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359)
요시시게가 호쿠리쿠도 가가국의 본가에 당도한 건 이와테 산을 떠난 지 딱 닷새만이었다.
이삼 일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는 거리였지만, 도중에 만나는 호쿠리쿠도의 영주들마다 그를 붙잡고 잠시라도 이야기를 나누길 청하는 바람에 잠깐 시간을 내주다 보니 지체된 탓이었다.
아무래도 요시시게가 이와테 산 요새를 단독으로 점령하는 데 성공하면서 누가 연합군을 주도하게 될지 뻔해지자, 다들 미리 도가시 가문에 잘 보이고자, 특히 가독을 대신하여 실질적으로 가문을 이끌고 있는 요시시게에게 잘 보이고자 한 것이다.
개중에는 요시시게의 발목을 잡던 자들도 있어 그로서는 절로 배알이 꼬이는 감정도 받았지만, 겉으로는 다 교언영색하며 화목을 다졌다.
아무리 주도권을 확보했다고 해서 지금 당장 오만하게 굴다가는 크게 경을 칠 게 분명한 바, 적어도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는 겸손과 자중을 마음에 새기고자 하였다.
“다들 만면에 화색이 돌더군요. 자기들이 한 짓은 생각도 못하는 모양입니다.”
“누구나 자기의 이득과 안위가 최우선이지 않느냐. 우리 또한 마찬가지지. 딱히 그들을 욕할 필요는 없다.”
“아무런 도전도 없이 이득과 안위를 원하는 걸 보고 이기적이라고 합니다.”
“필요한 도전인지를 모를 수도 있었겠지.”
“그걸 모른다면, 무능하다 해야겠군요.”
“후후.”
요시시게를 만난 가독 마시이게는 아들의 호쿠리쿠도 영주들을 향한 힐난에 실소하였다.
아직 젊어서인지 아니면 타고난 성품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들은 과감했고, 나쁘게 말하면 무모했다.
물론, 그것은 분명 아들의 도전 정신에 기인한 것임을 그는 알고 있었지만, 때로는 그 도전이 도박처럼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한데, 그 도박이 통했다.
탐라국의 병기를 따라잡겠노라 많은 자금을 썼고, 이와테 산의 요새를 정복하겠노라 가문의 군력 중 삼분지 이를 끌고 나갔다.
모두 무모하다 폄훼한 그 일이 오늘에 이르러 도가시 가문을 호쿠리쿠도에서 우뚝 세웠다.
“네가 이와테 산에서 너의 뜻을 이루었다는 소식은 먼저 들었다. 기쁘기 그지없구나. 한데, 아직 그곳에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을 터인데, 어찌 벌써 온 것이냐?”
가독이 아들을 향해 물으니, 아들이 이룩한 군공에 대한 기쁨 이전에 그가 지금 돌아온 이유에 대해 물었다.
“전령이 전하길, 에조치(蝦夷地)로 갔던 자들이 돌아왔다지요?”
도가시 가문에서는 가마쿠라후와의 싸움에도 불구하고 인원을 쥐어짜 내 에조치로 보냈었다.
그건 그저 탐방을 목적으로 한 일이었다.
“그 일 때문에 온 게냐? 그게 무슨 대수라고…….”
“그들이 에조인들 몇몇을 베고, 몇몇을 잡아 왔다 들었습니다.”
요시시게의 말에 마시이게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사들을 농락했으니, 응당 벌을 받아야지.”
“농락이요? 무슨 농락이 있었습니까?”
한데, 마시이게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요시시게로서는 어이가 없는 것이었다.
“고작 손가락질을 하고 노려보았다는 이유로 그리하였다는 겁니까?”
“어찌 그것을 두고 고작이라 할 수 있느냐. 에조인이 아니라 우리 영내의 농민이 그런 짓을 저질렀더라도 같은 벌을 받았을 것이다.”
마시이게의 당당한 대답이 들리는 순간, 요시시게의 얼굴은 일순 붉게 달아올랐다.
속내에서 터져 나올 뻔한 고함을 억지로 억누른 탓이었다.
감히 가독이자 아비를 향해 고함을 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답답한 세상에 대한 강력한 토로였다.
무사, 그 망할 족속들.
물론, 도가시 가문 또한 무사의 가문이었고, 그의 아비도 무사로서의 타성과 관습에 물들어 있었다.
그렇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무사를 무시한 자들을 즉석에서 처단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었다.
‘그게 진정 무시이고, 경멸이었을까.’
단지 명예에 손상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백성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권한은 요시시게의 눈에는 야만적인 것이었다.
막말로 그냥 내키는 대로 죽여 놓고, 모욕을 받았다고 핑계를 대면 어쩔 것인가.
아니, 설령 뭔가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게 오해였으면 어쩔 것인가.
이번 일에서도, 손가락질은 그냥 가리키는 행위였을지도 모르고, 노려보았다는 것도 그 무사의 주관적인 판단에 불과할 수도 있었다.
나아가, 손가락질을 하고 노려보았다는 게 사실이었더라도, 그 이유로 사람을 죽이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게 요시시게의 생각이었다.
생각해 보면, 고작 수십 명으로 이뤄진 무사 무리가 에조인들이 많은 곳에서 에조인을 베고, 납치하진 못했을 것이다.
작은 마을 같은 곳에서 행패를 부렸을 가능성도 농후했다.
요시시게는 마음속 분기에 에조치로 갔던 무사들을 추궁하고 벌해야겠다고 여겼다.
물론, 당대 화국의 일반적인 무가의 시선에서는 그 생각이야말로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요시시게는 참기 어려운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바로 옆에서 고려와 탐라국이 제도와 관습을 정비하여 쏜살처럼 앞으로 정진하고 있는데, 화국은 여전히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이제는 점점 더 쓸모없어질 무사들을 계속 높이 사고 있을 뿐이었다.
사실 요시시게는 탐라국이 구주에서 무가를 몰락시킨 방법 중 일부를 따라 하고자 마음먹고 있었다.
그 방법이란 무가로 들어가는 인재들을 나라에서 고용함으로써 군력을 증강시킴과 동시에 무가의 미래를 없애는 것이었다.
많은 자금이 필요한 일이지만, 더 큰 문제는 사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진정으로 무가를 지우기 위해서는 그들의 기반인 장원을 철폐하거나, 무가의 주요 수입원이랄 수 있는 전쟁에서 그들을 제외하는 방도가 추가되어야 했다.
하나, 어느 것도 호쿠리쿠도에서는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요시시게나 도가시 가문이 그렇게 하고자 하면, 도가시 가문을 따르는 무가들이 역심을 품을 것이고, 도내의 다른 무가들도 도가시 가문을 적대하거나, 봉기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요시시게는 아쉽더라도 길게 보고 무가의 미래를 서서히 줄이는 것에 만족하고자 하였으나, 당장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면 분기가 탱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님, 지난번에 제가 드린 말씀을 잊으셨는지요?”
요시시게는 애써 마음을 안정시키곤 말문을 열었다.
“무엇을 말하는 게냐?”
“데와국을 진정 얻고자 하신다면, 나아가 에조치마저 섭렵하고자 하신다면, 에조인들의 마음부터 얻어야 한다고 드렸던 말씀 말입니다.”
“그야 물론 기억하고 있다. 설마 우리 무사들이 경거망동한 에조인들을 벌한 것을 두고 그 말을 언급하는 게냐? 아서라, 무사들을 존경할 줄 모르는 자들이라면 굳이 마음을 얻어 무엇하랴. 차라리 다 죽이고 나의 백성들을 옮겨 살게 하는 게 나을 것이다.”
“그것이 진정 가능한 이야기인지요?”
“…….”
다 죽이고 에조인들이 혹여 품을 수 있는 반란의 싹을 완전히 도려낼 수만 있다면, 요시시게도 그 방법을 택했을 것이다.
탐라국이 이주에서 그러하였듯이.
요시시게가 탐라국의 이주 정복을 알게 된 건 최근의 일이었고, 아직 화국에서 그 일을 아는 자들은 극소수였다.
워낙에 요시시게가 탐라국의 행보와 사정에 관심이 많아 가능했던 일로, 그는 탐라국의 이주 정복을 전해 듣고 언젠가부터 꿈꾸기 시작했던 에조치로의 진출을 구체화시키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나, 호쿠리쿠도의 힘으로 북방 도처에 기거하고 있는 그 많은 에조인들을 죽이는 건 불가능했다.
탐라국이 이주섬에서 그런 과격한 방법을 택할 수 있었던 것도, 그곳에서 아군으로 삼을 수 있는 세력이 따로 있었던 덕분이었다.
그 강대한 군력의 탐라국도 쉽게 할 수 없는 일을, 고작 호쿠리쿠도의 영주 연합이 이주섬보다 더 세력이 월등한 에조인들을 무차별 탄압하는 건 스스로 망하길 작정한 셈이었다.
“아버님, 지금 당면한 싸움의 목적은 카마쿠라후나 북조와의 싸움에 있지 않습니다. 데와국(出羽國)을 얻고, 나아가 에조치를 노리는 것이 진정한 목적입니다.”
“그걸 내가 모른다고 여기느냐?”
“아신다면 에조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나더러 그 털보 놈들에게 아첨이라도 하란 게냐?”
“필요하다면 해야지요. 만약 에조인들의 협조를 얻지 못한다면 특히, 그들의 적대를 받는다면, 데와든 어디든 얻어도 진정으로 얻은 게 아닐 것입니다.”
“그리한다면, 우리 가문은 화국에서 얼굴을 들지 못할 것이다.”
“아니지요. 데와를 얻어 더 강대해진 우리 가문의 힘 앞에 모두가 고개를 조아리게 될 것입니다.”
“…….”
요시시게의 단호한 대꾸에 마시이게는 문득 눈살을 가늘게 뜨며 아들을 잠시 바라보았다.
아들도 자신의 주장을 굽힐 생각이 없는 양 아비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으니, 마시이게는 아들과의 눈싸움 아닌 눈싸움 끝에 묻지 않을 수 없는 게 있었다.
“대체 어디까지 보고 있는 게냐?”
“이미 말씀드린 대롭니다. 일단은 그렇지요.”
“일단은? 그다음도 있다는 말이냐?”
“그다음은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겠지요. 다만, 호쿠리쿠도 제1의 가문이 남조 제1의 가문이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다시 그다음에는…….”
요시시게는 그쯤에서 말을 줄였으나, 그의 아비는 이미 들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호쿠리쿠도 제1의 가문이 남조 제1의 가문이 될 수 있다면, 남조 제1의 가문이 화국 제1의 가문이 되는 것도 단지 꿈은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도가시 가독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아들이자 차기 가독의 꿈을 위해 짐승 같은 에조인들을 대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때문이기도 했고, 아들이 너무 큰 꿈을 가진 것에 대한 우려와 장차 가독이 되어 가문을 이끌 자라면 그 정도 포부는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대견함이 뒤엉킨 탓이기도 했다.
“저는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에조치로 갔던 자들을 추궁하여 그들의 과실을 따질 것이고, 피해를 입은 에조인들에게 사과와 보상을 할 것입니다. 부디 이 일은 소자에게 맡겨 주십시오.”
가독은 아들의 뜻을 막을 수 없었다.
* * *
응천부의 황성은 처음 지어진 이래로 증축에 증축을 거듭하고 있었으니, 커져만 가는 그 웅장함과 복잡함은 때론 성내에 저잣거리의 뒷골목만큼 은밀하고 음침한 공간을 만들기도 했다.
“알아보았나?”
“일단 태자 전하의 분부가 있어 표면상으로는 자중하는 기색입니다. 전하께서 동야가 섣부른 짓을 했다며 못마땅해 하시니, 어찌 경거망동하겠습니까.”
“그래야겠지. 한데, 표면상으로는 그렇다는 게 의미심장하구나.”
“다만, 왕 태감을 비롯하여 몇몇 태감들이 은밀히 모이길 반복하고 있습니다.”
“왕강 태감이?”
달이 휘영청 떴지만, 아니, 오히려 밝은 달빛 탓에 커다란 전각의 기둥이 맞물린 아래는 몹시 어두웠으니, 그 그늘 속에서 마삼보는 동기 환관인 유섬을 마주하고 있었다.
“왕 태감이 무슨 일로 다른 태감들을 불러 모으는지는 알기 어렵겠지?”
“그것이…….”
유섬은 몹시 난처한 표정을 지었고, 삼보는 미안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
“아니, 내가 미안하다. 너에게 너무 위험한 일을 강요하는 꼴이 되었구나.”
“마 태감께서 제게 베푸신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면 어찌 위험을 무릅쓰지 않겠습니까. 다만, 왕 태감의 곁에 저같이 낮은 자가 가까이 다가가기가 어려워 방도가 궁할 뿐입니다.”
둘은 동년배였다. 같은 날에 궁에 들어오기도 했다.
하나, 삼보와 유섬의 지위는 꽤 큰 차이가 있었다.
삼보는 일찌감치 태자의 측근이 되었고, 얼마 전에는 기어이 태감의 지위를 하사받았다.
너무 적은 그의 나이 탓에 다른 태감들 사이에 불만이 있었음에도 태자는 기어이 그 뜻을 관철시켰다.
그에 비해, 유섬은 여전히 말단의 환관이었다. 다른 귀인들을 모시는 환관조차도 되지 못한 채, 다른 태감의 수발을 드는 환관이었으니, 굳이 따지자면, 삼보와 유섬은 주인과 종의 차이만큼이나 격이 달랐다.
하나, 그렇다고 삼보에게 극진한 유섬의 태도가 그 지위의 차에서만 기인한 건 아니었다.
황성의 초년 시절에 몰매를 당해 방치되었던 유섬을 삼보가 극진히 보살펴 살려 준 일이 있었으니, 그때부터 유섬은 삼보를 구명의 은인으로 여기고 있었다.
“혹여나 기회가 있어 무엇이라도 들을 수 있다면 모를까,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 내가 너를 동야에 거하게 한 건 맞지만, 그건 그곳이 네가 있기에 편한 곳이라 그런 것이지, 다른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러니 부담을 느낄 필요도 없다.”
“태감의 뜻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너무 걱정 마십시오.”
오래 있을 수 있는 처지는 아니기에 유섬은 그쯤에서 삼보에게 인사를 하고 물러갔다.
지붕의 그늘 아래서 멀어져 가는 유섬을 보며 삼보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그는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으니, 정녕 그를 동야에 거하게 하면서 그저 그의 편리만을 따졌느냐는 물음이었다.
솔직히 아니었다.
언젠가 그를 통해 동야에 대해 무언가 알아낼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상은 충분히 했었으니, 일말이나마 그를 세작처럼 여기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다만, 이렇게 일찍 유섬의 귀를 빌리고 싶은 상황이 생길 줄은 미처 몰랐을 뿐이었다.
“왕강 태감…….”
삼보의 입에서 유섬으로부터 전해 들은 태감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왕강 태감은 황성 내 전체 환관들 중 가장 고령에 속하는 자로, 위계질서가 분명한 환관 사이에서 서열로 세 번째쯤 되는 자였다.
그는 일찌감치 소총관을 따라 태자를 모셔 온 바, 태자 전하께서는 그를 가장 믿는 자들 중 하나로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가 동야의 수장이 된 이유였다.
물론, 동야는 일종의 별칭이나 가칭일 뿐, 내관부에 정식으로 속한 기관은 아니었다.
하여, 공식적으로 왕강 태감은 그저 동야에 거하는 태감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하나, 그는 태자 전하께서 내려 주시는 내탕금을 통해 태자 전하의 특명을 수행하고 있었으며, 동야는 궁극적으로 왕강 태감의 지휘에 따라 태자 전하의 명을 수행하는 곳이었다.
‘왕강 태감은 무슨 생각인 것일까. 단지 작금의 사태를 무마하기 위한 모임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일까.’
왕강 태감의 태자 전하에 대한 충심은 의심할 바가 아니었다. 그건 삼보도 완전히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오히려 그래서 삼보는 우려하고 있었다.
전에 태자 전하께 만약 동야와 같은 조직을 얻으신다면, 마냥 믿지 말고 충분히 경계해야 할 것이라 조언을 드린 바가 있었으니, 그건 동야와 같은 조직이 배신할 것을 염려해서가 아니었다.
진정 우려해야 할 건 과잉 충성이었으니, 주인의 안전을 지키는 맹견이 주인의 친구마저 물어 버리는 꼴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금 동야도 그런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지금 문제가 된 연왕부와의 충돌 또한 태자 전하의 명에 의한 것이 아닌, 동야의 자체적인 판단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그 동기가 충성일 건 분명했다.
태자 전하의 보위에 가장 위협이 되는 연왕부를 감시하고자 함이었을 테니까.
하나, 그 결과는 오히려 숨죽이고 있던 ‘고슴도치’를 건드려 가시를 돋치게 만들었다.
삼보는 쓴 입맛을 다시며 걸음을 옮겼다.
디디는 걸음에 맞춰 그의 마음속에 걱정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어쩌면 진정으로 걱정해야 할 것은 연왕부와의 갈등이 아닐 것이다.
정말 큰 걱정거리는 동야 그 자체에 있었다.
충성에 기반한 것일지라도 죄와 실이 있다면 마땅히 합당한 벌이 있어야 하는데, 이번 실수 때문에 동야가 받은 벌은 그저 태자 전하의 꾸중뿐이었다.
삼보도 태자 전하께 동야를 벌하라 간하지 못했고, 연왕부도 그 일에 대해 공식적으로 묵인하고 있는 바, 태자 전하께서 동야에 속한 태감들을 벌함으로써, 이 일이 바깥으로, 정확히는 천자의 귀에 들어갈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었다.
또, 태자 전하께서 어지간한 일로는 동야를 포기하거나, 동야의 힘을 약화시키는 결단을 내리지 않을 것임을 아는 탓이기도 했다.
애초에 동야 자체가 태자 전하의 필요함에 의해 생성된 것인 만큼, 그 필요성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태자 전하께서도 함부로 동야을 향해 회초리를 들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와 같은 상황은 두 가지 큰 우려를 낳고 있었으니, 하나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동야와 같은 조직이 태자 전하나 왕실의 제어조차 뿌리칠 정도로 독단적인 단체가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작금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더 큰 무리수를 놓는 것이었다.
어느 쪽이든 아직은 삼보 혼자만의 힘으로 대책을 세우기는 어려운 걱정거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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