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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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의 노비들이 처한 모순은 그들이 노비의 처지를 벗어날 이유가 없음에도 정작 그들의 필요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에서 기인하였다.
공벌령을 통해 주인이 노비를 사적으로 처벌하지 못하고, 처우를 개선해 줘야 함에 따라 처지가 좋아졌고, 특히 외거 노비는 일반 양민과 다를 바가 없는 상황이었다.
한데, 이것이 두 가지 문제를 발생시켰으니, 하나는 노비의 주인들이 노비를 소유하는 물질적, 정신적(함부로 노비를 다루지 못하게 되었으니까) 비용이 증가함에 따라 자발적으로 노비를 면천시키려 하게 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몽주가 바랐던 노비들 스스로의 신분타파 노력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 문제는 얼핏 문제가 아닌 듯하지만, 면천이 그냥 되는 게 아니라 조건부 면천, 즉 자기 몸값을 차후에 지불하는 대가로 면천해 주는 것이기에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다.
그냥 면천되어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노비들에게는 힘든 일인데, 장차 일하면서 버는 돈 중 많은 부분을 원래 주인에게 줘야 하는 건 차라리 노비로 남는 것만도 못했다.
다만, 이 문제는 탐라 조정에서 개입하여 관련 소송을 통해 면천하는 대가를 과하게 책정하지 못하게, 특히 어린아이나 나이 든 자는 아예 면천의 대가를 요구하지 못하게 판례화함으로써 어느 정도 부담을 감해 주긴 했다.
그럼에도 아직 남은 문제가 있었으니, 본디 공노비였던 사노비들은 어지간해서는 면천되고 싶지 않아 한다는 점이었다.
이는 과거 고려의 수령들이 관부의 공노비를 함부로 사노비로 전용하거나, 매매함으로써 생긴 일인데, 대부분 중죄를 저지른 자이거나, 그들의 자식인 터라 면천한다고 해도 천시되는 건 마찬가지였고, 주인이 없어졌기에 더욱 괄시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특히, 탐라섬의 경우는 그와 같은 경향이 유독 심했는데, 멀고 동떨어진 곳이라 탐라섬에 파견된 수령들이 공노비를 몽땅 자신의 것처럼 함부로 처리했고, 그렇게 사노비화된 자들은 탐라까지 올 정도로 정말 대죄를 지은 자들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탐라섬의 양민들은 공노비를 크게 혐오하였고, 그들이 사노비가 되든, 면천하든 그 혐오를 줄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공노비 출신의 사노비들은 면천할 생각도 없는데 강제로 면천당하게 될 처지에 몰렸고, 그 와중에 강기식이 그런 처지인 사노비들을 싸게 사들여 소유 노비의 수를 크게 늘렸다.
그렇게 강기식의 노비가 된 자들은 어지간한 사적인 처벌에도 참을 수밖에 없었고, 자신들의 잘못 때문에 사내아이가 두들겨 맞는 것을 고발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엄연히 강기식이라는 자의 냉혈한적인 성품으로 인한 일이었지만, 동시에 몽주가 노비들을 ‘인간’으로 대우하게 함으로써 발생한 일이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몽주가 공벌령이라든지 노비의 처우를 개선한 일에 대해 후회하는 건 아니었다. 사노비가 된 공노비를 미처 파악하지 못한 실수일 뿐이었다.
하나, 노비들이 처한 모순적인 상황이 만들어 낸 두 번째 문제는 더 근본적인 것이었다.
이제 노비들이 자신들의 신분을 혁파할 이유가 사라졌다는 것.
신분 질서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아래 계층으로부터 시작되는 혁명이 필요한데, 그 혁명이라는 게 대단한 사상이나 명분에 의한 것이 아니라, 못살겠으니 바꿔 보자는 분노에 기인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분명히 그런 동력 자체가 사라진 상태였다.
지금도 잘 살고 있는데, 몸과 마음이 고달프고, 자칫 지금의 좋은 사정마저 망칠 수 있는 짓거리를 누가 하려고 할까.
게다가 적어도 겉으로는 몽주도 신분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탐라국에서 감히 탐라공을 거역하여 신분 질서를 무너뜨리고자 시도하는 건 더욱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몽주가 일부러 노비들을 비롯하여 천민들을 양성하고, 그들을 박해해서 반란을 일으키게 유도하는 건 더 말이 되지 않았다.
사실 이건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몽주로서는 자신의 대가 아니라, 더 후대에서 처리할 문제라고 여겼기에 가만히 두고 있었다.
한데, 지금의 상황은 차라리 몽주가 전면적으로 노비 해방령을 내리는 게 더 낫지 않나 싶을 정도였다.
이러다 노비의 수는 감소할지 몰라도 남아 있는 노비들은 양민들에 의해 더욱 천시되면서 마치 일본의 부라쿠민(部落民, ぶらくみん)처럼 오래토록 낙인찍힌 채 남아 있게 될 것 같았다.
훗날, 피차별적인 신분 질서에 저항하고 싶어도 저항할 단위가 되지 못하는 존재들이 남아 있는 건 몽주가 바라는 미래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문제는 그런 전면적인 해방령을 내렸을 때, 오히려 양민들이 노비를 비롯한 천민에 대한 공격적인 양상을 띠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었다.
가만두면 적어도 일반적인 사노비들은 자연히 면천되고, 약간의 괄시는 받겠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양민으로 정착될 게 분명해 보이는데, 괜히 노비 해방령이 그들을 우대하는 것으로 비쳐 분위기를 격앙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그에 대한 고민 끝에 한 가지 방법을 강구하긴 했지만, 그 또한 다른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존재했다.
“하여, 면천한 사노비들까지 모두 이주섬으로 보내시고자 하시는 것입니까?”
“일면 좋은 생각인 듯하나, 자칫 이주섬에 대한 백성들의 전반적인 인상이 몹시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총무회의 때 몽주가 생각해 둔 방안을 밝히자, 대체적으로 나쁘지 않다는 중에 이주섬의 ‘이미지’ 하락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뭐, 지금도 이주섬에 대한 인상이 좋은 건 아니지 않습니까?”
찬성파인 탁기의 말이었다.
사실 이주섬이 탐라국의 일원이 된 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일반 탐라 백성들에게는 여전히 낯선 곳이었다.
주로 이주섬에서 근무했다고 돌아온 군병들이나 군정 사령부를 위해 수송에 참여한 상선의 선원들의 입을 통해 전해진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해진 이주섬에 대한 소문은 몇 가지로 함축되었으니, 덥고 습하다는 것, 분위기가 사납다는 것, 그리고 노비들의 세상이라는 것 정도였다.
덮고 습한 거야 자연 환경에 관한 것이니 호불호와 무관하더라도, 사나운 분위기나 노비들의 세상이라는 건 분명 그리 좋은 인상을 줄 만한 내용이 아니었다.
잔인하고 치열한 정복 전쟁 끝에 평포족 원주민들과 일찍 이주섬에 들어온 월인들이 큰 피해를 입은 채 일종의 ‘공노비’로 전락했으므로, 노비들 천지라는 표현은 틀린 게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노비들이 고려인들을 보는 시선이 상냥하지마는 않을 것임을 생각하면 분위기가 사납다는 것도 맞는 말일 것이다.
또, 고산족들도 비록 고려와 연합하긴 했지만, 애초에 사나운 족속들이니, 사나운 분위기를 더하면 더했지 덜하게 만들 자들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어차피 거기에 사노비들 수백 수천을 가져다 놓는다 한들 더 나빠질 것도 없다는 탁기의 말은 틀린 게 아니었다.
“자칫 이주섬 출신들이 다른 지역민들에 의해 차별을 받을 수도 있으니, 하는 말 아니겠소. 조금이라도 좋은 인상을 남겨도 시원찮을 판에 사노비들을 다 데려다 놓는다면 사노비들에게 찍혀 있는 낙인이 이주섬 자체로 옮겨 갈 수도 있소.”
“저, 제가 솔직한 말씀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문득 발언권을 요구한 자는 농관대신 초고불이었다. 평소 총무회의 때 발언하는 경우가 드문 이의 요구인 터라 다들 그를 주목했다.
“이주섬의 인상을 따로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중요한 건 그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이주섬만 인상이 좋지 않은 건 아니지 않습니까? 동금주는 마적 떼라며 욕하고, 구주는 왜놈들이라 무시하고, 남면은 거지 놈들이라고 면박 주는 게 이곳 탐라섬의 현실 아닙니까.”
“이보오, 초 대신. 지금 무슨 말씀을 하는 게요?”
누군가의 지적하는 듯한 되물음에 초고불은 말을 못 알아듣느냐는 양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니까 다른 지역이 차별받는 건 그 지역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 다른 지역을 무시하려는 마음을 품고 있는 탐라섬의 백성들이 문제라는 말입니다. 이주섬에 노비들을 보내지 않는다고 해서 이주섬의 인상이 좋아지겠습니까? 아닙니다. 동금주, 구주, 남면을 무시하는 것처럼 똑같이 이주섬을 무시할 것입니다. 지역 차별이 걱정된다면 가장 먼저 주군의 은혜를 받았다는 행운을 두고, 마치 선택받은 것처럼 으스대는 탐라섬의 분위기부터 일소해야 할 것입니다.”
“…….”
초고불은 발언을 마친 후, 회의석상을 한번 둘러보고는 자리에 앉았다.
잠시 조용한 가운데 목을 가다듬는 소리만 간간이 흘렀다.
그것은 모두들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부조리를 지적받게 된 불편함이자, 초고불이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목호 출신들의 대표로서 아직까지도 목호들이 은근히 배타당하는 것을 돌려서 피력한 것에 대한 불편함이었다.
목호들이 탐라공의 치세에 복종하는 것과 무관하게,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 그들을 같은 탐라국인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분위기가 남아 있는 건 사실이었다.
아마 목호들이 탐라공의 노비로 살고 있고, 그래서 은연중에 탐라공의 비호를 받고 있는 게 아니었다면 훨씬 더 적대적인 상황이었으리라.
정말 몰랐던 것이든, 모른 척하고 있던 것이든 뭐가 문제라고 손가락질하던 중에 실제로는 그 자신이 제일 문제임을 지적당한 무안함이 모든 대신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이런, 이런, 어제 오늘에 걸쳐, 내가 제대로 정치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많이 들게 되는군.”
몽주가 침묵을 깨고 옅은 한숨과 함께 소감을 토하자, 대신들이 일제히 황망해 하며 자신들의 부족함 때문이라 죄를 청하였고, 초고불도 주군을 원망하는 말이 아니라 해명하였다.
“아니야. 더 큰 세상을 노리느라 정작 내 발밑을 살피지 못하는 우를 범한 건 분명한 사실이네. 새롭게 넓힌 곳을 탐라국에 동화시키는 것만큼 탐라섬 또한 더 큰 포용력을 가지게 만드는 것 또한 중요한 법인데, 그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군. 좋은 지적이었네, 초고불.”
“황송할 따름입니다, 주군.”
진심으로 초고불을 칭찬한 몽주는 교관대신 홍길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학생들은 물론, 탐라 백성들 전체로 하여금 다른 지역의 중요함과 동등함을 일깨우게 하고 싶군. 또, 신분은 영원한 게 아니며, 그것만으로 사람 자체를 천시할 수는 없음을 깨닫게 하고 싶고. 순보와 교과서를 비롯하여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빠른 시일 안에 시작할 방도를 강구해 보게.”
“알겠습니다, 주군.”
홍길도는 기쁜 낯을 보이며 얼른 대답하였다. 전에 그의 아우 둘이 원하여 일을 저질렀고, 그 자신도 은근히 밀어주었으나, 결국 실패했던 일이 오늘에 이르러 절로 이루어지게 되었으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주군의 말 속에 비친 ‘모든 수단’이라 함은 사롱의 문화 사업 또한 이용하라는 뜻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하면, 모든 노비를 해방하실 요량이십니까?”
문득 재관대신 평지철이 차분한 어조로 물었다. 몽주의 말 속에 신분이 일시적임을 담고 있었으니, 신분 제도 자체가 사라지는 건 생각할 수 없지만, 천민들을 해방시키는 건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농상공(農商工)이 동등해졌고, 과거 천하게 여기던 도축하는 이들마저 이제는 그저 상인이었을 뿐이니, 탐라국에서 천민은 오직 노비뿐인 바, 결국 노비 해방으로 귀결되는 상황이었다.
몽주는 회의석상을 둘러보며 물었다.
“사노비들을 이주섬으로 보내되, 시한부로 노비들을 전부 면천하게 하는 것에 대해 어찌 생각들 하오?”
“시한부라 하시면……?”
“대략 5년쯤 두고 일부를 제외한 모든 노비들을 면천시키겠다는 말이오. 제외되는 일부는 과거 흉악한 죄를 지어 노비가 된 자들로 그런 자들은 죄질에 따라 조금 더 면천을 늦추게 하고.”
선뜻 대꾸는 없었지만,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 같으면 반대하는 의견도 많았겠지만, 이미 탐라에서 노비의 필요성이 감소되고 있는 바, 시간을 두어 노비를 해방시킨다 해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데에 다들 동의하는 것이었다.
물론, 탐라섬 외 다른 지역에서는 벼농사를 비롯하여 농업이 중요한 산업인 터라, 노비가 더 유지될 수도 있겠지만, 그곳에서도 국토령이 시행되었거나, 한창 진행 중인 터라, 농업의 주체가 나라나 탐라 상단이 되었기에 일꾼으로서의 노비를 굳이 유지할 필요는 없었다.
“한데, 이주섬의 원주민들과 월인들도 같이 면천시키실 생각이십니까?”
“음, 그들은 애초에 약조한 대로 10년을 채우게 하도록 하지. 어차피 5년 후라면 그들도 몇 년 안 남았을 테니까.”
그것으로 노비 해방령은 확정되었다.
본디 노비 스스로 신분의 굴레를 벗길 바랐던 몽주의 이상(理想)은 탐라국의 사회 경제적 변화 앞에 몽상(夢想)으로 끝난 셈이었다.
하나, 이는 달리 말하면 탐라국의 진보 앞에 구태인 신분 질서가 많이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으니, 몽주가 달가워할지언정 꺼릴 이유는 없었다.
열흘 후, 그 결정은 순보와 방문을 통해 탐라 백성들에게 알려졌고, 탐라섬부터 양민들 소유의 사노비를 나라가 수용하는 방안과 더불어 사노비 및 면천양민들의 이주섬으로의 이주 준비도 시작되었다.
5년 시한부 노비 해방령에 대한 일반 양민들의 반응은, 탐라섬에만 국한하자면 모든 노비를 해방한다는 것 자체에 불만을 가진 자들은 제법 있는 듯했지만, 그들이 모두 불모지(?)인 이주섬으로 가는 불이익으로 상쇄되어 반발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노비 해방령으로 인해 탐라국이 한창 시끄러울 때, 정작 그 문제와 관련된 고민으로부터 해방된 몽주는 여유를 느끼기도 전에 새로운 고민거리를 받아야 했다.
* * *
몽주의 집무실에는 날마다 많은 문권들이 쇄도했지만, 대개는 정기적인 사안에 대한 것이거나, 예상 가능한 문제에 관한 것들이었다.
하여, 전혀 예상치 못한 문권들이 세 곳에서 한꺼번에 들이닥친 건 좀처럼 없는 일이었다.
물론, 그 세 곳에서 온 문권들이 모두 심각한 내용을 담은 건 아니었다.
먼저 탐라상단이 보내온 보고에서 요동국이 회사령을 준비 중이라는 내용은 예상하지는 못했어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것이었다.
탐라섬에서 칠 일이나 보내면서 탐라섬의 현황을 골고루 훑은 요동공이 다분히 충격을 받았다는 건 몽주도 잘 알고 있었고, 어떤 식으로든 요동공의 정치에 영향이 있을 것 같았다.
그중에서도 회사령을 따라 하는 건 아마 몽주가 방원에게 회사를 세워 주기로 약조한 것과 유관할 게 분명했다.
‘하면, 사위의 회사는 요동에 세워지게 되는 건가? 흠, 대체 무슨 회사를 세우게 될지 모르겠군.’
방원과 강영은 여전히 신혼 생활을 즐기는 중이었고, 지금은 함주로 여행을 떠나 있었다.
개념도 없는 신혼여행을 간 건 아니었고, 방원의 어머니를 뵐 겸 하여 간 것이었다.
이성계는 역사와 달리 신덕왕후 강씨를 둘째 부인으로 얻지 않았지만, 신의왕후 한씨가 향처(鄕妻)로 전락한 건 마찬가지였고, 그녀는 혼사 때도 지병인 위장병에 시달려 오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았다.
때문에 방원, 강영 부부가 대신 찾아간 것인데, 그 여행으로부터 돌아온 뒤에야 회사 설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집안(集安)에서 온 두 통의 장계와 서찰 중, 고려군 장교 감태가 보내온 탐사에 대한 장계는 응당 와야 할 소식이었다.
광개토대왕릉비에 대한 이야기와 그 ‘성역’에 가득한 옛 고려의 능묘들에 관한 보고는 몽주에게 반가움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다만, 광개토대왕릉비의 탁본은 훼손의 우려 탓에 차후 귀환하여 올리겠다는 소식이 서둘러 보고 싶었던 몽주로서는 아쉬움이 남았다.
현대에서 조작 여부를 두고 말이 많은 대왕릉비인 만큼 당대에서 확인하고, 만약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면, 탁본을 많이 떠 두고 요동국과 더불어 집안 지역을 고려의 성역으로 삼아 보호함으로써 천몽 이후의 현대에서는 그와 관련한 역사적 논쟁을…….
‘아, 잠깐, 아니지. 광개토대왕릉비는 지금 현대에도 남아 있는 것이니 곧바로 변하겠지.’
예전에 재상, 두신과 더불어 정리한 천몽의 규칙에 비춰 볼 때, 광개토대왕릉비는 그 변화가 곧바로 적용될 가능성이…….
‘아닌가? 청동검이나 용두사지 철당간의 경우는 내가 이곳에서 분명한 변화를 준 것이지만, 광개토대왕릉비는 내가 한 것도 아니고, 변화를 준 것이라고 하기도 좀 애매한데…….’
규칙을 대략 파악했다고 여겼고, 사례도 있었지만, 현대의 광개토대왕릉비가 바뀌게 될지는 몽주도 짐작하기 어려웠다.
꽤 궁금한 노릇이었지만, 어차피 현대로 돌아가면 알 수 있을 것이니, 더는 신경 쓰지 않기로 하였다.
집안 탐사대의 감태 대장이 보낸 장계와 함께 온 서찰은 무학 대사가 보낸 것으로 그 내용이 의미심장했다.
‘무학, 이 사람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네. 이번에는 왜 이렇게 호의적이지?’
고려군 탐사대를 따라 함께 집안에서 옛 고려의 흔적을 파헤치고 있다면서 귀한 기회를 가지게 해 주어 고맙다는 내용과 함께, 벼락공 신화(?)를 들었다면서 요동의 사원에도 화덕진군의 사당을 들이겠다는 묘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언제는 역천한다고 비방하고, 심지어 자신의 손에 죽으려고 대들기도 하더니, 이제는 갑자기 핑크빛 ‘무드’(?)를 연출하는 무학은 도저히 그 속내를 짐작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하나, 그에 대한 생각도 길게 할 수는 없었고, 생각한다고 해도 결론을 얻기 어려운 것이었다.
당장 급한 건 궁중후가 전해 온 소식이었다.
[……하여, 지금 고려 도당의 분위기란 현실을 모르는 자들과 아부에 여념이 없는 자들의 무책임함으로 가득합니다. 제가 몇몇 신료들과 더불어 금상을 설득하고 현실을 직시하도록 노력하고 있으나, 간언에 현혹된 상께서는 좀처럼 마음을 돌리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 이대로 논의가 이어진다면, 금상께서 공의 지위를 흔들거나, 새로운 요구를 할 것이 분명한 바, 공께서도 미리 대비하셔야 할 것입니다. 다시 연통하겠으니, 만약 생각하신 방책이 있으시다면 하루라도 빨리 제가 전해 주시길 바랍니다.]예관시랑 김판술의 허황된 보고로부터 비롯된 당금 고려 도당의 분위기에 대한 궁중후의 전언을 처음 확인하였을 때, 몽주는 기가 막히다 못해 코웃음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이건, 계속된 호의를 권리로 여기는 수준을 넘어 후안무치한 지경이었다.
안 그래도 고려 왕실에 보내는 공물이 너무 많다는 불만이 대신들 사이에서 종종 나옴에도 무마하고 있었고, 또 그 공물들이 고려 본토 백성들보다는 고관대신들의 사리사욕에 주로 쓰인다는 말에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애써 모른 척했었는데, 정작 ‘선물’을 받는 자들은 고마운 마음을 가지기는커녕, 불만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어찌해야 할까.’
방법은 여러 가지였다. 고려의 간신들을 구워삶아 금상의 마음을 돌리는 방법부터, 왕실을 철폐하는 방법까지 무엇이든 가능했다.
다만, 그 뒤의 상황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는 없었고, 특히 요동국과의 관계가 중요한 변수였다.
“흠, 요동국이라…….”
문득 요동공이 회사령을 따라 할 마음을 품었다는 보고가 떠오르면서, 어쩌면 요동공과 조금 더 깊은 대화를 나눌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몽주의 대계에 고려 왕실은 반드시 있어야 하나, 왕이 꼭 지금의 금상일 필요는 없었고, 왕실 자체도 존재만 하면 그만이었다.
“잘하면 정도전도 혹하게 만들 수 있을 듯하고 말이야.”
몽주의 머릿속에서 고려 왕실의 운명이 좌지우지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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