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339)
탐라의 공소들은 계속 늘어났다. 그리고 공소들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제봉소(制棒所)도 철물소에서 새로 분리된 공소 중 하나로, 금속봉을 전문으로 제작하는 곳이었다.
봉(棒)이라 함은 본디 둘레가 둥근 막대를 의미하지만, 탐라에서는 각봉이라 하여 각이 진 금속 막대도 봉이라 칭하였다.
금속봉은 여러모로 쓰임새가 늘어나고 있었지만, 제봉소가 분리되어 전문화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열기 물 반부’에서 기인한 것으로, 열기 물 반부는 지난날 탐라공께서 선보인 기물이었는데, 봉에 열을 가함으로써 간단히 물을 자동으로 퍼 올릴 수 있는 반부(反浮 : 펌프)였다.
열기 물 반부의 원리를 대략 깨달은 탐라의 장인들은 그 반부를 실용화하기 위한 궁리에 들어갔고, 실험적으로 여러 곳에서 물을 퍼 올리는 데에 썼다.
그리고 보다 많이, 보다 높이 물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개조에 노력을 기울인 바, 봉의 굵기를 달리함으로써, 즉 병목 현상을 유발하여 물의 속력을 높임으로써 단일 열기 물 반부로 5미 위까지 물을 끌어올리는 데에 성공하였다.
그렇게 열기 물 반부에 대한 실험이 상당히 진행되자, 장인들은 그 신기술을 이용한 사업을 구상하게 되었으니, 그건 바로 ‘수도 사업’이었다.
탐라섬의 모든 가옥이 우물물이나 강물을 길어 올 필요 없이 집안에서 물을 바로 받아서 쓸 수 있게 하는 사업.
그 시작은 본래 우물물을 끌어올리는 장치를 만들고자 한 것에서 시작되었는데, 끌어올린 물을 봉을 통해 집안으로 흐르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더해져 처음으로 수도(水道)의 개념이 제기되었다.
한데, 우물물이나 강물을 모든 가옥이 일일이 끌어오게 하려면 너무 많은 반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어, 이를 해결하려 모색한 결과, 물을 끌어올리는 곳은 단일한 곳으로 두되, 그곳을 높은 지대에 두어 고도차를 이용하여 아래에 위치한 가옥들에게 물을 공급하자는 방안이 나왔다.
이는 탐라섬이기에 비교적 쉽게 도출한 결론이었다.
두무악이 있어 섬의 중앙이 높고, 해안 쪽 낮은 곳으로 고을들이 포진해 있으니, 두무악 쪽 높은 곳에 저수지를 만들어 두고, 그곳에서 수도를 아래로 연결한다면 고도차를 이용한 물 공급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이론을 넘어 현실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데에 장인들이 동의했지만, 문제는 그 수도 설비를 건설하는 데 엄청난 비용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탐라 전역에 수도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두무악 사방 몇 곳에 대형 저수지를 만들어야 하고, 그 저수지들로 물을 끌어올리는 시설에, 모든 고을로 물을 보내는 수도를 건설하는 것까지, 거기에 차후에 저수지의 수질을 관리하고, 지속적으로 수도를 보수 관리하는 비용까지 더하면 당대로서는 불가능할 것 같은 대역사(大役事)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수도 사업에 대한 최종 판단은 탐라공의 몫이었다. 장인들의 의견을 받은 공관대신 화극의 청원을 받아 수도 사업에 대해 고민한 탐라공은 며칠 후, 홍로동에 국한하여 시험적으로 수도 사업을 실시하기로 결정했고, 결과에 따라 탐라 전역으로 사업을 확대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먼저 수도용으로 쓰일 저수지를 건설하는 일부터 시작되었으니, 조사를 통해 홍로동 정북쪽 두무악 어느 곳에 저수지를 두기로 하였다.
그곳은 해발 350미에 해당하는 곳으로 이론적으로는 홍로동에 수십 층짜리 건물을 세운다고 해도 그 꼭대기 층에도 물을 올릴 수 있었다.
하여, 북방에서 요동국과 연왕부 사이에 한창 전운이 감돌 즈음에 홍로동 북부에서는 대규모 저수지 공사가 시작되었다.
직경 20미터에 깊이 3미터에 달하는 큰 저수장 네 곳으로 이루어진 저수지는 ‘콘크리트’ 공법으로 만들어지고 있었고, 완성 시 도합 최대 1만 5천 통(톤)의 물을 담을 수 있었다.
그 저수지로는 3개의 하천으로부터 6개의 관을 통해 물을 끌어올 수 있게 되어 있었으니, 그중 두 개의 관은 저수지보다 높은 곳을 지나는 하천에서 물길을 내어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오게 되어 있었지만, 다른 네 개의 관은 열기 물 반부를 통해 물을 끌어오게 되어 있었다.
이는 초기에는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오는 물로도 수도를 감당할 수 있겠지만, 애초에 담수가 많지 않은 탐라섬에서 일개 작은 하천의 상류가 가진 물의 양만으로는 결국 홍로동이 필요한 물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미리 다른 하천과도 흡수관을 연결하기로 한 것이었다.
하여, 저수지 공사가 삼분지 일쯤 진척되었을 때, 흡수관 연결 공사도 시작되었으니, 본격적으로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흡수관에 들어갈 황동봉의 제작에 드는 비용은 물론, 약 5미터 높이마다 열기 물 반부를 설치해야 하고, 물을 끌어오는 하천에도 물을 모아 두는 설비를 지어 두어야 했다.
참고로, 모든 조건이 충족될 경우 한 개의 ‘파이프라인’을 통해 끌어올릴 수 있는 물의 양은 한 시간에 약 4통(톤)이었다.
“반부가 모두 몇 개나 필요하지?”
“이 하천에서 끌어가는 것만 따지면 사십팔 개이고, 네 개 하천 전부로 하면 백이십육 개입니다.”
몽주는 흡수관 공사가 진행 중인 동홍천의 상류에서 내관부 관리를 향해 물었고, 원하던 답을 얻었다.
“많군요. 반부 관리하는 데에만 인원이 꽤 필요하겠습니다.”
옆에서 같이 답을 들은 내관대신 포은이 혀를 내둘렀다.
“수십, 수백 명이 필요해도 수만 명의 백성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다면 크게 남는 것 아니겠습니까.”
“허허, 그리 생각하시다니 감탄할 따름입니다만, 워낙에 공사 규모가 크고 차후에 관리 비용도 많을 것이기에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그에 몽주는 포은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아직 얘기한 적이 없습니다만, 저는 수도를 공으로 쓰게 할 생각은 없습니다.”
“아…….”
“적은 돈이라도 들여야 수도로 쓰는 물을 아낄 것 아닙니까? 이 수고로운 과정을 통해 수도로 흐르는 물을, 흔히 말하는 것처럼 물 쓰듯 막 쓰게 할 수는 없지요.”
“맞는 말씀이십니다. 한데, 일괄적으로 수도에 세금을 매기면 그 세금이 아까워서라도 더 함부로 쓰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얼마나 수도의 물을 쓰는지를 계량할 장치를 만들도록 해 두었습니다.”
몽주는 간단한 계량기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각 가옥에 들어가는 수도관에 작은 수차가 달린 장치를 연결하여 물이 흘러들어감에 따라 수차가 돌게 되고, 그 수차의 회전수를 표시하는 방식의 계량기였다.
물론, 현대에서처럼 자세한 숫자로 표현되는 계량기를 구현하는 건 아직 어렵기에 큰 수로 단계를 표기하도록 하였다.
수차에 작은 치차를 달고, 그 작은 치차를 큰 치차에 연결하여 그 치차의 회전에 따라 숫자를 바꾸게 하는 것인데, 그 숫자에 따라 세금의 크기도 달라지게 할 생각이었다.
“다만, 수도의 세금은 쓰는 양의 크기에 따라 배수로 늘려 받는 걸 생각 중입니다.”
“배수로 받는다 하시면?”
“예컨대, 예컨대, 1단계의 수도세가 1원이면, 2단계는 2원, 3단계는 4원, 4단계는 8원…… 이런 식이지요.”
“많이 쓰는 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실 생각이시군요. 흠…….”
포은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갸웃거렸다.
“수도의 세금은 결국 수도로 쓰는 물의 값이 아닙니까. 이는 곧 물의 가치와 같은 바인데, 물의 가치는 가난한 자나 부유한 자나 피차일반이 아닐까요?”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요. 근데 말입니다, 포은 대신, 세금이란 게 무엇입니까?”
“예? 세금은 나라의 살림을 위해 백성들로부터 거둬들이는 돈이지요.”
“그렇지요. 하면 세금이 없으면 나라는 유지되지 않겠지요?”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나라에서 강제로라도 거둬들이는 것이지요.”
“한데, 나라가 망한다면 누가 더 손해일까요?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 중예요.”
“그야 부유한 자지요.”
“그렇지요. 당장 본인부터가 탐라국이 망하면, 얼마나 큰 손해를 입을지 짐작도 할 수 없지요.”
“허어…….”
이상한 말이긴 했다. 탐라국 자체나 다름없는 탐라공이기에 탐라국이 망한다는 건 탐라공이 망한다는 말이었다. 그러니 손해니 뭐니 따질 필요도 없다고 봐야 했다.
하나, 애써 생각해 보자면, 탐라국이 다른 나라에, 예컨대 명나라의 일개 지역으로 흡수되고 탐라공도 그저 평범한(?) 귀족으로 남는 경우도 있을 수 있었다.
그 경우에 탐라공은 분명 지금과 같은 위치를 유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권력은 물론, 재산상의 손실도 엄청날 것이다.
“흐음, 그렇다면 나라가 망할 때 입을 손해의 크기에 따라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말인가요?”
“좋게 포장하면, 나라가 유지되길 바라는 마음의 크기에 따른다고 할 수 있겠지요. 내가 탐라 상단의 주인으로서 탐라국 재정에 추가로 기여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
탐라국에는 아직 ‘누진세율’이라는 개념이 없었고, 탐라공도 일괄세율에 따라 부여되는 세금만 납부하면 그만이었다. 물론, 애초에 그조차 내지 않는다 해도 상관없었지만.
어쨌든 그럼에도 탐라공은 상당한 재원을 탐라국에 따로 제공하고 있었다.
그저 탐라공이기에, 탐라국의 실질적인 주인이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만 여겼지만, 따지고 보면 탐라공의 자발적 ‘기부’도 탐라국이 망하지 않고 튼튼하길 바라기 때문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야 탐라공이 손해 없이 지속적으로 이득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혹시……?”
포은은 탐라공의 말을 듣다가 머릿속을 간질거리고 있는 생각의 정체를 깨닫고 조심스레 물음을 던졌다.
“장차 모든 세금을 그처럼 바꾸실 생각이십니까?”
“어찌 생각하십니까?”
되돌아온 질문에 포은은 말을 삼갔다.
나라가 있어 얻는 이익의 크기, 나라로부터 받는 보호의 크기 등을 생각하면 부유한 자들이, 권력이 있는 자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게 심적으로는 맞다고 생각하나, 동일한 세율로도 부유한 자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게 되는 점을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는 절대적인 이유라고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현실적으로 월봉 1천 원인 자가 십분지 일의 세금을 낼 때, 월봉 2천 원인 자가 오분지 일의 세금을 낸다면, 과연 2천 원을 버는 자는 그가 나라가 있음으로 해서 얻는 이익의 크기가 두 배이고, 나라로부터 받는 보호의 크기가 두 배라 여길까?
포은이 보기에 부유한 탓에 차별을 받는다고 여기는 자들이 더 많을 것 같았다.
몽주는 생각이 많은 표정의 포은을 보며 실소를 짓고 말문을 열었다.
“급하게 결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점진적으로 따져 볼 문제지요.”
“저도 여러모로 고민해 보겠습니다.”
어쩌다 보니, 흡수관 공사 현장에서 세금을 논하였다.
어쩌면 질산, 황산을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렵고, 더 현대적인 산물에 대한 이야기였다.
***
홍로동 북쪽 수도 건설 현장 방문을 마친 탐라공이 이틀 후, 행차한 곳은 남면의 어느 섬이었다.
가가도(嘉佳島), 혹은 가거도(可居島).
당대에는 가가도일 수는 있어도, 가거도일 수는 없었다. 아직 거주하는 이를 가진 적 없는 무인도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이든, 살 만한 섬이라는 뜻이든 그 섬이 남면에서 가장 서쪽으로 동떨어져 있는 건 똑같았고, 몽주가 그 섬을 찾게 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꼭 직접 가야겠는가?”
출렁이는 바다 위로 가가도가 멀리 보이고 있었다.
“가가도가 코앞인데 아직도 그 소리십니까?”
“안심이 안 되니까 하는 말 아닌가.”
“잠깐 가는 제가 걱정이면, 그곳에서 일하는 장인들은 얼마나 걱정을 해야 합니까.”
“솔직히 말해서, 그네들하고 자네하고 어찌 같이 취급할 수 있겠는가. 암만 사람이 똑같이 다 귀하다곤 하지만, 자네가 쓰러지면 탐라국도 함께 쓰러질 수 있음을 생각해야지.”
“…….”
지금 화극이 한 말과 같거나 비슷한 말을 어제 오늘에 걸쳐 무수히 들었다.
마치 전장터 한복판으로 가는 것과 같은 반응이랄까.
아내 앵도도 대놓고 표현하진 않았지만, 배에 오르기 전에 몸조심하라는 소리를 몇 번이나 하였다.
그런 분위기는 가가도에 거울 공소가 있기 때문이고, 그 공소에서 수은(水銀)을 쓰기 때문이었다.
사실 본디 당대에 수은은 오히려 약재로 쓰이면 쓰였지, 해로운 것이라는 인식은 거의 없었다.
하여, 거울 제조를 위해 수은을 어쩔 수 없기 쓰기로 하면서, 몽주는 수은 중독의 위험을 알리고자 하였고, 그 방법으로 동물 실험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는 당대인들에게 예상보다 더 큰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불과 열흘 만에 제대로 걷기는커녕, 팔다리도 가누지 못하고 발작을 일으키는 고양이와 개의 모습은, 그것이 고의로 수은 중독을 일으킨 것임을 알지 못했다면, 귀신이 들렸다고 생각했을 법한 모습이었다.
그 고려판 ‘미나마타 병’의 실험적 구현을 실제로 목격한 자들은 거울 공소에서 일할 장인들을 포함하여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소문은 순식간에 크게 번져 이제 탐라섬에서 수은은 독극물 그 이상의 취급이었다.
문제는 동물 실험부터가 극단적인 면이 있는 탓에 수은에 대한 배척이 너무 심해졌다는 것이었다.
열흘 만에 ‘미나마타 병’이 발발할 만큼, 실험동물은 폐쇄된 곳에서 쉼 없이 고온의 수은에 노출되어 있었는데, 마치 수은을 잠깐이라도 가까이하면 그렇게 되는 것처럼 오해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진 것이다.
물론, 수은은 잠깐이라도 노출되지 않는 게 최선인 위험한 물질이고, 몽주도 가급적 쓰지 않고 싶었던 물질이었다.
하나, 질산과 암모니아가 없는 상황에서 쓸 만한 거울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은을 이용한 아말감(Amalgam) 이 필수였다.
하여, 몽주도 현대에서 따로 자문을 구하여 아말감을 처리하는 방법을 강구해 왔는데, 장인들 중에도 겁을 먹은 자들이 많아 거울 공소에서 일하려는 자들이 거의 없었다.
급여를 두 배로 올리고, 근무 시간을 절반으로 줄였음에도 좀처럼 지원자가 없자, 몽주는 자신이 직접 거울 공소에서 시범을 보이기로 결정하였다.
그 공소는 지금 몽주가 가고 있는 가가도가 아닌 탐라섬의 서남쪽에 위치한 덮개섬(현대의 가파도)에 위치해 있었다.
사실 그때는 더 난리법석이었고, 동물 실험 때문에 아버지에게 실망스런 반응을 보이던 강중이마저 울먹이며 가지 말라고 했을 정도였다.
몽주도 두려움이 없지 않았지만, 거울 제작을 위해 강행하였다. 물론 어지간하면 죽지 않을 것이 분명한 자신의 신체에 대한 믿음 덕이기도 했다.
그렇게 서투르나마, 탐라공이 직접 수은이 섞인 ‘아말감’을 써서 거울을 만드는 공정을 손수 선보이자, 그제야 장인들 중에서 지원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참고로 덮개섬의 거울 공소는 겨울에만 쓰고, 지금 몽주가 가고 있는 가가도는 여름에만 쓰는 공소였다.
그 이유는 역시 수은 때문으로, 둘 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무인도이되, 여름에는 남동풍이 주로 불고, 겨울에는 북서풍이 세기에 기화된 수은이 빠져나가 근처 육지 쪽으로 날아가는 걸 피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그 두 섬처럼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이라면 기화된 수은이 바다를 벗어날 가능성은 없었다.
오히려 바다를 오염시켜 해양 생태계를 통한 수은 중독과 농축을 걱정해야 하지만, 아직 그걸 우려할 만큼 많은 양의 수은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만약 사고라도 생긴다면, 거울 공소에서 일하는 장인들이 중독될 가능성이 큰 건 사실이기에 몽주는 생산성보다는 안전에 더 유의할 것을 강력하게 당부하였다.
그렇게 겨울 동안 덮개섬에서 거울 제작에 도전하였고, 꽤 괜찮은 거울을 제작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여름에 접어들면서 겨울 동안 건설된 가가도의 공소로 이동하였는데, 지금 몽주가 가가도로 가는 건 새로운 거울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그 새로운 거울은 몽주가 가가도에 도착한 직후에 곧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확실히 화려하지 않습니까?”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는 장인들이 선보인, ‘A4’용지만 한 크기의 거울을 보며 몽주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다가 화극에게 말을 건넸다.
“화려한 건 둘째치고 내가 좀 더 잘 생겨 보이는 것 같네만?”
“하하, 좀 온화해 보이긴 하는군요.”
그 거울은 기존의 은 아말감을 반사재로 이용한 거울과 제조법상 큰 차이는 없었다.
단, 수은과 함께 섞어 아말감을 만든 재료로 은 외에 금도 소량이 섞인 게 다를 뿐이었다.
역사에 은 아말감을 반사재로 써서 거울을 만들었다는 베네치아의 유리 길드가 금을 섞어 색감을 따뜻하고 화려하게 만든 바가 있어, 그걸 구현하도록 한 것이었다.
가가도의 거울 공소에서는 작업을 시작한 이래, 금을 극미량부터 조금씩 늘려 가며 실험 제작을 실행하였고, 가급적 금의 투입량이 적어도 색감을 향상시킬 수 있는 최적점을 찾고자 하였다.
그 결과가 지금 몽주와 화극 앞에 놓인 것이었다.
“유리의 재질만 조금 더 좋았다면 정말 최상급이었을 터인데 아쉽군요.”
황산이 없어 소다회를 만들지 못하였고, 소다회 대신 식물을 태운 재를 이용하여 유리를 만들다 보니, 아무리 장인들의 기술력이 높아져도 유리의 투명도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뭔가 어둑한 느낌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몽주가 은 아말감을 반사재로 쓴 거울을 만들고 있음에도 굳이 금을 섞은 반사재로 만든 거울도 구현하고자 한 이유도 유리의 투명도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기 위함이었다.
“자, 이 멋진 놈을 어찌 만드는지 한번 보고 싶군.”
몽주가 장인들을 보며 말하자, 장인들이 반색하며 서둘러 작업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다들 위험하다고 하는 거울 공소의 일을 탐라공이 직접 보겠다 하니, 자신들이 인정을 받는 기분이었으리라.
“쩝.”
물론, 화극은 꼭 그래야겠냐는 듯 입맛을 다셨다.
어쨌든 금은 아말감 거울의 제작은 시작되었다.
거울 공소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다.
하나는 재료의 준비와 일차 가공, 그리고 마무리 가공을 하는 곳이고, 다른 한 곳은 폐쇄된 곳으로 그곳에서 아말감칠과 가열 작업을 하게 되어 있었다.
물론, 수은 중독의 위험이 있는 작업은 폐쇄된 곳에서 이뤄지는 작업이었다.
상온 액체 상태의 수은에 계량된 은가루와 금가루를 개어 걸쭉해진 아말감을 준비된 유리 위에 얇게 펴 바른 뒤, 외부와 연통이 연결된 가열로에 통째로 넣어 열을 가하면, 끓는점이 낮은 수은이 먼저 기화되어 날아가고, 아말감 속 은과 금이 유리에 남아 반사재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물론, 아말감칠을 하기 전에 숙성시킨 매실액을 유리의 한 면에 발라 미세한 부식을 일으키는 과정이 있긴 했지만, 그건 일차 작업 중 실행하는 것이었다.
제법 강한 산성을 띠는 매실 숙성액으로 유리의 표면을 미세하게 부식시킨 뒤 아말감을 바르면 나중에 수은이 기화된 후 남은 은과 금이 보다 강하게 흡착되는 원리였다.
그렇게 가열되었다가 서냉된 거울을 다시 살핀 후 규격에 맞게 자르는데, 아무래도 도포한 바깥쪽으로 반사재가 제대로 발리지 않는 경향이 있어 그 부분을 잘라 내는 것이었고, 그를 위해 애초에 규격보다 조금 더 큰 유리를 이용하여 거울을 만들게 되어 있었다.
몽주와 화극은 폐쇄된 곳까지 함께 들어가 작업을 관찰하였다.
그곳은 유리 공소의 서랭고가 그러하듯 건축적으로 공기의 흐름이 상부로 솟아 빠져나가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작업 중에는 반드시 가죽으로 된 ‘마스크’로 코 아래 얼굴을 가리게 되어 있었으며, 마스크 아래로도 온몸에 살 한 점 드러나지 않도록 꽁꽁 싸매고 있었다.
거기에 두툼한 가죽 장갑을 낀 채 도기 그릇과 주걱으로 아말감을 만들고, 거울을 구워 내는 과정은 똑같은 차림으로 곁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힘든 일이었다.
특히, 지금처럼 여름철일 때는 더욱 고역이었다.
사실 어쩌면 이 정도로 철두철미(?)할 필요는 없을 지도 몰랐다. 가장 위험한 수은의 기화는 가열로 안에서 진행되고, 곧바로 연통을 통해 외부로 빠져나가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그 시간에 연통의 배출구 근처에 있는 게 훨씬 위험한 일이었다.
물론, 그 사실 또한 잘 알려져 있어, 장인들은 섬의 북쪽으로 길게 나온 통기관 쪽으로는 평소에도 절대 얼씬거리지 않았다.
하나, 아무리 수은이 직접 흡입하거나 음용하지 않는 이상 큰 위험이 없다고 해도 가급적 접촉하지 않는 게 최선인 건 분명했다.
특히 기온이 높은 여름철에는 상온 액체 상태에서도 천천히 기화될 가능성이 높은 게 수은이기에 장시간 노출되면 분명 중독될 가능성이 있었다.
때문에 몽주로서는 지금 장인들이 사용하는 장비에도 아쉬움이 컸다.
특히 가죽으로 되고 안에 두툼한 면을 댄 ‘마스크’는 사실 기화된 수은을 제대로 막아 줄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심리적 안도감을 위해, 또 혹시 실수로 입에 수은이 튀는 걸 막기 위해 사용하는 것에 가까웠다.
하여, 아직 제대로 된 방독면을 구현하기 불가능하기에 지금으로서는 작업 시간을 최소화하는 게 오히려 더 좋은 방법이었다.
“하루에 생산량이 얼마나 되는가?”
작업 후에 공소장에게 묻자, 그가 송구하다며 답하였다.
“지난 닷새간 이백칠십여 장을 만들었습니다요.”
“하루에 두 시진 작업으로?”
“네, 그렇습죠.”
공소장이 미안하다는 반응을 보인 건, 그네들이 너무 쉬엄쉬엄 일하면서도 많은 월봉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위험한 걸 제외하면 작업 자체가 큰 기술을 요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리 민망해 할 거 없네. 여기서는 자네들이 사고 없이 일을 해내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기술을 선보이는 것이네. 생산량도 지금 정도면 충분하니, 절대 성급하게 굴어서는 아니 되네.”
“명심하겠습니다요.”
몽주는 마지막으로 공소 창고에 나무틀에 끼워진 채 쌓여 있는 거울들을 살펴보았다.
은 반사재로만 만들어진 거울도, 금을 섞은 것에 비해 따뜻한 느낌이 덜할 뿐이지, 당대에 주로 쓰이는 동경(銅鏡)보다 훨씬 뛰어난 거울임에 틀림없었다.
한때 고려에서 처음 동경을 보고 유리 거울에 못지않다고 여긴 적이 있긴 했지만, 막상 유리 거울을 두고 비교하면 역시나 동경은 손색이 있었다.
“지체 높은 부인들이 정말 비싸게 사 줄지 궁금하군.”
문득 화극이 걱정스레 말하자, 몽주는 실소하였다.
“걱정 마십시오. 아주 날개 돋친 듯 팔릴 겁니다.”
그는 ‘프리미엄’급 금은 반사재 거울과 양산형(?) 은 반사재 거울이 탐라의 또 다른 ‘캐쉬 카우’가 되어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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