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422)
“사장님,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요?”
“뭐가 어때서 그러는 게냐?”
“솔직히 우리 물산이 썩 대단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요.”
“어허! 뭐가 어디가 어떻다고 자꾸 허튼소리를 하는 게냐?!”
주선 경업의 사장 겸주선은 짜증이 잔뜩 묻은 표정으로 버럭하였다.
회사에 둘밖에 없는 부장 중 영업부를 담당하는 부장이자, 사장인 주선이 개발부의 부장을 겸임하는 터라, 사실상 2인자라고 할 수 있는 진결희찬이 움찔했지만, 다시 투덜거리듯 말문을 열었다.
“순보라는 게 나라에서도 집중하는 것이라 괜히 눈총을 받았다가…….”
“받았다가 뭐?”
“다시 말하지만 우리 회사 물산이 대단치 않지 않습니까. 고급 치실이라지만 결국 명주실 끊어 말아 놓은 거고, 구정액이라 이름은 거창하지만, 소금물에 밀정을 조금 녹인 거에 불과하잖아요.”
“이놈아, 하면 세상에 대단한 물산이 뭐 얼마나 있냐? 탐라공께서 내놓은 물산을 빼고 나면, 다 거기서 거기잖아?”
“그러니까 다른 물산처럼 가만히 알음알음 팔지, 왜 순보에 자랑을 하려느냐는 겁니다.”
“하아, 네놈은 왜 그렇게 매사에 부정적이냐?”
걸음을 멈춘 주선은 하나뿐인 심복을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내가 어찌 순보로 우리 물산을 소개하려고 마음을 먹었는지 너도 잘 알잖냐? 나주군의 잡물점에서도 우리 물산을 사려고 오고 있다. 우리 물산이 좋다고 말이야. 어쩌다 조금 나주까지 흘러가서 입소문이 난 것만으로도 그런 거다. 하면, 다른 고을에까지 우리 물산을 소개하면 어찌 되겠느냐? 더 많은 손님들이 우리 물산을 찾을 거 아니냐?”
“예, 그거야 알지요. 한데, 다시 말하지만, 우리 물산이 그리 대단…….”
“야, 이놈아!”
그녀는 지긋지긋한 소리가 또 들리려 하자, 버럭 소리쳤다.
“그렇게 우리 물산에 대해 자신없으면 때려치워! 나도 네놈같이 매사에 부정적인 놈하고는 일하기가 싫다!”
주선은 상고(裳袴 : 치마바지)라 하여 근자에 일하는 여인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는 통 넓은 바지 자락을 휘날리며 팽하니 돌아서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뒤에 떨어져 남은 희찬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점점 멀어져 가는 사장을 보며 한숨을 내쉬곤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 쫓아갔다.
그 방향 너머, 근자에 진주를 중심으로 남면 남부 지역에 널리 유통되고 있는 사롱 순보의 현판이 걸려 있는 건물이 있었다.
* * *
“호~ 호~”
몽주는 반으로 쪼갠 ‘찐빵’을 만족스레 바라보며 입으로 바람을 불어 식혔다.
그러곤 조심스레 한쪽 ‘빵’을 베어 물고는 뜨거움을 달래며 팥소가 주는 달콤함과 약간 짭짜름한 빵의 식감을 즐겼다.
“쩝쩝, 음…… 맛이 좋군.”
“맛있어요? 종종 사다 놓을까요?”
“그러시오. 허허, 이걸 여기서 먹게 되다니…….”
“……전에 드신 적 있어요?”
“아, 아니, 이런 걸 만들어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새, 생각을 해 봤단 뜻이오.”
“아…….”
몽주는 잠깐 당황했지만, 나름 자연스럽게 그럴싸한 변명을 내놓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이상한 변명이겠지만, 온갖 기물을 만들어 내놓은 몽주이기에 충분히 가능했다.
“이게 얼마라고 했소?”
“두 개에 5원이더군요. 조금 비싸죠.”
“흠, 뭐, 아주 비싼 건 아니구려.”
“하긴, 그러니까 잘 팔리겠죠.”
“그렇소?”
“예, 석 달 전부터 문을 연 전병점(煎餠店)인데, 며칠 만에 입소문이 나서 요즘은 아침부터 그 앞에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대요.”
“내 생각보다 더 오래전부터 팔았나 보군. 일찍 좀 알려 주지.”
“호호, 그게 섭섭해요? 백성들이 알면 우습다고 생각할걸요.”
아내의 웃음은 별걸 다 서운해 한다는 식이었다. 하기야 실제는 아니지만, 탐라공이라면 매끼니마다 온갖 산해진미를 다 먹고 있을 거라고 생각할 테니, 백성들이 간단히 요기를 하거나 간식으로 먹는 싸구려 밀병을 탐라공이 좋아한다고 여길 리 만무했다.
“아무튼 앞으로도 종종 이 팥밀병을 가져다 주시오. 입맛에 딱이구료.”
현대에서 겨울철 편의점에서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소위 ‘호빵’이라는 것과 유사한 게 팥밀병이었다.
사실 ‘빵’은 고려에서 어느새 꽤 보편적인 음식으로 변해 있었다.
요동국이 대규모로 밀농사를 지어 면분(麵粉)이라는 이름으로 밀가루가 값싸게 유통되고 있거니와, 생활 수준이 향상되면서 쌀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식생활을 벗어나 식도락을 추구하는 경향이 생긴 덕이었다.
물론, 당연히 북방에서는 식도락이기 전에 주식이었다.
어쨌든 몽주는 본디 빵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이는 현대에서 그렇다는 게 아니라, 고려 당대의 빵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당대의 빵은 찰떡처럼 끈끈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이가 약한 자는 베어 먹기 어려울 정도로 딱딱하기 때문이었다.
한데, 오늘 앵도가 맛을 보라며 가져온 그 팥밀병은 몽주가 아는 바로 그 ‘빵’이었다.
‘호빵’보다 찰기가 조금 더 있고, 표면이 조금 거칠긴 했지만, 만지면 폭신하고, 부드럽게 찢어지면서, 입에 넣으면 쫄깃한 식감이 분명 ‘호빵’이자 ‘찐빵’이었다.
또, 팥소도 설탕으로 단맛을 더하여, 구미를 당기게 하고 있었다.
‘누룩으로 발효하는 방법을 제대로 터득한 거겠지? 후후, 역시 두고 보면 제대로 만들어 내는 자들이 생겨나는 법이지.’
술 만들 때 나오는 누룩을 넣어 밀병을 빗는 건 아는 자들은 다 알고 있었다.
다만, 아는 것과 제대로 만드는 건 엄연히 다른 법이고, 밀가루 음식의 문화가 얕은 고려에서는 이제껏 제대로 된 ‘빵’이 없었다.
‘그 밀병점 주인이 개발한 걸까, 아니면 다른 곳에서 배워 온 걸까.’
‘호빵’을 야금야금하며 몽주는 잠시 생각하다가 다음에 외출하면 한번 들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의 입에 그 빵이 오기까지 세 달이나 걸린 것을 제외하면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운 간식 시간이었다.
한데, 앵도가 물러가고 집무에 들어가기 전에, 사롱 순보를 펼친 몽주의 눈에 기사가 하나 크게 들어왔다.
“으, 응?”
순보를 펼친 채, 여송산 등나무 흔들의자에 앉아 몸을 흔들거리던 몽주는 편한 자세를 고치곤 그 기사를 유심히 살폈다.
궁서//치실과 구정액(口淨液)으로 충식통(蟲蝕痛 : 치통)을 예방하시오.
주선경업에서 생산하는 치실은 연나라산 명주실로 만들어져 얇으면서도 질겨 치아 사이를 청소하기에 편하오. 통 안에 둥글게 말려 있고, 작은 칼날도 달려 있어 소지하다가 필요할 때 치실을 잘라 쓰기 편할 것이오.
또, 같이 생산하는 구정액으로 입안을 헹구면 치충(齒蟲)을 사멸시킬 수 있으니, 이는 구정액에 녹둔군산 고급 자염과 밀정(蜜精 : 프로폴리스)이 함유되어 있음을 안다면 그 효과를 짐작하고 수긍할 수 있을 것이오.
가까운 잡물점에 의뢰하면 곧 구할 수 있을 것이니, 의향이 있는 자는 잊지 마시오.//
“과, 광고?”
2면 하단에 따로 칸이 나뉜 그 글귀들은 몽주의 눈에는 분명 광고, ‘신문 광고’였다.
물론, 기사 어디에도 광고라는 표기는 없었다. 아니, 애초에 광고라는 말 자체도 당대에 존재하지 않았다.
널리 알린다는 의미의 광고(廣告)라는 한자 조합이야 있을 수 있지만, ‘advertisement’라는 개념으로는 쓰이지 않고 있었다.
어이없는 표정으로 광고인 듯 광고 아닌 광고 같은 기사를 보던 몽주의 이맛살이 어느 순간 크게 구겨졌다.
그가 보기에 그 광고 같은 기사의 출현은 꽤 큰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보게! 아무나 들어오게!”
몽주가 크게 소리쳐 부르자, 비서원 관리 하나가 급히 들어왔다.
몽주는 사롱 순보의 그 기사에 연필로 크게 동그라미를 그려 표시하곤 그 관리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사롱 순보의 수장과 그 기사를 쓴 자, 그리고 그 주선경업이라는 회사의 사장을 호출하게. 내가 가급적 빨리 만나야겠네.”
“옛!”
몽주의 명이 마치 당장 잡아 오라는 식이었기에 비서원 관리도 크게 복명하고는 서둘러 나갔다.
실제로 나흘 후 몽주가 호출한 자들이 탐라섬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어사대원들에 의해 서로 나뉘어 끌려갔으니, 진정 잡아 오라는 명이나 다름없었다.
* * *
당장 만날 것처럼 ‘광고’ 관련자들을 부른 몽주가 정작 그들에 대한 조사를 일단 어사대에 맡긴 것은 집안일 때문이었다.
서른 살이 다 되도록 혼인에 생각이 없는 것처럼 굴던 아우 몽건이 드디어 혼인을 입에 담은 것이었다.
한데, 썩 수월한 혼인이 될 것 같지 않다는 점이 문제였다.
“다, 다점의 점주라고?”
“예, 형님.”
“…….”
몽건이 혼인의 상대로 생각하는 이는 공택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다점의 주인이었다.
몽주로서는 얼떨떨했다.
이제껏 아우의 혼사를 두고 ‘거래’하지 않은 건 자식도 아닌 아우의 의사를 존중하고자 하는 마음이었고, 동시에 아우라면 어설픈 상대와 혼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네가 그간 나나 강영이가 권한 여인들을 거절하면서 한 말이 있었다. 기억하느냐?”
“예.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하면, 그 다점의 점주와는…….”
“말이 통합니다.”
몽주는 아마도 처음으로 아우의 대답을 의심했다.
하여, 이것저것 물어 답을 얻었는데, 그래서 오히려 말이 통한다는 아우의 대답에 더 신빙성이 떨어졌다.
학력은 기술학교를 중퇴한 게 전부였고, 나이는 스물넷으로, 열아홉 살부터 지금까지 쭉 다점 운영을 한 게 전부라는 여인이, 몽주가 천몽 안에서 만난 모든 이들 중에 가장 천재적인 아우와 말이 통한다?
혹 그 여인이 재능을 드러내지 못한, 숨겨진 천재쯤 되는 것일까 싶었지만,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저기, 내 솔직히 물으마. 혹여 그 여인의 외모가 네 취향에 딱 맞아서 그런 거라면…….”
“물론, 어여쁩니다. 특히 목소리는 더욱 좋지요. 하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보이는 것에 치중하였다면 지난번에 조카가 소개해 준 요동국 봉왕청장의 여식이 더…….”
“굳이 비교하고자 다른 이를 언급할 건 없다.”
“예.”
몽주는 아우에게 그 여인에 대해 여러 가지 더 물었고, 답을 들었지만 그럼에도 도통 아우가 그 여인에게 반한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다.
“혹시 내가 반대하면 어쩔 셈이냐?”
“그러시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하나, 만약 내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단점이 있는 여인이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정도로 큰 단점은 없을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몽건이가 아우가 아니라 아들이었다면 이미 그 대화는 끝났을 것이다.
당연히 턱도 없는 소리라 치부하고, 아들의 의사를 묵살했을 것이다.
하나, 아들이 아닌 아우이고, 아무리 연심에 눈이 멀어도 어리석은 선택을 할 이는 아니라 믿었으니, 당장은 무어라 답하기가 어려웠다.
“일단은 알겠다. 내게도 생각할 시간을 줘야지.”
“혹시 뒷조사를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게 싫으냐?”
실제로 할지 안 할지는 몽주도 아직 판단이 서지 않았지만, 그렇게 물어보았다.
“만약 하신다면, 그 여인이 눈치채지 못할 방법으로 해 주십시오.”
“오냐, 알겠다.”
은근히 느껴지는 그 여인을 향한 아우의 배려심에 몽주는 헛웃음을 흘렸다.
집안 문제인 만큼 몽주는 아우가 떠난 뒤, 곧바로 2층으로 올라가 아내를 만나 그 문제를 논의하였다.
한데, 아내는 의외로 별문제로 삼지 않는 모습이었다.
“다행이네요. 도련님이 혼인할 생각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상대가 다점의 점주라는 것이…….”
“그게 혼인하지 못할 이유가 될까요?”
“자내 아들이 그런다면 어떨 것 같소?”
“강중이는 그럴 리가 없어요.”
“…….”
‘그럴 리가 없지는 않을 텐데…….’
몽주가 알기에 강중이도 꽤 다채로운 연애를 경험하고 있었다.
바람둥이까지는 아니었지만, 주변에 사람이 끊이지 않는 아들의 곁에는 당연히 아들을 흠모하는 여인들이 많았고, 강중이 또한 연애에 관심이 없거나 쑥맥인 아이가 아니었다.
다만, 언젠가 혼인은 부모의 승낙을 얻어 할 것이라는 말을 들은 바 있어, 연애 자체는 자유롭게 하도록 놔둘 뿐이었다.
어쩌면 앵도가 몽건의 혼인에 걱정하기보다는 기뻐하는 것은 그 혼인을 통해 몽건이 후계 구도에서 완전히 멀어질 것임을 짐작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강중이에게 탐라공의 지위를 물려줄 것이 99퍼센트 확실한 상황이지만, 아내의 입장에서는 혹여나 몽건이 기세등등한 처가를 얻어 경쟁자로 부각될까 경계하는 마음이 있었을 수도 있었다.
그런 중에 일개 다점의 점주를 아내로 맞이하면, 몽건을 지지하는 마음을 품었던 자들마저도 그 마음을 완전히 접게 될 것이니, 앵도의 입장에서는 아들이 확실하게 후계자로 낙점될 것에 기쁘고, 괜히 몽건에 대한 경계심이 커져 집안에 균열이 생기는 일을 피할 수 있게 되니 좋을 것이다.
앵도마저 반대는커녕 환대하자, 몽주는 그 여인에 대한 조사를 감행했다.
다만, 탈탈 터는 대신 그저 관청에 등록된 인적 사항만 확인했으니, 아우의 부탁 때문이기도 했고, 여전히 몽건이 알아서 잘 판단했으리라는 믿음 때문이기도 했다.
실제로 보고된 인적 사항에는 별문제가 없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기는 했지만, 생계에 문제는 없었고, 지금 하는 다점도 어머니가 운영하던 것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기술학교를 졸하기 전에 자퇴한 것도 어머니가 앓아눕게 되면서 어린 동생을 건사하기 위해 일하게 된 탓이었다.
마지막으로 몽주가 한 행동은 그 여인을 직접 만나러 간 것이었다.
변복하여 몰래 살펴볼까 생각도 했지만, 홍로동의 백성이라면 몽주를 적어도 한 번은 보았을 테니, 그냥 행차하기로 하였다.
하여, 호위 군병 둘을 데리고 그 다점을 찾아가니, 곧바로 그 여인이 누군지 알아볼 수 있었다.
9.5//“눈매가 선하고 이마가 넓습니다. 마주하여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절로 미소를 지을 수 있지요.”//
아우가 했던 말들이 괜한 게 아닌 듯, 선한 눈매와 둥글고 예쁜 이마를 가진 여인이 눈에 확 들어왔던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그 여인은 몽주를 보곤 눈을 크게 뜨며 놀라다가 서둘러 다가와 인사를 올렸다.
“탐라공 저하를 뵙습니다.”
“…….”
목소리가 좋다더니, 당황한 중에 올리는 인사를 담은 목소리도 듣기에 좋았다.
“내가 어찌 왔는지는 알 것 같네만.”
“…….”
대답은 없었지만, 고개를 조아리는 모습에 그녀 또한 몽건이 혼인할 마음을 품은 걸 아는 듯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소?”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즈음에 다점에 몇몇 있던 손님들이 알아서, 아마 호위군병들의 눈짓을 받고 자리를 피했으니, 몽주는 그 여인과 독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자마자 몽주는 모르던 사실을 하나 알 수 있었다.
“하면, 소저는 내 아우에게 마음이 없다는 게요?”
“무어라 답하기 어려운 물음입니다만, 적어도 혼인을 결심한 적은 없습니다.”
“…….”
‘아놔, 이런…….’
이제 보니, 몽건이 여인의 마음을 확실하게 잡기도 전에 먼저 자신을 찾아와 혼사를 언급한 모양이었다.
다만, 여인도 아우를 싫어하진 않는 것 같았다. 어쩌면 탐라공의 아우라는 신분이 너무 부담되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만약 몽건이가 내 아우가 아니라, 평범한 집안의 사내라면 어땠을 것 같소?”
“…….”
고개를 숙인 중 몽주의 물음에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였으니, 몽주는 자신의 추측이 맞다 싶었다.
잠시 말없이 여인을 지켜보던 몽주는 머릿속으로 그 혼인이 가져올 ‘효과’에 대해 점검했다.
단편적으로 생각해 보면, 일단 그 혼인이 가시적으로 가져올 이득은 없었다.
너무나 평범한 집안 출신이니 당연한 소치일 것이다. 오히려 몽건이 대신청장의 여식이나 다른 제후의 여식과 혼인했을 때 얻을 수 있을 정치적인 인척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잠재적인 손해만 있을 뿐이었다.
다만, 넓게 보면 이득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그 또한 그 여인이 평범한 집안 출신인 덕이니, 탐라공가가 그만큼 백성들을 낮춰 보지 않고 있음을 가장 확실하게 증명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백성들에게는 굉장한 환호를 받는 혼인일 수도 있을 것이다.
몽주는 잠시 더 여인을 보다가 말문을 열었다.
“나는 점주가 내 아우와 혼인을 한다고 해도 반대할 생각은 없소. 다만, 점주가 혼인을 결심하기 전에 한 가지는 확실히 마음을 다잡아야 할 것이오. 이는 내 아우와 혼인을 하게 된다면, 점주는 내 아우의 부인이기 전에 내 제수가 될 것이라는 점이오. 아마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고, 그 달라지는 부분이 점주에게는 아주 낯선 것일 수도 있소. 그러니 그 점을 충분히 고려하고 판단하시오.”
“……명심하겠습니다.”
몽주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점을 나서 몇 걸음 옮기다가 잠시 고개를 돌려 다점을 바라보았으니, 그 순간에 입으로 투덜거림이 흘러나왔다.
“외모에 반하지 않기는…… 딱 봐도 굉장한 미인이구먼.”
스타일 자체는 현대적인 미녀보다는 당대에 더 선호되는 미녀였다.
다만, 스타일을 넘어 현대인이 봐도 그 미모를 인정할 만큼 확실한 미녀였으니, 몽주가 당대에서 본 여인들 중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어쨌든 몽주는 몽건의 혼사를 아우의 손에 맡기기로 마음먹었고, 몽건이 그 점주와의 혼인을 정식으로 선언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몽주의 천몽 속 생애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집안을 따지지 않은 혼사였고, 유일하게 ‘귀족’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혼인이었다.
다만, 몽주를 조금이나마 곤란하게 만든 마지막 혼인은 아니었다.
* * *
몽주가 광고와 관련된 일로 호출한 자들을 만난 건 그들이 탐라섬에 닿은 지 만 이틀이 지난 후였다.
그들은 어사대에 붙잡혀 취조 아닌 취조를 당한 바, 몽주를 만났을 때는 꽤 지친 기색이었다.
큰 문제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죄를 지은 건 아니기에 몽주로서는 다소 미안한 마음이 있었지만, 일단은 안면몰수하고 그들을 불러온 이유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어사대의 장계를 보자니, 자네가 그 기사를 청한 것이더군.”
“그렇습니다, 저하.”
주선경업의 사장 겸주선은 몹시 불안한 표정으로 공손히 답하였다.
“그리고 자네가 그 기사를 썼고.”
“예, 저하.”
사롱의 기자, 아니 사실 기자라는 직종은 아직 제대로 자리 잡지 않은 시절이기에, 그저 사롱 순보의 직원이라 해야 마땅했지만, 어쨌든 기사를 쓴 자가 고분이 인정하였다.
“자네도 그 기사를 승인하였다지?”
“예, 저하.”
마지막으로 몽주가 물은 자는, 전에 본 적 있는 사롱 순보의 수장이자, 사롱의 핵심 인물 중 하나인 시준희라는 여인이었다.
본디 문인으로 몇 종의 소설을 펴낸 경력이 있는 자로, 사롱 순보를 신문 회사로 치면, 사장이자 편집자의 역할을 하는 이었다.
몽주는 세 사람을 훑어보다가 모두를 향해 물었다.
“내가 자네들을 불러모은 것은 치실과 구정액에 대한 그 기사가 못마땅하기 때문일세.”
그러자 세 사람 중 주선경업의 사장이 흠칫 놀라곤 몸을 떨었다.
“송구하옵니다, 저하. 용서해 주시옵소서.”
허리를 완전히 꺾어 사죄를 청하는 여사장은 자신의 물산이 품질이 떨어지는데, 순보를 통해 그것을 자랑한 것에 몽주가 못마땅해 한다 여긴 듯했다.
물론, 몽주가 못마땅해 하는 점은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었다.
“혹시 자네 회사에서 만든 물산에 대해 내가 못마땅해 하는 것으로 여긴다면 그건 아닐세. 그 치실과 구정액이 얼마나 좋은지, 나는 써 보지도 못했으니 섣부르게 판단할 수 없지. 또, 그 물산들을 평가하는 건 결국 백성들이어야 하고.”
“……?”
자신의 죄가 아님을 알게 된 여사장은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 곁에 있는 사롱 순보의 수장과 직원을 힐끔 바라보았다.
그녀가 아니라면 탐라공이 언짢아하시는 이유가 다른 일남일녀에게 있을 테니까.
“저희가 그 기사를 쓴 것에 문제가 있었습니까?”
순보의 수장 시준희가 먼저 말문을 열어 물었고, 몽주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그 기사를 순보에 싣는 대가를 받았다지? 50원이던가?”
“예, 그게 잘못된 겁니까?”
“자네는 잘못이라 전혀 생각지 않나?”
준희 수장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저희가 먼저 쓰고자 한 것도 아니고, 저자의 청원으로 쓴 기사인 만큼 순보에 싣는 대가를 받는 건 정당한 거래라 생각합니다.”
“아니, 내가 잘못이라고 하는 건 그 거래 자체에 있지 않아.”
세 사람의 얼굴에 동시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내가 못마땅한 건 그 기사가 순보 자체의 판단으로 쓴 게 아니라, 저자와의 거래에 따라 쓰인 것임을 그 기사를 보고서는 전혀 알 수 없다는 점이네.”
“……?”
여전히 세 사람의 얼굴에는 물음표가 남아 있었다.
몽주는 그 반응에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머릿속에서 언론과 광고, 언론과 자본 간의 유착 관계가 만들어 내는 폐단에 대한 지식들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지만, 당장은 광고라는 개념부터 정립해 줘야 할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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