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374)
장강의 하구와 응천부 사이에 있는 양주는 명나라 최대의 포구였으니, 늘 인파로 가득한 곳이며, 지금도 다르지 않았다.
다만, 만약 양주에 빈번히 드나드는 자가 있었다면, 요즘의 양주 포구를 두고 전보다 많이 허전해졌다는 평을 할 만하였는데, 이는 고려 상인들이 모두 철수한 탓이었다.
고려 상인들로 인해 드나드는 상선이 수적으로 양주 포구에서 아주 큰 비율을 차지하는 건 아니지만, 커다란 상선 중 많은 것이 고려와 오가는 것이었으니, 그 큰 배들이 사라지자 포구에 빈 곳이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물론, 고려 상인들이 공식적으로 철수를 선언한 건 아니었다.
그저 신년에 이르러 하나둘씩 저마다 이유를 대며 양주와 명나라를 떠나기 시작한 것이, 근래에 이르러서는 고려 상인들을 찾기가 거의 불가능해진 정도에 이른 것이다.
명나라 조정은 내내 그런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는 행정적 체계의 미흡함 때문이기도 했지만, 고려 상인들이 양주 관리들을 뇌물로 구워삶고, 또 양주를 떠나면서도 곧 돌아올 터이니 잘 봐 달라며 다시 뇌물을 줬기 때문이다.
어느 관리도 자신들이 담당(?)하고 있는 고려 상인들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여기지 못한 탓이었으며, 뇌물수수로 인해 고려 상인들의 동향을 일부러 좌시하고 보고하지 않은 탓이었다.
하여, 명나라 조정에서는 고려 물산의 재고량이 줄어드는 것을 호조에서 알아차린 후에야 고려 상인들이 모두 철수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연히 그 이유를 알고자 고려 탐라국에 사신을 파견하는 방안이 논의되었는데, 그 논의는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다.
굳이 사신을 보낼 필요 없이 그 이유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고, 사신을 보낼 수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연왕이 충효를 명분으로 격문을 포고함에 그 주요 내용 중 하나가 연왕부와 고려의 동맹이었으니…….
“동야를 정식 관부로 창설할 것이니, 그에 대해 준비하라.”
성영제의 명이 들리자, 왕강은 두 가지 상반된 감정에 휩싸였다.
먼저 든 것은 물론, 기쁨이었다. 동야가 정식 관부가 된다는 것에 대한 기쁨이 아니었다.
그건 살았다는 기쁨.
성영제가 동야와 자신을 버리지 않았고, 앞으로도 버릴 수 없게 되었다는 기쁨이었다.
그리고 이어 든 감정은 아쉬움이었으니, 동야가 정식 관부가 되면 그만큼 보다 견제와 감시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하나, 당장은 생존의 기쁨이 훨씬 컸으니, 왕강은 연왕의 포고문을 가장한 격문(檄文)이 있은 뒤로, 천자가 자신과 동야를 버릴 것을 크게 두려워하고 있었다.
“알겠사옵니다. 바로 준비를 서두르겠나이다.”
왕강은 대답과 함께 뒷걸음질을 하려 하였다. 하나, 한 발 막 디디려는 찰나에 천자의 옥음이 다시 있었다.
“……정녕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겐가?”
쿵!
그 질문의 첫마디부터 무엇을 묻는지 왕강을 알 수 있었으니, 곧바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천자를 애달프게 바라보았다.
“폐하, 소신의 결백함을 믿어 주시옵소서.”
긴 변명은 하지 않았다. 이미 여러 번 하문 받은 질문이었고, 할 이야기는 다 했다.
천자는 왕강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옅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더는 묻지 않겠다.”
연왕의 격문은 결코 천자를 성토하지 않았다.
오히려 천자에 대한 충과 선제를 통한 형제애를 강조하였으니, 그저 천자 주변의 간신들이 성토의 대상이었다.
선제에 대한 암살 의혹 또한 천자를 상대로 제시한 것이 아니라, 간신들의 술수가 있었다는 식으로 드러내었으니, 동야에 속한 태감 몇몇의 이름을 들먹이며 그들이 평소 관여하지 않던 수은과 생금을 황성으로 들인 것을 정황 증거로 삼아 천자에게 그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어찌 보면 황실의 일원이자, 혈육으로서 천자에 대한 충성과 애정이 돋보이는 바였으니, 누구도 쉽게 연왕의 선제에 대한 암살 의혹 제기 자체를 두고 섣부르다고 비판할 수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세간의 이목은 지금 천자의 반응에 집중되어 있었다.
연왕이 진한 효심과 우애를 풍기며 제기한 의혹인 만큼 천자가 그 실상을 조사하도록 하는 게 마땅하다는 게 지금 여론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여론이라 함은 일반 백성들이 아니라 정치권력을 가지고 있거나, 그 주변에 있는 자들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었으니, 천자의 입장에서도 당연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하나, 천자는 그에 곧바로 응할 수 없었다. 그 의혹 제기를 받아 조사에 응하는 순간, 정국의 향배가 연왕의 손아귀에 쥐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즉, 연왕의 마음대로 명나라 정치의 ‘의제가 설정’될 테니, 아무리 천자가 성심껏 조사하고 결백을 증명한다고 해도, 연왕의 혓바닥 놀림 한 번으로 그 조사가 엉망진창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만약 그렇게 두 번이나 연거푸 정통성에 타격을 입게 되면, 성영제의 권력은 단번에 위태롭게 될 것이 명약관화이니, 천자는 차일피일 시간을 미루며 고민을 거듭한 끝에 연왕의 의혹 제기를 묻어 버리기로 하였다.
물론, 이는 곧 이제는 전쟁뿐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참으로 교활하지 않나, 연왕 말이야.”
성영제의 말을 듣는 이는 마삼보였다.
“그러합니다.”
마삼보는 자신의 대답이 성영제의 질문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해석해서 답한 것인지 자신은 없었다.
다만, 분명 연왕은 교활했다.
특히, 선제에 대한 암살 의혹을 제기하면서, 명나라의 정통성 회복을 위해 고려와의 동맹을 선언한 점이 그러했다.
얼핏 듣기에 고려가 상국의 명예와 정통성을 명분으로 움직인 것 같겠지만, 중요한 건 결국 연왕부와 고려가 동맹을 맺는다는 것이었다.
동맹은 상하의 지위를 가진 세력 간에 있을 수 있는 관계가 아닌 바, 결국 연왕부는 고려가 같은 지위임을 인정한 셈이었다.
그걸 정통성 회복이라는 말로써 얼핏 상국에 대한 제후국의 의무처럼 포장하였으니, 그 점을 두고 교활하지 않다 말할 수 없었다.
“짐은 연왕을 더 이상 용서할 수가 없어. 온갖 말과 핑계로 포장했지만, 결국은 자기가 가진 권력을 내놓지 않으려는 발버둥이지.”
삼보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아꼈다.
천자의 말은 틀림이 없었다.
하나, 연왕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간 건 당금 천자와 선제를 비롯한 황실인 것도 사실이니, 천자의 책임도 없진 않았다.
“짐은 동야를 버리지 않기로 하였다. 버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겠더군. 동야를 버리는 순간 선제께서 독에 암살당했다고 인정하는 꼴이 되어 버리니까 말이야……. 한데 담담한 표정이로군. 크게 아쉬워할 줄 알았는데. 그대는 동야를 경계하지 않았던가.”
“동야는 경계해야 마땅하나, 작금의 상황이 동야를 버리기에 적합하지 않으시다는 폐하의 말씀은 실로 옳사옵니다.”
“그래, 그래서 짐은 몹시 답답해. 손발이 되어 줄 자들을 찾을 수가 없거든. 어찌 되었건 자중해야 하는 동야를 부릴 수도 없고, 연왕의 격문이 있은 후에는 백관이 모두 짐을 의심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래서 무얼 시키든 짐이 아닌 연왕을 위해 움직이지 않을지 우려스럽거든.”
“성정을 다스리옵소서. 설령 연왕의 음모에 흔들리는 자가 있다 하더라도 극히 소수이니, 대부분의 신료들에게 있어 이 나라의 천자는 폐하이시옵니다.”
위로의 말을 마친 삼보는 잠시 말이 없는 천자를 힐끗 올려다보았다.
천자의 시선이 그에게 정확히 향해 있었으니, 자연 일순간 시선이 마주쳤다.
“삼보, 그대에게 묻고 싶다. 그대는 연왕의 격문에 마음이 흔들렸는가?”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나이까. 소신은 폐하의 결백에 추호의 의문도 가지지 않사옵니다.”
“어째서?”
“그럴 분이 아니심을 곁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이옵니다.”
“과연 그걸로 확신할 수 있겠느냐. 사람의 마음이란 겉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것이거늘.”
“…….”
삼보는 긴 숨을 내쉬고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더는 흔한 말로 진심을 피하기 어렵다 여겼기 때문이었다.
“신 마삼보, 진심을 말하겠나이다. 소신이 폐하의 결백을 믿은 건 폐하께는 그럴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나이다. 이미 폐하께서 태자이신 시절에 다음 보위에 오르실 것이 정해졌으니, 등극하심은 그저 시간의 문제였을 따름이었나이다. 모든 것이 폐하의 편인데 어찌 폐하께서 험한 술수를 부리셨겠습니까. 만약 그 정도의 어리석음이 있었다면, 그것이야말로 표 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옵니다.”
“그래, 그 말이 짐의 마음이다. 짐은 그럴 이유가 없다. 동야가 몰래 무슨 짓을 했다 해도, 짐과는 무관하다. 짐이 동야를 부리니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으나, 그것이 폐륜의 책임은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만약 연왕이 진정 선제의 죽음에 진정 어린 의문을 품고 있었다면, 그렇게 격문을 붙이기 전에 짐에게 먼저 고해야 했다. 한데…….”
성영제는 깊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으니, 한탄과 억울함이 가득하였다.
“이 나라에서 뭐라도 한가락 한다는 자들이 그걸 몰라. 그저 연왕이 폭발시킨 선제의 죽음에 대한 의혹에 휩쓸려 이곳 응천부만을 응시하고 있어. 그자들이 줏대를 가지고만 있다면 오히려 짐이 동야를 족쳐, 그 실상을 분명히 드러낼 것이건만…….”
마삼보의 천자를 향한 시선에는 어느새 측은함이 묻어 있었다.
다만, 그건 인간으로서 그의 주인 ‘주태’를 보는 마음이었다.
하나, 천자는 인간 주태이기 전에 천자.
천 리 만 리 떨어진 곳에 가뭄이 들어도 그 책임을 져야 하는 천자인 만큼, 지금 그가 들은 천자의 한탄은 의미가 없었다.
“성심을 다스리시옵소서. 지금의 고난을 이겨 내신다면 더 많은 것을 얻으실 것이옵니다.”
“그런가?”
“물론이옵니다.”
“하면, 나를 도와주겠는가?”
“신은 폐하의 복인이옵니다. 마음껏 부리시옵소서.”
마삼보가 고개를 숙이자, 그의 머리 위로 천자의 옥음이 내렸다.
“네가 전장에 나가 줘야겠다. 나를 대신해 장수를 감독하고, 사기를 북돋아 줘야겠어.”
“……!”
그것이 독전관이자 조전장수의 일임을 깨닫자, 고개를 깊이 숙이고 있던 삼보가 깜짝 놀라 시선을 올렸다.
“어, 어찌……?!”
“하기 싫으냐?”
“일개 환관이 맡기에는 너무나 큰 중임이옵니다.”
“하기 싫으냐?”
“천자의 위엄을 생각하시옵소서. 이미 동야의 일이 있는데 다시 환관에게 큰…….”
“하기 싫으냐 물었다.”
“……명하신다면 따르겠나이다.”
“아니, 그런 정도로는 안 된다. 너는 이 정국에서 최고의 공훈을 세워야 하니까.”
“……!”
삼보는 그 순간에 깨달을 수 있었다, 천자가 자신을 일개 태감 정도로 두지 않을 것임을.
“짐은 이제 삼보 자네만을 믿겠다. 돌아보면 자기 자신보다 짐을 먼저 생각해 준 건 자네밖에 없더군. 그러니 짐이 그 믿음을 마음속만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도 보일 수 있게 그대가 스스로 그 이유를 만들어 줘야겠다.”
그렇게 삼보는 거친 전장에 던져졌다.
단지 연왕이 주적인 전장을 넘어 안으로는 동야와 싸워야 하고, 밖으로는 명나라의 위엄에 도전하는 나라와 싸워야 하는 아주 큰 전장이었다.
* * *
바뀐 역사로 인해 인생이 바뀐 자들은 수도 없지만, 그중 양국공 남옥에게 주어진 변화는 아주 특별했다.
본디 역모로 몰려 죽었어야 했던 그 ‘타이밍’에 선제 주원장이 먼저 죽었으니, 그가 감당했어야 했던 불명예와 참혹함은 이제 사라진 것이다.
남옥 본인은 물론, 오직 한 사람을 제외하면 누구도 알지 못하는 일이었다.
당금 양국공의 위치는 독보적이었다.
많고 많은 개국공신들 중에서 남옥은 최고의 개국공신이었으니, 비슷한 급인 상우춘, 유기, 이선장 등이 모두 세상을 떠난 가운데 그만이 홀로 살아 있었다.
때문에 연왕의 포고문이 있은 뒤, 양국공의 반응에 대해 세간의 시선이 쏠리는 건 당연했다.
“이제 와 하는 말이지만, 어쩌면 나는 운이 좋은 것일 수도 있어.”
“…….”
술잔을 내려놓으며, 시원섭섭한 기색이 깃든 말이 전해지자, 남옥의 앞에서 함께 술을 나누던 장옥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다음 차례는 나뿐이었지 않나? 한데, 그 전에 선제께서 승천하셨으니…….”
장옥은 그제야 무슨 말인지 이해했고, 일견 동의할 수 있었다.
선제께서 조금 더 살아계셨다면 양국공의 안위는 분명 보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만약 명나라에서 권신을 꼽는다고 한다면, 가장 먼저 손꼽힐 이가 바로 그의 눈앞에 있는 노장수 남옥이었다.
게다가 그는 촉헌왕 주춘의 장인이기도 하니, 황실의 외척이라 할 수 있었다.
천자와 황실의 독보적인 지위를 위해 선제께서 행하신 일을 돌이켜볼 때, 누가 봐도 그냥 놔둘 리가 없는 인사였다.
“하나, 그럼에도 나는 슬프네. 선제께서 귀천하신 것도 슬프고, 선제의 승하가 자연스럽지 않았다는 것도 슬퍼.”
말을 마치고 술잔을 드는 양국공의 모순된 감정을 바라보며 장옥은 반사적으로 말문을 열었다.
“하면, 공은 천자께서…….”
“아니, 아니, 그런 말은 마시게. 천자의 성정에 비춰 볼 때, 그런 험한 일을 꾸미실 분이 아니지. 하나, 연왕이 제기한 의혹이 가리키는 정황 또한 그럴싸하여 무시할 수가 없네. 그렇다면 중간의 누군가가 개입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니…….”
그럴 만한 ‘누군가’는 동야를 가리킴에 틀림없었다.
동야에서 예전에는 취급하지 않던 생금과 수은을 들여왔고, 그것들의 섭취로 인한 악효과가 천자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보인 증상과 유사한 만큼, 그런 의심을 품지 않은 이가 없었다.
“그리 생각하신다면, 천자께 고하여 그 진실을 밝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가능했다면 나 또한 그리했을 걸세. 하나, 연왕의 폭로는 오히려 진실을 밝힐 기회를 잃게 만들었네. 솔직히 말해서 연왕은 사실 선제의 죽음에 숨겨진 진실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이네. 아니었다면 그 공개적인 폭로 대신에 천자께 조용히 고하였을 테지. 한데, 그저 그 명분으로 연왕부를 지키는 것에 집중하고 있지 않은가.”
“하면, 공께서는 전면에 나서 연왕을 성토하실 작정이십니까?”
“하하, 그건 아닐세. 나도 이제 은퇴할 때가 되었지 않은가. 이만큼 살면서 인생의 달고 쓴 맛을 충분히 봤으면 되었지. 또 무슨 부귀영화를 얻겠다고 진창에 뛰어들겠나.”
은근히 긴장감이 묻어 있던 장옥의 표정에 안도가 스쳤다.
그걸 본 남옥이 입가에 웃음을 띠며 물었다.
“자네는 연왕에게 귀의할 생각이군?”
“저는 선제의 승하하심에 추호의 의문도 남겨서는 아니 된다 여기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천자의 정통성에는 큰 상처가 남을 것입니다. 하여, 누구의 편에 서기 전에 천자께서…….”
“내게 굳이 변명할 필요 없네. 자네가 연왕과 친분이 두터움은 잘 알고 있으니. 다만, 충고 하나 하자면, 자네는 정말 최선을 다해야 할 걸세. 두 번이나 칼을 거꾸로 쥔 자가 세상에 설 곳은 없으니까 말이야.”
“…….”
오가는 말에 가시는 없었으나, 뼈는 있었다.
현 제남 지휘첨사 장옥은 본디 원나라에 종사하던 한인 출신 장수였으니, 양국공이 북방을 정벌할 때에 명나라에 귀의하였고, 그와 친분을 맺었다.
그 뒤로, 장옥은 제남을 중심으로 북방의 경계에 이바지한 바, 자연히 연왕과의 접점이 생겼고, 알게 모르게 연왕의 배려와 보살핌을 받았으니, 이제 연왕의 신하가 되길 각오한 것이었다.
“아직 연왕부를 찾아갔던 것은 아닌 것 같고, 아마 이 자리는 연왕에게 가져갈 선물이었던 것 같군.”
“어찌 그리 말씀하십니까? 공께서는 제게 두 번째 인생을 열어 주신 은인이십니다.”
“그런가. 그래, 계속 그리 생각해 주면 고맙겠군. 아, 이왕지사 부탁 하나 하지. 연왕에게 고하여 무슨 짓을 하든 사천 쪽으로는 시선을 돌리지 말게 하게.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자네라면 알겠지.”
“알겠습니다. 반드시 그리 고하겠습니다.”
장옥은 머뭇거림 없이 대답하였다.
연왕의 편에 끌어들이지 못하는 것은 아쉬우나, 군명이 높은 양국공이 천자의 편에 서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다행한 일이었다.
하니, 괜히 사천 쪽을 건드려 촉헌왕의 장인이기도 한 양국공을 전장으로 끌어들일 이유가 없다고 장옥은 확신한 것이었다.
물론, 그가 그렇게 호언한 것은 아직 연왕의 독립 선언과 그에 얽힌 대전략을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장옥이 떠나자, 양국공은 늦은 밤하늘에 드리운 암운을 올려다보았다.
‘어느 쪽이든 일찍 걷혔으면 좋겠군.’
하나, 그의 바람은 너무나 팔자 좋은 것이었다. 그렇게 바라기에는 그와 장옥 사이에 있었던 대화와 같은 양상이 명나라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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