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40)
본래 가츠오부시, 즉, 가다랑어포를 만들기 위해서는 총 4, 5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한 건, 같은 처리를 수차례나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일단 손질하여 쪄 낸 가다랑어를 불에 쬐어 건조시켰다가 하루 동안 내버려 두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렇게 보름 정도 되풀이하면 겉보기에 완전히 건조되는데, 거기서 다시 또 다른 반복 처리가 시작된다.
그건 하루 혹은 이틀 정도 햇볕에 쬐었다가 밀폐 상자에 넣고 2주 정도 두는 과정의 반복이었다.
그렇게 상자 안에 2주 정도 두게 되면 가다랑어에 푸른곰팡이가 피어오르는데, 그걸 다시 햇볕에 널어 곰팡이를 제거하고 또다시 밀폐 상자에 넣어 2주간 둔다.
이런 식으로 반복하여, 상자 안에 두고 난 후에도 곰팡이가 피지 않으면 가다랑어포가 완성된다.
현대에서 찾아본 바로는 곰팡이를 피우는 까닭은 풍미와 빛깔을 좋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니, 고급 사치재로서의 향신료를 만들고자 한 몽주로선 귀찮더라도 따라야 마땅했다.
어쨌거나 두 번째로 상자 안에 두었던 가다랑어들의 표면에는 푸른곰팡이가 많이 피어 있긴 했지만, 첫 번째 상자에 보관했을 때에 비하면 분명 그 정도가 줄어들어 있었다.
이런 식으로 4, 5회 정도 반복하면 곰팡이가 피지 않는다고 했는데, 줄어든 곰팡이의 양을 보니 틀리지 않을 듯싶었다.
“그나저나 이것들도 나중에 꽤 애를 먹이겠습니다요.”
“그게 무슨 말이냐?”
석삼이 상자 안에서 가다랑어들을 꺼내어 빨랫줄에 매달면서 한 말에 몽주가 물었다.
“이렇게 딱딱한 걸 어떻게 잘라 낸단 말입니까요.”
줄에 매달린 가다랑어 하나를 주먹으로 툭툭 치며 대답을 하는 석삼이었다.
확실히 그의 주먹에 튕겨 흔들거리는 건조된 가다랑어의 모습은, 가다랑어 모양의 돌멩이가 아닐까 싶은 느낌이었다.
“그야 대패로 깎아 낼 거라고 하지 않았더냐.”
“대패는 절로 깎는답니까요?”
“…….”
물론 손수 열심히 힘을 써야 할 것이니, 그때가 되면 몽주와 석삼은 또다시 근육통에 시달릴 것이다.
“……그건 나중에 걱정하지.”
* * *
이번 꿈도 두 달 가까이 흘러 곧 잠에서 깰 때가 되었을 때쯤에야 몽주는 비누와 로션을 완성했다고 자부할 수 있게 되었다.
비누화 작업 중 소금을 팍팍 쳐서 할 수 있는 한 글리세린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쪽쪽 뽑아내어 만든 비누와, 그렇게 뽑힌 글리세린에 물을 섞어 만든 로션.
“그럼, 시작해 보겠습니다요.”
어푸어푸.
석삼이 대야에 담긴 물을 얼굴에 끼얹고는 손으로 얼굴에 물기를 훔쳐 내었다.
이어, 몽주가 작은 단지의 뚜껑을 열어 안에 꽂혀 있던 숟가락으로 가루비누를 퍼서 석삼이 내민 손 위에 쏟아 내었다.
각형으로 굳히는 대신 가루 상태로 둔 건, 현대의 비누처럼 덩어리로 두고 직접 물기 있는 손으로 만지작거리면 금세 녹아 버리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여러모로 현대의 비누에 비해 손색이 있을 수밖에 없어서, 가루 형태로 단지에 담아 물기와 분리시켜 보관하고 씻을 때만 작은 숟가락으로 퍼서 쓰는 형식이 되도록 한 것이다.
문질, 문질.
물기 어린 양손 사이에 비누 가루를 두고 문지르기 시작하자 하얀 거품이 만들어졌다. 그 거품의 양 또한 현대의 비누에 비하면 풍성치 못했지만, 어쨌든 거품이 제법 일었다.
이어 석삼은 양손을 펴서 얼굴에 비비기 시작했는데, 몇 번 비비자 어느새 거품이 모조리 사라져 버렸다.
“얼레, 거품이 다 사라졌습니다요. 역시 쓸모없는 걸 만들었구만요.”
“…….”
얼굴에 얼마나 기름때가 많았었으면…….
몽주는 차마 진실을 말해 줄 순 없었기에, 그냥 고개를 대충 끄덕여 주곤 몇 번이나 더 세수하게 하였다.
뽀드득!
그렇게 네댓 번 비누 세수를 하자, 마지막에는 물기를 손으로 훔치는 것만으로도 야무지게 문지르는 소리가 절로 들렸다.
소리만 그런 게 아니라, 얼굴색도 좀 하얗게 된 느낌이었다.
“기분은 좀 괜찮습니다요.”
“그렇겠지. 일단 좀 있어 보거라.”
“예이.”
그냥 편안하게 앉아 있으라는 명령이야 감사할 따름이었기에, 석삼은 황송하게시리 주인 도련님이 챙겨 준 수건으로 얼굴에 물기를 닦으며 편안하게 앉아 있었다.
대청마루 끝에 걸터앉아 담을 넘어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을 느끼고 있자니, 석삼은 기분이 몹시도 상쾌했다.
비단 바람 덕만은 아닌 듯하고, 아마도 주인 도령과 함께 만든 비노가 은근히 괜찮은 효과가 있는가 보다 절로 생각이 들었다.
한데 잠시 후, 슬슬 낯선 느낌이 얼굴 전체에서 전해졌다.
“저기, 으으…….”
석삼은 말을 하려다 문득 따끔하게 당기는 입가 피부 때문에 절로 신음 소리를 내었다.
물론 많이 아프다든지 정말 피부가 찢어졌다든지 하는 건 아니지만, 생전 처음 느끼는 따끔한 당김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많이 당기냐?”
끄덕끄덕.
“참아라.”
“…….”
냉정한 대꾸에 섭섭한 표정을 보이는 석삼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몽주는 손으로 다른 손의 손목을 짚고 있었다.
석삼의 얼굴 피부가 수분 부족으로 손상되는 정도를 시간별로 체크하기 위해 맥박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일각(一刻)이 흐르자, 그제야 몽주는 허리춤에 묶어 둔 도기 호리병을 한 손에 쥐곤 다른 손으로 석삼의 손을 펴 그 위에 호리병 안의 로션을 뿌렸다.
“이걸 바르게.”
“이걸 바르면 나아집니까요?”
비누와 달리 로션은 실험 삼아서라도 쓴 적이 없는 터라, 석삼은 약간 견제하며 물었다.
하나, 몽주는 그보다는 석삼이 말을 하며 움직인 얼굴 근육 덕에 피부로 허연 각질이 일어나는 게 먼저 보일 뿐이었다.
“얼른 발라라. 그러다 얼굴 진짜 망가질라.”
석삼이 로션을 얼굴에 바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더니 냄새가 나쁘지도 않고, 바른 뒤 피부의 당김도 사라지자 이내 치덕치덕 열심히 발랐다.
“느낌이 좋습니다요. 좀만 더 주시오.”
몽주는 또 로션을 덜어 주었다. 치덕치덕 덧바르는 석삼의 얼굴이 이내 번지르르해졌다. 마치 현대 TV드라마 속 여배우들의 ‘물광 피부’를 보는 듯했다.
‘저게 저리 쉽게 되는 거였나? 비싼 화장품만 되는 게 아니라?’
그냥 물 섞은 글리세린 발랐을 뿐인데 의외의 성능이 보이는 것에 몽주가 황당하든 말든, 석삼은 양손으로 뺨을 가볍게 두드리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까는 살거죽이 터질 것 같더니, 지금은 아주 야들야들해진 게 기분이 참으로 좋소!”
어째 14세기판 화장품 CF를 보는 느낌이었다. 물론 모델이 영 아니었지만.
그나저나 로션의 성능은 의심할 건 없을 듯싶었다. 하여 몽주는 석삼에게 비누에 대해 물었다.
“아까 피부가 얼마나 당기더냐.”
“물기가 사라지니 누가 살갗을 잡고 당기는 것 같았습니다요.”
“아프진 않고?”
“아프다…… 고 할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간지러운 건 넘어섰었지요.”
말하는 걸 듣자 하니, 딱 피부 건조로 인한 불쾌감이나 따끔거림이었다. 이 시대 사람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더 피부가 손상되는 건 아닌 듯했다.
이에 몽주는 실험 삼아 석삼에게 한 마디 툭 던져 보았다.
“사실 그건 주름살을 펴기 위함이었다.”
“에? 그것이 참말입니까요?”
“당연하지. 피부가 탱탱해지는 느낌을 받지 않았더냐.”
“음, 그것이…… 확실히 땅땅해지는 느낌이 있긴 했습니다만서도…….”
피부 당김을 탱탱한 피부로 호도함에도 석삼은 당장에 부정할 순 없었다.
“자, 한 번 네 눈으로 확인해 보거라.”
안 그래도 석삼에게 실험해 볼 생각으로 동경(銅鏡)을 가져다 두었다.
석삼도 그가 앉은 근처에 원래 주인 도령의 방 안에 있던 동경이 놓여 있음을 알고 있긴 했지만, 전용 목갑 안에 들어 있는 동경을 볼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동경이 워낙 귀중품 취급을 받고 있기에 주인 도령의 허락이 없이는 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
동경은 청동거울. 박물관에서 본 청동거울이야 부식되어 거울이라고 할 수 없지만, 고려에서 실제로 쓰이는 동경은 깨끗하게 닦여 현대의 유리 거울에 비해서도 그리 손색이 없다 할 만했다.
비싸고 관리가 어려운 게 단점이지만 사실 이 시대에 유리 거울을 만든다면 동경은 비교도 되지 못할 만큼 비쌀 것이고, 유리의 조악한 품질 탓에 관리는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어쨌거나 주인 어르신이나 주인 도련님, 혹은 동경을 관리하는 노비가 아니면 써 보기 어려운 동경을 볼 기회를 얻자, 석삼은 신이 나 얼른 동경 앞에 앉았다.
그러고는 손때가 묻을까 조심스레 목갑을 열어 동경을 세워 얼굴을 비춰 보았다.
“웜마야…… 아니, 제 얼굴이 왜 이 모양입니까요!”
“뭐가 이 모양이냐는 게냐.”
“복날 지난 멍멍이마냥 기름기가 줄줄 흐르지 않습니까요.”
“그래서 보기가 싫으냐.”
대수롭지 않게 묻긴 했지만, 몽주는 내심 긴장하였다. 로션을 많이 바르든 적게 바르든, 이제까지 쓰이던 화장품과는 다른 느낌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석삼이야 화장품을 썼을 리 만무하고.
만약 로션을 바른 모습이 당대 고려인들의 눈에 거리낀다면,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야 당연히…… 남세스러우니까 그렇지요. 흐흐. 반지르르한 것이 좋네요, 좋아. 근데 정말 주름살이 펴지는 효과가 있긴 한 모양입니다요. 제가 한 열 살은 어려 보이지 않습니까요? 주인 도련님보다도 어려 보이는 것 같소만, 헤헤.”
석삼은 양손을 턱 아래 대어 ‘꽃받침 포즈’를 취하며 연신 동경에 자기 얼굴을 비추었고, 눈도 크게 뜨고 각도도 바꾸며 제 딴에는 가장 멋진 표정도 지어 댔다.
“…….”
실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이로다.
한 대 쥐어박아야 하나 고민하던 참에 문득 주이의 몸종이 사랑채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전하였다.
해민의 공간인 사랑채로의 부름을 주이의 몸종이 전한 것에, 몽주는 몽린의 부모가 함께 그를 기다리고 있음을 예상할 수 있었다.
실제로 서둘러 찾아뵈니 두 분이 자못 진중한 표정으로 그들 앞에 무릎 꿇으며 앉는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요사이 바쁘더구나. 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게냐.”
신물품 제작을 위해 돈을 쓰느라 이미 그 이유를 대략적으로 설명하였고, 비누의 경우에는 보여 드리기도 했음에도 그런 물음을 던지는 것에 몽주는 의아한 표정으로 몽린의 부모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혹시 몽주가 하는 일에 반대하시려는 것일까.
아니, 이제 와 새삼 무언가를 만드는 것에 반대할 리는 없었다.
아무래도 고려의 문화 속에 장인들을 천하게 보는 시선이 존재하고 있기에, 몽주가 뭘 만들기 위해 집을 사고 준비를 하느라 돈을 쓰는 것에 몽린의 부모들이 기꺼운 건 결코 아니었다.
하나 그렇다고 직업적으로, 계급적으로 바치(장인)가 되는 것도 아니기에 크게 반대한 것 또한 아니었다.
오히려 딴짓 안 하고 조용히(?) 있는 것을 반기기도 했다.
몽주의 의구심과 걱정이 표정에 보였을까, 해민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문을 열었다.
“허허, 그리 걱정스레 볼 건 없다. 다만, 이제 너도 더는 어린아이처럼 장난이나 하고 있을 나이는 아니지 않느냐.”
비누와 로션, 그리고 가다랑어포를 만드는 게 장난질에 비유될 건 아니지만, 몽린의 부모들의 시선에서는 그렇게 보일 법도 했다.
“부처님께서 너를 지켜보고 있음을 우리도 의심치 않지만, 부처님의 안배는 깊기에 언제 알 수 있을지 기약이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부처님의 뜻을 알 때까지는 너 또한 너의 삶을 살아야 하고, 너의 의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몽주는 무슨 말인지 이해한다는 양 고개를 끄덕였다. 말 자체야 틀린 말이 아니니까.
다만 궁금한 건, 몽린의 부모가 말하는 그의 의무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이제 와 새삼스레 공부를 하라고 하시는 것일까. 아니면, 향리 세습을 위한 실무 연습이라도 시키시려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상업으로 돌아…….
“보거라.”
해민이 탁 소리와 함께 몇 번 접힌 종이를 아들 앞에 내려놓았고, 몽주는 조심스레 그 종이를 펴보았다.
“……?”
종이 적힌 글자를 보며 저절로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몇몇의 이름이 있었고, 마지막에 적힌 이름에는 무어라 제법 상세한 설명이 붙어 있었다.
그 마지막에 적힌 이름은 최앵도(崔鶯桃)였는데, 은근히 낯이 익은 이름이었다.
하여 몽주가 그 이름 뒤에 쓰인 글을 읽어 나가는데, 해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내자가 될 아이다. 사주 또한 괜찮더구나.”
내자?
내자(內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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