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348)
시라무렌 강 유역의 중심지는 새나두(Sanadu)라 불렸다.
과거 원나라 시절, 그곳에 상도(上都)라는 도시와 궁궐을 지어, 원 황제의 여름 별장으로 사용하였으니, 상도를 몽골식으로 부르는 게 새나두였다.
훗날 현대에서 시린궈러맹(锡林郭勒盟)이라 불리는 그곳은 동남부의 고원과 서북부의 평지로 이뤄졌고, 동남부의 고원에는 크고 작은 호수들이 많아 그곳에서 기원하는 작은 하천들 덕에 몽골고원이라는 지명이 주는 이미지와 달리, 의외로 수자원이 풍부하였다.
요동국이 초원길을 개척함에 있어, 가장 먼저 새나두를 확보하고자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여, 아직 요동국의 개척 회사가 설립되기도 전, 동금주의 무족들이 본격적으로 호응하기 전, 요동국이 양맥곡을 통해 선발대를 보낸 건 시라무렌 강 유역의 상황을 살피는 걸 넘어 새나두에 거점을 건설하기 위함이었다.
선발대를 이끈 건 상원수 지용기(池湧奇)로 요동국 병조참판이었다.
충주 지씨 세가의 사람으로, 본디 문신이나, 무인으로서의 기질이 다분하여 요동국에 귀의한 이래로 사실상 무신으로서 자리 잡았다.
본래 역사에서는 왜구 격퇴에 큰 공을 세우고, 위화도 회군에 참가하여 공신에 임하면서, 전장에서는 관우나 곽자의에 비견되는 칭송까지 받았던 이였으나, 아직 요동국에서는 큰 공을 세우진 못한 상태였기에 이번 선발대의 임무를 자청하였다.
참고로, 오래전 요동성 정벌에 참여했던 지용수(池龍壽) 장군과 이름이 비슷하지만, 지용수 장군은 경주 지씨의 사람으로 관련이 없었고, 그는 건강 문제로 물러나 탐라국 남면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예상보다 더 우호적이군. 왜 요동국에 귀의하지 않았는지 의아할 정도야.”
“저도 이곳에서 와서 안 일이지만, 저들은 사실상 요동국에 귀의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요동국과의 통행이 아니었다면, 이곳은 버려졌을 것이라 하더군요.”
옛 상도의 궁터, 무너진 성벽의 흔적이 뒤로 보이는 구릉 위에 자리 잡은 군진 앞에서 나란히 선 채 상원수에게 대답한 자는 사역원 제조(司譯院 提調) 설장수(偰長壽)였다.
본디 원나라에서 귀의한 자라서 중국말은 물론 몽골말에도 유창했으니, 역관을 양성하는 사역원의 제조직을 맡고 있었고, 이번 선발 원정의 조전원수직을 수행하고 있기도 했다.
“요성에서 그 말을 들었다면 무슨 소린가 싶었겠지만, 여기서는 단박에 이해가 되는군.”
시라무렌 강 유역의 유목 부족들, 소위 거란계 유목민들 중에 요동국에 귀의한 부족과 그렇지 않은 부족들의 차이는 그들의 조상땅인 시라무렌 강 유역에 대한 미련이 얼마나 크냐는 차이밖에 없었다.
지난날 요동공이 귀의한 거란계 부족장으로부터 들은 바대로, 시라무렌 강 유역의 유목민들은 요동국에 대해 잘 알고 있고, 따르려는 경향도 강했다.
다만, 요동국에 귀의하기 위해서는 시라무렌 강 유역을 떠나야 하는 것이 꺼려져 아직 요동국에 귀의하지 못한 것뿐이었다.
과거 요나라가 금나라에게 밀려 서쪽 멀리 서요를 세울 때도 따르지 않았던 이들의 후손다운 모습이랄까.
어쨌든 그런 차에 요동국이 시라무렌 강 유역까지 그 강역을 넓히는 움직임을 보이자, 그곳의 거란계 유목민들은 마치 그들의 모국이 돌아온 것처럼 환영하는 기색이었다.
“그래도 군병을 많이 데려온 건 잘한 일이었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생각지 못한 쪽으로 쓰임새가 있는 게 다를 따름이지만.”
총 1만의 군병을 동원하였으니, 선발대치곤 제법 많은 편이었다.
그중 절반이 기마병이었고, 그 기마병들 중 삼분지 이는 귀의한 거란계였다.
여러모로 시라무렌 강 유역의 거란계 유목민들을 포섭하고, 강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동원한 수와 구성이었는데, 정작 시라무렌 강의 거란계 부족들이 그들을 환영하니 그들을 상대로 군병을 쓸 일은 없었다.
대신, 따로 군병이 필요한 일이 생겼으니, 거란계 유목민들을 보호하는 일이었다.
지금이 몽골족 마적들이 시라무렌 강 유역에 들이닥칠 때였던 것이다.
“그나저나 전략은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말해 무엇하겠나. 전몰일세.”
“그리하면 저희도 피해가 적지 않을 것입니다.”
반론하는 설장수의 말투도, 상원수의 생각에 반대한다기보다는 있을 수 있는 결과를 짚어 주기 위한 의도임이 분명했다.
“우리가 단지 한 번의 안전을 노리고자 한다면, 적당히 대적하고, 적이 물러나게 유도하겠으나, 우리는 이곳을 영구히 다스리기 위해 온 것이네. 하면, 훗날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우리를 환영한 저들을 위해서라도 요동국의 힘과 의지를 확실히 보여 줘야지.”
구릉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부족민들의 활기찬 모습을 보며 들린 상원수의 답에 설 조전원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그나저나 이번 사업이 잘된다면, 자네의 진짜 본관까지도 닿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소회가 남다르겠군?”
“…….”
설장수는 미소를 보일 뿐, 딱히 답하지 않았다. 다만, 은근히 씁쓸함이 느껴지는 미소였다.
지 상원수가 말한 설장수의 진짜 본관이라 함은 바이칼 호수의 남쪽 설연하(偰輦河) 유역을 가리킴이니, 몽골말로 셀렝게 강인 그곳은 회골(回鶻 : 위구르)의 기원지였다.
무족의 일란할라, 거란족의 시라무렌 강 같은 곳이랄까.
그러니까 설장수의 피 속에는 회골의 피가 섞여 있다는 말이었다.
실제로 설장수의 성씨인 설(偰)씨부터가 설연하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의 8대조가 원나라에 귀의하였고, 공민왕이 원나라에 볼모였던 시절에 인연이 있었던 그의 아비가 홍건적의 침입을 피해 고려에 귀의하면서 고려인이 되었다.
다만, 회골의 피가 언급이 될 때마다 그로서는 자못 당황스러울 때가 많았으니, 애초에 그의 핏줄이 중국화된 지 오래인 터라, 차라리 중국인 내지 원나라 출신으로 취급하면 덜하겠건만, 흔적도 없는 회골족은 그에게도 너무나 낯설었다.
그렇다고 정색하고 회골족을 언급하지 말라 하기도 어려운 터라, 설장수는 그저 얼른 공을 세우고 그의 가문이 요동국의 가문으로서 뿌리 내리길 노력할 따름이었다.
그 노력은 새나두에서도 계속되었으니, 중국말에 몽골말까지 유창하고, 고려에 귀의하기도 전에 고려말을 익혔을 만큼 출중한 능력으로 새나두의 부족민들과 요동 군병들 간의 중재를 담당하여 문제없이 이끌었다.
‘하기야 이왕지사 설연하까지 요동국이 강역을 넓힌다면 그 또한 나쁠 것도 없지.’
회골에 대한 미련은 없지만, 강역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많은 부족들이 요동국에 속할 것이고, 그만큼 고려 출신이 아닌 자들의 설자리도 커질 테니, 설장수로서는 마다할 일이 아니었다.
물론, 아직은 감히 성공 여부를 점칠 때는 아니었다. 설연하까지 거리는 4, 5천 리에 이르니, 앞으로 요동국은 숱한 난관을 이겨 내야 할 것이었다.
당장 몽골 마적 떼를 물리치는 것을 시작으로…….
* * *
몽골 마적 떼가 새나두로 들이닥친 건 이레 뒤였다.
요동국의 가을 추수로, 새나두의 부족들이 요동국과 교역하여 얻었을 식량을 노리고 온 그들은 예전처럼 위력을 보이고 적당히 식량을 강탈해 갈 속셈이었으나,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그들이 가까이 오자, 새나두에 숨어 있던 요동국의 보군이 폭죽시를 날려 선공하였고, 처음 겪는 폭음에 기마와 마적들이 혼란해진 틈에 남쪽 계곡에 숨어 있던 요동의 기마군이 그들의 측면부터 포위하여 공격하니, 몽골 마적들은 덫에 걸린 쥐 꼴이 되었다.
거의 일방적인 도륙이 될 수도 있었지만, 의도한 건지, 얻어걸린 것인지, 몽골 마적 떼들 중 일부가 후미에 남아 있었고, 그들이 요동의 기마군을 밖에서 요격하는 바람에 요동군의 피해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
물론, 그럼에도 전투는 대승이었다.
아군의 사상자는 5백 여에 불과한 것에 비해, 총 4천여의 마적들을 사상시키거나 사로잡았고, 달아난 건 수백에 지나지 않았다.
포로들을 취조한 바에 따르면, 그들은 근방 몽골 대부족을 중심으로 여섯 개 부족의 전사들이 연합한 마적들이었고, 주변 약소 부족들을 약탈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었다.
실상 마적 떼를 이룬 부족들의 전력 중 거의 모두를 상실한 것이니, 근시일 내에 새나두를 위협할 만한 세력은 사라진 셈이었다.
거기에 더해, 확실히 몽골족이 원나라의 몰락 이후, 크게 쇠퇴했음을 확인할 수도 있었다.
그 마적 떼들의 활동 범위가 반경 500리에 달했다고 하니, 그처럼 넓은 범위를 고작 5천의 기마로 장악할 수 있다는 건, 요동국의 초원길 개척에는 희소식이었다.
원정 선발대의 승전보와 새나두 거점 구축에 대한 소식은 곧바로 요동국 조정에 전해졌으니, 당국에서는 그 소식들을 널리 알려 개척 회사의 설립에 박차를 가하였다.
* * *
‘마닐라 만’ 진입을 위한 정지 함대의 계획은 단순하지만 명쾌한 것이었다.
만의 입구 밖 외해에 경함선을 포진하여 적의 입구 봉쇄를 차단하고, 기동력이 좋은 해사로 만 내부를 순행하자는 것이 그 계획의 근골이었다.
간단하지만, 경함선과 해사의 기능에 따라 임무를 달리하면서 안전을 도모한 계획이었고, 시작도 좋았다.
‘마닐라 만’의 입구에 자리 잡은 또 다른 중국계 세력이 이미 도주하였기에 정지 함대는 그들이 떠난 고을의 원주민들을 쉽게 포섭하고 만 진입 작전의 마지막 점검을 여유롭게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원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 중국계 세력은 남아 있던 네 척의 배를 몰아 만 안으로 들어갔다 하니, 그들의 우두머리인 인도계 톤도 왕국에 안전을 의탁한 것으로 보였다.
어차피 톤도 왕국이 탐라 함대의 접근을 알 것이라 상정하고 계획을 세웠기에 정지 함대의 작전은 다음 날 변함없이 시행되었다.
만의 입구 서쪽 밖 3길미 지점에 정지 함대가 일단 정박하니, 9척의 경함선은 아예 닻까지 내려 자리를 잡았다.
8척의 해사는 정지 함대장의 마지막 명령을 받고 곧바로 만으로 향했다.
만의 크기를 생각할 때 세 시진은 족히 걸릴 순찰 작전의 시작이었다.
교전은 최대한 회피하기로 한 그 작전이었으나, 개시한 지 반 시진 만에 곧바로 전투를 치르게 되었는데, 예기지 못한 방향에서 온 예상치 못한 적과의 교전이었다.
“남쪽 정체불명의 선단이오!”
며칠 전에 들었던 경호성이 다시 망대로부터 전해지자, 함대의 모든 이들이 남쪽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먼 곳의 섬 사이로 배들이 아른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파 대위는 눈살을 찌푸린 채 시력을 높여 보았다. 아직 정확히 몇 척인지 셀 수는 없지만, 적어도 열 척은 넘어 보였다.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어찌할까요?”
“일단 전투 준비령을 내리게. 어디의 배인지 확인 먼저 해야겠지만, 적일 가능성이 농후하지 않나.”
“알겠습니다.”
전투 준비의 고함 소리와 경종이 퍼지자, 정지 함대는 일제히 내렸던 닻을 올리고 화포를 장전하며 전투에 대비하였다.
그렇게 전투 준비가 완료될 즈음, 남쪽에서 다가온 정체불명의 선단도 어느 정도 가늠이 잡히고 있었다.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깃발입니다.”
앞선 배들에 달려 있는 깃발에 수놓은 무늬는 얼핏 보면 그것이 그림인지, 문자인지도 구분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범자(梵字) 같군.”
“아, 하면 천축국, 아니 인도계 놈들이겠군요.”
천축국(天竺國)은 인도를 가리키는 옛말로, 수백 년 전에 중국의 현장법사가 천축국을 인도로 바꿔 부른 바, 당대에 이미 인도라는 말이 기준이었다.
불교법전에 천축으로 쓰인 것이 많아 천축국이라는 말도 여전히 통용되고 있었지만, 탐라 조정이나 군부에서는 탐라공의 지도에 쓰인 명칭을 따르기에 인도라 통일하여 쓰고 있었다.
물론, 아직 인도의 지도는 나온 바 없었지만, 인도가 있는 방향을 가리키는 설명이 쓰인 자료는 많았다.
“근데 뭔가 좀 이상하군.”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파 대위가 물었지만, 정지 함대장은 그 대신 망대 위로 소리쳤고, 잠시 후 답을 받았다.
정지가 물은 건 지금 보이는 선단이 한 덩어리냐는 것이었고, 망대의 군병이 답한 건 앞뒤로 나뉘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뒤쪽 선단이 앞을 쫓는 형국인 것 같네.”
“아…… 하면 어찌 대응하시겠습니까?”
정지 함대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가벼운 말투로 결론을 지었다.
“저들이 만약 만 안으로 진입하고자 한다면, 다 막아야겠지.”
누가 적이냐 내지, 누가 적의 적이냐는 고민 같은 걸 할 때가 아니었다.
앞선 인도계 선단은 분명 톤도 왕국의 배들이거나, 그들과 손을 잡은 세력의 배들임에 분명했으니, 일단 그들부터 막아야 했고, 그 뒤를 쫓는 정체 모를 선단은 그 후에 대응하기로 결정했다.
정지 함대의 갑판들마다 부산한 움직임이 있었고, 이어 정박했던 배들이 움직여 남쪽에서 힘껏 달려오는 인도계 선단을 향해 접근하였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인도계 선단의 배들 위에 있는 선원들이 당혹해 하는 게 보였는데, 그중에는 휜 칼을 휘두르거나 닿지도 않을 화살을 쏘는 자들도 있었다.
정지 함대의 대답은 당연히 화포였는데, 천뢰탄 대신 철구를 쏘았다. 천뢰탄이 부족한 건 아니었지만, 차후에 ‘마닐라 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서 부족함 없이 쓰기 위함이었다.
서남쪽으로 향하던 선두함이 크게 돌아 북향으로 침로를 두고 적함의 속력에 맞추면서 방포를 개시하자, 후위함도 그 뒤를 따르며 적선단을 향해 방포하였다.
적 선단은 모두 열 척으로 정지 함대에 비해 1척 많았지만, 적당히 가까운 거리를 먼저 선점하여 화포로 공격하는 정지 함대 앞에서는 무의미한 수였다.
화포로 선체를 때리고, 모자소포로 갑판 위 선원과 돛을 노리자, 명중탄이 하나둘씩 생김에 따라 파손되고, 돈좌하는 배들이 생기기 시작하니, 순식간에 적선단의 선두함을 제외하고는 모두 뒤처지고 말았다.
“확실히 쫓기던 게 분명하군.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면서도 뭍으로 도주하지 않는 걸 보면 말이야.”
정지 함대장이 뒤쪽을 바라보며 말하니, 후위의 선단은 돈좌한 인도계의 배들을 하나씩 처리하고 있었다.
죽 쒀서 개 준 상황이었지만, 정지 함대는 별 상관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도 곧 비슷해질 테니까.
하나, 정지 함대가 인도 선단의 선두함까지 처리하고 선단의 머리를 돌렸을 때, 그 후위의 선단은 이미 꽁무니를 보인 채 멀어지고 있었다.
추격하고자 하면 가능할 법도 하겠으나, ‘마닐라 만’에서 너무 멀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추격은 포기해야 했다.
정지 함대장은 인도계 선단의 생존자들을 잡아들이는 한편, 함대의 최후미에 있던 배의 선장 등을 불러다 도망친 함대에 대해 물었다.
아무래도 가장 뒤에 있었던 만큼, 그 정체 모를 선단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서 목격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글자였습니다. 하나, 그렇다고 범자로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그 정체불명의 선단에 달린 깃발에 대해 다들 그와 같이 답하였다.
“혹시 회회인들의 글자가 아닐까요?”
“회회인의 글자라…… 자네, 그 글자를 본 적 있나?”
감태는 고개를 저었다. 하나, 무턱대고 추측한 건 아니었다.
“저번에 중국 수적들이 토설하길, 여송섬 남쪽 제도에는 회회인들이 살고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회회인들이 쓰는 그림 같은 글자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은 바 있었기에, 중국 수적 포로 및 후위함의 증언과 더불어 조합하면, 그 정체 모를 선단이 여송섬 남쪽 섬들 중에 세력을 갖추고 있다는 회회인들의 선단일 수도 있다는 추정이 충분히 가능했다.
그 확실하지 않은 추정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실로 확인할 수 있었다.
사로잡은 인도계 선단의 어느 선장이 한자를 제법 알아, 그를 통해 탐문한 결과, 그 정체 모를 세력이 여송섬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섬에 자리 잡은 회회인들임을 확인해 준 것이었다.
거기에 추가적으로 여송섬 남쪽 제도의 상황도 알 수 있었는데, 인도계 세력들이 회회인 세력들의 급격한 팽창에 계속 밀리고 있는 모양으로, 그들도 회회인들에게 쫓겨 톤도 왕국으로 도주하던 중이라고 하였다.
“이러다 나중에 탐라국이 이곳에 진출하면 회회인들과 다투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당장 우리가 걱정할 일은 아닐 걸세.”
벌써 해사가 ‘마닐라 만’으로 진입한 지 두 시진 가까이 지난 터였다.
정지 함대는 해사들이 만을 나서면 함께 북쪽으로 향할 것인 바, 회회인들과 다시 만날 일은 없다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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