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31)
한창 열이 오르던 두 사람은 그제야 흥분을 가라앉히며 몽주를 바라보았다.
첨에는 대항해 시대에 뜻이 맞아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이건만, 뒤로 갈수록 뭐가 안 맞는지 논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어쨌든 두 분은 제주를 기반으로 동양에서 대항해 시대를 여는 게 가능하고, 꽤 괜찮은 선택이라고 생각하신다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그렇긴 한데, 손을 대야 할 곳이 많을 겁니다.”
앞선 대답은 두신의 것이었고, 뒤는 재상이었다.
뉘앙스가 다른 두 대답 후, 그들은 다시 서로를 보며 논쟁하려는 듯한 조짐을 보였다.
“그만. 말싸움은 나중에 저 없는 데서 하세요.”
다시 불길을 잠재운 몽주는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는 말을 이었다.
“일단 대항해 시대를 여는 게 가능하고, 그에 필요한 뭔가는 수정하고 발전시키는 것도 가능하다고 가정하죠. 그런데 그게 고려를 부국강병하게 만들고, 기반을 튼튼하게 하는 방안이 될 수 있나요?”
“성공하기만 한다면야 아주 좋죠.”
그 점에서는 두 사람이 의견 통일을 이루었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원양에 도전하게 된 건 그들이 아시아에서 흘러들어오는 물자들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대항해 시대를 처음 언급한 두신이 설명을 시작했다.
“사실 대항해 시대를 두고 ‘발견’이라는 표현을 쓰는 건 우스운 일입니다. 굳이 발견이라는 표현을 쓰자면 아시아는 이미 유럽을 먼저 발견했으니까요. 어쨌든 실제로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 캘리컷에 도착했을 때, 이미 인도에서 그의 말을 통역해 줄 사람을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 제노바 방언을 비롯하여 이탈리아 지역의 여러 언어를 하는 상인들이 있었거든요.”
몽주는 그 말을 듣고 바스코 다 가마가 그 때문에 무척 어이없어 했다는 기록을 일전에 책에서 보았던 것을 떠올렸다.
“이는 유럽인들이 아시아에 오지 못했을 뿐, 상인들의 교류로 아시아의 물자들이 수없이 유럽으로 흘러들어갔다는 의미입니다. 그중 대표적인 게 향신료죠. 아까도 잠깐 말이 나왔습니다만, 향신료 제도에서 팔려 나간 향신료는 엄청난 가격 상승과 함께 유럽에 도착합니다. 이는 한 번에 향신료를 유통시킬 만한 능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적게는 수십 배, 많게는 삼백 배에 이르는 돈을 주고 유럽인들은 향신료를 구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오스만 투르크가 레반트지역과 북 아프리카를 석권한 후에는 그마저도 차단되었습니다. 이미 향신료가 없이는 못 사는 유럽인들은 어떻게든 그걸 구하려고 난리를 쳐야 했고, 그런 수요는 유럽인들로 하여금 목숨을 걸고라도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하게 만들었죠. 성공만 한다면, 엄청난 이익이 보장되어 있으니까요. 자, 이걸 반대로 생각해 보는 겁니다.”
그쯤에서 재상이 끼어들었다.
“쉽게 말해서, 이 녀석 말은 사러 오는 유럽 녀석들을 기다릴 게 아니라, 우리가 가서 팔자는 겁니다.”
“일차적인 결론을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굳이 유럽까지 가는 걸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동아시아 쪽만 유통로를 잡아 두면, 인도나 페르시아만 부근에서 유럽인들과 거래가 가능하죠. 어차피 유럽인들이 못 사서 안달하는 물건들은 다 이쪽에 있으니까요. 차, 향신료, 비단, 도자기 등등. 일단 성공한다면 경제적 수익은 보장될 겁니다. 게다가 몽주 씨에 의한, 고려에 의한 대항해 시대가 열린다면, 세계사는 정말 크게 바뀔 겁니다.”
몽주는 두 눈을 감고 머릿속에 무언가를 그려 나가며 두신의 설명을 듣기 시작했다.
르네상스 이후 유럽의 모습이 그의 머릿속을 스쳤다.
“근대 시기 유럽의 팽창이 가능했던 이유를 따져 올라가다 보면 결국 그들이 대항해 시대를 열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오니까요. 보다 빨리, 보다 멀리, 보다 안전하게 항해하기 위해 수많은 기술과 학문들이 발전했고, 규모가 커진 상업적 거래와 인적 관리의 필요성으로 인해 국가 행정 체계 및 금융 경제 제도가 점진적으로 갖춰졌으며, 항로와 물자 그리고 교역지를 지키기 위해 수행한 전투들이 강병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런 점진적인 변화들이 결국 근대성을 만들어 냈습니다. 근대성이라는 표현이 서양 중심적이고, 인종 차별적이라고도 하지만, 적어도 몽주 씨가 이 놀이의 주인공으로 가지고 있는 목표를 위해서는 반드시 고려에게 심어 줘야 하는 개념일 겁니다. 즉, 고려에 의해 대항해 시대가 열린다면 궁극적으로 고려는 근대성을 갖춘 나라로 빠르게 발전할 수 있을 거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오십 년 빨리 연 대항해 시대가 오백 년 먼저 제국주의 시대를 열 수도 있겠지. 하긴 이 놀이의 주인공이 백 년 넘게 살 것도 아니니…….”
재상이 두신의 말을 이상하게 마무리하며 몽주를 빤히 바라보았다.
어느새 눈을 뜬 몽주는 그게 무슨 시선인가 싶었는데, 아마도 설마 놀이의 주인공인 몽주가 죽지 않는 사람이라고 설정해 버리는 건 아닌지 의심하는 눈빛인 것 같았다.
“걱정 마십시오. 오래 살려고 애를 쓸 순 있어도 인간이 아닌 것 같은 수명을 가지진 않을 테니까요. 반대로 하루아침에 죽을 수도 있고요.”
그건 설정의 문제가 아니다. 몽주는 언제든 꿈속 고려의 삶이 순식간에 끝나 버릴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시대니까.’
“뭐, 근대 제국주의 사상의 발로가 대항해 시대와 연관이 있는 건 맞습니다만, 제가 보기에 그건 이 놀이에 포함될 만한 건 아닌 것 같고요.”
두신이 또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말을 하였다.
“중요한 건 먼저 대항해 시대를 열기 위해 움직인다는 거죠. 본격적인 대항해 시대야 15세기 말, 그러니까 1492년에 콜럼버스가 서인도 제도에 도착하고, 1498년에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에 도착한 이후에 열리지만, 사실 1415년 포르투갈의 세우타 정복과 1420년 마데이라 제도 개척에서 이미 발아했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니 1370년인 이 놀이의 시점에서는 재상의 말대로 오십 년은 일찍 대항해 시대를 준비하는 셈이죠.”
세우타는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이베리아 반도와 마주한 북아프리카의 도시였고, 마데이라 제도(諸島)는 모로코 서쪽에 위치한 제도로 포르투칼의 아프리카 항해 도전의 첫 성과라 할 수 있었다.
그 두 가지 성과는 포르투칼의 아프리카 항해 시작의 기념포 같은 일이며, 동시에 인도와 남미로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가 되었다.
두신은 그 뒤로도 대항해 시대를 먼저 여는 이점에 대해 다시 한참 추가 설명을 하였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분명 두신은 재상과 다른 성격이지만, 뭔가에 꽂히면 말이 많아지는 걸 보아 둘이 괜히 친구인 게 아닌 것 같았다.
반면에 말이 많은 걸 이미 알고 있던 재상은 의외로 두신에게 많이 말할 기회를 양보하고 있었다.
“나도 좀 이야기하자.”
한참 두신의 말이 이어지다 잠시 일단락되자, 재상이 그제야 끼어들었다.
“대항해 시대를 연다는 건 확실히 흥미로운 아이디어입니다. 가능성이 분명하죠. 다만, 저는 그 가능성을 유럽과의 교역보다는 동아시아 네트워크를 활성화하고, 그 중심에 고려 혹은 탐라가 얻을 수 있는 이익에 주목하고 싶군요.”
‘하아…….’
몽주는 이건 또 뭔가 싶었다. 대항해 시대라는 한 마디에 파생된 해석이 벌써 여럿이었다.
“세계 지도가 있으면 좋겠…… 아, 저거 태블릿이죠? 잠시 사용하겠습니다.”
그의 방 컴퓨터 책상 위에 태블릿 PC가 있었는데, 재상이 그걸 발견하곤 가져왔다.
그는 인터넷 위성지도를 통해 동아시아 일대가 보이게 하였다.
“여기가 제주도입니다. 위치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한중일을 연결하는 선의 교차점에 위치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이 좀 멀긴 하지만, 삼국 사이 중계 무역을 하기에 좋은 위치입니다. 문제는 이 시대의 기본이 조공무역 체제라는 거죠. 하나, 사료를 보면 국가 관리의 무역 체제인 조공 외에도 밀무역이 성행했었다는 기록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아직 방법은 생각하지 못했지만, 삼국 사이의 밀무역을 주도한다면 대단한 이문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재상의 이야기에 몽주는 요 며칠 사이에 읽은 책들 중에서 중국 내부의 은의 가치에 대한 내용을 떠올렸다.
쉽게 말하면 중국은 언제나 은이 비쌌다는 내용이었다.
명 후기의 일조편법(一條鞭法)이 중국에서의 은의 가치를 크게 높인 것은 맞지만, 그 전에도 중국은 주변 나라들에 비해 은이 항상 비쌌다.
그러니 한중일 중간에서 은 거래로 차익을 얻으면 크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과거 유구 왕국이 그런 중개 무역으로 상당한 부를 얻기도 했다, 유럽이 등장하기 전까지.
이제 재상은 제주도를 중심으로 하던 지도를 확대하여 필리핀을 중심으로 두었다.
“게다가 어느 정도 규모 있는 선단을 움직이게 된다면 동북아와 동남아를 연결하는 무역 네트워크를 건설할 수도 있을 겁니다. 사실 중국 역시 부족한 것도 많고, 없어서 수입하는 것도 많았습니다. 앞서 향신료에 대해 두신이 많이 말을 했는데, 그 향신료 또한 동북아에서 구하지 못해서 못 썼지, 있으면 수요가 충분합니다. 애초에 향신료라는 것 자체가 아시아인들이 즐기던 것으로 그게 유럽으로 퍼진 것이니까요. 그 밖에도 열대 지방에서 생산되는 많은 것들이 중위도 지역의 동북아에서는 귀한 물건이 되죠. 무엇보다 동남아 무역 네트워크를 건설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쌀입니다. 이 시대 아시아 모든 가치의 기준은 결국 쌀이었으니까요. 기후 덕분에 쌀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고, 하고 있는 곳이 바로 동남아라는 거 잘 아실 겁니다.”
“동남아에서 쌀을 사서 동북아에 팔라는 건가요?”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저는 그보다는 동남아의 빈 땅에 대농장을 건설하는 게 낫다고 봅니다. 예컨대, 여기 필리핀은 이 놀이의 시점에는 국가가 없습니다. 말라야 족 계통의 부족 사회죠. 세력만 충분하다면 그들을 밀어내거나 복속시켜 그곳에 농장을 건설하는 게 불가능하진 않을 겁니다. 동남아로 진출할 정도로 성장한다면 아마 세력은 충분할 것이고요.”
“…….”
필리핀을 정복하라는 말이었다.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오십 년 먼저 연 대항해 시대가 오백 년 먼저 제국주의 시대를 열 수도 있다고.”
못할 건 없었다. 이미 한 적도 있었다. 중학교 시절 꾼 그 꿈에서 몽주가 저지른 일을 한 마디로 줄이면 정복이었다.
재상의 의견은 얼마간 더 이어졌다. 그건 14세기 동아시아 내에서 경제학의 비교 우위적 산업 육성과 그를 연결하는 무역 네트워크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이었다.
어쨌든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두 사람의 의견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두신이 주장한 유럽으로 가자 내지 유럽과 교역하자는, 결국 재상이 주장한 동아시아 네트워크의 완성을 기반으로 한 뒤에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재상은 놀이의 시점에서 기술적 한계로 동아시아를 넘어 인도양, 혹은 그 이상으로 진출하는 건 물리적으로 힘들고, 설령 억지로 진출한다고 해도 진출에 드는 비용이 이익을 넘어설 것이기에 동아시아 네트워크에 중점을 두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두신이 대항해 시대라는 화두를 던짐으로써 시작된 예기치 못한 논의는 마지막에 이르러서 가장 처음 던졌어야 할 질문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제주로 어떻게 가고, 그곳에서 어떻게 기초를 닦죠?”
몽주의 물음에 두신은 또 뒤통수를 긁적였다. 반면에 재상은 검지와 엄지로 턱을 매만지는 대신,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문을 열었다.
“이번에는 몽주 씨 차례입니다. 뭔가 설정을 더 주셔야죠.”
하긴 그렇다. 그들은 지금 밑그림을 그려 놓은 상태였다. 세부적인 그림을 채우려면 몽주가 다시 상황을 던져 줘야 할 차례였다. 그리고 그 상황은 꿈속에서 얻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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