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317)
* * *
아버지의 부름을 받기 전, 강중은 뒤뜰 구석에 서서 휘영청 밝은 달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누렁아, 어찌 사람들 중에 그런 잔혹한 자들이 있는지 모르겠구나…….’
강중은 침울한 표정으로 속으로 말하니, 그가 서 있는 곳은 1년간 그가 길렀던 누렁이를 화장한 가루를 뿌린 곳이었다.
더 어릴 적에 어른들이 그 누렁이를 매달아 몽둥이질을 하던 걸 보고 그가 누렁이를 살려 내었다.
하나, 그 누렁이는 일단 살기는 했지만, 이미 몸이 많이 상해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고, 1년 동안 앓다가 끝내 죽었다.
강중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개를 먹는 건 그렇다 하더라도, 어찌 그렇게 잔혹하게 죽인단 말인가.
더 어린 시절이라, 강중은 아버지께 고하여 그자들을 벌해 달라 떼를 썼지만, 결국 그들은 벌 받지 않았다.
형판청에서도 크게 벌할 일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리면서, 아무리 자기 소유의 가축이라 하더라도 고통스럽게 죽이지 말라는 훈계만 했을 뿐이었다.
오히려 누렁이를 빼앗은 강중을 대신하여 아비인 탐라공이 누렁이의 값을 물어 주어야 했다.
강중의 애원과 달리, 탐라공은 그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다만, 그 후에 탐라공이 도살과 사냥에 관한 법령을 내려, 사람이 위태롭지 않은 한, 고기나 가죽 및 기타 목적을 얻기 위해 짐승을 도살 및 사냥하려 할 경우, 정해진 자가 깔끔한 솜씨로 살육하게 정하며, 단지 재미로 짐승을 괴롭히는 걸 금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때도 강중은 누렁이를 괴롭힌 자들을 벌하지 못한 것이 억울했지만, 그래도 후에 다시 누렁이 같은 경우가 생기면 처벌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에 애써 마음을 달랬다.
한데, 오늘은 그때보다 더 참담한 마음이었다.
짐승도 아니고 사람을, 그것도 어미를 이용하여 그녀의 아들을 피투성이가 될 정도로 때리게 만들면서 아무렇지 않게 즐기는 자를 보았으니, 속에서 천불이 솟구치고 있었다.
“누렁아, 이번에는 제대로 싸워 볼게. 아버님도 이번만큼은 물러서지 않으실 거야.”
강중이 달을 보고 누렁이를 떠올리며 다짐할 때, 몽주가 그를 찾는다는 전언을 들었다.
강중은 굳은 의지를 담은 표정으로 아버지에게 향하였다.
* * *
‘남양 석씨 핏줄에 뭐가 있나?’
아무래도 유전자에 줏대 DNA가 강하게 자리 잡은 모양이었다.
물론, 몽주가 차지하고 있는 몽린의 과거를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걸 모르는 제삼자의 눈에는, 탐라공 몽린이나 아우 몽건은 물론이고, 아들 건중까지 모두 자기 생각과 의사에 대한 고집이 무척 강하다 여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 석해민도 벌써 몇 년이나 남양에서 사원을 짓고 있으니, 그 또한 줏대의 일종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몽주가 그렇게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쓴웃음을 짓는 건 강중이 때문이었다.
온순하고 동정심 많은 착한 성격인 터라, 어지간해서는 주변의 누구와도 부딪치지 않는 아이인데, 가끔 그 ‘착함’과 공존할 수 없는 짓거리를 마주치면 굉장히 과감한 행동을 하곤 했다.
좋게 보자면, 강중의 ‘행동하는 착함’이 약한 성격이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했지만, 좀 삐딱하게 보자면, 그것 자체가 약점이 될 수도 있는 법이었다.
동생 몽건이 ‘합리’라는 약점 아닌 약점이 있어, 합리적이지 않은 걸 두고 볼 수 없어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합리도 좋고, 동정도 좋지만, 그것을 절대적으로 여기고 그에 따라 행동하면 실수가 나오는 법이었다.
그 어떤 판단도 자신이 아는 영역 안에서 기인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 그랬다.
그렇기에 전에 몽건이 그의 ‘합리’에서 고려를 멸망시키고, 몽주가 ‘고려의 왕’이 되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일을 저지르지 않았던가.
물론, 강중의 경우는 조금 다른 일이긴 했다.
그렇게 큰일을 저지른 것도 아니었고, 처음 들었을 때는 물론, 지금도 강중이 잘못했다고 여기진 않았다.
그 토호라는 노인은 감히 공벌령을 어겨, 자신을 기만하려 했다.
노비인 어미를 강요하여 마찬가지로 노비인 아들을 학대하게 한 건, 공벌령을 회피하려는 꼼수임이 틀림없고, 그와 비슷한 일은 이미 여러 차례 있었기에 형판청에서도 그에 대한 처벌을 가능케 하는 판례도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
한데, 좀 생각해 보니 이상하다 싶었다. 탐라국의 다른 지역도 아니고 탐라섬 안에서, 그것도 홍로현에서 감히 자신을 기만하려는 짓을 저질렀고, 그것을 들켰음에도 당당하게 굴었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노비에 대한 처우와 관련해서 자신의 자비로운 정책에 다소 못마땅해 하는 자들이 있는 건 몽주도 알고 있었다. 비단 노비를 많이 가진 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양민들 중에서도 적지 않았다.
하나, 그래 봐야 ‘벼락공께서는 다 좋은데 노비를 너무 두둔하시는 것 같아.’라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탐라섬에서 절대적인 권위와 실력을 가진 자신을 두고, 심지어 별 대단찮은 명분을 가지고 대선다는 게 미치지 않고서야 할 수 있는 짓인가 싶었던 것이다.
하여, 법관대신으로 하여금 알아보게 하였더니, 일단 한 가지 특이사항이 나왔다.
그 토호가 어미를 통해 처벌한 어린 노비의 아비이기도 하다는 점이었다.
그러니까 그 사내아이는 토호의 얼자(孼子)였고, 상황상 아버지가 아들을 혼내는 상황이라고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당대에 얼자는 없었고, 서자(庶子)도 별로 없었다.
양민 첩에게서 얻은 자식인 서자가 생긴다면 그 첩은 보통 두 번째 처가 됐다. 축첩이 지탄받는 분위기에 비해 일부일처제는 약한 게 당대의 가족 문화였다.
반대로, 천민 첩(계집 종)에게서 얻은 자식인 얼자는 기본적으로 노비일 따름이었다.
일천즉천(一賤則賤)이니, 부모 중 어느 쪽이라도 천민이면 자식 또한 천민이라는 관습법이 통용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나, 어쨌든 아비는 아비인 법이고, 이를 통해 공벌령의 예외를 주장할 수 있을 듯했다.
그럼에도 그것만 믿고 감히 그에게 대선다는 건 여전히 말이 되지 않았다.
자식을 훈계(?)하는 아버지로 볼 것이냐, 노비를 사적으로 처벌한 주인으로 볼 것이냐는 건 형판청의 판단에 달렸고, 형판청에 대한 몽주의 영향력과 판결을 수정할 수 있는 권한을 생각하면 결국 몽주의 판단에 달린 셈이기 때문이다.
“그는 진주 강씨로, 이름은 기식입니다. 그의 조부 대에 탐라로 이주해 왔습니다. 성격이 모났다곤 하지만, 사실 관리 된 입장에서는 일등 백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조정의 지도에도 잘 따라 주고, 세금 납부도 착실하니까요.”
토호 강기식에 대한 평은 상당히 좋았다. 비단 조정을 잘 따랐다는 점 외에도, 꼬장꼬장한 성품에 비해 주변 사람들의 평도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강짜나, 위세를 부리는 이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본디 탐라에서 4대 성씨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토지를 가진 자였던 그는 국토령 때도 순순히 지침을 따라 토지를 반납하였고, 약간의 선지급된 보상금에 가산을 더해 몇몇 점포를 열어 가업을 대신하였다.
지금은 탐라 여러 현에 12개의 점포를 가지고 있어, 고씨, 문씨 다음으로 부유한 가문의 주인이 되었다.
영민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가장 이득이 되는 길을 찾아 움직였으니, 그 또한 몽주가 보기에도 장하다 싶었다.
그러니까, 모든 점에서 강기식이라는 자는 몽주가 기껍게 봐야 하는 자였다.
이번 일만 아니라면 말이다.
그래서 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어째서 고작 노비 문제로 자신을 거역한다는 말인가.
몽주는 잠시 생각하다가, 강중이 데려온 노비 모자(母子)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별채 남쪽 어느 방에 있는 그들을 방문하니, 아들은 열이 나는지 이마에 젖은 천을 올려놓은 채 앓고 있었고, 어미는 아들을 돌보다가 탐라공을 보고 화들짝 놀라 부복하였다.
몽주가 보기에 아들은 대략 치료하긴 한 모양인데, 도저히 하문하기 어려운 듯하여, 어미를 방 밖으로 불러내어 물었다.
“강기식은 어떤 자인가?”
“…….”
“마음 놓고 답해도 좋다. 일이 어찌 되든 내가 너희 모자의 살길은 열어 줄 것이다.”
몽주의 말이 있자, 어미가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어미로서 답하자면, 그자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자입니다.”
“어미로서? 하면, 달리 말할 게 또 있다는 게냐?”
“그를 제 주인으로서만 답하자면, 저희를 거둬 주신 고마운 분입니다.”
“……고맙다?”
몽주는 어이가 없어 얼결에 되물었고, 어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 답하였다.
몽주가 다시 캐물으니, 짐작대로 다른 노비를 사사로이 벌할 수 없어, 자신의 자식이기도 한 노비 자식을 족쳐 공포로써 다스리려 한 게 분명했다.
한데, 그럼에도 고마운 사람이라 말하는 게 가능한 것인가.
몽주는 이해할 수 없는 대꾸에 어미를 응시하다가 문득 물었다.
“너는 어찌 노비가 되었느냐?”
“……제 어미는 기철의 첩이었습니다.”
기철이라면 기황후를 등에 업고 고려를 착취하다가 공민왕에 의해 주살된 덕성부흥군의 이름이었다.
기씨 형제가 도륙당하고, 그들에게 붙은 부원배들이 몰락하면서 그들의 일가 또한 노비로 전락하였으니, 지금 몽주 앞에 벌벌 떠는 여인이 그런 자들 중 하나였다.
“너는 처음부터 사노비가 아니었구나.”
“그러합니다. 처음 탐라에 왔을 때는 대촌현청에 속해 있었습니다.”
“지금 강기식의 노비들은 모두 공노비 출신이더냐?”
“대개가 그런 줄 알고 있습니다.”
몽주는 그 대답에 한숨을 내쉬었다. 강기식이라는 자의 성품은 둘째치고 그자의 의도가 짐작되는 게 있었던 것이다.
“알겠다, 네 아들이나 잘 보살펴라.”
몽주는 어미를 들여보낸 후, 집무실로 돌아갔고, 가는 길에 내관대신 포은에게 노비 문권을 가지고 들라고 전하게 하였다.
집무실에서 기다리길 얼마 후, 포은이 들어오니, 그가 데려온 관리의 양손에 문권이 넉넉하게 들려 있었다.
“너는 강기식이 소유한 노비의 변동에 대해 파악하여라.”
“예, 저하.”
내관부의 관리에게 명한 몽주는 포은을 향해 물었다.
“내가 짐작컨대, 사노비 소유의 변동이 심할 듯합니다. 맞습니까?”
“저도 그런 줄 알고 있습니다. 다른 곳은 몰라도 탐라섬은 그렇습니다.”
몽주가 심각한 표정으로 묻자, 포은도 진지한 표정으로 최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답하였다.
탐라섬이 몽주의 손에 들어와 인구 조사가 시작된 이후, 소유 노비에 대한 조사도 같이 있었고, 탐라국이 안정기에 이른 이후에는 사노비의 생사나, 소유 이전이 있으면 바로 관부에 신고하고 등록하게 되어 있었다.
포은은 잠시 더 기억을 떠올리더니, 다시 말하였다.
“국토령으로 토지 수용이 있은 뒤, 한동안 면천하는 사노비들이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농사를 접게 된 토호들이 노비 인력을 유지할 이유가 없어진 탓이겠지요.”
포은의 답이 있은 뒤, 내관부 관리가 강기식의 노비 문권을 찾아 올렸다.
그것을 훑어본 몽주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문권들 중 아무거나 하나 달라 하여, 그 또한 훑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 겝니까?”
“……문제라면 문제겠지요.”
몽주는 포은에게 그가 주목하고 있는 점에 대해 말해 주었다.
처음에는 그게 무슨 문제인가 싶던 포은도 설명이 차츰 더해지자,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이것이 우리 탐라국이 저지른 잘못은 아니고, 과거 탐라 수령의 잘못에서 기인한 것이라곤 하나, 우리가 탐라국을 세워 다스린 시간을 생각하면, 그간 아무도 이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건 문제라 생각해야 합니다.”
몽주의 말에 포은도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노비 문제는 오래전 사롱의 홍씨 남매가 섣부른 짓을 하였을 때부터 이미 정해 둔 바가 있었다.
노비 스스로의 힘으로 신분 질서를 타파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무의미하다는 것.
하나, 노비라고 싸잡아 부르는 집단 안에도 공노비와 사노비가 있고, 외거 노비와 솔거 노비가 있으며, 각각의 노비마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음을 무시한 처사라는 점과 지금 탐라국의 사정, 특히 경제적인 상황이 노비의 존재 이유를 상실하게 만들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 것과 맞물려 사회적 모순을 형성하고 있었다.
몽주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선택할 수 있는 건 많았지만, 그 어느 것도 명쾌한 정답은 아니었다. 모든 선택이 크고 작은 부작용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민 속에서 날이 저물고 달이 떴을 때, 몽주는 어느 정도 속내를 정리하였고, 강중을 불렀다.
뭔가 의지를 단단히 다진 표정으로 앞에 선 아들을 향해 몽주는 말했다.
“네가 한 일은 착한 일이다. 그리고 강기식이라는 옛 토호는 나쁜 자다. 이건 의문의 여지가 없다.”
아버지의 말에 강중은 기쁜 낯을 보였다. 아버지가 하는 말을 들으니, 그가 바라는 대로 될 듯했기 때문이었다.
“하나, 그자는 동시에 자비로운 자이기도 하다.”
“……?”
강중은 의아한 표정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이 무슨 어폐인가 싶은 표정에 몽주는 고소를 띠며 말했다.
“이해하기 어렵겠지. 하나, 내 말이 맞다.”
“나쁜 사람이라는 것과 자비로운 사람이라는 게 동시에 있을 수 있나요? 혹시 서로 다른 일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신가요?”
“아니, 모두 노비와 관련해서 하는 말이다.”
몽주는 아들에게 강기식이 한 일들에 대해서 말했다. 그자의 피도 눈물도 없는 짓과 더불어, 그자로 인해 살길을 얻은 노비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강중이 암울한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노비라는 게 왜 있는지 모르겠어요. 잘못을 했으면 다른 벌을 내리지, 어째서 같은 사람을 물건이나 짐승 취급하는 걸 형벌로 삼은 거죠?”
“네가 지금 느끼는 그 감정만큼 노비로 삼는 것이 큰 벌이 될 수 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노비가 되는 벌은 단지 벌을 받은 자뿐만 아니라, 그 후손들까지도 모두 벌을 받는 셈이잖아요. 그건 공평하지 못해요.”
연좌하여 처벌하지 않는 탐라에서 자랐기 때문일까, 강중은 노비 제도를 몹시 혐오하고 있었다.
아니, 연좌제가 있었더라도, 강중은 똑같았을 것이다. 불쌍한 것을 보면 불쌍히 여기고, 분노할 것을 보면 분노한다.
강중은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난 아이였다.
그것이 훗날 탐라공의 후계자로서 장점이 될지, 약점이 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지금 아비로서 보자면 나빠 보이진 않았다.
“노비라는 게 없어졌으면 좋겠느냐?”
“예. 모두 면천하였으면 좋겠어요.”
“노비들 중에는 과거 아주 험악한 죄를 지은 자들도 있다. 그들은 어찌해야겠느냐?”
“다시 다른 벌을 내리면 되잖아요.”
아직 어린아이인 터라 대답도 쉬웠다. 하기야 그런다 한들 누가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들먹일 것도 아니니, 가능한 일이긴 했다.
물론, 몽주는 이미 어느 정도 정해 놓은 방안이 있었다.
“네 뜻은 알았다. 아비가 잘 처리해 보마.”
* * *
다음 날, 몽주는 강기식을 소환하였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일찌감치 소환에 응하였으니, 비서원 관리를 따라 집무실에 들어온 그는 몽주를 보자마자 부복하며 인사를 올렸다.
“이 강 모, 탐라공 저하를 배알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일어서게. 과례는 비례인 법이니.”
강기식은 부복하는 속도만큼 빠르게 일어나서는 머리를 조아렸다.
얼핏 굉장히 위축된 모습이었지만, 몽주의 눈에 비친 강기식의 표정은 그저 담담할 뿐이었다. 쉽게 말해서 그는 쫄지 않았다.
몽주는 그것을 확인하곤 과연이라는 생각을 하며 이미 자리하고 있는 포은을 향해 눈짓하였다.
그러자 포은이 나서 말문을 열었으니, 표정과 목소리가 몹시 엄했다.
“너는 사사로이 노비를 벌하여, 저하께서 선포하신 공벌령을 위반하였다. 인정하느냐?”
“이곳에서 저를 재판하시려는 것인지요?”
“어허, 너는 묻는 말에나 답하라. 어차피 형판청 또한 저하를 대신하여 재판하는 것일 뿐임을 너도 알지 않느냐?!”
“알겠습니다.”
강기식은 목을 가다듬고는 고개를 조금 들어 몽주 쪽을 보며 말하였다. 확실히 그는 쫄지 않았다.
“제 죄를 인정합니다. 다만,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이해해 주십시오. 노비가 잘못을 저질러도 벌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드신 게 저하이십니다.”
“네 이놈! 감히 지금 누굴 탓하는 게냐!”
포은의 고함에 강기식이 고개를 조금 숙였다.
“만약 노비가 잘못을 저질러 벌을 받아야 한다면, 수령이나 형판청에 고발하여 나라에서 내리는 벌을 받게 하면 되는 걸 몰랐느냐?”
“알고 있습니다. 하나, 현실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노비를 가진 자들이 매번 일일이 벌을 청하고자 한다면 수령과 형판청에서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실제로 예전에 고발한 자들도 제대로 판결을 받은 적이 드물었습니다. 게다가 저하께서 노비에 관대하시니 관리들도 그 눈치에 그저 훈계하는 걸로 마치는 게 대개였습니다. 그래서야 노비를 제대로 부릴 수 있겠습니까?”
돌려 말하지만, 강기식의 대답은 일맥상통했다. 내가 잘못한 건 맞지만, 그 잘못은 탐라공의 잘못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말이었다.
“어허, 이자가 어느 안전이라고 그따위 망발을 지껄이는 게야?!”
다시 포은의 불호령이 터지자, 몽주가 손을 들어 개입하였다.
“일단, 내 하나 묻지. 자기 자식이기도 한 그 사내아이로 하여금 다른 노비들의 잘못까지 벌 받게 한 것이 진정 옳다고 보는가?”
“옳은 게 중한 것이 아니라, 효과적인지가 중한 것 아니겠습니까.”
“효과적이라…… 정말 효과적이던가?”
“그랬습니다. 효과가 있을 때까지 벌하면 효과가 있는 법이지요.”
“언제부터 그런 식으로 노비들을 다뤘나?”
“두 해가 조금 넘었습니다.”
그 노비 사내아이의 나이는 노비 문권에 적혀 있었는데, 올해로 14살이었다. 그러니까 11살 때부터 그 아이는 다른 노비들을 대신해 두들겨 맞으며 살았다는 말이었다.
그 태연한 대꾸에 깊은 분노를 억누르며, 몽주는 강기식에게 가장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그 아이가 네 아이인 건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말이냐?”
“제 아이니까 그럴 수 있었지요. 물론, 어차피 노비인 건 마찬가지고요.”
그러면서 강기식은 일순 히죽 웃음을 보였다.
‘사이코패스든 소시오패스든 둘 중 하나네.’
몽주는 강기식의 웃음을 보며 결정한 바를 말하였다.
“나는 너를 벌해야겠다. 그 노비 아이에게 100원을 보상하고, 그의 어미와 더불어 그 아이의 노비 문권을 내관부에 반납하라. 이것이 내 판결이다.”
“예, 따르겠습니다.”
“다만, 다시 이런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가중하여 크게 벌할 것이니, 이를 명심해야 할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아동학대죄’의 명목으로 중벌에 처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법령을 대신할 판례를 축적하고 있는데, 기존의 벌과 크게 차이나는 벌을 내려 판례를 흐트러뜨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노비를 사적으로 처벌한 것에 대한 벌은, 노비가 죽거나 장애가 되지 않는 이상, 솔거노비를 외거하게 만들고 처벌의 위중함에 따라 그저 벌금의 크기가 늘어나고, 줄어들 뿐이었다.
어찌 보면 몽주가 강기식에게 내린 벌은 그런 판례에 비하면 엄벌이라 할 수 있었다. 벌금의 크기도 큰 편이고, 두 노비 모자의 소유권까지 박탈한 건 이런 판결 중에서는 찾기 어려운 것이었다.
“죄에 대한 판결은 했고. 이제 자네에게 내릴 상에 대해 말하겠네.”
“……?”
혹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강기식을 향해 몽주는 실소를 머금으며 말하였다.
“자네 덕에 나와 조정이 미처 깨닫지 못한 문제를 알게 되었으니, 상을 내려야지. 하여, 자네를 행정부관에 임하겠네.”
“망극……!”
“부임지는 무라카미의 노지마일세. 그곳에는 많은 탐라의 죄인들이 부역하고 있으니, 그들을 관리하는 일을 맡아 주게.”
“……!”
처음으로 제대로 놀란 표정이 강기식의 얼굴에 떠올랐다.
“잘 부탁하네. 아, 사양은 사양하겠네. 자네처럼 영민한 자는 나라를 위해 봉사해야 하지 않겠나? 이곳의 점포들도 걱정 말게. 자네 자식들이 어련히 잘 이끌지 않겠는가.”
“하, 하나…….”
“내관대신, 이자를 서둘러 임명하고, 부임하게 조치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이미 몽주의 의도를 파악한 포은이 실소를 참으며 바깥에 비서원 관리들을 불렀고, 그들로 하여금 강기식을 데려가게 하였다.
“저, 저하! 저는 관원이 될 만한……!”
비서원 관리들이 순식간에 강기식을 끌고 나가자, 포은이 몽주에게 서둘러 처리하겠노라 말하곤 역시 밖으로 나갔다.
‘사이코든, 소시오든 어울리는 자리에 보내야지.’
그러고 보면 무라카미는 여러모로 쓸모가 많았다.
벌 아닌 벌을 내려 강기식을 처리한 몽주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다가 어느 순간 다시 심각해졌다.
모순된 상황에 처한 노비들을 어찌해야 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그 수밖에 없는 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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