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365)
계유년(1393년) 정월, 한겨울치고는 제법 따뜻한 날씨였지만, 운항 중인 배 위를 스치는 바람은 제법 매서웠다.
“아까 만났던 무라카미 선장이 말하길, 십 년 전에 비해 세토 내해를 운항하는 배의 수가 열 배는 늘었다고 합니다.”
내해에 진입한 직후에 조우한 무라카미 수군과 잠시 접선했을 때 들은 말이었다.
“열 배씩이나?”
“어림잡은 숫자겠지만, 그만큼 많아졌다는 건 맞는 말이겠지요.”
“하기야 출해상시의 가등 부시장도 요새 내해가 상당히 혼잡하니 항해에 조심하라 하더군. 관문 해협(간몬 해협)도 정말 붐볐지.”
“왜국이 분열되어 육로를 이용하는 것이 어려워진 만큼 해로가 더더욱 선호되겠지요. 특히, 돈만 지불하면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내해에 접한 왜국의 지방은 더욱 그렇고요.”
아닌 게 아니라, 지금까지 내해를 가로지르면서 그리고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도 사방 여러 곳에서 다양한 국적(?)을 가진 배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다다라 상사의 배들이 많이 보이는군.”
시코쿠의 어느 포구 쪽에서 내해로 진입하는 배에 달린 깃발을 보고 말하는 것이었으니, 이미 앞서도 여러 번 다다라 상사의 배를 본 바 있었다.
“동래시장의 상업회사는 상당히 번창하는 모양입니다. 주군의 지원 덕이기도 하고, 동래시장의 부인에게 상재가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다다라 상사의 사장이며, 전 회사청장이었던 다의홍은 지난 인사 개편과 함께 동래시의 시장으로 부임하였었다.
“동래시장의 부인이라면 그……?”
“하하하. 네, 풀지 못한 야망을 회사에 싣는 모양입니다. 물론, 주군께서 구주와 왜국 간의 교역에서 탐라상단이 한발 물러나도록 하여, 다다라 상사가 끼어들 여지를 주지 않았다면 이룰 수 없는 일이었겠지요.”
탐라상단은 구주와 탐라 간의 교역, 그리고 구주 내부의 수운에서는 여전히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었지만, 구주와 왜국 간의 교역에서는 한발 물러나 있었다. 그 또한 충성을 증명한 다의홍에 대한 주군의 선물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이었다.
그리고 그건 나랏일로 구주를 떠나 있는 바람에 남편을 대신하여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다의홍의 부인인 왕시라의 기회이기도 했으니, 그녀는 회사를 크게 일으켜 세우는 것으로 가슴속 응어리를 풀고 있었다.
“어찌 되었든 탐라의 무력과 상업이 이렇게 왜국 깊숙한 곳까지 뻗어 있는 건 우리로서는 나쁜 일이 아니지.”
“당연히 그렇지요.”
“그래도 조심하세. 우리의 임무는 여러 목표를 동시에 노리는 것이고, 그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네.”
“명심하고 있습니다.”
평범한 탐라의 관리처럼 보이는 두 사내는 잠시 시선을 마주하며 각오를 다졌다.
그들은 외관부의 주무관들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익문대 제2 부대의 대장과 부대장이기도 했다.
각각 북조와 남조의 실권자를 만나게 될 그들의 임무는 일단 대사관 설치를 논의하고, 합의하는 것이었다.
왜국에 대사관을 설치하는 것은 범중화 질서에 휩쓸려 있는 동아시아에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시발점이 될 것임이 분명했으니, 익문대에 소속되기 전에도 외관부의 관리들이었던 그들이 주군의 뜻에 따라 오래전부터 연구하고, 준비해 왔던 일이었다.
물론, 왜국과의 대사관 설치는 비단 외교의 새로운 장을 여는 의미에서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으니, 그건 꽤 위험한 반응을 초래할 수도 있었다.
* * *
당대 왜국 막부의 장군(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미츠는 어느덧 삼십 대 중반의 사내가 되어 있었다.
역사대로라면 남북조를 일통한 업적을 세우고 출가를 빌미로 배후로 물러나 책임지지 않는 자리에서 실권을 휘두를 준비를 하고 있었을 테지만, 당대의 요시미츠는 전혀 유유자적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아니, 유유자적하기는커녕 큰 위기감에 짓눌려 있었으니, 한때 화국을 석권했다는 자부심은 사라지고, 분열된 나라를 수습할 길은 좀처럼 찾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고려에 구주를 빼앗겼고, 서국의 주고쿠 지방은 오우치 가문의 이름하에 독립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심지어 그 오우치 가문마저 고려의 신하처럼 굴고 있었다.
물론, 가장 큰 근심은 남조였다. 호소카와씨가 배신하여 남조에 귀의한 뒤, 무너지던 남조는 순식간에 막부에 대항하기 충분할 정도로 세력을 얻었다.
거기에 믿고 있던 가마쿠라후의 동태도 수상함이 감지되고 있었으니, 통보도 없이 북방에 진출하다가 남조와 크게 부딪쳐 수세적인 교착 상태에 빠져든 상태였다.
어느 한 곳도 뜻대로 되기는커녕, 일말이라도 달리 운신할 여지조차 없었으니, 근래에 그의 얼굴에서 그늘이 가실 날이 없었다.
그런 중에 그의 앞에 탐라의 사신(?)이 등장하자, 그는 고운 표정과 언행을 보일 수 없었다.
그를 암울하게 만든 모든 변화가 결국은 탐라의 구주 진출로부터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었다.
“스승께서는 잘 지내시오?”
인사의 예를 갖추자마자 들려온 퉁명스러운 물음에 장아격은 고개 숙인 채 실소할 뻔했다.
막부 장군이 말한 스승이란 탐라공을 뜻하였는데, 오래전 막부 장군이 탐라공을 통해 명나라에 입조하고자 할 때 스승으로 삼은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이제는 입에 담을 이유가 전혀 없는 호칭이지만, 확실히 공식적으로 폐한 적은 없었으니, 그리 부르지 못할 것도 없었다.
“탐라공께서는 평안하십니다.”
“그러시겠지. 어디 불편할 이유가 하나라도 있으시겠소? 하면, 아쉬울 것이 하나도 없으실 스승께서 온갖 번민에 빠져 있는 이 제자에게 무슨 용건이 있으신지 한번 들어나 봅시다.”
말하는 내내 비꼼이 가득한 장군이 손을 뻗었으니, 앞서 탐라의 사신이 바친 국서가 내관을 통해 그의 손에 쥐어졌다.
요시미츠의 눈이 국서의 위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하자, 장아격이 장단을 맞추듯 말하였다.
“탐라공께서는 장군의 명재(明才)시라면 충분히 이해하고, 수긍하실 것이라 말씀하였습니다.”
하나, 그런 칭찬이 무색하게 요시미츠는 국서를 읽는 데에 예상보다 많은 시간을 써야 했다.
탐라의 국서 양식이 용건과 무관한 수사가 지극히 적은 실용적인 형식임에도 그랬다. 아니, 연신 이맛살을 찌푸린 채 몇 번이나, 국서를 읽는 것을 보면 그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시간이 한참이나 흘러, 막부의 장군이 옅은 침음과 함께 말문을 열었다.
“이 대사관이라는 게 상호 설치되는 것이 맞소? 탐라섬과 이곳 헤이안쿄(平安京 : 교토)에 각각?”
“그렇습니다.”
“하면, 여기에 적혀 있는 대사관의 특권도 상호적인 것이오? 서로 전쟁이 나도 죽이거나 수포(搜捕)되지 않는다는 것 말이오.”
“물론입니다.”
그 외에도 대사관 관저 불가침 특권과 본국과의 통신 특권도 같이 적혀 있었지만, 요시미츠는 전쟁 중에도 살해하거나 구속할 수 없다는 것이 인상 깊었는지 그걸 대표적으로 물었다.
요시미츠는 다시 침음을 흘렸다.
그로서는 대체 탐라공이 무슨 의도로 그런 관부를 서로 설치하자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막부의 입장에서는 전혀 손해인 일이 아니었다.
물론, 막부의 코앞에 탐라의 관부가 있다는 건 꽤 성가시고, 신경 쓰이는 일이 될 수 있겠지만, 그건 탐라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실 탐라국이라면 굳이 공식적으로 관부를 설치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막부의 일을 소상히 알아낼 수 있을 것이고, 아마 이미 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에 비해, 막부는 데카이(출해)에나 몇몇 세작을 두었을 뿐, 탐라섬에 사람을 심어 두는 건 몇 번의 실패 이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똑같이 대사관을 두고, 같은 기능과 같은 특권을 가지게 허락한다면, 누가 봐도 막부의 이득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요시미츠는 곧바로 응하여 대사관이라는 걸 설치하는 논의로 넘어가고 싶었다.
하나, 아무리 솔깃하고, 당장 근처에 있는 신료들 중에서도 반대하는 이가 없다 하더라도, 엉덩이를 들썩이며 응하는 건 체통에 걸맞지 않다 여긴 바,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하겠다는 선에서 대답을 가름하였다.
“장군, 외신이 이곳에 온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이만 물러가라고 할 참에 탐라의 신하가 말하자, 요시미츠는 의아한 시선을 띠었다.
용건이 더 있다면, 어차피 국서를 가져온 김에 거기에 더할 것이지, 왜 따로 말을 전하는가 싶었던 것이다.
“……말하라.”
한데, 탐라의 사신은 바로 답하기 전에 주위의 막부 신료들을 훑고는 말문을 열었다.
“청하건대, 가급적 듣는 귀를 줄여 주십시오. 저희는 크게 상관없는 일이나, 지금부터 제가 할 이야기가 섣불리 흘러나가면 장군께 해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이야기인즉, 입 가볍고 신뢰할 수 없는 신하들을 내보내라는 말이었다.
그에 요시미츠는 순간적으로 몇몇 곳으로 시선을 던질 뻔했다.
사실 그는 이제 그 어떤 신하도 진심으로 믿지 않았고, 늘 의심을 품고 있었다.
그건 그의 관령이었던 호소카와 요리유키가 그를 배신한 일로 인한 일종의 ‘트라우마’와 같은 것이었다.
신하에게 또 배신당할지언정, 차라리 먼저 신하를 배신하겠다는 마음가짐.
다만, 그의 통치력(歷)도 한두 해가 아닌 만큼 그 자리에서 시선을 잘못 돌려 그런 마음을 신하들이 엿보게 하는 실수는 막을 수 있었다.
잠시 뜸을 들인 요시미츠가 실소를 머금으며 말하였다.
“그런 건 걱정하지 마라. 내가 믿지도 못할 자를 내 근거리에 두겠는가.”
“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탐라공께서 저를 통해 따로 전하라는 말씀은…….”
외관부 관리이자, 익문대 제2 부대의 대장인 장아격이 그의 입을 열심히 놀리니,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아시카가 요시미츠의 얼굴색이 붉으락푸르락 변하였고, 주위의 막부 신료들 사이에도 어수선한 수군거림이 일어났다.
그리고 마침내 장아격이 말을 끝마치자, 막부의 장군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보료를 거칠게 내려치며 벌떡 일어났다.
* * *
“네 이놈!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그따위 망발을 입에 담느냐!”
노성(老聲)에 담긴 노성(怒聲)이 터져 나왔다.
탐라의 사신이 구두로 전한 탐라공의 요구에 남조의 좌대신인 호소카와 요리유키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격분한 것이었다.
물론, 그가 말한 안전(案前)은 이 자리에 남조의 왕이 자리하고 있음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북조와 남조는 서로 정통성의 우위를 주장하는 각각의 왕을 세운 것에서는 동일하나, 각각의 조정을 구성하는 형식은 달랐으니, 북조가 막부의 장군을 관백으로서 최상위에 두는 형태의 조정을 가진 것과 달리, 남조는 좌대신에게 태합의 칭호를 주되, 형식상이나마 왕을 최상위에 두고 있었다.
물론, 남조도 북조와 마찬가지로 왕에게는 아무런 실권이 없었지만, 그래도 남조의 왕은 외국의 사신을 접하거나 중요한 회의에 참석하기는 했다.
때문에 남조를 찾은 외관부 관리이자, 익문대 제2 부대장인 이금규는 앞서도 국서는 왕에게 주고 대답은 좌대신에게 들은 덕에, 이번에도 좌대신인 요리유키가 고함친 것에 좀 더 태연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어찌 망발이라 하십니까? 저는 제 주군이신 탐라국공 저하의 말씀을 전할 따름입니다.”
“네놈이 탐라공을 믿고 그리 겁이 없는 게로구나. 하면, 어디 한번 죽어 보아라. 어차피 탐라공도 네놈이 살아오길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남조의 좌대신은 바로 군병을 불러 이금규를 끌고 가서 목을 베라고 명이라도 내릴 것 같았다.
하나, 그보다는 탐라의 사신이 먼저였다.
“정녕 그리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런 일을 벌이시면 큰 곤욕을 치르실 것입니다. 좌대신의 신상에는 물론…….”
뒷말은 입에 담지 않았지만, 남조의 운명에도 좋지 않은 결말이 닥칠 것이라는 뜻임을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었다.
호소카와 요리유키의 얼굴은 노령에 쓰러질 것이 걱정될 정도로 검붉게 달아올랐다.
앞서 뱉어 놓은 말이 있어 바로 저자를 죽이라 명을 내리고 싶지만, 진정 저자를 죽였다가 무슨 화가 덮칠지를 생각하자 명을 내리기가 곤란해졌으니, 그 울화가 얼굴에 표현된 것이었다.
그때, 새로운 목소리가 있었다.
“좌대신은 진정하십시오.”
그건 남조의 왕, 히로나리(熙成)를 휘로 쓰고 있는 자의 목소리였다.
역사에서는 고카메야마(後龜山) 천황이라는 호가 붙은 왕이자, 남조의 마지막 왕이었던 자였다.
40대 중반의 그는, 앞서 이금규를 맞이할 때 잠시 입을 열기도 했으나, 이후에는 내내 입을 닫고 있다가, 좌대신의 입장이 난처해지자 슬기롭게 개입한 것이었다.
이금규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히로나리 왕은 탐라의 사신을 잠시 보다가 겨우 자리에 도로 앉은 좌대신을 향해 다시 말하였다.
“평정심을 되찾으실 동안 제가 잠시 탐라의 사신과 말을 나누겠습니다.”
“……그리하시옵소서.”
좀처럼 국정에 끼어들지 않던 왕이 의외의 요구를 하자, 요리유키 좌대신은 속내로 당황스러웠지만, 이미 도움을 받은 중에 그의 체면을 무색하게 할 수 없어 응하였다.
좌대신의 허락(?)이 있자, 히로나리 왕은 미소 띤 얼굴로 탐라의 사신을 향해 말하였다.
“명나라와 싸우기 위해 군병을 빌려 달라 하였소?”
“그렇습니다.”
“참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말이오. 정녕 탐라공이 명나라와 싸워 승산이 있다 여기고 있는 게요?”
“어찌 주군의 결정에 저와 같이 작은 신하가 함부로 평가하겠습니까.”
말은 대답을 회피하는 것이지만, 표정에는 당연하다는 대답이 드러나 있었다.
다만, 그것이 탐라공이 정말 당연히 승리할 것이라 여기고 있다는 건지, 아니면 탐라의 사신이 당연히 주군께서 승리하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보시오, 외신. 탐라공이 그대를 통해 전한 제안은 실로 막중한 것이오. 나라를 지킬 군병을 빌려 달라는 것부터가 함부로 응하기 어려운 일임은 물론이고, 심지어 저 엄청난 명나라와 싸우기 위함이라하면, 누구도 응한다고 쉽게 답할 수 없을 것이오. 하면, 이처럼 엄청난 제안에는 그에 합당한 설명이 있어야 할 것 아니오? 그러니 다짜고짜 요구의 말만 뱉어 두지 말고, 무어라 부연해 보시오.”
“그에 관해서는 이 외신은 해 드릴 수 있는 말이 없습니다. 다만, 제안에 응하시면 상황과 작계에 대해 상세한 설명이 뒤따를 것이라는 제 주군의 말씀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응하기 전에는 중요한 내용은 알릴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 대답에 내내 웃음을 짓던 히로나리 왕의 표정도 조금은 굳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식이라면, 우리의 대답이 무엇일지는 뻔한 것 아니오? 정말 외신은 더 할 수 있는 말이 없는 것이오?”
“제가 더하여 말씀드릴 수 있도록 허락받은 건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오?”
“먼저, 만약 제 주군의 제안에 응하신다면, 결코 작지 않은 보답이 있을 것이라는 겁니다.”
“보답?”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남조의 왕이 묻자, 이금규는 뒤에 시립한 그의 수행원으로부터 작은 두루마리를 천천히 받아 내관에게 건네었다.
그 두루마리는 히로나리 왕에게 먼저 건너가 그의 확인을 받았으니, 잠시 후 남조 왕의 표정에 놀라움이 스쳤고, 이어 그 두루마리를 전해 받은 좌대신 또한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 두루마리와 탐라의 사신을 번갈아 보았다.
“이것이 보상이라는 게요?”
그 물음은 좌대신의 것이었다.
“그렇습니다.”
“하면, 지금 그대가 전해 온 그 제안은 우리에게만 한 게 아닌 모양이군.”
“물론입니다. 앞서 국서로 전해 드린 대사관의 설치도 마찬가지이지요.”
“…….”
히로나리 왕은 물론, 좌대신을 비롯하여 그 두루마리를 확인한 남조의 신하들 모두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야 탐라공의 제안은 거부하기 어려운 것임을 깨달았으니, 만약 자신들이 거부한 중에 북조가 응한다면, 향후 탐라국이 왜국의 정세에 어떤 식으로 태도를 취할지 뻔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보상 또한 북조가 모두 취할 테니, 그것도 두고 볼 수 없는 노릇이었다.
좌대신 호소카와 요리유키는 눈을 질끈 감았으니, 그 감은 눈 안쪽에 조금 전 두루마리에서 보았던 지도가 떠올랐다.
그것은 에조치의 지도였으니, 정교하게 그려진 섬을 다시 정교하게 반으로 갈라서 북조와 남조의 영토로 나눠 놓고 있었으며, 몇 줄의 글도 적혀 있었다.
[내 제안에 응한 뒤에는 더욱 정확한 에조치의 지도를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오. 그 지도에는 에조치에서 취할 수 있는 귀한 산물의 위치도 담겨 있을 것이니, 에조치를 개척함에 있어 큰 도움이 될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