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427)
해구의 볼은 빵빵해져 있었다. 물론, 뱃살도.
섬에 살 당시, 특별히 배를 주린 적은 없지만, 그래도 조금씩 야위고 있었다가 다시 문명의 세계로 돌아오자, 그간 먹고 싶다 생각하던 것을 다 먹다 보니, 한 달 사이에 살이 제법 오른 것이다.
인간 사회로 돌아온 뒤, 살이 오른 것 외 그에게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유명해졌다는 점이었다.
유구국에서야 그가 직접 구출되었기에 곧바로 알려졌지만, 유구국을 넘어 고려 전체는 물론 심지어 왜국에도 그의 이름과 사연이 퍼진 것은 확실히 신기한 일이었다.
이는 순보에 그에 대한 기사가 실린 덕으로, 특히 사롱 순보에는 그의 얼굴 그림까지 떡하니 실려 있어, 그걸 본 자들은 곧바로 해구를 알아보…… 지는 못했지만, 해구가 해구임을 알리면 얼굴을 살피곤 맞는 것 같다고 놀라워하였다.
물론, 그런 상황인 것을 알게 된 건 해구가 탐라섬에 닿은 뒤였다.
유구국에서 회복과 휴식을 취하고, 유구국 조정의 요청으로 그가 2년여 간 살았던 섬들, 해망군도라는 곳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때만 해도, 유명세 같은 건 전혀 생각도, 기대도 없었고, 그저 살아남았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다만, 그가 구조된 것이 그저 우연히 근방을 스치던 배에 의한 것이 아니라, 엄연히 해망군도를 목적으로 온 배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시작으로, 유구국이 그 군도를 영토화하려 하고 있음을 알게 되자, 그리고 실제로 유구국 조정의 협조 요청이 있자, 그 힘든 경험이 앞으로 그의 인생을 바꿀 것 같다는 불확실한 기대 정도는 할 수 있었다.
한데, 그렇다고 탐라공이 그를 초대할 줄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심지어 탐라국 나하군에 주둔하고 있는 탐라수군이 그만을 위해 탐라섬으로 운항해 주기까지 하니, 해구는 이런 호사가 다 있나 싶으면서도 내심 불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건강해 보이는군.”
“예. 아주 건강합니다, 저하.”
해구는 과거 그가 탐라군에 몸담았던 시절에 익힌 대로 군식 예의에 맞춰 탐라공을 대하였다.
“먼 길 오느라 수고하였네. 본디 처음 해망군도에서 사람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한번 만나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사람이 탐라국 사람이라는 이야기까지 뒤늦게 들으니, 더 궁금해졌었네.”
그러면서 탐라공이 해구에게 그가 표류하게 되고 어떻게 살아남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청하였다.
사실 이미 순보에 여러 번 그의 사연이 실리면서 다 아는 이야기이기에 해구는 간출여서 답하였는데, 탐라공이 여러 번 질문을 던지니, 의외로 세세한 것이었다.
하여, 해구도 열심히 답하면서 마치 일기를 돌아보듯이 열심히 입을 놀리니, 순식간에 한 시진가량의 시간이 흘러갔다.
“자네가 표류 생활 중에서 가장 아쉬웠던 게 뭔가? 그 단검 빼고 말이야.”
탐라군 생활의 ‘유품’인 단검이 얼마나 유용했는지는 이미 말한 바 있었다.
해구는 잠시 생각을 하고 답을 하니, 아무래도 주로 도구들이었다.
단검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위해 작은 손도끼나 삽, 그리고 바늘 같은 게 있었다면 훨씬 나았을 것이라고 답을 하던 해구는 문득 떠오른 양 진정 가장 필요했던 것을 입에 담았다.
“생각해 보면,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건 불이었습니다.”
“오, 그렇지. 불이지.”
“예, 저하. 마른 초목으로 불을 피우는 건 처음에는 정말 어려웠고, 어느 정도 익숙해진 뒤에도 힘든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애써 피운 불을 유지하는 건 더 힘들어 곧잘 꺼먹곤 했습니다. 마른 초목을 구하기 어려운 우기 때는 며칠 동안 날고기를 씹은 적도 있었습니다. 하여, 부시가 얼마나 생각났는지 모릅니다.”
“…….”
몽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해구의 대답에 반응하였는데, 사실 속으로는 잊고 있던 물산을 떠올리고 있었다.
‘성냥을 깜빡하고 있었구나.’
과학과 산업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도 아주 쉽게 개발하는 게 가능한 근현대적 물산 중 하나라고 알려진 성냥이지만, 실상 그 제조가 결코 쉬운 게 아니기에, 그리고 동시에 너무나 위험하기에 뒤로 미뤄 두었다.
비교적 간단하게 생산할 수 있는 인은 백린의 형태인데, 백린은 발화점이 굉장히 낮아 화재 위험성이 너무 크고, 특히 산화 시 생기는 유독 가스는 너무나 치명적이기 때문이었다.
몽주는 성냥을 떠올리다가, 잠시 그 생각을 뒤로 미루고 해구를 바라보았다.
“자네도 잘 알겠지만, 유구국은 그 해망군도를 영토로 삼을 것이네. 우리 탐라국 또한 그 사업을 크게 지지하고 있지.”
“예, 저하. 알고 있습니다. 한데, 그곳을 영토로 삼을 까닭을 도통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그곳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짐승이 있지도 않습니다. 땅 속에 뭐라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 먼 곳까지 가야 할 만큼 귀한 것이 있을까 의문입니다.”
한 시진의 이야기를 통해 조금 편해진 듯 해구는 질문을 담아 대꾸하였다.
“하하,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한데, 일단 영토는 가능한 넓으면 넓을수록 좋지 않겠나.”
“그야 그렇습니다.”
몽주가 자세한 대답을 피하자, 해구도 서둘러 자신의 질문을 거두는 태도를 취하였다.
“아마 내일부터 자네를 찾는 곳이 많을 걸세. 그중엔 관부도 있을 터이니, 요청하는 것에 최대한 협조를 해 주게.”
“알겠습니다, 저하.”
몽주가 해구를 탐라시까지 불러온 건, 그의 생존담을 듣기 위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의 경험을 통해 불운하게 표류하는 자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하기 위함이 더 컸다.
앞으로도 바다는 탐라국의 터전일 것이고, 탐라수군을 포함하여 수많은 배와 선원들이 바다 위를 항주할 것인 바, 그 와중에 표류하는 자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에 대비하여 생존 ‘킷(Kit)’을 갖추어 두고, 생존의 방법을 익히게 해 둔다면 바다의 횡포에서 살아남은 이가 육지에서 무력하게 희생되는 일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 것이었다.
해구와의 만남을 마친 몽주는 잠시 다음 일정을 미루고, 성냥의 생산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백린이 위험한 만큼, 성냥의 생산을 위해서는 적린을 만들어야 하는데, 적린을 만들기 위해서는 공기를 제거한 밀폐된 용기에 백린을 넣고 가열하여 열변형시켜야 한다.
과거에는 공기를 제거하는 것도 어렵고, 용기의 완전밀폐도 쉽지 않았지만, 지금은 시도할 만했다.
이는 열기 기관으로 공기를 흡입하기 용이해졌고, 무엇보다 황을 첨가하여 내열성을 강화한 고무가 있어 밀폐 용기를 만들기 쉬워졌으므로, 장차 고무가 대량으로 생산될 것임을 생각하면 지금부터 슬슬 준비해 둘 필요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백린이 꽤 위력적인 무기로 쓰일 수도…….”
중얼거리던 몽주는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백린으로 만든 무기, 예컨대 백린소이탄 같은 무기가 가져올 잔혹한 결과를 꺼리기 전에 일단 당대에서 백린을 안전하게 보관할 방법이 너무 한정적이었다.
섭씨 5, 60도만 되어도 발화하는 백린을 보관하려면 물에 담가 두는 방법밖에 없는데, 그렇다고 백린으로 만든 무기까지 물에 담가 둘 수는 없었다.
자칫하다간 적을 사멸시키기 전에 아군을 먼저 대량 학살당하게 만들 무기는 차라리 없는 게 나았다.
몽주는 얼마 뒤, 공관대신을 불러 성냥의 제조를 위한 논의에 들어갔으니, 적린도 어쨌든 백린을 먼저 다루어야 하는 만큼, 아마도 수은을 사용하여 거울을 제조하려 했을 때처럼,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었다.
* * *
흔히 요성이라 불리는 요동성의 모습 또한 과거와는 판이해져 있었다.
요성 성벽이 더 번듯해졌다든지, 내부의 주성 건물이 더 많아졌다든지 하는 것보다 요성 바깥의 거주지 구역의 넓이가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커진 것이 가장 확실하고 중요한 변화였다.
한 가지 재밌는 것은, 다른 고려의 주요 도시와 비교할 때 거주지가 크게 둘로 나뉘어져 있다는 점이었다.
요성을 중심으로 남쪽과 북쪽이 건물의 모양이나 분위기가 완전히 구분되는데, 남쪽은 고려계들이 거주하고, 북쪽은 거란계들이 거주하기 때문이었다.
이는 요동국이 당면한 가장 큰 균열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모습이었다.
다행히 당금 요동공은 양쪽 세력 중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탕평하게 정치하여 그 균열이 도드라지지 않았지만, 약간의 정치적 오판이라도 있다면, 그 균열은 그야말로 요동국 자체를 두 덩이로 절단 낼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차기 요동공의 자리는 대단히 중요했다.
아직 두 세력을 한데로 아우를 만큼 요동국의 정체성이 단단해지기까지는 한두 세대의 시간이 더 필요한 바, 만약 차기 요동공이 한 세력을 편애하면 정말 나라꼴이 삽시간에 엉망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여, 요동공은 그의 후계자에게 고려계와 거란계를 동등하게 대우할 것을 수시로 강조하였고, 그 스스로 고려 본토 출신임을 생각하면 거란계를 약간 더 우대하라 당부하였다.
그리고 그 요구가 결국 후계자로 하여금 참사를 당하게 만들었으니, 후계자가 낙마 사고를 당한 것이 거란계 장수들과 어울리면서 그들의 환심을 사고 무시를 받지 않기 위해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중에 기마술을 선보이다가 당한 것이었다.
“너는 잘해 주었다.”
“…….”
“사람들이 너를 두고, 그저 무재(武才)를 가졌을 뿐이라 평가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너는 내 기대를 충족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아버지가 곁에 앉아 있음에도 아들은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곁에서 말을 하고 있음에도 아들은 아무런 반응도 없이 그저 시선을 천장에 둔 채 눈꺼풀만 껌뻑이고 있었다.
하반신만 마비된 것임을 생각하면, 아들이 아버지를 보지도 않는 이유는 고개를 돌리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참담한 심정이 아버지를 보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임에 틀림없었다.
지금 그의 아버지가 하는 말이 자신을 요동공의 후계자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는 말로 이어질 것이 분명했으므로.
“내일 대소신료들이 만장으로 너의 폐위를 청원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걸 승낙할 것이다.”
“…….”
“그리고 이제 누구로 하여금 내 뒤를 잇게 할지가 공론화되겠지.”
“…….”
“물론, 네 장남은 아주 강력한 후보…….”
“……정생은 그럴 재목이 아닙니다.”
“…….”
그 순간, 요동공 이성계의 눈시울이 급격히 붉어졌다.
입술을 깨물어 애써 눈물을 감추니, 그의 장남이자 차남인 아들이 다시 한 번 더 후계자로서 더할 나위 없이 적합했다는 생각이 든 탓이었다.
요동공은 만약 방과가 그의 장남으로 하여금 후계를 잇게 해 달라 청하였다면 두말없이 응할 작정이었다.
하나, 방과의 장남 정생이 요동공의 지위를 가질 만한 능력과 인품을 가지지 못했다는 점은 요동공도 잘 알고 있었다.
과거 신돈의 양녀였던 정실 신씨와의 사이에서 10년 가까이 자식이 없었던 방과는 이후 후실 윤씨를 들여 마침내 아들을 얻었다.
그 귀한 아들을 얼마나 애지중지했을지는 뻔했고, 그렇게 과보호를 받으면서 이제 14살이 된 아들은 부모가 보기에 귀여운 아들일지언정 좋은 ‘군주’가 될 자질은 거의 갖추지 못했다.
“차라리 덕생이 조금이라도 나은 점이 있을 겁니다.”
덕생은 죽은 장남 방우의 아들로, 스물아홉의 나이에 한때 관리로서 능력을 보인 적도 있었다.
다만, 어릴 적에 아비를 잃은 것이 영향이 있는지 성품이 소극적이고 우울한 편이라 따르는 자가 그리 많지 않은 것이 결점이었고, 또 일을 그만두고 한량처럼 놀고먹고 있는 것도 걸리는 부분이었다.
“……방원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요동공은 잠시 머뭇거린 끝에 물었다.
“자질로만 따지면 방원이 가장 나을 겁니다. 다만…… 방원이 유덕사의 주인이고, 또 탐라공과 매우 밀접하다는 점이 문제일 것입니다.”
“탐라공과 밀접한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유덕사를 가진 것도 문제라 보느냐?”
요동공이 묻자, 내내 천장만 올려다보던 방과가 고개를 돌려 그의 아비를 바라보았다.
“몰라서 물으시는 겝니까? 아버님, 아버님의 고향은 이미 아버님의 것이 아니라 방원이의 것입니다. 그리고 방원이 유덕사를 가진 이상, 그에게 그곳은 가장 중요한 곳일 수밖에 없습니다.”
“…….”
이성계도 알고 있었다.
과거 동북면이라 불리던 곳에서 방원의 명성이 자신을 훌쩍 넘어섰음을.
다만, 그것이 차기 요동공의 자리를 허락하기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점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지금 방과가 지적하자 그제야 무슨 의미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방원이 요동공이 되면, 고려계와 거란계 사이의 갈등이 심화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아무리 방원이 요동공의 지위에 오른다고 해도, 그는 유덕사의 발전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자연히 정치 또한 유덕사에게 유리한 쪽으로 흐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은 거란계에게는 고려계만 편애하는 모양으로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니, 방원이 아무리 공정하더라도, 유덕사만 한 큰 회사가 거란계의 손에 또 있지 않은 이상, 유덕사가 알아서 성장해도 방원의 정치가 그리 만든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것을 깨달은 요동공의 이마에 주름이 가득해졌다.
“아버님께서도 많이 연로하셨습니다.”
“…….”
아들의 잔잔하면서도 슬픈 시선과 말투에 이성계는 울음 같은 쓴웃음을 지어야 했다.
그는 이제 늙었다.
당장 아픈 데는 없지만, 과거 하늘도 짊어질 것 같았던 기운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렇기 때문에 후계자의 교체도 서두르는 것이었다.
그가 정치에서 물러나기까지 시간적으로 여유롭다고 여겼다면, 방과가 쾌차할 일말의 가능성에 기대어 후계자 논의를 묵살했을 것이다.
“몸조리 잘하거라.”
“부디 요동국을 강건하게 만들 자를 후계자로 삼으십시오.”
“…….”
일어서던 요동공은 그의 아들이 한 말에 옅은 한숨을 내쉬며 미미한 끄덕임을 보이곤 몸을 돌렸다.
* * *
몽건의 혼인날은 다소 급하게 잡혔다.
몽건이 그 다점 주인과 함께 몽주를 찾아와 혼인의 허락을 청한 날을 기점으로 고작 닷새 만에 9월 중 혼인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이는 몽건의 사정이 아니라, 몽주와 강중의 사정에 의한 것이었다.
조카보다는 삼촌이 먼저 혼인하는 것이 보기 좋으니, 내년에 강중을 혼인시킬 예정인 바, 몽건이 올해 안에 혼인하는 편이 나았다.
한데, 태마식 진출을 위한 출범이 10월에 예정되어 있어, 몽주가 탐라를 떠날 예정이니, 자연히 그 전에 몽건이 혼인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물론, 몽건은 전혀 개의치 않았고, 오히려 빨리 혼인하게 되어 기쁜 기색마저 보였지만, 대신 그의 혼인을 준비해야 하는 자들은 아주 다급한 움직임을 보여야만 했다.
덕분에 공택의 분위기는 아주 부산하였고, 몽주가 집무실에 있을 때도 뭔가 산만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다 한들, 그게 싫거나 짜증이 나는 건 아니었다.
아들 같은 아우가 늦은 혼인을 치러 가정을 꾸린다는데, 그 또한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분명 기분이 좋기만 했는데…….
“방원은 그렇다 쳐도 이성계는 또 왜 이런담?”
몽주는 책상에 몸을 기대어 이마에 손을 얹고 고민 중이었다.
책상 위에는 두 통의 두루마리가 대충 펼쳐져 있었으니, 하나는 이방원이 보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성계가 보낸 것이었다.
이틀 간격으로 도착한 그 서찰들 둘 다 몽주로서는 그 저의가 궁금한 내용을 담고 있었으니, 방원의 서찰에는 그가 가진 유덕사의 지분 중 일부를 몽주에게 팔길 바란다는 내용이, 이성계의 서찰에는 탐라상단이 요 지역에 회사를 세울 수 있겠느냐는 질의가 담겨 있었다.
모두 몽주로서는 나쁠 것 없는 제의였고, 불과 몇 달 전에는 전혀 상상도 못할 제의였다.
내내 승승장구하며 성장 중인 유덕사의 지분을, 얼마큼인지는 모르겠지만, 5퍼센트 이상을 넘기면 몽주가 유덕사의 주인이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방원이 지분을 넘기겠다는 것도 이상했고, 탐라국의 경제적인 영향력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던 요동공이 다름 아닌 탐라상단의 진출을 타진하는 것도 눈을 의심케 할 대목이었다.
“뭐지? 얘네들이 왜 이러지?”
그 고민의 실마리가 잡힌 것은 하루 종일 궁리하고도 모자라, 몇몇 신임이 특별한 대신청장들을 불러 논의한 끝이었다.
“이방원이 요동공이 된다라…….”
그리고 그 실마리는 또 다른 의문으로 이어졌다.
“그 두 제의가 모두 고려계와 거란계의 융합 때문이라 쳐도, 얼마든지 다른 옵셔…… 선택이 가능한데 요동공이 이방원을 후계로 삼으려는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이라 보오?”
그에 대한 답들이 있긴 했다. 주로 이방원이 가장 자질이 뛰어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하나, 몽주가 보기엔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단지 자질 때문이라기에는 요동공 이성계가 그의 최대 경계 대상이었던 탐라의 경제력이 요동국에 크게 침투할 소지가 있는 일까지 허락할 것 같지 않았던 것이다.
‘뭔가가 있어, 뭔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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