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287)
* * *
현대의 피뢰침은 생각보다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다.
그냥 철제로 된 뾰족한 구조물에 불과하지 않겠는가라는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번개를 효과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그리고 그 번개를 피해 없이 흘려 보내거나 무마하기 위해 다양한 기기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다.
예컨대, 이온을 방사해서 번개가 발생하지 못하게 방어막을 형성하는 피뢰침 같은…….
물론, 고려 시대에서 만들 수 있는 건 일반적인 상식선의 피뢰침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그냥 뾰족한 쇠막대 하나만 두는 대신, 벌어진 솔잎 다발 형태로 뻗게 만들어 번개를 끌어들이기 쉽게 조금 더 보완하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피뢰침은 홍로현과 그 주변 지역 십여 곳에 세워졌는데, 가장 번개 맞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라는 넓은 들판 중에 피뢰침만 홀로 튀어나온 구조를 만들 수 있는 곳은 홍로현이나 그 일대에서는 찾기 어려웠기에 그냥 적당히 사람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곳에 설치해 두었다.
그중 하나는 몽주의 명으로 탐라공의 자택에도 세워졌는데, 자택 건물과 가까운 뒤뜰에 있었다.
하는 김에 자택 건물과 그 주변을 번개 피해로부터 막고자 하는 의도였는데, 건물 위에 세우지 못한 건 기본적으로 한옥 형태인 가옥 위에 세우기 어려운 상황인 데다가 피뢰침만 세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피뢰침은 반드시 피뢰침과 접지된 전선을 땅속 깊은 곳까지 연결해야 했는데, 그렇지 않으면 도리어 번개 피해를 불러들이는 역할만 할 뿐이었다.
하여, 애초에 집을 지을 때 절연 자재 속으로 전선을 내려 땅속으로 연결하도록 해야 했는데, 지금에 와서 그렇게 하는 건 가옥을 해체해야 할 판이라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피뢰침을 세운 가장 중요한 이유는 피뢰침과 연결된 철강(마르텐사이트)을 자석화하기 위함인 터라, 피뢰침이 세워진 아래 땅속에 철강을 묻어 두기 위해서라도 따로 세우는 게 나았다.
어쨌든 그렇게 세워진 피뢰침봉은 아래쪽을 나무로 감싸게 하여 원시적인 수준에서 절전 효과를 의도하긴 했지만, 사실 비가 많이 와서 다 젖어 버리면 소용이 없는 수준이었다.
때문에 몽주는 자택에 세운 피뢰침은 물론, 홍로현 곳곳에 세워진 피뢰침마다 절대 건드리지 말라는 방을 달아 놓게 하고, 백성들에게 그에 대해 알리게 하였다.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를 받은 뒤, 만 하루가 지나자, 맑았던 하늘에 기가 막히게 먹구름이 잔뜩 몰려왔다.
바람도 굉장히 세게 불었다.
태풍철도 아님을 감안하면, 바람이 많은 탐라에서도 보기 드문 강풍이었다.
기상이 심상치 않자, 몽주도 강풍과 호우 피해 방지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으니, 본격적으로 비가 퍼붓기 전에 배를 대피시키고, 시설을 점검하는 등의 일을 지휘하느라 바빴다.
덕분에 정작 먹구름을 고대하면서 ‘벼락 맞을’ 일을 준비하던 건 뒷전이 되었고, ‘피뢰침’과 ‘마르텐사이트’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하게 된 건 한창 천둥번개가 치면서 비가 쏟아지던 때였다.
번쩍! ……쿠구궁!
아직 오후인 시간이건만, 짙은 먹구름 탓에 마치 해가 진 뒤처럼 어두운 사위에 번개 섬광이 번뜩였고, 대략 3, 4초 뒤에 천둥소리가 들렸다.
약 1길미쯤 떨어진 곳에 번개가 쳤음을 가늠한 몽주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에 다가섰다.
강한 바람에 창문이 연신 흔들리니, 그리 내구도가 좋지 못한 유리창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았다.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몽주는 눈길을 돌려 하늘을 보는데, 또 섬광이 일었고, 다시 3, 4초 뒤에 천둥소리가 이어졌다.
홍로현 안팎쯤에 해당하는 지역의 하늘에서 번개가 연속으로 친 모양인데, 번개를 직접 보진 못했기에 방향은 가늠할 수 없었다.
번개가 치는 거리를 따져 보면, 설치한 피뢰침에 번개가 떨어졌을 가능성이 충분했지만, 사실 번개의 이동거리(?)를 생각하면 수십 킬로미터의 범위는 아무것도 아닌 터라 확신할 수 없었다.
번개가 떨어졌다면 부디 피뢰침에 떨어졌길, 아니라면 그냥 탐라가 아닌 먼 곳에 떨어졌길 바라는데, 문득 비바람 소리 사이로 몽주의 귀에 우당탕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게.”
비서원 관리에게 명하니, 그가 나갔다가 금세 돌아왔는데, 뒤뜰에 세워 둔 쇠기둥(피뢰침)이 쓰러졌다고 알려왔다.
“으음, 그게 왜 쓰러지지?”
바람이 거칠게 불긴 하지만, 얇은 쇠기둥일 뿐이라 저항도 별로 없을 것이기에 쓰러질 것이라곤 생각도 안 했던 몽주는 기가 막힌 마음으로 걸음을 옮겨 뒤뜰로 향했다.
뒤뜰로 나가는 문으로 가자, 몇몇 목호 출신 가복들이 보였는데, 도롱이와 삿갓을 입고 쓴 그들은 빗속에서 쓰러진 쇠기둥을 도로 일으키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어디선가 저 천이 날아와서 걸리는 바람에 저리된 모양입니다.”
“아…….”
뒤뜰 구석에 여인네의 치마쯤으로 보이는 커다란 천이 찢어지고, 구겨져 비를 맞고 있는 게 보였다.
짐작대로 그 천이 어디서 날아와서 피뢰침에 걸렸다면, 강한 바람에 크게 저항이 있었을 것이니, 그리 단단하게 세워지지 못한 피뢰침이 쓰러졌을 수도 있었다.
피뢰침은 그 아래 마르텐사이트 철강을 묻어 둬야 했기에 세망을 부어 고정시키지도, 아주 깊이 묻지도 못했던 것이다.
참 재수도 없다는 생각을 하다가, 몽주는 빗속에서 가복들이 애를 쓰는 걸 보곤 걱정스럽게 소리쳤다. 피뢰침을 세우다가 하필 그때 번개가 그 피뢰침에 떨어진다면 그야말로 대형 참사가 일어날 수 있었다.
“그건 나중에 세우고, 그만 들어오게.”
한데, 몽주가 말함에도 비바람 때문에 가복들에게는 들리지 않는지 계속 쇠기둥을 세우려고 애를 쓸 뿐이었다.
하여, 몽주가 처마 아래에서 한 걸음 나서서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크게 소리쳤다.
“이보게들! 벼락이 떨어지……!”
번뜩!
몽주는 잠시 정신을 잃었다. 다만, 정신을 잃은 건 짧았는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에도 그는 여전히 비를 맞으며 서 있었다.
그저 주변 사람들만이 주저앉고 기겁한 채 몽주를 바라보고 있는 게 달라져 있을 뿐이었다.
“으음…….”
혀가 굳은 듯 잘 움직이지 않는 걸 느끼며, 몽주는 천천히 몸을 돌려 가옥 안으로 들어갔다.
첫 걸음을 땔 때, 조금 비틀거리긴 했지만, 몸은 멀쩡히 움직였다.
“주…… 주군, 괜찮으십니까?”
그제야 비서원 관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상태를 묻는 말이 뒤에서 전해졌다.
몽주는 대답할 심적 여유가 없어 그저 손짓으로 괜찮다는 신호를 보내곤 사랑채로 향하였다.
‘아니, 바로 옆에 피뢰침이 있는데 왜 나한테 벼락이 떨어지는 거야?!’
번개에 맞고도 살아남은 것에 신기해하거나, 다행스러워하기 전에 몽주는 ‘쪽팔릴’ 따름이었다.
그가 사랑방에 들어가 잠시 쉬고 있자, 뒤늦게 소식을 전해 듣고 앵도와 몇몇 대신들이 연이어 달려왔고, 그들이 부른 의원도 찾아왔다.
괜찮다는 말을 연거푸 전하다 보니 굳었던 혀도 풀렸고, 의원도 맥을 짚고 나서 문제없다고 말하였다.
손과 팔에 붉은 자국이 줄기처럼 이어져 있긴 했지만, 화상이나 상처도 아니었고, 아프지도 않았다.
“별일 아니니, 다들 소란 떨 거 없네.”
하나, 탐라공이 벼락을 맞은 건 결코 별일이 아닐 수 없었고, 특히 ‘탐라공’이기에 더욱 그랬다.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다.
“그때, 탐라공께서 빗속으로 나아가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게야. ‘여봐라, 벼락이 떨어질 것이다!’ 그러면서 하늘로 손을 뻗으니, 진짜로 벼락이 그 순간에 ‘쿠콰광!’하고 떨어진 거지.”
“아이고, 탐라공께서 벼락을 맞으셨다는 겐가?”
“이 사람이……! 탐라공께서는 벼락을 맞으신 게 아니라, 벼락을 부르신 게지!”
“그게 그거지.”
“다르지! 생각해 보게. 탐라공께 벼락이 떨어진 후에 헛기침 한 번 하고 당당하게 집안으로 들어가셨단 말이네. 그게 어디 사람이 벼락을 맞은 모습인가? 대여섯 해 전에 초복이 할아범이 벼락 맞아 어찌 되었는지 자네도 봤지 않나?”
“아, 봤지. 사람이 새까만 숯덩이가 되었더랬지.”
“거보게. 탐라공께서 벼락을 맞았다면 초복이 할아범처럼 되어야 마땅한데, 탐라공께서는 아주 멀쩡하시단 말이야. 그러니까 탐라공께서는 벼락을 맞은 게 아니라, 벼락을 부르신 게야. 아마도 벼락을 불러 그 정기를 취하신 게 아닐까 싶네.”
“어허, 그게 가당키나…….”
“탐라공이시지 않나? 자네는 탐라공께서 화덕진군의 현신이라는 말도 못 들었나?”
“듣긴 했는데, 설마…….”
“자네처럼 못 믿는 자가 있으니, 탐라공께서 몸소 증명하시고자 벼락을 부르신 게야.”
* * *
쿠궁!
“우아아아!”
폭음 직후에 ‘대 아타얄 연합군’의 전사들이 산비탈을 달려갔다.
얼마 후, 산마루 위로 전사들이 올라가자, 이어 병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숱한 고함과 비명 사이에 섞여 들려왔다.
“드디어 뚫은 모양이군.”
전황이 유리하게 돌아가는 걸 아래에서 올려다보던 석삼은 안도의 한숨을 옅게 내쉬었다.
그러곤 곁에 있는 탐라군 장교의 어깨를 두드렸다.
“수고했네. 여기서 방포한 건 내가 다 책임질 터이니, 너무 걱정 말게.”
“그리 말씀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도 동의한 부분이지 않습니까.”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군.”
석삼은 미소 띤 얼굴로 감사를 표하곤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곳은 란양계(蘭陽渓)의 중류에 해당하는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으로, 그들의 주군이 명한 바에 따르면, 탐라군이 있어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탐라공은 시디크족을 구원하기 위해 카잔 마을을 수복한 것만으로도 탐라군이 할 건 다했다는 입장이었고, 그저 식량과 무장을 지원해 주는 것 외에, 아타얄족과 직접 싸우는 건 카발란족 및 다른 고산족의 몫이라 선을 그었다.
한데, 석삼은 상당히 깊은 산악 지역까지 탐라군 일부를 데려왔으니, 이는 개폭포의 위력을 통해 고착된 전선을 해소하기 위함이었다.
탐라공이 떠난 뒤 얼마 후, ‘연대’에 동의한 부족들이 각각 전사들을 모아 파병하였으니, 그 총병력수는 탐라군을 제외하고 3천이 넘었다.
그것도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 각 부족에서 신임하는 전사들 위주로 보낸 것이라 그 실제 전력은 더 좋았다.
하여, 처음 시디크족의 영역의 북쪽인 아타얄족과의 경계 지역을 회복하고, 카발란 지역을 통해 란양계의 하류 지역을 얻는 것까지는 순식간에 달성할 수 있었다.
하나, 두 줄기로 진격하던 연합군이 란양계 중류에서 합쳐지고, 란양계를 따라 아타얄족의 중심부로 들어가기 시작하자, 저항은 차원이 다르게 거세졌다.
그 전까지는 아타얄족이 확장했던 영역을 되찾은 것이라면, 이제는 아타얄족의 ‘본토’를 침공하는 것이었고, 그만큼 아타얄족도 웅크리고 있던 힘을 풀어 대대적인 반격에 나선 것이었다.
자기네 앞마당 격인 곳에서 지리적인 이점을 마치 ‘수성의 이점’처럼 사용하는 이타얄족의 저항 앞에 연합군 전사들의 공격은 번번하게 무위로 돌아갔다.
탐라군이 지원해 준 좋은 무장 덕에 인명 피해는 생각보다는 적었지만, 이대로는 소모전 끝에 지리멸렬할 위기에 처했던 것이다.
그런 고착 상황에서 석삼은 탐라공의 명을 조금 어기기로 결정하였고, 탐라군 장교들을 설득해서 화포를 지원하였다.
아무리 주군께서 탐라군의 피해를 원치 않는다 하더라도, 주군께 승전을 안겨드리는 게 최우선임을 내세운 설득이 먹힌 것이었다.
물론, 탐라군이 전투에 앞장서는 일은 없었다. 그저 적의 저항이 심한 곳에 방포하여 아타얄족 전사들의 저항 능력을 약화시키는 데 집중할 뿐이었다.
산기슭 위로 방포하는 것이라 사정거리가 줄긴 했지만, 개복포의 위력은 1길미 너머에서 화력을 가할 수 있었기에 탐라군은 비교적 안전한 후방에서…….
“우아아아!”
갑자기 들려온 고함 소리에 석삼은 얼른 시선을 돌려 위를 보았지만, 소리가 들린 방향은 그쪽이 아니었다.
“기습이다!”
고려말로 외쳐진 경고성이 들린 쪽을 보니, 조금 전 연합군 전사들이 공격한 산마루의 좌측 계곡 아래에서 백 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아타얄족 전사들이 달려오는 게 보였다.
계곡 아래라곤 하지만, 높이가 있어 탐라군이 위치한 곳과 거의 눈높이가 같았으니, 짓쳐 오는 속도도 꽤 빨랐다.
그나마 다행인 건 비탈을 길 삼아 진격하는 것인 터라, 많은 이들이 한꺼번에 몰려오지 못하고, 거의 일렬로 달려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폭죽시를 쏴라!”
석삼이 당황한 사이에 한 장교가 명하자, 이미 폭죽시를 준비하고 있던 탐라군이 일제히 활을 당겨 쏘았다.
하나, 날아간 폭죽시가 떨어져 폭발하였음에도 의외로 살상률이 낮았다.
아탸알 전사들이 길게 늘어져 오는 게 분산한 것 같은 효과를 보여, 폭죽 폭발의 위력이 제대로 가해지지 못한 탓이었다.
“저놈이 왜 안 보이나 했더니, 기습을 준비했던 모양이군.”
석삼도 장교가 말하는 ‘저놈’이 누군지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
‘와칸다’라 불리는 아타얄의 대전사.
크아벙 이상으로 큰 덩치에 사나운 문신이 얼굴에 가득한 그는 아타얄의 거센 저항을 몸소 이끌던 자였다.
조금 전 연합군의 전사들이 위쪽 산마루를 공략할 때,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이상하다 여겼는데, 남몰래 탐라군을 기습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기야 탐라군의 화포만 없다면, 아타얄족이 연합군의 공격을 막아 낼 가능성이 훨씬 커질 것이다.
“맞았다! 와칸다가 맞았다!”
탐라군병 중 누군가가 외친 소리에 다시 눈을 크게 뜨고 보니, 선두에서 달리던 와칸다가 폭연 아래 쓰러진 게 보였다.
역시 아무리 괴물 같은 전사라고 해도, 폭죽의 폭발에까지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는데, 쓰러져 있던 와칸다가 다시 몸을 일으키는 게 눈에 들어왔다.
“진짜 괴물 같은 놈이군.”
피 칠갑이 된 모습으로 다시 달려오는 와칸다는 손에 쥔 무쇠 창을 한 손으로 높이 들며 사납게 포효하고 있었다.
그의 병기인 창은 창대마저 철로 된 것이었고, 아기 팔뚝만큼 굵어 탐라군의 강철검도 오히려 부러뜨릴 정도였다.
어마어마하게 무거울 게 분명하건만, 나무 단창처럼 한 손으로 휘두르는 그의 용력은 진정 괴물과 같았다.
석삼은 와칸다의 모습에 질린 표정을 짓고는, 탐라군의 진지 주변에 세운 목책과 철조망이 얼마나 와칸다를 막아 줄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저들은 이곳이 무덤이 될 겁니다.”
장교가 석삼이 두려워하는 걸 눈치채고 그를 안심시켰고, 그 말을 들은 석삼은 조금 창피함을 느끼며 투덜대었다.
“귀신은 뭐하나 몰라. 저놈 안 데려가……!”
번쩍!
쿠궁!
석삼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하늘에서 갈래진 하얀 줄기가 뚝 떨어지면서 거의 동시에 폭음과 같은 천둥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
깜짝 놀라 본능적으로 바닥에 웅크렸던 석삼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보니, 사납게 달려오던 아타얄족 전사들 다수가 쓰러져 있었고, 나머지 전사들도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게 보였다.
“벼락이 떨어졌습니다. 와칸다가 정통으로 맞았어요!”
내내 담담하던 장교도 흥분된 목소리로 석삼에게 상황을 알려 주었다.
석삼은 자신도 모르게 하늘을 바라보았다.
낮은 하늘에 구름이 많이 끼긴 했지만, 엊그제 지나간 비구름과 달리 솜뭉치처럼 예쁜 구름에 불과했다.
아무리 봐도 벼락을 떨어뜨릴 하늘이 아니었던 것이다.
“진짜 귀신이 있나…….”
장교가 명하여 쓰러지고 두려워하는 아타얄 전사들을 포획하도록 군병에게 명하는 동안, 석삼은 오늘 있었던 일을 탐라에서 이야기해 줘도 아무도 믿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나, 후에 그 이야길 들은 탐라 사람들은 단박에 믿어 의심치 않았다.
* * *
도롱이를 걸치고 기름 바른 삿갓을 쓴 이방원은 거친 비바람 속에서도 굳이 바깥으로 나왔다.
뒤를 따르는 수하들이나 방원 공자를 호위 내지 감시하기 위해 붙은 탐라군병들은 왜 공자가 이 험한 날씨에 위험하게 바깥출입을 하려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하륜만이 그 뜻을 짐작하고 있었다.
방원 공자가 홍로현의 길을 따라 움직이면서도 그 시선이 내내 아래로 내려가 있음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길가로 파여 세망으로 다져진 도랑을 따라 길을 움직였으니, 그 도랑들이 홍로현의 서홍천으로 연결되는 걸 확인하고 있는 것이었다.
“진정 이곳 홍로현 전체가 탐라공의 계획에 따라 정밀하게 지어진 게 맞는 모양이군요.”
기숙소에서 한참 내려가 포구가 멀지 않은 곳의 서홍천 가에 닿아서야 방원 공자가 발걸음을 멈추자, 하륜이 그의 곁에 다가가 말을 건넸다.
“맞아. 그 도랑들마저도 아무렇게 연결한 게 아니라, 물길이 막히거나 고이지 않도록 밑높이를 맞춰 팠더군. 게다가 강으로 빠져나가는 길도 여러 개라 한꺼번에 쏟아져 범람하는 것도 방비했지.”
그렇게 말한 방원은 고개를 돌려 주변에 있는 홍로현의 가옥들을 둘러보았다.
“이렇게 비바람이 거센데도 어디 하나 상한 집이 보이지 않으니, 참 대단하지 않나. 우리 요동에서 이런 비바람이 불었다면 지붕이 날아간 집이 적지 않았을 터인데 말이야.”
“그야…… 애초에 요동에는 이렇게 거센 바람은 없지요.”
정확히 말하면, 서요하 상류 쪽은 모래 섞인 거친 바람이 종종 불곤 했지만, 요동국의 중심이 되는 동요하와 외요하 주변에는 없다는 말이었다.
방원과 하륜이 그렇게 말을 나누는 게 들렸는지, 근처에 있던 탐라의 군병이 비바람이 들이닥치는데도 불구하고 자랑스러운 웃음을 짓는 게 보였다.
그에 실소한 방원이 하륜에게 낮은 목소리로 슬쩍 말하였다.
“오면서 담이 높고 철조망이 쳐진 곳들을 보았나?”
“예, 보았지요.”
철조망은 요동국에서도 알만한 자들은 다 알고 있었다.
탐라 상단에서 운영하는 광산에서 광물을 보관하는 창고에 철조망을 쳐 놓았기 때문이었다.
“내 생각에 그런 곳 중에 탐라국이 가진 힘의 원천이 있을 것 같네만…….”
“그럴 수도 있겠지요.”
“탐라공에게 얼마나 잘 보이면 그런 곳에 들어가 볼 수 있을까?”
방원의 말에 하륜이 실소하였다.
“아니면 얼마나 잘 속여야…….”
방원도 마주 실소하며 이어 말하는데, 문득 어둑한 하늘이 순간적으로 밝아졌고, 직후에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쳤다.
방원은 크게 놀란 듯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봐, 봤나?”
“예에, 저, 저도 봤습니다.”
그들이 놀란 건 단지 천둥소리 탓은 아니었다. 조금 전에 그들로부터 200보쯤 떨어진 아래쪽 강가에 번개가 내리꽂히는 게 보인 탓이었다.
그리고 그 번개가, 대체 왜 저런 게 있나 싶었던 기다란 쇠기둥 위로 떨어진 것이 그들을 더욱 놀라게 만들었다.
“저게 벼락을 대신 맞게 하는 거였나 보군.”
“그런가 봅니다.”
“허어, 탐라공은 벼락마저 다스릴 줄 아는 겐가.”
방원의 마음에 탐라공에 대한 탄복이 커져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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