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416)
* * *
몽주가 회의실의 문을 열었을 때 본 광경은 마치 현대에서 군복무 시절 최고참일 때 내무실 상황을 보는 것 같았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 회의실에는 ‘이등병’들만 모여 있다는 점이었다.
“많이 기다리게 했군.”
평소라면 몸 편히 하라고 한마디 할 법했으나, 몽주는 그저 자리에 앉아 대신과 청장들을 한 명씩 바라볼 따름이었다.
“내가 어찌 모이라 했는지는 다들 잘 알고 있을 것이고…….”
몽주가 말문을 열며 살피니, 그렇다 답하는 자는 없지만, 표정이 대신 대답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 홍길도 내관대신도 있고, 설령 그가 없다 하더라도 앞서 어사대장이 혼쭐나는 소리 때문이라도 상황 파악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들이 각 잡고 대기하고 있는 것이고, 집무실 밖 비서원의 관리들은 물론, 심지어 오는 길에 스친 청소하는 공택지기(공택 관리하는 일꾼)까지도 딱딱하게 굳어 있는 것이다.
“일단 이 말부터 하겠네. 나는 이 자리에 있는 자들 중에 지주…… 아니지, 지주가 아니라 토지 이용권 소유자라고 해야 맞겠지. 어쨌든 그자들의 뒷배를 봐준 적이 없다고 믿고 있네. 그건 처음 토지 경매를 시작할 때부터 내가 당부했던 바니까. 그렇지 않나?”
“…….”
몽주의 물음에 회의실 안에 수많은 시선들이 교차하였는데, 적어도 표정으로 드러나는 이는 없었다.
관리들도 토지가 필요할 수 있기에, 토지 경매에 참여할 수 있었다.
다만, 관리의 겸직 금지는 이미 탐라 관계의 기본 원칙인 만큼 얻은 토지로 이윤 추구를 해서는 안 될 뿐이었다.
하나, 모든 관리에게 명한 것은 아니지만, 몽주와 대면하는 고위 관리들에게만큼은 토지 경매에 참가하는 일을 자제할 것을 ‘권했고’, 토지 경매에 개입하여 경매 시장에 권력을 쓰는 자를 엄벌할 것이라 천명한 바 있었다.
당시에는 사실 굳이 필요도 없는 경고였다.
토지 경매에 참여하는 주체 중 대토지 경매에 참여하는 건 탐라 상단에 속한 회사들이 거의 모두였고, 나머지는 대개 자가 경작을 위한 소규모 토지를 얻는 터라, 권력에 접근하면서까지 토지를 낙찰 받을 건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여, 몽주도 그런 정황을 알고 토지 경매로부터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었다.
한데, 시간이 흘러 토지 이용권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실태를 확인하고 나니, 그 사이에 고위 관리들까지 연루되지는 않았나 우려하게 된 것이다.
“없나 보군. 좋아. 일단 그리 믿지.”
그리 믿겠다는 말투조차도 냉랭했기에, 회의실 안의 사람들은 더욱 긴장한 표정을 지었고, 머릿속으로 혹여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이권을 준 적은 없는지 빠르게 검토하고 있었다.
“이미 들었을 것 같고, 아니라면 차후에 내관대신에게 들으면 되니, 자세한 건 생략하고 간단히 요약하지. 나는 토지 이용권을 두고 생긴 흉흉한 세태에 몹시 분노하고, 경계하고 있네.”
아주 간추린 내용에도 누구도 혼란스러워하지 않았으니, 역시나 모이고 기다리는 사이에 상황 파악은 끝낸 모양이었다.
“내가 상공인의 발전을 지원한 것은 그들의 제조 행위와 상행위가 공명정대하게 진행되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획리하는 것을 방조하고자 함은 아니었네.”
그 점에 대해 구체적인 영을 세운 바는 없지만, 상공업의 발전을 한창 추진하던 시기에 약속의 이행과 거래의 신뢰에 대해 꾸준히 강조한 바 있었기에 이 자리에 있는 자들 중 그 원칙을 모르는 자는 없었다.
“한데, 내가 미처 신경 쓰지 못하는 사이에 돌아가는 꼴이 아주 가관이더군. 채 두 달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내관부 홀로 조사한 결과만 해도, 그것도 진주군에 국한한 조사 결과인데도, 말도 안 되는 짓거리가 291건이나 나왔네. 대개가 사기와 횡령에 해당하니, 이미 정립되어 있는 판례와 법령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고, 막아야 마땅한 짓거리들이 이처럼 횡행했다는 말이야.”
몽주가 장계에 기록된 것으로 대략 셈한 피해자의 수도 1천 명이 넘었고, 그 대부분이 한 가호의 가주이니, 실제 피해자들의 수는 5천 명 이상인 셈이었다.
인구 30여만의 일개 군에서 2퍼센트 가까운 자들이 피해자인데도 그간 알려지지 않았다는 건 몽주로서는 아무리 당대의 사정을 감안해도 수긍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저하, 좋게 해석하자면 그 외 다른 자들은 그런 일을 겪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합니…….”
쾅!
“어찌 자네가 그딴 소리를 하는 겐가! 이 두 달짜리 조사가 진주군 전체를 조사했다고 자신할 수 있는 겐가?! 게다가 진주에서 토지를 경매 받은 자들이 몇이나 되는지를 떠올려 보게! 택지와 탐라 상단의 땅을 제외하면 1천 명은 되는가?! 거기서 300건 가까이 이런 짓이 나왔는데도 극히 일부라고 여겨야 하는 겐가?!”
“…….”
분위기를 호전시킬 요량으로 입을 떼었던 홍길도가 된서리를 맞자, 더 식을 것도 없어 보였던 회의실 내 분위기가 더 싸늘해졌다.
이는 탐라공의 지적이 틀림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저 인구수나 호구수에 대비하여 생각할 때는 극히 일부의 일탈이고, 태평성대에도 있을 수준이라 여길 만했지만, 토지 이용권 경매에 국한하여 생각하니, 결코 작은 비율이 아니었다.
토지 이용권 경매가 처음 시작했을 때, 애초에 택지는 자연 분배되었으므로 자기 집 땅을 확보하기 위해 애를 쓴 자들은 없었다.
토지 이용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장 낮은 지대(地代)로 30년 이용권이 가주에게 일괄 분배되었기 때문이다.
또, 내관부의 조사에서 토지 이용권을 가장 크게 확보한 탐라 상단은 제외되었으니, 탐라 상단이 그런 짓을 저지를 리가 없다는 믿음 때문이기도 했지만, 탐라공이 주인이신 상단이기에 조사하기 꺼림칙했고, 시간적으로 촉박한 탓이 컸다.
그런 배경을 생각하면 실제로 ‘흉흉한 세태’의 비율은 급격히 커졌다.
“아직도 내가 과잉 반응한다고 여기는 자가 있나?”
없었다. 대신청장들의 한결 딱딱해진 얼굴은 비단 분노한 탐라공에 대한 긴장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중에 책임이 없는 자는 없다. 물론,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자는 바로 나겠지.”
“…….”
몽주의 자책까지 더해지자, 회의실의 분위기는 사극 속 ‘죽여 주시옵소서’를 외치는 상황에 이르렀다.
“나는 이번 일을 대충 넘어갈 생각이 없다. 이미 어사대장에게 어떤 명을 내렸는지 알 테지. 그리고 그 명은 이 자리에 있는 대신청장들 모두에게도 똑같이 내리겠다. 나는 토지 이용권 전체에 대한 감사를 원한다. 인원이 부족하면 임시라도 더 구하고, 그래도 부족하면 자네들도 직접 움직여라. 예외는 없다. 탐라 상단의 토지도 조사하고, 택지도 조사하라.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모르니까.”
“예, 저하.”
“그리고 경고하겠는데, 자네들은 물론이고 자네들의 수하들 중에서라도 이번 조사에서 누군가를 봐주는 행위를 한 게 드러난다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보복할 것이다. 처벌이 아니라, 보복이라 했으니 다들 명심하라.”
“…….”
얼음장 같은 명령을 내린 직후에 몽주는 회의실을 떠났다.
근래에 이르러, 상당히 자유로운 토론의 장이었던 총무회의는 오랜만에 몽주의 일방적인 훈계와 명령으로 끝났다.
* * *
“들어오라.”
집무실로 돌아와 차 한 잔을 반쯤 마실 무렵, 전당청장 금점녀가 면담을 요청했다.
예상했지만, 딱 봐도 대신과 청장들의 대표로 나선 것임에 틀림없었다.
모든 신하들의 제안과 의견에 경청하는 탐라공이라곤 하나, 그중에서도 점녀는 가장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인 만큼 자의든 떠밀린 것이든 현 상황에서 최적임자임에 틀림없었다.
또, 토지 이용권 경매라는 국가사업에서 전당청 또한 한 축인 바, 자격도 충분했다.
“무슨 일인가. 이제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만큼 바빠야 할 터인데?”
“몸이 바쁜 것은 감당할 수 있으나, 머리가 혼란스러운 것은 감당할 수 없습니다.”
원래도 겸손한 자세와 말투를 가진 점녀였지만, 지금 몽주 앞의 점녀는 서옥에서 처음 만났을 때보다도 훨씬 공손한 모습이었다.
“혼란할 게 무엇인가. 잘못을 살피라는 것인데.”
“일단 그 잘못의 기준부터 혼란스럽습니다.”
“어떤 점이?”
“대부분이 이미 판례가 있는 죄에 해당한다고는 하나, 자세한 사정을 살피면 조금씩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예컨대, 양필거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양필거?”
양필거의 경우는 몽주가 어사대장을 추궁할 때 언급한 바 있었으니, 경매 받은 땅에 소작농을 부렸다가 흉작을 이유로 소작료 외 추가로 수탈한 사안이었다.
“홍 대신이 말하길, 양필거는 실제로 소작농들의 흠결로 인해 흉작이 들었다고 합니다. 태풍 시기에 벼가 쓰러지지 않도록 단을 묶어야 하는 걸 미루다가 태풍에 다 꺾였다더군요. 하면, 분명 소작농의 잘못이 있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비록 정해진 소작료를 넘어서 받았으나, 흉작이 아니었다면 위법하지 않은 정도였으니, 그자의 죄도 그만큼 감안해야 할 것입니다. 게다가 비록 문권으로 정해 놓지는 않았으나, 그간 진주 근방에서 소작을 놓고 받음에 있어 소작농의 실수와 잘못에 의해 농사를 망칠 경우 소작농이 책임을 지는 것이 관례였다 합니다. 하여, 내관부에서도 양필거의 이름을 장계에 올릴지 말지를 고민하다가, 소작료의 제한을 위반한 것은 분명하기에 일단 장계에 그 사안을 올렸다 합니다.”
“…….”
몽주는 곧바로 답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두고 아마 점녀는 양필거에 대한 처벌이 고민되는 탓이라 여겼지만, 몽주의 머릿속은 달랐다.
그의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건 양필거가 아니라, 근대 민법의 원리와 현대 민법의 수정 원리에 대한 것이었다.
사유 재산 존중의 원칙, 계약 자유의 원칙, 과실 책임의 원칙으로 나뉘는 근대 민법의 원리와 사유 재산 공공의 원칙, 계약 공정의 원칙, 무과실 책임의 원칙으로 수정된 현대 민법의 원리가 마구 뒤섞이고 있었던 것이다.
점녀가 언급한 양필거의 경우는 사실 민법의 원리를 정확히 판단해야 할 필요는 없었지만, 과실과 책임, 그리고 관례에 의한 계약의 내용이 몽주의 머릿속에 잠자고 있던 민법의 원리를 건드려 깨운 것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단순히 판례에 따르라고만 하기에는 애매모호한 경우가 적지 않을 테니, 잘못을 찾아내라는 명에 앞서 그 기준을 정할 필요가 있었고, 그 기준으로 민법 원리를 내세우면 될 것 같았던 것이다.
시대적 순서를 따지자면, 일단 근대 민법의 원리에 따라 판단하는 게 나을 것이다,
어차피 현대 민법 또한 근대 민법의 원리를 기본으로 하되, 그 제한을 두는 수정을 가한 것이니, 어느 쪽을 먼저 사회적으로 안착시켜야 하는지는 뻔했다.
다만, 근대 민법의 원리에 따른 법질서가 생성할 부작용을 아는 입장에서 무조건 그것을 따를 수는 없었다.
특히 근대 민법의 원리는 실제적으로 귀족과 부자 같은 특권층을 위한 원리에 가까웠다.
사유 재산을 엄격히 존중한다 함은 단순히 사인의 재산권과 공공의 이익이 충돌할 때, 사인의 재산권을 존중한다는 의미가 아니었고, 현실에서는 특권을 가진 자의 재산권을 존중한다는 의미였다.
계약 자유의 원칙 또한, 특권을 이용하여 불공정 계약을 강요한 뒤, 피지배자를 착취하는 데 이용되었고, 과실 책임의 원칙도 힘없는 자가 저지른 일말의 실수와 잘못으로 인한 결과의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권력자는 고의가 아니었음을 핑계로 책임을 벗는 데 유용하게 쓰였다.
“제 생각에는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 점을 감안하여 잘못에 대한 벌을 내리되, 너그러운 처분으로 대신하는 것이…….”
“불가.”
“예?”
자신의 의견을 말하다 잘린 점녀의 시야에, 고민을 지운 양 개운한 표정을 짓는 탐라공의 얼굴이 보였다.
‘근대 민법이든 현대 민법이든 지금은 원리부터 고민할 때가 아니지.’
생각해 보니, 애초에 그런 원리가 먼저 있고 법이 있었던 게 아니었다.
법과 판례가 생긴 뒤, 그 결과가 축적된 것을 바탕으로 법학의 영역에서 귀납하고, 연역하여 추출한 것이 민법의 원리였다.
원리가 무엇인지는 후에 법률가와 법학자들이 따질 문제이고, 지금은 몽주가 정의롭다 여기는 대로 판단할 일이었다.
“흉작이 소작농의 책임이라 함은 양필거의 핑계일 따름이다. 태풍 시기에 볏단을 매어 놓지 않았다면 사전에 소작농에게 그리하라 시키면 될 일이 아닌가. 달리 말하면, 양필거가 오히려 관리 감독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게 흉작의 원인이라 할 것이다. 또, 관례에 따라 소작농이 책임진다 하였나? 그 관례가 탐라의 법과 판례에 우선하는 원칙인가? 관례란 법과 판례가 없는 사안의 경우에야 참조할 뿐, 이미 법과 판례가 있는데 어찌 관례를 따질까.”
“…….”
“내 말에 이론이 있나?”
“아닙니다. 소신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점녀는 순순히 그녀의 의견을 굽혔다. 다만, 그것이 끝은 아니었으니,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였다.
“법과 질서가 아닌, 탐라국 경제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드리고픈 말씀이 있습니다.”
“경제의 시각에서?”
“예, 짐작컨대, 토지 이용권을 소유한 자들 중 적잖은 자들이 처벌을 받을 것입니다. 그 처벌이 공명정대해야 함은 마땅하나, 그 후에 토지 이용권 경매에 참여하는 자가 크게 줄거나, 경매 받은 토지를 쓰는 회사가 무너지는 경우가 생길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이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우리 탐라국 경제의 기세가 꺾이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전당청장으로서 그 우려를 못 본 척할 수 없으니, 혹여 차후에 경제적 타격을 절감하기 위해 처벌에 차등을 주실 의향이 있으신지요?”
“없네.”
“……저하, 이는 결코 경시해서는 아니 될 문제입니다. 좀 더 심사숙고…….”
“심사숙고해서 하는 말일세. 내가 이미 부정과 부패가 가져오는 경제적인 폐단을 설파한 바가 있는데, 어찌 전당청장인 자네가 그것을 잊고 그런 말을 하는 겐가?”
애초에 어사대를 출범하던 시절에 이미 부정과 부패를 말소해야 하는 이유를 ‘행동 경제학’적인 분석에 따라 강조한 바 있었다.
“하나, 주군께서도 부정을 처단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더 크다면, 차라리 부정을 남기는 게 낫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뭔가 심한 오해를 하고 있군.”
몽주는 답답한 기색을 얼굴에 역력히 띠며 크게 호흡하곤 방문 쪽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모르긴 몰라도, 아니 확신컨대 집무실 방문 밖 비서원실에는 대신과 청장들 중 다수가 모여 새어 나오는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테니까.
“지금 자네가 하는 말이 마치 어지간한 부정은 그냥 넘어가자는 말처럼 들리는 걸 아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아니, 그러네. 하면 따져 보지. 지금 토지 이용권 경매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가?”
“지난해에 80억 원을 넘었습니다. 하나, 이는 토지 경매 전체의 이익이지, 그 전부가 부패로 낭비되는 금액은 아닙니다.”
“그렇지. 내가 그걸 물은 건 비교하기 위함일세. 자네가 전당청장이니까, 탐라 상단이 지대로 나간 비용을 회수하는 데 보통 얼마나 걸리는지 전해 들었을 걸세.”
“대략 3년입니다.”
“그렇지. 30년 이용하는 지대를 고작 3년이면 회수할 수 있네.”
물론, 이는 정확한 통계라 볼 수 없었다. 아직 국가 전체를 대상으로 그런 치밀한 통계를 얻는 건 가능하지 않았다.
다만, 탐라 상단에 국한해서는 적잖은 자료를 수집하는 게 가능했기에 어느 정도 오류를 감안하고, 추산한 결과가 그것이었다.
또, 이는 탐라 상단이 비교적 저렴하게 경매에 낙찰 받는 경향이 있고, 탐라 상단 자체의 상공업적 이익률이 상당히 높다는 점도 감안해야 했다.
“하면, 매년 토지에서 지대의 열 배에 해당하는 가치가 산출되고 있다고 결론을 지어도 될 것일세.”
“열 배까지는…….”
“열 배든, 다섯 배든 상관없네. 어쨌든 지대보다 훨씬 큰 가치가 산출되는 건 매한가지니까. 정당하게 생산해도 그 정도의 가치가 산출되는 토지를 가지고, 부당하게 다른 착취까지 행하는 자가 괘씸한 건 둘째 치고, 얼마나 많은 가치를 독식하는 건지 대략 가늠이 되지 않나? 토지 이용권을 가진 자들 중 열에 한 명이 자기가 거둬야 할 가치의 십분지 일만큼 더 착취한다면 매년 수억 원의 가치가, 지대 대비 열 배의 생산이라면 십수억 원의 가치가 한 움큼도 안 되는 토지 이용권 소유자에게 몰리는 걸세. 이다음 이야기는 내가 굳이 입 아프게 할 필요는 없겠지?”
“…….”
생략된 이야기는 전수 조사에 필요한 비용을 아무리 크게 잡아도 일부 토지 이용권자들이 독식하는 부정한 자금의 규모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것으로, 점녀가 말한 부정을 처단하는 ‘가성비’를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점녀는 이맛살을 찌푸린 채 몽주의 이야기를 곰곰이 되씹는 모습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다시 입을 열어 탐라공을 향해 물었다.
“주군, 관건이 부정의 처벌에 있지 않은 것입니까?”
“허어…….”
몽주는 한숨을 내쉬었지만, 표정은 상당히 밝아져 있었다. 그래도 점녀가 핵심을 발견한 것이 다행스러웠던 것이다.
“이런, 멍청한 자를 보았나. 이보게, 전당청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경제일세.”
“아…….”
부정을 막는 이야기를 했지만, 핵심은 경제였다.
게임의 룰을 강조하는 건 게임을 위해서이고, 경제의 룰을 강조하는 건 경제를 위해서이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룰을 강조하는 건 자본주의를 위한 것이다.
점녀의 표정이 멍청해졌다.
정말 멍청해서가 아니라, 뭔가 깊은 생각에 빠져 표정 관리마저 되지 않고 있는 탓이었다.
면전에 탐라공이 있는 것도 잊은 채, 멍하니 머릿속 사고에 푹 빠져, 때때로 ‘음’이나, ‘아’하는 나직한 감탄사를 내뱉고 있었다.
마치 깨달음의 순간을 맞이한 것 같기에 몽주는 실소를 머금은 채 그녀가 한 발짝 더 정진하는 것에 안도하였다.
앞으로는 점녀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듯싶었다.
‘그나저나 다행이다. 무법 지대에서 자본의 초기 축적을 맞이하지 않게 되어서…….’
역사에서 자본의 초기 축적은 지역과 시기를 막론하고, 모두 귀족 같은 특별 권력이나, 그런 권력과 유착한 부자들이 아무런 제약도 없이 그 이기심을 마음껏 충당하면서 진행되었다.
그에 비해 탐라국은 적어도 그 이기심을 제약할 제도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것이 자본의 횡포를 예방하기 위한 의도는커녕, 오히려 자본주의를 꽃 피우고, 안정된 사회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였지만, 결과적으로 그 덕분에 자본의 무자비한 이기심을 사기와 횡령, 그리고 아마도 탈세를 포함해서 여러 위법의 죄로서 처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본의 축적이 조금 늦어질 수도 있겠지만, 진정 자본주의가 무한한 경쟁을 기반으로 한다면, 이게 시작부터 제대로 된 자본주의를 만드는 길이겠지.’
노력하는 자들의 땀으로 시작한 자본주의가 억울한 자들의 피눈물을 밟고 시작한 자본주의보다 강력할 것이라 몽주는 믿어 의심치 않기로 하였다.
물론 자본주의의, 자본주의를 위한, 그리고 자본주의에 의한 영원한 전쟁은 이제 막을 올렸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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