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281)
* * *
몽주가 이주섬을 떠난 것은 그믐달 스무 날쯤이었다.
동부 원주민 부족을 ‘대아타얄 동맹’에 끌어들인 후, 나머지 일은 남양 대사 석삼에게 일임하였다.
이제 관리로서 이력이 꽤 쌓인 석삼은 이주섬의 사업을 담당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다만, 몽주는 아타얄 부족을 공략하는 데까지만 전권을 주고, 그 이후의 일은 다시 몽주의 허락을 얻도록 하였는데, 이는 중국인들과 평포족을 구축(驅逐)하는 것이 더 어려운 것임은 물론, 명나라가 이주섬에 탐라가 진출하고 있음을 알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몽주가 여러 번 이해시키긴 했지만, 석삼은 이주섬 진출과 관련해서 명나라의 위협을 작게 인식하려는 경향이 있으니, 몽주가 다시 이주섬으로 와서 지휘하든지 아니면, 더 진중한 자를 따로 보내 석삼이 혹여 저지를 수 있는 실수를 방지할 생각이었다.
돌아가는 길은 온 길의 역순이었다.
동중국해 연안을 통해 제주로 곧바로 가는 방법이 더 빠를 듯했지만, 아직 한 번도 항행해 본 적 없기에 기존의 노선을 따르기로 하였다.
그리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명나라 배와 남중국해에서 조우하여 괜한 의심을 살 수도 있으니, 아직은 피해야 할 항로였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돌아가는 길에 여나국과 유구섬에 들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여나국이나 유구섬이나 별다른 일은 없었다. 뭔가 일이 있을 만큼 긴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간 여나국에 주둔했던 탐라군병들은 포구 근처 언덕 위에 목책을 세우고 군진을 건설해 두었는데, 그 위치가 좋아 방어하기 유리한 곳이었고, 포구를 내려다볼 수 있으면서도 포구 고을 일대를 사정거리 안에 둘 수 있었다.
몽주는 기존에 주둔했던 탐라군병들 중에 아픈 자들을 교체하는 것으로 주둔군 문제를 일단락 지었다.
탐라로 돌아가면 이주섬 원주민들을 지원할 물자를 싣는 것을 시작으로 기존의 탐라-구주의 물류 라인이 유구-이주로 연결되어 활성화될 것인 바, 여나국도 더 이상 외딴 곳이 되지 않을 것이다.
여나국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다시 항로에 올라 유구섬에 닿으니, 사토왕은 이미 떠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덕분에 하루 만에 다시 유구섬을 떠날 수 있었고, 구주를 경유하여 탐라에 원활하게 닿으니, 이주섬을 떠난 지 딱 열하루 만이었다.
유구 사토왕을 의례히 그러하였듯 대촌현 행재청에 묶게 하고 홍로현으로 다시 향하는데, 때마침 또 다른 탐라 선단과 조우하였다.
동금주에서 온 탁기의 선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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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주가 이주섬으로 떠난 뒤, 며칠 후에 탁기는 동금주로 향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금주에서 몽골족이 축출되는 것과 관련하여 생길 수 있는 주요 사안에 지휘권을 가진 자가 빠르게 대응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탁기의 판단과 결정이 필요할 만큼 큰일은 없었다.
요동국이 장춘을 비교적 순조롭게 취하였고, 쫓겨난 몽골족들도 동금주 쪽으로 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무족과 그간 악연이 많이 쌓인 만큼, 앙갚음을 우려한 모양이었다.
장춘을 취한 요동국과의 경계도, 동금주가 한 발 더 들어간 상태에서 자연스레 고착되었다.
요동공이 따로 명해 둔 것이 있었는지 장춘의 요동군은 무족 전사들이 새로이 세운 거점 쪽으로는 얼씬 거리지도 않았다.
덕분에 동금주는 기존의 도로망이었던 훈춘-닝구타-일란 할라-하르빈에 더해 훈춘-비라카-지린우라-하르빈으로 이어지는 노선을 갖출 수 있는 조건을 충족하였고, 나아가 금주 북부의 머더러까지 확보하게 되었다.
물론, 새로 얻은 영역은 아직은 그저 황무지이거나, 늪지에 불과한 상태였고, 앞으로도 한동안은 크게 개발하긴 어려웠다.
아마 요동국과의 관계에 따라 지리우라 지역에 요동국과의 육상 교역을 위한 고을을 건설하는 것 정도가 비교적 가까운 시일 내에 얻을 수 있는 최선일 것이다.
요동국의 장춘 쟁취와 관련하여 동금주의 상황이 부드럽게 넘어가자, 탁기가 동금주에 온 가장 중요한 이유가 무색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탁기는 동금주에 직접 온 것이 비교적 만족스러웠다.
그 이유는 바로 고용병 모집 때문이었다.
탐라공이 탐라의 영역 전반에 걸쳐 고용병을 모집하게 하였는데, 그중에서도 동금주의 무족은 가장 적합한 대상자들이었다.
무족 전사들은 따로 훈련을 받지 않더라도, 이미 기마술과 궁술 등 많은 부분에서 훌륭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고, 거친 환경에서 전투에 이력이 있는 만큼 최고의 고용병 후보들인 셈이었다.
때문에 탁기는 동금주를 시찰함과 동시에 무족 부족들마다 고용병의 모집에 대해 손수 설명하며 응할 것을 청하였다.
반응은 대체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녹둔군을 통해 탐라와 경제적 핏줄이 연결된 동금주에서 탐라공이라는 이름은 충분히 대단한 것이었고, 그런 탐라공이 좋은 조건에서 고용병을 원한다니, 무족들이 이를 무시하거나 경시할 리가 없었다.
다만, 괜찮은 분위기와 달리 처음에는 많은 이들이 응할 것 같지 않았다.
이는 무족들이 고향을 버리고 전혀 다른 환경의 남쪽으로 가야 하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무족 전사들의 수가 많지 않은 탓이었다.
물론, 무족 전사들의 절대적인 수는 늘면 늘었지, 줄어든 건 아니었다.
하나, 탐라와의 교역과 지원 덕에 출산율과 유아 생존율이 늘어나면서 무족의 인구가 급상승하는 가운데 아직 전사로 쓸 수 있는 성인 남성의 인구는 별로 변화가 없었으니, 상대적으로 전체 인구 대비 전사의 수가 적어진 것이다.
또, 동금주에도 몇몇 산업이 자리를 잡으면서 무족 남성들 중에서도 전사로서 살기를 포기하는 이들도 적잖은 탓이기도 했다.
선천적으로 전사로서의 자질이 부족했던 남성들이 예전에는 억지로 전사로 살아야 했다면, 이제는 또 다른 인생을 살 ‘옵션’이 생긴 탓이었다.
하여, 자기 부족을 지킬 기본적인 전사들을 제외하고 나면, 고용병에 응할 수 있는 수는 소수에 불과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무족 전사 출신들로 예정된 고용병 전체 중 절반가량을 충당하고 싶었던 탁기로서는 아쉬운 고민을 해야 했는데, 뜻밖에도 아주 적극적으로 응하려는 부족이 있었다.
그 부족은 바로 타온(桃溫) 부족으로, 부족장인 야고부는 부족 전체 전사들 중 절반을 고용병으로 내준 것은 물론, 본인 스스로도 고용병에 지원하기까지 하였다.
타온 부족은 오래전에 동금주 도집사 허호필이 오도리부족의 먼터무와 후르하 부족의 아하추와 더불어 닝구타를 공략하러 가는 중에 포섭된 부족으로, 당시 소년 부족장이었던 야고부는 어느덧 크게 장성하여 부족을 이끌고 있었다.
타온의 야고부는 탐라군의 전력에 크게 감명 받았는지, 탐라국의 일에 상당히 적극적이었는데, 동금주 지역을 부족들에게 나눠 줄 때, 맨 처음 훈춘을 원했던 부족이 바로 타온 부족이었다.
다만, 그 후에 먼터무와 아하추가 훈춘을 원하는 바람에 세에서 밀린 타온 부족은 비라카에 자리 잡았고, 훈춘 외에는 가장 가까운 곳인 만큼 녹둔군과 교통하는 것에 크게 신경을 썼다.
실제로 닝구타로 이어지는 훈닝가도는 녹둔군에서 탐라의 힘으로 건설한 것이지만, 훈춘과 비라카를 연결하는 도로는 타온 부족이 먼저 청원하고, 앞장서 인력을 동원하여 건설한 것이었다.
그 정도로 탐라국에 호의적인 타온 부족인 만큼 고용병 모집에서도 크게 응한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타온 부족이 대단위로 고용병에 응하자, 다른 부족들 중에서도 그에 자극을 받았는지 예정보다 더 많은 전사들을 고용병에 응하게 하는 부족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상대적으로 작은 부족들로 큰 부족에 비해 탐라국과의 연관성이 작았던 것을 고용병 모집을 통해 만회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탁기는 처음 부정적인 예상보다 많은 7천여 명의 전사 및 무족 사내들을 시험할 수 있었고, 그중 합격자 1천 1백여 명과, 기준에 못 미쳤지만 훈련을 통해 발전 가능한 수준인 2천 8백여 명, 도합 4천 명가량을 선발할 수 있었다.
탁기가 끌고 간 배의 수가 한정되어, 먼저 1천 명만을 싣고 탐라로 귀환하게 되었으니, 우도 앞바다에서 탐라공의 선단과 조우하게 된 게 바로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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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도 제법 고생이 많았군.”
홍로현까지 가는 짧은 시간이지만, 탁기는 중함선으로 옮겨 타서 주군을 배알하였고, 동금주에서 있었던 일을 고하였다.
“주군께서 고생하신 것에 비하겠습니까.”
“내가 고생했을 거라고 단정하는 겐가?”
아직 탁기는 이주섬의 일이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하는데 그리 말하는 것을 두고 몽주는 놀리는 말투로 말하였지만, 탁기는 짐짓 무거운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곳에서 아무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오가는 것만으로도 이미 주군께서는 너무나 막중한 고난을 감당하신 것 아니겠습니까. 저희 대신들이 모자라 주군께서 직접 움직이셔야 하는 것에 가슴이 아플 지경입니다, 주군.”
그러면서 탁기는 촉촉한 눈망울로 몽주를 바라보니, 몽주는 간만에 간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흠흠, 어쨌든 수고 많았네. 근데 합격자 외에도 많은 이들을 선발한 것을 보면, 역시나 해병대 선발 기준이 너무 높은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안 그래도 말씀드릴 참이었는데, 저희 탁가 무인들에 맞춘 선발 기준은 일반적으로 크게 높습니다. 체구가 좋고, 전투 경험이 많은 무족 전사들 중에서도 여섯 명 중 한 명 정도만 합격할 정도였으니, 만약 고려나 구주에서 선발한다면 열에 하나도 합격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기야 현대 국군의 특수 부대 모집 기준도 보면 의외로 그리 높지 않았다.
물론, 일반인 기준이 아니라 기대한 것에 비해 낮다는 의미다.
어쨌든 특수 부대원이라는 이미지에 비해 낮은 선발 기준은 육체적인 조건은 선발한 뒤에 더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특수 부대원은 뽑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고 할까.
“알았네. 하면, 다시 기준을 정해서 보고하게. 물론, 그만큼 훈육에 더욱 철저해야 할 것이네.”
“명심하겠습니다.”
몽주는 탁기의 대답을 들으며 시선을 돌려 탁기의 뒤쪽에 앉아 있는 자를 보았다. 그를 본 몽주는 탁기에게 다시 시선을 돌려 물었다.
“저 친구는 어땠나? 합격한 겐가, 아니면 조금 못 미친 겐가.”
“……합격했습니다.”
“……?”
몽주는 의아한 시선으로 뒤쪽에 있는 무족 사내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 대답은 탁기가 아니라 그 사내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이었다.
“고려 말을 익혔나?”
“……열심히 배웠습니다.”
머릿속으로 정돈하고 답하느라 대답이 늦었고, 발음도 많이 어눌했지만,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대단하군.”
“감사합니다.”
“늦게나마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다는 말을 전하겠네.”
“저도 다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무족 사내가 고려식으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였다.
“한데, 이름이 뭐였더라…… 자네가 타온 부족의 족장인 것은 기억하네만.”
“야고부입니다.”
몽주는 야고부에게 미소를 보냈다. 소년이 잘 커서 부족을 이끌 정도로 장성한 것은 그게 누구라도 흐뭇한 것이었다.
야고부는 탐라가 동금주에 처음 진출할 때부터 탐라에 협조적이었고, 그 공이 있어 당시 탐라군 녹둔도 주둔군을 이끌던 허호필 도집사가 그를 몽주에게 소개한 바도 있었다.
작은 부족이지만, 그 누구보다 열심히 싸워 주었던 것이다.
그때 야고부는 어린 나이답게 작았고, 부족을 이끄는 막중한 책임감에 다소 위태로운 느낌마저 있었는데, 지금은 키도 몽주만큼 컸고, 체구는 딱 전사다워져 있었다. 무엇보다 눈빛에 서려 있는 자신감은 진정 사내다웠다.
“야고부 족장은 대략 따져 보자면 백 명 안에 들 정도로 우수하게 합격하였습니다.”
탁기의 부연에 몽주는 절로 감탄했다.
동금주에서 전투를 경험한 바 있어, 무족 전사들 중 최강자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고 있는데, 아직 젊은 야고부가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했다는 건 실로 대단한 일이었다.
몽주는 재차 야고부를 치하하고는 물었다.
“혹시 고용병에 대해 궁금하거나 건의하고 싶은 게 있나. 있다면 말해 보게. 내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대답해 주지.”
그러자 야고부는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고용병은 끝까지 고용병입니까?”
“…….”
그 물음의 의미는 고용된 용병을 넘어 탐라의 정규 군병이 될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고용병으로서 용병으로 일하는 대가나, 처우에 관한 질문이나 건의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몽주로서는 상당히 의외의 질문이었다.
“정식으로 탐라의 군병이 되길 바라나?”
“저는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 그러길 바라는 자들도 있습니다.”
하기야 부족장인 신분인 야고부가 탐라의 군병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나, 야고부의 말을 듣자니, 고용병이 된 무족 전사들 중에 탐라군에 정식으로 소속되길 바라는 자들도 적잖이 있는 모양이었다.
몽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금 답할 수 있는 정도만 말해 주었다.
“그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히 정해진 건 없네. 그건 고용병들이 어느 정도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걸세. 기량은 물론, 태도와 군율에서도 만족스럽다면, 내가 먼저 고용병들 중에 정식으로 군병이나 장교를 뽑고자 하겠지.”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몽주는 야고부를 먼저 내보내고, 탁기에게 말하였다.
“저 친구를 고용병 중에 선임으로 명하는 게 좋을 것 같군.”
“마음에 드십니까.”
“여러모로. 그가 말하듯 탐라군에서 쓰긴 어렵겠지만, 차후에 동금주에서 큰일을 담당해 줄 것 같아. 그러니 이참에 고용병을 이끌게 하면 큰 경험이 되겠지.”
“알겠습니다.”
그때쯤 선단이 홍로현 포구에 다다랐다.
이주섬의 일도 일종의 승전이라 할 수 있었지만, 다른 때와 달리, 이번에는 축포를 쏘지 않고 조용히 입항하였다.
이주섬으로 진출할 계획이 있다는 건 탐라 안에 어느 정도 알려져 있긴 하지만, 이번 항해가 그와 관련이 있었음은 외부에 공개하지 않은 탓이었다.
* * *
귀환한 날을 쉬고, 다음 날 업무에 복귀하니, 몽주 앞에 가장 먼저 들이닥친 자는 화극이었다.
그것도 다른 대신들을 나이와 경력으로 새치기하여 가장 먼저 몽주를 찾아온 것이었다.
“무슨 일인데, 그리 급하십니까?”
“내가 발상을 전환해 보았네.”
“발상의 전환요?”
몽주가 되묻자, 화극이 씽긋 웃으면서 가지고 온 보따리를 풀어 펼쳤다.
그 안에 나온 건, 모자소포…… 아니, 중함선에서 사용하는 모자소포와 모양은 비슷하나, 더 작은 것이었다.
“자, 보게.”
화극은 그 작은 모자소포를 들더니, 달려 있는 끈을 어깨에 걸쳤다.
“…….”
“어떤가? 이리하면, 뭍에서도 이놈을 쓸 수 있지 않겠나?”
“아, 그게 발상의 전환이군요.”
“그렇지! 함선에서만 쓴다고 단정하고 있던 것을 내가 깨부순 게야. 얼핏 쉬운 것이나 이렇게 생각했다는 게 대단하지 않나?”
“차암 장하십니다.”
몽주는 대충 대답해 주곤, 그 발상의 전환에 대한 이야기는 정리하고자 하였다.
하나, 화극은 그럴 생각이 없는지 그 작은 모자소포에 대해 계속 말하였다.
“물론, 모자소포를 곧장 들고 다니기에는 부족함이 많았지. 하여, 모자소포를 더욱 작게 만든 것이네. 이놈은 구경을 1세미로 줄였지만, 총신의 길이는 비슷해서 구경장이 더욱 좋아졌네. 모르긴 몰라도 모자소포의 절반에 달하는 위력이 있을 걸세.”
“아직 시험해 보진 않으신 모양이군요.”
“그럴싸한 게 이제 막 나왔거든.”
“알겠습니다. 나중에 시험 결과를 알려 주십시오.”
몽주는 다시 한 번 화극의 용무를 마감하려 하였다.
“한데, 자네는 이게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군.”
화극도 눈치가 없는 건 아닌지, 마침내 몽주의 표정을 살피곤 그리 탐탁지 않아 하는 기색임을 알아차렸다.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아닙니다. 다만, 지금은 그리 쓸모가 있을까 싶군요.”
“아니, 그게 무슨 소린가. 생각해 보게. 이런 소포로 무장된 일백의 군병이 있다면, 아마 1길미 너머에서부터 적을 처단할 수 있을 것이네.”
“그럴 리가요?”
“……?”
몽주가 정말 그럴 리 없다는 표정으로 부정하자, 화극은 발끈하는 기색이었다가 상대가 몽주임을 생각하곤 심호흡을 하며 참았다.
탐라의 새로운 물산 대부분이 탐라공의 손에 의해 세상에 나온 것임을 생각하면, 몽주의 반론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말해 주게. 내 보완할 수 있다면 해 보겠네.”
화극이 정중하게 도움을 청하자, 몽주도 그제야 그 작은 모자소포에게 시선을 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곤 잠시 모자소포를 들어 이리저리 살펴보았으니, 역시나 실전에서 쓰기에 부족함이 많았다.
“일단 말씀하신 사거리를 생각해 보면, 탄환을 1길미쯤 날릴 수도 있겠지요. 하나, 폭발하는 탄환도 아니고, 그저 날아가기만 해서는 크게 위협적이지 않을 겁니다. 힘을 유지한 채로 적을 타격해야겠지요.”
“음…….”
지름 1세미짜리 철구슬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나름 위험한 것임에 틀림없지만, 그것이 반드시 적을 살상할 위력을 가지고 있다고 여기기는 어려웠다.
맨 머리에 정통으로 적중한다면 그럴 수 있겠지만, 군모 위에 떨어지거나 몸에 비스듬하게 맞는 건 아플 수는 있어도 죽거나 크게 다치게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직사(直射) 내지, 그와 유사한 탄도로 유효한 운동 에너지를 보유한 채 적을 타격할 수 있어야 하니, 그 사거리를 생각해 보면, 최대로 잡아도 수백 미 수준일 것이다.
“수백 미 수준이면, 차라리 폭죽시를 날리는 게 이득이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폭죽시는 폭파하는 위력까지 있으니, 더 위력이 크지요.”
“하나 폭죽시를 제대로 쓰려면 많은 훈련이 필요한 것에 비해 이건…….”
“……물론, 조금 더 쉽게 익힐 수 있겠지요. 하나, 그렇다고 폭죽시가 익히기에 대단히 어려운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이 무게와 크기를 생각하면 홀로 장전하고, 방포하긴 어려울 것 같고, 대략 2인이 담당해야 할 것 같은데, 그 두 명이 폭죽시를 쏘는 것과 비교하자면, 위력 투사면에서 더 모자랄 것 같습니다. 우리 탐라군병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다들 폭죽시의 달인들이지 않습니까?”
몽주가 가장 와 닿을 만한 단점을 말해 주자, 화극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내심 좋은 생각이었다고 희희낙락하느라 신중하게 전장에서의 쓰임새를 고민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몽주는 그런 화극의 실망을 보다가, 이참에 총에 대해 조금 말해 주기로 하였다. 정확히는 총이 가져야 할 특징에 대해 방향을 잡아주고자 한 것이었다.
“이런 모자포가 육상에서 크게 쓰이려면 몇 가지 갖춰야 할 것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필요한 건 정확하게 탄착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만약 2, 3백미 정도 떨어진 곳에서 노리는 사람을 격중시킬 수 있는 정도의 정확성을 가진다면, 전장에서 크게 쓸 수 있겠지요.”
“적장을 노리는 용도로 쓰고자 하는 것인가.”
“적장이든 아니든, 적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지휘에 혼란을 줄 수 있는 자를 쓰러뜨릴 수만 있다면, 아주 좋겠지요. 만약 그렇게 하기 어렵다면, 대량으로 쓸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백 명 정도가 아니라, 천 명 정도가 일제히 방포하여 커다란 탄착군을 만들 수 있다면, 화포가 없는 곳에서도 화포를 쓴 효과를 볼 수 있겠지요.”
“아…….”
“마지막으로 방포하기 어려운 접전에 임할 때는 모자포 자체가 냉병기로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생각합니다.”
“엥? 모자포를 몽둥이처럼 쓰자는 말인가?”
“급하면 그렇게라도 써야겠지만,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으면 좋겠군요.”
“흐음…….”
화극이 고민하는 표정을 짓자, 몽주는 그쯤에서 말을 아꼈다.
현대 소총까지는 생각할 것도 없이, 몽주가 쓸 만하겠다 생각하고 있는 총의 기준에도 못 미치는 요구사항이었지만, 지금 말해 준 것만 잘 달성해 준다면 본격적으로 총을 연구하게 지원할 생각이었다.
‘뭐, 그래도 엎드리거나 웅크려서 방포할 수는 있을 것 같으니, 하나는 해결한 셈이군.’
모자포는 넓은 의미에서 후장식 총포라 할 수 있으니, 작게만 만든다면 엎드리거나 참호에 웅크리고 숨어서 장전하고 방포할 수 있을 것이다.
몽주가 원하는 총의 수준은 앞서 화극에게 말한 것과 엎드려 쏘기가 가능한 것에 더해, 비오는 날에도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현대 지식을 갖춘 몽주도 아직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였다.
앞서 언급한 것들은 몽주가 다 해결 방법을 알고 있지만, 비오는 날에도 쓸 수 있는 것은 아직 방도가 없었다.
물론, 뇌홍이나 다른 대체 가능한 기폭약을 만들 수만 있다면 퍼커션 캡으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뇌홍을 만들 수가 없어서 그렇지.’
몽주는 다시 뇌홍에 대해 떠올리며, 이번에 현대에 가거든 그 부분을 좀 더 캐 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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