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325)
“정렬!”
대대장의 명령과 함께 1백 명의 군병들이 일제히 움직여 오열을 맞췄다.
탐라섬의 겨울 날씨가 따뜻한 편이라곤 하나 동지(冬至)가 코앞인 즈음에 춥기는 마찬가지였으니, 땀이 흐를 만큼 훈련한 군병들의 주변에선 뽀얀 김이 연신 흘러나오고 있었다.
왕예도 그 무리의 한 군병이었다.
허리에 단검을 차고 장창을 꼿꼿이 든 채 미동조차도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일개 하병.
“훈련하느라 수고했다. 이만 해산하겠다. 다들 숙소로 돌아가는 대로 씻고 몸을 녹이도록. 해산!”
두 시진 가까이 진행된 진형 훈련이 끝나자, 군병들은 서둘러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얼른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하고 싶은 맘이 굴뚝같았던 것이다.
한데, 왕예는 발걸음을 천천히 움직이며 누군가를 찾는 양 두리번거렸다.
“어이, 여기야!”
찾던 목소리가 들리자, 왕예는 이내 왕숭을 발견했다.
다른 대대에 속한 그였지만, 그의 대대보다 조금 일찍 훈련을 마쳤기에 그는 훈련장 변두리 풀밭에 앉아 있었던 모양이었다.
“후우, 힘들지?”
“힘들지. 그래도 처음보다는 익숙해져서 다행이야.”
“그러게.”
같은 숙소는 아니지만 바로 옆 숙소를 쓰는 터라 그들은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아니, 숙소의 위치 같은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개경에서 같은 해에 태어나 함께 어울리며 자란 그들이었기에, 그리고 그들 모두가 용종이었기에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는 그들을 용종이라 하여 가까이 하길 꺼려 하는 일반 군병들의 태도 때문이기도 하였다.
둘은 함께 숙소로 가서 곧바로 그 숙소에 배정된 목욕탕으로 향했다.
입구에서 각자 쓸 뜨거운 물이 담긴 통을 받았고, 목욕탕의 수도에서 받은 찬물로 섞어 온도를 맞추었다.
주르르.
“으아, 좋다!”
왕숭이 따뜻한 물을 바가지로 퍼서 벗은 몸 위에 뿌리며 좋아라 하였다.
“야, 등 좀 밀어 봐라.”
“들이대.”
왕예가 먼저 왕숭의 등 위에 비노칠을 하고 거친 마포로 밀어 주었고, 그다음에는 반대로 왕숭이 왕예의 등을 밀었다.
주변의 다른 군병들도 마찬가지로 서로 등을 밀고 이야기를 나누며 훈련의 피로를 풀고 있었다.
“내일은 궁술 훈련이던가.”
“어.”
“젠장, 난 왜 이렇게 활을 잘 못 쏘지? 넌 좋겠다.”
“넌 칼을 잘 쓰잖아. 나야말로 짚단 베기 심사도 통과 못해서 미치겠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라는 게 다 잘하는 게 있는 모양이야.”
“그렇지. 개경에서도 너는 시와 노래를 잘했고, 나는 서예에 능했잖아.”
“크크.”
“왜 웃어? 내 말이 틀렸냐?”
“그게 아니라, 그렇게 노닥거리던 우리가 여기서 창에, 검에, 활을 익히고 있다는 게 문득 웃겨서.”
왕숭이 웃음을 흘리며 한 말에 왕예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뭐…… 우리 팔자지.”
그들의 팔자는 지난 일 년 사이에 완전히 달라졌다.
용종으로 태어나 편안하게 성장했다. 모든 용종들이 다 안락한 삶을 누리는 건 아니지만, 왕예나 왕숭이나 모두 운 좋게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다.
1년여 전에 폐위 우왕이 물러나고 금상이 즉위할 때도 그들의 삶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여기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좋아지리라 믿었다.
그들 모두가 금상의 조카뻘 되는 이들이라 잘하면 뭐라도 얻게 되리라 여겼던 것이다.
한데, 얻은 것이라고는 입영하라는 군령뿐이었다.
처음에 용종들은 그냥 코웃음을 쳤다. 왕예와 왕숭의 부모도 마찬가지였고, 심지어 군령장을 그대로 찢어 버렸다.
왕명이라곤 하나, 왕실 근위군도 아니고 탐라군과 요동군으로 입영하라는 건 분명 그 두 국공이란 작자들의 술수라 여기며, 어디 한번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반응했다.
실제로 군령대로 제 날짜에 입영을 위해 모인 자는 한 손으로 꼽을 만큼 적었다.
한데, 그다음 날 후부터 개경에 탐라군과 요동군의 군병들이 개경 안으로 들어와 근위군과 함께 곳곳을 헤집기 시작했다.
목표는 용종들이었다.
군령장을 받았음에도 무시했던 모든 집안의 가주들이 끌려가 태형을 받았고, 입영 당사자인 16세 이상 30세 이하의 젊은 사내들은 군병들의 거친 손에 잡혀 끌려갔다.
왕예와 왕숭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고, 임금께서 이런 행패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협박을 담은 목소리를 높였지만, 돌아오는 건 매질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굴이 붉어질 만큼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그때는 그들이 아는 세상이 전부인 줄 알 때였다.
뭔가 착각하고 있었구나 싶었던 건 그렇게 군병들에게 끌려가 예상강 포구에 닿았을 때, 그곳에 국본(國本)이 계심을 보았을 때였다.
아직 책봉식은 없었지만, 금상의 유일한 아들인 왕세자 왕석이 자진하여 소집에 응한 소수의 용종들과 함께 그들을 불쌍하게, 그리고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끌려온 젊은 용종들은 더는 아무런 불평을 할 수 없었다.
세상이 어찌 변했는지를 그때까지는 정확히 몰랐지만, 적어도 금상이 국본마저 입영시키려 함을 알게 되자, 왕씨라는 성씨가 가지는 힘이 사라졌음을 절감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용종 사내들은 반으로 갈려 배에 올랐으니, 한 배는 북쪽으로 다른 한 배는 남쪽으로 향했고, 예와 숭은 남쪽으로 가는 배에 탔다.
“생각해 보면 요동국보다는 탐라국에 온 게 그나마 운이 좋았던 것 같아. 요동국의 겨울은 끔찍하다더라고.”
“대신 여기는 여름이 끔찍하잖아.”
“아, 그런가. 근데 여기는 탐라잖아.”
이곳이 탐라라는 왕예의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었고, 그에 이심전심 통한 왕숭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치. 여긴 탐라지.”
요동국도 그들이 생각해 왔던 것 이상인 건 이젠 알고 있었다. 탐라로 끌려와 훈련소를 졸하고 나자 서찰을 주고받을 수 있었고, 용종들 중 몇몇이 요동국의 용종들과도 서신을 주고받으면서 그곳의 상황도 어느 정도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하나, 이곳은 탐라였다. 개경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곳이었고, 이리저리 봐도 요동과도 비교를 불허하는 곳이었다.
탐라에서 받은 충격과 경악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그들도 알지 못했지만, 적어도 그들이 우물 안의 개구리 신세였다는 건 단번에 깨우칠 수 있었다.
아직 4년간 더 복무해야 개경으로 돌아갈 수 있는 그들이지만, 솔직히 말해서 4년 후에 왕도에서 만족스런 삶을 살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예전에 훈련소에 들어가서 그들 앞에 선 중령의 계급을 단 탐라군 장교가 한 말이 떠올랐다.
‘왕족이라고 편의를 봐줄 것이라 기대를 가지고 있다면 당장 버려라. 너희는 일개 훈련군병일 뿐이고, 앞으로 5년간 그 어떤 특별 대우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말했던 장교는 직후에 피식 실소하며 말을 이었다.
‘하나, 너희가 이곳 탐라에서 복무하게 된 것 자체가 엄청난 특권임을 곧 깨닫게 될 것이다. 지금 당장은 5년 후를 기대하겠지만, 아마 5년 후에는 어떻게든 탐라에 남으려고 기를 쓸 테지.’
그때는 저 무슨 망발인가 싶었지만, 이제는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었고, 왕도 개경과 탐라 사이를 저울질하는 마음속 저울이 반대쪽으로 기울기 시작함을 느끼고 있었다.
“아, 맞다. 이번 일요일에 예래 문화터에서 삼국연의극을 한다는데 보러 갈래? 나본이 직접 만든 거라는데 말이야. 군병은 반값에 볼 수 있대.”
“글쎄다. 그냥 검술 연습이나 할까 했거든.”
“거기에 낭자들이 많이 온다던데? 근처 기술학교에 다니는 낭자들.”
“……그래?”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 * *
“정묘년(1387년)도 저물어가는군. 참 정신없이 흘러간 한 해였어.”
동지 팥죽을 먹고 나서 창밖을 보던 몽주가 문득 말하니, 그의 가족들도 함께 창밖을 쳐다보았다.
창문 밖으로 작은 눈송이들이 휘날렸다.
“첫눈이 늦었군.”
눈 내리는 날이 적은 탐라 홍로현이지만, 사실 의외로 강설량 자체가 적은 곳은 아니었다.
북쪽에 한라산을 이고 있고, 남쪽으로 넓은 바다를 가진 곳이기에 한번 내리기 시작하면 꽤 쌓일 정도였다.
“이번 겨울이 이 집에서 마지막이네요.”
분위기가 호젓해진 탓인지 앵도가 그녀답지 않게 ‘센치’한 말을 남겼다.
“저도 마지막이고요.”
뒤를 이은 건 강영의 말이었고, 강중이 그런 누나의 손을 잡았다. 물론, 그녀의 다른 손은 지아비 방원에게 아까부터 잡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십 년 넘게 같이 지낸 두 존재가 내 곁을 떠나가는군.”
봄이 오면, 지금의 공택을 허물고 다시 지을 예정이었고, 강영은 방원과 함께 떠날 예정이었다.
공택은 아직 쓸 만하나, 너무 작아 탐라공의 위엄에 걸맞지 않다는 말이 많아 다시 지는 것이었다.
또, 몽주의 탐라 경영 초창기, 아직 세망을 이용한 건축술의 수준이 부족하고, 여러 신물산이 없을 때 지은 터라 부족한 점이 없진 않았다.
새로 짓는 공택은 아직 ‘디자인’ 중이지만, 네 개의 망루를 가진 성채의 형태로 지을 생각이었다.
높이는 최대로 올릴 생각인데, 이는 차후에 백성들이 지을 건물의 높이를 생각해서였다.
사실 공택을 다시 짓는 이유 중에 하나는 홍로현 내에 여러 건물을 지음에 공택보다 높이 지을 수 없다는 여론 때문이었다.
몽주로서는 상관없는 일이라 하였지만 도통 말을 듣지 않았다.
어차피 낮아도 언덕 위에 있는 데다 공택을 넘볼 수 있는 북쪽으로는 공원이 있고, 나무로 가려져 있어, 정말 공택을 내려다보기 위해서는 근처에다 적어도 10층 건물쯤은 지어야 할 터였는데 말이다.
동쪽 별채 아래 있던 금고도 파쇄할 예정이었다. 전당청을 본격적인 중앙은행화하기로 결정하면서 새로 독립된 전당청 청사를 짓고 있었는데, 그 청사 아래 상당한 규모의 금고를 만들고, 그 안에 금괴를 보관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 금괴들은 이제 전당청의 소유물이 될 예정이었다. 서류상으로는 몽주가 가진 금괴를 전당청에 매매한 형태였다.
탐라의 주인으로서 국공 본인이 금괴를 소유한다고 해도 문제가 될 건 아니지만, 몽주는 자신의 사후에 어떤 모자란 자손이 그 금괴를 단순한 유산으로 여기고 소비해 버릴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 금괴를 판 대가로 전당청에 숫자로만 적혀 있는 어마어마한 돈을 빼내어 마구잡이로 쓰는 것도 큰 타격이겠지만, 적어도 금본위제 화폐 제도를 직접적으로 망가뜨리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돈을 떠올리자 자연히 몽주의 시선이 강영과 그 곁에 있는 방원으로 향했다.
몽주는 방원이 세울 회사에 거금을 투자하기로 했다.
그가 세울 회사란…….
“너무 걱정 마십시오. 반드시 성공해 보이겠습니다.”
“…….”
자신의 시선을 일종의 압박으로 느낀 건지, 방원이 들고 있던 숟가락마저 내려놓고는 진지하게 자신의 각오를 표현하였다.
“나도 그럴 거라 믿네.”
몽주는 미소를 지으며 그에 응해 주었다.
사실 방원의 회사는 실패할 리가 없었다. 탐라 상단의 전 회사가 방원의 회사와 손을 잡아 줄 터인데 실패할 리가 있겠는가.
엉망진창으로 회사를 운영해도 이문이 쏟아질 것이다.
“이이가 회사 경영에 대한 녹계를 조만간 올릴 거예요. 아주 열심히 분석하고 연구해서 쓰고 있으니, 아마 만족하실 거예요.”
강영이 있지도 않은 몽주의 걱정을 덜어 주는 것처럼 말하면서 은근히 자기 남편을 챙겼다.
사이가 좋아 보여 다행이긴 했지만, 어째 마음 한구석이 쓰라렸다.
‘딸자식 키워 놔 봐야 소용없다더니…….’
이제 겨우 서른다섯의 나이에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실 방원의 회사라곤 하지만, 몽주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갔고, 그 준비에도 탐라상단이 깊이 개입되어 있었다.
애초에 어떤 회사를 세울 지마저도 몽주의 선택이었다.
‘유덕 중공업회사’
유덕(遺德)은 방원의 자였다. 그리고 중공업회사란 광물의 채취를 넘어 금속의 제조 공정까지 일괄로 처리하는 회사임을 의미했다.
사실 처음에 방원은 중공업회사를 세우는 게 어떻겠느냐는 몽주의 제안에 썩 내켜하지 않았다.
그가 처음 원했던 회사는 바로 해운회사였다. 아무래도 탐라에서 상업을 배우고 익히다 보니, 탐라가 배를 통해 교역의 이득을 얻는 것이 크게 매력적이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나중에 강영이 은근히 하는 말을 들어 보니, 많은 배를 거느리면서 하는 해운업이 멋져 보인 탓도 있는 듯했다.
그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방원이 탐라에서 회사를 세운다면 그 결정을 존중해 주었을 것이다.
하나, 그의 회사는 요동국의 회사령에 따라 세워질 것이라, 당연히 북방에 위치할 수밖에 없었으니 해운업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하여, 여러 번 만나 해운업이 그에게 걸맞지 않음을 설명한 후, 몽주가 생각한 중공업회사에 대해 진득하게 말해 주었다.
이는 요동국에 경흥부가 속해 있다는 점에서 기인한 제안이었으니, 경흥부에 무산이 있기 때문이었다.
무산(茂山)은 철광으로 유명하였으니, 비록 품위가 다소 떨어지긴 하지만, 한반도 유일의 채산성 높은 철광석 노천 광산이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갑산(甲山) 지역에는 매장량이 많은 고품질의 동광도 있었으니, 그곳은 노천 광산은 아니지만, 비교적 지표면 가까운 곳에 매장되어 있어 채굴하기 용이했다.
탐라 상단에 속한 중공업회사가 고려 남면에서 여러 광산을 개발함에도 조금 깊이 파 들어가다 보면 지하수의 ‘습격’으로 인해 눈물을 머금고 폐광을 해야 하는 일이 잦았음을 생각하면 경흥부를 가진 요동국은 최고의 철광과 동광을 가진 셈이었으니, 그걸 이용하지 않는 건 누가 봐도 어리석은 일일 것이었다.
결국 방원은 직접 경흥부로 가서, 당대에는 이름도 제대로 붙지 않은 무산 지역을 살펴보고 돌아왔고, 그제야 몽주의 제안에 따라 중공업회사를 세우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실 몽주는 유덕 중공업회사를 통해 또 하나 의도하는 바가 있었으니, 바로 온돌의 전파였다.
온돌을 이용한 난방 방식은 고려 개경을 비롯하여 한반도 전역에서 볼 수 있었지만, 의외로 그리 널리 퍼져 있지 않았고, 한양부 시절 몽주의 집도 온돌을 쓰지 않았었다.
추측컨대, 아마도 입식 생활 방식의 영향인 탓도 있지만, 당대의 온돌이 구들장 아래로 화기(火氣)가 지나가게 하는 형태로, 일반적인 가옥들은 화기에 섞인 연기가 방으로 새어 들어오는 걸 막지 못하기 때문인 듯했다.
이에, 몽주는 현대적인 의미의 온돌 난방, 즉 ‘파이프’를 바닥에 깔고, 그 안으로 뜨거운 물이 지나가게 하는 방식을 보급하고자 하였다.
그러려면 많은 양의 금속 파이프가 필요할 것이기에, 그에 소비되는 금속의 채광과 더불어 유덕 중공업 자체적으로 금속 파이프의 생산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요동국도 그렇지만, 동금주를 가진 몽주도 북방 영토의 성장을 위해서는 매서운 겨울을 이겨 내야 하니, ‘파이프’ 온돌이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될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사실 온돌 난방 방법 자체가 고구려에서 유래된 것이라 북방에서도 온돌 내지, 그와 유사한 방법으로 난방을 하는 경우가 있긴 한데, 기본적으로 유목 용도에만 적합한 방식이었다.
이제 정주 주민들이 증가하고 있고, 장차 점점 정주화가 가속될 북방 백성들을 위해 보다 확실한 난방 방법을 보급할 필요가 있었다.
“한데, 아버님 어머님은 언제 오시는 거죠? 설 전에는 오신다 했는데, 이제 얼마 안 남았잖아요.”
문득 화제를 전환하여 몽린의 부모에 대해 앵도가 물었다. 아마 이 자리에서 회사 문제가 입에 오르내리는 것에 딸 내외가 부담을 가질까 그런 모양이었다.
몽주도 회사 문제를 두고 밥상머리에서 길게 할 이야기는 아니라서, 앵도의 의도에 바로 응했다.
“안 그래도 몽건이가 이번에 한양부에 들러서 꼭 모시고 오겠다고 했소.”
몽주의 부모는 사원을 창건한 후에도 얼마나 더 치성을 들일 생각인지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하여, 경제평론의 강연으로 남면에 나가 있는 몽건과 서찰을 나누던 중에 이번에는 반드시 모시고 오라고 했던 것이다.
몽건은 근래에 맹활약 중이었다. 그의 경제평론이 탐라국 내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파문이라고 해서 어떤 논란이라도 생긴 건 아니었고, 좋은 의미에서 크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의미였다.
경제평론이 고학교에 교과서화되어 쓰이고 있고, 몽건이 직접 경제학회를 만들어 경제학이라는 신생 학문을 양적 질적으로 발전시키길 도모하고 있었으니, 몽건의 아래로 많은 젊은 학도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중에는 경제학 자체에 대해 매료되었다기보다는 몽건이 가진 배경을 보고 온 자들도 적지 않겠지만, 어쨌거나 경제학회의 기세는 단지 학문적인 한계를 넘어설 정도였다.
지금도 몽건은 탐라상단 내 여러 회사를 돌아다니며 사원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는 중이었다.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어린 사내가 상업으로 산전수전을 다 경험하고 있는 사원들을 가르친다는 게 영 모양이 이상할 듯했지만 반응이 좋은지, 몽건이 강연에 나선 지 꽤 되었음에도 경연 요청은 끊이지 않고 있었다.
“삼촌은 진짜 대단해요. 어릴 때부터 천재인 건 알고 있었지만, 새 학풍을 열어 탐라국 전체를 들썩이게 할 줄은 몰랐네요.”
어째 조금 시기가 섞인 듯한 강영의 말투였지만, 원래 천재란 범인(凡人)들에게 그런 존재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몽주 가족의 대화는 식사 후 차를 마시는 동안에도 계속되었다.
* * *
집무실에 이르니, 비서원실에 포은이 기다리고 있었다.
“벌써 나오셨습니까? 제가 조금 늦었는데 많이 기다리셨겠군요.”
“아닙니다. 저도 조금 전에 와서 한숨 돌리고 있었습니다.”
함께 집무실 안으로 들어가니, 포은이 녹계를 펼쳐 보였다.
탐라의 영토 중 남면을 담은 지도와 함께 수많은 글자들이 몽주를 반겼다.
“붉은 표시가 된 것은 개편을 확정한 곳이고, 나머지는 아직 더 검토하고 있는 곳입니다.”
대헌장의 발효 이후 제후국들의 영토에도 변경이 생겼다.
이제 북면과 남면은 더 이상 통관안찰사라는 이름으로 다스리는 데 그치지 않고 완전히 요동국과 탐라국의 영토가 되었다.
그리고 북면과 남면 또한 확장되었는데, 북면이 강원도 북부 일부를 얻은 것에 불과하여 사실상 별 변화가 없는 것에 반해, 남면은 현대의 남한 지역 전체로 확장되어 북쪽으로 왕도 개경 및 요동국과 접하게 되었다.
사실 대헌장을 논할 때 열수(한강)를 경계로 요동국과 나누고자 하였는데, 요동공 이성계는 영토 확장을 포기하는 대신 군사적 협조를 요구하였다.
아무래도 서경에 후국이 생기는 데다 아래로 탐라국의 남면과 접하게 되니, 그 사이에 영토를 얻는다 해도 금세 장악력을 잃을 것이라 판단한 듯했다.
하여, 협상 끝에 요동국에 대여할 구형 강철 화포를 공여로 바꾸고, 그 양도 더 늘린 데다가 화약도 일정량 보급해 주는 것으로 한양부까지 남면을 확장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자, 내관대신 포은은 그간 미루고 있던 남면의 지방행정제도 및 단위의 변화를 청원하였고, 안 그래도 지금 쓰이고 있는 남면 지방제도가 탐라에 적합하지 않다는 평이 있었기에 연구 검토를 허락하였다.
일단 확정된 것 중에 가장 큰 변화는 도(道) 행정 구역의 폐지였다.
현대에서도 계속 쓰이는 대규모 행정 구역을 폐지하는 게 다소 이상할 수도 있겠지만, 탐라국의 통치 이래로 남면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으니, 특히 도로와 수운이 발달하고, 크고 작은 강마다 다리가 많이 놓이면서 백성들의 생활권도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또, 상업의 발달과 함께 새로 커진 고을로 인해 인구와 물산의 중심도 바뀌다 보니, 도 행정 구역의 경계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게 된 경우도 있었다.
예컨대 진주는 서쪽으로는 고흥현(고흥군), 동쪽으로는 거성현(거제도)까지 사람과 물산의 중심지가 되었으니, 이는 경상도 남서부와 전라도의 남동부를 아우르는 것이었다.
그런 실질적인 이유 외에 명목상의 이유도 있었다.
아무리 같은 고려라곤 하지만, 엄연히 탐라국의 영토가 된 만큼, 행정 구역도 탐라국에 걸맞게 바꾸는 것이 그곳 백성들로 하여금 탐라국에 대한 소속되었음을 체감하게 만들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하여, 몽주는 실제 백성들의 생활 및 활동 영역과 그 밀접도에 따라 새로이 구역을 나누도록 하였는데 탁상행정을 피하기 위해 관리들로 하여금 직접 나가서 관찰하도록 하니, 시일이 제법 길어지고 있었다.
하여, 반년이 넘게 진행되었음에도 포은이 펼친 남면 지도에 붉은색으로 확정되었다는 표식이 된 곳은 전체 중 절반에 불과했다.
“아무래도 시장이 상설되어 있는 곳을 중심으로…….”
포은이 무언가 의견을 제시하는데, 문득 문밖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리더니 비서 관리와 함께 체관청 관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몽주의 눈앞에 위급이 표시된 장계가 등장하였니, 바로 이주섬에서 온 것이었다.
“……!”
서둘러 장계를 펼쳐 본 몽주는 앉아 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장계 안의 내용을 다시 꼼꼼히 살폈다.
“이런, 빌어먹을…….”
몽주가 잘 안 하던 상소리까지 흘리며 인상을 구기자, 포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이기에 그러냐고.
“아무래도 명나라가 알아차린 것 같소.”
“……이주섬에 우리 탐라가 진출한 것 말입니까?”
몽주의 고개가 무겁게 끄덕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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