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366)
* * *
공택으로 들어온 화극이 갖옷을 벗으며 넌더리를 쳤다.
“겨울이 마지막 발악을 하네그려.”
일찌감치 봄이 찾아오는 탐라인 만큼, 오늘 추위가 아마 이번 겨울 마지막 추위일 것임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고뿔은 쾌차하셨습니까?”
“나아졌으니 왔지, 아니었으면 부처님이 부르셔도 집 밖으로 나서지 않았을 걸세.”
“아들 보는 재미 때문 아닙니까?”
“하하, 뭐, 그렇긴 하지. 우리 둘째 태산이가 요새 걸음을 떼기 시작했는데, 참 대견해.”
함께 몽주의 집무실로 향하면서 화극의 아들들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다.
“첫째 아이가 올해 기초학교에 들어가죠?”
기초학교는 쉽게 말해서 4년짜리 초등학교로, 3년 전부터 기술학교 이전 의무 교육 과정으로 실시된 제도였다.
“그렇지. 녀석, 잘해야 할 터인데…….”
화극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으니, 첫째가 상산(祥山)이었고, 둘째가 태산(太山)이었다.
역사 속 최해산은 없었다.
지금의 화극 최무선은 역사보다 더 늦게 아들을 보았으니, 장남 상산의 나이는 이제 겨우 9살이었다.
“잘하겠죠. 제법 영민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허허, 그랬나? 뭐, 내가 봐도 머리가 나쁘지는 않은 것 같네.”
그나저나 고령을 이유로 공식적으로 관직에서 물러난 화극이건만, 거의 환갑에 첫 아들을 보고, 약 1년 전에 둘째 아들을 얻는 걸 보면, 아직 기력이 쇠한 건 아님이 분명……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매우 보기 드물 노익장이었다.
다만, 근래에 화극을 볼 때마다 겉모습에서 느껴지는 노쇠함은 자꾸 그가 역사에서 고희까지 살았음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이제 고작 2년 정도 남았을 뿐이니, 역사가 바뀌고 사람들의 운명도 바뀌었다고는 하나, 사실 언제 갑자기 어찌 된다 해도 이상할 게 없을 나이였다.
“뭐, 이런 말을 하면 어찌 들릴지 모르겠지만…… 차후에 내 아들들을 잘 돌봐주게. 내가 그 아이들이 장성하는 걸 보기 어려울 것 같으니까 말이야.”
“알겠습니다. 한데, 그런 이야기는 더 나중에 해도 될 겁니다.”
“아니, 생각난 김에 확답을 듣고 싶네. 탐라공, 내 아이들의 대부가 되어 주시게. 진짜 아들처럼 장한 짓을 하면 장하다 칭찬해 주고, 못난 짓을 하면 못났다고 꾸짖어 주시게. 부탁하네.”
“…….”
집무실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곤, 갑자기 간곡한 목소리로 말하니, 몽주는 이 어른이 왜 이러시나 싶다가,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리하겠습니다.”
“허허, 고맙네. 아주 안심이 되는구먼.”
본래도 부자 가문 출신이고, 탐라공을 조력하면서 많은 부를 받기도 했기에, 물질적으로 그의 아들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화극은 그가 죽고 난 뒤, 아직 장성하지 못한 아이들이 아비의 부재로 인해 방황할 것을 걱정하였으니, 탐라공이 아비의 역할을 대신해 줄 것을 바란 것이었다.
“한데, 나를 어찌 불렀는가? 나는 이제 고작 일개 장인에 불과하거늘.”
“그 장인의 실력과 명성이 너무 커서, 그냥 유유자적하게 두기가 어려워서 말입니다.”
“허허, 이 늙은이를 또 부려먹으려고 불렀구먼.”
화극은 관직에 물러났지만, 아예 은퇴한 건 아니었다. 그는 지금 군기청에서 일하고 있었으니, 완전히 은퇴하려는 걸 몽주가 겨우 만류하여 일종의 기술 고문(顧問)과 같은 직책에 놓았다.
다만, 아무래도 국사의 중앙에서는 멀어진 탓에, 지금 탐라국의 깊은 사정에는 어두울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명나라와의 대적을 준비하는 것도 알고 있지 못하였다.
“허어, 그런 일이 있었군.”
몽주가 대략적인 사정을 말해 주자, 화극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으니, 그건 그 이야기를 들은 누구라도 그런 반응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마음은 단단히 먹은 겐가?”
“네. 영원히 명나라의 눈치를 보며 살 것이 아니라면, 언제고 국운을 걸어야 할 것이니, 지금이 그 적기라고 생각합니다.”
“적기라…… 그 수은과 생금이 그 정도의 변수가 되리라 보는 겐가?”
“저는 그렇다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만으로 태자 측의 전력을 급감하게 만들 수는 없을 겁니다. 싸움은 결국 우리가 가진 것, 본디 가지고 있는 실력으로 이겨 내야죠. 다만, 그것이 명분 싸움만큼은 유리하게, 적어도 동등하게 만들어 줄 겁니다.”
아무 명분 없이, 혹은 미미한 명분을 가지고 연왕이 독립하겠다고 나서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유리함을 챙기는 것이다.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하면,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
화극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몽주는 잠시 말을 돌렸다.
“작년 탐라국의 철 생산량이 1만 통을 넘었습니다.”
“오, 실로 대단하군.”
대단한 일이었다. 이주섬을 정복할 즈음에 공식적인 탐라의 철 생산량이 200통이 되지 않았던 것에 비하면, 그사이에 어마어마한 생산량의 증가가 있었다.
물론, 당시의 철 생산량 통계는 탐라국 및 탐라 상단 하에서 생산되는 철의 양만을 기준으로 잡은 것으로, 대장간 규모급에서 생산되는 무쇠 생산량은 누락된 것이었다.
하나, 그런 것까지 짐작하여 따져도, 10배 이상의 증가량을 보인 것은 분명한 바, 탐라섬 외 여러 곳에 제철소를 계속 지어 온 노력의 결실이었다.
“저희가 파악하기로, 지금 명나라의 연간 철 생산량이 2만 5천 통 정도 됩니다. 명 조정이 철의 생산에 대한 과세로 거두는 양이 5천 통 정도이니까요.”
명나라는 물산의 생산에서 오분지 일을 세금으로 거두었으니, 역으로 셈하면 명나라 전체의 철 생산량을 가늠할 수 있었다.
외관부와 익문대를 통해 명나라 조정에서 쓰이는 ‘정부 자료’를 종종 입수한 덕에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저는 그 철의 생산량이 지금 탐라국과 명나라의 국력 차이를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
철의 생산량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기준은 아니지만, 분명 중요한 잣대임에는 틀림없었다. 그건 비단 당대뿐만 아니라 현대에서도 통하는 비교일 것이었다.
“음, 2만 5천 통과 1만 통이라…… 생각보다 큰 차이는 아닌 것 같군.”
명나라라면 무조건 어마어마하고 엄청나니, 다른 나라와 무엇이든 비교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생각하면, 분명 생각보다 큰 차이는 아니었다.
물론, 명나라의 철광석 생산량은 역사보다 상당히 늘어났을 것으로 보고 있긴 했다.
적어도 탐라국과의 교역에서 철광석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그랬을 것이다.
하나, 결국 중요한 건 철광석이 아니라 철의 생산인 만큼, 명나라의 늘어난 철광석 생산량은 고스란히 탐라국의 철 생산량에 기여하고 있었다.
“그리고 명나라 조정이 전쟁 준비에 투입할 수 있는 철의 양은 결국 과세로 거두어들인 5천 통 정도일 겁니다. 명나라의 체제가 그러니까요.”
“그렇겠지.”
모자라다는 게 밝혀지면 추가로 백성들을 수탈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기본적으로는 그랬다.
“하면, 우리 탐라국은 어느 정도까지 투입할 수 있을까요?”
“……?”
화극의 표정이 애매해졌다. 아주 짐작을 못하는 얼굴은 아니었지만, 그 셈이 맞는 것인지 자신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몽주는 옅은 웃음기를 보이며 자답하였다.
“저는 단기적으로 절반까지 투입할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탐라국의 체제가 그러하니까요.”
“으음.”
그 말에 화극이 침음을 흘렸다. 반응으로 보아, 그도 비슷한 계산을 했던 것 같았다.
물론, 그가 침음을 흘린 건 속으로 답을 맞췄기 때문이 아니라, 그 결과가 공교롭기 때문이었다.
결국 명나라 조정과 탐라국 조정 모두가 전쟁에 5천 통의 철을 투입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이었으니까 말이다.
“국력은 결국 땅과 인구의 크기에 비례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 전력(戰力)은 반드시 크기만으로 비교할 수는 없지요. 특히, 단기적인 경우에는요. 그 나라의 체제가 가진 효율성과 백성들의 단합력으로 수세를 동등하게, 혹은 역전시킬 수도 있다는 게지요. 그것이 역사에 가끔 보이는 대역전승의 근본일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네. 근데, 그래서 내가 할 일이 뭐라는 겐가?”
“때가 되면 전시(戰時)를 이유로 탐라국은 총동원될 것입니다. 그때는 사람은 물론, 자원 또한 조정에 의해 일괄적으로 분배될 것인 바, 많은 자원들이 전쟁에 쓸 물산을 생산하는 데에 쓰일 것입니다.”
“음, 나보고 그 일을 맡아 달라는 게군?”
“그렇습니다. 전시에 총동원하는 건 결국 백성들의 인내를 필요로 합니다. 그들이 평소에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 중 많은 것들이 구하기 어려워질 테니까요. 이는 비단 일반 백성들뿐만 아니라, 회사와 상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최대의 이득을 얻을 수 있는 물산 대신, 나라의 명에 따라 전쟁에 쓰일 물산을 생산해야 하니까요. 물론, 저는 우리 백성들이 이 나라의 보존을 바라는 마음이 크고, 그만큼 많이 참아 주리라 믿습니다. 다만, 이왕이면 명성과 신망이 높은 이가 총동원령을 지휘하는 자리에 있다면 백성들의 인내력이 조금 더 커지리라 생각합니다.”
“명성과 신망이라면, 탐라공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리라 보네만…….”
“제가 백성들을 직접 접하는 건 아니니까요. 또, 저는 그 일에만 집중할 수도 없을 테고요.”
명나라와의 싸움은 그것이 아무리 외교적인 성과를 모두 거두어 많은 나라와 함께 할지라도, 탐라국의 총력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었다.
한 나라의 총력을 끌어모으는 건, 아무리 체제가 잘 잡혀 있다고 해도 결코 쉬운 일일 수 없는 바, 몽주는 ‘전시총동원령’을 위한 임시 기구를 설치할 생각이었다.
좁은 의미로서 군사적인 총동원령은 군관부에서 전담할 수 있지만, 군사적 지원을 담당하는 일은 일개 관부가 전담할 수 없을 테니, 임시 기구를 두어 그 아래 군관부를 제외한 모든 관부를 두고, 일사불란하게 지휘하길 바라는 것이었다.
그 임시 기구의 수장은 대신청장들은 물론, 회사와 상인들과 직접적으로 접촉해야 하고, 나아가 총동원령으로 고생하는 백성들을 위로하는 일에까지 손을 더해야 하니, 능력은 당연했고 그만큼 명성과 신망을 갖춰야 했다.
그런 인물이 흔할 리는 없고, 있다 해도 대부분 이미 탐라 조정에서 저마다 중임을 맡고 있는 바, 몽주는 화극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꽤 힘들겠구먼. 잘못하다가는 내가 완전히 가 버릴 수도 있겠어.”
“…….”
“허허, 내가 죽는 게 걱정돼서 하는 말은 아니네. 다만, 중요한 시기에 그 임시 기구라는 것의 수장이 부재하게 되면 곤란할 테니, 하는 말이지.”
“어르신께만 부담을 짊어지게 하진 않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몽주가 목례까지 하며 부탁하자, 화극은 깜짝 놀라 손사래를 쳤다.
“부탁이라니 과하시네. 내가 비록 일선에서 물러났다곤 하나, 탐라의 신하였던 자이네.”
“하면, 받아들이시는 겁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답해야 하는 겐가? 나도 내 안사람들과 이야기를 먼저 나눠 보고 싶네.”
탐라공과 국공부인의 금슬이 주는 문화적인 영향으로, 일부일처가 아닌 가정을 찾기 어려운 탐라국에서 화극은 몇 안 되는 이처(二妻)를 가진 이었다.
“알겠습니다. 긍정적으로 검토해 주십시오.”
화극이 고개를 끄덕이니, 그도 이미 속내로는 몽주의 요청이자 명을 받아들인 모습이었다.
아마 대답을 미룬 건, 늙은 자신을 보필해 주고 아이들도 낳아 준 두 아내에 대한 그의 배려 때문인 듯했으니, 몽주도 더는 재촉할 이유가 없었…….
쿵쿵쿵.
용무를 마치고 짧게 잡담을 나누다가 화극을 배웅하려고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참에, 문득 성급한 발소리가 멀리서 전해졌다.
그 급한 발걸음은 집무실 밖 비서원으로 이어졌으니, 잠시 후 비서원 주무관이자 익문대 총대장인 차현유와 이제는 얼굴이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체신청 관리…… 이름이 장하였던가, 하여튼 그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물론, 붉은색의 한자가 박힌 장계와 함께였다.
몽주는 그것이 익문 3대에서 보낸 것임을 알아차리면서 서둘러 장계를 펼쳐 보았다.
“…….”
“무슨 일인가? 큰일이라도 난 게야?”
“큰일이라면 큰일이지만, 예상하고 있던 일이기도 합니다. 어르신도 아시는 일이지요.”
“내가……? 아…….”
화극은 의아해 하다가 다음 순간에 무슨 의미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나랏일의 중심에서 멀어진 지 1년이 흐른 지금, 탐라공이 큰일이라고 인정할 만큼의 큰일 중 화극이 아는 건 딱 하나뿐이었다.
“홍무제가 토혈을 하며 쓰러졌답니다. 몹시 위중한 모양이군요.”
응천부 방향을 책임지는 익문 3대의 보고로는 오늘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라 했으니, 어쩌면 홍무제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었다.
몽주는 잠시 복잡한 시선으로 장계를 다시 한 번 더 훑고는 화극을 바라보았다.
“보다 빠른 결정을 부탁드립니다.”
“알겠네. 아니, 이미 나는 마음을 먹었으니, 내 마노라들에게 예의만 차리고 다시 오겠네.”
몽주는 씁쓸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점파국의 도읍 비자야에 있는 포구 근방의 어느 언덕 위에 점파왕이 수행원들과 함께 서 있었다.
그의 시선은 북동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 방향에 많은 것들이 놓여 있겠지만, 점파왕 비나수르가 보이지 않아도 보고 있는 것은 해남섬이었다.
“쩨종.”
“예, 전하.”
묵묵히 시선만 던지던 왕이 문득 이름을 부르자, 수행원들 중 하나인 주거 쩨종이 대답하며 무리에서 앞으로 한 걸음 나왔다.
“해남섬을 얻으면 좋을……? 아니, 당연히 좋기야 하겠지. 근데, 해남섬을 계속 지킬 수 있겠나?”
“…….”
최근 점파국의 외관대신에 임한 주거 쩨종은 그 말에 선뜻 대답하는 대신, 다른 수행원들을 한번 돌아보고는 옅은 한숨과 함께 말문을 열었다.
“해남섬은 크게 보아 월인들이 사는 섬입니다. 월인들은 안남을 멸한 우리를 원수와 같이 생각하지요. 다만, 해남섬의 월인들은 그나마 월인들 중에서 안남과 사이가 좋지 않은 편이었습니다. 그런 만큼 어려움은 족히 있겠으나 잘 회유하면 충분히 다스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해남섬의 남쪽에 비밀스럽게 교역 거점을 세우면서 확인한 바였다.
해남섬에 사는 월인의 일족인 여족(黎族)은 안남과 신경전을 벌인 바 있었고, 덕분에 예상보다 수월하게 점파국이 그곳에 거점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 그들은 기본적으로 한족에 가까운 자들이네. 우리가 안남을 무너뜨려 그들의 호감을 얻기는 하였으나, 만약 우리가 해남섬을 명나라로부터 떼어 내려 한다면, 그들은 우리를 적대할 테지. 하면, 그 뒤 해남섬을 어찌 다스릴 수 있겠나?”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여족을 통해 해남섬에 거점을 세울 수 있기는 했지만, 그건 해남 토호들이 그것이 명나라와 한족에 대한 큰 배신 행위가 아니라 판단한 덕이었지, 그들이 명나라와 한족 대신 점파국을 택한 건 아니었다.
그때, 주거 쩨종이 다시 말문을 열었다.
“두고 보아 어려울 경우, 버리시면 되옵니다.”
“버리는 건 쉽겠나? 탐라국은 우리로 하여금 해남섬을 얻게 하여 명나라의 기운을 덜 생각인데?”
“어차피 다스리는 건 전하의 선택입니다. 전하께서 포기하시겠다면 포기되는 것입니다. 만약 그래도 탐라국이 강권한다면, 그들은 그 대가를 보여야 할 것입니다.”
“흠…….”
비나수르 왕이 그 말에 생각에 빠지려 하자, 주거 쩨종이 서둘러 다시 말하였다.
“전하, 다만, 소신이 드리고 싶은 말씀은, 지금은 그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해남섬과 무관하게 탐라국은 전하께서 바라시던 손을 내밀었습니다. 하면, 그 뜻을 이루는 것에 먼저 열중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 말에 비나수르 왕의 표정이 잠시 흔들렸고, 이내 옅은 미소가 떠올랐으니, 갑자기 고민이 싹 사라진 기분이었다.
참으로 옳은 말이었다. 그가 탐라국에 가까워지고자 노력한 모든 것은 결국 탐라국과 군사적으로 손을 잡기 위함이었다.
그것이 점파국의 안전을 위한 최선이라 판단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그 탐라국이 마침내 손을 내민 것이다.
물론, 탐라국이 그리한 건 점파국을 위해서가 아님은 잘 알고 있었다.
하나, 언젠가 점파국을 치러 올 것이 분명한 명나라에 대항하여 탐라국과 연대하는 건 분명한 바, 비나수르 왕으로서는 사실 더 깊이 생각할 만한 게 아니었다.
“외관대신의 말이 옳다. 갑자기 탐라국이 미적지근했던 태도를 바꾼 탓에 내가 생각이 너무 많았군.”
그리고 예상보다 더 강대한 탐라국의 국력과 탐라국의 남방 진출에 대한 강한 의지를 확인한 탓도 있었다.
하나, 중요한 건 결국 명나라에 대항하는 것이고, 그것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다른 모든 고민은 모두 쓸데없는 짓에 불과함을 인정하자, 선택은 단순해졌다.
“이주섬으로 사신을 보내게. 탐라공의 제안에 응한다는 내용으로.”
“알겠습니다.”
결단을 내리고 나자, 비나수르 왕은 후련한 마음으로 북동쪽으로 향하던 시선을 돌렸으니, 이번에는 북서쪽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지금쯤 대리에 닿았으려나…….”
점파국을 방문했다가 보름 전에 대리석을 가져온 라오족을 따라 떠난 탐라국의 외신들을 떠올리는 비나수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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