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430)
* * *
홍로포구는 한창 공사 중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포구가 아니라 포구 앞바다였으니, 포구 앞에 있는 새섬과 연결되는 방파제를 쌓고 있는 중이었다.
250미 정도 떨어진 새섬 사이로 방파제를 쌓으면, 홍로포구는 호주머니 형태로 감싸이는 형태가 될 것이니, 장차 어지간히 큰 폭풍도 감당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한데, 이 배같이 큰 배들이 많아지면 포구도 더 크게 만들어야 할 것이고, 그러면 저 방파제로는 한계가 있을 듯싶군요.”
“그렇겠지요. 제 생각에는 새섬까지 방파제를 다 놓으면, 곧장 범섬까지 방파제를 놓는 공사도 시작했으면 싶습니다.”
“버, 범섬까지요?”
포은이 당황한 목소리를 내었으니, 그로서는 그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의 대역사(大役事)이기 때문이었다.
내관대신으로서 체관부와 더불어 방파제 공사에 크게 관여하고 있는 그였지만, 그 구체적인 공사의 방법은 잘 알지 못했다.
들은 게 없진 않지만, 그게 어느 정도로 활용 가능한 방법인지까지는 알지 못한 것이다.
때문에 새섬까지 250미 정도 쌓는 방파제는 가능하다 싶어도, 새섬에서 다시 600미가량 떨어진 범섬까지는, 게다가 아마도 더 깊은 수심을 인공적으로 막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의구심이 생긴 것이다.
물론, 그 의구심에 더해,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까라는 내관대신으로서 가져야 하는 당연한 두려움도 있었다.
“가능할 겁니다. 체관부의 보고에 의하면, 범섬까지는 해저 지형이 평평한 편이라더군요. 한 5, 6미 정도 더 깊은 정도? 그 정도면 지금 시행하는 공기(工技)로 도전할 만할 겁니다.”
방파제 공사에 쓰이는 기술이 새로운 건 아니었다. 본디 홍로포의 부두를 지을 때 사용하던 공법의 연장과 응용인 바, 물막이를 한 뒤 물을 뽑아내고 그 안에서 세망 타설로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를 만들어 내는 형태였다.
물론, 방파제 공사는 부두 공사보다 더 난공사임에는 틀림없었으니, 상대적으로 깊은 수심 때문에 물막이부터 방파제 구역 전체를 하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하여, 물밑 바닥에서부터 크고 짧은 원기둥 형태의 철구조물을 쌓아 커다란 원통 철구조물을 만든 후 그 안에 물을 빼내고, 그 내부에서 공사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이는 현대에서 강이나 얕은 바다에서 진행하는 공사에서 쓰이는 방법과 전반적인 방법론에서는 같았다.
물론, 그 방법의 큰 얼개가 같다곤 해도, 그 공법을 이루는 기술들의 수준이 판이한 만큼, 그 난이도는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좀 더 쉽게 방파제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었으니, 그냥 자갈과 흙을 쏟아붓는 방법이 그것이었다.
하나, 몽주는 방파제이되, 훗날 부두를 설치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포구로 삼고자 하는 목적이 있어 어려운 길을 선택한 것이었다.
“사실 문제는 범섬 쪽보다는 그 맞은편이겠지요. 그쪽은 범섬처럼 의지할 곳도 없으니까요.”
“아이고.”
포은은 그제야 범섬 쪽에만 방파제를 쌓는다고 되는 게 아니라, 맞은편에도 방파제를 쌓아야 제대로 되는 것임을 깨닫고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실제로 현대의 서귀포항에도 육지 쪽에서 볼 때 ‘F’자 형태의 방파제가 설치되어 있어, 새섬 쪽 방파제와 함께 항구를 보호하고 있었다.
물론, 현대의 서귀포항은 그리 큰 항구는 아니기에 범섬까지 아우를 만큼 큰 방파제가 설치되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당대의 홍로포구는 서귀포항보다 훨씬 큰 항구가 될 것인 만큼 좀 더 큰 그림을 그려야 했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그때는 열기 기관도 더 강력해지고 더 작아졌을 테니,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겁니다. 게다가 수경도 많아질 테고요.”
그 말을 하며 몽주는 방파제 공사 현장에 떠 있는 두 척의 경함선을 바라보았다.
공사를 위해 개조된 두 경함선에는 기중기와 열반부를 비롯하여 몇 가지 기계들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열반부를 제외하면 모두 인력으로 가동하는 형태였다.
아직 열기 기관의 힘이 그 무게에 비해 약한 터라, 내구력과 부양력이 약한 작은(?) 목조선에 놓고 쓰기에 적합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 수경이 참 쓸모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역시 저하께서 하시는 일은 쓸데없는 경우가 없음을 다시 깨달았습니다.”
“…….”
문득 포은이 수경(水鏡)을 두고 칭찬하니, 몽주는 속내로 조금 부끄러웠다.
수경은 문자 그대로 물안경이니, 최근에 제작되어 물속에서 작업하는 자들이 착용하고 있었다.
본디 탐라에 물질을 잘하는 자들은 많지만, 그들도 수중에서 공사를 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으니, 숨을 참는 건 둘째 치고 공사 중에 흙탕물이 생겨 눈을 뜨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한데, 장인들이 몽주가 자동차 경주 때 쓰는 밀폐 안경에서 ‘힌트’를 얻어 수경을 만들어 사용하니, 수심에서 작업하는 자들이 아주 만족해 하였다.
하여, 지금 포은이 그러하듯, 다들 역시 탐라공께서는 그저 자기 재미만을 위해 물산을 만드시는 분이 아니라며 찬사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냥 그런 걸로 해 두자.’
순수하게 놀이에 쓰기 위해 밀폐 안경을 제작한 몽주로서는 찔리는 기분이었지만, 굳이 해명하진 않고 있었다.
그렇게 방파제 공사 쪽을 바라보던 몽주는 그곳이 점점 멀어지자 몸을 돌렸으니, 시야에 범섬에 놓인 등대가 우뚝 솟아 있었다.
“평안한 항해를 기원하오리다.”
몽주는 합장하며 기원을 드렸으니, 이번 항해는 특히나 그랬다.
일차로 부루내까지 가야 하는 먼 항해길인 것도 그렇지만, 처음으로 구주 방향이 아닌 중국 쪽 연안을 통해 이주로 향하는 항로를 따라 움직일 참이었다.
“그나저나 명나라 사람들이 많이 놀라겠군요. 설마 하니 이런 배가 올 줄은 몰랐을 테니까요.”
중국 쪽 항로를 선택한 이유는 상해에 들르기 위함이었다.
이미 탐라 선단이 방문할 것임을 통보해 두긴 했지만, 그 선단에 태함이 속해 있을 줄은, 그렇게 큰 배가 세상에 존재할 줄은 몰랐을 명나라 사람들에게는 꽤 큰 충격을 줄 게 틀림없었다.
* * *
이미 탐라수군의 대함대가 일찌감치 따로 떠난 탓에, 기함인 태함 1척을 위시하여 4척의 중함선과 16척의 경함선으로 이뤄진 조촐한(?) 선단이 상해포구, 아직은 작지만 그래도 태함도 정박이 가능할 정도로 크고 튼튼한 부두를 포함하여 크고 작은 부두가 넷이나 지어진 상해포구에 닿은 건 다음 날 정오 무렵이었다.
“흠, 놀라긴 하는데, 내 기대에는 못 미치는군요.”
“저 정도면 놀라워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포은의 말대로 태함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는 자들, 아마도 명나라 사람들일 게 뻔한 자들이 수두룩하긴 했다.
하나, 몽주가 바란 건 그야말로 기절초풍하듯 놀라워하는 것이었으니,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미 태함이 올 거라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일 겁니다.”
부두에 내려, 기다리고 있던 명나라 측 관원들과 의례적인 대화를 나눈 뒤 만난 아들의 대답이 그러했다.
하기야 태함의 건조 과정이라든지 전력화를 위한 훈련 모습은 탐라 사람들이라면 거의 다 보았을 법하니, 포구 건설과 운영을 위해 상해에 와 있는 관리나 민간인들이 그런 소문을 충분히 전했을 법했다.
“설마하니, 태함이 목철선이라는 것까지 알려진 건 아니겠지?”
“그건 아닙니다. 사실 겉으로 봐서는 태함의 특별함을 알기는 어렵지 않습니까.”
사실 태함은 크기를 제외하고 전체적인 모양새만 봐도 중함선과 크게 구별되는 모습이었다.
특히 전면에서 보면 아주 큰 차이를 보이는데, 그 단면에 중함선이 한국식 종, 끝자락이 고스란히 떨어지는 형태의 종을 거꾸로 세워 둔 것 같다면, 태함은 서양식 종처럼 끝자락이 바깥으로 말려 벌어진 형태의 종을 거꾸로 세워 둔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좀 많이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항공모함의 단면과 비슷해서, 태함의 26미 전폭은 1층 갑판의 폭이었고, 2층 갑판은 확 줄어들어 그 폭이 20미에 못 미치며, 3층 갑판은 2층 갑판과 비슷한 폭을 가지고 있었다.
목조선이었다면 그 내구력에 취약성을 야기할 만한 구조였지만, 내구성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용골과 늑골이 모두 강철로 된 태함은 내구력에 감소 없이 보다 넓은 갑판을 갖출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하나, 그와 무관하게 겉으로 보기에는 나무로 만든 중함선과 같은 방식으로 건조된 것처럼 보였다.
“좀 낚여 줬으면 좋겠군.”
“낚이다니요?”
“요새 우리를 본떠 배를 만드는 곳이 많지 않더냐.”
“아…….”
강중이 실소하다가 헛기침을 하며 표정을 관리하였다.
기실 몽주가 중함선 때와 달리 태함을 빠르게 실전 투입하여 세상에 공개한 것도, 태함이 너무 큰 데다가 이제 탐라수군이 너무 주목을 받아 비밀로 감추기 어렵다는 점도 있지만, 후발주자들 특히 명나라로 하여금 오판하게 만들어 그들의 힘을 낭비하게 만들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다.
내부의 주요 부품이 철로 되어 있다는 걸 알기까지 목조선으로 태함을 따라 하다가 낭비되는 재원이 있을 것이고, 후에 목철선의 정체를 알아도 고무 뱃밥을 알기까지 또다시 ‘삽질’을 할 걸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닌 게 아니라, 아까 만난 명나라 관리들 사이에 누군가가 열심히 탐라산이자 천건사산(産) 연필로 태함을 ‘스케치’하고 있었으니, 안 그래도 중함선 못지않게 큰 배를 제작하고 있던 명나라라면 고려에 빼앗긴(?) 바다를 되찾기 위해서라도 곧바로 그들만의 ‘태함’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게 분명했다.
다만, 뒤따라 오는 대신들 사이에서는 다소 걱정스러운 말들이 흘러나왔다.
“그래도 조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태함은 그 덩치가 큰 만큼 건조 과정을 철두철미하게 감추는 것이 불가능하니, 태함의 특별함이 흘러나가는 것도 그만큼 쉬울 것입니다.”
“저는 장인들이나 명나라와 교류하는 탐라섬의 백성들이 입을 가벼이 놀리는 것을 단속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그 전에 저희도 명나라의 세작이 접근하는 걸 철저히 막을 것입니다.”
포은과 탁기가 연이어 말하는 것을 들은 몽주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다만, 몽주는 목철선에 대한 기밀 유지하는 것보다 완전한 철선 내지 강철선으로 발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겼다.
아무리 입단속을 해도, 용골과 늑골이 철인 것은 조만간 알 수 있을 것이고, 고무 뱃밥도 고무를 쓰는 상품이 나오기 시작하면 그 또한 절로 알려질 것이다.
하나, 철선의 제작은 단지 철을 많이 생산하는 것만으로는 가능한 게 아니고, 용접과 금속 성형을 비롯하여 많은 분야의 기술이 한 단계 진보해야 하는 만큼 당장 시도하는 건 불가능했다.
하여, 조만간 시도하고자 몽주가 염두에 두고 있는 건 바로 선거(船渠 : 도크)였다.
해안가 지상 건조로는 건조 기술의 발전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에 반드시 필요한 시설이기도 했고, 건조 과정이 상당 부분 ‘도크’ 안에서 이뤄지기에 관찰을 통한 기술 유출의 가능성도 충분히 낮출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아들 및 동행한 신하들과 조심스레 나누며 몽주는 상해 포구의 거의 정가운데에 위치한 포구운영소에 들어갔다.
보통 포운소라 줄여 말하는 포구운영소는 그 차지한 면적 자체는 컸지만, 2층에 불과했다.
아직 규모가 작은 상해포구인 만큼 포운소도 클 필요가 없기에 그런 것인데, 그래도 훗날의 확장을 위해 주변 공터까지 명나라로부터 확실히 받아 둔 것이다.
또 한 가지 특이한 건 포운소 건물은 용마루를 가진 한옥의 형태를 벗어나 옥상에 평평한 공간이 있다는 점이었다.
세망을 이용한 건축이 보편화된 탐라국이었지만, 여전히 그 대체적인 모양은 용마루와 처마를 가진 전통적인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포운소는 몇몇 특수한 건물을 제외하면, 처음으로 옥상 공간을 둔 것이었다.
여전히 기와를 이용한 처마가 뻗어 있긴 했지만, 옥상에 평평한 공간을 둔 이유는 포운소의 옥상에 10미 높이의 철탑을 세워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이는 홍로포구에서 쓰고 있는 관제탑의 유용성을 알기에 미리 설치한 것으로, 아직 상해포구가 작아 큰 소용은 없었지만, 장차 상해포구가 크게 확대되면 그 철탑 위에서 포구 상황을 관찰하고, 관제할 생각이었다.
상해포구의 현황과 확장 영역을 둘러보길 원하는 몽주가 그 철탑에 올라간 건 당연했다.
포운소 건물 높이까지 더하면 그 탑의 관제 구역이 위치한 높이는 대략 15미였으니, 해안과 바다 쪽은 물론이거니와 포구 배후 지역도 평지인 덕에 아주 시원한 시야를 선물하고 있었다.
“아직 쓰임이 없어, 별달리 갖춘 건 없습니다.”
체관부 소속으로 상해포구의 건설과 운영에 대한 현장 지휘를 책임지고 있는 수관보 주무관은 ‘누추한’ 관제탑에 몹시 몸 둘 바를 모르고 있었다.
설마하니 탐라공이 옥상에서 거의 8미터 위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줄은 그도 미처 몰랐던 것이다.
“괜찮네. 아직 쓸 필요도 없는데 괜히 꾸며 두었으면, 그게 더 문제겠지.”
철제탑인 만큼 관제 구역도 철판으로 만든 바닥과 간이한 난간으로 만들어진, 약 25입방미 정도의 공간에 불과했지만, 몽주는 아랑곳 하지 않고 망원경을 받아 여기저기를 살펴보았다.
“명나라로부터 확보한 해안이 저기 작은 곶부터 저기 돌섬이 있는 곳까지인가?”
“예, 그러합니다. 직선길이는 대략 3길미이고 해안 길이는 그 배 가까이 됩니다.”
몽주가 남과 북으로 망원경을 돌리며 물으니, 수 주무관이 길이까지 답해 주었다.
“음, 막상 보니 좀 아쉽군.”
“……?”
몽주의 반응에 다들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다.
“좀 더 넓었으면 좋겠다는 말이네.”
“저하, 확보한 지역만 해도 홍로포구의 두 배가 넘습니다.”
“그러니까 하는 말이네. 장차 중국 땅 전체를 상대할 포구인데 겨우 두 배이지 않은가.”
몽주는 그리 말하곤 다시 망원경을 들어 하구 입구를 잠시 바라보았다.
“저기 있는 섬들도 확보할 수 있으면 좋겠네만.”
몽주가 가리킨 건 넓은 장강 하구의 거의 정중앙에 모여 있는 작은 섬들이었다.
“하나, 저 섬들은 실상 모래 턱이나 다름없습니다. 언제 장강에 휩쓸려 사라질지 모르는 곳이지요.”
“반대로 언제 커질지도 모르지.”
“…….”
몽주가 상해포구를 얻기로 결심한 뒤, 한 가지 우려했던 건 혹여나 장강의 물줄기나 하구 지형이 크게 변할 가능성이었다.
다행히 현대에서 알아본 바, 황하와 달리 장강의 ‘메인스트림(주류)’은 변할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이는 애초에 장강 하류 지역 자체가 퇴적지로서 지극히 저지대인 관계로 지류가 생기거나 사라지는 경우는 있어도, 주류가 바뀔 만큼 큰 힘들이 지류들의 변화로 해소되어 버리기 때문이었다.
다만, 하구 지형은 변화가 많았으니, 하구의 섬들이 생겨났다가 사라지거나 반대로 섬들끼리 연결되어 큰 섬을 이루는 경우도 있었다.
“한번 문의를 해 보도록 하지. 구체적으로 섬들을 일일이 적시하지 말고 하구의 섬들 전체에 대한 개발과 이용의 권한을 받도록 말이야.”
“알겠습니다.”
알겠다고 말하는 신하들의 표정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설령 쓸 만한 섬이 있다고 하더라도, 드넓은 장강의 하구를 생각하면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포구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던 것이다.
하여 신하들은 그저 등탑을 세우시려나 보다 정도로, 탐라공의 생각이시니 뭔가 깊은 뜻이 있으려니 하며 애써 이해하고 넘어가야 했다.
이해되든 아니든, 이후 몽주의 명은 수행되었고, 명나라 측과 별 의견 충돌 없이 탐라국은 장강 하구의 섬들을 자유로이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신하들의 생각처럼 섬들을 이용할 수 있는 그 권한은 오랫동안 별 소용이 없었다.
하나, 몽주의 사후 그 권한은 ‘대박 복권’으로 바뀌었으니, 두어 개의 커다란 섬으로 뭉친 그곳은 건설 기술 발전 및 자본의 대규모화를 통해 사실상 상해포구와 한 덩이가 될 수 있었고, 상해포구의 운영에 있어 탐라국의 약점이 될 수 있었던 배후 공간의 협소 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해 주기도 하였다.
* * *
몽주가 상해포구에서의 일을 마친 건 해가 넘어가 사위가 어두컴컴해질 무렵이었다.
포구 상황을 살피고, 장차 개발 계획도 재차 점검한 뒤, 포구 배후에 들어와 있는 천건사의 지소에도 방문하여 그곳 책임자와 화기애애한 만남도 가지고 나자, 어느새 시간이 많이 흐른 것이었다.
그날 밤, 몽주가 머물 곳은 강중의 집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몽주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고, 그 놀란 표정 그대로 아들을 바라봐야 했다.
“아, 안영하쎄요. 아븐임.”
그 집에 낯선 여인이 있었으니, 그녀가 어설프게 건넨 인사말이 아니더라도 외모만으로 그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장차 며느리가 될 여인.
하나, 이미 아들의 아내는 된 여인.
“죄 일음언 해오…… 임뉘다.”
“그, 그래, 만나서 반갑구나…….”
몽주는 해오의 자기소개에 일단 인사를 받아 준 뒤, 다시 아들을 바라보았다.
“흠흠.”
“흠흠 하고 넘어갈 일이 아닌 것 같다만?”
어쩐지 다른 미혼 관리들은 모두, 아직 빈 방이 많은 포운소에 기숙하고 있는데, 강중이만 따로 집을 만들어 쓰고 있다 하여 좀 이상하다 싶었다.
그저 탐라공의 공자인 만큼 그 정도의 대우를 해 준 모양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오냐.”
집 안으로 들어가자, 문을 열 때부터 맡을 수 있었던 냄새의 원인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식탁에 한상 차림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니, 그 음식들 모두 몽주가 탐라에서 흔히 먹던 것이었다.
“해오가 만든 것입니다. 포구의 식모들에게 배운 것이지요.”
강중이 자랑스레 말하는 것처럼, 몽주가 맛을 보니, 꽤 그럴싸했다.
“고려말도 많이 늘었습니다. 아직 발음이 서툰 건 벗어나지 못했지만, 이제 어지간한 말은 다 알아듣는 정도입니다. 그렇지요, 해오?”
“네.”
해오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답하니, 표정에 긴장감이 어린 중에도 남편(?)의 다정한 말에 기쁜 기색이 묻어 있었다.
이어, 강중이 상황을 설명하니, 어차피 혼인이 확정된 만큼 고려말과 고려 문화를 빨리 배우기 위해서라도 고려 사람들 사이에 사는 게 맞기에 상해로 데려왔다는 것이었다.
‘구라 치고 있네. 지가 좋아서 그런 거면서.’
말과 문화를 습득하기 위해서라면 차라리 탐라섬이 낫지, 굳이 상해포구일 필요는 없었다.
“제가 잘못한 건가요?”
“…….”
강중의 뻔뻔(?)한 질문에 몽주는 속내로 갈등 중이었다.
탐라공 석몽린으로서의 몽주는 어차피 혼인시키기로 결정한 데다가 혼전 동거나 동침이 대수로운 일도 아닌 만큼 문제가 될 게 없다는 쪽인데 반해, 현대인으로서의 몽주는 오히려 보수적인 의견이었던 것이다.
그럴 만도 한 게 당대 성(性)문화는 수백 년 동안 강경한 유교 문화에 푹 절여 있던 한국인의 시야에서는 깜짝 놀랄 만큼 개방적이었으니, 비단 고려만 그런 게 아니라, 몽주가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는 모든 지역이 그러하였다.
다만,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고려도 소위 지배층이나 부유층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이었으니, 아무래도 상속과 관련된 문제가 복잡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강중이 해오와 동거함은 다소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이미 혼인을 약속한 경우이니, 달리 보면 당대에서는 문제 삼을 게 없는 것도 같았다.
“음, 잘 모르겠다. 다만, 일단 네 어미에게는 비밀로 해 두겠다. 그리고 임신하는 일도 피했으면 좋겠고.”
“아…….”
강중의 표정에 아쉬움이 스치는 게 느껴졌다.
‘이 자식이…….’
“손자손녀가 생기면 어머니도 더 좋아하시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괜히 저 아이에게만 더 미운털이 박힐 수도 있겠지.”
해오는 정말 말은 잘 알아듣는지, 조금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설마하니 피임을 하라는 말 때문은 아닐 테고, 아마 시어머니 될 사람이 자신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에 시무룩한 모양이었다.
이후, 강중은 일부러 밝은 이야기로 주제를 바꿔 대화를 하였고, 몽주도 해오에게 친근하게 말을 건네주어 며느리의 심사가 회복하는 걸 도와주었다.
그렇게 심야가 되어 사랑방을 침실로 얻은 몽주가 침상에 홀로 누우니,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강중이나 해오에 대한 고민 때문은 아니었고, 그보다 더 넓은 범위에서 탐라의 혼인 제도를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 절로 여러 가지 생각이 든 탓이었다.
성문화가 개방적이든 아니든, 그건 문자 그대로 문화적으로 해소할 일이지만, 혼인 제도는 법제도의 문제이자, 경제적인 문제였기 때문이다.
탐라의 일반 백성들에게 유의미한 사유 재산이 쌓이기 시작한 지도 2, 30년의 시간이 흐른 만큼 이제 그 사유 재산의 상속이 중요한 문제가 될 때가 되었고, 이는 자연히 혼인 제도와도 깊은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탐라에서 뚝 떨어진 상해포구에서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고민이었지만, 새벽이 가까워지도록 몽주는 몸을 뒤척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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