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380)
“조전장수 정화 태감 납신다! 길을 비켜라!”
호령꾼의 목소리와 함께 마차가 전진하니, 창밖으로 길가에 몰린 백성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게 보였다.
정화(鄭和).
마삼보는 자신의 새로운 성명에 낯설었다.
조전장수로서 전비함에 공을 세웠다는 명분으로 태감으로서 받는 녹봉이 올라간 것은 그렇다 쳐도, 천자께서 직접 성과 이름을 하사하신 것은 그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물론, 천자께서 새로운 성명을 내리신 것에 의도가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삼보, 아니 정화가 조전장수로서의 권위를 가지도록 하기 위함이었으니, 태감이기에 은근히 무시 받은 것을 천자로부터 성명을 받은 자의 위엄으로써 무마하게 해 주신 것이었다.
다만, 그럼에도 민망함은 가시지 않았으니,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끝나기는커녕 이제 시작하는 단계임에도 전공을 이유로 천자의 은혜를 받은 것은 다른 신하들 보기에 부끄러운 일이었고, 대놓고 호가호위하는 짓 같았기 때문이다.
“이 또한 사치와 같은 감정이겠지.”
상념 끝에 문득 읊조리니, 그런 민망이나 부끄러움을 두고 감정을 소모하기에는 그에게 주어진 임무와 나라의 사정이 녹록치 않았다.
나라가 내전에 휩쓸려 있기에 그 사정이 좋지 않음은 누구나 알 수 있지만, 그는 다른 이들이 판단하는 상황보다 더 나쁜 상태라 여기고 있었다.
그 원인은 고려에 있었고, 더 정확히는 탐라에 있었다.
정화는 조전장수로서 명군이 제녕에 집결하였음에도 바로 군진으로 향하지 않고 이제껏 황성에 남아 있었다.
어떤 자들은 정화를 두고 심신이 피곤한 군진을 꺼리고 편안한 황성에 머물기를 고집하는 것이라며 비난을 가하기도 하였다.
하나, 정화가 응천부에 남아 있었던 것은 따로 알아볼 것이 있기 때문이었으니, 지난 한 달 가까이 그는 환관과 군병들을 총동원하여 양주의 거의 모든 상인들을 취조하였다.
취조라 하여 고신을 가할 정도로 거친 건 아니었지만, 고려의 상인들과 거래한 경력이 있는 자들 모두를 잡아들이듯 강압적으로 모았으니, 어지간한 상인들은 모두 고려의 상인들과 거래를 한 경험이 있는 양주 시장 바닥이 발칵 뒤집어졌다.
그렇게 잡혀 들어온 상인들에게는 꽤나 큰 고역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고려와 거래하면서 있었던 모든 일들을 토해 내야 했기 때문이다.
이는 물산을 거래한 것에 대한 취조가 아니었다. 그런 거라면 차라리 고려와의 교역을 주도한 태자의 신하들을 취조하는 게 나았을 것이다.
정화가 원한 건 고려의 상인들과 거래를 위해 만나면서 주고받았던 이야기들에 대한 기억이었다.
그들이 웃고 떠들던 중에 전해들은 고려와 탐라에 대한 사소한 정보가 정화의 목적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양주의 명나라 상인들에게 정신적 고문이나 다를 바 없는 취조를 가한 결과, 정화에게는 산더미 같은 문권들이 쥐어졌다.
그 문권들을 다시 취합하고 정리하기 위해 정화의 부하들은 물론 그 스스로도 잠을 잊은 양 일했으니, 그렇게 얻은 정보가 과연 이번 전쟁에 도움이 될지는 스스로도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하나, 워낙에 고려에 대해, 특히 탐라국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 불안했던 정화에게는 가뭄 끝에 내린 단비와 같은 정보들임에 틀림없었다.
“천자께서 굳건하게 견디실지가 걱정이군.”
다시 정화가 중얼거리니, 이는 그가 황성을 떠나 제녕으로 가기 전에 천자께 고하여 가납 받은 일에 대한 걱정이었다.
그가 고려와 탐라에 대한 사소한 정보들을 모으고 모아 내린 결론 중 하나는 연왕부를 돕는 고려의 전력이 예상보다 더 강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상인들의 증언에서 여러 번 나온 순위군은 단지 치안을 다스리는 수준이 아님에 틀림없었으니, 만약 수만에 이른다는 그 순위군이 동원되었다면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고려의 전력은 다시 생각해 볼 문제였다.
거기다 고려 상인들이 철수하기 직전에 그들 중 하나와 술자리를 길게 가졌다는 어느 상인이 말하길, 탐라공이 작정하면 광대한 탐라의 영토에서 수십만의 대군을 일으킬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 말을 한 고려 상인이 취중에 한 말이라 가히 믿기 어려웠지만, 그 취한 중에도 탐라의 여러 지역을 언급하며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려 했던 바, 따져 보면 수십만은 아니더라도 응천부에서 경시하는 것보다 훨씬 강대한 군력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특히, 왜국의 사정을 들먹인 부분은 응천부는 물론이고, 정화도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이었으니, 탐라공이 왜국에서 큰 섬을 빼앗고 본토에도 세력을 확장했으며, 그로써 얻은 호구가 물경 20만에 이른다는 증언은 정화로 하여금 좀 더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 말 중에 절반만 진실이라 해도 연왕부와 고려의 군력은 다시 셈해야 마땅하고, 명군의 전략도 다시 심려해야 함이 분명했다.
하여, 일단 지금 진행 중인 50만의 징병 이외에 다시 추가로 징병하고, 훈련함으로써 전황의 급변에 대비해야 한다고 천자께 고하였으니, 천자는 탐탁지 않아 하셨다.
“이미 대군을 징병함에 있어, 지방관원들이 힘에 겨워하고, 백성들의 원망이 가득하거늘, 어찌 다시 군병을 모으라 명할 수 있겠는가. 설령 명을 내린다고 해도 충심이 깊은 자들도 심력을 다 바쳐 따르려 하겠는가?”
그에 정화는 그가 모은 고려와 탐라에 대한 군정(軍情)을 바치고, 역도의 전력이 예상외로 강대할 수 있음을 거듭 알렸지만, 신료들의 반대는 여전히 극심했다.
특히, 천자께서 등극한 이래로, 유자들이 정치의 전면에 나섰고, 그들은 태감인 정화를 천자께서 높이 사는 걸 못마땅하게 여겼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였다.
물론, 그들이 내세운 반대의 이유는 그런 면은 뒤로 감추고 정화의 정보가 잘못되었으며, 현실을 모른다는 점에 기인하였다.
다만, 그 반론의 내용이 결국은 고려든, 왜국이든 모두 소국에 불과하고, 호구가 생각보다 많다 하더라도 그 호구에서 군병을 뽑고, 연왕부까지 운반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로 고려나 왜국이 크게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내용이었다.
정화로서는 오히려 누가 현실을 모르는 건지 속으로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고려의 물산과 그 거래에 신료들보다 눈이 밝은 천자께서 정화의 우려를 무시하지 않아, 일단 추가적인 징병을 명하시긴 하였으나, 워낙 신료들의 반대가 크고, 천자께서 먼저 우려하셨듯이, 징병에 대한 피로가 많이 쌓여 있는 터라, 강력하게 계속 추진하실지가 의문이었다.
여전히 길을 여는 호령꾼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사이, 마차는 근처 포구로 향했으니, 정화의 근심과 걱정은 대운하를 통해 제녕으로 향하는 배 위에서도 계속되었다.
* * *
쿠궁!
탐라특별시에 속한 범섬 근방에서 여러 척의 군선들이 모여 연신 방포하고 있었다.
파병을 완료하고 그 자리에 새로 모병된 신병들이 훈련에 매진하고 있었으니, 신병 훈련이 제2 군단의 몫이긴 하나, 수군의 훈육은 탐라섬과 남면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몽주가 화극 총리와 함께 수군 방포 훈련에 시찰을 나선 이유는 신병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그간 미뤄 두었던 신형 거측기의 성능을 직접 시험해 보기 위함이었다.
새로운 거측기는 일견 망원경과 똑 닮아 있었다.
아니, 사실 망원경이었다.
이제는 탐라군 내에 널리 보급된 망원경에 새로운 기능이 더한 것이었다.
그 거측기 겸 망원경은 두 개의 원통을 붙여 조절함으로써 먼 거리의 사물을 확대할 수 있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 두 원통의 연결을 나선의 홈으로 하여 원통을 돌림으로써 초점을 보다 정밀하게 맞출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접안경의 원통 옆에 눈금과 숫자가 표기되어 있었으니, 망원경으로 원거리의 사물이 잘 보이도록 초점을 맞추고 난 후, 그 눈금과 숫자를 확인하면 바로 거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대물 ‘렌즈’와 접안 ‘렌즈’를 통해 맺히는 상의 사물까지의 거리에 따라 렌즈 간의 거리도 달라짐에 착안한 것으로 기존의 거측기와 달리 그 사물의 대략적인 크기를 알지 못해도 거리를 파악할 수 있고, 당연히 좀 더 정확한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물론, 여전히 너무 먼 거리는 측정하기 어렵고, 반대로 너무 가까워도 측정치가 부정확해지는 단점이 있긴 했지만, 그 거측기를 통해 거리를 측정할 화포의 사정거리 내에서는 상당히 믿을 만한 정확성을 보여 주었다.
“흠, 화포를 다룬지 별로 오래 되지 않았을 터인데, 벌써 꽤나 명중포를 많이 보이는군요.”
“거측 망원경의 효과가 아니겠습니까?”
화극 총리가 자랑스럽게 답하니, 전시 총동원을 이끄는 그가 거측 망원경의 제조와 보급을 직접 챙겼기 때문이었다.
상당히 촉박한 시간 속에서도 원정군의 화포장들이 하나씩은 가질 수 있을 정도의 물량을 만들어 낸 것도 다 그 덕분이었다.
몽주는 자부심이 절로 전해지는 화극의 대답에 미소를 띤 채, 거측 망원경을 시험해 보며 거리를 파악하길 반복했다.
꽤나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 거측 망원경도 몽주의 ‘힌트’ 없이 장인들이 망원경의 원리와 현상을 파악하고 이해하면서 스스로 새롭게 개선 발명해 낸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이번 전쟁에서 보인 그 거측 망원경의 쓰임새와 효용에 따라 어쩌면 아예 화포에 붙이는 형태로 발전되지 않을까 싶었다.
본격적인 광학 조준경의 시작이라고 할까.
“기분이 많이 좋아지신 듯합니다.”
“아, 그렇습니다. 이 거측 망원경도 마음에 들고, 신병들이 훈련을 잘 받고 있는 걸 확인한 것도 그렇고……. 적어도 먼 곳에서 제 맘대로 할 수 없는 걸 듣고만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요.”
사실 몽주가 신병들의 방포 훈련을 참관하러 온 더 본질적인 이유는 바로 기분 전환이었다.
총사령관이 보내온 장계 중에 서안의 진왕을 놓친 것과 요동국이 섣부르게 나하추를 끌어들인 것이 몽주의 기분을 망쳤던 것이다.
그 둘 중에서 더 기분을 상하게 한 건 진왕 주상이 명 황제에게 넘어간 일이었다.
익문 1대의 보고에 의하면, 아무래도 진왕이 그 왕씨 여인을 가지고 연왕을 도발한 탓에 관계가 급격히 틀어진 모양이었다.
몽주로서는 일국을 다스리는 자라면 부모를 욕하는 것도 꿋꿋하게 참아야 되는 게 아닐까 싶긴 했지만, 사실 그도 누가 아내 앵도를 가지고 도발하면 참기 어려울 것 같기는 했다.
어쨌든 방어선 전략에서 서쪽 축이 되어 줘야 할 서안을 잃은 건 꽤나 가슴 아픈 부분이었다.
그리고 서안을 잃은 것이 결국 나하추를 끌어들이는 걸 몽주가 결사로 반대하기 어려운 이유가 되었다.
몽주는 나하추가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세력을 키웠고, 그 세력을 믿고 차가타이 한국의 정복을 노렸다가 된통 당했다고 보고 있었다.
이미 차가타이는 동서로 분열된 중에 서(西)차가타이는 티무르 제국의 일부가 되어 버렸을 테고, 동(東)차가타이도 거의 무너진 상태일 테니, 아마 나하추는 그 약해진 동차가타이의 잔여 세력을 노리다가 티무르 제국의 심기를 건드린 게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나하추는 쉽게 손을 잡아서는 안 될 존재가 된 셈인데, 역사에서 ‘절름발이 티무르’가 명나라를 정복하려 출정했던 사실은 차치하더라도, 개척회사가 나하추와 손을 잡고 더 서진하려 한다면 자연히 티무르의 요격권 안에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는 몽주만이 아는 사실로 개척회사를 주도하는 요동국을 설득할 만한 근거는 될 수 없었고, 서안을 잃은 바람에 나하추의 세력이 제법 괜찮은 대안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반대하기가 어려워졌다.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알면서도 막지 못하는 건 꽤나 답답한 일이죠.”
“쉽게 생각하시는 게 어떻겠나? 명나라와도 대적하는 우리 고려라면 서역의 오랑캐 따위를 두려워할 필요가 있을까?”
“…….”
사실 따지고 보면, 몽주가 천몽 안에서 하는 모든 일은 1, 2백년 뒤에 아시아에 모습을 드러낼 서역의 오랑캐들이 두려워서 하는 일들이었다.
* * *
제녕의 명군 주둔지에 닿은 정화는 조전장수로서 정로대장군 경병문에게 인사를 올리고, 그의 임무와 권리를 확인받았으니, 전투를 주도할 수는 없을지라도 모든 전사(戰事)에 개입할 수 있고, 모든 군무에 일정한 책임을 지게 되었다.
대장군과의 만남 이후, 정화가 그 다음으로 찾은 자는 다름 아닌 철현이었다.
그를 찾은 첫 번째 이유는 그를 도독첨사(都督僉事)에 제수하기 위함이었으니, 큰 공을 세운 그에게 천자가 내리는 선물이었다.
다만, 그에게 새로운 벼슬을 공식적으로 내리는 것은 정로대장군의 몫이었고, 정화는 그것을 미리 알려준다는 핑계로 철현과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였다.
워낙에 많은 일들로 바쁘게 돌아가는 응천부의 사정 상 철현이라는 이름이 천자의 입에 오르내리는 건 하루 이틀에 불과했으나, 그의 이름은 분명 천자의 뇌리에 선명히 남았다.
실제로 정화가 제녕으로 떠나기 전에 천자는 철현의 자질을 살펴보고, 만약 인재다 싶으면 크게 키우라 명하기도 하였다.
정화에게 배정된 군막으로 온 철현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곁에는 참장 성용도 함께 있었다.
“철현 참정을 부르신다기에 저도 따라왔습니다. 개의하신다면 돌아가겠습니다.”
“아니, 잘 오셨습니다. 성 참장도 꼭 뵙고 싶었습니다.”
아직 젊디젊은 정화였지만, 성용은 예를 갖췄다.
조전장수라는 지위도 그렇고, 성명을 하사 받을 정도로 천자의 신임을 얻은 태감이라는 점도 누구도 정화를 그의 앞에서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만들었다.
물론, 철현도 마찬가지였다.
그에게 곧 도독첨사에 제수됨을 알렸음에도 그는 정화에게 깍듯했다.
“작은 공에 불과하거늘, 이처럼 크게 높여 주신 천자의 은혜에 감격할 따름입니다.”
기쁨 마음을 표현하는 건 오히려 참장 성용이 더하였다.
“참정, 아니, 도독첨사, 축하드리오. 이제는 군내에서 그 누구도 철 도독첨사를 무시하지 못할 게요.”
철현의 제안으로 진왕 주상을 전향시킨 것을 두고 명군 내에서는 그를 높이 평가하는 자들과 시기하는 자들로 나뉘었으니, 시기하는 자들은 주로 군무를 모르는 자가 함부로 나낸다고 비난하였다.
하나, 이제 명색이 종2품의 고위군관에 임하게 되었으니, 시기하는 자들도 비난할 거리를 찾기 어려워질 게 분명했다.
물론, 철현을 높이 평가하는 자들도 많았고, 당장 참장 성용도 그중 하나였다.
처음에는 다른 이들처럼 군무에 개입하는 그를 그리 달갑게 보지 않았지만, 이제는 철현을 고평가하는 것을 넘어 아예 절친하고자 하였고, 그를 시기하는 장수들로부터 철현을 보호해 주고 있었다.
“철 도독첨사는 진정한 이 나라의 충신입니다. 스스로 목숨을 걸고 고언하지 않았다면 명군은 서안을 공격했을 것이고, 우리 군세가 되었을 4만의 서안군과 싸우느라 크게 지쳤을 뻔하였습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정로대장군께서도 그 점을 강조하셨지요.”
대장군 경병문은 자신을 핑계로 대라는 철현의 요청을 따르는 대신, 장계에 자신이 가짜 어지(御旨)를 쓰도록 허락하였음을 알렸다.
그 제안이 철현으로부터 제안된 것도 알리긴 하였으나, 그것은 철현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의도가 아닌, 만약 공이 생긴다면 철현의 공임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확실히 경병문 장군은 비록 장수로서 크게 뛰어난 인물은 아닐지라도, 의심이 많은 선제마저도 숙청의 대상으로 삼지 않을 만큼 공명정대하고, 충성스러운 인물임에 틀림없었다.
이어, 정화는 자신은 이번 징병으로 20만의 군병도 모으기 어려울 것이라 여겼다면서, 그 이상으로 모을 수 있었던 것은 산동성 도지휘사사의 관리와 장수들을 설득한 철현의 덕이라 밝혔으니, 군막 안의 분위기는 더욱 온화해졌다.
그렇게 좋은 말을 주고받으며 분위기를 돋우길 한참 후, 정화는 그가 우려하는 부분에 대해서 밝혔다.
그러자 철현이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마치 마침내 자기가 하고 싶었던 대화를 나눌 상대를 만났다는 양 말문을 서둘러 열었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소장도 역도들의 규모가 예상보다 크다고 생각하던 중이었습니다. 근래 새로 파악하길 역도들은 이미 알고 있던 덕주 외 복양과 섬주에도 전위를 세워 두었습니다. 모두 비슷하게 5만에 이르는 대군이지요. 제가 보기에 이 전위의 거점들은 반드시 서로 통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명군이 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각개격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왕이 그 정도로 멍청할 리가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거점들을 서로 연결하는 작은 거점들도 있다는 말이니, 따져 보면 적어도 20만 이상의 군병을 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음, 과연……. 연왕의 군세가 최대 8만 정도라고 하면, 고려가 12만 이상의 군대를 보냈다는 말인데…….”
정화는 주름 한 줄 없던 팽팽한 미간을 찡그리며 고심하였다.
한때 연왕의 군세를 무척 작게 보았던 응천부였지만, 그것이 연왕이 그간 철저히 군세를 숨겨 왔던 것임을 이제 알고 있었다.
연왕이 봉기함에 북쪽에 감춰 뒀던 군세를 대대적으로 선보임으로써 연왕부 백성들의 사기를 진작시켰기 때문이다.
“혹시 고려가 수군 전력까지 모두 상륙시킨 것은 아닐까요?”
참장 성용이 조심스레 그의 생각을 밝혔지만, 정화나 철현이나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고려가 이번 전쟁에 전력을 기울인다고 해도, 그들의 안위마저 저버릴 리는 없을 것이외다. 수군을 상륙시킨다는 건 우리 명 수군이 바다로 고려를 곧바로 공격하는 것을 감수하겠다는 뜻이니 말이오.”
“하, 하면, 강대하다는 그 수군을 유지한 채로 12만이 넘는 군병을 따로 운용할 정도란 말입니까, 고려가?”
성용이 당황을 표할 정도로 놀라며 되물으니, 정화도 침중한 표정을 지었다.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한 것 같습니다.”
철현의 입가에 씁쓸함이 감돌고 있었다.
“이번 전쟁이 어찌 끝날지라도, 고려에 대해서는 그간의 선입견과 편견을 잊고, 새로이 다시 알아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참으로 맞는 말씀이시오.”
정화도 같은 생각이었다.
서로 생각과 마음이 통하는 이들이 모이자, 이내 이야기는 역도들에 대항하는 방법론에 관한 것으로 돌아갔으니, 세 사람은 그 밤이 늦도록 생각하고, 논의하길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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