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262)
3년간의 정중동(靜中動)은 탐라국의 많은 부분을 바꿔 놓았고, 그건 관가 또한 마찬가지였으며, 무엇보다 가장 달라진 건 관원의 수가 크게 늘어난 것이었다.
그간 고학교가 세 번의 졸업생을 배출하였고, 그중 많은 이들이 관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도합 700명에 이르는 그 졸업생들 중 450여 명이 관리가 되어 탐라의 조정 내 하급 관리직을 수행하자, 몽주는 그제야 정부가 정부답게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그렇다고 관리가 너무 많다는 건 아니었고, 한 번 더 고학교에서 졸업생들이 나오면 남면의 수령과 관리들도 교체할 수 있겠다 싶은 정도였다.
어쨌든 고학교 출신 관리들이 많아지면서, 탐라의 조정에도 대세적인 흐름이라는 게 슬슬 엿보이기 시작했다.
일종의 기조(基調)라고나 할까?
명나라에서 유학과 토지 귀족이 조정의 기조이고, 왜국에서 무사와 장원 귀족이 막부의 기조인 것처럼, 탐라에도 조정의 성격이 드러나기 시작했으니, 기술과 상업이 바로 그것이었다.
조정의 기조라는 게 기본적으로 조정이 구성된 근간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어찌 보면 이는 당연한 결과였다.
탐라국이 생기고 성장한 배경에 몽주가 구현한 신기술에 의해 만들어진 물산이 있고, 그 물산을 사용하고, 교역함으로써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으니까.
물론, 기술과 상업이 근간이 된 건 탐라국이 처음 생길 때부터 그랬다.
다만, 그 전에 몽주를 따르고, 이제는 탐라 조정의 중심이 된 소수의 관리들은 본디 지금의 탐라와 무관하게 성장하여 몽주를 따르기 시작할 때는 이미 그 나름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조정의 기조에는 다소 복잡함이 있었다.
하나, 새로이 임한 관리들은, 특히 최근 2년간 새로이 관리가 된 자들은 기본적으로 탐라에서 제도화된 교육 기관인 기술학교와 고학교를 거쳤고, 탐라국의 흥성을 직접 체감하며 정신적인 성장을 겪은 자들이기에 기술과 상업에 대한 관념이 보다 내면화된 자들이었다.
그렇게 기술과 상업에 대한 의념이 강한 관리들의 자세는 기본적으로 기술 관료였다.
기술 관료란 기술을 담당하는 관료라는 의미가 아니라, 테크노크라트(Technocrat), 지식과 기술을 소유하거나 이해함으로써 사회나 조직의 의사 결정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를 의미했다.
물론, 정의(定意)로서의 기술 관료가 처음 생긴 것도 아니고, 비단 탐라국에만 생겨난 것도 아니었다.
특히나 유자 출신의 관리들은 그들이 배운 바부터가 기술 관료로서 작용할 수밖에 없음을 생각하면, 당대에 가장 많은 기술 관료가 있는 곳은 명나라일 것이고, 그 전에 유학을 국정의 원리로 삼은 모든 나라와 세력들도 기술 관료를 등용하고 있는 셈이었다.
하나, 탐라국의 기술 관료들이 다른 것은 그들이 소유하고, 이해하는 지식과 기술이 기본적으로 ‘과학’적인 면모를 띠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직 과학이라는 학문의 정체가 드러난 건 당연히 아니지만, 몽주가 탐라에서 물산을 개발하면서 보인 것들은 당대의 지식 체계와는 분명히 구분되는 것이었고, 그 과정에서 얻는 ‘데이터’의 축적과 산술적 증명을 중시하면서, 그 일에 협력한 자들 사이에는 일종의 실증주의적 사고관이 자리 잡게 되었으니, 기존의 형이상학적인 지식 체계와 소원해질 수 있었다.
기술학교와 고학교의 교사들 중에는 일선에서 몽주가 이끄는 일에 종사했던 자들이 많은 덕에 그런 분위기가 학생들에게 전파되었고, 산업 현장을 체험한 기술학교 출신들에게는 더욱 확고한 가치관이 될 수 있었다.
물론, 아직은 지식 체계에 한계가 있어 과학 기술이라 분명히 평하기 어려운 면이 있고, 실증주의적 사고관 역시, 실증주의를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인 경험론과 합리론 중 경험론적인 면모가 두드러지는 편이기도 했다.
하나, 이미 방향성은 정해졌고, 필요한 건 시간과 그 시간이 아깝지 않은 노력뿐이었다.
때문에 몽주에게 있어 탐라의 조정이 가진 기조는 올바른 것이었다.
기조와 무관하게 탐라의 조정이 가지고 있는 약점은 바로 ‘세대 격차’였다.
처음 탐라국이 일어났을 때부터 조정을 구성한 신료들은 이미 ‘머리가 굵을 대로 굵은 자’들이고, 나이로 치면 젊은 자들도 중년 이상이었다.
한데, 고학교를 졸하면서 관리가 된 자들은 20, 30대가 주를 이루는 데다가, 최근에 관리로 임한 자들 중에는 갓 스물을 넘은 정도로 ‘어리다’ 싶은 이들도 적잖이 있었다.
조정에 다양한 연령대의 관리들이 종사하는 건 어느 나라나 있는 법이지만, 탐라국처럼, 고위직 및 중간직의 연령대와 5, 6품의 하급직의 연령대가 극심한 차이를 보이는 경우는 거의 찾기 어려웠다.
대신과 청장 같은 1, 2품의 고위직은 평균 연령이 40대 후반이고, 3품 이사관(理事官)과 4품 서기관(書記官)의 평균 연령도 고위직과 별 차이가 없는 40대 중반인 데 비해, 5품 행정관과 6품 행정부관의 평균 연령대는 서른 살에도 미치지 못했으니, 고위직과의 차이는 그렇다 쳐도, 중간직과의 차이가 근 20년에 이르는 건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관료제의 수직적 확장이 신입 관리들의 등용과 함께 진행된 터라, 5품 행정관들이라고 해도, 대개 3, 4년의 경력을 가진 관리에 불과한 탓이었다.
그나마 첫 고학교 졸업생들의 나이대가 높아서 30대의 연령이라도 된 것이지, 최근에 임명된 관리들은 3, 4년 후에도 여전히 20대였다.
사실 문명의 발전 역사에 비춰 볼 때, 전근대 시대에 20년 정도의 시간은 그리 큰 차이는 아니지만, 탐라국에서만큼은 분명한 격차였다.
4품 서기관의 관리들까지는 모두 중년 이상의 나이인 데다 탐라국의 건국 시기부터 나름의 분야에서 이력을 가진 자들을 발탁한 것이고, 행정관과 행정부관들은 탐라의 교육 제도를 통해 기술 관료로서 등용된 터라, 세대차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었다.
‘왕’의 충성스러운 측근에 가까운 고위직들과 ‘왕’을 우두머리로 하는 관료제의 일원인 바에 보다 충직한 하급직 기술 관료들.
크면 크고, 작다면 작을 수 있는 그 차이는 특별한 상황에서는 서로 다른 판단과 결정을 내릴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지금이야 기술 관료의 정체성이 강한 관리들이 하급직에 머물러 있어 그런 표면화되고 있지는 않았지만, 지금 하급직 관리들이 승품하여 점점 힘을 가지게 된다면, 언젠가는 그 차이가 갈등으로 드러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아직은 그런 걱정을 사서 할 때는 아니었다.
* * *
철푸덕!
“인나, 인마.”
강중이가 넘어져 울상을 짓자, 동생 뒤를 천천히 따르던 강영이가 대수롭지 않게 말하였다.
4살의 강중이는 그런 누나의 냉정함이 원망스러웠는지 울상 짓던 표정을 바꿔 잠시 째려보더니 천천히 일어났다.
“쨔샤, 난 너만 할 때 막 뛰어다녔어.”
전혀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아이들의 뒤를 따르던 몽주도 딸아이의 친절하지 않은 말에 무어라 지적할 수 없었다.
“강중이가 너무 약해서 걱정이에요.”
문득 곁에서 앵도가 한마디 하니, 몽주를 비롯한 주변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전혀 ‘아니올시다.’라는 표정을 지었다.
강중이도 충분히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다만, 비교 대상인 누나 강영이가 너무 건강했을 뿐이고, 어미인 앵도의 기준에 살짝 못 미칠 따름이었다.
몽주는 잠시 아들 녀석의 운명에 안타까운 마음을 품고는 다시 천천히 발을 옮겼다.
지금 그는 가족들과 함께 뜰을 거니는 중이었다. 물론, 뒤로 시중을 드는 하인 몇몇과 유모도 따르고 있었다.
몽주의 자택은 그리 변하지 않았지만, 체감으로는 훨씬 커졌다. 자택을 아우르는 모양의 별관에 들어서 있던 관부가 새로 지은 관청으로 이전하면서 절로 그리된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몽주의 부모가 탐라를 떠나 있다는 것이었다.
“아버님, 어머님은 잘 계신지 모르겠네요.”
“궁중후가 각별히 신경 쓰겠다고 했으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오.”
몽린의 부모이자, 이제는 몽주에게도 또 다른 부모인 해민과 주이는 지금 한양부에 가 있었다.
어머니 주이가 무슨 꿈이라도 꾼 건지 문득 천마산에 사원을 지어 공양하고 싶다고 원했기 때문이었다.
몽주는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어머니가 너무나 간절히 원하고, 아버지 해민도 이처럼 가문이 흥성하게 되었으니, 그 시작인 한양부에 절을 세워 부처의 은혜에 감사드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며 동조하자, 어쩔 수 없이 보내 드렸다.
아무래도 오래전에 몽주가 친 ‘뻥’을 진실로 믿은 탓도 있는 듯했기에 더 만류하기 어려웠다.
아마 지금도 사원에 들어가는 나무 하나, 돌 하나에도 축원을 새기며 건축을 관장하고 계실 것이다.
어쨌거나 가족과 함께 뜰을 노니며 반 시진쯤 여유를 부리고 나자, 어느 순간 정문 쪽에 마부가 대기하고 있는 게 보였다.
“이만 가 봐야겠소.”
“저는 안 가도 되겠어요?”
“어차피 화극 어른과 논의나 할 참이니, 문제없소.”
앵도는 여전히 비서원장이지만, 애초에 일종의 명예직과 같았다. 다만, 강중이도 이제 슬슬 엄마 품 밖을 벗어나기 시작하자, 비서원장의 역할을 다시 챙기기 시작하고 있었다.
“다녀오…….”
몽주는 발걸음을 떼며 고개를 돌려 관부에 가겠노라 말하다가 문득 앵도의 모습에 발을 멈췄다.
불어온 가을바람 한 줄기가 스치니, 앵도 반 묶음 머리 중에 묶이지 않은 머리카락이 날리고 있었고, 그게 무척이나 어울려 새삼 앵도의 미모가 눈에 띤 탓이었다.
몽주는 발걸음을 돌려 앵도의 곁으로 다가갔다.
“자내는 어찌 이처럼 미모를 유지하는 것이오?”
“……?”
뜬금없는 고백과 같은 말에 앵도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빙그레 웃더니 몽주에게 기대며 쑥스러워하였고, 몽주는 그런 아내를 가볍게 안아 주었다.
“요즘 자내의 머리 모양을 흉내 내는 여인들이 많아진 걸 아시오? 그게 다 자내가 어여뻐 보여서 그런 것이오.”
“민망하네요.”
본디 당대 고려 여인의 머리 모양은 조선 초기와 마찬가지로 혼인 전에는 댕기 머리고, 혼인 후에는 쪽을 지거나 가채를 올리는 정도였다.
하나, 앵도는 그녀의 생머리를 좋아하는 몽주를 위해 집 안에서는 머리를 풀거나 가볍게 묶고 있었고, 근래에는 관부에 나가지 않을 때는 밖에 나갈 때도 쪽진 머리를 하지 않았었다.
그러다 보니 앵도를 따라 머리를 바짝 묶지 않는 여인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국공부인의 ‘패션’을 추종하는 경향 탓이 크긴 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몽주의 눈에는, 혼인한 지 10여 년이 흘렀음에도 처음 봤을 때와 별반 달라지지 않은 앵도가 여전히 아름다웠다.
후다닥!
문득 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강영이가 몽주의 허리를 감싸 안았고, 이어 강중이도 다가와 몽주의 다리를 부둥켜안았다.
“허허, 오늘은 여러모로 그냥 집에 있고 싶군.”
* * *
“뭐 그리 급한 일이라고, 기어이 나왔나?”
“하하, 그래도 중요한 일인데, 어찌 집에만 있을 수 있습니까.”
휘하 관원들과 함께 집무실로 들어온 공관대신의 말에 몽주는 겸연쩍게 웃었다.
나오기 전에 아내와 아이들을 한참이나 부둥켜안고 있었고, 그걸 본 눈들이 많으니, 그사이에 소문이 나 화극에게도 전해진 모양이었다.
“그게 제충국분으로 만든 물산인 모양이군요.”
잠시 웃던 몽주는 분위기를 바꿔, 공관부 관원들이 가져온 꾸러미들 중 탁자 위에 있는 것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맞네. 난 정말이지, 국화꽃에 그런 효과가 있는 줄 미처 몰랐네.”
대체 국화의 효능에 대해 어찌 안 것인지를 묻는 시선을 던지는 걸 슬쩍 피하며 몽주는 제충국분 물산을 보여달라 하였다.
제충국분은 제충국(除蟲菊)의 분(粉)을 말하는 것으로, 정확히는 국화 중에서 선홍빛 국화의 씨방을 말린 후, 가루화한 것이었다.
다만, 제충국분으로 만든 물산은 정확히 말하면, 제충국분을 주정에 녹여 이물질을 걸러 내고, 주정을 날려 버린 후, 남은 액상을 이용한 것이었다.
그 액상에 남은 물질은 ‘피레트린(pyrethrin)’이라는 것으로,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최고의 살충제였다.
인간을 포함한 온혈 동물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곤충만 신경 마비를 일으켜 죽게 만드는 살충제.
그 피레트린의 함유량이 높은 제충국은 고려에도 자생하였으나, 상대적으로 개체수가 적은 편이었다.
하여, 2년 전부터 몽주는 제충국을 크게 쓰기 위해 남면과 가까운 경기이남 지역 중 상대적으로 선선한 영서지방을 중심으로 재배를 도모하는 한편, 적은 양이지만 미리 구한 제충국으로 제충국분을 만들고, 피레트린을 추출하는 실험을 시작하였다.
그리 어려운 제조 과정이 필요한 건 아닌 터라, 피레트린 추출까지는 비교적 빨리 완성했지만, 그것을 이용한 여러 물산들은 이제야 완성되었다. 물론, 이 또한 제조 과정의 난이도가 문제라기보다는 공관부가 너무나 바쁜 중에 아직 생산할 여건도 갖추지 못한 것에 매진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제충국분을 이용한 물산은 세 종류로, 가루로 된 것, 콩알 모양인 것, 그리고 제수(祭需)용 향처럼 생긴 것이었다.
화극은 그중에서 가루가 든 천주머니를 펼쳐 보였다.
“이미 농관대신이 장계를 올려 알겠지만, 이 제충국분을 물에 풀어 전답에 뿌리면 해충이 감히 들러붙지 못하고, 있던 해충도 죽어 나가네.”
쉽게 말해서 제충국분은 그 자체가 해충박멸용 농약으로 쓰일 수 있었다.
“다만, 널리 쓰이기에는 다소 곤란한 부분이 있네. 비단 해충뿐만 아니라 충이란 충은 다 죽어 나가니, 예컨대, 양봉 하는 곳 주변에서는 유의해야 할 걸세. 그리고 또, 제대로 효과를 보자면 생각보다 많은 양이 필요하더군. 게다가 한번 뿌린다고 효과가 이어지는 것도 아니라서, 비라도 내린 뒤에는 그 효과가 크게 떨어진다네.”
몽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하였음을 피력하였다. 사실 이미 다 알고 만들게 한 것이었다. 그저 벼멸구같이 쌀 생산에 치명타를 입히는 해충이 창궐하는 지역에서라도 쓰면 족하다 싶었다.
이어, 화극이 선보인 건 환(丸) 형태의 것이었다.
“이건 좀 기가 막히더군. 마르고 설사가 심한 말들에게 먹였는데, 나중에 그 말들의 변을 보니, 으이구…….”
상상만 해도 싫다는 양 진저리를 치는 화극을 보니, 회충(蛔蟲)이 말똥에 잔뜩 섞여 있었던 모양이었다.
더 말을 들어 보니, 예상대로 제충국분으로 만든 기생충약의 부작용은 없는 듯했다.
“저는 장차 이 환을 백성들에게 정기적으로 복용케 하고자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네.”
화극도 이미 그 환을 만든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던 듯 이내 수긍하였다.
사실 탐라는 물론이고, 동아시아 전역에서 사람과 동물의 대소변을 비료로 널리 쓰이고 있었기에, 기생충 감염으로 인한 질환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으니, 말이 회충을 쏟아 낸 것을 본 화극이라면 그 환을 어디에 쓰려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면, 이 멸충환(滅蟲丸)을 만드는 것이 최우선이겠구먼.”
“그렇긴 합니다만, 저것도 마찬가지로 중요합니다.”
몽주는 아직 화극이 보이지 않은 향(香)을 가리키며 말했다.
“멸문향(滅蚊香) 말인가?”
화극은, 멸충환도 그렇더니, 멸문향도 이미 이름을 정해 둔 모양이었다.
“멸문향이 모기와 파리를 쫓는데 능하긴 하지만, 그리 급한 건 아닌 듯한데? 계피향대(香袋 : 향주머니)도 널리 퍼져 있기도 하고.”
“남양의 모기는 장난이 아니거든요.”
한반도의 모기는 좀 과소평가하면, 그냥 귀찮은 수준이다.
말라리아 같은 전염병이 한반도에도 발현되지만, 열대성 말라리아에 비하면 덜 치명적이었다.
하나, 장차 남양 진출은 곧 열대 지방으로의 진출이기도 한 만큼, 모기가 매개체로 쓰이는 전염병 예방을 위한 모기 구제책은 필수였다.
“남양의 모기는 계피향 정도로는 퇴치가 어려울 겁니다. 보다 확실한 대책이 필요하죠.”
“그리 말한다면야…… 알았네. 힘써 보지.”
“죄송하군요. 안 그래도 바쁘신데, 자꾸 일감을 늘려서요. 조만간 상단 소유의 공소를 확충하면, 제충국분 물산의 제조는 다 그리로 옮기도록 할 테니, 그때까지만 수고해 주십시오.”
몽주는 몇 년 사이에 흰머리가 더 늘어난 화극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말하였다.
“허허, 나를 그렇게 불쌍하게 보니 좀 그렇구먼. 이것 보게나, 아직 나는 정정하네.”
화극은 문득 소매를 걷어 이두박근의 근육에 힘을 줘 보였다.
“예전보다 좀 작아진 듯한데요?”
“엉? 쩝…….”
오래전 처음 보았을 때, 몽주의 멱살을 잡아 쥐고 흔들 때 보았던 화극의 굳건했던 팔뚝도 이제 그때와 같진 않았다.
민망한 표정으로 소매를 내리는 화극을 보며, 몽주는 실소하며 말하였다.
“그래도 마음은 한창이신 듯하니, 기쁩니다. 이제 다른 걸 볼까요?”
몽주의 말에 공관부 관리들 중 하나가 바닥에 내려놓고 있던 작은 자루를 올려놓았다.
그 자루를 풀어 보자 쇠구슬들이 있었다.
“그게 그래 봬도 일백 번의 방포를 견딘 놈들이네. 이만하면 쓸 만하겠지?”
화극이 자랑스럽게 말하였으니, 과연 그가 그럴 만했다.
‘베어링을 뭐라고 불러야 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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