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336)
* * *
탐라상단 내류 회사는 애초에 보부상들을 규합하여 만든 회사였다.
기존 남면에서 활동하는 여러 보부상 집단들이 담당하던 내륙 유통을 일괄적으로 담당하는 회사.
하여, 처음 설립 당시부터 규모가 컸었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류 회사의 규모는 상단주인 몽주의 예상조차 벗어날 정도로 대규모로 변모하였다.
“하!”
백수십 명의 장정들이 일제히 외치는 기합은 포은으로 하여금 절로 귀를 쫑긋 세우게 만들었다.
“이거, 내가 군병들의 사열을 받는 건지 상인들의 인사를 받는 건지 모르겠군.”
“하하, 탐라상단에 속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본래 보상이고 부상이었던 자들의 기질이 쉽게 바뀌겠습니까. 아니, 탐라 상단에 속한 뒤에도 저들이 잡은 왈짜패와 산적들이 수백이 넘습니다.”
중년의 사내가 걸걸한 목소리로 답하니, 그는 내류 회사의 사장인 달원(達元)으로, 성은 부백(負百)으로 지었다.
본디 황해도 사람인데, 탐라공이 보상(褓商)과 부상(負商)을 결집하는 것을 알고 남면으로 내려와 자발적으로 응하였다.
그는 그때도 휘하에 오십 명에 가까운 부상을 거느리고 있던 거물이었다.
다만, 그를 본 탐라공이 단번에 그로 하여금 내류 회사를 이끌게 한 건 상당히 파격적인 일이었다.
다행히 탐라공의 인선이 적절했는지 부백달원은 내류 회사를 무럭무럭 성장시켰다. 오히려 너무 과대해지는 게 아닌가 우려스러울 정도로.
지금도 포은이 진주의 내류 회사 본청에 들린 것도 내류 회사의 직원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함이었다.
행정 구역 개편을 위한 조사에 내류 회사의 직원들이 크게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모두들 고맙습니다. 덕분에 어려운 나랏일을 무탈하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탐라공께서도 내류 회사 직원들의 공로에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이에 따로 상금을 하사하셨으니, 차후에 골고루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와아!”
다시 함성이 터졌고, 포은은 다시 귀청을 때리는 그들의 우렁참에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긴 이 정도는 되어야 이제껏 그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었겠지.”
내류(內流)회사는 기본적으로 남면 내륙에의 물산을 보급하는 일종의 유통사였다.
하나, 그 외에도 여러 일들을 했으니, 앞서 부백달원이 말한 대로 초창기엔 도적들을 때려잡아 나라를 대신하여 치안을 관리하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하나 특별한 임무를 수행했으니, 남면에 도로망을 새로 건설한 것도 내류 회사였다.
물론, 내류 회사의 직원들이 직접 건설한 건 아니고, 일꾼을 고용해서 건설한 것이지만, 도로 건설의 세부를 내류 회사가 전담했다.
이는 아무래도 내류 회사가 하는 일 때문에라도 도로의 건설이 필요한 곳을 잘 알 것이라는 점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실제로 내류 회사는 보상과 부상 출신들을 중심으로 도로의 증축과 신설을 빠르게 진행하였고, 덕분에 남면 내 도로는 눈에 띄는 속도로 확장되었다.
한데, 그로 인해 한 가지 작은 문제가 생겼다.
내류 회사가 세운 도로들이 기본적으로 원활한 유통을 위한 것이기에, 모든 도로들이 물을 향해 뻗어 있다는 점이었다.
아무래도 수운이 강한 탐라 상단인 만큼, 바다나 큰 강에 접해 있는 포구 고을로부터 물산을 받아 내륙으로 이동하는 형태에 최적화된 것이었다.
그러니까 달리 말하자면, 물길을 제외하면 그 모든 도로들이 서로 동떨어져 파편화된 상태라는 말이었다.
물론, 기존에 존재하던 내륙 고을 간의 도로들이 있기에 아주 분절된 건 아니었지만, 더 넓고 튼튼하게 지어진 ‘신작로’의 위력에 비할 수는 없었다.
이런 상황은 기존 지역 체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고, 지역 간의 결합 양태도 전혀 다르게 변모시켰다.
가장 단편적인 예시가 남원목으로, 남원은 기존에 밀접했던 광주목보다 함양, 산음(현 산청군)과 급속히 가까워져, 진주로부터 파생되는 경제권에 포함된 상태였다.
이는 내류 회사가 남강을 통해 진주와 물길이 닿은 산음부터 함양을 거쳐 남원까지 도로를 뚫은 덕이었다.
백두대간의 끝자락인 지리산의 북쪽과 덕유산의 남쪽 사이 계곡길을 증축 포장하였으니, 안 그래도 남면 경제의 중심이 되어 강력한 ‘중력’을 만들고 있는 진주 쪽으로 결착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변화들은 남면 지방들의 생태계를 전과는 전혀 다르게 만들었고, 지금 내관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행정 구역 개편의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이유이자, 그 개편을 어렵게 만드는 장애물이 되고 있었다.
때문에 행정 구역 개편을 진행함에 있어서 내류 회사의 협조가 절대적인 건 당연한 소치였다.
포은 앞에 모여 함성을 내었던 자들도 지난 몇 개월 동안 내관부의 관리들을 도와 남면 전역을 조사할 수 있게 해 준 자들이었다.
“그나저나 가까운 상시(常市)를 찾을 수 없는 곳은 어찌하시렵니까?”
내류 회사 직원들 앞을 떠나 따로 부백달원 사장과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그가 물었다.
“나도 고민이었는데, 주군께서 사고의 틀을 바꾸자고 하시더군.”
“사고의 틀이라……?”
“지금까지 우리가 한 것은 결국 상시가 선 곳을 찾아 살피고, 그곳을 중심으로 근방 정기시(定期市)가 서는 곳을 뭉치게 하는 것이었네.”
“그렇지요. 한데, 죄다 정기시나 아예 행상에 의존하는 곳투성이인 곳이 있어 문제지요.”
“주군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런 곳이 있다면 한 곳을 골라 상시를 직접 세우면 되지 않느냐 하셨지.”
“예?”
달원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긴 포은도 처음에 주군의 말을 들었을 때는 그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몽주가 한 말은 한마디로 ‘신도시 개발’이었다.
생활권을 중심으로, 즉 시장을 중심으로 지방을 개편함에 있어서 중심이 될 시장을 찾을 수 없는 지역에는 상시, 즉 상설시장을 세울 수 있는 고을을 새로 만들자는 것.
“한데, 관동지방에 새로 큰 고을을 세운다는 게 가능한 일입니까?”
“기존의 고을을 크게 발전시키는 것을 포함한다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하네. 춘주(춘천)와 원주를 발전시킴과 함께 태백에 새로운 상시를 세우게 된다면 관동의 영서 지방을 셋으로 나눌 수 있을 테고, 관동의 영동 지방도 강릉 외 울진이나 삼척에 상시를 둘 수 있다면 긴 영동 지방을 둘로 나눌 수 있지 않겠나.”
지금 거의 마무리된 탐라 남면의 지방 행정 구역 개편은 핵심은 상시와 그 상시와 연결된 정기시(오일장 같은 시장)를 하나의 구역으로 묶는 것으로, 결국 상시를 가진 고을의 존재 여부가 중요했다.
그리고 이는 내류 회사와 무관한 일이 아니었다.
남면에서 상시와 정기시를 유지하는 기반의 태반이 내류 회사에 있기 때문이었다.
내류 회사가 어느 곳을 물산 유통의 거점으로 삼느냐에 따라 상시의 생성 위치가 결정, 변화되었고, 그 상시의 물산이 다시 육로로 이동되면서 주요 고을마다 정기시가 생겨났으며, 내류 회사가 그 육로를 유통로로써 신작, 개축하여 아예 생활권을 만들어 냈다.
“결국 저희가 하기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는 말씀이십니까? 상당주께서 명하시면 지옥이라도 갈 것입니다만, 본디 상시는 고을이 먼저 자리한 후에 생기고, 유지될 수 있는 법입니다.”
“우리도 주변에 산재된 화전민들과 작은 고을들의 백성들을 모아 볼 것이네. 다만 그들이 새로이 정착함에 있어 편리함을 느끼기 위해서는 그들보다 먼저 장시가 서 있어야겠지. 또, 그래야 굳이 나서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새로운 상시로 사람들이 몰리지 않겠나. 일종의 사전 투자라 생각하면 될 걸세.”
“어렵군요. 뭐, 상단주께서 결정하시면 저희야 따를 일이지요.”
그렇게 몇몇 ‘신도시’ 건설까지 포함하여 새롭게 개편된 지방 행정 구역은 아주 단순한 것이었다.
과거 존재하던 상시(常市)가 있는 곳들에, 탐라국 이후 새롭게 생겨난 상시들을 더하니, 그곳들을 상시(上市)라 칭하고, 그 상시 주변에 상시로부터 물자를 운반하여 정기시를 여는 곳을 시(市)라 하며, 그 상시와 시들을 한데 몰아 군(郡)이라 칭하기로 한 것이었다.
또, 상시 안의 작은 구역이나, 상시 및 시 외곽의 작은 고을을 일괄적으로 동(洞)이라 지칭하고, 모든 가옥에 호수를 붙여 최종적인 주소를 산출하게 하였다.
예컨대, 몽주의 고향집은 한양군 한양상시 천마동 1호가 되는 식이었다.
만약 개편이 성공적으로 안착되면 남면 외 모든 탐라국의 지방행정 구역을 마찬가지 방법으로 개편할 예정이었다.
최종적으로 탐라공이 서명하여 발효된 남면의 행정 구역 수는 19군 19상시 67시였고, 1군마다 1상시를 두되, 시의 수는 제각각이었다.
예컨대, 태백군의 경우에는 태백상시와 더불어 6개나 되는 시를 가지고 있는 것에 반해, 진주군은 진주상시 하나뿐이었다.
아무래도 1군의 중심이 되는 상시가 크면 클수록 고을이 발전해 주변 모든 고을의 상권을 흡수했고, 그 외곽에 또 다른 상시가 존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탐라섬도 남면과 함께 행정 구역을 개편하였다.
사실 기존의 거의 모든 현에 시전거리가 형성되어 있어 하고자 하면 열 개가 넘는 상시를 둘 수도 있었다.
하나, 1군 1상시 원칙상 작은 탐라섬에 많은 군을 두기가 곤란하여 고민한 끝에 탐라섬 자체를 소속 군 없이 특별시(特別市)로 두기로 하면서 인구와 상권의 발전에 따라 시와 상시, 그리고 특별시로 승급할 수 있게 하였다.
또, 특별시의 경우, 동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호수만으로 주소를 두기 곤란하여 주소 중간에 가까운 ‘큰 거리’를 표기하기로 하였는데, 이는 규모가 큰 편인 상시 중에도 동의 호구수가 1천이 넘어가는 경우에는 똑같이 거리를 표기하기로 하였으며, 더 훗날에는 모든 주소에 거리를 표기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하여, 그렇게 완성된 탐라섬과 남면의 행정 구역 체제 상에서 지금 개축 중인 탐라 공택의 주소는 ‘탐라특별시 홍로동 석황거리 1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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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류 회사의 역할이 중요하겠군.”
아직 지방 행정 구역 개편이 완성되기 전에, 몽주는 진주에서 돌아온 포은의 보고에 그렇게 말했다.
그 말투는 그저 사실에 대해 말하는 것만은 아닌 듯했다.
“내류 회사가 너무 비대해지는 것을 걱정하십니까? 부백 사장은 주군을 배신할 사람은 아니라 봅니다.”
“그가 나를 배신하는 것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다른 자들이 알아서 그의 눈치를 보는 게 걱정이지.”
이미 남면의 유통과 토목 건설을 전담하면서 2천이 넘는 직원을 거느리는 게 내류 회사였다. 도로 건설 등의 이유로 임시로 고용한 자들까지 더하면 수만의 인력이 내류 회사에 속해 있는 셈이었다.
앞으로 지방 행정 구역의 정착, 상시와 정기시의 연계를 위해 내류 회사의 역할이 커지면 그 규모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일단 내류 회사로부터 도로 건설의 역할을 대신할 회사를 분리해야 할 듯하군.”
“그리하시면 적어도 소속 인력의 수는 많이 감소할 것입니다.”
“흠, 이왕이면 탐라상단 소속이 아닌 회사가 그 일을 하면 좋으련만.”
몽주는 또 다른 봉필, 진석을 바라고 있었다.
“숙진석처럼 되바라진 자가 아니면, 다들 회사를 세우더라도 탐라상단이 이미 발을 뻗은 분야를 피하고자 할 것입니다.”
“하하하.”
몽주는 인주의 은광을 탐했던 진석을 떠올리며 웃곤 내관대신과 인사를 나누며 그의 승선을 기다리고 있던 중함선에 올랐다.
그들이 있던 곳은 홍로 포구로 몽주는 이주섬으로 갈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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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섬은 이미 안정되었다는 평가조차 무색할 만큼 탐라국의 치세가 정착되어 있었다.
“전에 몇 번 명 수군이 근방에 얼쩡거리긴 했습니다만, 요즘에는 다시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몽주가 이주 군정사령관 남석삼을 만나자마자 물은 건 명나라 쪽 동향이었다.
태자가 천자의 묵인을 약속해 주었지만, 홍무제는 충분히 변덕을 부릴 만한 인물이고 그럴 능력이 있는 자였기에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그나저나 교역 규모가 갑자기 커져서 난리였다고 들었습니다.”
“왜 아니었겠나. 후에는 조금 줄었지만, 처음 명나라 측이 요구한 첫 교역량은 연왕부와의 평소 교역량에 비해 10배에 이르렀지. 덕분에 탐라의 여러 공소들이 몇 날이나 밤에도 일을 해야 했네. 상관부를 비롯하여 조정 안도 바빴고.”
“이제 이곳 이주에도 일을 나눠 주셔도 됩니다.”
“하하, 그 말을 하려고 교역 이야기를 꺼냈군. 그리고 이곳에 애정도 생긴 모양이고.”
“몇 년이나 발붙이고 살다 보니, 이제 정이 들 때도 되었지요.”
그쯤에 그곳 가남현 사령부에서 일하는 현지 하인이 차를 대령하였다.
한데, 그 하인의 오른손은 보이지 않았다.
몽주가 그자의 손에 시선을 두는 걸 본 석삼이 미소를 띠며 말했다.
“저자는 월인으로 본래 군병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곳에서 근무하게 하였군.”
솔직히 피정복민의 심정을 차치하더라도, 자기 손목을 자른 자들에게 억하심정이 없을 수는 없을 테니, 그런 자를 가까이 두는 건 위험하지 않을까 싶었다.
“애초에 원주민과 월인들을 차별하지 말라고 하신 건 주군이 아니십니까.”
“그야 그렇지만.”
“하하, 저도 아무 생각 없이 고용한 건 아닙니다. 그만큼 저들의 심정도 충분히 달래졌다고 판단했기에 천천히 관부의 일에도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네가 그리 생각했다면 그런 것이겠지. 다만, 몸조심하게. 자네 몸은 자네 것만은 아닐세.”
“주군…….”
석삼은 감격 어린 표정을 지었고 몽주는 오랜 심복에게 따뜻한 웃음을 보였다.
“이제 이곳 이주도 군정을 마감할 준비를 해야겠네. 그리고 자네도 군정 사령관을 벗어나 다시 대사로서 활약해야지.”
“예…… 예?”
고개를 끄덕이던 석삼은 문득 몽주의 말에서 느껴지는 ‘뉘앙스’에 의문을 품었다.
“뭘 그리 놀라는 겐가. 이주 다음에는 여송(呂宋)임을 자네도 잘 알고 있을 터인데.”
“그렇긴 하지만, 여송섬의 진출도 소신이 담당해야 하는 것입니까?”
“이주섬의 경험이 있는 만큼 여송섬에서 더 잘할 것 같네만.”
“전에 달걀은 한 바구니에 담는 법이 아니라 하셨는데, 그 경험도 다른 자에게 골고루 나눠 주심이 어떠신지…….”
“그야 자네 밑에 있는 관리들도 함께 성장하니 문제없지.”
“…….”
석삼은 시무룩해졌다. 군정이 끝나면 그도 탐라섬에 돌아가 아내와 아들과 함께 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곧바로 여송섬으로 가라는 말은 아니네. 일단 탐라섬으로 귀환해서 그간의 피로를 풀어야겠지. 아마 여송으로의 진출을 위해 여러 준비를 해야 하니, 짧게는 몇 달, 길면 해가 바뀔 수도 있을 게야.”
“아…….”
석삼의 표정이 다시 환해졌는데, 다음 순간 문득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바꾸었다.
“혹시 지금 제게 조삼모사하시는 겝니까?”
“조삼모사도 알고 대견하군.”
“그건 노비일 때도 알고 있었습니다만.”
“그랬군. 조삼모사든 조사모삼이든 내가 장담하건대, 자네는 다시 바다가 그리워질 거야.”
석삼은 뭘 믿고 주군이 그런 장담을 하나 싶었지만, 이내 문득 든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럴 것 같기도 합니다. 머나먼 곳에 발을 디디고 그곳을 탐라의 강역으로 삼는 게 의외로 재미가 있지요.”
“거 보게.”
이주섬을 정복하면서 그가 보인 열정이나, 군정 사령관으로 있으면서 몽주에게 보낸 장계와 서찰에는 그가 이주섬을 안정시키고, 탐라국의 일원으로 만드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이야기의 주제가 여송섬으로 넘어갈 참에, 문득 석삼이 불현듯 떠오른 양 말하였다.
“아 참, 얼마 전에 점파에서 소식이 있었습니다. 점파왕이 주군을 뵙길 청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나를? 어째서?”
“이유는 저도 알지 못합니다. 그저 점파에 들린 유구상단을 통해 말로 전해졌을 뿐입니다.”
“유구상단이 점파까지 뻗었나?”
“유구왕의 다소 조급한 성미가 과감함으로 드러난 경우겠지요.”
석삼의 평가에 몽주도 실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포경하는 용도로 쓰겠노라며 화포 몇 문과 약간의 화약을 얻길 원했던 것도 떠올랐다.
혹시 모를 경우에 대한 우려가 있어 탐라 조정에서도 찬반이 나뉘었지만, 몽주는 아예 포경포에 쓰일 커다란 작살까지 만들어 보내 준 바가 있었다.
네 문의 구형 화포로 유구왕이 딴생각을 할 리가 없기 때문이었지만, 그가 어떻게든 유구에 산업을 세우고자 애쓰는 것이 기꺼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애씀이 유구상단으로 하여금 머나먼 점파국에까지 상인을 보내기에 이른 모양이었다.
“점파와의 교역에서 이문이 될 만한 게 있을지 모르겠군.”
“지금 그네들은 이문 없이 본전만 되어도 움직일 태세입니다.”
“음, 그래도 경험은 축적될 것이니 훗날 도움이 되겠지. 어쨌든 비나수르 왕이 나를 보고 싶다고 했다는데…… 솔직히 내가 그를 만나러 점파까지 가야 하나 싶군.”
“하면, 거절의 답신을 보내…….”
“아니, 그보다는 차라리 그로 하여금 탐라를 방문하라 전해 보게.”
“예? 그게 될까요?”
“안 되면 그만인 거고. 나와 직접 만나고 싶은 이유가 그저 얼굴 보고 만나고 싶은 것에 불과하다면 점파왕도 움직이지 않겠지. 하나, 만약 중요한 무언가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면, 그것이 중요하면 중요할수록 그 스스로가 움직일 생각이 들겠지.”
석삼은 주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전에 보았던 비나수르 왕을 떠올렸다.
그는 전장에서 앞장서 싸울 만큼 용맹하고 적극적인 인물이었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그 먼 거리를 격하고 탐라까지 방문할 각오를 할 법도 했지만, 역시나 아무리 그래도 몇 달이 걸릴지 모르는 동안 왕좌를 비워 두지는 못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더 앞섰다.
몽주는 이주섬에서 칠 일간 더 머무르면서 가남현은 물론 서부까지 두루 돌아보았다.
이주섬에 적당한 산업을 구상하기도 하고, 이주섬의 관리와 군병들을 치하하는 한편, 탐라의 원주민과 월인들 앞에서 나서서 지난 전쟁에 대한 위로와 장차 이주섬의 발전에 대한 약속을 보이며, 그들이 탐라국의 백성임을 보다 분명히 인식시키고자 노력하였다.
그렇게 일정을 마치고 몽주가 이주섬을 떠났을 무렵, 유구상단의 상선을 통해 비나수르 왕의 제안에 대한 곤란함과 탐라국 방문에 대한 역제의가 점파에 전해졌다.
점파국의 반응은 한동안 없었고, 석삼도 탐라섬으로 귀국하기 전에 마무리해야 할 일에 매진하느라 그에 관해서는 까맣게 잊었다.
그러다 석삼이 귀국 일자를 양손으로 셀 무렵에 문득 점파국에서 유구상단의 배를 통해 이주섬으로 사신이 도착하였다.
그를 통해 전해진 점파왕의 친서에는 이주섬에서 탐라공을 만날 수 있다면 좋고, 그조차도 어렵다면 그가 탐라국을 방문할 의향이 있으니 그에 관한 협조를 부탁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게 진심이오?”
“어찌 왕명을 두고 거짓을 꾸미겠소.”
점파의 사신은 다소 퉁명스럽게 대꾸하였다.
대화는 오어(吳語)와 비슷한 중국어로 이뤄졌으니, 그 사신의 조상이 본디 당나라 사람으로, 그의 성씨부터가 제갈 씨를 점파식대로 부르는 주거 씨였다.
물론, 당금 회교가 지배하는 점파이기에 따로 부르는 이름이 있었지만, 그는 외국에서는 본래 이름인 주거 찌종(제갈계종)을 쓴다고 하였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석삼은 그가 외국에 여러 번 다녀온 경험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고, 그에 관해 은근히 채근해 보았다.
그러자 찌종도 슬쩍 자랑하는 양 명나라에도 두 번이나 사신으로 다녀왔음을 알려 주었다.
그 이야기까지 듣자 석삼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을 수 있었다.
“혹시 점파왕께서 내 주군을 만나길 원하는 이유가 명나라와 관련되어 있소?”
그러자 사신 주거가 멈칫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주 관련이 없는 건 아니지만, 주된 건 아니오.”
“그렇게 애매하게 굴지 말고, 차라리 속 시원하게 밝히는 게 어떻소? 무슨 일 때문인지를 알면 내 주군께서도 점파왕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생길 것 아니오?”
그러자 주거 찌종은 다시 망설이기 시작했고, 망설임은 꽤 길었다.
석삼도 더 재촉함 없이 그가 고민하길 인내하였는데, 마침내 주거 찌종이 말문을 열었다.
“혹시 대리의 돌을 아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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