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363)
임신년에서 계유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은 아마도 탐라국과 고려의 운명이 본격적으로 분기하는 기점이었을 것이다.
아니, 비단 고려를 넘어 동아시아 전체의 형세가 전격적으로 변모하는 시간이었다.
그 변화의 시작은 탐라 익문대였으니, 익문대가 준비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지 채 두 달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어이, 내 월봉이 얼만 줄 아나?”
“뭐, 엄청 많을 거라는 건 알고 있습죠.”
부대장(副隊長) 선구의 뜬금없는 물음에도 부하인 광호는 그러려니 하며 답하였다.
“그래, 엄청 많지. 대신청장들보다도 많을 거야. 근데, 근데 말이지!”
“…….”
“그 월봉을 내가 제대로 본 적이 없어. 절반은 전당에 숨겨 둬야 하고, 나머지는 모두 내 마노라 손에 들어가지. 그리고 나는 이 먼 곳에서 쓰레기나 뒤지고 있고 말이야. 이거 뭔가 잘못된 것 같지 않냐?”
“흐흐, 난 또 뭐라고요.”
“웃어? 이 심각한 사안에 웃음이 나와?”
“그럼, 울어요? 부대장 사모님이 돈을 막 탕진하시나요, 아니면 전당에 숨겨 놓은 돈을 못 찾을 것 같으시나요? 둘 다 아니잖아요? 하면, 그 많은 월봉이면 똥물을 푸라고 해도 할 만 하죠.”
“어? 이 자식, 제법 설득력있네.”
“그러니까 그만 투덜대시고, 얼른 이 쓰레기들을 처리하자고요. 조금 있으면 동채 어르신이 한 무더기 더 가져올 거잖아요.”
“에잉…….”
연왕부가 위치한 연경의 외곽에는 본디 외관부에서 쓰던 안가가 있었으니, 지금은 익문대가 받아서 쓰고 있었다.
3개월간의 인선 및 조직 준비를 마친 후, 다시 반년 간의 대원 훈련을 거쳐 본격적으로 활동에 들어간 익문대는 다섯 개의 부대(附隊)로 나뉘어 있는데, 각 부대에 속한 대원들도 자기 부대 외에 다른 부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다만, 동채와 선구가 각각 대장과 부대장인 제1 부대가 연왕부에 배정된 걸로 볼 때, 각 부대별로 주요 나라 및 지역에 배정되었음이 분명했다.
동채와 선구는 본디 어사대에 속해 있었으나, 익문대의 비밀스러운 창설과 함께 자리를 옮기게 되었으니, 아무래도 어사대나 익문대나 그 활동의 방식에 있어 그나마 유사한 점이 많은 탓이었다.
사실 어사대에서 오래 활동한 동채와 선구는 그 인적 사항의 보안을 절대 유지해야 하는 어사로서 신분이 많이 노출된 탓에 최근에는 어사대의 일반 관리가 되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던 차에 익문대의 섭외(?)를 받게 되니, 안 그래도 서류나 처리해야 하는 일반 관리직 생활에 암울해 하던 그들로서는 오히려 반가운 일이었다.
어사로서는 많이 노출된 그들이지만, 국외 활동을 하게 되는 익문대원으로서는 별 상관이 없었다.
애초에 국외에서는 어사처럼 얼굴을 가리며 활동할 수는 없으니.
그리하여 익문대 총대장이라는 차현유 현 비서원 주무관이자, 전 외관대신을 도와 익문대의 창설을 돕고, 둘이 함께 연왕부를 담당하게 되니, 내심 국외에서 고려를 위해 멋지게 활동하리라 기대마지 않았었다.
한데, 정작 연왕부에서의 생활은 상당히 무료한 것이었다.
고려 상인으로 위장하고 있긴 하지만, 실제로 상행위를 하는 건 진짜 상인들이었고, 익문대원들은 안가에 틀어박힌 채, 외관부에서 전수받은 정보원들의 소식을 기다리는 게 전부였다.
좀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싶었기에, 그들에게 내려진 방침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동채와 선구가 찾은 방법이 쓰레기 확보였다.
연왕부에서는 매일 상당량의 쓰레기가 나오는 바, 그것들을 빼돌려 살핌으로써 연왕부의 내부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고, 그를 위해 필요한 건 연왕부의 쓰레기 일꾼을 잘 포섭하는 게 전부였으니, 권력자와의 임의 접촉을 막는 익문대의 방침에 어긋나지도 않았다.
연왕부의 다른 관부는 물론 정보기관인 서창의 보안과 체계도 아직 제대로 무르익지 않아, 중요한 문권조차도 일반 쓰레기와 함께 배출되는 허점을 노린 것이었다.
그렇게 처음 구상했을 때는 상당히 좋은 방법이라고 여겼는데, 막상 연왕부의 쓰레기를 빼돌리기 시작하자, 참으로 고역임이 드러났다.
온갖 잡물에 오물이 뒤섞인 쓰레기를 뒤적거리는 것 자체가 할 짓이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양도 상당히 많고, 소각되기 전에 잠시 빼돌린 터라 시간이 부족하여, 지휘관급인 동채와 선구도 직접 쓰레기 뒤지기에 뛰어들어야 할 판.
벌써 보름이 넘게 하고 있는 짓이었다.
선구와 광호를 비롯하여 여러 대원들이 열심히 쓰레기를 뒤지며 쓸 만한(?) 것들을 분류하고 있을 때, 안가로 동채와 몇몇 대원들이 들어왔으니, 그들은 커다란 포대를 지고 있었다.
“아이고, 또 들어오네.”
동채가 쓰레기 자루와 함께 돌아올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선구는 절로 투덜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본 동채는 실소하며, 쓰레기 포대를 뒤집어 안 그래도 많이 쌓여 있는 쓰레기 더미를 더 크게 만들었다.
“뭐, 좋은 건수라도 찾았나?”
“그 왕씨 첩에 대한 문권은 한 장 더 찾았지.”
“그거 말고는?”
“글쎄다, 일단 서류들은 다 모아 두었으니, 나중에 정리하다 보면 뭐라도 나올지도 모르지. 그런데 말이야, 그 왕씨 첩…….”
선구가 입을 열자, 동채는 손사래를 치며 말을 막았다.
“그 이야기는 하덜 말게. 듣기에 몹시 거북해.”
“어허, 어찌 이 바닥 생활을 하면서 거북하고 말고를 따지는 겐가? 왕씨 첩은 언젠가 연왕을 구워삶을 만한 건수가 될 수 있거늘.”
“그건 필요할 때 알면 되니, 지금은 별로 알고 싶지 않네.”
“흐흐, 은근히 숙맥이라니까.”
선구는 실실 웃으며 동채를 놀렸지만, 동채는 못 들은 척하곤 다른 곳으로 옮겨 쓰레기를 뒤지기 시작했다.
선구가 언급한 ‘왕씨 첩’은 연왕의 귀부인이었던 왕씨 여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지금은 연왕의 형인 진왕(秦王) 주상의 곁에 있었다.
아마 연왕이 주상의 서안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뇌물로 넘어간 모양인데, 그 왕씨 귀부인을 연왕이 몹시 애정했던 모양이다.
왜냐하면, 연왕의 정보 기관인 서창에서 나온 쓰레기들 중에 왕씨 귀부인의 동향을 살핀 흔적이 많이 나왔는데, 연왕이 그녀를 주상에게 보낸 이후에도 그녀를 몹시 염려하여 서창으로 하여금 살펴 보고하도록 지시한 것 같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그녀의 상황이 연왕의 염려가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서창의 보고에 따르면, 왕씨 부인은 사실상 학대를 받으며 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왕씨 부인이 대놓고 괴롭힘을 당하는 건 아니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주상의 아낌을 받으며 잘살고 있었다.
하나, 그녀의 침실 동향(?)에 대한 보고를 보면, 주상의 성적 취향을 변태라고 단정하기 충분했으니, 모르긴 몰라도 그 보고를 받은 연왕의 심정이 참담할 듯했다.
‘내가 보기엔, 주상의 취향 자체가 변태적인 면모도 있겠지만, 아우 주체에 대한 시기와 그 아우를 모셨던 여인에 대한 가학감이 더해져 그런 식으로 드러난 것임에 틀림없어.’
노골적인 묘사마저 과감하게 표현된 왕씨 부인에 대한 보고 문권을 살펴보며 선구가 분석했던 내용이 그러했으니, 다들 일리가 있다 여겼다.
어쨌거나 쓰레기 뒤지기 작전은 그렇게 나름의 성과를 얻고 있기는 했다.
하나, 당장 명나라의 정세에 대한, 혹은 그에 영향을 줄 만한 사안에 대한 정보는 아직 크게 얻지 못하고 있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럼에도 쓰레기 뒤지기는 계속되었고, 마침내 쓰레기 속에서 보석을 찾을 수 있었으니, 쓰레기 속 종잇조각들에 담긴 내용을 정리한 문권을 다시 보던 동채가 통찰력 있게 발견한 것이었다.
그 소식은 주 요동국 탐라판무청을 통해 탐라공에게로 직행하였다.
* * *
범섬에 등탑이 세워졌다.
총 높이 27미에 이르는 거대한 탑이었다.
사실 등탑은 탑(塔)이라기보다는 당(堂)이라고 불러야 옳았다.
당대에서 탑이라 함은 석가탑(釋迦塔), 즉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건물을 뜻하는 바, 사리를 모시지 않고 그저 불상을 둔 등탑은 법당(法堂)에 가까웠다.
다만, 이미 탑이라는 말의 용도가 석가탑을 넘어, 높고 좁은 건물을 의미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기에 등탑이라는 표현이 쓰여도 크게 이상할 건 없었다.
“멀리서 볼 때도 그랬지만, 아래에서 보니 더욱 웅장하군.”
범섬 등탑의 아래에서 몽주가 수행원들과 더불어 등탑을 올려다보니, 절로 감탄이 나왔다.
단지 높이 때문이 아니었다. 사실 등탑은 기념할 만큼 높은 건물도 아니었다.
고대로부터 중세에 이르는 동안 인류는 의외로 크고 높은 건물들을 많이 세웠다.
비단 피라미드 같은 불가사의급 대역사는 차치하더라도, 실제 사용하는 건물의 형태로서도 수십 미터급 높이를 가진 건물은 많았다.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이 48미터의 높이를 가지고 있고, 피사의 사탑은 55미터를 넘는다.
몽골의 침입 때 불타 버린 고려의 황룡사 목탑도 건물높이만 68미터에, 꼭대기 첨탑까지 더하면 80미터에 가까웠고, 지금도 대형 사원에서 3, 40미터 급 목탑을 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나, 그럼에도 몽주가 범섬 등탑에 감탄한 건, 심지어 현대의 마천루들을 아는 그임에도 감탄해 마지않은 건, 등탑의 건설을 통해 탐라의 건축 기술이 다시 한 번 진일보하였기 때문이었다.
당대까지의 대형 건물이란 결국 돌을 쌓거나 나무를 세워 만든 것들로, 그 한계가 명확할 수밖에 없었다.
내구성이 떨어져 오래 유지되기 힘들거나, 오래 유지할 수 있더라도 너무나 많은 시간과 인력이 필요하여 국가적 대역사가 아니면 짓기 어렵거나.
그에 비해 등탑은 이미 탐라국에서는 보편적으로 쓰이는 세망을 이용하였으면서도, 대형 지진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상 그 자리에서 반영구적으로 버틸 수 있게 지어졌으니, 바로 ‘철근 콘크리트 공법’으로 지어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철근 콘크리트 공법이 등탑 건설에 처음 쓰인 건 아니었다. 높이 15미터에 이르는 공택의 건설에 먼저 쓰인 바 있었다.
하나, 공택은 일반적인 건물이라기보다는 성처럼 튼튼하게 만들어진 탓에 그 안에 철근 몇 줄이 들어간다고 해서 큰 의미는 없었던 것에 반해, 등탑은 철근을 통해 콘크리트의 부족한 인장력을 제대로 보강함으로써 어찌 보면 다소 위태로운 구조인 등탑의 내력(耐力)을 크게 끌어올렸으니, 철근 콘크리트가 아니라면 지을 수 없었을 건물이었다.
“기단부(基壇部)를 이루는 법당과 탑신부(塔身部)의 하부는 철근 구조로 가닥을 이룬 4개의 대형 세망 기둥을 세웠고, 탑신부의 상부, 즉 불상층(佛像層)은 3개의 강철 기둥과 3개의 철근 세망 기둥을 엇갈려 두었습니다. 또,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불상의 내부에 강심(鋼心)을 세워 등화부(燈火部)의 무게가 불상에 전이되지 않도록 하였으며, 그 아래 탑신부 하부 내부에 강심에서 전해진 무게가 사방의 기둥으로 전달되도록 강철 축대를 비스듬히 연결하였습니다. 저희가 판단하기로 등화부에 50통의 무게가 놓인다고 하더라도 이 등탑은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실물을 보며 들으니 그 보고가 참으로 달콤했다.
몽주는 환하게 웃으며, 등탑을 지은 장인들을 치하하였고, 기단부를 이루는 법당의 내부로 들어갔다.
법당의 내부는 등탑의 기단부라기보다는 문자 그대로 어느 사원의 큰 법당처럼 느껴졌으니, 이미 금도장된 큰 불상이 놓여 있었고, 좌측 아래에 화덕진군의 입상이 서 있었고, 불상의 앞에 사해용왕신 오광(敖廣), 오윤(敖潤), 오흠(敖欽), 오순(敖順)이 나란히 있었다.
불교 사원의 법당이나 다름없는 곳에 부처상은 하나뿐이고, 무속신앙의 신이 더 많은 게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었지만, 부처 아래 모인 작은 신이라는 점에서 보자면 당대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모습이었다.
다만, 부처 아래 놓인 무속신이라고 해도, 화덕진군이 부처의 좌측에 당당하게 서 있는 것에 비해, 사해용왕신들은 한쪽 무릎을 꿇고 허리와 머리를 숙인 모습으로 있었으니, 그 서열이 어떠한지도 엿볼 수 있었다.
몽주는 그 상들을 바라보며 재미와 더불어, 자신으로 인해 화덕진군의 신앙이 높아진 것이 엿보여 민망함을 느끼면서 법당의 오른쪽 문으로 나갔다.
그 문을 나서면 탑 내부를 따라 오르는 계단이 시작되었다.
계단을 따라오르는 도중에 바깥 벽면으로 틈틈이 창이 놓여 있었으니, 유리창에 가로세로 두 줄의 격자를 대어 방풍력을 높인 창이었다.
그 창은 탑신부 하부에 뻗어 있는 처마의 사이사이에 놓여 있었으니, 창이 보일 때마다 점점 높아지는 눈높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계단을 오르는 게 제법 힘이 들어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지만 말이다.
그렇게 3층을 올라가면 탑신부의 상부를 이루는 불상부에 이르렀다.
등탑의 제일 하부인 법당이 한 변이 15미 정도 되는 정사각형을 이루고 있는 것에 비해, 위로 갈수록 좁아져 불상부의 면적은 한 변이 9미 정도였지만, 그래도 불상을 감상하기에 충분한 여유가 있었다.
대리석으로 만든 불상은 이제껏 고려나 동아시아권에서는 볼 수 없는 형식의 불상이었다.
입상이니, 좌상이니, 와상이니 하는 것을 넘어 구도는 물론 표현법 자체가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아이고, 부처님…….”
누군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 것처럼, 탑신부의 불상은 감히 표현컨대, 불쌍한 모습이었다.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어깨에 등화부를 지고 있었고, 목과 양팔로 힘겹게 지탱하고 있는 모습이었으니, 마치 그리스 신화 속 티탄 아틀라스를 연상케 하였다.
물론, 그리스 신화를 알 리 없는 탐라의 백성들에게 그 모습은 만인의 구도를 위한 부처의 고행과 고독을 상징했고, 아마도 뱃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안전을 위한 부처의 고생을 연상케 할 게 분명했다.
불상부의 지붕이자, 등화부의 바닥에 해당하는 곳에는 처마가 상당히 길게 뻗어 있었다.
구조적으로 보면 탑을 가분수 형태로 만들고, 바람의 영향도 많이 받게 되는 불리한 형태지만, 빗물에 약한 대리석을 보호하기 위해 일부러 그리 만든 것이었다.
무릎 꿇은 불상은 홍로현 방향으로 향해 있었고, 그 불상의 뒤쪽에는 등화부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같은 곳에 도르래를 통해 물건을 끌어올릴 수 있는 장치도 마련되어 있었다.
불상의 높이가 6미가 넘는 탓에 불상부의 높이도 그만큼 높았고, 따라서 사다리의 길이도 6미터가 넘어, 오르기에는 다소 위태로웠지만, 몽주는 기어이 올라가 등화부에 섰다.
그곳의 높이는 24미 정도.
등탑이 놓인 범섬의 높이까지 더하면 거의 50미였다.
그곳에서 둘러보는 바다의 모습은 홍로현 포구나 배 위에서 볼 때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조, 조심하십시오.”
몽주가 장차 석탄을 태워 불길을 올릴 등화구(燈火臼)를 살피다가 몸을 돌려 등화부의 서쪽 가장자리로 다가가자, 신료들이 깜짝 놀라 만류하였다.
하기야 그곳에서 추락하여 머리부터 떨어지는 일이라도 벌어진다면, 어지간해서 죽지 않는 몽주도 즉사할 게 분명했다.
물론, 몽주도 아무 생각 없이 가장자리로 걸음을 옮긴 건 아니었다.
불상부와 마찬가지로 등화부의 기둥 아래쪽에는 난간이 설치되어 있어 크게 경솔하지 않는 이상 떨어지기는 어려웠다.
“너무 걱정 말게. 잠시 풍광을 보며 생각을 하고 싶었을 뿐이야.”
그래도 걱정인지 신료들은 호위군병들로 하여금 주군의 바로 곁에서 여차하면 옷자락을 잡아채게 하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찬바람 속에서 몽주는 기어이 혼자만의 상념 속에 빠져들었다.
요사이 머릿속이 영 복잡하였으니, 연왕부에 잠입한 익문대로부터 온 소식 탓이었다.
‘정말 독살이 진행 중인 겐가.’
연왕부의 익문대로부터 전해 온 소식은 분명 독살의 진행을 가리키고 있었다.
익문대가 빼돌린 서창의 정보 중에 동야의 태감 몇몇이 주동하여 수은과 생금을 몰래 입수 중이라는 정보가 있었다.
왕부에서 수은과 생금을 입수하는 건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아주 있기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생금은 몰라도, 수은은 약재로 쓰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하나, 동야와 같은 정보기관이 그 두 물산을 비밀리에 수입하는 건 꽤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특히 수은과 생금을 동시에 섭취하게 되면 위장을 크게 해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단박에 대량으로 섭취하게 할 필요도 없다. 미량으로 꾸준히 투여할 수만 있다면 충분히 효과가 있을 것이고, 누구도 독살을 의심하지 못한 채 그저 위장에 생긴 병환으로 죽는다 여길 것이다.
‘관건은 그 독살의 대상이 주원장이냐는 거지.’
어차피 몽주가 명나라에서 독살을 우려하는 대상은 몇몇에 불과했다.
홍무제, 태자, 연왕 정도.
태자의 손발이라는 동야가 입수한 수은과 생금으로 정말 독살을 시도한다면, 그 일 순위 후보는 연왕일 것이다.
하나, 몽주는 홍무제가 대상일 가능성도 연왕 못지않게 높다고 여겼다.
아니, 동야가 태자의 집권을 위해 누군가를 죽이고자 한다면, 오히려 당금의 천자가 죽는 게 더 효과적일 것이다.
주원장이 죽는 그날이 태자가 새로운 천자가 되는 날일 테니까.
‘독살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새로이 계획을 세워야 하는 걸까.’
이제껏 명나라에 대한 여러 대책을 세움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전제 중 하나는 주원장이 역사대로 1398년이나 그 즈음까지 사는 것이었다.
특히 연왕에 대한 지원을 통해 명나라의 분열을 노리는 계책에 있어서 주원장이 장차 5년 정도 더 사는 건 반드시 필요한 전제 조건이었다.
그래야 그사이에 여러모로 준비를 할 수 있고, 연왕부의 힘도 더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한데, 만약 가까운 시일 안에 주원장이 죽는다면, 솔직히 연왕을 지원하여 명나라를 분열시키려는 시도는 해서는 안 될 짓이었다.
준비도 마치지 못했고, 연왕도 충분히 힘을 기르지 못할 것이므로.
‘한데, 독살이라는 주장이 통하기만 한다면 상황은 또 달라질 수 있다는 거지.’
힘의 배분만을 생각하면 주원장이 빨리 죽을수록 연왕부의 독립이 성공할 가능성은 더 줄어들지만, 만약 주원장의 죽음이 독살에 의한 것이고, 태자 측의 음모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이 통하기만 한다면, 단지 힘의 배분만을 생각해서는 안 되었다.
그건 곧 태자의 천자 등극에 대한 정통성이 뿌리째 흔들린다는 뜻이고, 달리 말하면 반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이야기이며, 연왕부의 독립 시도에 호응할 세력도 늘어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물증까지도 필요 없어. 그냥 정황만 설득력 있으면 태자는 큰 타격을 입게 될 거야.’
이미 동야가 수은과 생금을 비밀리에 입수했다는 증거가 서창의 손안에 있었다.
여기에 만약 주원장의 사인이 보인 현상이 수은과 생금의 섭취로 인한 부작용과 상통하는 것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정황상 큰 설득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주원장이 언제 죽느냐, 만약 생각보다 빨리 죽는다면 그 사인이 정황적으로 독살이냐 아니냐에 따라, 명나라의 상황은 크게 뒤바뀔 것이 분명했다.
‘문제는 어느 쪽으로 준비를 하느냐는 것이지. 양쪽을 모두 준비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주원장이 곧 죽는 경우와 4, 5년 뒤에 죽는 경우에 대한 대비는 시작부터 다를 수밖에 없었다.
먼저 생기는 경우라고 해서 주원장이 곧 죽을 때에 대비하는 건 그만큼 많은 국력을 소모하게 할 것이고, 그에 들인 시간과 노력만큼 장기적인 대책에 손해를 끼칠 것이다.
“후우, 이것 참 점괘라도 보고 싶군!”
몽주가 혼잣말치고는 꽤 큰 소리로 말을 뱉자, 근처에 있던 신료들 중에서도 그 의미를 눈치채고 함께 고심하는 기색을 보이는 이들이 있었다.
이미 익문대가 보낸 정보에 대해, 관련 대신 청장들을 불러 한 차례 논의한 바가 있었다.
물론, 아직은 누구도 정답은커녕, 자신의 의견도 확립하지 못한 상태였다.
등탑의 점등식은 계유년 정월 초하루에 있었으니, 수많은 인파들의 축하와 기원 속에서 수십 미 높이에 붙은 커다란 불길이 탐라의 남해를 인도하기 시작했다.
직접 첫 등화에 임한 몽주는 자신의 선택이 그 등탑처럼 탐라의 미래를 밝히길 기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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