 말이다.”
몽주는 좋은 생각이라 점녀를 칭찬하고는 필기하여 추가할 거리를 적었다.
이어 몽주는 다른 이들에게도 더 넣고자 하는 게 있는지를 물었는데, 더 이상은 없었다. 있어도 입을 열 수 있는 자들이 많지도 않았다.
“하면, 기존 여섯 조항에다가 하나를 더하여 최종적으로 일곱 조항으로 확정하겠네.”
몽주는 결론을 내리곤 이어 공국경론과 함께 반포할 세 가지 법령을 입에 올렸다.
그 법령에 대해서도 교리들 사이에 오해가 많아 한참을 설명했는데, 그 후에 교리들이 보인 반응은 몽주의 예상과는 사뭇 달랐다.
세 가지 법령 즉, ‘공벌령(公罰令)’, ‘국토령(國土令)’, ‘회사령(會社令)’ 중에서 몽주가 예상하기에 가장 이해하지 못하거나 반발할 법령으로 국토령을 점찍었고, 그다음이 공벌령이고 회사령은 이해하지 못할지언정 반발할 이유가 없다 여겼었다.
한데, 실제로 교리들이 보인 반응은 전혀 달랐으니, 공벌령이나 국토령에 대해서는 이내 순응하면서도, 회사령에 대해서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던 것이다.
공벌령은 사적 처벌을 금하는 법으로 신분의 위아래가 분명하고, 아랫사람을 부리는 입장이라고 해도, 사사로이 아랫사람에게 신체적 체벌을 금지시키는 것인데, 당연히 노비들을 보호하는 데에 주된 목적이 있었다.
아무리 주인이라 해도 또 노비가 큰 잘못을 했다하더라도, 벌을 내리고자 한다면 현령에게 고하여 공적으로 처벌받게 하는 것이다.
처음 공벌령의 내용을 두고, 약간의 혼란이 있었는데, 부모가 자식에게 훈계나 매질을 하는 것도 금하는 것이냐는 식의 혼란이었다.
하나, 공벌령의 내용이 신분 질서라는 전제를 둔 것과 신체 체벌에 한함을 확인시켜 주자 그제야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였고, 덩달아 법안의 형식도 깨우쳤다.
막연히 무엇을 하라 말라가 아니라, 전제 조건과 한계하에서의 금지와 허락을 담은 것이니, 공국경론의 첫 조항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공벌령의 의미를 이해한 교리들은 그들은 물론, 백성들도 순탄하게 수긍할 것이라 평하였다.
이미 몽주가 노비들에게 과한 처벌을 내리지 못하게 하고 널리 통하게 하였으니, 공벌령 또한 같은 의미로 받아들일 테니 말이다.
이어, 국토령 또한 의외로 교리들은 곧잘 동의하고, 백성들 또한 반발하지 않을 것이라 평하였다.
국토령의 내용은 탐라국공이 직접 다스리는 모든 영역의 토지는 나라의 소유라는 것이고, 토지를 쓸 일이 있는 자들은 조정 내 해당 관부의 허락을 받아 빌려 쓰되 일정한 지대(地代)을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아래로 다시 세부 조항이 있었으니, 지금 사적으로 소유된 토지는 30년에 걸쳐 조정의 보상을 받되, 만약 조정에서 그 토지를 이용하거나 다른 이에 빌려 주기로 한다면 토지대금을 그 주인이 추가로 얻게 하는 것이었다.
추후에 결정될 더 구체적인 내용, 즉 보상의 비용이나 토지대금의 수준 및 조건에 따라 반응이 달라지겠지만, 교리들이 전반적으로 충분히 통할 것이라고 평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고려에서도 이미 흐지부지된 왕토사상 같은 이유 때문이 아니라, 실질적이고 경제적인 이유가 있었으니, 지금 탐라 내에 토지를 가진 이들, 즉 토호들이 알게 모르게 소유한 토지 탓에 애를 먹고 있기 때문이었다.
기본적으로 사적으로 소유된 토지가 거의 대부분 농지인 것이 애를 먹는 근본이었다.
몽주가 탐라에서 여러 산업을 일으키며, 많은 인력을 쓰게 되니, 그만큼 토호들의 토지를 소작할 이들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가문의 노비들로 경작하고자 하여도, 그 전에 여러 소작을 부려 경작하던 토지를 다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인 데다 소작료를 크게 쳐주어도 소작인을 구하지 못하여 토지를 놀리는 이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런 중에 고려와 왜국에서 양곡이 많이 들어오니, 탐라에 식량이 풍족해져 소작료를 높이기도 어려운 지경이었다.
게다가 여러 산업이 날로 번창하면서 소용된 토지는 애초에 탐라 관아에 속한 것이거나, 국공이 승작하며 크게 얻은 봉토 내지 목호의 난 전후로 주인이 사라진 땅을 정리하여 쓰는 것으로 충분하였으니, 토호들이 토지를 팔고자 하여도 제대로 거래가 되지 않았다.
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드높은 국공의 권위 앞에 항의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조정에서 토지를 유상으로 거두어들인다 하면, 오히려 반길 것이라는 게 교리들의 판단이었다. 물론, 그 보상이 너무 낮은 수준만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게 반발을 걱정했던 공벌령과 국토령은 의외로 쉽게 넘어갔는데, 회사령이 문제였다.
사실 현대에서 몽주가 회사령의 내용을 밝히자, 재상과 두신은 과연 회사라는 개념이 당대에 통할지 의문을 보였었다.
회사는 곧 법인(法人)이니, 법인의 성립에 관한 법제도가 없는 것은 물론, 법인의 개념도 없는 중에 그것이 가능하겠느냐는 것이었다.
하나, 몽주는 애초에 법인의 도입을 염두에 두고 회사령을 준비한 게 아니었다.
현대에서야 여러 발전된 형태의 회사들이 있어 법인이 필수이지만, 사실 비법인 회사의 수도 적지 않다.
물론, 그 대부분이 1인 기업 내지, 작은 규모에 불과하고 기업주가 홀로 독점 경영, 무한 책임을 지는 위태로운 구조이긴 하지만, 당대 고려에 탄생할 회사에 몽주가 바라는 게 딱 그 수준이었다.
대기업을 육성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니, 작지만 될수록 많은 회사를 세우는 게 오히려 급했다.
회사들이 많아야 관련법과 제도들이 제정되고, 정비될 기회가 생길 것이고, 회사들의 활동이 많아져야 자본주의 체제가 새싹을 틔어 자라게 될 것 아닌가.
어찌 보면 몽주가 제시한 회사령의 회사란 현대의 회사이기보다는 조선 시대 여럿 활동한 상단에도 못 미치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몽주는 회사령을 시행하고자 하면서, 그에 반발하리라 전혀 생각지 않았는데, 정작 교리들은 회사령에 가장 크게 의문을 보였다.
처음에는 교리들이 회사령과 회사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줄 알고 열심히 설명했지만, 정작 그들이 밝힌 의문의 이유는 엉뚱한 것이었다.
“어찌 국공 저하의 기업과 같은 것을 한낱 백성들에게도 허락하시려 하십니까?”
“……!”
교리들이 말한 기업은 회사의 다른 말인 기업(企業)이 아니라 기업(基業), 즉 기초가 되는 사업이었다.
국공의 기초가 되는 사업이 있는데, 그에 도전하는 또 다른 이들을 허락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의미였다.
교리들은 회사령에 몽주가 지금 소유한 작업장과 상단 등을 회사로 세우겠노라 한 것을 두고, 회사라는 것을 국공의 기업으로 여겼는데, 그 뒤로 일반 백성들도 똑같이 회사를 세울 수 있게 한다는 조항이 있자, 마치 백성들에게 강상(綱常)의 죄를 권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몽주로서는 매우 충격적이다 못해 참신한 해석이었다. 그게 그런 식으로 여겨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에 몽주는 다시 한참을 설명하여, 회사라는 일반적인 개념이 있고, 그에 맞춰 그의 자산을 회사로 만들겠다는 것으로, 다른 백성들이 회사를 세운다고 해도 국공의 권위에 도전하는 게 아님을 설파해야 했다.
그리고 회사령의 조항도 살짝 바꾸어 괜히 백성들도 교리와 같이 오해하는 것을 피하고자 하였다.
그럼에도 교리들은 여전히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으니, 몽주로서는 답답하다 못해 애가 타는 심정이었다.
차라라 앞서 내외 갈등으로 열불 나게 할 때가 더 낫다 싶을 정도였다.
어쨌든 교리들을 억지로 이해(?)시켜 회사령을 확정한 몽주는 며칠 후 공국경론과 조정의 조직 개편, 그리고 세 가지 법령을 마침내 반포하였다.
그사이에 교리들, 특히 점녀가 여러 번 찾아와 회사령을 만류하였지만, 회사령을 여러 번 고치되 기어이 발표를 강행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해도, 몽주가 회사를 세우고 경영하는 것을 보면, 따라 하는 이들이 생길 것이라 여긴 것이다.
회사령이 두고두고 골치를 앓게 하는 폭탄이 될 줄은 그때는 몰랐으니 한 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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