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41)
“에? 결혼이요?”
꿈에서 깨자마자 불러내어 만난 재상과 두신은 몽주의 통보에 한 방 먹었다는 표정을 지어야 했다.
몽주가 ‘놀이’의 주인공이 결혼을 해야 할 상황이라고 전했기 때문이었다.
“저도 당황스럽긴 합니다.”
“……저희만 하겠습니까.”
재상의 말투는 ‘어차피 네가 정한 설정인데 네가 당황스러울 건 뭐냐.’에 가까웠다.
하나 정말 당황스럽고 황당한 마음이 큰 건 몽주였다.
다른 누구도 아닌 몽주 자신의 혼인이니까. 물론, 정확히 말하면 몽린의 혼인이겠지만.
당시 무척 당황하여, 하마터면 듣자마자 무조건 안 된다고 소리칠 뻔했었다.
하지만 겨우 놀란 마음을 부여잡아 자제시키고 생각을 가다듬으니, 어차피 감당해야 할 일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몽린의 신붓감을 부모님들이 찾고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고, 몽주가 되기 전의 몽린도 이미 인정한 상태였다.
그러니까 몽린이 머지않아 결혼한다는 건 본인을 포함하여 집안 안팎에 기정사실화된 상태였으며, 그저 배필만 정해지지 않은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제 와 안 된다고 화들짝 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재산 때문이라도 거절하지 않는 편이 좋긴 하겠군요.”
황당한 표정을 지운 두신이 잠시 생각을 가다듬은 후에 내린 판단이었다.
놀이 속 몽주가 가진 거의 유일한 장점이 집안이 부자라는 것인데, 그 재산권은 몽주의 부모가 쥐고 있으니, 괜히 부모가 바라는 결혼을 거부하다가 그 재산을 빌려 쓰거나 물려받는 것에 장애가 생겨서는 곤란하다는 의미였다.
“그렇긴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군요. 결혼이라는 게 예나 지금이나 발목 잡힐 일인데…….”
재상은 결혼으로 말미암아 몽주가 가진 운신의 폭이 더 줄어들 것을 염려하는 듯했다.
“그나저나 어느 가문의 여식인지는 정하셨습니까.”
두신의 물음도 이어졌다. 배필 자체보다는 그녀의 가문에 집중하는 질문이었다. 현대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부분이지만 전근대 사회에서 결혼의 주체는 당사자가 아닌 그들의 가문에 있기 때문이었다.
“개경 상가의 장녀입니다. 과거 제 조부 시절까지만 해도 함께 상행을 하던 집안입니다. 이제는 과거에 비해 멀어졌지만, 여전히 집안의 큰일에는 상호 간에 연락을 주고받는 관계는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상인 가문이라…… 괜찮네요. 오히려 너무 좋은 집안이면 여러모로 걸릴 게 많으니 그 정도가 좋죠. 근데 상인 가문이라면 역시나 부유할 듯한데, 어느 정도입니까.”
재상의 말을 듣던 몽주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끝에 나온 물음에서는 갸웃거렸다.
몽린의 부모에게 들은 바로도 그가 원래 알고 있는 바로도, 처가가 될 집안의 재산 규모를 가늠하긴 어려웠다.
“과거에 상선을 수십 척이나 운영했었다고 들은 적이 있는데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닌 듯하고, 개경 시전 중 상점 몇을 운영하는 정도일 겁니다.”
“그래도 개경 시전에 상점을 몇이나 가지고 있다면, 듣기보다는 더 부자일 가능성이 있겠군요.”
분명 나라를 뒷배로 수도의 시장에서 독점권을 행사하는 시전 상인인 만큼, 그 상업적인 가치는 단지 상점 몇 개로 치부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하나 두신은 시전보다는 몽주의 입에서 먼저 나온 내용에 관심을 가졌다.
“상선 수십 척을 운영했었다고요? 굉장했던 모양이군요.”
몽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엊그제 잠에서 깨기 전 꿈속에서 몽린의 부모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최 어르신께서도 더는 버티기가 힘드신 모양이더구나. 시전 상인들을 우대한다면서도 먼 훗날의 이문을 빌미로 당장의 세금을 뜯는 게 경시감의 일이라 하니, 안 그래도 숨겨 놓은 재산이 많다고 소문난 최 어르신 댁은 좋은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겠지.”
처가가 될 집안 사정에 대한 설명 중 일부가 그러했다. 그리고 중요한 건 그 뒤에 나온 이야기였다.
“하여, 어르신께서는 손녀의 혼사를 통해 재산을 보존하시려 하신다. 어르신 댁의 두 손자들이 아직 어려 가문의 재산을 감당하기 어려우니, 나와 너를 대리인으로 삼아 재산을 보존하고 후에 두 손자들에게 유산토록 하시려는 게지. 그 어르신 댁과 우리 가문 사이의 긴 인연을 생각함은 물론 혼사를 위해 큰 지참금을 약조하셨으니, 우리로서는 비록 새아가가 다소 흠결이 있다 하더라도 거부하기가 어렵구나.”
처음 들었을 때는 바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나 이내 몽린의 기억 속에서, 최 어르신이라 부르는 이의 두 아들 내외가 한꺼번에 바다로 상행을 나갔다가 폭풍에 휩쓸려 죽는 바람에 2남 1녀의 손주들만이 남았다는 것을 떠올리자, 바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쉽게 말해 자식의 부존으로 인해 불안한 상속 상황에서, 경시감을 앞세워 재산을 침탈하는 나라의 손길을 피해, 재산 보존이 좀 더 쉬운 석 호장에게 재산을 위임하려 하는 것이다.
그를 위해 일종의 혼인 동맹(?)을 맺고 지참금을 크게 주어, 훗날 자신의 손자들에게 남은 재산이 무탈하게 이어지도록 요구한 것이다.
석 호장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진행할 수 없는 계획이었고, 결론적으로 그 최 어르신이라는 이의 안목은 분명 정확했다.
“그래서 그 지참금이라는 게 어느 정도나 됩니까? 듣자 하니 꽤 될 것 같군요. 결혼 지참금은 오롯이 몽주 씨의 것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잘하면 아주 유용하게 쓸 수도 있겠고요.”
혼인으로 인한 운신의 폭이 줄어드는 것에 아쉬워하던 재상도, 큰 지참금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 관심이 커진 모양이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결혼이라면 득이 될 부분을 알아 두고 이용해야 한다고 결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정확한 건 아닙니다만…….”
몽주는 두 사람에게 지참금에 대해 아는 대로 알려 주었다.
“검모포의 선소요?!”
두신이 눈을 크게 뜨고, 재상이 놀란 목소리를 낸 건 지참금 중 부동산에 대한 것을 말해 주었을 때였다.
신부 지참금이 상당히 크고 그 내역을 미리 알 수 있는 건, 지참금 자체가 유산이고 석 호장에 재산을 위임하는 절차 탓이었다.
달리 말하면, 처가댁의 재산 중 시전 상점을 제외한 거의 모든 재산이 신부의 명목상 지참금이자 석 호장에게로의 재산 위임이었다. 훗날 도로 처가댁의 상속자들에게 돌아갈 재산을 뺀 부분이 실질적 지참금인 셈이었다.
어쨌든 그 실질적인 지참금 중 하나가 검모포(黔毛浦)의 선소(船所)였다. 그것은 지금도 부안이라고 불리는 전라도의 부안에 있는 조선소로, 들은 것만 생각하면 두신과 재상이 놀랄 만한 건 아니었다.
그저 어선 정도나 만드는 곳에 불과한, 천민에서 해방된 장인들 십여 명이 소속된 작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들이 놀란 이유는 따로 있었다.
“검모포는 예전 여몽 연합군의 전선을 만든 곳이거든요.”
정확히 말하면, 수군 진영이 검모포에 있었다는 뜻이었다. 지금과 달리 조선소라는 기업이나 공간이 구별되게 존재하지 않았던 당시에는, 수군의 진영에서 전선을 만들었고, 진영 내 조선장이들이 모여 배를 만드는 곳이 곧 조선소인 셈이었다.
“당시에 검모포에서 만들어 낸 선박은 대선 삼백 척을 포함하여 구백 척에 이르렀다고 하죠.”
“고려 민중들을 더욱 힘들게 한 노역이긴 했는데, 조선 기술이라는 면만 보자면, 엄청난 경험치를 축적한 기회였기도 하죠.”
“물론, 그것도 백 년이나 지난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당시 왜놈들이 가미카제라 부르는 태풍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고려 선박의 기술이 조선 시대 전반기까지는 이어졌었으니, 이 놀이의 시점에는 분명 유지되고 있겠지요.”
그러니까 지참금으로 넘어온 검모포 선소의 장인들 중, 바로 그 경험치를 물려받은 조선 기술을 가진 장인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었다.
“하하, 이거 몽주 씨를 새삼 다시 봐야겠는데요. 결혼을 통해 이런 식으로 동아시아판 대항해시대를 위한 필요 조건 중 하나를 해결할 줄이야.”
재상은 가볍게 박수를 치는 시늉까지 하면서 결혼 지참금으로 조선소를 획득하도록 설정한 것을 칭찬하였다.
물론, 몽주로선 순전히 행운이었지만 말이다.
“근데 아직 확신할 수는 없잖아요. 해민이 알려 줄 때 분위기를 보면 그 조선소를 그리 대단하게 취급하지 않았었고, 또 그 처가 쪽에서도 지참금으로 그냥 넘길 정도니 그리 중시되지도 않은 게 분명하죠. 어쩌면 정말 대단한 기술자는 없는, 그저 작은 어선이나 만드는 게 전부인 선소일 수도 있어요.”
“그야 그렇긴 합니다만…….”
말꼬리를 늘리며, 재상은 은근한 시선으로 몽주를 바라보았다. 어차피 네가 설정할 문제인데 뭘 반론을 제기하고 그러냐는 의미임에 분명했다.
“어쨌든 그 조선소의 규모와 능력은 차츰 파악하기로 하죠. 근데 사실 문제가 살짝…….”
“그러고 보니 그걸 안 물어봤네요. 아내가 될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몽주가 문제점에 대해 말하려 할 때, 두신이 무슨 생각을 하다가 문득 결혼 상대자에 대해 물어 왔다.
뜬금없이 말을 자르며 들어온 질문이었지만 타이밍은 괜찮았다. 몽주가 말하려던 문제점이 바로 아내가 될 인물이었으니까.
“소문이 별로 안 좋습니다.”
“에? 어떤 식으로……?”
“혹시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소문입니까? 확실히 고려 말기면 그 전과 달리 그런 쪽 소문은 타격이 있을 만하죠.”
“그래도 유학자 집안도 아니고, 혼인 전의 연애사를 두고 흠잡을 시기도 아닐 텐데요.”
재상과 두신이 몽주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안 좋은 소문의 성격을 문란한 쪽으로 확정하고 이러쿵저러쿵 한 소리씩 해 댔다. 아무래도 이게 다 실제가 아닌 놀이로 여기고, 몽주가 설정하는 거라 여기는 탓일 것이다.
근데 남의 마누라를 왜 자기들이 그쪽으로…….
“그런 쪽 소문은 아니거든요.”
“그러면 소문이 뭐가 안 좋은데요?”
“일단 그게…… 좀 드세대요.”
좀 드세다.
성격이 거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아니, 거칠 수도 있겠지만 소문의 중점은 성격이 아니라, 손속이었다.
즉, 싸움을 잘한다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여성 무사라는 거죠. 코흘리개 시절부터 동네 사내아이들 때리고 다니며 왈가닥이라고 불렸다는데, 크면서는 아예 무사를 초빙하여 가르침을 받기까지 했고, 지금도 손에서 검과 활을 놓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집안에서도 어떻게든 그만두게 하려 했지만 도무지 말을 듣지도 않고, 억지로 못하게 하면 가출까지 시도한다고 하니…….”
“헐, 여자 깡패인가요?”
“……그보다는 여성 격투기 선수쯤에 해당하겠죠, 요즘으로 치면.”
몽주가 찜찜한 표정으로 대답하자, 재상이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아까 듣자니 나이가 스물이 넘었다는데, 그 나이면 그 시대에는 결혼에 상당히 늦은 나이일 테고. 그렇다면 그분은 그 나이까지 결혼을 안 한 겁니까, 못한 겁니까?”
“아무래도 못한 쪽일 겁니다.”
“하기야, 여성의 지위와 상관없이 무술가 아내를 바라는 남자는 없겠지.”
질문했던 재상을 향해 두신이 보인 반응은, 절반만 맞는 말이었다.
“뭐, 그도 그렇습니다만, 사실 결혼을 못한 결정적인 이유가 또 있습니다.”
“그게 뭐죠?”
“못생겼습니다.”
‘저런!’이란 소리가 절로 들리는 듯한 표정이 두 남자의 얼굴에 곧바로 떠올랐다.
그리고 이어 웃음을 흘렸다.
“하하, 그래도 우리 주인공인데 괜찮은 히로인 하나 붙여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냥 얼굴은 괜찮다고 하죠. 드센 성격의 여성 무사만 해도 제법 큰 마이너스잖아요.”
두 사람의 반응은 사실 몽주의 속마음이기도 했다.
하나 실제로 그러한 걸 어쩌란 말인가.
최앵도라는 이름의 처자.
이름이 낯이 익다 했더니 어릴 적에는 본 적도 있고, 종종 소식을 듣던 처자였다.
실제로 본 건 꼬꼬마 시절이었던 터라 얼굴이 잘 기억나진 않았다. 다만, 최앵도에 대한 몽린의 기억을 뒤적여 보면 분명 못생겼다는 내용이 있었다.
또 들리는 소문 자체도 단지 예쁘지 않다는 수준이 아니라, 굉장한 추녀라는 쪽에 가까웠다.
뭔가 꽃밭에서 나뒹굴었던 지난 꿈과는 비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좋게 생각하면, 주인공이 보다 적극적으로 사명에 몰두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퍽이나 큰 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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