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267)
한 척의 배가 동요하를 따라 내려와 영구 포구에 닿으니, 미리 대기하고 있던 영구군의 관리들이 일제히 허리를 굽혀 읍하였다.
배에서 발판이 내려지기 무섭게 하선한 건 요동공 이성계였다.
“어디 있는가?”
“청사 주빈관에서 쉬고 있을 겁니다.”
수령이 답하자, 이성계는 고개를 끄덕이곤 대령해 놓은 말 위에 올라탔다.
그에 앞서 한 무리의 군병들이 먼저 말을 몰고 나가며 구경을 위해 모인 백성들을 좌우로 밀어내 길을 텄다.
“어서 가자!”
이성계가 소리치고 말을 몰아 시가를 달리기 시작했으니, 그의 마음은 이미 군청사에 닿아 있었다.
‘대체 어찌한 것인가.’
요동공은 그것이 궁금했다. 그렇기에 심양에 있던 그가 영구군까지 말과 배를 몰아 서둘러 내려왔으니, 주빈관에 있을 탐라공의 멱살이라도 잡아서 자초지종을 토하게 만들고 싶었다.
물론, 나쁜 일은 아니었다.
장춘을 취하라는 명령이자, 허락이었으니까.
그건 정말 뜻밖의 일이었다.
요동공도 나하추의 세력 내에 뭔가 일이 생겼다는 건 알고 있었고, 나하추가 그의 부족들을 이끌고 서쪽으로 출병하면서 장춘과 그 주변부의 군력이 크게 낮아진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가 심양에 가 있었던 것도 북방의 움직임을 주시하기 위함이었으니까.
하나, 지금이 장춘을 노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을 알면서도 요동공은 감히 군사를 움직일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건 명나라, 정확히는 연왕과의 관계 때문이었다.
괜히 독단으로 장춘을 취했다가 똑같이 장춘을 노리던 연왕과의 관계가 틀어지면 오히려 손해이지 않은가.
하여, 아쉬운 입맛만을 다시고 있을 때, 그의 앞에 급한 파발이 당도하였으니, 그건 연왕이 그에게 장춘을 치는 것이 어떻겠냐며 권하는 내용이었다.
문맥상 같이 치자는 것도 아니고, 요동이 홀로 장춘을 점령하라는 말이었으니, 요동공으로서는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아무리 연왕이라고 해도, 요동이 홀로 차지한 장춘에 뒤늦게 지분을 요구할 수는 없음을 생각하면, 그건 연국이 장춘을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한데, 그 직후에 탐라공이 요동국을 방문한다는 선편이 도착했으니, 요동공은 탐라공이 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과 관련이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동시에 심양을 급히 떠나오는 중에 요성에서 전해 들은 보고 또한 떠올랐다.
그 보고는 요동국을 따르는 서쪽 부족으로부터 온 것이었는데, 그 내용은 동금주의 무족 전사들이 장춘 쪽을 압박하고 있으며, 송화강(숭구리강) 상류를 새로운 경계로 삼으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건 마치 나하추가 장춘을 떠날 것임을 탐라국이 이미 알고 있었다는 증거처럼 보였다.
또, 만약 연국이 개입하려 했다면 동금주가 그런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요동국이 장춘을 쥐게 될 상황임을 탐라국이 확신하고 있었음을 알려 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변화하고 있는 판세가 탐라국에 의해, 탐라공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하는 것이고, 요동국은 탐라공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는 꼴과 같다는 말이었다.
‘달콤하지만 씁쓸하구나.’
이성계는 그의 나라와 관련된 중요한 사항이 막후에서 연국과 탐라국에 의해 결정되는 것 같아 입맛이 썼다.
그것이 아무리 요동국에 이로울지라도.
* * *
“요동공이 은근히 경계하는 것 같군.”
요동공과의 짧은 만남이 끝난 뒤, 화극이 몽주를 보며 한 말이었다.
“은근히…… 가 아니라, 대놓고 경계하는 모습이었죠.”
“왜 그러는지 이해 못하겠군.”
화극은 입술을 삐죽이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조금 전까지, 대략 한 식경 정도 요동공과 만났는데, 그 분위기란 화기애애한 것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일단 처음 주빈관에 들어서는 이성계의 기세부터가 어찌 보면 흉흉하다 싶었으니, 마치 전장으로 돌격하는 장수처럼 보일 정도였다.
물론, 대화 자체는 조심스러웠고, 언성이 높아지거나 험한 말이 나온 것도 아니었다.
다만, 요동공이 한 말 중에 은근히 뼈가 있어, 마치 네가 무슨 꿍꿍이인지 알아내야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듯했을 뿐이었다.
뭐, 그런 정도야 나라를 대표하는 협상의 자리에서는 있을 수도 있는 법이다.
“너무 크고 맛있는 떡을 공으로 건네주니, 그 떡에 독이 들어 있을까 의심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탁기가 간단하게 평하니, 단순한 반응이긴 하나, 대체로 맞는 이야기였다.
연국의 개입은 배제시켜 놨고, 나하추가 서쪽으로 이동하여 현재 장춘의 군력은 전과 비교하면 절반에 불과하다.
그 정도라면 예전보다 부강해진 요동국만으로도 충분히 도모할 수 있을 테니, 공으로 건네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게다가 장춘에 남은 군력이 수적으로는 반이라 하나, 질적으로는 더 아래라 해야 마땅하였으니, 무엇보다 지금 장춘에 남은 부족들은 결속력이 미약했다.
전에 보았던 파얀이라는 자가 나하추의 반대편 수장이라곤 하지만, 나하추와 대적하였기에 의미가 있었을 뿐, 나하추가 떠난 상황에서 또 다른 나하추가 될 수는 없는 자였으므로 실제 군력은 절반에도 못 미칠 것이다.
말 그대로 이성계가 진격을 명하기만 하면 장춘을 얻을 수 있는 상황.
하나, 그 상황이 탐라공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 하나가 이성계로 하여금 경계심을 품게 만들었다. 아니, 장춘 문제는 ‘방아쇠’를 당기는 역할이었을 테고, 그전부터 점점 커져만 갔던 탐라국의 경제력과 영향력에 대한 우려가 쌓이고 쌓인 끝에 겉으로 드러나기에 이르렀을 것이다.
몽주는 이마를 긁적거리다가 문든 화극을 보며 물었다.
“어르신이 요동공이라면 저를 경계하시겠습니까?”
“내가? 글쎄…… 사실 요동공이 아니라, 탐라국에 속하지 않는 권세가들이라면 둘 중 하나가 아니겠나. 몹시 경계하거나, 몹시 친해지려거나. 또, 그 둘 사이로 심경이 오갈 수도 있을 테고.”
몽주는 실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몽주가 요동국 내에 큰 영향력을 심으려 했던 일이 아니더라도, 근접한 나라의 군주로서 요동공은 탐라국과 자신이 충분히 신경 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몽주의 도움을 받아 요동국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지금도 명목상 같은 고려의 제후국으로서 여전히 손을 잡고 있다고 하더라도, 한 나라의 주인으로서 경계심이 들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하지만, 요동공이 달리 선택할 게 있겠습니까. 쥐어 준 떡을 먹지 않으면 그 자의 손해일 뿐이니까요.”
탁기가 다시 간단하게 결론을 지으니, 그 또한 틀린 말은 아니었다.
요동공 이성계는 절대 장춘을 포기하지 못한다.
특히, 지금의 요동국은 밀농사와 양목으로 나라를 성장시키고 있으니, 그 산업들을 더욱 성장시키기 위해서라도 추가적인 영토가 필요했는데, 당장 요동국이 노릴 수 있는 곳은 장춘뿐이었다.
“문제는 요동공이 나를 너무 경계하는 건 좋지 못하다는 것이지요. 그 경계심이 자칫 요동공으로 하여금 잘못된 판단을 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요.”
“혹시 요동국이 탐라를 너무 경계하다가, 명나라에 치우칠 것을 우려하는 겐가?”
몽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부작용도 있겠지만, 역시나 가장 큰 건 요동국이 친명(親明)으로 노선을 변경하는 것이니까.
“하면, 그 우려는 혹시 지난번에 말한 것과 관련이 있는 겐가? 그…… 분열 말이네.”
“…….”
몽주는 아니라고 대답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아닌 게 아니었으니까.
물론, 명나라의 분열을 조장할 것인지 말 것인지조차 아직 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요동국까지 변수로 두고 생각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다만, 만약 명나라의 분열을 조장하기로 한다면, 어쩌면 군사력이 동원될 상황도 올 수 있고, 그렇다면 요동국이 ‘아군’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는 정도는 생각할 수 있었다.
아니, 명나라의 규모를 생각하면, 기본적으로 명나라를 상대로 하는 모든 일은 그 외 모든 나라와 세력을 규합하는 것을 전제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명나라의 분열이라는 어려운 화두가 다시 나오자, 몽주는 물론이고, 화극과 탁기도 입을 무겁게 했다.
각자의 생각이 무엇이든 입에 담는 것조차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사안이지 않은가.
그 무거운 분위기는 몽주를 실소하게 만들었다.
“후후,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애초에 요동마저 제가 경영했다면 어땠을까요?”
“그야말로 이제 와서야 할 수 있는 말 아니겠나. 처음부터 요동을 얻고 지킬 수 있었다면 그리했겠지. 과거지사를 후회해 봐야 무슨 소용이겠나. 그때는 이성계에게 요동을 주는 것이 최선이었지.”
몽주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 주는 화극이었다.
* * *
요동공 이성계가 장춘을 공략하겠다고 답한 것은 다음 날 다시 만난 자리에서였다.
그 대답하는 표정에는, 할 수만 있다면 거절하고 싶다는 기색이 역력했으나, 몽주는 모른 체하며 승승장구를 기원한다 축원만 해 주었다.
한데, 예기치 못한 말들이 그 뒤를 이었다.
“우리가 서로 인연이 닿아 알게 된 지도 10년이 넘었소.”
“그렇습니다. 꽤 오래 지났군요. 장군께서는 동북면의 상만호셨고, 저는 일개 도령에 불과했었지요.”
이성계가 과거를 꺼내 들자, 몽주도 분위기를 바꿀 겸하여 말을 거들었다.
“돌이켜보면, 공과 나는 참으로 많은 일을 함께하였소. 설령 함께 뜻을 나누어 동업하지 않은 일이라고 해도,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다 생각하오.”
“동감합니다.”
“그리고 이제 요동과 탐라, 고려의 북과 남에서 각각의 나라를 경영함에 있어, 그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마치 근린인 것처럼 왕래가 빈번하고, 서로가 서로를 돕고 있으니, 나라를 사람이라 치면, 요동과 탐라는 그야말로 친우가 아니겠소?”
“…….”
몽주는 고개는 끄덕이되, 무어라 답하진 않았다. 이성계가 말을 몰아가는 방향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요동과 탐라가 고려국왕을 함께 모시고 있어, 형식상 형제의 나라와 같다곤 하나, 이제 두 나라가 모두 그 다스림에 체계가 잡힌 만큼, 상호 관계를 공식화할 필요가 있다가 보오. 공의 생각은 어떠시오?”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만, 관계를 공식화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몽주는 조심스럽게 그 뜻을 물었다.
속내로는 혹시 지난날 자신과 신돈 간에 맺었던 동맹, 즉 좌제우휴의 결의 같은 걸 바라는 것인지 의아해했으나, 그 결의가 흐지부지된 것을 모를 리 없는 요동공이 그런 걸 되풀이할…….
“나에게는 아들이 많고, 공에게도 여식이 있소. 이참에 공녀와 내 아들 중 하나를 혼인시키는 것이 어떻겠소?”
“아…….”
혼인 동맹이라……. 전혀 생각지 못한 건 아니었다. 첫 천몽에서 자녀들을 정략결혼의 도구로 삼았던 게 그였으니까.
다만, 아직은 강영이든 몽건이든 너무 어리다고만 여겨, 그들의 혼인 또한 더 훗날의 일이라고 단정 지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몽주는 이성계가 혼인을 입에 담는 순간, 거부감부터 가졌다.
그건 첫 천몽에서 아이들을 혼맥의 수단으로 삼은 것에 대한 반성적인 반작용이었고, 또, 천몽이 단순한 꿈이 아닌 또 하나의 현실임을 알게 되자, 현대인의 속내를 가진 이로서, 자식을 정략결혼의 수단으로 삼는 것 자체가 내키지 않은 탓이었다.
아이는 소유물이 아니라 또 다른 인격체가 아닌가.
‘너무 순진한 생각인가.’
또 하나의 현실이기에, 자신은 현대인이 아닌 당대인이자, 고려의 권력자이면서 귀한 족속임을 직시해야 한다는 소리가 마음속에서 울려 퍼졌다.
아니, 현대에서도 돈과 권력을 쥔 자들은 여전히 정략적으로 혼인을 맺지 않는가.
“내키지 않으시오?”
머릿속이 복잡한 중에 요동공의 물음이 있었으니, 그는 이맛살을 살짝 찌푸린 채 몽주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표정을 보아하니, 만약 거부한다면 그가 자신과 탐라국을 어찌 생각할지, 장차 어찌 대할지 뻔히 보였다.
그 순간, 몽주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어젯밤 화극과 탁기 앞에서 잠시 했던 후회였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예전, 남과 북을 아우를 수 없었고, 누군가 대신 요동을 경영해 줘야 했기에 그리고 이성계의 야망을 고려가 아닌 다른 곳에서 충족시켜 줘야 했기에 그로 하여금 요동을 얻어 지키게 했었다.
진정한 왕좌를 노리는 이성계이기에 명나라의 제후가 되지 않을 것이라 여겼고, 그것이 이성계를 자신이 움직일 수 있게 만드는 촉매로 작용할 것이라 믿었다.
또, 탐라의 경제력을 통해 범 고려의 영역을 좌지우지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은 탓이기도 했다.
한데, 요동국은 나름의 산업을 일구어 경제의 근간을 얻었고, 그를 통해 탐라와의 교역에서 일방적인 관계를 강요당하는 것을 면하게 되었다.
그것이 애초에 계획했던 것과 달리, 요동국에 대한 탐라의 영향력을 축소하게 만들었으니, 이성계는 자신이 부릴 수 있는 객체에서 독립적인 주체로 남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 요동공이 명백히 보이는 견제의식은 그가 자신의 ‘장기말’이 아니라 마주하여 장기를 두는 ‘상대편’임을 깨닫게 만들고 있었다.
‘너무 과민하는 것일까.’
그럴 수도 있지만, 과민이든 아니든, 중요한 건 이제는 물릴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었다.
이제 와서 요동을 탐라의 것으로 하려 하든, 혹은 경제적인 제재로 압박하려 하든, 그것은 이성계로 하여금 더 큰 위기감을 가지게 할 것이다.
탐라가 요동을 치는 것은 그 자체가 요동공 존망의 위기일 것이고, 경제적으로 압박하는 것도, 요동의 산업이 커진 만큼 더 큰 분노를 일으킬 테니까.
그리고 그것은 요동국이 명나라에 크게 치우치거나 귀의하는 결과로 드러날 가능성이 높았다.
아무리 국왕의 지위를 원하는 이성계라고 해도, 요동공국마저 잃거나 무너질 상황보다는 차라리 명국의 제후국으로 안전을 보장 받는 선택이 훨씬 나을 테니까.
요동국이 명나라의 품에 뛰어드는 순간, 탐라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게 된다.
요동을 포기하거나 명나라와 싸우거나.
그 둘 중에 하나밖에.
어느 쪽이든 결단코 피해야 할 일이고, 이제 점검하고 고민해 볼 명나라 분열책보다도 더 힘든 상황을 만들게 될 것이다.
‘요동마저 더 길게 보고 대응해야 하는 건가. 이거야 원…….’
몽주는 속내로 자조(自嘲)했으니, 막말로 ‘맞짱’ 뜨면 동금주의 전력만으로도 요동국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건만, 혹시라도 명나라가 뒷배로 붙을까 ‘주먹’을 들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못해 우스웠다.
‘그러고 보면, 명나라가 너무 크긴 커.’
이게 다 명나라 때문이다.
문득 명나라 분열책을 조금 더 달콤하게 느끼면서, 몽주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뭘 하든 요동국을 손에서 놓을 수는 없으니, 죽을 때 죽더라도 안고 죽어야 하지 않겠는가.
짧은 순간이지만, 긴 생각을 마친 몽주는 표정을 일별하며 요동공을 향해 물었다.
“만약 혼인하고자 한다면, 어느 공자를 생각하고 계신 건지요?”
그러자, 이성계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잠시 생각을 하는 모습을 보이니, 그도 혼인에 대해 깊이 생각했던 건 아닌 듯했다. 아마 견제심이 끓어오르는 중에, 어제 인사하러 나온 몽건과 강영이를 보고 문득 떠올린 게 아닐까 싶었다.
“너무 나이 차가 크면 좋지 못할 터이니, 방원이가 가장 적당할 듯하오. 올해 열여섯이고, 나를 많이 닮아 벌써부터 기골이 장대하니, 공녀의 키가 큰 것을 생각해 보면 방원이가 딱 맞겠다 싶구려. 허허, 그 두 아이들을 나란히 세워 둔 걸 생각해 보니, 그림이 꽤 좋을 듯하오. 허허허.”
“…….”
방원. 이방원. 태종 이방원……?!
몽주는 이방원의 이름을 속으로 되뇌니, 어느 순간 이맛살이 크게 구겨졌고, 그걸 본 이성계 또한 인상을 쓰며 물었다.
“어찌 그러시오? 방원이가 마땅치 않으신 게요? 직접 본 일은 없었을 터인데…… 혹 방원이에 대해 이상한 소문이라도 들으셨소?”
“……그건 아닙니다.”
‘소문이 아니라, 역사적 평가를 보았지.’
이방원은 안 된다.
그 철혈의 군주를 사위로, 내 딸의 남편으로 맞이할 수는 없다.
아니, 역사에 기록된 이방원의 성품은 둘째치고 정말 꺼림칙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세종대왕은 어쩌고?!’
이미 역사가 바뀌어 이방원이, 강영이와 혼인하지 않게 된다고 해도, 반드시 민씨 부인을 맞이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사실 그가 같은 부인을 맞이하더라도 꼭 ‘이도’가 태어날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나, 분명한 건 강영이와 혼인하게 되면, 세종 이도가 태어날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인데, 그걸 요동공에게 설명할 길이 없었다.
“탐라공…….”
몽주의 장고가 있자, 이성계가 그를 부르며 눈살을 찌푸렸다.
“혹시 방원이 맘에 드는 게 아니라, 나와 사돈이 되는 게 싫으신 게요?”
“싫을 리가요. 오히려 청해 주시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다만, 제 딸아이가 아직 너무 어리니 급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또, 지금 공께서 방원 공자를 언급하셨지만, 천천히 생각하면 다른 공자가 더 낫다 싶으실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음, 그야…….”
역시나 요동공은 이 혼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건 아닌 듯, 몽주가 조금 설득하자, 쉽게 물러났다.
혼인을 거부하겠노라 말한 것도 아니고, 천천히 진행하자는 말에 굳이 발끈할 이유는 없으니.
한데, 일단 조금 미루긴 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나중에 혼인하게 하려 해도, 정작 요동공의 아들 중에 적당한 이가 없을 듯했다.
장남부터 삼남까지는 혼인했을 것이고, 그 아래에 또 세 아들이 있긴 했지만, 그들 모두가 달갑지 않았다.
사남 방간은 역사 기록에 소인배로 남아 있고, 강영과 비슷한 연배인 육남 방연은 몸이 약해 명이 길지 않은 자였다.
그리고 오남 방원은 조선 초기를 피로 물들인 자인 데다가 세종대왕의 아비인 자였으니…….
차라리 몽건이를 혼인하게 할까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이성계의 딸들은 어린애이거나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시점이었다.
혼인한다면 강영이뿐인 상황.
‘강영이가 혼인을 한다라…….’
딸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동시에, 그게 가능하기는 한 일이가 싶은 의문도 들었다.
부모가 모두 키가 큰 덕에 이미 어지간한 여인들보다 큰 강영이지만, 몸만 자랐을 뿐 아직 철딱서니 없는 그 아이가 혼인하여 일가를 꾸린다는 게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어째 혼인 동맹 또한 쉽게 진행될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몽주의 마음이 복잡한 것도 모르고 눈앞에 있는 이성계는 그래도 혼인 동맹을 하게 될 것이라는 데 마음이 풀렸는지 웃는 낯을 보이고 있었다.
“조만간 사돈지간이 되겠구려. 왜 이제야 혼사를 맺는 것을 생각했는지 아쉬울 따름이오. 이 혼사를 통해 요동국과 탐라국은 더욱 상부상조할 것이고, 이는 고려를 더 드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터이니, 모두가 좋은 일이 아니겠소? 하하하.”
“하, 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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