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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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파국의 비나수르 국왕이 고려의 지원을 등에 업고 안남국을 전격적으로 침공 점령했을 때, 안남의 실세였던 여계리는 소수의 군사와 함께 탈주하였다.
그는 늘(?) 그랬듯 북서부 산간 지방에 몸을 숨긴 채 점파국이 물러가기를 기다렸으니, 당시 상황은 전과는 전혀 달랐다.
점파국이 물러나는 대신 안남의 통치를 시작하자, 여계리는 어쩔 수 없이 서부 라오족에게 투신하여 그들과의 연합을 꾀하였다.
하나, 북쪽 양왕국이 명나라에 의해 몰락하면서 그 여파로 인해 라오족도 다른 일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고, 특히나 강대한 비나수르 점파국왕과 충돌할 이유가 라오족에게는 전혀 없었다.
그렇게 라오족과의 연합도 무위로 돌아가자, 여계리는 결국 명나라 월인들의 도움을 청하기로 결정하였다.
사실 여계리는 가능한 한 지금의 상황에서 명나라와 얽히길 바라지 않았다.
그가 안남의 실세가 되는 데 명나라의 조력이 있긴 했지만, 뭔지는 모르겠어도 명나라의 꿍꿍이가 있을 것이라 짐작했기 때문이다.
하나,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심정이었기에 훗날의 어떤 부작용이라도 각오하고 명나라로 들어갔는데, 그곳은 사지(死地)였다.
명나라 백성이긴 하지만, 안남과 정서적 문화적으로 가까웠던 남부의 월인들은 안남을 멸망하게 만든 여계리를 그냥 두지 않았고, 월인 토호들이 보낸 사병들에게 붙잡혀 그대로 목이 달아나 버리고 만 것이었다.
그 사단에 대한 소식은 곧 응천부 조정에도 들어갔고 명나라 대신들 사이에 논쟁을 일으켰다.
그건 한창 진행 중인 안남 정벌을 계속 진행할 필요가 있느냐는 회서파 귀족들의 이의제기로부터 시작되었다.
애초에 안남 정벌의 명분은 함부로 명나라에 속해 있는 안남의 고토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안남 진씨 왕조를 훈계하고, 또 월인 지역과 함부로 사무역하며 명나라의 부를 갈취하는 행위를 막기 위함이었다.
물론, 안남의 진씨 왕조가 고토 회복을 주장한 건 국내적으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다분히 형식적인 목적에 불과했고, 사무역이 단지 일방적으로 명나라의 손해만 불러 오는 건 아니긴 했지만 어쨌든 명나라의 명분은 그러했다.
한데, 이제 안남이 사라졌다. 그리고 때마침 점파국의 국왕이 명나라에게 영토 확장을 용인 받고 조공 체제에 들기를 희망하는 사신을 보내기도 했다.
이제 안남 정벌의 명분이 일절 사라진 셈이었다.
이에 크게 곤란한 건 태자 세력이었다.
천자의 명을 받아 대대적으로 안남 정벌을 준비하던 주체가 바로 태자였기 때문이다.
비단 조정의 지원 외에도 태자는 사적으로 치부한 자금까지 쏟아부어 군을 양성했는데, 안남 정벌이 무위로 돌아가면 그 피해는 실로 막대할 수밖에 없었다.
하여, 태자는 새로운 명분을 들어 안남 정벌의 당위성을 주장하였다.
명나라의 월인을 완벽하게 명나라의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안남 지역의 월인까지 수중에 넣는 것이 첩경이라는 주장이었다.
만약 훗날 안남 지역에 다시 월인의 나라가 세워진다면 그때 다시 경계해야 할 테니, 그런 후환을 두고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안남 정벌의 가부를 두고 태자 측과 회서파 귀족들 사이에서 논쟁이 시작되었으니, 그때가 고려에서 우왕이 폐위되고 대헌장이 발효되었을 때였다.
그런 혼란스런 명나라 조정의 분위기는 고려에게 약간의 도움이 되었다.
고려가 사신단을 보내 신왕 즉위를 통보함에도 별다른 추궁이 없었던 것이다.
이는 명나라의 입장에서 고려의 동향에서 중요한 건 요동국이고, 대헌장인지 뭔지 하는 고려 내부의 사소한 변화는 지금까지 그랬듯 요동국의 독자노선을 지키는 것처럼 비쳤던 탓이다.
일부 유자 출신 신료들 중에 신왕 즉위의 정당성을 두고 유학 교조적인 ‘태클’을 하려는 기색이 있긴 했지만, 고려 방면을 담당하고 있는 연왕부가 문제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태자가 그것을 바로 받아들여 천자께 주청하면서 곧바로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이런 흐름은 기본적으로 조정 내 제1 사안이 안남 정벌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쨌든 명나라 조정 내의 안남 정벌과 관련된 논쟁은 쉽게 종료되지 않았다. 이는 그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천자가 차일피일 결정을 미룬 채 침묵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안남 정벌에 대한 논쟁이 논쟁을 위한 논쟁으로 변질되어 가기 시작하면서 거의 반년 동안 명나라 조정은 양분되어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끝은 또 한 번의 피바람이었다.
태자와의 갈등이 극에 달한 회서파 귀족들의 행태가 다소 거칠어지자, 천자가 그것을 핑계로 다시 역모사건을 만들어 내었던 것이다.
동시에 그간 공식화되지 않았던 승상 제도의 폐지를 선언하였으니, 천자가 무엇을 위해 안남 정벌에 대한 답을 내리지 않으면서 시간을 끌었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후, 천자는 다시 안남 지역 정벌을 위한 준비를 재개하라는 명을 내렸다.
태자 측은 그에 한숨을 돌릴 수 있었지만, 늘어진 논쟁으로 인해 여타의 준비가 모두 정지되어 있었기에 다시 준비를 시작함에 있어 많은 고됨을 감수해야 했다.
어쨌거나 다시 내부적으로 월인 포섭을 명분으로 세우고 다시 준비함에 있어, 태자 측은 전과는 다른 길을 가야 했다.
그건 월인에 대한 처분이었으니, 그 전에는 안남과 내통할 수 있는, 반쯤 내부 첩자 정도로 여겨 일부러 괄시했던 월인이었지만, 이제는 반대로 월인들을 대우해 줘야 했던 것이다.
그런 방침의 변경 중 하나가 수적에 대한 방비였다.
당시 남부 월인 거주 지역에는 수적들이 창궐하여 월인들이 많은 피해를 입고 있었는데, 그 전까지는 명 조정에서 일부러 모른 척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었다.
하여, 태자 측은 월인들을 위무하기 위한 방책으로 명 수군을 대대적으로 파견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고려의 이주섬 진출이 태자 측에 알려지게 된 계기로 작용하고 말았다.
이주섬에서 사략을 실시하던 무라카미 수군이 명 수군과 조우하여 교전이 벌어진 것이었다.
사실 무라카미들이받은 방침에는 명 수군과 만나게 되면 절대 싸우지 않고, 무조건 도주하게 되어 있었다.
하나, 명 수군과 만난 곳이 바다 위가 아니라, 무라카미들이 해안 마을을 습격하던 중이었다는 게 문제였다.
급하게 철수하여 도주를 꾀했으나, 명 수군이 이미 포위망을 완성했기에 교전은 피할 수 없었다.
그 교전 자체가 큰 피해를 만든 건 아니었다.
느려터진 명 수군에 비해 무라카미의 해사(海蛇)들은 신속하게 포위망을 틈을 뚫고 도주하였다.
하나, 피해를 전혀 입을 수는 없었고, 결국 한 척의 해사가 명 수군의 전선과 충돌하는 바람에 교착에 빠져 결국 수적으로 월등한 명 수군에게 그대로 나포되고 말았다.
이를 보고 받은 이주 사령관 남석삼이 급히 탐보선과 세작을 보내 명 수군의 동향을 알아보게 하였는데, 명 수군에서 응천부 쪽으로 연락선을 급히 보내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석삼은 사로잡힌 무라카미들이 이주섬에 고려가 진출해 있음을 발설한 것으로 파악하고, 탐라공에게 급히 장계를 띄웠으니, 동짓날에 몽주가 받은 장계가 바로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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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실 요량이십니까?”
이제는 능숙해질 대로 능숙해져 더는 왜인이 하는 고려말이라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다의홍은 이미 8개월 전쯤에 구주 도집사 및 서구주 집사에서 물러나 탐라섬으로 건너와 있었고, 지금은 회사청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글쎄, 일단은 조금 더 두고 봐야겠지.”
몽주는 말을 일단락하고 찻물을 들이켜며 생각을 정리했다.
“뭐, 십중팔구 우리더러 이주섬에서 물러나라고 할 테지만 말이야.”
장계로 보아 명나라가 이주섬에 고려가 진출해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백 퍼센트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몽주는 기정사실로 보았다.
무라카미들을 생포해 놓고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할 만큼 명나라가 바보는 아니었으니까.
“안남의 일이 그냥 끝났다고 여긴 것부터 실수였어. 그것이 명나라 조정의 방침을 바꿀 가능성이 있음을 짐작했어야 했는데.”
석삼으로부터 장계를 받은 직후, 탐라 조정은 특히 외관부는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뒤늦게 명나라에서 얻은 정보들 중에 안남 정벌을 두고 명나라 조정의 명분이 바뀌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정보를 발견했으니, 그에 외관대신 차현유는 책임지고 물러나겠다며 사직서까지 써서 바치기도 했다.
물론, 이제야 쓸 만하게 만들어 놨는데, 이 정도 일에 그를 놓아줄 수는 없었다.
외관부의 실수가 있었던 건 맞지만, 그간 명나라 조정의 고관을 포섭하거나 세작을 심는 등의 적극적인 정보활동은 자제하게 한 것이 몽주였음을 생각하면 그의 책임도 컸다.
과감한 정보 활동이 빌미가 되어 외교적 분쟁을 야기할까 저어하여 그런 것인데, 그만큼 정세 분석에는 ‘마이너스’가 되었던 것이다.
“하면, 이제 명나라와 싸우게 되는 것입니까?”
다의홍은 꽤 심각한 물음을 담담하게 입에 담았다.
그 물음은 탐라가 결코 이주섬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전제하고 있었고, 그건 분명 사실이었다.
“그렇게 되지 않게 하는 것이 이제부터 할 일이겠지.”
“생각해 둔 방법이 있으십니까?”
“아니.”
몽주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명나라에서 공식적으로 반응을 보이면, 일단 왜인 수적에 대한 사과와 변명부터 할 생각이야. 우리가 조직적으로 한 건 아니고, 이주섬에 파견된 그들 개인적인 일탈 행위였다, 하나 내가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사과하고, 배상하도록 하겠다. 뭐, 이런 말부터 붙여 보는 거지.”
그의 주군의 말투에 묻어 있는 가벼움에 다의홍도 실소하였다.
“그 정도에서 끝날 수 있다면 좋겠군요.”
“그렇지.”
하나, 이미 전제했듯 명나라는 고려의, 탐라의 이주섬 진출에 시비를 걸게 분명했다.
“만약 명나라와 싸우게 되면 피해가 크겠지요? 군병들도 많이 죽을 것이고, 교역에도 큰 차질을 빚을 테고요.”
“…….”
2년째 진행 중인 탐라군의 개혁은 성공적이었지만,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요동국과의 군사적 협조 관계도 많이 진척되었지만, 아직 공동으로 ‘적’을 상대하기에는 준비가 너무 부족했다.
교역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탐라의 경제에서 내수의 비중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지만, 여전히 교역의 비중이 더 컸다.
또, 교역 중에서도 명나라의 비중이 점차 낮아지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압도적이었다.
상관부에서 보낸 녹계에 따르면, 명나라와의 교역이 전면 중단될 경우, 탐라의 경제는 십분지 사가량 축소될 것이라고 하였다.
교역의 비중에 명나라의 비중을 곱하면 대략 그쯤 나온다나.
4할의 축소라는 건, 아무리 탐라의 경제가 정부 ‘독점’적 경제임을 생각해도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아닐 것이다.
“역시 싸우면 안 되겠군.”
“제 생각에는 말입니다…….”
“안남의 일을 말할 생각인가?”
“이미 염두에 두고 계셨군요?”
몽주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곤 다시 찻물을 음미했다. 맛이 좀 달라진 기분이었다.
“자존심이 상하는 방법이라 다른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고 여기고 있었지. 그리고 너무 편복처럼 구는 짓 같기도 하고 말이야.”
몽주는 점파국의 비나수르 왕을 떠올리며 말했다.
“탐라와 고려를 위한 일이니, 괘념치 마십시오.”
“그렇겠지. 하기야 이마저도 협상을 잘했을 때야 가능한 일이니, 그 이상을 염두에 두는 건 사치겠군.”
그 말과 함께 몽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일어나시는 것입니까?”
“생각해 보니, 명나라의 반응을 기다리고만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아. 우리가 먼저 협상을 주도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가능성도 높아질 거야.”
몽주는 곧바로 회사청 청사를 나섰고, 집무실로 돌아가자마자 외관대신 차현유를 호출했다.
그리고 그와 반 시진가량 독대하였으니, 이후 차 대신은 명나라로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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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관대신 차현유가 응천부로 가서 태자 측과 연락이 닿은 건 그로부터 7일 후였다.
상인으로 변복하여 장강 하구 양주에 닿았고, 그곳에서 고려 출신 장사꾼 노릇을 하고 있는 외관부 관리들을 만나 태자 측에 접선하려고 노력한 지 나흘 만이기도 했다.
“따라오시오.”
늦은 밤에 태자가 보낸 태감을 따라가니, 황성이 아닌 유흥가로 향하였다.
그러다 어느 색주가에 들어가게 되니, 차현유는 이자가 정녕 태자의 태감이 맞나 싶었다.
한데, 주향과 교성의 혼미함을 뚫고 안으로 들어가자, 드리워진 비단천이 하늘거리는 사이로 한 사내가 여인으로부터 술을 받아 마시고 있는 게 보였으니, 바로 명나라의 태자 주표였다.
“태, 태자 전하를 뵙사옵니다.”
태자에게 인사를 올리는 차현유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건 태자를 색주가 한복판에서 만났다는 것 때문이기도 했지만, 몇 년 만에 본 태자의 모습이 전과는 많이 달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의 주군인 탐라공보다 더 허여멀건 했던 피부는 제법 구릿빛으로 변해 있었고, 살도 붙었는지 몸집 자체도 커져 있었다.
그러니까 전반적으로…….
‘홍무제와 닮아졌다.’
태자의 변화에 대한 감상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그랬다.
물론, 생김새야 달랐지만, 전에는 일말도 닮은 부분을 찾기 어려웠는데, 지금은 첫 인상부터 천자를 떠올리게 되었다.
차현유는 몇 년 전에 고려의 사신 자격으로 응천부에 와서 천자를 배알하고, 태자와 만났던 것을 떠올리며 대체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태자가 이처럼 변한 건지 궁금했다.
“전에 사신으로 왔던 자였던 것 같군.”
태자의 말이 태감을 통해 고려말로 전해 왔다. 차현유도 명나라 말을 조금 익히긴 했지만, 태감의 고려말이 훨씬 능숙했다.
“예, 전하. 지난 홍무 18년에 뵈었사옵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자네는 탐라공의 신하였고.”
“그렇사옵니다.”
“하면, 역시 그 왜인 수적의 일로 나를 찾아온 게로군.”
차현유는 대답 대신 고개를 조아리며 긍정을 표시하였다.
고개를 숙인 가운데 머리 건너에서 술잔에 쪼르르 술 따르는 소리가 들렸다.
“자네에게 내리는 술일세. 받게나.”
그에 차 대신이 무릎을 꿇고 나아가 술잔을 받아 들고는 천천히 술을 들이켰다.
그 후, 술잔을 내려놓자, 태자는 곁에서 시중하던 여인에게 무어라 말하였고, 그녀는 그대로 물러났다.
이제 태감을 포함하여 삼 인만 남자, 태자는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문을 열었다.
“나는 탐라공을 친우라 생각했네. 아니, 지금도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그가 고려 비노와 선로를 만든 덕에 내가 건강을 회복했고, 지금에 이르러 많은 은자를 확보한 것도 그의 덕이 컸으니까.”
“제 주군도 태자께 크게 의지하고 있다 하셨습니다.”
“그랬나? 그랬군. 흐음.”
태자는 턱수염을 매만지면서 궁리하는 양 하더니, 다시 말문을 열었다.
“한데, 어째서 가끔 가다가 나를 곤란하게 만드는 건지 모르겠다 말이야. 예전에 명군을 수몰시킨 것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공식적으로 부인했던 명군 수몰까지 언급되자, 차 대신은 침묵한 채 고개만 숙였다. 그리고 마침내 기다리던 질문이 있었다.
“지금 이주섬에 고려가 들어가 있나?”
“그러하옵니다.”
이미 다 알고 있을 사실을 부인할 이유는 없었다.
“그곳이 명나라의 땅임을 몰랐단 말인가?”
“명나라와 가까운 섬이긴 하나, 명나라의 영토라는 건 다소 어폐가 있는 줄 아뢰옵니다.”
그 말을 전해 주는 태감의 표정이 사나워졌다. 어폐니 뭐니 하는 건 차현유가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강한 표현일 것이었다.
“그곳에 명나라 백성들이 많이 살고 있었음을 모르는 겐가?”
“모두 도망친 농민들이었사옵니다. 그리고 명나라의 영토라면 마땅히 관원이 있어야 할 것인데, 그들은 그들대로 세력을 갖추고 있었을 뿐, 명나라 관원은 한 명도 없었사옵니다.”
“그래서 이주섬은 고려의 것이라는 말인 겐가?”
“저희가 이주섬에 진출하여 그곳 원주민을 포섭하고, 공들여 개척했다는 사실을 알아주시길 청하옵니다.”
“그렇게 못하겠다면?”
태자의 목소리가 냉랭해졌고, 그 말을 전하는 태감의 표정도 더욱 사나워졌다.
차현유는 마른침을 크게 삼키고는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그렇다 한들 달리 방도가 있으시옵니까?”
조심스러운 말투와 달리 도발적인 물음이었고, 그에 반응한 건 태자이기 전에 태감이었다.
“네 이놈!”
고성이 터지자, 인기척도 없는 주변에 몇몇 군병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금방이라도 차현유를 끌어내라는 명이 떨어질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태자는 손을 흔들어 태감과 군병들을 물러나게 하였다.
“고려가 감히 명나라에 도전하려는 겐가?”
“도전이 아니라 탐라의 군병들이 공들여 개척한 땅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옵니다. 태자 전하께서도 안중에도 없던 작은 섬 따위에 연연하실 때가 아니지 않사옵니까?”
“…….”
안남 정벌 문제가 간접적으로 언급되자, 태자는 말없이 차 대신을 응시하였다.
사실 본디 예정되어 있던 월인 위무 활동을 미루고 이 자리에 태자가 선뜻 응하여 나온 것부터, 아니 애초에 그가 보낸 수군을 통해 이주섬에 고려가 진출해 있음을 파악하고도 천자께 전해 올리는 걸 미루고 있었던 것부터가 탐라공이라면 무언가 자신의 흥미를 끌 만한 협상을 제시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다만, 태자는 먼저 그에 대한 언급하길 꺼려 했고, 차 대신이 먼저 말을 하길 기다렸는데, 아무래도 목마른 자가 먼저 우물을 파야 할 것 같았다.
“만약 내가 천자께서 이주섬에 대해 묵인할 수 있게 돕는다면, 탐라공도 나를 도울 수 있겠는가?”
“가능한 일이라면 어찌 감히 회피하려 하겠사옵니까.”
“그래, 탐라공이라면 이런 식으로 해결하려 했을 거야.”
그가 아는 탐라공은 주고받는 게 확실한 인물이었다.
“내가 알기로 탐라공은 배를 아주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하던데, 몇 척이나 있나?”
가볍게 질문하는 듯하였으나, 태자의 눈빛에는 야망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확인한 차현유의 머릿속도 무척 바빠졌다.
곧이곧대로 대답하면 안 되는 건 분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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