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390)
* * *
“어이차! 우아…… 엇!”
첨벙!
힘껏 들어 올린 낚싯대가 휘어지니 대물이다 싶었는데, 장정의 팔뚝만 한 무언가가 물 밖으로 끌려 나오다가 도로 물에 떨어져 사라져 버렸다.
“에이…….”
몽주는 가벼워진 낚싯대 끝을 허망하게 바라보다가 도로 앉아서는 미끼를 끼웠다.
잠시 후, 다시 낚싯대를 드리운 몽주는 들려오는 파도소리를 벗 삼아 가만히 앉아 있었다.
물론, 몽주만 홀로 그 자리에 있는 건 아니었다. 탐라공을 호위하는 자들이 주변에 있는 걸 차치하더라도, 바로 곁에 석삼이도 낚싯대 하나를 놓고 앉아 있었다.
조금 전 몽주가 고기를 낚을 뻔했을 때도, 무료한 표정으로 별 반응을 보이지 않은 걸 보면, 그리 오고 싶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이렇게 놀고 있어도 되는 겁니까?”
“놀고 있는 게 아니라, 낚시를 하고 있지 않냐.”
“이게 노는 거나 뭐가 다릅니까. 지금도 총리는 문권 더미 옆에서 열심히 일하고 계실 터인데…….”
“네놈이 할 말은 아니지 않냐. 대저 작금의 탐라 관리들 중에서 네놈보다 더 한가한 자가 있더냐?”
“그야 제 업이 이번 싸움과 별 상관이 없기 때문 아닙니까. 오히려 이번 싸움으로 인해 제가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하게 되었지요.”
남양대사로서 석삼의 업은 결국 남쪽 먼 바다에 있었고, 지금은 여송섬에 집중해야 할 때였다.
하나, 이번 싸움으로 나라의 모든 힘이 전쟁에 투입되고 있는 바, 여송섬의 개발은 기본적인 것을 제외하면 모두 연기되거나 중단되었고, 자연히 석삼도 굳이 여송섬으로 가 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할 일이 사라진 상태였다.
“하면, 네게도 임무를 주랴, 이번 싸움과 관련 있는 걸로?”
“……뭐, 굳이 그러실 필요가 있습니까. 제 아내가 바쁘니, 저라도 한가해야죠.”
아들딸과 잘 쉬고 있는 석삼으로서는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그의 아내 점녀가 나라 살림과 관련된 문제로 몹시 바쁜 것과 아주 비교되는 삶을 영위 중인 것이었다.
“그러면 입 다물고 내 생각이나 끊지 마라.”
“오호, 세월을 낚는 게 아니라, 생각을 낚는 중이시란 말이지요?”
“오냐.”
“지금 전황에 대해 걱정이 있긴 있으신 거지요?”
“오냐. 방해하지 말래도.”
석삼은 정말 방해하지 않았고, 두 사람과 호위군병 몇몇만이 있는 어느 바위 해안 근방은 파도 소리밖에 안 들리는 적막한 상태로 바뀌었다.
그 고요함 속에서 낚시찌를 응시하는 몽주는 진심으로 생각을 낚는 중이었다.
‘너무 유리하게 예상한 것일까?’
명나라의 의병은 어느 정도 예상했다. 성영제가 똑똑한 편이니 수세가 확실해지면, 의병 카드를 꺼내 들 가능성이 충분하다 여겼다.
그래서 그런 의병에 대응하기 위한 군세를 따로 마련해 둘 걸 탁기에게 신신당부해 두기도 했다.
다만, 그렇다고 전해진 보고에 적힌 것처럼 많은 의병들이 봉기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기껏해야 한 10만 정도? 그것도 상당히 크게 잡은 수라 여겼다.
몽주가 현대에서 재상, 두신과 더불어 그 정도의 수를 예상한 것은, 상당히 나이브한 방법이긴 했지만, 일제 강점기 독립투사의 수에서 유추한 것이었다.
시대가 다르고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외세의 침입에 구체적으로 저항하는 인간의 비율을 따져 보기에는 한국인으로서 일제 강점기 전후의 상황보다 더 나은 경우가 없었다.
공식적인 독립운동가, 그러니까 스스로 신변의 안전을 뒤로 하고 독립운동에 나섰다는 증거가 분명한 분들의 수는 대략 13,500명 정도였다.
당시 한민족 전체의 수가 3천 5백만 정도이고, 구한말부터 광복까지 두 세대 정도의 기간이니, 대략 5천만 정도를 ‘모집단’의 수로 보고 계산하면, 거의 4천 명 당 1명꼴로 독립운동을 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여기에, 공식적인 독립운동가 외 증거가 없어서 독립운동가로 지정되지 못한 분들도 계실 테고, 동학농민군이나 여타의 의병 활동같이 단체화된 경우도 포함시킨다면, 훨씬 더 많은 분들이 독립운동을 했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1, 2천 명 당 1명 정도일 것이다.
물론, 그 비율을 그대로 명나라의 경우에 잣대로 삼을 수는 없었다.
근현대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천자의 영향력이나, 아직 민족주의라는 근현대적 개념은 없지만, 민족주의와 유사한, 혹은 그 이상의 역할을 할 중화사상의 존재, 당금 명나라가 구한말이나 일제 강점기에 비해 시대 보정상 더 나은 나라, 즉 더 지키고 싶은 나라일 것이라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더 많은 이들이 의병에 나설 가능성이 있었다.
반대로, 이번 싸움이 애초에 외세의 침공이 아니라, 선제의 황자들 간의 권력 다툼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나, 아직 중국의 몇몇 지방은 중국에 속하긴 하나, 한족 중심의 중화사상에 물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 등은 의병에 호응할 비율을 감소시킬 변수였다.
하나, 그런 걸 일일이 따져 정확하게 계산하는 건 불가능하기에, 나름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여 1천 명 당 1명꼴로 의병이 될 것이라는 걸 최대치로 가정했다.
즉, 대략 1억 명의 명나라 인구를 생각하면 10만 명 정도가 최대라 여겼던 것이다.
때문에 탁기가 강병문의 군세를 무찌른 후에도 8만가량의 군세를 남겨 두었다는 탁기의 보고에 너무 많이 남겼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후 연-고려 점령지 내에서 서너 번의 봉기가 연달아 생기고, 그걸 빠르게 진압하기 위해 8만의 군세를 거의 다 움직여야 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오히려 탁기의 판단이 정확했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와 더불어 명나라 의병의 수가 결코 예상과 같지 않았음을 예감할 수 있었고, 그것이 사실임이 드러났다.
인구 1천 명 당 1명을 아득히 넘어 인구 200명 당 1명 정도에 이르렀고, 아직 끝난 것도 아니었다.
민족주의가 형성되지 않은 시대에 중화사상은 그만큼이나 독보적으로 무서운 이념이었다.
“에휴, 떼놈 쉐끼들…….”
“……?”
병자호란 이후에나 생긴, 처음 듣는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 석삼의 시선을 무시하곤 몽주는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
아니, 하려고 했는데 문득 석삼이 물어 왔다.
“설마 지진 않겠지요? 그러니까 단순히 패퇴하는 걸 넘어 괴멸…….”
“그럴 리 없다.”
“……자신하십니까?”
“총사령관이라면 그런 우를 범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아, 뭐, 그야 그렇겠지요.”
석삼은 말이 씨가 될까 우려하여 더는 따지지 않았다.
다만, 그 걱정은 표정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으니, 자칫 탐라군이 붕괴될 정도의 대패를 당하면 설령 어찌저찌 연왕부의 독립을 이룬다고 해도 탐라국은 한동안 피해에 신음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군력의 감소뿐만 아니라, 생산과 소비의 기반이 인구에 있고, 그것이 탐라국이 발전하는 토대임을 다 공유하고 있었으니, 지금 탐라국의 관리와 지식층 중에 그 점을 우려하지 않는 자들이 없었다.
특히 탐라군에 속한 자들 대부분이 젊은 남녀들임을 생각하면 그들의 수가 감소한다는 건 미래 태어날 아이들도 사라진다는 것이니, 이는 같은 수라고 해도 역병이나 재해로 인한 피해보다 더 큰 타격일 게 분명했다.
그렇기에 그럴 리가 없다고 답한 몽주도 걱정 어린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은 다 고려의 미래를 위해 과감하게 내린 결정인데, 미래 세대의 큰 피해를 감수하는 결과는 피하고 싶었다.
몽주의 머릿속에 한국 전쟁 당시 중공군이 떠올랐다.
미군은 물론, 다른 유엔군이나 심지어 한국군보다도 형편없는 무장을 하고도 인해전술이라는 어이없을 정도로 극단적인 전술로 전황을 동등하게 만들어 버린 중국인민군의 위력을 생각하니, 절로 속이 쓰라렸다.
‘탁기, 부탁함세.’
몽주로서도 지금은 그저 탁기의 전공을 바랄 뿐이었다. 어느 물고기가 미끼를 물었는지 낚싯대가 휘청거리는 걸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간절하게…….
* * *
“삼 남매가 있습니다. 아들 둘, 딸 하나죠.”
짧게 자른 머리카락마저도 꼭 묶은 여성 장교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답하였다.
“그립지 않으시오?”
“왜 안 그렇겠어요? 하지만 수천 리 떨어져 있으니, 이걸 보며 위로하고 있지요.”
성신 대위는 군복 주머니에서 손바닥 만하게 접힌 종이를 펴보였다.
숱하게 폈다 접었다 하길 반복한 듯 구김 자국이 많은 그 종이 안에는 그녀를 포함하여 그녀의 가족이 그려져 있었다.
남면에서 살던 그녀의 파병이 결정되자, 가족과 함께 그곳의 화방(畫房)에서 그린 것이라 하였다.
“여인이니, 굳이 파병 오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소?”
“그렇게 말씀하시기에는 명나라에 온 군병 중 여성이 적지 않습니다.”
“음, 그건 그렇군요.”
당금 파병온 탐라군 중 열에 하나 정도는 여성이었다. 물론, 전투 일선에 참여하는 군병 중에는 여성을 찾기 어려웠다.
아무래도 후방 직책 중에 많았는데, 보급이나, 취사, 문서를 다루는 일에 주로 배치되어 있었다.
지금 나본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성신 대위도 보급 쪽에서 일하는 장교였다.
한때 거의 삼분지 일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여성들이 탐라군에 들어왔지만, 지금은 많이 줄어 오분지 일 이하였으니, 탐라군병이 유지해야 할 체력적인 기준이, 남녀의 차이가 있다고 해도, 여성에게 더 엄격한 편이었고, 혼인 무렵에 여성 군병이 전역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여러 산업이 발달하면서 여성들이 일할 수 있는 곳이 많아지다 보니, 자연히 여성에게 직업으로서의 군병은 그 인기가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현재 탐라군에 속한 여성 군병들은 오히려 더 군인다운 기강을 갖추고 있었다.
“솔직히 묻겠소. 같은 수라면, 여성이 섞인 것보다 남성으로만 이뤄진 군세가 더 강대하다 여기진 않으시오?”
“탐라군이 그저 창칼로 적과 겨루기만 하는 군세라면 그렇겠지요. 하나, 화포와 총포를 쓰는 탐라군이라면 크게 다르다 여기지 않습니다. 그에 비해 군세에 여성이 있음으로 해서 생기는 이득이 적지 않습니다. 실제로 파병을 준비하면서 지원하는 여성 군병의 수가 너무 적자, 지휘부에서 따로 설득하는 일도 있었지요.”
나본은 고개를 끄덕였다. 성신 대위와 이야기를 하기 전에 만난 어느 고위 장교도 그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었기 때문이었다.
탐라군이 그 체제를 일신한 뒤로 꽤 많은 시간이 흐르매, 여성 군병이 적절히 있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차이가 경험적으로 증명되었다고 하였다.
여성 군병이 있는 곳은 사고도 적고, 문서나 보급 등 세밀한 관리가 필요한 직위에서는 특별한 장점을 보이며, 부대 전체의 전반적인 사기 또한 높다는 것이었다.
얼핏 남녀 문제같이 우려할 사항이 늘어나는 건 아닐까 걱정했던 나본으로서는 의외였는데, 그런 일이 아주 없진 않지만, 그런 짓을 저지를 자는 군대에 여성이 없더라도 다른 형태로 문제를 저지를 자라는 단호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게다가 탐라군은 각 군병의 체력적, 정신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여지없이 전역하여 순위군으로 물러나야 하니, 그런 엄격한 관리도 군 내부에서 남녀의 차이가 균열의 원인이 될 가능성을 낮추고 있었다.
“바쁜 중에 시간을 내주어서 고맙소.”
“천만에요. 하면,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정중히 인사를 주고받으며 나본은 성신 대위를 보냈다.
삼국연의를 쓰며, 전황을 좌지우지하는 영웅들의 존재감에 집중했던 그로서는 체계와 단위로서 움직이는 탐라군을 파악하길 원했으니, 탐라군의 무명 장령군병들과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맥을 잡고자 하였다.
한데, 성신 대위가 나가자마자, 거의 곧바로 새로운 이가 들어왔으니, 제남의 지휘부에서 나본을 보좌하도록 붙여 준 장교, 길 중위였다.
“무슨 일이시오?”
본래 새로 담소를 나눠야 할 군병 대신 그가 들어오자, 나본이 의아하여 물었다.
“다른 군병들은 다시 원래 임무지로 돌아갔습니다. 좀 급박해졌거든요.”
“급박? 무슨 일이 있소? 명군이 쳐들어온 것이오?”
“아직은 아니지만, 그럴 움직임이 보이고 있습니다. 하여, 나 선생께 후방으로 이동하시길 청하고자 왔습니다.”
탐라공의 소개장이 있는 나본이기에, 어느 곳에서라도 지휘부의 배려를 받을 수 있었다.
조금 전까지 그러했듯 몇몇 장교와 군병들을 초빙하여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도 그 덕이었다.
그건 곧 지휘부 또한 탐라공의 관심을 받은 나본의 안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으니, 지금 제남이 전화에 휩싸일 상황이 되자, 그의 피신을 권한 것이었다.
물론, 나본은 그에 응할 생각이 없었다.
“쫓아내지 마시오. 방해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소.”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하면, 절 따라오십시오.”
길 중위는 나본을 지휘부로 데려갔다. 길 중위도 본디 지휘부에 속한 장교였던 바, 지휘부의 운영을 담당하는 다른 장교들에게도 나본을 소개시켜 향후 급박한 상황이 생겨 그가 나본을 챙길 수 없게 되면, 다른 이들이라도 그의 안전을 도울 수 있게 했다.
물론, 거처도 지휘부의 공동 군막으로 옮겼으니, 나본은 내친 김에 지휘부의 상황도 보길 청하였고, 길 중위는 곤란한 상황에도 지휘부의 허락을 받아 주었다.
그렇게 군막을 옮긴 지 하루 만에 나본은 제남으로 와서 인사를 위해 방문한 이래 처음으로 지휘부에 다시 들어갈 수 있었다.
제남의 관아에 마련된 지휘부에는 연왕과 탁기를 중심으로 여러 장군과 장교들이 모여 있었고, 계속 들어오는 군정으로 시끌벅적하였다.
다른 때 같으면 인사라도 주고받았을 테지만, 지금은 나본이 들어가도 아는 체를 하는 이가 없었고, 나본도 굳이 인사하느라 군무를 방해하는 대신, 구석진 곳에서 길 중위가 가져다 준 호상에 앉아 초롱초롱한 눈으로 지휘부의 여러 상황을 눈에 담기 시작했다.
“청주(靑州 : 칭저우) 방면 명군의 규모는 파악되었는가?”
“오만 이상 십만 이하로 추정됩니다.”
탁 총사는 참모 장교의 대답에 이맛살을 찌푸렸다.
“너무 부정확해. 그래서야 얼마나 그 방면으로 군력을 보낼지 정할 수가 없어. 최대한 빨리 적세를 파악하도록 하게.”
“옛!”
탁기가 다시 지도로 시선을 돌리자, 곁에 있던 연왕이 그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청주 쪽은 의용군 위주일 것이오.”
“그렇겠지요.”
“중요한 건 제남을 지키는 것이니, 청주 쪽 군세가 얼마나 되든 가능한 적은 군병을 보내는 게 낫지 않겠소?”
“하나, 너무 적으면 적세가 우리 군을 묶어 두고 후방으로 침투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무장도 형편없는 자들이니, 덕주에 있는 예비 군세로도 충분히 막을 수 있지 않겠소?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제남을 지킨 뒤에 따로 요격하고자 하면 능히 물리칠 수 있을 것이오.”
후방에 있던 8만의 아군 중 2만을 제외한 6만은 나뉘어 정주와 제남에 귀속되었다.
빠른 제압으로 점령지의 의병 봉기를 막았으니, 이제는 후방을 지키는 것보다 정주와 제남을 지키는 것에 집중할 때였다.
“우리 탐라군이 후방을 중히 여기는 이유를 잘 아시지 않습니까.”
“알다마다. 하나, 전쟁이란 늘 풍족하게 치를 수는 없는 법이오. 잠시 보급이 불안정해지더라도 참는 것이 전쟁에서는 중요한 덕목 아니겠소. 어차피 군량도 충분하고, 포탄과 화약도 넉넉하지 않소?”
“…….”
일견 맞는 말이라 탁기도 고심하였다.
보급은 열 번을 중요하다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지만, 전쟁에서 모든 걸 풍족하게 사용할 수 있길 바라는 건 사치였다.
다만, 그럼에도 탁기가 고민하는 이유는 자칫 제남을 지키고도 보급이 불안정해져 그 이유로 후퇴해야 하는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모든 걸 책임지겠소. 만약 보급에 문제가 생기면 모두 내 잘못이오.”
탁기는 고개를 저었다.
연왕이 책임지고자 하는 자세는 높이 살 만하나, 그건 아무런 변수도 아니었다.
그가 잘못했다고 인정한다 해서 불안정해진 보급이 나아질 것도 아니고, 잘못된 선택을 한 지휘부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탁기의 반응에 연왕이 몸이 달은 양 다시 재촉하였다.
“이보오, 탁 총사. 탐라국이 이번 싸움에서 바라는 것이 우리 연왕부의 독립과 존속임을 알고 있소. 나 또한 동의한 바이오. 하나, 그 합의에서 서안과 홍택호를 잇는 영토를 연왕부가 얻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었소. 만약 제남을 지키지 못한다면 언제 다시 홍택호를 노릴 수 있겠소?”
홍택호(洪澤湖)는 결국 황하와 회수가 합쳐지는 곳으로, 제남에서도 1천 리는 더 남쪽에 위치한 대호(大湖)였다.
제남을 지킨다고 반드시 홍택호까지 영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제남에서 더 물러난다면 홍택호는 분명 바라기에 너무 먼 곳이 될 수밖에 없었다.
태산이 서쪽을 막고 있는 탓에, 산동반도를 확실히 영토로 삼기 위해 홍택호 이북의 땅을 얻어야 하는 연왕으로서는 그렇기에 제남의 방어가 최우선일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탁기는 잠시 후 큰 호흡과 함께 결단을 내렸다.
“청주 방면은 다른 군력으로 막는 걸 생각해 봐야겠군요.”
“음?”
“탐라수군 1함대와 2함대를 상륙시키는 방안 말입니다.”
“오오, 좋은 생각이시오. 그리하면 분명 청주 방면을 확실히 막을 수 있을 것이오. 제남의 군력을 유출할 필요도 없고.”
연왕이 반가운 기색으로 환영하는 것과 달리, 정작 탁기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분명 제남과 청주 방면의 방어를 생각하면 탐라수군을 투입하는 것은 좋은 한 수임에 틀림없었다.
하나, 그렇게 되면 장강 하구를 막아 명 수군이 바다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임무는 오직 탐라수군 3함대의 몫으로 남게 될 것이었다.
명 수군이 눈치채기 전에 1, 2함대가 청주 방면을 안정시키고 다시 바다로 복귀한다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만약 그 전에 눈치챈다면 명 수군이 봉쇄된 해역을 뚫거나, 탐라섬을 공격하려 할 수도 있었다.
물론, 탐라 3함대의 위력만으로도 명 수군을 막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여기나, 해전은 육전과 달리 한 번의 결전이 곧 승패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으니, 혹시 모를 가능성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탁기 총사는 다시 탐라군 장교들을 모아 그의 작계를 논의하니, 다들 우려를 표명하긴 하였지만, 그 방법이 최선임을 인정하였다.
그에 전령이 곧바로 군진을 나서니, 급히 달린 끝에 명을 전해 받은 장산군도의 1함대가 곧바로 나섰고, 그에 앞서 전령선이 먼저 창도의 2함대를 불러와, 두 함대가 하루 간격으로 산동성 북부 내주(萊州) 해안에 상륙하였으니, 한창 의용군의 군세를 불려 북진하려던 명군의 옆구리를 칠 수 있었다.
의용군이라곤 하나 적지 않은 수가 강제로 끌려 나온 장정들에 불과한 명군은 잠깐의 저항 끝에 쉽게 무너졌으니, 탁기가 탐라수군을 쓰기로 결정한 지 고작 여드레만의 일이었다.
물론, 그사이에 제남과 정주에서도 전투의 막이 올라 엄청난 규모의 명군을 상대해야 했다.
제남의 남쪽 거의 전역에, 5리에 걸쳐 촘촘히, 그리고 튼튼히 만들어 둔 철조망 방어책(柵)이 하루 만에 뚫릴 정도로 엄청난 병력을 쏟아부은 명군의 기세에 제남의 연-고려 연합군은 위기에 봉착하는 듯싶었다.
그때, 탐라군이 만약을 대비하여 마련해 둔, 그러니까 명 황제가 의병을 호소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부터 마련한 방책이 빛을 발하였다.
그것은 화포로 대변되던 탐라육군에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였고, 실제로 탐라육군에 전문적인 공병(工兵)이 육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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