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42)
* * *
마누라가 추녀든 아니든 몽주는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꿈이라고만 여기고 원초적인 본능에 따라 움직이던 지난 꿈과는 달리, 이번에는 명백히 할 일이 있고 목표가 있다. 그저 아내가 될 여자가 방해만 되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추녀라는 게 꼭 나쁜 건 아닐 것이다.
정신일도(精神一到)할 수 있으니 하사불성(何事不成)이지 않겠는가.
분명 마음가짐은 그러한데, 고려로 돌아온 몽주는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건만, 자꾸 주변 사람들이 위로와 격려를 전하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석삼이 녀석까지도 안쓰러운 시선을 보내는데…….
“혹여 새아씨께 도련님이 두들겨 맞으면 제가 몸으로라도 막아드릴 테니 걱정 마시오. 하나 생김새는 저도 어쩔 수가 없으니…… 부디 참고 견디어 후사는 꼭 잇도록 하셔야…….”
“…….”
말도 제대로 못 이을 정도로 진심으로 안타까운 양, 그러나 뭔가 놀리는 느낌이 가득한 석삼의 말.
비단 석삼만이 아니라 여기저기서 들리는 쑥덕거림은 몽주를 지치게 만들었다.
그냥 쑥덕거리기만 한다면 적당히 무시하겠건만, 그 이야기들이 귀에 명명백백하게 들리니 절로 신경이 쓰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점점 최앵도라는 여자에 대한 이미지를 인간보다는 인간 병기…… 도 아니고 그냥 괴물 쪽에 가깝게 망가뜨리고 있었다.
아홉 살 때부터 잡은 검술이 경지에 이르러 산에서 잡은 범이 세 마리에 이르고, 궁술 또한 백 보 밖에서 쏜 화살이 날아가는 매를 일격에 명중시킬 정도라고 했다.
뭐 거기까지야 ‘허허, 여인의 몸으로 참 대단하구려.’라는 소감을 가질 수 있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사람을 죽인 경험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닌 모양이었다. 믿기 힘들지만 다들 이구동성으로 그것이 사실이라고 전하니 좀 불안했다.
지난 꿈에서 그 잔악무도한 폭군이었던 몽주도 직접 사람을 죽인 적은 거의 없었다. 죽이라는 명령은 셀 수 없이 내렸지만 직접 사람을 베거나 때린 건 그 꿈의 초반부에 어쩔 수 없이, 몇 번 정도였던 것이다.
살생을 자제했던 건 워낙에 실감나는 꿈(?)이었던 터라 기분이 더러워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마누라가 될 여자가 사람을 도륙한 적이 있다고 하니, 게다가 그 여자에게는 이 세상이 꿈도 아닐 터인데 살인의 손맛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몽주로선 절로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주인 도련님, 제가 새로운 소식을 가져왔습니다요. 새아씨께 어릴 적부터 두들겨 맞으며 컸다는 같은 고을의 전호 놈에게서 나온 말이라는데, 새아씨의 별명이 흑나찰이랍니다요. 왜 그런고 하니 살갗이 시꺼멓기 때문인데, 그믐날 밤에 보면 얼굴이 안 보일 정도랍니다요. 게다가 손이 커서 주먹을 쥐면 이따만 하고, 허벅지도 굵어 사내와 씨름을 해도 단번에 넘겨 버린다고 했습니다요.”
“…….”
“또 그 녀석이 말하길, 성질머리가 얼마나 폭급한지 뭐라도 제 성미에 차지 않으면 ‘우아아앙!’ 소리치며 주먹을 마구 휘두르는데, 그때 서둘러 원하는 걸 들어주어 성질을 죽이지 않으면 끝내 칼까지 뽑아 들 정도라고 합니다요.”
“……어디서 그런 거짓부렁을 듣고 온 게냐.”
“거짓부렁이 아닙니다요! 아니면 괜히 흑나찰이라고 불렸겠습니까요!”
“이 자식이, 아주 신이 났구나, 노 났어!”
화가 난 몽주가 발길질을 하자, 녀석은 몇 번 비껴 맞는 척하며 피하곤 이내 도망쳤다.
씩씩대던 몽주는 석삼을 쫓아가려다가 멈추곤 혼자 분을 삭였다. 어차피 쫓아가야 혼자 숨만 찰 뿐, 잡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게 짜증이 났다. 석삼을 잡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몸뚱이가 짜증났다.
열여덟 살짜리 사내 녀석이 왜 이리 유약한가.
좀 전 석삼에게 한 발길질부터가 어찌나 느리고 힘이 없는지,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당장 마누라는 호랑이도 잡는 무사라는데, 백 보 너머에서 매도 활로 맞춘다는데, 주먹이 이따만 한 흑나찰…….
“후우.”
몽주는 소매 아래로 보이는 얄팍한 손목과 손등의 허연 피부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날부터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현대인 몽주의 꿈속에서 고려인 몽주가 또 꿈을 꾸는 게 이상하긴 했지만, 어쨌든 그랬다.
그 악몽이란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흑누님이 ‘서방니임~’ 콧소리를 내며, 도망치는 몽주를 잡아다 억지로…….
으아아아.
* * *
누가 그를 보며 수군거리든, 동정 어린 시선을 받든, 악몽에 시달려 얼굴이 퀭해지든, 몽주는 하던 일에 몰두하였다. 수군거림과 악몽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라도 더 그래야 했다.
물론 그가 몰두한 일은 비누와 로션, 그리고 가다랑어포를 완성하는 것이었다.
사실 세 제품 모두 완성된 것이나 진배없었다.
가다랑어포는 시간과 노동력이 필요할 뿐, 제조 과정 자체는 안정화된 상태였고, 비누와 로션은 이미 완성된 상태라고 할 수 있었으니까.
하나 몽주는 조금 더 욕심을 내기로 하였다. 비누와 로션에 향을 입히고자 한 것이다.
현대에서 향료의 재료와 그 제작법을 알아내고 간단히 실험해 보기도 했는데, 막상 고려에서 다시 시도해 보니 예상보다 훨씬 난관이었다.
가격 때문에 식물성 향료에 집중했고, 기존 여성들이 자체 조달하던 화장품에 들어가는 그런 식물성 향료, 즉, 유향 식물이 제법 알려져 있어 금세 적합한 향료와 그 제조법을 찾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예상과 달랐던 것이다.
천연 정유(精油) 상태에서는 괜찮은 향을 풍기던 것들도 비누나 로션에 섞이면 향이 사라지거나 변질되곤 했다.
아무래도 있는 그대로 쓰는 대신 따로 정유의 농도를 높이기 위한 처리 방법을 알아내야 할 것 같은데, 현대에서 알아 온 수증기 증류법은 그 공정상의 기술력 부족으로 향의 열화가 너무 심했고, 다른 방법들도 촉매를 구하지 못하거나 기술 부족으로 불발되었다.
하여, 결국 선택된 게 사향(麝香)이었다. 알코올로 비교적 간편하게 추출 가능했고, 비누와 로션에 섞인 후에도 알코올 증발을 통해 제품이 무너지거나 질이 떨어지는 걸 막을 수 있었다.
또, 동물성 향료 특유의 강력함 덕에 향의 열화도 별로 없었다.
문제는 비싸다는 것.
사향노루의 냄새 주머니 자체도 금값이었고, 거기서 뽑아낸 향료 성분인 무스콘(muscon)도 너무 적었다.
몽주가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소은병들을 탈탈 털어 사향을 애써 구하고 나서야, 겨우 소유한 비누와 로션에 적절하게 향을 입힐 정도가 되었다.
“억만금을 들여서인지 모르지만, 그 향이 참으로 좋습니다요.”
진짜 억만금씩이나 들인 건 아니지만, 석삼이 뚜껑 닫힌 비누 단지에 얼굴을 들이밀고 연신 킁킁거릴 정도로 그 향은 충분히 매혹적인 모양이었다.
하기야 애초에 사향은 여인의 페로몬 향과 유사하여 예부터 남자를 유혹하기 위한 도구로 쓰였으니, 충분히 그럴 만했다.
“어떠냐? 이만하면 여인들이 너도나도 가지고 싶지 않겠냐?”
“쇤네가 그걸 어찌 압니까요? 근데, 이걸 파실 겁니까요? 그러다 자칫…….”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는 뻔했기에 몽주는 손사래를 쳤다. 한양부도 경시감의 별시가 시전을 설치하고 관장하면서 난전이 금지되었다. 따라서 사인이 관의 허가 없이 함부로 상행위를 했다가 크게 경을 칠 수도 있는 상황. 석삼이는 이를 경고하려 하는 것이었다.
“일단은 내 그저 어여삐 여기는 몇몇 아이들에게 나눠 줄 요량일세.”
“어여삐 여기는 아이들…….”
석삼이 무슨 소린가 싶어 따라 읊다가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그러면 그렇지.’하는 시선으로 몽주를 위아래로 훑었다.
“하기야 조만간 혼인을 치르면 그 짓거리도 끝이지요. 마음대로 하십시오.”
“…….”
석삼은 말을 마무리하면서 끝에 소리는 안내면서 ‘흑나찰’이라고 입 모양을 내었다.
안 되겠어. 아무래도 한번 매타작이 있어야…….
“잠깐, 지금 절 혼내시면 저는 도망칠 겁니다요. 그러면 가다랑어포는 혼자 만드셔야 할 거고요. 헤헤.”
움찔.
한쪽 가죽신을 벗어 들어 석삼을 향해 내려치려다 멈출 수밖에 없었다.
화를 풀기에는 그들을 기다리는 메마른 가다랑어가 너무 많았다.
여러모로 시행착오가 많았던 비누나 로션에 비해, 가다랑어포는 현대에서 알아 온 그대로 고려에서 재현이 가능했다.
애초에 특별한 첨가물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저 그늘과 햇빛에 번갈아 말리는 것에 불과한 터라 시간이 문제일 뿐, 제조 공법에 어려움이 없는 덕분이었다.
다만, 마지막 과정은 살짝 문제였다.
고등어과 어류 중 작은 편에 속한다고는 하지만, 큰 건 1미터에 이를 정도인 가다랑어는 마른 상태에서도 제법 묵직했다.
물론 묵직하다고 해서 그 무게 자체가 문제일 정도는 결코 아니었다. 다만 그 묵직한 놈이 너무 단단하다는 게 문제인 것이었다.
어지간한 돌멩이와 세게 부딪치면 돌멩이가 부서질 정도. 이건 결코 심한 과장은 아니었다.
애초에 일본의 가츠오부시가 대패로 밀어 깎아 낸 포의 형태로 발전하게 된 이유도 그 단단함 때문 아니던가.
마찬가지로 몽주와 석삼 앞에 널려 있는, 수십 마리의 가다랑어도 대패로 밀어 포의 형태로 만들어야 했다.
그건 분명 대단한 노동일 수밖에 없었다.
서걱, 서걱.
석삼이 열수(烈水)의 떼꾼네들에게 오종포 한 필을 주고 빌려왔다는 목구에 대패를 거꾸로 눕혀 고정시키고, 그 위로 단단하게 마른 가다랑어를 움직여 포를 뜨는 소리는 정말이지, 잘 건조된 목각에 대패질을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물론 힘이 드는 것도 대패질과 마찬가지였다.
떼꾼은 뗏목의 사공인데 열수(한강) 상류에서 나무들을 엮어 뗏목의 형태로 운반하는 일을 하는 이들이었다.
하는 일이 그런 만큼 나무를 고정하여 자르거나 다듬는 일이 많았다. 그중 가다랑어포를 위한 도구로 차용할 만한 도구가 있었으니, 그걸 눈썰미가 좋은 석삼이가 빌려온 것이었다.
네 개의 두툼한 나무통 사이에 대패를 고정시키고 위로 가다랑어를 비벼 깎으면 네 나무통 정 가운데로 포가 떨어지게 되어 있어 모으기에도 편리했다.
그렇게 석삼의 재기 덕에 방법은 찾았지만, 역시나 노동력이 문제였다.
2인 1조로 해야 하는 작업인 탓에 번갈아 쉴 수도 없어, 두 사람은 금세 지쳐 버렸다.
몽주는 애초에 약했고, 석삼은 몽주가 약한 만큼 더 힘을 써야 했기에 평소보다 더 빨리 지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이고…….”
“에구구…….”
* * *
본래 이틀이면 다할 줄 알았던 포 뜨기 작업은 닷새를 넘겨야 했다.
그렇게 해서 남은 건 열다섯 큰 포대의 가다랑어포와 두 사내의 수전증, 그리고 석삼의 ‘다음번에 뭔 일을 한다 해도 나를 부르지 마시오!’라는 악다구니뿐이었다.
어쨌든 목표로 한 가다랑어포를 만들었기에 실험 삼아 먹어 보았다. 국수를 말아 그 위에 고봉으로 가다랑어포를 놓아 먹어 본 것이었다.
그 맛은 몽주로선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현대에서 맛보던 가츠오부시에 비해서는 다소 짭짤한 맛이 적나 싶었지만, 고려의 기준에서는 그 감칠맛이 아주 풍부했다.
하나, 그건 현대인의 입맛을 아는 몽주의 기준이기에 아직 이 시대에 그 감칠맛이 통할지는…….
후루룩, 후루룩!
탁.
“이야, 그 고생을 하며 만든 보람이 있습니다요! 한 그릇 더 먹어도 될깝쇼?”
아직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힘들게 젓가락질을 하면서도 면을 흡입하듯 빨아먹고 흐물거리는 가다랑어포로 가득한 걸쭉한 국물까지 비운 석삼을 보아하니, 맛이 통할지를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근데, 이 가다랭이포도 어여삐 여기시는 아이들에게만 나눠 주실 생각이십니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 하나 그보다는 부모님께서 먼저 맛보셔야 되지 않겠느냐.”
“헤헤, 그래도 망나니에 이르진 않으셨습니다요. 최소한의 자식된 도리는 잊지 않으셨으니까요.”
“망나…….”
몽주는 다시 받은 국수에 담을 요량으로 가져가던 가다랑어포 그릇을 석삼으로부터 빼앗아 버렸다.
저놈의 얄미운 조동아리하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