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419)
* * *
“태왕(太王)은 이르노라.”
단 위에 휘황찬란한 황관을 쓰고, 진홍의 의복을 갖춘 왕요가 스스로 교서를 낭독하였다.
“하늘이 많은 백성을 낳아서 군장(君長)을 세워, 이를 길러 서로 살게 하고, 이를 다스려 서로 편안하게 하였으니, 그 세월이 수천 년에 이르도다.”
고려 태왕의 즉위식은 황성 안이 아닌, 황성 앞 전정(前庭)이라 불리는 일종의 광장에서 진행되었으니, 고관대신과 왕족들은 물론, 바깥으로 일반 백성들까지 새까맣게 모여 즉위식을 관람할 수 있었다.
“세력 1년 1월 1일 오늘. 짐은 또 하나의 군장이되, 고려 역사 통틀어 가장 으뜸의 자리에 서노라. 세력 기원전에 요동국개국공 이성계와 탐라국개국공 석몽린이 고려 사직의 종사함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고, 고려의 위명이 하늘에 닿음에 감히 제위를 선언할 수 있다 고언하니, 짐은 세 번을 고쳐 생각하며 ‘하늘의 뜻을 알 수 없고, 하늘이 오만함을 좌시하지 않는다’하여 거부하였으나, ‘백성들의 마음이 하늘의 마음이고, 백성들이 허하면 하늘도 거스를 수 없다’는 설복에 마침내 제위의 무게를 감당하기로 마음을 품었다.”
제단(帝壇) 앞 가장 가까운 곳에 요동공과 함께 나란히 앉아 있는 몽주는 왕요의 목소리를 들으며 미소를 지었다.
태왕이 제위에 오르기로 결정하기까지의 과정이 미화되어 함축된 것에 다분히 쑥스러웠던 것이다.
하나,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미화는 아니었다.
요동공은 분명 여러 번 고려의 칭제를 권하였고, 몽주는 칭제를 권하지는 않았으나, 독자적인 역법의 사용을 주장함으로써 칭제를 간접적으로 지지하는 모양을 갖췄다.
그리고 왕요는 분명 여러 번 거절한 바 있으니, 지금 교서의 서두에 나오고 있는 내용은 사실에 기인한 것이었다.
웃음을 짓다가 몽주는 하늘을 슬쩍 올려다보았다.
세력 1월 1일.
그러니까 양력 1월 1일.
한 겨울의 개경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의외로 포근한 날씨였다.
며칠 전에 폭설이 내려 다들 걱정이 많았는데, 그 덕에 오히려 날씨가 풀렸으니, 그만하면 천기(天氣)를 두고 하늘도 제위를 허락하였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늘날 고려의 국운이 솟은 것은 병인 대헌장의 기조에 따라 남과 북의 제후들이 저마다의 기량을 마음껏 펼쳐, 고려의 거낭(巨囊)을 가득 채운 것에서 비롯된 바, 짐은 이 나라 번영의 보리(菩提)를 계승할 것이로다.”
태왕은 그 말과 함께 몽주가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두었으니, 몽주도 그에 고개를 살짝 끄덕여 주었고, 그 때문에 보진 못했지만, 요동공도 뭔가 환영의 ‘제스처’를 취한 듯했다.
고려 태왕이 황제의 자리에 취하여 자기 분수를 망각하는 대신, 요동국과 탐라국이 고려의 기둥이고 앞으로도 그 지위를 인정할 것이라는 점을 병인 대헌장을 언급하고, 그 체제를 불교 최고의 이상인 ‘보리’에 비유함으로써 확인해 준 것이었다.
“이제 용종은 진실로 용종으로서 그 책임을 더욱 무겁게 거둬야 할 것인 바, 힘들고 거친 일에 앞장서 고귀한 황실의 일원임을 증명할 것이로다. 하나하나의 용종이 황실의 명예인 바, 군도(君道)가 득실이 있게 되어, 인심이 복종과 배반함이 있게 되는 바, 천명의 떠나가고 머물러 있음이 그에 매였으니, 이것은 이치의 떳떳함임을 명심할 것이며, 만약 이치에 어긋나는 용종이 있다면, 장삼이사보다 더 엄벌에 처해질 것임을 인지해야 할 것이로다.”
이어진 말은 황실의 책임을 밝히는 부분이었으니, 이는 동시에 용종들에 대한 경고이기도 했다.
대헌장 체제 이후, 사리분별하지 못하던 용종들이 크게 당하여 적어도 겉으로 오만한 짓을 하는 자들은 사라졌다.
하나, 황제 체제 이후, 그에 취하여 다시 옅은 인성을 드러내는 자들이 생길 것이 예상되었기에 미리 경고한 것이었다.
태왕 왕요의 낭독은 계속 이어졌으니, 백성들에 대한 감사와 위로, 그리고 황제로서의 다짐을 밝히고, 왕도가 황도로 변함에 있어 그 내부적인 체제를 만방에 알려 장차 황실이 군림하기 전에 백성들의 황실임을 선포하였다.
특히, 홍익회와 고려전당을 내세워 백성들에게 실제적으로 체감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할 것임을 천명함으로써, 황실이 황실로서 그 존재감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시키며, 가지고 있는 수단을 단지 황실만을 위해 쓰지 않을 것임을 선언하였다.
‘어째 즉위교서라기보다는 대통령 선거 연설 같군.’
가진 권한을 생각하면 대통령이라기보다는 시장에 더 적합하겠지만, 어쨌든 훈요(訓要)와 권력 체계의 선언이 중심이 되는 일반적인 즉위교서와 달리, 백성들을 상대로 한 내용이 많아 확실히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이제 짐은 고려의 황제이고, 고려는 제국이며, 너희는 제국의 백성이다! 마음껏 만세를 불러 만끽할지어다!”
교서의 마무리에 태왕이 좌우를 향해 고창(高唱)하니, 이제껏 조용했던, 어떻게 내내 그렇게나 조용할 수 있었을까 싶었을 정도로 많은 수의 백성들이 일제히 만세를 힘껏 제창하였다.
“만세! 만세! 만세!”
참았던 만세 소리가 봇물 터진 양 끊임없이 대기에 넘실거렸다.
고려 태왕의 즉위식 다음 날인 세력 1년 1월 2일은 사롱의 순보, 즉 사롱 순보(士瓏 旬報)의 창간호가 나온 날이기도 했다.
그리고 사롱 순보의 창간호는 여러모로 기념비적인 발행이었다.
세력(世曆)과 태왕의 연호인 ‘익희(益熙)’가 처음 공식적으로 쓰인 것도 특별했지만, 그건 탐라 조정의 순보도 마찬가지였다.
사롱 순보의 창간호가 시간이 흐른 뒤 더욱 각광받는 부분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필각사(筆刻寫)라는 현장 ‘스케치’가 처음으로 신문에 실린 것으로, 필각사는 화장이 연필로 현장을 재빠르게 묘사한 그림인 약화(略畫)를 양각의 판화 형태로 만들어 인쇄한 것이었다.
이는, 많은 시간이 흘러 사진 기술이 개발되기 전까지, 사진을 대신하여 백성들에게 그들이 직접 볼 수 없는 상황과 현장에 대한 시각적인 정보를 제공하게 된 시초이자, 사롱의 화장들이 그 스스로 벌이를 하여 구애 없이 자신의 예술 세계를 마음껏 펼칠 수 있게 된 금전적 기반이 되는 일이었다.
한데, 사롱 순보 창간호의 필각사가 특별한 의미로 후대에까지 유전된 것은 필각사 자체의 의미나 연필의 탄생이 미술에 끼친 영향 같은 것보다는 필각사로 담은 ‘무언가’에서 비롯되었다.
순보 전체에 걸쳐 실린 여러 장의 필각사들 중에 익희태왕과 요동공, 그리고 탐라공의 얼굴 생김을 담은 필각사도 있었고, 나란히 앉은 요동공과 탐라공이 웃으며 담소하는 상황이 담긴 것도 있었던 것이다.
익희태왕과 두 국공의 어진과 인물화가 따로 존재하는 것과 무관하게 미화됨이 적고, 특정 상황의 분위기까지 담긴 필각사는 그 사료적 가치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 * *
공개적인 즉위식이 끝난 뒤에도, 연희태왕은 여러 외국 사신들의 알현을 받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 자리에 요동공과 탐라공도 동석함이 마땅했다.
그리고 실제로 요동공은 태왕의 하석(下席)에서 가장 빛나는 제후로서 존재감을 피력하고 있었다.
하나, 그와 유구공 사이에 있어야 할 탐라공은 그 자리에 없었으니, 미리 태왕께 양해를 구하고 다른 곳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마르칸트에 입조하라? 이거야 원, 미칠 노릇이군.”
몽주의 어이없는 반응에 티무르의 사신과 동행한 토번의 신하가 그 말을 전해야 할지 말지 곤란해 하였다.
“전하게. 그런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듣자고,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몽주가 한심하다는 표정과 말투로 말하니, 토번의 사신이 그 말을 모두 전하기도 전에 할릴의 표정도 싸늘하게 바뀌었고, 거친 어투로 무언가 한참이나 말을 쏟아 대었다.
“그게…… 거부한다면 큰 화가 닥칠 것이라 합니다.”
“……고작 그건가? 한참이나 말하던데?”
다시 토번의 신하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쩔쩔매었다. 보아하니, 여러 거친 말들을 거르고 요약하여 전한 모양이었다.
몽주는 무슨 말인지 토설하라 재촉하고 싶었지만, 고려말을 아는 죄가 지은 죄의 전부인 그를 괴롭힐 게 아니었다.
대신, 몽주는 할릴이라는 이름의 티무르의 손자, 아마 하렘의 천출 아들들의 아들들까지 도합하면 최소 수십 명은 족히 넘을 이들 중에 하나에 불과한 자를 향해 담담하게 말을 건넸다.
“티무르 왕조는 언젠가 우리 고려가 방문할 곳이긴 하다. 하나, 당장은 아니고, 내가 직접 갈 가능성도 거의 없다. 이건 그대든 티무르든 누가 무슨 짓을 해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몽주의 담담한 말투에 협상도 협박도 불가능한 결단이 담겨 있음을 할릴의 표정이 더욱 차가워졌고, 아까와 달리 낮은 어투로 무언가 말하였다.
“양나라를 무너뜨리겠다 합니다.”
“…….”
‘그래, 그게 고려를 어쩌겠노라 떠드는 것보다는 약간이나마 현실성이 있지. 한데…….’
몽주는 양나라를 공격하는 건 어느 정도 가능한 일이라는 점보다는 고려의 자신을 협박하기 위해 양나라를 언급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즉, 할릴은 토번의 이동(以東)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고려를 위시한 동맹 체제를 분명 인식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대단한 건 아니었다. 토번과 통한 만큼 동아시아 상황의 정보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다만, 그 정도의 상황을 아는 자라면, 고려가 티무르로서는 도저히 군사적인 접근이 불가능할 정도로 먼 땅이라는 걸 모를 리가 없다는 점에 몽주는 주목했다.
물론, 할릴이 직접 황도까지 오며 여행의 피로로 인해 볼이 움푹 들어갈 정도로 힘들었던 것을 경험하면서 깨달았겠지만, 몽주가 보기에는 이미 그 전에도 알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그리고 할릴이 알고 있다면 티무르도 안다고 봐야 마땅했다.
실제로 역사에서 티무르와 명나라가 교류한 바 있었으니, 티무르가 말년에 명나라와 승부를 보겠노라 하여 양국의 사이가 흉흉해지기 전까지 제법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다.
물론, 지금은 상황이 바뀌어 명나라와 티무르조 사이에 공식적인 교류가 이어지고 있을 가능성은 없지만, 명나라의 상황이 어떤지, 왜 그런 상황이 되었는지는 분명히 티무르조에도 알려졌을 것이다.
그 이야기는 반대로…….
‘이 자식, 처음부터 장난질이네.’
몽주의 입가에 냉소가 눈매에는 비웃음이 서렸다.
“네 아비, 미란 샤는 무탈하신가?”
“……!”
할릴의 쌍꺼풀 진한 큰 눈이 두 배나 더 커지는 순간이었다.
* * *
그의 조부는 세상을 정복한 위인이었다.
사방의 족속들이 모두 머리를 조아리고 벌벌 떠는 위대한 정복자.
그의 아비 또한 위대한 정복자의 아들다웠다, 한때는.
그는 히자르 데니지 호수 서부(현 카스피해 서부, 아제르바이잔 및 이라크 지역)의 지배자로, 투르크 및 잘라이르조(朝)로부터 제국을 방어하는 수호자였다.
모든 것이 순조롭고 평안하였다.
외적과의 싸움은 그치지 않았고, 백부나 숙부들과의 권력 다툼 또한 살벌했지만, 그건 위대한 정복자의 아들로서 당연히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문제는 그의 아비가 변하기 시작한 때부터였다.
낙마 사고로 한참을 병상에서 보낸 뒤, 할릴의 아비는 소극적인 인물로 변하였다.
하여, 여러 주변의 간신들에게 휘둘려 영지의 관리를 소홀히 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잘라이르조 방어의 핵심 요새인 알린자를 빼앗기기에 이르렀다.
또, 술에 취해 함부로 내뱉은 말이 원인이 되어, 그가 위대한 정복자의 자리를 탐한다는 소문까지 돌게 되었으니, 지금 할릴의 아비 미란 샤의 상황은 위태롭기 그지없었다.
실제로 위대한 정복자는 그의 조카를 시켜 미란 샤를 소환하려 했었으니, 다행히 상황이 꼬여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이러다가 할릴의 아비 미란 샤는 그의 아비인 위대한 정복자에게 숙청될 수도 있었다.
당연히 아버지의 문제는 할릴에게도 중대한 문제였다.
그가 미란 샤의 아들인 이상, 그의 미래는 물론이고, 심지어 목숨도 달려 있는 문제이므로.
할릴은 나름대로 상황을 호전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였으니, 그의 귀에 위대한 정복자가 명나라에서 건너온 황금 거울에 몹시 매료되었고, 사마르칸트의 황성 내 큰 방 전체를 그 거울로 꾸미길 원하고 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이 대략 1년 반 전의 일이었다.
“고려 탐라공이 미란 샤께서는 잘 계시는지를 여쭈었습니다.”
그리고 1년 반이 지나, 황금 거울의 실제 주인인 고려의 석상(昔商)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석상이라는 자는 겨우(?) 거울이나 만드는 자가 아님이 분명했다. 그건 그가 고려에서 아주 권세 높은 자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어떻게…… 내 아버지를 알고 있는가?”
“그건 알 거 없고. 딱 보니, 아주 위태로운 모양이군. 아마 그 위대한 정복자께서 자기 셋째 아들을 크게 의심하고 있겠지.”
“……!”
“그래서 그 셋째 아들의 아들은 아비를 구하기 위해, 그리고 본인이 잘 살기 위해 어떻게든 정복자의 환심을 사고자 애를 쓰고 있는 중이고.”
“…….”
“내 말이 맞을 거야. 그러니 쓸데없는 말로 턱도 없는 협박질은 그만두고 바라는 거나 말하게.”
“감히! 나는 위대한 정복자의 말씀을 전하러 온 것이다!”
“그래? 하면, 국서를 내놓게. 설마하니 위대한 정복자께서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필요한 글자 몇 줄까지 아끼진 않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나?”
“…….”
할릴은 석상을 노려보았지만, 이미 기세가 꺾인 시선이었다.
국서는…… 없었다.
애초에 정복자의 명으로 온 것도 아니었다.
지금, 대체 어떻게 안 건지는 모르겠지만, 석상이 말한 그대로가 실상이었다.
“정복자께서는 글로 설득하지 않으신다! 굴복하라! 그렇지 않으면 정복자의 말발굽이 고려를 덮칠 것이다!”
할릴 스스로 느끼기에도 어처구니없는 발악과 같은 고함이었다.
“아 놔, 정복자, 정복자, 하도 지껄여 대서 동조 좀 해 줬더니, 아주 발광을 하네. 이보게, 이 말을 고스란히 전하게. 저 인간 할아비보다 내가 더 위대한 정복자라고.”
토번의 신하가 식은땀을 흘리며 무어라 전하니, 할릴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다시 말을 쏟아 내기 시작했지만, 몽주가 더 크게 소리쳐 그의 말을 끊었다.
“어디 쓸모없는 고원 지대에서 코딱지만 한 땅들 좀 따먹었다고 위대한 정복자 타령이야! 여봐라!”
몽주가 고개를 돌려 바깥을 향해 소리치자, 순식간에 십수 명의 무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이자는 거짓된 사신이다. 잡아다 가둬라. 차후에 내가 직접 심문할 것이다.”
몽주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무인들이 할릴의 수족을 결박해 버렸고, 직후에 바깥에도 소란스러운 소리가 터져 나왔으니, 할릴이 데려온 자들을 구금하기 위한 소동이었다.
몇몇은 탐라에서 데려온 몽주의 호위군병들이었지만, 대부분이 황실의 근위대원임에도 몽주의 명은 거침없이 시행되었다.
이는 그만큼 몽주의 권력이 황실에 깊이 스며든 덕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할릴이 엄정한 의미에서 사신단으로서의 자격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할릴은 태왕의 즉위식 전에 당도하였음에도 태왕께 알현하기를 거부하였으니, 위대한 정복자의 후손으로서 다른 황제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익희태왕도 그렇고, 몽주나 요동공도 그렇고, 고려의 권력들이 너그러이 봐줘서 그런 ‘땡강’을 넘어가긴 했지만, 고려의 신하들에게 충분히 미운털이 박힐 만한 행동이었으니, 탐라공이 잡으라는 명을 내린 만큼 다들 그 명을 충실히 이행한 것이었다.
“괜찮으십니까?”
마구 발버둥 치고 고함을 지르다가 근위대 위병에게 크게 얻어맞고 축 늘어져 끌려가는 할릴을 스쳐 들어온 탐라의 신하들이 염려스러운 표정으로 몽주를 향해 물었다.
“내가 괜찮지 않을 게 무엇인가.”
“그렇긴 합니다만, 대체 무슨 일이 있으신 건지……?”
할릴의 ‘땡강’은 몽주와의 면담을 앞두고도 있었으니, 오직 탐라공과 독대하길 바란 것이었다.
하여, 몽주는 사관(史官)과 호위군병 소수만 두고 독대를 허락하였으니, 포은이나 홍길도도 동석하지 못했다.
몽주는 파악한 사정을 신하들에게 대략 설명해 주었다.
“저자의 신변은 근위대에 맡기지 말고, 우리가 거두지. 여차하면 탐라섬까지 데려갈 작정이야.”
“네? 어찌 그러십니까?
내관대신 홍길도가 다른 신하들을 대신하여 물었다.
“하는 짓이 건방지긴 한데, 차후에 쓸모가 있을 것 같아. 자세한 건 나중에 말해 주지.”
“예, 알겠습니다.”
사실 몽주도 더 자세한 계획 같은 건 없었다.
하나, 한 가지 분명히 알고 있는 사실이 있었으니, 티무르조 2대 군주 즉, 정복자 티무르의 후계자 이름이 할릴 술탄이고, 그가 티무르의 아들인 미란 샤의 실질적인 맏이라는 점이었다.
단지 이름만 같을 때는 애매했지만, 앞서 그가 미란 샤의 아들임을 확인한 만큼 분명 할릴은 역사에서 티무르조 2대 군주였던 그자임에 틀림없었다.
그만하면 어딘가에 쓸모가 있어도 충분히 있을 법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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