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424)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소.”
서남어(語)의 교사가 어설픈 발음으로 수업을 파하자, 학생들이자 탐라국의 관리들이 어수선한 분위기를 만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사 또한 손에 묻은 백묵 가루를 털어 내고 수업에 쓴 책과 자료를 거두어 교실을 빠져나갔다.
“이제 끝나셨습니까.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은 무슨…….”
그를 기다리고 있던 자가 허리를 굽실거리며 교사가 든 책가방을 받아 들었다.
교사는 매번 종료 시간에 맞춰 그를 기다려 주는 그를 보며 무어라 입술을 들썩였지만, 이내 다물었다.
그렇게 매일같이 호종하러 올 필요 없다고 수십 번은 말했건만, 다른 명은 하늘 같이 모시면서도 그 명만은 도통 따르질 않았다.
“여, 하 교사, 퇴청하시오?”
“예, 상이 교사는 아직 수업이 남으셨습니까?”
“그렇소. 명나라 말은 학생들이 많지 않소?”
그의 말마따나 명나라어는 가르치는 이도 많지만, 배우는 이는 더 많았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수고하십시오.”
서남어 교사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자, 명나라어 교사는 대충 손짓을 하는 것으로 인사를 받았다.
그에, 곁에 있던 호종의 표정이 크게 구겨진 건 당연했다.
“감히 왕자님께…….”
“어허, 표정을 풀게.”
“…….”
서남어 교사이자 호종에게는 왕자인 자의 지적에 호종이 고개를 푹 숙였다.
“여기는 고려일세. 그리고 나는 고려의 힘을 빌리고자 남아 있는 걸 잊지 말게.”
“……대체 언제 힘을 빌려 준다 합니까?”
그저 고개만 끄덕일 줄 알았던 호종의 반문에 서남어 교사, 하릴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답은 그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탐라공이 10년을 언급한 바 있지만, 정녕 10년 후에 그 말이 사실로 드러날지는 그도 알 수 없었다.
이제 겨우 2년이 지났을 뿐이고, 탐라공은 언제 보았는지 기억도 희미했으니, 10년의 기다림은 그저 망각의 과정에 불과할 수도 있었다.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말라. 탐라국이 태마식에 진출하는 것이 이미 기정사실이지 않느냐?”
“태마식이 페르시아는 아니지 않습니까.”
“…….”
호종이 침울하게 대꾸하니, 하릴도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태마식(太亇湜)은 근자에 소문이 난, 그리고 사실상 탐라 조정에서 인정한 탐라국의 진출지로, 순보에 난 기사에는 남양의 끝에 위치한 곳으로 그곳을 돌아가면 인도가 나온다고 했다.
인도라면 하릴에게는 더욱 친근한(?) 곳이었으니, 그 인도 너머에 티무르의 땅이 있었다.
본디 태마식 진출은 소문을 통해 먼저 알려졌는데, 탐라수군이 군수를 확충하고 중함선들을 정비하는 등의 일을 시작하면서 알음알음 소문이 퍼진 것이었다.
그 소문이 사롱 순보에 실리면서, 원나라 시절의 지리지를 근거로 단마시(單馬錫)라는 곳이 진출지로 알려졌다.
그에 탐라 조정에서 탐라 순보, 즉 원래 순보라고만 칭했던 그 순보를 통해 탐라 조정에서는 단마시가 아니라 태마식이라 칭하고 있다는 관보를 내었다.
내용 자체야 지명의 수정에 불과했지만, 태마식 진출을 부정하지 않았고, 또 그 지명의 수정 자체가 태마식 진출을 인정한 셈이기도 했다.
하릴이 태마식을 언급한 것도 탐라국이 태마식을 진출하는 것이 확정된 만큼 결국 티무르의 땅까지도 갈 것이라는 예상에 기인한 것이고, 그렇다면 하릴 또한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대답을 대신한 셈이었다.
물론, 호종의 대꾸처럼 태마식을 이미 얻은 것도 아니고, 이제 진출하려는 참이니, 어느 세월에 페르시아 지역, 즉 티무르국의 남부 해안에 닿을 수 있겠느냐는 한탄도 일리가 있었다.
“하나, 이제 와서 어쩔 수 있나.”
그가 탐라국에 구류된 순간, 그리고 탐라국에 흥미를 가지고 무어라도 배워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면서, 스스로 사교청에서 티무르국의 언어를 가르쳐 신변의 자유를 청한 순간, 이미 그의 운명은 탐라국과 뗄 수 없게 되었다.
그저 탐라공이 자신을 잊지 않았기를, 탐라국의 대계에 자신이 쓸모가 있고, 탐라가 티무르국과 상부상조할 수 있기를 바랄 따름이었다.
“너무 암울하게만 여길 필요는 없다. 봐라, 탐라공은 자신의 후계자가 인도 여인과 혼인하는 것도 승낙하였지 않느냐.”
“그게 탐라공이 우리를 지원해 줄 것이라는 근거가 됩니까요?”
“적어도 탐라공이 편협하고 폐쇄적인 인물은 아니라는 증거는 되지 않겠느냐. 그리고 인도까지 진출할 가능성도 좀 더 높일 수 있을 것이고.”
“…….”
탐라공의 며느릿감은 인도계 혈통일 뿐 인도와는 무관함을 알기에, 호종은 그게 어찌 그런가 싶은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먼저 앞서 나가는 하릴 왕자를 서둘러 따라갔다.
두 사람이 사교청을 나와 거리에 들어서니, 학교를 파한 학생들이 상당수 보였다.
아무런 걱정거리도 찾아볼 수 없이 밝은 표정의 남녀 학생들은 하릴에게는 익숙해질 만하면서도 여전히 낯선 것이었다.
티무르국에서는 물론이고, 주변 어느 나라에서도 그 학생들 또래의 남녀 거의 모두가 배움에 열중하는 곳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귀한 족속들이야 그럴 수 있겠지만, 저 많은 학생들 모두가 귀족은 아니…….
‘어쩌면 탐라 백성이라는 것 자체가 귀한 족속이랄 수도 있겠지.’
애초에 태생에 따라 나뉘는 것이 귀족이고 평민이며 천민이다.
그렇다면 탐라에서 태어난 것 자체가 사실상 귀족의 태생을 가진 것이라 치부해도 무방할 것이었다.
뭔가 이상한 결론에 하릴은 쓴웃음을 짓는데, 곁을 지나가던 학생들이 떠드는 소리가 그의 귀에 박혔다.
“지금 자동차 경주를 하신대!”
“진짜?”
그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학생들 중 일부가 어딘가로 달려갔다.
하릴도 무심코 그들이 달려간 방향을 보다가, 그의 발걸음도 그쪽으로 돌렸다.
“에? 어디 가십니까?”
“우리도 그 자동차 경주라는 걸 구경해 보지.”
“그걸요? 그게 구경거리나 됩니까? 차라리 말 경주가 났지.”
“듣자 하니, 탐라공이 직접 경주하는 모양일세.”
하릴의 목적은 자동차 경주 구경이기도 했지만, 탐라공 구경이기도 했다.
* * *
스릉스릉.
무부하 운전 중인 자동차가 내는 소음은 의외로 정겨웠다.
세상에 나온 지 이제 세 살 된 자동차는 제법 많이 성장해 있었다.
물론, 성장했다고 해서 몸집이 더 커지진 않았다. 오히려 훨씬 더 작아졌으니, 과거 큰 수레를 가득 채우던 크기는 이제 작은 수레보다도 작아져 있었다.
차동 기어(디퍼런셜 기어)의 적용으로 후륜 두 바퀴가 구동할 수 있게 되었고, 열기 기관의 크기는 더 작아져서 작은 수레만 한 자동차에 두 개의 열기 기관이 장착되어 있었다.
대신 기관의 출력은 두 배 이상 커졌으니, 작아진 자동차가 처음의 그 커다란 자동차의 1.5배 출력을 내고 있었다.
그렇다고 1.5배 정도만 더 빨라진 건 아니었다. 속력의 향상은 거의 3배였다.
차량의 크기와 무게가 감소했고, 동력 계통을 보다 효율적으로 만든 덕에, 특히 변속기의 출현으로 인해 엄청난(?) 속력, 거의 사람이 힘껏 달리는 속력을 뽑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저하, 여기 승차모가 있습니다.”
비서원 관리가 시중하며, 몽주에게 가죽 모자를 건넸다.
그 모자는 아주 비싼 것이었다.
현대인이 보면, 초창기 자동차 경주의 드라이버들이 쓰던 가죽 모자와 같다고 여길 모자로, 몽주가 특별히 주문 제작한 것이었다.
그 모자가 비싼 이유는 모자에 달려 있는 ‘폐쇄 안경(고글)’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유통되는 유리보다 더 깨끗한 유리도 비싼 몸값에 한몫했지만, 눈매에 닿는 부위가 고무로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부루내의 고무 농장이 어느 정도 완성되긴 했지만, 아직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시기는 아니었기에 야금야금 들어오는 고무는 조정에서 필요한 곳에만 배정하여 쓰이고 있었으니, 일반 백성들은 여전히 구하려고 해도 구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그렇게 비싼 값을 자랑하는 승차모(乘車帽)인데, 몽주는 승차모를 쓰면서도 좀 불안했다.
아무래도 당대의 저질 유리는 충격에 깨질 가능성이 큰 관계로 자칫 안경의 유리가 깨져서 눈을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하나, 경주 중에 워낙에 먼지나 흙이 튀는 경우가 많아 어쩔 수 없이 쓸 수밖에 없었다.
아내 앵도가 자동차 경주를 두고 쓸데없이 위험한 짓이라고 타박하는 이유들 중 하나가 바로 안경이었다.
‘하지만, 재밌단 말이지.’
승차모를 쓰고 폐쇄 안경은 이마에 걸쳐 놓은 채 몽주는 손수 그가 몰 자동차를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기압은…… 4기압, 좋아.”
열기 기관은 점점 상용화 범위가 넓어지고 있었다.
그건 홍로현을 비롯하여 탐라섬의 하천마다 가득했던 수차들이 하나둘씩 철거되는 것만으로도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특히, 열기 기관 내부 공기를 고압으로 바꾸는 데에 성공하면서 최근 1년 사이에 열기 기관을 동력원으로 쓰는 공소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었다.
아직은 2, 3기압 정도에 불과해서 미약한 효과 밖에 없지만, 워낙에 출력이 약한 열기 기관임을 생각하면 충분히 유의미한 수준이었다.
그중에서도 경주에 쓰이는 자동차에 장착된 열기 기관은 4기압을 기본으로 하고 있어, 그 자동차 경주는 첨단(?)의 기술 개발과 시험의 의미도 가지고 있었다.
사실 2기압이니 4기압이니 하지만, 정확한 건 아니었다. 공기압력계를 만들긴 했지만, 수은으로 계량하는 방식이 아니라 용수철의 탄성을 이용하는 형태라 그 정확성에 한계가 있었다.
어쨌든 공기압력계의 눈금으로 4기압임을 확인한 몽주는 이어서 변속기의 덮개를 열어 상태를 파악했다.
자동차의 개발에 있어 가장 최근에 개발된 주요 부품이 바로 변속기였다.
물론, 그 변속기의 원리는 몽주가 현대에서 가져온 것으로, 현대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변속기가 아닌 CVT의 원리를 이용한 것이었다.
CVT(Continuously Variable Transmission)는 무단 변속기, 혹은 연속 가변 변속기라고도 하는데, 일반적인 변속기가 크기가 다른 기어를 번갈아 맞물리는 원리를 이용하는 것과 달리 CVT는 2개의 원뿔 모양, 혹은 윗면이 짧은 사다리꼴 형태의 단면을 가진 원기둥 모양의 도르래[풀리 : pulley] 사이를 벨트로 연결하여 무한한 기어비를 만드는 방식이다.
즉, 한쪽은 작은 지름, 반대쪽은 큰 지름을 가지는 도르래 두 개를 연결하여, 저속에서는 기관 구동축 도르래가 작은 지름을 쓰고, 바퀴 구동축 도르래는 큰 지름을 쓰되, 고속에서는 반대로 하여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다.
사실 CVT는 워낙에 고장과 사고의 사례가 많아 굉장히 불안정한 변속기로 취급되고 있지만, 정작 큰 출력을 쓰는 농기계나 건설 차량, 그리고 탱크 같은 군사 차량에 많이 적용되는 변속기로, 전반적으로는 일반 승용차처럼 변속이 잦고, 고속을 위한 기어비(比)가 필요한 경우보다는 변속이 적고 고속 기어비가 굳이 필요 없는 경우에 적합하다고 알려져 있다.
몽주가 CVT의 원리를 천몽 안으로 가져온 것도, 단순한 구조인 것과 더불어 바로 그 점 때문이었다.
어차피 토크가 낮은 탓에 현대 차량의 변속기 4, 5단에 해당하는 고속 기어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열기 기관 자동차는 CVT가 더 적합했던 것이다.
아직 기술적으로 무르익지 않아, 몽주의 자동차에 달린 변속기는 저속과 고속 2단에 불과했고, 후진 기어는 아예 배제되어 있었다.
처음 나온 자동차도 가능했던 후진이었지만, 기어를 삽입하는 방식이 워낙 고장이 잦은 탓에, 어차피 경주용, 놀이용으로 쓰는 자동차인 만큼 그냥 빼 버린 것이었다.
점검할 걸 다 점검하자, 몽주는 그제야 자동차 좌석에 앉았다.
안전벨트 같은 건 없었다. 만약 사고라도 날라 치면 그냥 뛰어내리는 게 훨씬 안전할 것이다.
“준비되었는가?”
“네!”
폐쇄 안경을 내려 쓰며 몽주가 물으니, 그의 곁에는 세 대의 자동차가 더 서 있었고, 그 물음이 무색하게 이미 다른 운전수들은 승차모를 쓴 채 다 안착한 상태였다.
“좋아, 이제 시작하세!”
몽주가 개시를 선언하자, 비서원 관리가 심판의 역할을 하였으니, 그가 한쪽에 서서 붉은 깃발을 크게 들어 올렸다.
“하나요…… 둘이요…… 셋이요…… 개시!”
붉은 깃발이 펄럭이자, 몽주는 연축기(連軸器 : 클러치)봉을 힘껏 잡아당겼다.
그러자 원시적인 형태의 마찰식 ‘클러치’가 동력을 바퀴로 보냈다.
여전히 나무 바퀴지만 대신 바퀴살은 쇠로 바뀐 바퀴가 땅을 밀어내기 시작하니, 몽주에게 관성을 전하며 차가 앞으로 나갔다.
차가 어느 정도 나아가자, 몽주는 변속기 봉을 움직여 고속으로 바꿨고, 잠시 차가 힘겨워하는 느낌이 났지만, 이내 속력이 빨라졌다.
두두두두.
해안가의 흙길 위로 네 대의 차가 비슷하게 달렸다.
근처 사구(모래 언덕) 위로 구경하는 백성들이 환호하는 소리가 들렸다.
속도계는 없지만, 대략 말의 구보 속도를 능가하는 느낌이었다. 대략 시속 25킬로미터쯤.
현대의 차량을 생각하면 하품이 나올 만큼 느린 속력이지만, 막상 몽주는 꽤 속도감을 즐길 수 있었다.
오픈 시트(Open-seat)에 노면의 질감이 그대로 전해졌고, 등 뒤로 열기 기관이 주는 진동까지 더하고 있는 데다가 무엇보다 당대의 속도감은 현대의 기준과는 다르기 때문이었다.
습보(襲步 : 말의 전력 질주)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속력이라고 해도, 어지간한 자는 습보로 말을 몰지도 못하는 만큼 그 자동차를 모는 자에게도, 자동차가 달리는 걸 보는 자에게도 낯선 속도감을 전해 주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렇게 현대인이라면 이해할 수 없을 속도에 쾌감을 느끼며 차를 몰던 몽주는 대략 2백미가량 달려 멀리 보이던 깃발이 가까워지자, 연축기를 떼며 제동기(브레이크) 봉을 당겼다.
차의 속도가 느려지자, 변속기를 저속으로 바꾸고 연축기를 넣으니, 저속으로 바뀐 차가 다시 힘을 받기 시작했다.
깃발을 중심으로 코너를 돌아가야 하기에 속도를 늦춘 것이었다.
한데, 몽주가 운전봉을 밀어 차를 회전시키려는 차에 뒤쪽에서 따라오고 있던 차가 빠르게(?) 몽주의 차를 앞질렀다.
차가 스쳐 가며 피어올린 먼지구름에 잠시 움찔했던 몽주는 이내 씨익 미소를 지었다.
당장은 그 차가 앞질렀지만, 딱 봐도 이미 ‘코너’ 공략에 실패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앞선 차는 뒤늦게 연축기를 빼었다가 제동하고 다시 변속하는 등의 과정을 거치느라 차를 회전시킬 지점을 훌쩍 넘어가 버렸다.
열기 기관이기에, 폭발 행정 기관처럼 무작정 ‘브레이크’부터 밟다가 관성 바퀴가 변속 충격으로 멈추기라도 하면 차가 완전히 멈춰 버릴 수도 있기에 좀 더 복잡한 과정과 더 정밀한 감으로 운전해야 했던 것이다.
한 경쟁자가 헤매는 사이에 몽주는 유유히, 그리고 천천히 깃발을 기준으로 90도의 좌회전을 하곤 다시 저속으로 달리다가 고속으로 변속하였다.
바로 뒤에서 제대로 변속한 두 명의 다른 운전수들이 따라오고 있었는데, 사실 이미 ‘레이스’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차피 다 같은 차량, 아마도 몽주의 차가 가장 상태가 좋은 것일 테고, 고속과 저속 2단에 불과한 변속기는 운전수가 가진 가속의 기술로 속도를 빠르게 올려 추격하는 걸 시도하기에는 너무 단조로웠기 때문이다.
물론, 몽주는 그냥 앞서 나가는 걸로 만족하진 않았다.
일부러 운전봉을 좌우로 빠르게 움직이니, 차의 바퀴가 지면과 마찰하는 면적이 넓어지면서 흙먼지가 더 많이 피어올랐다.
“어푸, 저, 저하……!”
바로 뒤로 따라오는 운전수, 군기청 공소의 장인 중 한 명이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당황해 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하하!”
악동 같은 장난에 한껏 웃음을 터뜨린 몽주는 그 순간만큼은 복잡한 고민을 머릿속에서 털어 버릴 수 있었다.
예컨대, 공개 발표까지 했음에도 여전히 혼인 문제로 신경전 중인 아내와 아들 사이에서 겪어야 하는 곤란함이라든지, 조만간 개시해야 하는 ‘싱가포르’ 진출 작전의 준비 문제라든지, 군사 훈련을 지휘하다가 낙마 사고를 당한 요동공의 실질적인 장남인 이방과가 몸져 누워 버리는 바람에 꼬여 버린 요동공의 후계 문제 같은 것들 말이다.
세력 3년 늦여름, 몽주는 다시 석양을 바라보며 차를 몰아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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