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309)
한양부 천마산 일대는 크게 바뀌었다.
몇 년 전부터 시작된 사원 건축이 거의 마무리가 되면서 그저 깊고 험하기만 했던 산골은 영험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대웅전에는 금박을 입힌 황동 본존불상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고, 좌우에는 은박을 입힌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의 불상이 협시를 이루었다.
그 외 따로 무량수불전(殿)과 약사불전이 있는데, 그중 약사불전은 본존불상과 더불어 유이하게 금박을 입힌 화려한 불상이 놓여 있었다.
가부좌를 튼 본존불상에 비해 입상의 형태로 만들어진 약사불상은 그래서 가장 크고 화려하게 느껴졌으니, 그 사원을 지은 자가 어느 불전에 가장 신경을 많이 썼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탐라공의 어머니 엄주이가 고려 국사가 보내 준 승려, 비구니들과 함께 벽화 제작에 심력을 기울이고 있을 때, 차후에 승당(僧堂)으로 쓰일 건물에서는 석해민이 둘째 아들 몽건과 마주하고 있었다.
“산문에 세운 우석목은 원래 계획에는 없었던 것 같은데요?”
찻잔을 내려놓으며 몽건은 웃으며 물었다.
“그렇지. 한데, 이곳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지어다 바치더구나.”
“아, 그랬군요. 하기야 저도 벼락공의 아우라며 대접을 받긴 했습니다. 하하.”
두 부자는 벼락공 이야기에 함께 실소하였다.
화덕진군의 현신이라는 벼락공이 그들에게는 아들이자 형님인 터라, 아무래도 일반 백성들과는 다른 소감일 수밖에 없었다.
하나, 그런 만큼 벼락공 신화(?)의 위력은 오히려 더 체감하고 있었다.
탐라섬에서 벼락공이라는 이름이 생긴 지 불과 3년 정도에 불과하였는데, 그 유명세는 탐라국 전역을 넘어 고려로 퍼지고 있었다.
물론, 동금주나 구주처럼 화덕진군에 대한 토속신앙이 없는 곳에서는 위력이 작은 편이긴 했지만, 고려 본토에 해당하는 지역에서는 신앙의 일종으로 파급될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였다.
그중 한양부는 벼락공이 탄생한 지역인 터라 그 위력이 한결 더한 곳이었다.
비록 탐라국에 속한 곳은 아니지만, 고려의 안정과 풍요로움이 한양부 출신 탐라공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라는 사실 정도는 이곳 백성들도 알고 있었기에 기존에도 탐라공에 대한 찬사가 드높았는데, 벼락공 소문이 퍼진 이후에는 마치 생불처럼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그저 재밌을 뿐이던 석해민은 웃음을 짓다가 문득 웃음기를 지우곤 심각하게 말했다.
“기분이 나쁜 건 아니지만, 나는 조금 걱정이구나. 벼락공에 대한 백성들의 찬사가 왕실을 자극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
“그럴 수도 있겠지요.”
몽건은 동의하긴 했지만, 대수롭게 여기진 않았다.
석 달 전에 약 2년간의 여행을 마친 그는 고려 전역을 돌아다니며 탐라국이 가진 진정한 힘을 가늠할 수 있었다.
그가 보기에 탐라국은 고려 전체의 십중팔구(十中八九)였다.
비단 경제라는 개념 안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그랬다.
다만, 그 실상을 고려 왕실이나 요동국에서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탐라국이 고려에서 압도적인 위치라는 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그래서 과거 어린 시절에 그것이 못내 답답하여 술수를 부리다가 형님께 혼쭐이 나기도 했었지만, 몽건은 지난 여행을 통해 단순히 압도적일 것이라는 추정을, 생각보다 훨씬 더 압도적이라고 고쳐서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그런 세력의 비교를 두고 성급한 수작을 부릴 생각은 없었다.
이제는 형님의 큰 뜻을 상당 부분 이해하고 있는 그였기에 마음을 급하게 먹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너무 걱정 마세요. 이 고려에서 형님의 털끝이라도 건드릴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둘째 아들의 말을 그저 자신을 안심시키려는 과장처럼 받아들인 해민이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너도 이제는 바쁜 일을 마친 게냐?”
“그저 일단락했을 뿐, 이제 시작에 불과합니다.”
“허허, 너무 일에 욕심 부리지 말거라. 급히 달리는 말이 쉽게 지치는 법이다. 너도 곧 혼인을 생각해 볼 나이가 될 터인데, 조카가 부럽지 않더냐?”
“조카가 이를 뿐이지, 저는 아직 급할 게 없지요. 하하.”
이제 열여섯에 이른 몽건은 여자에 대해서는 별생각이 없었다. 이성에 무관심한 건 아니었지만, 그는 그의 혼인 또한 정치의 한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었기에 어설픈 연애 감정과는 일부러 거리를 두고 있었다.
확실히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몽건이었다. 그리고 몽건과 관련해서 가장 평범함과 거리가 먼 부분은 지금 탐라공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었다.
“책을 썼다고? 이름이 무엇이냐?”
“경제평론이라 합니다.”
경제평론(經濟評論)은 2년간의 여행을 통해 알아본 경제 현상에 대해 평하고, 논한 것을 담은 책으로 몽건이 주필하고, 종성과 증향이 조력하여 내놓은 것이었다.
아직 인쇄할 단계는 아니었고, 탐라공의 감수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뭔지 모르겠지만, 세상의 이치를 밝히는 좋은 책이길 바라마.”
그에 몽건은 씨익, 조금 자신 있는 미소를 지었다.
* * *
아마 이 책이 먼 훗날 최초의 경제학 서적으로 인정받지 않을까.
몽주는 살짝 두꺼운 느낌의 책을 덮으며 미소를 띠었다.
아우 몽건이 쓴 경제평론이라는 그 책은 분명 경제학 서적이었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적 분야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과 상관없이 말이다.
그러니까 그 책은 장차 경제학이라는 학문의 창시자적인 역할도 가져야 하는 책이었다.
‘아직은 많이 미숙하지만, 시작하는 단계임을 생각하면 모자라지 않다.’
현대 경제학을 맛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미숙한 걸 넘어 유치한 수준이겠지만, 경제라는 개념을 정립하고, 그 현상의 중요함을 피력함으로써, 연구하고 익혀야 하는 학문으로서의 가치를 일깨우기에는 충분했다.
여기에 몽주가 감수했다는 소문만 조금 나면 만행지론과 필적할 위치에 서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하려고 한다면 몽주는 현대의 경제학 지식을 한껏 담은 책도 펴낼 수 있지만, 그건 아마도 과유불급의 전형적인 사례만 될 것이다.
경제 현상이야 인간이 존재한 이래로 꾸준히 있어 왔지만, 학문으로서의 경제학이 설 수 있는 환경이 아직 제대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려에서는 물론, 아마 동아시아 전체에서 가장 경제 환경이 발전한 탐라국은 사실 화폐 경제가 자리 잡은 지도 불과 몇 년 되지 않았고, 화폐 경제가 먼저 자리 잡은 다른 나라들은 다른 부분에서 딱 전근대적 수준에 불과한 상황이었으니, 나라 안팎을 둘러봐도 경제학이 설 수 있는 환경은 찾을 수 없는 시기였다.
아마 몽주가 ‘펌프질’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탐라국의 성장세와 개혁이 유지되더라도 경제라는 개념이 서기까지 백 년, 거기서 다시 경제학이라는 개념이 서기까지 또 백 년쯤은 필요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몽건의 천재적인 이해력과 상상력이 아니었다면 이 시기에는 절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경제평론을 보면, 몽건은 어설픈 가운데에도 수요와 공급의 개념을 잡았고, 이득이라는 말로 효용의 기초 개념도 세웠다.
소고기의 보급이 증가하면서 돼지고기에 대한 수요가 바뀐 기록을 통해 대체재의 개념도 잡았다.
특히 탐라섬이 요동국, 남면, 동금주, 그리고 구주와 여러 물산을 교역한 것을 구체적인 물산으로 예로 들며 설명한 비교 우위에 대한 개념은 개량적인 방법으로도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몽주도 읽다가 감탄을 여러 번 터뜨렸을 정도였다.
하나, 한계도 명확했다.
일단 미시경제와 거시경제의 구분이 없었고, 경제적 원리를 늘 정치에 연결 짓거나 탐라공에 대한 찬사로 끝내곤 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화폐수량설을 연상케 하는 화폐 공급과 물가등락의 연관성에 대한 내용이 그랬다.
물가마저 좌지우지할 수 있는 탐라 상단의 독점적 위치 때문에 논리적으로 유추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경쟁 시장이 이뤄진 몇몇 소수의 물산들을 통해 그 부분을 직관적으로 파악하여 설명해 내는 기염을 토하였는데, 아쉽게도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그 몇몇 작은 경쟁 시장마저 탐라 상단이 장악하는 방법이 물가를 안정시키는 첩경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이는 다분히 치자의 입장에서 경제를 내려다보고 다스린다는 개념 하에 내려진 결론이었으니, 그와 비슷한 ‘시선’의 한계는 책의 곳곳에서 느껴졌다.
관자를 통해 강조되고, 몽주에 의해 기치를 세운 상도에서도 중히 여기는 생산 요소 외에도 기술적 요인이 있음을 설파하는 예리한 관찰 역시, 탐라의 생산 기술 요인의 발전이 탐라공에 있음을 내세워 찬사하는 부분이 빠지지 않았다.
이는 몽주로 하여금 아쉬움을 넘어 ‘쪽팔림’마저 느끼게 하였다.
또,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사단을 막기 위해 전당이 필요함을 설명하면서도, 그를 위해 전당이 이자를 지급하는 것을 백성들이 나라에 부담을 주어 사적인 이익을 챙기는 ‘나쁜 짓’이라 폄하한 부분은, 그 스스로 규정한 경제의 합리성에 위배되는 결론이나 마찬가지였고, 이 역시도 아직 지배적, 정치적인 시야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였다.
이와 같은 한계와 오판들이 분명히 있었지만, 몽주는 경제평론을 크게 고칠 생각이 없었다.
평론은 평론일 뿐, 개론이나 원론이 될 수 없었고, 경제에 대한 개념과 그 학문적 체계는 시간을 두고 보다 많은 이들이 끊임없이 연구하여 수정해 나가야 함으로, 몽주가 교조적으로 강제할 수도, 그래서도 안 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몽주가 경제평론을 다시 훑으며 몇 군데 표기해 둔 수정점들을 정리하고 있을 때, 재관대신 평지철이 배알을 청하였다.
그는 점녀가 재관대신에서 물러난 뒤 임명된 이로, 본디 점녀의 보좌로 5년 동안 일했던 자였으니, 그녀가 후임으로 추천한 자들 중 하나였다.
얼마간 일하는 걸 보니, 재기발랄할 부분은 부족하지만, 성실함과 책임감은 분명한 자였다.
안 그래도 그에게 명한 게 있던 터라, 몽주는 곧바로 그를 맞이하였다.
“어찌 되었나?”
“제작된 건 총 500원어치이나, 유통된 건 1원짜리 동전 52닢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되었고, 그중 48닢은 이미 환수하였습니다. 남은 4닢도 빠른 시일 안에 거둬드리겠습니다.”
“음, 그 정도면 약소하군. 다행이야.”
나흘 전, 몽주가 이주 군정 사령관 남석삼으로부터 온 장계를 읽던 중에, 그의 가슴을 철렁이게 만들 급보가 있었으니, 화폐를 위조한 자들을 추포하였다는 소식이었다.
다행히도 아주 큰 사건은 아니었다.
위폐가 있다는 신고가 들어온 즉시 관할 수령이 군병을 부려 위조범들을 추적하여 하루 만에 잡아들였고, 위조범들도 몇몇 한량들과 그들에게 협박을 당한 대장장이로 이뤄져, 대량으로 위조할 능력은 없는 자들이었다.
위폐도 동전의 모양을 낸 모래 거푸집을 이용한 수준이라, 무척 조악하여 금세 탄로 났으니, 해프닝에 가까운 일이었다.
탐라의 동전들은 그 성형 정밀도가 높고, 적어도 3종 이상의 재료를 섞어 만든 덕에 조폐청의 원형 및 관련 기밀이 새어 나가지 않는 이상, 민간에서 위조하는 건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대장장이라는 공범은 동정의 여지가 있긴 하나, 위폐가 중범죄임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도 중형을 내리지 않을 수 없네. 무슨 말인지 알겠나?”
“알겠습니다. 안 그래도 내관대신, 형판청장과 논하여 위폐를 주도한 한량들은 사형에 처하고, 대장장이는 오른손을 자른 후, 유형을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다만…….”
대략 이야기를 마칠 생각이던 몽주는 재관대신이 뭔가 할 말이 있는 양 말을 늘이자, 다시 그를 쳐다보았다.
“그 한량들 중 하나가 광산 김씨…….”
“그만. 어느 집안의 누구든 간에 사정을 봐줄 수 없는 일이라는 건 자네도 잘 알지 않나?”
“……알겠습니다.”
평 대신은 더는 말없이 물러났다. 때문에 몽주는 과거 기황후 세력과 맞섰던 것으로 명망 높은 광산 김씨 문민공(文敏公) 김광철의 손자들 중 하나가 사형을 당한 것을 알 수 없었다.
* * *
요동공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이곳에 뭐가 있기에 조사를 청하는 게지?”
“저희가 알기로는 예전 금나라 왕실의 묘소와 묘비들이 있습니다. 근방 유목민족들이 그곳을 성역처럼 여기고 있으니, 틀림없을 것입니다.”
앞에서 함께 차를 나누고 있던 좌의정 정도전의 말에 요동공은 더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더 이상하지 않나? 대체 탐라공이 금나라 왕실의 묘소에 왜 관심을 가지는 게야?”
“어쩌면 탐라국이 받아들인 무족 때문일 것 같습니다.”
“무족들의 조상이 세운 금나라니까? 그러면 더 꺼림칙하군. 괜히 그곳이 원래 무족들의 땅이라고 주장하면서 들어오려는 수작일 수도 있지 않나?”
요동국이 얼마 전에 요서 지방의 거란계 대부족을 포섭하며 그 땅을 슬그머니 복속한 바 있기에 그런 생각이 아주 터무니없는 건 아니었다.
“동금주가 동진하려는 낌새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만…… 영 내키지 않으시면 거절하시지요.”
정도전은 그 문제를 그리 중히 여기지 않았다.
금나라의 묘지터(?)는 어떤 면으로 봐도 중요한 곳도 아니었고, 탐라국이 땅을 탐한다고 해도 그곳을 노릴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건 탐라공의 서찰에 담긴 내용 때문이었다.
며칠 전에 탐라공으로부터 온 서찰에 담긴 내용 중 대부분은 당연히 국혼에 대한 상의였다.
이미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혼약에 대한 내용은 술술 넘어갔는데, 그 말미에 따로 얄루강(압록강) 중류에 군병을 보내 조사하고자 하니 허락해 달라는 내용이 덧붙여 있었던 것이다.
“불허하오리까?”
좌의정이 다시 묻자, 요동공은 인상을 잠시 더 찌푸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허락하지. 괜히 좋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꼴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알겠습니다.”
“아, 그래도 혹시 모르니, 우리 군병도 몇몇 보내 무슨 일을 하는 건지 살펴보겠다고 하게.”
좌의정도 그 결정에 동의하는 기색이었다. 요동공만큼 그도 왜 탐라공이 그런 부탁을 한 건지 궁금하긴 마찬가지였으니까.
“그건 그렇고 혼인날을 언제로 택하시겠습니까?”
탐라공은 길일을 몇 개 골라 보냈고, 요동공으로 하여금 그중 하나를 택하게 하였다.
“그 날짜들 중에 흉한 날은 없지 않나?”
“예. 우리 사관들도 모두 길일이라 하였습니다.”
“하면, 굳이 뒤로 미룰 필요는 없겠지. 가장 빠른 게 단오 이후던가?”
“그렇습니다. 열셋째 날이지요.”
“그럼, 그날로 하지.”
혼인날을 정하니, 요동공은 절로 그의 다섯째 아들을 떠올렸다.
“방원이가 탐라에서 평판이 좋다더군.”
“그렇습니까?”
“예전에는 성격이 다소 드세다 싶었는데, 아주 의외야.”
“오 공자께서도 이제 다 성장하셨으니, 자중하는 법을 깨우치신 게지요.”
“그럴 수도 있겠지. 한데, 내가 보기엔 약간 기가 죽은 느낌도 있어.”
“오 공자께서 기가 죽었다고요?”
정도전은 설마 하는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3년 전에 탐라로 떠난 이래, 몇 번 요동국에 잠시 돌아온 적이 있긴 했지만, 그는 오 공자 이방원을 직접 보진 못했다.
하여, 그가 가진 방원에 대한 인상은 탐라로 떠나기 전의 모습뿐이었고, 그 인상에서 그가 기가 죽는 건 상상하기 어려웠다.
늘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의 자신감이 방원 공자의 인상이었던 것이다.
“뭐, 세상살이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그럴 수도 있지 않겠나?”
요동공 이성계는 방원이 탐라로 가기 전에, 그와 독대하는 중에 꽤 방자하게 말했던 것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3년 사이, 이제는 장남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게 된 방과는 더욱 튼튼하게 후계의 지위를 닦았고, 그의 단점이라 할 만한 문관으로서의 능력도 전에 비하면 상당히 나아졌다.
솔직히 요동공도 이제는 방과를 차기 보위자로 생각하는 게 전혀 어색하거나 꺼려지지 않았다.
그에 비해 방원은 아무것도 얻거나 더한 게 없었다.
아들이 요동국에 잠시 들렀을 때마다 무엇을 배웠느냐고 묻곤 했지만, 대답이 시원찮았다.
그렇다고 탐라공을 등에 업은 것 같지도 않았다. 물론, 여전히 경계해야 할 부분이긴 하지만, 들리는 바로는 탐라국공 부인이 오히려 달가워할 뿐, 탐라공은 내내 거리를 두고 있는 듯했다.
“곧 탐라국에 가 볼 수 있겠군. 자네도 같이 가세. 간만에 포은도 보고 말이야.”
“알겠습니다.”
찻물을 음미하는 좌의정의 표정에 씁쓸함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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