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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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연-고려 연합군이 전략을 세움에 가장 먼저 정해야 할 것은 방어와 공격의 편중을 정하는 일이어야 했으나, 연왕이든 고려든 함부로 공격하는 것을 꺼렸다.
다만, 결과가 같다고 하여 이유도 같은 건 아니었으니, 연왕은 명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가 없는 상황에서 섣불리 싸움을 걸었다가 큰 피해를 입을 경우 삽시간에 무너질 것을 두려워한 탓이었고, 고려는 연왕에게 큰 승리를 안겼다간 자칫 그 기세를 타고 혹여나 아예 명의 황좌마저 차지하게 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어쨌든 연합군의 전략을 준비함에 있어, 그 첫 번째 방침은 방어인 바, 세 거점과 그 앞에 가상으로 정한 방어선을 통해 명군의 압박에 빠르게 대처하고 적이 비집고 들어오는 것을 꺾는 데 집중하였다.
“양주에서 고려의 군정을 알아보려는 대대적인 움직임이 있었다더군요.”
“음? 직례의 양주 말인가? 이미 고려인은 모두 떠나지 않았나?”
“그렇지요. 하나, 그간 떠들어 남겨 둔 말들은 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흐음, 그렇겠군. 워낙에 많은 상인들이 오갔으니, 그들 모두가 입을 무겁게 했을 리도 만무하지.”
통무총리 화극은 맘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말하였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인 것도 이해하고 있었다.
명나라와의 교역은 얼핏 보면 공무역이었지만, 탐라 상단은 물론, 그 외 크고 작은 많은 상인들이 간단한 절차를 통해 자유롭게 참가할 수 있었으니, 그들 모두를 철저히 관리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무관 출신으로서 화극은 나라의 방침에 만백성들이 일체로 따르길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일반 백성들 하나하나가 군병의 마음가짐으로 움직이길 바라는 건 과욕이었다.
“한데, 양주에서 그런 일이 있다는 건 어찌 알았나?”
“그야 거기에 있는 자들로부터 전해 들었지요. 고려 상인들이 다 철수했다지만, 그건 공식적인 것이고요.”
“으잉? 세작을 심어 둔 겐가?”
“세작이라면 세작이겠지요.”
명나라 백성으로 위장한 고려인도 있고, 고려 혈통이되 분명 명나라 백성인 자도 있고, 고려와 무관했으나 고려 상인에게 고용되어 지금도 고려를 위해 일하는 자들도 있었다.
많은 수는 아니지만, 그중에는 황성에도 드나들 수 있는 관리도 한둘 포함되어 있었으니, 황성의 깊은 비밀까지는 살피지 못하더라도, 관계나 시중에 떠도는 이야기를 갈무리하여 창도의 2함대로 전하는 일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었다.
“한데, 그 군정을 살피는 일을 주도하는 자가 환관이라더군요.”
“성영제가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군. 동야의 일로 인해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어렵게 가고 있음을 벌써 잊은 겐가?”
“동야와 무관한 자일수도 있겠지요.”
몽주는 그렇게 말하면서 머릿속으로 장계에 담겨 있던 이름을 떠올렸다.
정화(鄭和).
반가울 정도로 익숙한 이름이었다. 물론, 이름이 같다고 해서 이 정화가 본디 역사 속에서 제독으로서 이름을 떨쳤던 그 정화가 맞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아직 이십 대 초반에 불과한 나이일 텐데, 벌써 태감이 될 수 있나 싶었고, 또 정화라는 이름도 그가 연왕의 사람이 되어 연왕으로부터 받은 것이니, 천자의 환관으로서도 똑같은 이름을 받았을까 싶었던 것이다.
하나, 그런 역사적 사실과 상관없이, 같은 한자로 이뤄진 정화라는 이름을 가진 태감의 등장은 확실히 무시할 수는 없는 부분이었다.
역사에서 정화가 이룬 업적에 대한 평가가 분분하지만, 확실한 건 정화는 대단한 능력을 가진 자라는 점이었다.
정화에 대해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15세기 초에 엄청난 규모의 함대를 이끌고 동아프리카까지 닿은 건 아무리 명나라라는 제국의 힘을 등에 업고 이룬 일이라고 해도 평범한 인물이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님이 분명했다.
물론, 그런 대단한 정화와 지금의 정화는, 같은 사람일지라도 20년의 경력 차이가 있었으니, 그가 고려와 탐라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뭔가를 알아냈다고 해서 크게 두려울 필요는 없었다.
“우리의 파병 규모가 조금 더 크고, 군력이 더 강성하다는 걸 안다고 해도 명군이 그들의 방식을 바꿀 가능성이 있을까?”
화극의 말에 몽주도 동의하였다. 명나라는 객관적인 상황을 아는 것과 무관하게 연-고려 연합군을 공격해야 했다.
명분이 어떠하든, 지금 명나라의 상황은 반란군과 토벌군의 대립이고, 명나라의 천자는 그 자신의 위신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반란을 진압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객관적인 입장에서 객관적인 사실들을 다 알고 있는 이가 현재 명나라의 상황을 두고 판단한다면, 명군은 공격할 때가 아니라, 오히려 뒤로 물러나 방어를 하고 전선을 넓혀 그들의 최대 강점인 수적 우위를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지만, 명나라는 결코 그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고, 할 수도 없었다.
몽주는 명나라가 공격의 태세를 버리지 않는 이상 전국이 크게 바뀔 가능성은 없다고 보았다.
태세는 전략의 첫 걸음이고, 그 태세는 적과 아군의 전력을 정확하게 아는 바에서 기인하니, 이는 지피지기면 백전불태함의 실현이다.
한데, 명나라는 지피지기에 실패하고 있는 데다, 그것을 깨달은 자들의 주장은 명군의 최종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가 거의 불가능하니, 명나라의 태세 또한 실패하리라는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게다가 명군은 아군의 전술을 오판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가 거점을 지키는 데에 최선을 다한다고 여기겠죠. 하나, 우리의 거점은 피동적인 농성을 위한 거점이 아니라, 능동적인 요격을 위한 거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거점으로서 방어선을 설정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방어선은 비단 어느 일방향으로만 작동하는 건 아니지요.”
명나라가 공격해 올 것이라는 게 뻔한 상황에서 연-고려 연합군은 당연히 그 공격의 전술을 다각도로 예상했다.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건 명나라가 아군의 거점을 직접 공격하는 것인데, 세 거점을 골고루 공격하든, 어느 한 거점에 집중하든 상관없이, 연-고려 연합군의 입장에서는 가장 손쉬운 상황이었다.
다만, 명군에 생각이 있는 자가 있다면 거점을 직접 공격하는 것보다 그 배후를 노릴 것이라는 탐라군 내의 예측이 있었는데, 사실 그도 특별히 따로 대책을 마련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요격을 상정한 가상의 방어선인 터라 굳이 거점의 남쪽으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기에 실제로 방어선은 선이 아니라, 거점들을 포함하는 면(面)에 가까웠다.
거점을 정면으로 쳐들어오면 쳐들어오는 대로, 거점을 회피하면 회피하는 대로 나가서 싸우고, 물리치면 되는 것이다.
물론, 이는 그럴 만한 전력을 갖추고 있기에 할 수 있는 ‘짓’이었다.
“우리의 거점에만 집중하면 그 거점들 사이가 텅 빈 것처럼 보이겠지. 설령 뭔가 있다고 생각해도 그저 거점들의 연락선 정도로 여기거나, 조금 더 쳐줘도 작은 장애물처럼 생각할 게야.”
입가에 미소를 띠고 말하던 화극이 문득 턱짓으로 무언가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하나, 거점이 큰 치차(齒車 : 톱니바퀴)라면 그 사이에는 작은 치차가 놓여 있기 마련이지. 저것처럼 말이야. 작은 치차가 큰 치차를 돌릴 수 있음을 예측할 자가 명군에 있을까?”
몽주는 화극이 가리킨 방향을 보며 같이 미소 지은 채 고개를 작게 저었다.
있다 하더라도 이미 알고 있듯 명군의 태세를 바꾸긴 어려울 것이다.
지금 그 둘이 있는 곳은 1급 보호 시설로 지정된 어느 공소였으니, 그곳에서는 열기 기관, 즉 ‘스털링 기관’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미 ‘플루다인 펌프’을 실용화하고 있는 중으로, 스털링 기관의 원리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인 수준을 넘어선 탐라의 장인들은 기초적인 수준의 스털링 기관 제작에 도전하는 중이었다.
아직 실용화할 정도의 결과물은 없었지만, 오늘 몽주가 그 공소를 찾아온 건 그간 어려움을 겪던 부분에 돌파구를 찾았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효율은 좋지만 힘 자체가 약한 스털링 기관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플라이휠’을 대형화할 수 있으면 좋은데, 너무 커지면 스탈링 기관이 플라이휠 자체를 돌리기 어려워져서 한계에 봉착해 있었다.
한데, 장인들이 작은 플라이휠을 돌리되 그것과 큰 플라이휠을 톱니바퀴로 연결함으로써 큰 플라이휠의 큰 관성을 이용하는 방법을 구상한 것이었다.
사실, 굳이 따져 보지 않아도 단점이 명백한 방법이었다.
안 그래도 큰 기관이 더 커질 테고, 구동 체계가 복잡해질수록 마찰이나 톱니의 비(比)로 낭비되는 에너지가 많아져 고효율이라는 스털링 기관의 장점이 무색하게 될 게 뻔했다.
하나, 스털링 기관의 본색은 전기 기술의 발전과 함께 드러날 것임을 아는 몽주로서는 그 전까지 저런 식으로라도 쓸 만한 기관을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다 여겼다.
물론, 아직은 돌파구에 불과했고, 여전히 쓸 만한 기관이 나오기까지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터였다.
그저 아직 어린아이가 보인 걸음마에 기뻐하는 부모의 마음이랄까.
다만, 몽주든 총리든 진심은 탐라보다는 명나라에 가 있는 터라, 열기 기관을 보고도 곧 있을 싸움을 떠올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열기 기관의 미약한 움직임과 달리, 명군에 대항하는 연-고려 연합군의 ‘원동력’은 높았고, ‘톱니바퀴’도 제대로 맞물려 있었으니, 명군 앞에서 그 힘을 제대로 폭발시킬 수 있으리라 두 사람 모두 믿어 의심치 않았다.
* * *
명군과 진왕군 도합 약 35만의 병력 중 23만이 출병하니, 3만의 진왕군은 섬주의 근방을 압박하여 그곳의 연-고려 연합군의 발목을 잡았고, 나머지 20만의 명군은 1군 8만과 2군 12만으로 나뉘어 각각 복양과 덕주 방향으로 진군로를 잡았다.
이에 연-고려군은 탐보병의 전보를 통해 명군의 전략을 가늠하고, 그간 예상하여 마련해 두었던 작계대로 군을 움직였으니, 그 또한 명군 측이 예상했던 바와는 조금 달랐다.
명군 2군이 좌군 8만과 우군 4만으로 나뉜 것은 덕주의 남남서쪽으로 90길미쯤 떨어진 곳이자, 차하와 20길미쯤 떨어진 지역이었다.
명 2군 좌군은 진군 방향을 좌측으로 틀어 임청(臨淸)으로 향했고, 우군은 그대로 덕주의 남쪽으로 접근했다.
본디 참장 성용 등이 권한 전략은 좌군 전체가 거점을 회피하여 배후로 침입하는 것이었지만, 명군 제장(諸將)들의 반대에 부딪치면서 군의 일부로 하여금 덕주를 압박하도록 변하였다.
덕주에 있는 역도들의 발목을 잡거나, 혹은 좌군을 쫓기 위해 덕주가 비면 덕주를 공략하는 일거양득을 노리자는 주장이었다.
상용 등은 배후 침입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고 강변했지만, 그것이 도박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상, 명군 제장들의 주장을 뿌리칠 수 없었다.
실제로 명 2군이 둘로 나뉜 것은 연-고려 연합군에게는 꽤 이로운 결과를 초래했다.
두 군데서 적을 막아야 하는 건 부담이었지만, 명 2군이 둘로 나뉘면서 그 좌우군의 목표가 무엇인지 명확해졌으니, 만약 2군 전체가 차하를 넘었다면, 2군이 덕주로 진격할지 아니면 배후를 돌파할지 점쳐야 하는 애매한 상황이 사라진 것이었다.
탐보병에 의해 명 2군의 움직임이 확인되고, 이를 전해 들은 덕주의 연왕군 5만은 상황을 알리는 전령들을 내보낸 후, 작계에 따라 1만을 남기고 4만을 출격하여 임청 방면 차하의 북변으로 향했다.
4만의 연왕군이 목적지에 닿을 무렵, 명 2군의 좌군은 8만 중 약 3만을 도하시킨 상태였다.
그것을 확인한 연왕군이 즉시 공략에 나섰으니, 성영 1년이자, 계유년 11월 2일에 천자군과 정간군 간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개전하였다.
전투의 시작은 당연히 방포였다.
다만, 연왕군 4만이 끌고 온 화포는 10문에 불과했는데, 빠른 진군과 덕주의 방어를 위해 나머지는 그대로 남겨 두었기 때문이다.
하나, 그렇다고 방포에 참여한 화포가 10문에 불과한 건 아니었다.
‘작은 톱니바퀴’에 해당하는 부대들 중 좀 규모가 큰 부대는 한두 문의 화포를 가지고 있었으니, 그들은 덕주의 연왕군보다 먼저 근방에 도착해 있다가 곧바로 합류했고, 이로써 5천의 군병과 12문의 화포가 더해졌다.
하여, 도합 스물두 문의 화포가 근방 작은 구릉 위에서 방포를 개시하니, 도하하던 명군의 입장에서는 깜짝 놀랄 일이었다.
사실 명군도 역도의 군세가 접근하고 있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는 했다.
그리고 그 수가 이미 도하를 마친 명군 좌군의 수와 비슷함을 알고 조만간 오히려 먼저 공격할 계획이기도 했다.
하나, 설마하니 화포를 그처럼 많이(?) 가져왔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기에, 방포음이 연달아 들리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수밖에 없었다.
뻐버뻐벙! 쿠과광!
“물러나라! 당장 후퇴해!”
멀리서 울리는 방포음과 가까운 곳에서 터지는 폭발음이 변죽을 울리는 중에 경력(經歷) 하명은 후퇴의 깃발을 흔들면서 고래고래 외쳤다.
군공을 쌓기 위해 전위를 지원했던 것을 후회하는 순간이었다.
설마하니, 도하가 끝나기도 전에 역도들이 몰려올 줄 몰랐고, 설령 그렇다 해도 체감상 수십 문의 화포까지 동원하였을 줄도 몰랐다.
그저 적도 경무장일 것이라 여기고, 적이 접근한다는 보고에 적의 폭죽시를 견제하기 위해 그도 궁병과 노병을 전진 배치시켰는데, 예상치 못한 화포로 인해 그들이 큰 피해를 입고 말았다.
빠른 진군 속도를 위해 명 2군 좌군은 전부 경무장이었고, 열병기는 폭죽시를 쓰는 궁병과 노병이 전부였으니, 만약 그들 다수를 잃는다면 도하를 마친다 해도 그는 군공은커녕 오히려 처벌을 받게 될 상황이었다.
“나리, 도독께서 당장 적의 화포를 제압하라 하십니다!”
“……!”
하명은 놀란 표정을 짓다가 전방을 향했으니, 그가 앞에 배치했던 궁병과 노병들이 머리를 감싸 쥐고 도망쳐 오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 펼쳐진 평원에 솟아 있는 낮은 구릉 위에서 방포연이 흩날리는 게 보이고 있었으니, 대략 보아도 4리쯤 떨어진 곳이었다.
4리.
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달려가 공격할 만한 거리였다.
하나, 화포가 홀로 있는 건 아니었고, 화포가 놓인 구릉 주변에 역도들의 군세가 배치되어 있었다.
다만, 화포를 방어함에 전력을 기울이는 건 아닌지, 그 군세가 세 개로 나뉘어 서로 동떨어져 있었다.
워낙에 평평한 곳인 터라 적의 동향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었으나, 적도 명군의 움직임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화포를 제거하기 위해 적을 공격한다면, 오히려 적은 중앙군으로 막으면서 좌우군으로 도하하는 아군을 직접 공격할 수도 있어.”
도하를 끝낸 명군의 수와 역도의 군세가 비슷한 만큼, 화포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당장 가용 가능한 거의 모든 명군을 동원해야 할 것이니, 만약 전투에서 밀린다면 자칫 도하 자체가 실패할 수 있었다.
“하면, 어찌하오리까?”
“지금 진격하는 건 다 죽자는 말이지 않나. 회신하여 상황을 알려야 해.”
하명은 즉시 만년필과 종이를 가져오게 하여 상황을 설명하는 문권을 썼다.
그리고 그 종이를 화살에 꿰어 차하 건너편의 좌군 지휘부를 향해 날렸으니, 그 회신이 돌아온 건 일각 후였다.
[재차 명하니, 즉시 적의 화포를 제거하라. 그 방법은 재량에 맡길 것이나, 만약 다시 거부한다면 군벌을 내릴 것이다.]와락!
“이런 개……! 이런 명을 내릴 것 같으면 부장(副將)이라도 한 명은 건너와야 할 것 아닌가! 무려 4만에 가까운 군병이 있거늘…….”
하명은 회신을 구긴 채 이를 갈았다.
뭔가 심상치 않은 예감이었들었다. 아무래도 좌군 지휘부에서 군략이 아닌 정치적인 판단을 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나, 명은 명이었고, 종5품 경력에 불과한 하명은 다시 명을 고려해 달라는 요구를 할 수 없었다.
“즉시 군병을 추슬러 출진 준비를 하게.”
“예…….”
명을 받은 군관이 암울한 표정으로 떠났다. 그가 봐도 말도 안 되는 상황임을 깨달은 것이리라.
경무장의 좌군, 그나마 기마군이 다소 포함되어 있긴 하나, 도하를 마친 건 3천 기에도 미치지 못했다.
게다가 지금도 날아오는 철포탄에 피해가 누적되는 중이었다.
다행히 사거리가 충분하지는 않은지, 뒤로 후퇴한 명의 군진까지 날아오는 포탄은 드물었지만, 소문대로 날아와 터지는 포탄의 위력은 일단 군진 안에 떨어지면 어김없이 사상자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 * *
하명이 하급 군관들과 더불어 무려 3만 5천의 병력을 이끌고 출진한 건 한 시진 뒤였다.
그쯤에 명군은 도하를 멈추고 부교를 서남쪽으로 2리가량 이동시키는 중이었다.
“저들이 다 죽을 수도 있습니다.”
부교가 옮겨 가는 걸 멀리서 보고 있던, 좌군을 이끄는 도독 영충(甯忠)의 귀에 참군의 말이 들렸다.
“그럴 수도 있겠지.”
“다 버리실 요량이십니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적들이 이미 알고 몰려왔으니, 도하를 마치기 위해서는 비슷한 전력으로 막아야 하니까.”
“…….”
숫자가 비슷하다고 해서 비슷한 전력은 아니었다. 적은 화포도 있고, 방어하는 입장이었으니, 여러모로 적이 유리한 상황이었다.
물론, 이를 모를 리가 없었다.
“어차피 이번 싸움의 대계는 참장 무리가 간언한 것이네. 우리는 그저 도하만 성공시키면 족하고, 도하를 통해 얻어야 했던 전공을 얻지 못한 건 참장이 책임져야겠지.”
“하나, 전략이 통째로 막힌다면 도독께서도 전혀 책임지지 않으실 수가…….”
“쯧쯧, 그렇지 않아. 자네는 참군이면서 어찌 보이는 전국만 따지고 있는 겐가?”
끼어들며 말한 자는 도독의 측근인 우부장 진장호였다. 그가 마치 훈계하는 듯한 태도가 참군으로서는 기분 나빴지만, 그 전에 그가 지적한 뜻을 깨우쳤다.
“아…….”
생각해 보니, 지금 역도가 4만이나 이곳에 몰려왔다면, 덕주에는 고작 1만이 남아 있을 뿐이니, 덕주로 향한 4만의 우군이라면 충분히 공략할 만했다.
전에 들어온 군정에 의하면 덕주의 역도들은 성이 아닌 덕주 고을 자체를 방패 삼아 주둔하고 있다 하였다.
본디 덕주에 쓸 만한 큰 성이나 요새가 없기도 했지만, 다른 거점에서도 성을 별로 쓰지 않는다 하였으니, 공략하는 명군의 입장에서는 참 고마운 일이었다.
“어리석은 자들이야. 그렇게 오래도록 주둔하고 있었다면, 몇 개의 요새를 짓고도 남았을 텐데 말이야.”
“지금쯤이면 덕주가 불타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역도들도 그 불길에 떼죽음을 당하고 있겠지요.”
우부장이 아부하듯 도독의 말에 추임새를 넣었다. 참군은 그 모습이 꼴사나웠지만, 그의 말 자체는 틀리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덕주를 손에 넣으면, 굳이 우리가 위험을 무릅쓰고 배후를 침입할 필요가 없어지지. 그 이후에 우군과 합류하여 진격을 청한다면, 대장군께서도 거부하지 않으실 게야.”
도독은 이미 그가 뜻한 바가 이뤄진 것처럼 득의양양하였다.
이곳에서 많은 군병을 잃을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40만이 넘는 군병이 더 모이고 있었고, 무엇보다 덕주만 얻는다면, 적은 완전히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적의 세 거점은 서로 호응하기엔 다소 거리가 멀었다.
하물며, 덕주가 함락되어 그 방면의 방어선이 무너지면 남은 두 거점들도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거기에 지리적인 문제도 있으니, 적이 다시 방어를 갖출 곳은 태원과 창주(滄州) 정도는 되어야 할 테고, 이는 삽시간에 역도의 강역을 삼분지 일로 줄이는 쾌거였다.
물론, 도독은 복양과 섬주에서도 명군이 또 다른 승리를 취할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었다.
어느 겁쟁이들의 호들갑과 달리, 이번 전쟁은 아주 쉽고 빠르게 끝날 것 같았다.
“경력 하명이 진격하였다 합니다.”
“…….”
군병의 보고에 도독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차하 강변 너머 하늘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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