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397)
아버님, 어머님, 두루 평안하신지요.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어느새 겨울이 깊어 갑니다. 함주는 그나마 나은 편입니다만, 유덕 철소가 있는 무산은 벌써 한겨울이랍니다.
탐라의 포근함이 그리워요. 여기보다 추운 곳도 많을 터인데, 겨울옷도 변변치 못한 시절에는 어찌 사람이 겨울을 날 수 있었을지 의아하기도 해요.
남편은 요사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요. 함주와 무산 사이 오가기를 밥 먹듯이 합니다.
가끔 밤에 홀로 잠을 청하려면 원망스러운 마음도 들 정도로요.
이게 다 아버님 탓이에요. 연해주 개척 사업을 추진하면서 유덕사에 일감을 크게 안겨 주셨잖아요.
물론, 다 도와주시고자 하신 건 잘 알고 있어요. 덕분에 유덕사는 하루가 멀다 하고 크게 성장하고 있지요.
마치 우리 막둥이가 크는 것처럼요. 원래도 우량하게 태어나서 절 제법 힘들게 하더니, 나와서도 힘차게 젖을 먹으며 크고 있어요. 심지어 젖먹이 보모를 하나 더 둬야 할 정도로요.
그나마 쌍둥이가 이제는 어미랑 좀 떨어져 있어도 괜찮은 나이라 다행이에요.
우리 장남 승제는 체력이 굉장해요. 가끔 그 아이와 뛰어놀다 보면 제가 먼저 지칠 정도로요. 아시죠? 제가 어지간한 사내보다도 튼튼한 걸요. 그런데도 승제는 가끔 못 당하겠다 싶어요. 호호.
그에 비해, 순화는 정말 순해요. 어찌나 예쁜 짓만 골라서 하는지, 어떻게 하면 귀여움을 받는지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요.
기억나세요? 쌍둥이 세 돌 때, 승제가 아버님 수염을 마구 잡아당겼던 거. 그때도 순화가 뒤뚱뒤뚱 걸어가서 아버님 두 볼을 쓰다듬으며 호오 하고 아프지 말라고 입김을 내었잖아요.
두 아이가 정말 달라요. 한날한시에 같은 배에서 나왔는데도 어찌나 성정이 다른지 몰라요.
승제는 장군감이고, 순화는 학자감이랄까요. 마치 저랑 삼촌 어릴 때를 연상케 해요. 그러고 보니, 성별은 바뀌었네요.
물론, 승제가 장군감이라곤 해도, 실제로는 그냥 장난꾸러기며 개구쟁이고, 순화가 학자감이라고 해도, 실제로는 그냥 착하고 책읽기를 좋아하는 정도지요.
그게 제 눈에는 참 좋아 보여요. 특히, 삼촌 같은 괴물은 사양하겠어요. 호호.
아, 삼촌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아버님이 삼촌에게 타일러, 우리 순화 좀 그만 괴롭히고 장가나 가라고 해 주세요.
자꾸 순화에게 자기 딸 하라면서 자기랑 같이 가면 재밌는 책 많다고 꾀는 데 종종 장난 같지가 않아요.
한 주 전에도 삼촌이 여기로 찾아왔는데, 거의 한 달 걸러 한 번씩은 찾아오는 것 같아요. 매번 말로는 근방에 왔다가 들렀다고 하는데, 학자가 그렇게 나돌아 다닐 리가 있나요.
분명히 순화가 보고 싶어서 오는 것 같은데, 그렇게 딸이 좋으면 진즉에 장가가서 딸을 얻을 것이지, 왜 조카딸을 탐내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중신을 서겠다고 해도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젓는데, 답답해 죽겠어요.
그나저나 아버님, 이제 곧 남양으로 떠나신다면서요? 굳이 위험한 항로로 먼 길을 가셔야 하는 지요.
아버님께서 어련히 다 살피고 판단하신 것이겠지만, 굳이 그렇게 먼 바다 너머까지 가셔야 하는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이제 국업보다는 건강을 더 살피셨으면 좋겠어요. 아버님도 이젠 청년이 아니시잖아요.
저뿐만 아니라 비단 탐라 백성들과 온 고려의 백성들이 아버님의 장수와 무탈을 기원하고 있어요.
그제도 절에 공양드리러 갔다가 제게 몰려든 백성들의 축원을 받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다 아버님을 대신한 축원이었지요.
그 축원과 더불어 사람들은 늘 말하곤 해요. 자신들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고, 얼마나 좋아졌는지를요.
사실 말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어요. 탐라시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함주도 무척이나 번화하고 있으니, 눈으로 볼 수 있지요.
비록 함주가 요동국에 속해 있지만, 함주가 탐라국의 덕으로 부흥할 수 있다는 걸 함주 사람들은 다 알고 있어요.
예전에 명나라와의 전쟁 이후, 요동국의 물가가 크게 올라 사람들이 고생할 때도, 탐라국에서 특별히 지원해 줘서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던 건 지금도 종종 함주 사람들의 인구에 회자되곤 해요.
그런 이야기를 듣고, 눈으로 확인할 때면, 제가 아버님과 어머니의 여식임이 자랑스러워요.
아버님, 어머님, 마지막으로 뵌 지도 삼 년이 흘렀네요. 그립고 또 그립습니다.
막둥이가 배를 탈 수 있는 나이는 되어야 다시 뵐 수 있겠지요. 더 어릴 적엔 몰랐는데, 저도 세 아이의 어미가 되어서일까요, 두 분이 진정 그립습니다.
다시 뵐 그날까지 만수무강하세요.
아, 막둥이가 깨었나 보네요. 제가 글을 마칠 때까지 참았나 봐요. 아주 울음소리가 우렁차요.
그럼, 이만 마칠게요.
* * *
명나라와의 전쟁 이후, 고려가 겪은 부작용 중 가장 치명적인 것은 물가의 상승이었다.
전사자와 전상자가 생기고 그들을 부양하는 것도 부담이었지만, 어차피 전쟁을 치르면 겪을 일이라 모든 고려 사람들이 다 예견하던 부분이었던 데 반해, 십여 년 동안 안정되었던 물가가 갑자기 치솟는 걸 예상한 자들은 그리 많지 않아 더욱 고통스러운 경험이 되었던 것이다.
다만, 탐라국 조정이 재빠르게 움직여 대응책을 모색했으니, 물산의 공급을 크게 늘리는 한편, 한 가지 새로운 방도를 동원하여 물가의 상승을 신속히 막아 냈다.
그 방도란 국채 발행이었다.
탐라국 전당에서 전당의 이자보다 조금 더 높은 이자로 채권을 팔자, 탐라국뿐만 아니라 고려 전역의 자금이 채권 구매에 몰렸다.
자연히 물산에 대한 수요도 감소되어 물가 상승의 근본적인 동력을 제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시중의 잉여 자금을 위한 투자처가 전당의 예금과 소규모 주식 거래소 외에는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전쟁 준비로 크게 풀린 돈이 물산의 소비로 직결되던 걸 채권의 판매로 틀어막은 것이었다.
물론, 채권은 결국 만기되는 날에 다시 돈이 풀리는 걸 예정하지만, 탐라국 전당의 채권은 만기가 되는 날이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20년까지 여러 가지로 나뉘어 있어 시중에 돈이 풀리는 여파를 분산시킬 수 있었다.
그래도 물가가 어느 정도 상승하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한때는 군력을 동원하여 강제로 물산의 값을 내리는 걸 강구하기도 했던 고려 제후국들의 상황에서는 다행스러운 결과였다.
그렇게 부작용을 자제시키고 나자, 그 부작용에서 기인하는 순작용이 눈에 띠기 시작했다.
그것은 물가 상승으로 인해 고려 백성들이 공상업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명목상이기는 하지만, 값어치가 높아진 물산의 생산과 판매가 더 큰 이문을 내기 시작하자, 그전까지 관심이 없던 자들도 이제는 시선을 돌리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었다.
당연히 이내 공상업 활동에 투신하는 사람들의 수가 증가하는 것으로 이어졌으니, 이는 고려 내 전반적인 분위기였고, 탐라국에서는 특별히 회사 설립의 ‘붐’으로 이어졌다.
마치 신대륙으로부터 흘러들어오는 은으로 인해 유럽의 물가가 폭증하고, 그에 따라 상업 혁명이 발생한 것과 유사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었다.
그로 인해 탐라 조정에서 가장 한가한 관부 중 하나로 꼽히던 회사청이 1, 2년 사이에 가장 바쁜 관부로 변모하는 이변이 벌어질 정도였다.
따져 보면 유럽의 상업 혁명이 벌어진 원인에 비해 고려의 물가 상승은 상승폭이나, 그 기간이 더 작고 짧았음에도, 탐라국이라는 상공업 부흥의 기반이 있었던 덕에 규모면에서 별로 뒤지지 않는 변화가 시작된 것이었다.
당연히 그 와중에도 탐라공의 투자를 받는 회사를 세우길 바라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한데, 아무리 탐라공이라 해도 그런 모든 투자를 감당할 수는 없었고, 투자를 받지 못했음에도 회사 설립의 욕구를 포기할 수 없는 자들은 따로 자본을 충당하고자 하였다.
그렇게 요동의 개척회사 외 다른 주식회사들도 탄생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물가 상승으로 한동안 힘겨웠던 탐라조정은 상공업의 확대로 인한 공급 증가가 물가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 다행스러워하였다.
얼마 뒤 탐라공이 총무회의에서 창업 열풍의 상황이 가져올 부작용, 특히 공급 과잉과 경쟁 과열로 인한 폐단을 짚기 전까지 말이다.
그로 인해 관련된 관부들은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하여야 했다.
그리고 그 시각에 덩달아, 아니 그 누구보다도 더 바쁜 자가 생겼으니, 바로 석몽건, 탐라공의 아우였다.
“네 조카가 네가 자기 딸을 탐낸다고 불만이 많은 모양이더구나.”
“네? 아, 사실 틀린 말은 아니지요. 순화가 너무 예쁩니다. 어허허.”
어울리지 않게 바보 같은 웃음을 흘리면서, 아마도 머릿속으로 순화를 떠올리고 있을 몽건의 얼굴에서 훗날 딸바보의 미래가 겹쳐 보였다.
하나, 훗날 딸바보가 되든 아니든, 몽건의 현실은 노총각을 향해 직진하는 중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몽건이 능력이 없어서 혼인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설령 능력이 없어도, 심지어 고자일지라도 탐라공의 아우라는 신분은 고려에서 혼인이든 뭐든 다 가능하게 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함주에 들르는 걸 자제해야겠군요. 근데 진짜로 근처에 갔다가 들리는 것인데, 좀 억울하긴 합니다.”
“나야 알지만, 강영이가 보기에는 핑계처럼 들렸겠지.”
몽건은 고려 전역을 종횡무진하는 중이었으니, 상공업의 질적 양적 확대에 따라 지방의 관청에서도 관련된 행정 체계를 확충해야 하는데, 그 와중에 경제적인 조언을 해 줄 만한 학식과 전문성을 지닌 자가 그리 많지 않은 탓이었다.
몽건이 회장으로 있는 경제학회에서 학문으로서의 경제를 연구한 지도 꽤 지났지만, 당대의 기준으로도 제대로 된 경제학자는 아직 몽건뿐이었다.
물론, 몽건이 함주에 들리게 되는 이유인 ‘그 근방의 방문’이라는 게 정말 가까운 근방을 방문한 것만은 아닌 터라, 제법 먼 곳이라도 굳이 근방이라며 자신을 설득하고는 함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을 보면, 그의 말마따나 조카딸이 너무 귀엽긴 한 모양이었다.
“아이가 제법 총명합니다. 하나를 가르쳐 주면 그 하나를 열심히 되뇌고 기억하려니, 보고 있으면 절로 어여뻐져 머리를 쓰다듬고 싶어집니다. 어허허.”
“아무래도 네가 이제는 혼인을 해야겠구나.”
“음, 저도 생각이 없는 건 아닌데, 앞으로도 자주 집을 비우게 될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그게 무슨 대수겠느냐. 나는 천 리 만 리 밖에도 행차하는데.”
“그거야 형님이시니까 가능한 일이지요. 저는 일개 서생에 불과한데요.”
종종 느끼는 거지만, 몽건은 정말 권력욕이 없었다. 탐라공의 아우로서 꽤 위세를 부릴 수도 있고, 경제학회의 회장으로서도 탐라 경제에 영향력을 미치는 만큼 권세를 얻을 수도 있을 터인데, 그리고 심지어 다음 탐라공의 지위까지 노려보는 것도 욕심날만한 위치인데도, 몽건은 그저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이 전부인 녀석이었다.
“그래도 혼인해야겠다. 네가 혼인을 안 하니, 내가 오해받는 것도 있다.”
“오해요?”
“너를 다음 후계 구도에서 제외하려고 일부러 내가 혼사를 막고 있다는 오해 말이다.”
“허…….”
그런 것까지는 미처 생각을 못했다는 양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는 몽건은 이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오히려 제가 혼인을 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닙니까. 그 오해와 반대되는 오해가 생길 수도 있고, 또 제 장인이 될 자가 괜한 욕심을 부릴 수도 있습니다.”
“하하, 그런 건 걱정 말아라. 내가 싫은 건 쓸데없는 소문이 돌고, 거기에 휘둘려 말이나 옮기고 다니는 자들의 행태이지, 내 후계에 대한 우려는 일절 없으니까 말이야. 솔직히 말해서, 내 후계는 그냥 내가 말 한 마디만 하면 다 정리되지 않겠느냐.”
“아…….”
그것도 생각을 못했다는 표정을 다시 짓는 몽건을 향해 몽주는 웃음을 지으며 그의 뺨을 톡톡 매만져 주었다.
“어릴 적에는 다방면으로 똑똑했는데, 어째 크면서 학문 쪽이 아닌 방면으로는 퇴보하는 것 같구나.”
“원래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사람의 몸이 쓰는 근육만 발달하는 것처럼 머리도 마찬가지겠지요.”
몽건은 그렇게 말하곤,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하면, 저도 혼인할 마음을 먹을 터이니, 형님도 조카의 계승을 확실히 해 주십시오. 어차피 강중이 나이도 어느새 스물셋이나 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너는 서른하나고, 나는 마흔여덟이고.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문득 몽주가 아우에게 귀를 가까이 대라고 손짓하곤 주변을 살피는 양 하더니 조그맣게 말하였다.
“네 형수는 이제 쉰 살이야.”
“…….”
* * *
간만에 탐라섬에서 휴식을 취하는 아우와 더불어 지내자니, 처음에는 소소한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점점 국정과 관련된 이야기도 오가기 시작했다.
“부루내 왕도가 함락된 지도 두 달이 다 되어 가는군요. 아직도 부루내 왕의 행방은 묘연합니까?”
“열대의 우림으로 도주하였으니, 찾고자 하여도 찾기 어렵겠지. 솔직히 그가 살아 있으리라 생각할 수가 없구나. 장계에도 나와 있듯이 온갖 짐승과 독물이 가득한 그 밀림은 허겁지겁 도주한 자가 살아남기에는 너무 혹독해.”
고려에서는 부루나이를 부루내(夫婁奈)로 칭하고 있었다. 아무리 한글이 보편화되었어도, 국가명은 한자로 표기하려는 경향이 남아 있는 탓에 그렇게 정해진 것이었다.
탐라국이 여송 제도를 벗어나 부루내로 처음 향한 건 거의 2년 전의 일이었다.
여송섬의 파식군이 크게 안정되고, 발전하면서 여송섬은 물론 주변 제도에 대한 종주권을 확보되자, 부루내와의 교류를 타진하고자 함이었다.
사실 부루내와 교류를 타진함에 있어 그리 환영받지 않으리라는 건 어느 정도 예상했었다. 아니었다면, 부루내가 먼저 교류의 손을 뻗었을 것이다.
특히, 탐라국의 과거 정벌한 적 있던 민다나오 섬에 다시 전초 기지를 세운 뒤에는 얼마든지 접촉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나, 부루내는 아예 접근조차 하지 않았으니, 몽주로는 전에 민다나오 섬에 세운 경고 비석의 문구가 너무 고압적이었나 싶을 정도였다.
어쨌거나 꽤 괄시를 당할 각오를 하고 부루내에 사신을 보내긴 했지만, 그래도 설마하니 사신의 머리카락을 밀어 버리고 귀를 자르는 굴욕을 안길지는 상상하지도 못한 바였다.
몽주는 크게 분노하였고, 그 분노는 이내 탐라 조정을 넘어 탐라국 전역으로 번졌으니, 그 대대적인 분노가 명분이 되어 몽주는 명나라와의 전쟁 이후 만 5년 만에 대대적인 군사를 일으켰다.
“참 어리석은 자야. 십 년 묵은 분풀이를 하고자 한순간에 왕실이 망하는 걸 자초하다니 말이야.”
“설마하니, 탐라국이 거기까지 대군을 보낼 줄은 상상하지 못했겠지요.”
“그게 바로 어리석다는 증거지. 탐라국이 여송 제도를 장악하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면, 그 왕이라는 자가 얼마나 세정(世情)에 눈이 어둡다는 말이냐.”
그 어리석음이 중함선 열다섯 척이 포함된 120척 규모의 대함대를 적으로 불러들였고, 고작 닷새 만에 왕도가 함락되기에 이르렀다.
탐라국이 부루내를 정복함에 있어 반년이 걸렸다곤 하나, 실상 군비하여 이동하는 기간이 거의 전부였으니, 부루내와의 전쟁은 실상 싸움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인 폭행’이었다.
“그러고 보면, 부루내 왕이나 백성들은 모르겠지만, 부루내가 망함에도 그렇게 만든 탐라국에서는 별로 화제가 되지도 않은 것이야말로 부루내에게는 굴욕일 것 같습니다.”
“그것도 그렇구나. 하기야 나도 그럴 줄은 미처 몰랐다.
물론, 전혀 인구에 회자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나라 안이 전쟁 분위기로 변하는 일 따위는 없었다.
상비군인 근위군단의 규모가 크게 늘어 고용병 사령부를 제외하고도 5만에 가까운 덕에 순위군도 일부만 징집했고, 또 총동원령은커녕, 그냥 재고로 가지고 있던 군수만으로 치른 전쟁인 터라 백성들에게 그만큼 체감이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물론, 더 근본적으로는 명나라로부터 전승한 이후, 그만큼 탐라국의 군사적인 자신감이 치솟은 덕이었고, 그사이에 탐라국의 경제적인 규모가 더욱 커져, 군력 동원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에 대한 ‘맷집’이 더 좋아진 덕이기도 했다.
“한데, 굳이 형님이 부루내까지 가셔야겠습니까? 가시고자 한다면 부루내가 안정된 이후에 가시지요. 자칫 무슨 일이라도 있을까 저어합니다.”
“그렇긴 한데, 내가 가서 살펴볼 게 좀 있다.”
“그게 뭡니까?”
“더 남쪽.”
“…….”
또 남쪽이냐는 말이 몽건의 표정에서 흘러나오는 듯했다.
“그곳에 보물과 같은 땅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으니, 한번 살펴봐야 하지 않겠느냐.”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되는군요.”
현대에서 향신료 제도라는 말 자체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곳은 서남아의 두 왕국들이 진출한 이후의 역사만 주로 알려져 있는 탓에, 당대의 정보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하여, 몽주는 부루내에 예상보다 좀 더 많은 주둔군을 남기게 하고, 여분의 군력으로 주변 도서를 탐사하게 하였으니, 지금쯤 한창 탐사가 시작되었을 것이었다.
“하면, 언제 출항하실 예정입니까?”
“한 달 보름 뒤로 예정하고 있다. 어르신의 기일은 지나고 가야겠지.”
“아, 그러고 보니 …….”
어르신이라 함은 군공경(軍工卿) 최무선을 의미하였다.
화극 최무선은 5년 전에 별세하였으니, 명나라와의 전쟁이 종료되고 총리방이 해산하자, 마지막 임무를 완수한 것에 안도하듯 급격히 건강이 악화되었고, 결국 1년 만에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몽주는 화극의 죽음에 크게 슬퍼하며, 한 달간 탐라국에 애도 기간을 선포하고, 상주를 자처하여 그의 장례식을 집행하였다.
이후, 화극에게 군공경을 추서하였으니, 대헌장의 제후들을 제외하고 따로 관작을 두지 않는 고려에서 ‘경(卿)’이 시호로서 자리 잡고, 차후에 새로운 쓰임새가 생기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에는 저도 제사에 참석하겠습니다.”
“그래, 같이 참석하자꾸나.”
몽주는 머릿속으로 화극을 떠올린 채 몽건을 향해 슬픈 미소를 지어 주었다.
5년이나 흘렀지만, 그의 마음속 화극에 대한 애도는 가시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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