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303)
“3요대 발차 준비됐습니다요!”
2인이 말이 끄는 수레를 이끌고 나서며 소리치자, 내관부 소속 관리가 다가와서는 종이 한 장을 건네주었다.
“오늘은 들를 곳이 많네. 서둘러 주게나.”
“알겠습니다.”
“수고들 하게.”
3요대의 선임 처만은 걸음을 옮기며 종이에 적힌 글을 살폈다.
“오늘은 바쁘겠군. 열두 집이나 들려야 해.”
“열두 집이요? 모여 있습니까?”
“모였으면 바쁘다고 하지도 않겠지. 딱 네 집씩 모여서 많이 떨어져 있네. 2가, 7가, 14가.”
“어이쿠.”
그들의 관할 구역 내 남북으로 벌어져 있다는 말에 후임 강돌이 엄살을 부렸다.
“어여 가세.”
3요대가 먼저 향한 곳은 그들의 ‘본부’인 동부 분뇨 처리장과 가장 가까운 7가 대신에 가장 북쪽에 있는 14가였다.
가장 북쪽의 14가부터 해치우고, 그다음은 가장 남쪽 2가, 마지막으로 7가에서 일을 본 후 동부 분뇨 처리장으로 돌아갈 셈인 것이다.
14가에 이르러, 문패를 보고 첫 집을 찾아간 처만이 정낭(탐라식 대문) 너머로 소리쳤다.
“분뇨 처리하러 나왔소!”
하나, 안에서 답이 없었다. 흔한 일이었다. 요사이 어지간한 집에서는 부부가 모두 일을 하고, 아이들은 기술학교를 가니, 노인이 있지 않으면 아무도 없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러자 처만이 주변을 향해 소리쳤다. 자신들이 ‘공무’로 집에 들어가는 이들임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14가 봉개댁에서 분뇨 처리를 하려 하오!”
처만은 큰 목소리로 두 번 그렇게 외치곤 수레 한편에 걸려 있는 도구를 꺼내 들고, 정낭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강돌도 수레 위에 가득한 커다란 통들 중 하나를 들고 따라 들어갔다.
14가는 나중에 확장된 곳인 터라, 근래에 지은 집이었다. 하여 처음 지었던 집과 달리 변소가 가옥과 붙어 있었다.
처만은 변소의 위치를 살피곤 뒷마당으로 돌아갔고, 뒷마당 가옥과 가까운 곳에 나무 뚜껑을 확인, 그 뚜껑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두 개의 구멍이 보였는데, 한쪽에는 요(尿), 다른 한쪽은 분(糞)라 적혀 있었다.
탐라의 가옥은 새로 지어진 것은 물론, 옛날 집도 새로 하수통을 교체하게 하여, 분뇨를 나눠 모으게 하였고, 지금은 탐라의 거의 모든 집이 분통과 요통이 나뉘어 있었다.
진저리를 칠 만한 냄새가 뿜어져 나왔지만, 처만이나 강돌이나 모두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터라, 수건으로 코를 감아 막고는 도구를 조립하였다.
그 도구는 흡입봉에 ‘반부(反浮 : 펌프)’를 연결한 것으로 반부의 다른 쪽에 배출봉이 또 달려 있었고, 거기에 통을 연결할 수 있었다.
“자, 시작하겠네.”
준비가 끝나자 처만은 반부에 달려 있는 윤형 회전쇠의 손잡이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요구(尿口)에 들어가 있는 흡입봉을 통해 모여 있는 오줌이 빨려 들어와 배출봉을 통해 통 안으로 쏟아졌다.
그렇게 2가의 네 집에서 일을 처리한 2요대(尿隊)는 2가 공동 우물에서 도구를 씻고는 다시 이동하였다.
“어이, 오줌쟁이들! 많이 펐는가?”
“여, 말똥쟁이! 많이 주었는가?”
지나가는 중에 가도청소꾼이 놀림식으로 묻자, 처만도 태연히 놀려 물었다.
가도청소꾼은 말 그대로 길을 청소하는 이인데, 주로 치우는 게 마차용 말이 싸놓은 똥이 대부분이라 그리 놀린 것이었다.
서로 악의는 없는 터라, 그저 키득대며 지나갔다. 한데, 후임 강돌이 좀 시무룩한 표정으로 투덜댔다.
“오줌쟁이라 불릴 때마다 창피해 죽겠습니다.”
“창피할 게 뭐가 있어? 우리도 관부의 관리잖아. 나라의 녹을 먹고 사는 사람이란 말이야.”
“그래 봐야 서리잖아요.”
“아이고, 네가 배가 불렀구나? 서리라도 해 보겠다고 애쓰는 자가 한둘이야? 게다가 서리 중에 우리보다 녹봉이 많은 이가 또 어디 있나?”
“쩝.”
분뇨 처리장의 요대, 분대 일꾼들은 정해진 녹봉 외에도 의류비와 세탁비 등을 더 받을 수 있어, 합하면 서리급 관리들 중 가장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하나, 가끔 동네 꼬마 녀석들이 따라다니면서 똥 퍼요, 오줌 받아요 따위의 소리를 치며 비웃을 때는 화도 나고 부끄럽기도 했다.
특히, 저번에 일하는 중에 아우랑 우연히 만났는데, 아우가 고개를 숙이고 못 본 척하고 지나갈 때는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쓰랬어. 자네가 어떻게든 번 돈으로 아우랑, 나중에 낳을 자식 놈이랑 잘 가르쳐서 큰 인물 만든다 생각해.”
“예.”
* * *
3요대가 일을 모두 마치고 동부 분뇨 처리장으로 돌아온 건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이었다.
“3요대 돌아왔습니다요!”
“왔는가. 오늘 힘들었지? 수고 많았네. 음, 다해서 몇 통인가?”
“31통입니다요.”
“음, 그러면, 19통은 저기 개방 창고에 두고, 나머지는 처리장에 버리게.”
“예.”
“다 하면 퇴근하고.”
“예.”
분뇨 처리장 행정부관 나리의 말에 따라, 처만과 강돌은 개방 창고, 즉 지붕만 있을 뿐 그냥 공터나 다름없는 곳에 19통을 내려놓았다.
그곳에는 이미 먼저 다른 이들이 내려놓은 요통과 분통이 많이 있었다.
“대체 이것들은 왜 따로 두는 걸까요? 그러다 어느 순간에 빈 통만 있고요.”
“후후, 여러 군데 쓸 데가 있다지? 나도 자세한 건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말라더군.”
처만은 강돌의 호기심을 잠재우곤 다시 마차를 몰아 제1분뇨 처리장으로 갔다.
그곳 입구에서 제충향을 몸에 뿌리고 통을 굴려 오물 투입구 쪽으로 가니, 늦가을임에도 아직 살아 있는 모기나 날파리들이 눈앞에 가득했다.
분뇨 처리장은 총 4단계인데, 멀리서 보면 그냥 넓은 습지였다. 연꽃이며 각종 풀들이 가득한 습지.
제1 처리장은 총 3곳으로 한 달씩 돌아가면서 오물을 투입하였는데, 두 달간 삭힌 제1 처리장의 오수는 다시 제2 처리장으로 넘어가고, 그곳에서 다시 한 달간 삭인 오수가 다음, 또 다음으로 넘어가는 식이었다.
그렇게 제4 처리장까지 완료된 오수는 상당히 깨끗해져 바다로 흘려보내도 티가 나지 않을 정도였다.
이런 분뇨 처리장은 탐라에 총 다섯 곳이 있는데, 그중 세 곳이 홍로현 주변에 있었고, 나머지 두 곳은 대촌현에 있었다.
나머지 고을들 중 홍로현이나 대촌현에 가까운 고을은 분뇨 처리장을 이용하고, 그 외에는 홍로 남부 분뇨 처리장에서 문씨세가의 배를 빌려 한 달에 한 번씩 분뇨통을 수거, 먼바다에 버리는 식이었다.
축산 분뇨도 마찬가지였는데, 다만 방목하는 목장에서는 쇠똥구리의 힘을 빌려 분뇨 처리량을 최대한 줄이고 있었다.
콸콸콸!
“다 됐구먼. 가세.”
“예.”
강돌은 빈 요통을 마차에 싣고는 말을 몰았다.
“생각해 보면 신기하지 않습니까요. 연꽃이랑 풀이 똥오줌을 먹어치운다는 게요.”
“연꽃이랑 풀이 먹어치우는 게 아니라던데? 조만한 벌레들이…… 뭐래더라, 분해한다던가? 허허, 뭐, 하여튼 깨끗해지기만 하면 그만이지.”
두 사람이 마차를 정거해 놓고, 말을 마장에 들이곤 퇴근하였다.
한 시진쯤 뒤, 어둑한 밤중에 당번 관리가 횃불을 들고 나오자, 북쪽에서 한 무리의 일꾼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들은 가져온 마차에 분뇨통 중 절반가량을 싣고 곧바로 떠났다.
“어디 보자, 이번 달에 화약소로 보낼 양은 완료된 건가? 내일 액비(液肥)용으로 보낼 요통만 처리하면 되는군.”
당번 관리가 장부를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단지 똥오줌을 처리하는 걸 넘어, 분뇨 처리장은 탐라의 화약과 비료 생산 등에 지대한 공을 세우고 있었다.
* * *
회사청의 관리들이 간만에 분주해졌다. 새로운 회사의 설립 때문이었다. 이는 처음 있는 일은 물론 아니었다. 탐라 상단하에 많은 회사들이 있었으니까.
하나, 이번엔 달랐다. 특별한 회사의 설립이었다.
그 회사가 탐라섬이나 남면이 아닌 구주에서 설립된다는 점도 특별했지만, 탐라 상단 소속이 아닌 회사가 설립된다는 점은 사안의 각별함을 최상급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니까, 탐라국공이 주인이 아닌 회사가 처음으로 세워진다는 것이었다.
이미 수많은 회사를 소유한 탐라 상단에서 새롭게 분할되는 회사가 아니기에 행정적으로도 더 분주해질 수밖에 없었지만, 그보다는 탐라 상단 소속이 아닌 회사가 처음으로 세워진다는 ‘상징성’이 회사청 관리들의 심신을 바쁘게 만들고 있었다.
가칭 ‘다다라 상업회사(多多羅 商業會社)’
구주의 도집사가 사재 25만 원으로 지분 6분(60%), 탐라공이 탐라 상단주로서 상선용 경함선 2척을 투자하여 지분 4분(40%)을 가진 그 회사는 전당 대출을 통해 추가로 상선용 경함선 3척을 더 얻어 설립될 예정이었다.
상선용 경함선의 척당 가격이 최소 20만 원 이상임을 생각하면 탐라공은 더 큰 ‘자본금’을 투자하고도 더 적은 지분을 얻은 셈이지만 상관없었다.
그건 구주 도집사의 공헌에 대한 선물이자, 지지부진한 회사령의 전례를 만들기 위한 안배였다.
현대로 치면 대략 자본금 30억에 부채율 100퍼센트짜리 회사이기에 별것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전근대 한 지역의 ‘작은 왕’이 소유한 회사였기에 정경유착은 당연한 노릇이었으며, 그걸 막을 제도적 장치도 없었으니, 차후에 급성장은 따 놓은 당상인 회사이기도 했다.
다만, 정작 회사 주인인 구주 도집사 다의홍은 그저 얼떨떨한 상황이었다.
아니, 오히려 회사를 세우라는 탐라공의 말에 크게 당황하여 어떻게든 거절하려고 애를 쓸 정도였다.
다의홍에게도 회사는 주군의 독점적인 사업으로, 일종의 신성불가침한 영역이었기 때문이었다.
‘줘도 못 먹으니, 억지로 떠먹여 줘야지. 으휴!’
몽주는 지위를 무기로 다의홍에게 억지로 강권하고, 자신의 지분 참여로 안심시키며, 회사 소유를 통한 정치적 영향력의 확장이라는 미끼로 꾀어서 겨우 동의를 얻어 내었다.
특히, 정치적 영향력으로 꾄 것이 주효했는데, 구주의 유통에 영향력이 큰 회사를 가지면 자연히 구주 전역의 소식에도 도통해질 수 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왕시라 사건’을 통해 탐라 상단의 정보력과 영향력을 새삼 실감한 다의홍으로서는 구주 도집사로서 자신도 구주에서만큼은 그런 힘을 얻고 싶었던 것이다.
게다가 몽주는 자신이 독점하던 정보력을 그에게 일부 나누어 주는 셈이라 설명하기도 했으니, 다의홍은 그 점에서 주군의 은혜에 크게 감읍하기도 했다.
‘일단은 어떻게 하나 두고 보고, 영 아니다 싶으면 그때 나서야겠군.’
다다라 상업회사는 하려고만 한다면 삽시간에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막말로 도집사가 정치군사적으로 구주의 상인들을 압박하여 흡수하기만 해도 ‘게임 오버’였다.
몽주도 어느 정도까진 눈을 감아 줄 의향이 있고.
물론, 구주에 또 다른 회사가 설립된다면 그때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이는 심지어 탐라 상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나 세워라. 아무나.’
그 회사가 탐라 상단이 아우르지 않는 분야의 회사라면, 탐라 상단은 그쪽에 발을 뻗지 않을 것이고, 탐라 상단과 부딪치는 분야라면 일부러 어느 정도 ‘패전’해 줄 생각도 있었다.
하나, 현실은 누구도 회사를 세울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있었고, 다다라 상업회사의 설립 소식이 있자, 탐라 백성들은 오히려 몹시 불쾌해했다.
탐라공의 신하인 구주 도집사가 세우는 회사이고, 탐라공이 4분(40%)의 지분을 가졌음을 알려진 뒤에야 겨우 기분을 푸는 상황이었다.
몽주는 회사청에서 올린 장계에 서명과 날인하여 돌려보내며 다다라 상업회사 설립 결정이 ‘신의 한 수’가 되길 바랐다.
이어, 몽주는 새로운 장계를 펼쳐들었으니, 동금주 도집사 허호필이 보내온 것이었다.
이미 탐라 상단을 통해 알고 있는 머더리의 양돈 사업에 관한 내용이 주된 것이었다.
그렇다고 보낼 필요가 없었던 건 아니고, 양돈 사업에 참여하는 탐라 상단 회사가 보낸 것과 무관하게, ‘정부’의 입장에서 투입하는 인력과 자본은 따로 있는 법이었다.
물론, 양돈 사업의 영향이나 결실 또한 단지 사업적 이익이나 손해만 있는 법은 아니기에 도집사의 보고를 통해 그런 점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동금주의 양돈 사업은 아직 귀여운 수준이었다.
몇몇 소규모 부족들이 이주하여 전담하고 있는데, 이제야 두 배로 돼지 수를 늘렸을 뿐이었다.
아직 돼지를 팔 상황은 아니었고, 새로 낳은 새끼를 처음부터 육용으로 쓸 수 있게 거세하여 키우면 그때부터 판매가 가능할 것이다.
수익은커녕 아직도 투자만 한참 해야 할 듯했지만, 그래도 동금주에서는 제법 기대를 걸고 있는 모양이었다.
장계에 맹특목의 아우 범찰(凡察)이 따로 세력을 분할하여 머더리로 이주하기로 했다고 쓰여 있었던 것이다.
맹특목은 같이 훈춘을 장악한 아합출과 더불어 동금주의 2인자였으니, 그가 아우를 머더리로 이주하게 한 건 머더리의 양돈 사업 성장이 단지 도집사나 탐라 관리들만의 희망사항이 아님을 증명하는 셈이었다.
몽주로서는 그저 흐뭇한 소식이었다. 언제 수익이 날지 모르지만, 솔직히 크게 흥하지 않더라도 머더리에 무족민들이 자리 잡을 수만 있다면 탐라의 입장에서는 호재였다.
탐라의 세력에서 가장 북쪽이고, 동금주에서 가장 서쪽인 머더리인 만큼 단지 군사적으로 지배하는 걸 넘어, 탐라의 북방 고을로 자리 잡길 기대했다.
물론, 머더리 지역 지하에 묻혀 있을, 언젠가 매우 유용하게 쓰일 석유를 생각해서라도 반드시 그래야 했다.
동금주의 장계를 읽으며 내내 흐뭇한 미소를 띠던 몽주는 다음 장계를 들고는 표정을 바꿔 진지하게 고심하였다.
외관부에서 올린 장계로, 명나라의 ‘해적’ 상황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지난번 보고 이후 다시 다섯 건 정도의 수적질이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중 한 건은 응천부로 바로 가려던 배였고, 그 배에 연왕이 태자에게 보낼 자금이 실려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정보였다.
그리고 지난번에 보고한 수적질들 중에서도 적어도 한 번은 역시나 응천부로 향하던 배가 당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도 하였다.
만약 모두 태자가 두 번이나 피해를 입었다면, 이제는 명나라 조정에서 수적에 대해 대응책을 마련할 때가 되었다 싶었다.
태자의 ‘비자금’이야 모른다고 해도, 태자가 수적의 발흥을 좌시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나서면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명나라 연안이 조용해지진 않을 것이다.
짐작대로 지금 발흥하고 있는 수적들의 배후에 연왕이 있다면, 연왕은 명 수군의 움직임을 미리 알고 얼마든지 자신의 ‘사략 함대’를 대피시킬 수 있을 것이다.
아마 명 수군은 허탕을 치거나, 덩달아 바다로 나온 진짜 수적이나 잡는 정도의 성과만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조용해지면 연왕은 다시 수적을 배후에 움직일 것이고.
그걸 막기 위해서는 충분한 전력의 수군을 상비 운용해야 하는데, 지금 명나라가 가진 수군은 양적으로도 부족한 데다가 질적으로도 ‘해군’으로서의 수군은 결코 아니었다.
워낙 규모 있는 나라인 만큼, 지금부터 수군 양성에 힘을 쓰면 빠르게 그 성과를 얻을 수야 있겠지만, 수군에 힘을 쏟기에는 명국이 당면한 다른 문제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몽주는 이주섬에 나가 있는 무라카미 수군을 떠올렸다. 아직 그들이 중국 연안에 손을 뻗은 건 아니었다.
이주섬 정복의 여파를 잠재우는 데 조력하느라 바쁠 것이고, 무라카미 수군 자체적으로도 재편성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다만, 그것이 완료된 후라면, 중국 남부는…….
똑똑.
한창 ‘해적’에 대해 고심할 때, 비서원 관리가 들어왔다.
“공관대신이 면담을 청하였습니다.”
* * *
근래에 공관대신 화극은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했다.
이전과 달리, 다른 문제에 끼어드는 일도 별로 없었고, 바쁠 게 분명함에도 몽주를 찾아와 노닥거리던 것도 더는 하지 않았다.
하여, 얼마 전에 총무회의를 마치고 나서, 요즘 자중하시는 것 같다고 말을 던지니, 머뭇거리다가 인생의 역작을 준비하고 있다고 조용히 답하였던 바 있었다.
역작이라는 표현에 관심이 생겨 더 묻기도 했는데, 화극은 조만간 따로 보고하겠노라 하며, 자세한 이야기는 피하였다.
그런 화극이 면담을 청하였기에, 몽주는 기대감을 가지며 그를 맞이하였다.
한데, 집무실로 들어오는 화극은 빈손이었다. 그 역작의 견품은커녕, 설계도도 없었다.
“알려 줄 게 있어 왔네.”
“…….”
몽주는 딱히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내가 뭔가 만들고 있었다는 건 알고 있지?”
지난번에 들은 것도 있었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그게…… 이번에도 화포일세.”
역시나 싶었다. 화극이 간간이 육전용으로 쓸 작은 화포에 대해 몽주에게 의견을 물었던 게 떠올랐다.
“예전에 보여 주셨던 걸 개량하신 건가요?”
“개량이라고 하기에는 거의 새로 다시 만들었지.”
“그렇군요. 이렇게 제게 알리러 오신 걸 보면, 화극 어른의 눈에는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온 모양일 테고요.”
화극은 고개를 묵직하게 끄덕였다. 정말 자신이 있는 모양이었다.
“기대가 되는군요. 근데 설계도라도 가져오시지 그러셨습니까?”
“설계도보다는 직접 보는 게 낫지 않겠나. 이따가 일과 후에 방포 시험장으로 와주게나. 방포 시험까지 다 보여 줌세.”
“알겠습니다. 술시에 찾아뵙죠.”
화극은 알겠노라 답하곤 돌아갔다. 나름 자신 있는 ‘총’을 만들긴 한 모양인데, 그래도 긴장은 되었는지 농 한 마디 없이 그냥 돌아간 것이다.
몽주는 그런 화극의 모습이 재밌어 미소를 짓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쓸만한 ‘총’이 나왔을까?‘
그럴 리가 없었다. 자신을 만족시킬 ‘총’이라면 적어도 미니에(Minie) 탄에 퍼커션 캡(percussion cap) 정도는 적용 되어야 한다.
미니에 탄이야 탐라의 기술로 가능하겠지만, 퍼커션 캡은 뇌홍을 만들지 못하는 지금은 불가능하다.
예전에 화극이 육전용 모자소포라는 ‘총’을 가져왔을 때, 그것이 쓸모가 없음을 지적하며, 몽주가 바라는 ‘총’의 기능에 대해서 말한 바 있었고, 그 후에도 화극과 짧게나마 몇 번 그에 대해 말하면서도 추가로 전장에서 ‘총’이 위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한 조건들에 대해 더 말해 주기도 했다.
그러니까 화극은 몽주가 바라는 ‘총’에 대해 이 시대의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말이고, 그렇기에 화극이 만족스럽다고 평가하려면, 몽주가 바라는 ‘총’의 기능을 다 구현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조금 전 화극은 분명 만족한다고 했다.
‘설마…… 그래도 너무 큰 기대는 말자.’
몽주는 다시 하던 업무에 열중했다.
* * *
어쨌든 약속대로 술시에 이르러 몽주는 방포 시험장에 방문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익숙하면서도 기상천외하게 생긴 ‘총’을 보게 되었다.
탕, 탕, 탕, 탕……!
약 3초당 1발 정도의 속도로 10발을 연사하는 총을.
‘말도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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