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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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간히 바쁘지 않으면, 이미 침소에 들었어야 할 시간인 자시 정각이 지난 시각에 몽주는 아직 집무실에 남아 차 한 잔과 함께 감상에 젖어 있었다.
한 식경 전까지 아우 몽건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난 터라, 뭔가 시원하고 후련한 느낌에 잠을 청하기 아까운 기분이었다.
경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가지고 온 몽건과 이른 저녁 식사 후, 세 시진 동안이나 경제에 대해 말을 나누었으니, 이는 그간 몽주가 뱉지 못했던 근현대 경제학에 대한 지식을 펼쳐 보인 시간이었다.
물론, 몽건에게 밝힌 것도 지극히 얇고 좁은 수준이었다. 아무리 몽건이 무언가 깨달은 듯 해도 현대적인 경제학 이론들을 모두 전수하기에는 당대의 현실이 허락지 않았기 때문이고, 워낙 갑작스런 질문인 터라 몽주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 준비되지 않은 탓도 있었다.
그래도 ‘상식’적인 수준에서, 아마도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에 나오는 정도에 준하여 알려 주는 것만으로도 이미 오버테크…… 아니, 오버-놀리지(over-knowledge)였기에 선별 발췌하고, 당대 상황에 맞춰 설명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뭉주가 아우에게 알려 준 건, 기본적으로 미시 경제보다는 거시 경제에 관한 것이었고, 경제 이론보다는 개념에 집중된 것이었다.
재화와 노동의 의미를 살폈고, 소비과 효용에 대해 말했으며, 토지로부터 자본을 분리해 주었다.
경제의 주체를 논하면서 ‘회사령’의 의미와 의도를 알려 주었고, 나라가 경제 활동에서 맡아야 하는 역할에 대해서도 말하였다.
물론, 그 전에 경제가 경세제민의 약자나 일부이기보다 ‘집안 살림’이나 집안 살림하는 자라는 어원을 가진 ‘economy’로서의 독자적인 영역을 가진 개념임을 이해시키는 데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부의 근원은 무엇입니까? 돈입니까, 물산입니까?”
그 질문이 간간이 물음을 던지며 이해하는 데에 심력을 기울이던 몽건이 한 질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이미 금본위 화폐 제도를 시행한 탐라의 입장에서 돈은 곧 금이었으니, 부의 근원이 금에 달렸는지 아니면 생산한 물산에 달렸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건 곧 고전 경제학의 태동 이전에 ‘경제학’을 대신하던 중상주의(Mercantilism)와 중농주의(Physiocracy)의 대결에 관한 질문인 셈이기도 했다.
그 질문에 대한 몽주의 답은 간단하면서 애매한 것이었다.
“둘 다이기도 하고, 둘 다 아니기도 하다.”
경제 활동을 기본적으로 제로-섬(zero-sum) 게임으로 여겼던 중상주의자들은 금과 은을 비롯한 귀금속을 많이 축적하는 것이 부를 증진하는 것으로 여겼다.
쉽게 말해서 남의 금은보석을 빼앗고, 자신의 금은보석을 지키는 것을 ‘올바른’ 경제 활동이라 여겼다.
금은을 비롯한 귀금속이 일종의 ‘기축 통화’인 세상이었음을 생각하면, 당연히 수입보다 수출이 많도록 유지하여 무역 수지를 흑자로 만들고자 하였고, 결국 ‘보호 무역주의’와 ‘검약’, 그리고 ‘관치 경제’의 길을 따르게 되었다.
물론, 중상주의는 데이비드 흄, 아담 스미스 등에 의해 통렬하게 비판당했고, ‘신세계’로부터 얻은 막대한 은을 얻은 스페인 제국의 몰락을 통해 현실적으로 증명되기도 했다.
그에 비해, 중농주의는 결론적으로 말하면, 적어도 중상주의보다는 차후에 경제학자들에 의해 조금 덜한 비판을 받았다. 국부론을 통해 중상주의를 강하게 비판하던 아담 스미스도 중농주의에 관해서는 일부 수용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던 것이다.
중농주의는 문자 그대로 농업을 중시하는 경제사상이었다. 즉, 중농주의는 부를 농업 생산, 식량이라 여겼고, 그렇기에 부의 원천이 토지에 있다고 생각했다.
하여, 많은 식량을 생산하도록 하는 것이 부유해지는 근본이었기에 식량을 생산하는 농민들의 세금을 경감시켜 농업 생산량을 촉진시키고, 그 농업 생산물의 거래를 통해 이득을 얻는 지주에게 세금을 부가함으로써 나라 또한 부강해질 수 있다는 주장이 중농주의의 기본 골자였다.
때문에 중농주의는 중상주의와 반대로, ‘자유 무역’과 ‘자유방임주의’를 중시하였으니, 이는 고전 경제학의 시발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따져 보면, 그 시대에 농업이 사실상 생산의 거의 모든 것이었으니, 결국 중농주의는 중-산업(産業)주의나 마찬가지였고, 이는 산업시대에서 부의 원천을 토지에서 노동으로 바꾸는 것을 통해 사실상 고전 경제학과 같은 이론이 되는 셈이었다.
그렇기에 중농주의의 한계는 결국 고전경제학의 한계와 대동소이했다.
자유방임주의적 경제가 어떤 비극을 가져오는지는 너무도 잘 알려져 있고, 산업 생산량을 중시하는 것 또한 얼핏 보면 마냥 옳은 듯하지만, 공급 과잉으로 인한 ‘공황’이라는 재난을 생각하면 그마저도 절대선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경제는 생산과 소비와 관련된 인간 활동을 총칭하는 것이니, 단지 돈과 물산만을 잣대로 말할 수는 없다. 모든 것은 결국 조율에 있는 법이지. 애초에 살림이라는 것이 일개 가족이든 나라 전체이든, 혹은 나라를 넘어서는 범위든 그저 돈을 끌어모으거나 무언가를 만드는 것 이상의 일들이지 않더냐.”
“하면, 경제와 형님의 꿈은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그것은 몽건의 마지막 질문이었고, 아마도 아우가 가장 묻고자 했던 바이며, 경세제민에서 경제를 분리하게 만든 고민 그 자체였을 것이다.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만 짐작할 뿐입니다.”
아우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젓는 걸 본 몽주는 무어라 답을 해 주려다가 생각을 고쳐먹고 다시 말문을 열었다.
“하면, 이 질문에 답을 구해 보거라. 그리하면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 몽주가 던진 질문은 한 섬에 사는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다.
한 섬에 젊은이와 노인이 사는데, 두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물고기를 잡는 일과 집을 짓고 유지하는 일을 해야 했다.
당연히 젊은이는 두 가지 일을 모두 잘할 수 있었고, 늙은이는 두 가지 일 모두 젊은이에 비해 부족했다.
“하면, 그 두 사람은 어찌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이치에 맞겠느냐?”
“…….”
몽건은 쉽게 답하지 못했다.
생각이 없진 않았지만, 어느 것이 정답인지 가늠하느라, 그리고 그것이 형님의 꿈과 어떤 상관이 있는 것인지 짐작하느라 답하지 못한 것이다.
일을 잘하는 젊은이가 두 일을 모두 다 할 수도 있고, 공평하게 두 일을 나눠서 할 수도 있었다.
일단 경제라는 지평에서 생각해 보면, 어떻게든 두 일을 두 사람이 나눠서 하는 것이 마땅할 터인데, 누가 무슨 일을 해야 하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답을 궁구해 보거라. 그리하면 내가 꾸는 꿈이 무엇인지, 적어도 일부는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몽주와 몽건의 긴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 났었다.
후루룩.
조금 식은 차를 마무리하곤, 아우와의 대화를 회상하던 몽주는 미소를 지었다.
몽건이라면 그 이야기를 통해 비교 우위에 의한 교역의 합리성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였고, 그리된다면 아마 비교 우위에 입각한 교역이 일종의 경제 블록을 자연히 형성하게 됨 또한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교역이 일반화된 현대와 다른, 전근대라는 세상의 특수성이라는 전제가 있기에 가능한 말이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분히 폐쇄적이며 지엽적인 교역 환경 속에서 비교 우위론적인 교역 체계를 구축한 나라들, 혹은 지역들 사이에서는 그만큼 강한 접착력이 생길 것이니, 이는 힘에 의한 정복보다 더 확실하고, 문화에 의한 동화보다 더 빠른 통합을 이뤄 낼 수 있을 것이다.
“기대되는군. 기대돼.”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을 나서는 몽주는 웃는 낯으로 중얼거렸다.
몽건이 떠나며, 오늘 나눈 이야기와 문제를 다른 이들과 논해도 좋냐고 물은 바 있었다.
물론 해도 좋다고 답하였다. 다만, 탐라의 미래 구상과 유관한 것인 만큼 믿을 수 있는 자와만 논의해야 할 것이라 하였다.
그리고 그저 말로 논의하기보다는 글로 의논한 바를 기록함으로써 생각의 정리를 돕고, 후에 다른 이의 이해를 위한 자료로 삼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의하였으니, 몽건은 입술을 앙 다물며 고개를 묵직하게 끄덕였었다.
몽주가 만행지론을 통해 탐라 정치의 기본을 세웠으니, 그도 경제의 기본을 세우는 무언가를 남길 각오를 세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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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섬 카발란 지역 남쪽 끝에 위치한 마사이 마을보다 남쪽에 또 하나의 마을이 세워지고 있었으니, 아직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그 마을은 탐라의 마을이었다.
남쪽 산악과 거의 맞닿을 정도로 가까운 그 마을은 다만, 카발란 부족민들의 눈에는 이상하게도, 바로 완성하지 않고 터만 닦은 채 중지된 상태였다.
이는 탐라인들이 돼지 꼬리 반도라고 부르는 남쪽 산악지대 아래 짓고 있는 포구 건설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무를 베고, 터를 닦아 포구 배후지를 마련하고, 마을과 연결되는 대략 500미짜리 산악로까지 만들었음에도 정작 포구나 건물은 짓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는 세망을 비롯하여 탐라에서 가져올 건축재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탐라공이 돌아가는 시간, 탐라에서 건축재를 비롯한 물산과 이주섬에 보낼 인력을 준비하는 시간, 그리고 다시 이주섬까지 오는 시간까지 필요하였으니, 아직 탐라의 선단이 도착하지 못한 상태였다.
하나, 석삼의 입장에서는 나쁜 일은 아니었다. 당장 보급품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고, 무슨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너무 일찍 와서, 주군께 좋은 소식을 전해 드리지 못할까 걱정하던 판이었으니, 어제 오랜만에 마사이 마을로 돌아온 석삼은 오히려 다행이다 여기고 있었다.
“흠, 오랜만에 붓을 잡으니 영 어색하군.”
마사이 마을에 마련한 그의 거처에서 석삼은 주군께 보낼 장계를 쓸 참이었다.
의사소통을 위해서라도 글을 쓸 일이 많긴 했지만, 내내 백묵과 흑판을 사용한 터라, 손 안에 들린 붓이 편치 않았다.
어쨌거나 잠시 생각을 가다듬은 석삼이 종이 위에 붓을 놀리기 시작했다.
‘신 남양특명전권대사 삼이 아뢰옵니다. 주군께옵서 탐라국을 창업하신 이래 남양에 그 뜻이 있으셨고, 마침내 신과 함께 이주도에 이르셨으니, 나라의 미래에 참으로 중요한 순간이었사옵니다. 하나, 주군을 모시는 대소신료들이 안에서 나태하지 않고, 충성스러운 군병들이 밖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음은 주군께서 탐라국을 세워 백성들을 특별히 대우해 주신 은혜를 잊지 못하고, 그에 보답코자 하는 마음 때문이옵니다. 주군께서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충언에 귀를 크게 여시고, 그 유덕하심과 총명하심을 빛내시어, 탐라의 부와 정의를 드넓게 일으켜 주시옵소서. 스스로 덕이 박하고 재주가 부족하다 여기셔서 그릇된 자책에 얽매여 대의를 잃으셔서는 아니 되오며, 충성스러운 간청을 막지 마시옵소서.’
“크으……!”
석삼은 자신이 쓴 서문을 다시 읽고는 자찬하듯 감탄하였다.
10년 전만 해도 글도 거의 모르던 자신이 그럴싸한 문장을 만들어 내고 있으니, 절로 스스로 대견스러웠던 것이다.
‘고려가 그 패업을 잃고 작아진 것은 탐관오리와 소인배를 가까이 하고 현명한 신하를 멀리한 탓이오며, 지금 탐라가 흥한 것은 현명한 신하를 가까이 하고, 탐관오리와 소인배를 멀리했기 때문이오니, 주군께옵서는 고려의 현실에 통탄해 마지않으시고, 그 스스로의 웅기를 가지고 탐라국을 세우시었습니다. 이제 대관과 소신들이 크게 감탄하여 죽기로 나라에 대한 절개를 지킬 것이오니, 원컨대 주군께서는 품으신 웅대한 뜻을 신하들과 더불어 펼치실 수 있을 것이며, 유능한 자와 무능한 자 모두 적재적소에서 맡은 바 임무를 성실히 다할 것이옵니다.’
“흐읍……!”
석삼은 붓을 내려놓고 잠시 눈가를 훔쳤으니, 마음속에 가득한 주군을 향한 충성심을 글로 피력하다 보니, 절로 가슴이 북받쳐 눈시울마저 붉어진 탓이었다.
‘신은 본디 하찮은 머슴으로 한양부의 땅에서 논밭이나 갈면서 난세에 목숨이나 부지하고자 하였을 뿐, 감히 일신의 영달을 구할 생각이 없었사옵니다. 하오나, 주군께옵서 황공하옵게도 신을 미천하게 여기지 아니하시고, 원대한 구상에 초기부터 함께 하도록 해 주시었으니, 신은 이에 감격하여 마침내 주군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주군의 뜻에 응하였사옵니다. 그 후 고려의 국운이 혼란하여 주군의 길 또한 어지러운 가운데, 소임을 맡아 동분서주하며 위난한 상황에서 명을 받들어 일을 행해 온 지 어언 십 년이 훌쩍 지났사옵니다.’
“훌쩍…….”
석삼은 더는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하고, 콧물마저 들락날락거리는 중에도 글쓰기를 멈추지 못했으니, 지난 세월 주군과 함께 탐라에까지 와서 명에 따라 온갖 어려운 일을 극복해 낸 세월에 새삼 감격하고 있는 마음을 주군께 고스란히 전하고 싶은 심정 때문이었다.
‘주군께옵서는 신이 삼가고 신중한 것을 아시고 신에게 고고한 대사를 맡기셨사옵니다. 신은 주군의 명을 받은 이래 조석으로 근심하며 혹시나 그 명하신 바를 이루지 못하여 주군의 밝으신 뜻에 누를 끼치지 않을까 두려워하던 끝에 마침내 아타얄 부족을 격파하고, 그들의 땅을 석권하였사옵니다. 이제 아타얄은 평정되었고, 이주 동부의 야인들은 탐라의 위력을 추종하니, 이제 마땅히 대군을 거느리고 동부의 명인과 평포족들을 평정시켜야 할 것이옵니다. 여전히 아둔하나마 있는 힘을 다하여 간사하고 흉악한 무리를 제거하고, 탐라국의 위신과 고려 왕실의 부흥에 이바지하여 탐라와 고려가 광영의 길에 들어가는 것만이 진정 주군께 보답하고 충성을 증명하는 신의 직분이옵니다.’
석삼의 붓놀림은 잠시 멈춰졌으니, 마지막으로 할 말을 쓸지 말지를 고민한 탓이었다. 감격에 휩쓸린 심정 중에도 너무 과한 문장이 아닌지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는데, 결국은 그 문장을 쓰기로 작정하였다.
‘신이 받은 은혜에 감격을 이기지 못하옵나이다! 수만리 먼 곳에서 장계를 올리며 눈물이 앞을 가려 무슨 말씀을 아뢰어야 할지 모르겠나이다.’
“흐흑, 주군! 소인이 받은 명을 수행하였음을 전하게 되어 천만다행이옵니다! 으흑!”
마사이 마을의 어느 집에서 사내의 울음소리가 한참이나 이어졌으니, 그 앞을 지키는 군병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 안의 상황을 궁금히 여겼다.
* * *
석삼의 장계는 삼 일 후에 도착하고, 다시 삼 일 후에 떠난 탐라의 선단에 실려 열흘 뒤에 탐라에 도착하였으니, 이내 곧바로 몽주의 손에 쥐어졌다.
“…….”
장계를 펼치자, 그리 잘 쓰지 못한 비뚤한 글씨로 글이 한가득 쓰여 있었으니, 몽주는 그 글을 두 번이나 연달아 읽고는 침음을 내었고, 장계를 접어 곁에 두고는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후우…… 이 자식은 대체 뭔 소리를 이렇게 장황하게 해 놓은 거야? 장계를 보냈으면, 아타얄족을 무너뜨리는 과정이나 그사이에 소모된 보급품과 사상한 아군에 대해서나 자세히 써 놓을 것이지……. 이건 뭐, 지가 제갈량도 아니고, 아주 출사표를 썼네.”
* * *
차귀현 내에 마련된 고용병 사령부…… 라기보다는 아직은 급히 지은 작은 건물 하나와 군막만이 가득한 그곳에는 어느 덧 1만 2천에 이르는 고용병들이 머물고 있었다.
남면과 구주, 그리고 동금주처럼 탐라국에 속하는 영역에서 모집되고 선발된 이들뿐만 아니라, 고려나 요동국처럼 ‘고려인’이라는 자격만을 갖춘 자들도 있었으니, 몽주가 구상한 대로 ‘외인부대’로서의 성격을 갖춘 게 분명했다.
출신이 어떠하건 간에 고용병들에게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훈련을 소화하는 것이었다.
이미 모집 선발 중에 엄격한 기준을 거쳤지만, 탐라군 해병대 소속 장교들이 요구하는 훈련 강도는 고용병 모두를 기진맥진하게 만들 만했다.
그 덕에 약 한 달 만에 벌써 1천에 가까운 자들이 중도 탈락하거나 포기하였으니, 신체적인 능력면에서 모두 자신만만했던 자들만 모인 것을 생각하면 결코 적은 비율이 아니었다.
덕분에 고용병들은 하루 훈련을 마친 뒤에는 모두 군막에 널브러져야 했고, 혹자가 염려했던 출신별 갈등이나 충돌 같은 건 말싸움조차 일어나기 어려울 정도였다.
“으음…….”
오전 훈련을 마치고 점심 식사 후, 한 시진가량의 휴식 중에 야고부는 군막을 나서다가 허벅지에 느껴지는 근육통에 이맛살을 찌푸렸다.
기운이라면 나름 자신이 있던 그였지만, 점점 강도가 높아지는 훈련에는 지치지 않을 수 없었으니, 동금주에서는 언제 마지막으로 근육통이 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그였음에도 다리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내일이면 또 중량이 더해질 터인데…… 이러다 낙오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
걱정이 잔뜩 섞인 혼잣말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고용병이 해야 하는 훈련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근력을 향상시키는 훈련은 고용병들을 가장 괴롭히는 것이었다.
첫날에 기운이 센 순서대로 이득을 주겠다며, 온 힘을 다 하여 근력을 쓰게 만들어 놓고는 그다음부터 삼 일이나 오 일 간격으로 근력 훈련의 강도를 조금씩 높이고 있었던 것이다.
예컨대, ‘어깨 들기’라는 훈련이 있는데, 지금 야고부의 다리를 후들거리게 만드는 훈련이 바로 그것이었다.
나무통에 철근을 감아 놓은 것을 어깨로 든 채 앉았다가 일어나는 걸, 스무 번씩 드는 것을 네 번 해야 하는 그 훈련은 며칠 간격으로 철근이 하나씩 더 감기고 있었다.
한 달 새, 탐라의 도량으로 벌써 12길구람이 늘어났으니, 맨 첫날에 용을 써서 들었던 자신이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허벅지를 손으로 주물럭거리며 걸음을 옮기는 그가 향한 곳은 ‘사령부’ 내 유일하게 세워진 관청이었다.
조금 전에 그곳으로 오라는 호출이 있은 탓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탐라군 소속 어느 장교가 그를 데려갔으니, 이층에 있는 어느 방이었다. 그곳에는 중년 사내 두 명이 책상 한쪽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
야고부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들 앞에 앉자, 그를 데리고 온 장교가 중년인 중 한 명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이분은 탐라공께서 초빙하신 문필가이시네. 자네가 몽골 문자에 능통하다는 걸 아시고 부탁하실 게 있으시다는군.”
장교의 말을 들으며, 중년인을 보니, 그가 곁에 있는 또 다른 중년인에게 무어라 말하였는데, 명나라 말이었다.
잠시 후, 통역임에 틀림없는 자가 고려말로 설명하면서 상 위에 놓인, 보자기에 싸인 것을 펼쳤다.
“이분께서 탐라공의 서고에서 찾으신 책이네. 원나라 초기에 쓰인 것 같은데, 책 이름을 보면 오래전부터 그때까지 북방 유목민들에게 있었던 잡다한 이야기들을 써놓은 것인 듯하네.”
낡은 책의 이름은 유민잡사(遊民雜事)였으니, 통역인이 짐작한 내용인 것 같았다.
“문제는 안에 쓰인 문자가 원나라의 문자라는 게지.”
파스파 문자라고 하는 원나라 문자는 세계 모든 언어를 다 표기하겠다는 원대한 뜻으로 만들어진 것과 달리, 실제 쓰인 것은 원 황실뿐이었다.
때문에 원 황실을 위해 일하는 관리쯤 되지 않는 이상 알지 못하는 문자였으니, 북으로 쫓겨난 원나라마저 무너진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 문자를 아는 자가 몹시 드물었고, 고려에서는 더욱 희귀했다.
한데, 그 희귀한 자들 중에 야고부가 있었다. 타란 부족장의 아들로서, 워낙에 힘없는 부족을 살려 보고자 몽골족에게 빌붙기 위해서라도 몽골의 말과 글자를 배웠던 덕분이었다.
물론, 아주 잘 아는 건 아니었지만, 펼쳐진 책 안의 내용을 대략 파악할 정도는 되었다.
“이걸 모두 알려 드려야 하는 겁니까?”
문제는 책이 제법 두툼하여 그걸 다 번역해서 알려 주자니, 훈련만으로도 기진맥진한 야고부의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웠다.
야고부가 마땅치 않은 표정으로 말하자, 그 말을 전해 들은 문필가라는 중년인이 무어라 말하였고, 야고부에게 그 말이 전해졌다.
“모두 다 하면 좋겠지만, 힘들다면 후한 말쯤에 해당하는 내용만이라도 알려 주면 좋겠다는군. 아마 그리 많은 내용은 아닐 것일세.”
“아…….”
다행이라는 표정을 짓던 야고부는 그러다 문득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후한이 뭡니까?”
“…….”
중국 고대 역사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한 탓에, 두 중년인들은 야고부에게 한나라에 대해 설명해 주고, 후한 말의 시기를 가늠할 수 있는 요소들에 대해 알려 주는 데 한참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처음에는 왜 이런 걸 해야 하는 싶던 야고부도, 훈련을 빼 주겠다는 장교의 말에 속으로 쾌재하며 열심히 문필가의 요구에 임하였다.
그렇게 이틀에 걸쳐 유민잡사에서 후한 말 시기에 관한 기록을 찾으니, 그 내용은 예상대로 많지는 않았다.
하나, 문필가는 나름 만족한 표정이었는데, 그의 소설 후반부에 들어갈 또 하나의 이야기를 얻은 것만으로도 충분했고, 그걸 통해 지금 고려땅에 있었던 동이의 왕국들과도 연결 지을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하루하고도 반나절의 훈련을 빠질 수 있었던 야고부의 행복도 못지않았다.
물론, 먼 훗날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고전 소설 속에 자신들의 선조들이 등장한 것에 어느 나라 국민들이 느낄 즐거움에는 모두 미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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