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432)
* * *
절기로 겨울임에 분명하지만, 그곳의 날씨는 여름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남방용 군모, 즉 패랭이 모양이되 윗부분이 모시로 되어 있어 열기가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군모를 쓴 포은은 작은 거룻배를 통해 육지에 상륙하였으니, 그는 자신이 디딘 그 바위에 선 채 사방을 둘러보며 감개무량해 하고 있었다.
“이보게, 석삼. 여기가 진정 태마식인가?”
“예, 동쪽 끝자락에 해당합니다.”
당대 바닷가 마을인 태마식보다는 넓은 의미였고, 현대 싱가포르의 행정 구역보다는 좁은 의미로서의 태마식은 싱하푸르 섬 그 자체를 의미하고 있었다.
“정말 멀리도 왔군. 지도로도 멀다 멀다 했지만, 이곳까지 배를 타고 오니, 새삼 먼 곳임을 알겠어.”
“그렇지요. 그래도 빨리 온 편 아닙니까. 이주섬부터 한 달도 안 걸렸으니까요. 부루내에서 이곳까지 처음 오는 데 2년 가까이 필요했던 걸 생각하면 순식간에 온 셈이죠.”
물론, 순수하게 항해한 시간이 2년이나 걸린 건 당연히 아니었다.
태마식까지 놓인 여러 섬들에 경유지로서의 필요한 시설들을 건설하며 차근차근 항로를 개척하느라 그렇게 오래 걸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이주섬을 떠난 지 한 달 조금 넘는 시간이자, 부루내에서 머문 시간을 빼면 한 달도 안 되는 시간에 탐라공의 배는 태마식에 당도할 수 있었다.
“내가 직접 여길 밟으리라곤 정말 생각지도 못했네. 솔직히 말해서 저하께서 동행을 청하실 때도, 여기 오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거든.”
“어이구,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응하신 겁니까?”
“뭐, 이제 살 만큼 살았으니, 만약 운 좋게 여기에 발을 디딜 수 있다면 한번 목숨을 걸어 볼 만하지 않겠는가 싶었지.”
“허어,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셨습니다.”
“그랬나? 하긴 좀 부끄럽긴 하네. 하하.”
하지만, 그만의 착각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가 출항하기 전에 아내나 아들들은 굉장히 심각한 표정이었고, 앞서 태마식을 방문할 것임을 밝혔을 때는 다들 대경하여 만류하기도 하였다.
그 먼 항로 자체가 위험하기 때문이기도 했고, 포은이 원행을 이겨 내기에는 너무 연로하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태마식 같은 곳은 젊고 훈련된 이들이나 가는 곳이라 여기는 것이 탐라시나 남면의 일반적인 생각이었던 것이다.
한데, 예상보다 더 수월하게 태마식까지 올 수 있었다.
징검다리식 항해라고 하기에는 몇몇 구역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긴 했지만, 이주섬, 여송섬, 부루내를 거치는 동안은 순탄했고, 부루내에서 태마식으로 오는 사이에 폭풍을 만나기도 했지만, 가까운 섬에 기항하여 대피함으로써 큰 화를 피할 수 있었다.
덕분에 함대에 속한 20여 척의 배들 중 경함선 한 척만이 파손으로 인해 부루내로 회항했을 뿐, 나머지 배들은 무사히 태마식에 도착한 상태였다.
이는 비단 포은이 함께한 함대뿐만 아니라, 먼저 부루내에 당도하여 탐라공을 기다린 함대도 마찬가지였다.
거기에 태함이라는 거대한 목철선은 중함선보다도 더 쾌적한 선상 생활을 제공해 주었으니, 포은이 각오한 것이 민망해 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렇게 남양대사와 내관대신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그들을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으니, 군관대신 탁기의 굵은 목소리였다.
그의 곁에는 탐라공도 있었는데, 앞서 군관대신과 함께 지도를 살피며 근방의 지리를 살피던 일을 마친 모양이었다.
사실 태마식에 당도했다곤 하나, 정확히 태마식이라는 고을에 당도한 건 아니었다.
고을 태마식은 서쪽으로 거의 10길미쯤 더 가야 했다.
다만, 사정이 있어 탐라수군의 전함들만 먼저 태마식으로 접근하고, 탐라공을 비롯한 대관들은 대기해야 했는데, 그 와중에 탐라공이 동쪽 해안 일대를 살피고 싶다 하여 잠시 상륙한 것이었다.
“한데 여기서 뭘 보셨습니까?”
“그냥 바다와 섬을 보았습니다.”
포은이 문득 물으니, 몽주는 대충 얼버무렸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한 건 아니었다. 정말 바다와 싱가포르 섬 주변의 작은 섬들을 보았다. 다만, 언젠가 싱가포르 섬과 한 덩어리가 될 바다와 섬들을 보았음을 말하지 않은 것뿐이었다.
현대의 싱가포르는 본 섬을 포함하여 영토에 속한 거의 모든 섬들에 대규모 간척을 실시했고, 계속 진행 중인 나라였다.
실제로 간척을 통해 영토를 넓힌 비율에서 부동의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기도 했다.
이는 그만큼 작은 나라이기 때문이며, 동시에 쓸 만한 땅, 평야가 적기 때문이었다.
현대 싱가포르에서 인구가 밀집되고 항만이나 공항처럼 중개 무역 도시로서 중요한 시설들이 모인 남부의 영토 중 상당 부분이 간척으로 바다를 땅으로 바꾼 곳이니,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는 천몽 속 태마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당장은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겠지만, 장차 남양 무역의 핵심 역할을 담당하고자 하면 온통 돌산인 태마식의 토지 환경은 큰 장애로 다가올 게 분명했다.
하여, 몽주는 태마식으로의 진출을 준비하면서 간척 사업 또한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잠시 대기하는 중에 가장 대규모의 간척이 실시된 동부 연안을 눈앞에 두자 직접 상륙하여 그 상황을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 이 앞바다가 현대의 창이 공항이 위치한 곳이지.’
몽주가 서 있는 해안 앞으로는 얕은 수심의 바다가 길게 뻗어 있고, 군데군데 작은 섬들이 마치 바다를 메워 땅으로 만들어 달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잘 포석되어 있었다.
물론, 당장 간척 사업을 시도할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는 일일 것이다. 아마 몽주의 생애 안에서는 시작도 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적어도 간척의 큰 그림만큼은 그려 놓을 생각이고, 태마식에 설치할 항구와 부두 또한 그 훗날의 간척 사업을 염두에 두고 계획을 세우고 싶었다.
‘그런 면에서 동부는 역시 그리 적당하지 않아. 간척지가 너무 넓거든.’
현대 싱가포르에서 어디가 주요 항만 시설이라고 사실 꼬집어 말할 수는 없었다. 워낙에 아시아 무역의 거대한 중심지인 터라 남부 해안 전체가 항만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항만들 대부분이 간척 사업을 통해 얻은 토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만큼 당대에는 그저 바다에 불과했다.
하여, 차후에 간척 사업으로 인해 변할 해안 지대를 염두에 두고, 그 후에도 쓸 수 있는 항만 지역을 고르자면, 간척이 적게 진행된 곳이어야 했으니, 적당한 곳은 딱 한 곳뿐이었다.
현재 고을 태마식이 위치한 곳에서 동남쪽으로 2, 3길미 정도 떨어진 해안으로, 상가포르 섬 주변의 수많은 작은 섬들 중에서 조금 큰 편인 ‘센토사’섬을 마주하고 있는 곳이었다.
그곳도 간척 사업으로 넓힌 곳이긴 매한가지지만, 다른 곳에 비하면 거의 안 했다고 해도 될 만큼 적게 시행된 곳이고, 사실상 항만 건설 중에 해안을 정리한 수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센토사’섬이 자연적인 방파제 역할도 해 주니 더 할 나위 없었다.
참고로 싱가포르 남부 해안 전체가 항만으로 뒤덮여 있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굳이 중심부를 짚자면, 역시나 ‘마리나(Marina) 만’으로, 당대 고을 태마식이 위치한 곳이었다.
하나, 당대 고을 태마식에는 만(灣)이 존재하지 않았는데, 마리나 만 자체가 간척 사업으로 만들어진 인공적인 만이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그저 간척 사업에 도움이 되고 사라진 작은 돌섬들이 군데군데 놓인 바다일 뿐이었다.
“그나저나 소리는 안 들리는군요.”
“여기까지 포음이 들리기에는 좀 멀죠.”
포은의 말에 탁기가 답하니, 몽주의 시선도 서쪽으로 돌아갔다.
물론, 들리지도 않는 곳이 보일 리는 없었다.
지금 몽주가 고을 태마식으로 바로 향하지 않고 있는 것은 탐라수군이 태마식에서 무력시위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었으니, 위험하다는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는 ‘벌주’를 내릴 때는 탐라공이 없고, 나중에 등장하여 ‘권주’를 내리는 것이 낫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제까지 처음에 매를 들지 않은 적이 없는 것 같네요. 어휴, 거 사람들 하곤. 왜 그렇게 멍청하게 구는 건지. 딱 봐도 고개를 숙이는 게 낫다는 걸 그렇게 모르나?”
서쪽에 시선을 둔 채 흘러나온 석삼의 넋두리 같은 말에 몽주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고 보면, 탐라국이 확장함에 있어 단 한 번도 싸움이 생략된 적이 없었다.
남면, 구주, 동금주, 유구, 이주, 여송, 부루내…….
그네들의 입장에서는 어쨌든 침공으로 볼 수 있으니, 저항하는 것도 당연하겠다 싶으면서, 솔직히 겉으로 보이는 군력만 해도 거대해진 지금에 이르러서는 석삼의 말대로 사람들이 상황 판단을 참 못한다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고을 태마식.
이미 거의 두 달 전에 선발대로 도착하여 선무 활동을 펼친 탐라수군의 선발대를 얕잡아 본 건지, 아니면 스스로 몸값을 올리기 위해 ‘배짱’을 튕겨 본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오만한 짓을 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중이었다.
“어련히 알아서 나눠 줄 물산들을 왜 굳이 약탈하려 든 건지, 으이구…….”
석삼의 투덜거림이자 태마식 사람들을 향한 타박이 이어지고 있었다.
* * *
탐라수군이 태마식에 훈계를 내리고 있을 무렵, 한양상시에서도 작지만 큰 변화가 진행 중이었다.
삼구도처럼 순보에 실려 대대적으로 알려지진 않았기에 정말 작은 움직임이었지만, 그 결과는 삼구도에 비해 더 빨리, 그리고 더 크게 체감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될 큰 변화였다.
그 변화가 일어난 곳은 한양상시 내 어느 철물상점이었으니, 그곳은 과거 영산왕 시절 별시가 있었을 때부터 운영되던 곳이었다.
다만, 부엌칼이나 낫 등을 만들어 팔던 대장간이던 그 시절과 달리, 지금은 직접 만들진 않고 여러 회사의 철물을 소매로 파는 곳으로 변모했다.
하여, 생각해 보면 대장간 시설들을 더는 쓸 필요가 없을 터인데, 그 상점의 뒤쪽 건물, 과거 대장간이던 곳의 굴뚝은 늘 연기를 뿜고 있었다.
“야야, 근데 너는 시집 안 가니?”
“가야죠. 이것만 만들고요.”
“참나…….”
땅땅거리는 망치질 사이로 들린 딸의 대답에 아버지는 어이없어 하였다.
“누가 들으면 내가 그냥 집에 안 가냐 라고 말한 줄 알겠다.”
“예예, 뭐, 어쨌든 이건 만들고 가야죠.”
텅, 텅!
여전히 건성으로 답하는 딸은, 두껍기는커녕 오히려 가녀려 보이는 팔뚝으로도, 솜씨 좋게 망치를 내려쳐 붉게 달아오른 작은 철편을 펴고 있었다.
“에그, 다 내 죄다. 어쩌자고 하나 있는 여식에게 불질을 가르쳤는지…….”
“그건 좀 그렇죠.”
“…….”
땅, 땅!
“근데 너 좋다는 사내놈은 있니?”
“가끔요.”
“그래?”
“근데, 제가 망치 잡으면 다 도망가요.”
“…….”
“그러니 이걸 얼른 만들어야 제가 시집을 가도 갈 수 있어요.”
“그, 그래, 얼른 만들어 버리자꾸나.”
철물을 생산하지 않는 대장간 안은 열기와 망치질 소리로 가득했다.
물론, 그날도 만들어야 할 건 만들어지지 않았으니, 그들이 만들고자 하는 건 부녀 스스로도 잘 알고 있듯, 쉽게 만들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부녀가 만들고자 하는 건, 그들이 임시로 지은 이름으로는 ‘각계(刻械)’였다.
그 의미가 시각을 알려 주는 기계이니, 곧 시계(時計)였던 것이다.
부녀가 함께 각계의 제작에 나선 것은 아비의 아내이자, 딸의 어미가 죽은 이후부터였다.
어미가 오래 앓던 기침병이 갑자기 심해졌던 5년 전, 자시 정각까지 왕진을 오겠다던 의원이 좀처럼 오지 않은 그날 밤에 어미는 결국 의원이 도착하기 직전에 숨을 거두었다.
어미의 죽음에 대한 애통함은 그 의원이 도착함과 동시에 그에 대한 원망으로 번졌고, 그 의원도 몹시 당황하였는데, 자시 정각을 알리는 종소리가 그 순간에 들려왔으니, 의원은 자신이 자기 정각 전에 당도했음을 변명할 수 있었다.
하나, 자시 정각의 종소리가 들린 것과 상관없이 자시 정각은 지나 있었으니, 무슨 일인지 그 종소리가 분명 늦은 것이었다.
그 일을 두고 부녀가 그 의원과 끝까지 시비를 가리지는 않았다.
설령 그 의원이 정시 전에 도착했다 하더라도 이미 부녀의 아내이자 어미는 숨을 붙잡기 어려운 때였음을 그들도 알기 때문이다.
다만, 슬픔 속에 아내의 장례를 모두 치른 뒤, 아비의 머릿속에는 계속 틀린 종소리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다. 아내의 죽음이라는 충격적인 현실과 함께 늦은 종소리가 마음의 상처처럼 남은 탓이었다.
하여, 그 뒤로 종을 치는 시간이 어떻게 정해지는지 그것이 얼마나 정확한지에 대해 알아보니, 과연 정확하기 어려운 제도가 있었다.
당대 탐라국에서 한 지역의 시간을 알리는 임무는 각 지역 내 가장 큰 사원이 담당하고 있었다.
그 사원에는 탐라 조정에서 제작되어 분배된 ‘시계’가 있었으니, 이른 바 ‘귀루’ 혹은 ‘구루’였다.
귀루(晷漏)의 ‘귀’가 ‘구’로도 읽히는 탓에 그렇게 달리 읽혔는데, 어쨌든 그 귀루는 엄밀히 따지면 두 개의 시계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시계와 물시계를 아우르는 말이었다.
즉, 상부의 해시계인 귀침(晷針)은 정오를 비롯하여 낮의 시각에 맞춰 그림자의 방향과 길이를 날짜별로 확인할 수 있게 되어 있었고, 하부의 물시계인 각루(刻漏)는 한 시진 단위를 측정할 수 있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귀루를 확인하여 그 사원에서 타종을 하고, 그 사원들 사이에 있는, 귀루가 없는 사원들이 그 타종 소리를 듣고 따라 타종함으로써 주변에 시간을 알리는 ‘시스템’인 것이었다.
사원이 곳곳에 있던 당대의 사정에서는 꽤 체계적인 시보(時報) 제도였지만, 당연히 그 정확성은 기상의 상태와 밤낮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었다.
맑은 날의 낮에는 귀침을 통해 상당히 정확하게 타종할 수 있었으나, 각루로 한 시진씩 측정하는 밤에는 점점 부정확해질 수밖에 없었으니, 각루 자체의 성능 때문이기도 했고, 그걸 측정하는 사람의 한계이기도 했다.
하나, 정말 문제가 되는 때는 흐린 날이었고, 흐린 날이 이어지는 장마 기간이었다.
그때는 낮 동안 귀침으로 시간을 보정할 수도 없기에, 계속 각루로 한 시진마다 타종하니, 오차가 계속 쌓여 나중에는 한 식경 이상 어긋나는 경우도 왕왕 있었던 것이다.
부녀의 어미가 죽은 날도 며칠 동안 비가 오고 흐리길 반복한 끝에 시간이 크게 어긋난 날이었다.
체계적이지만 부정확할 가능성을 크게 내포한 시보 제도를 확인한 아비는 정확한 ‘시계’를 만들기로 작정했고, 얼마 후 당시 열여섯이던 딸도 아비를 돕기 시작했다.
그 뒤로 5년 가까운 시간이 흐름에, 여전히 각계는 완성되지 못하였다.
다만, 어느 정도 방향은 잡았으니, 강철 태엽을 동력원으로 하는 회전형 각계가 바로 그것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태엽을 써서 각계를 만들고자 한 건 아니었으니, 그 시작은 무게 추를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한데, 우연히 거래하던 탐라상단의 철물회사 사원과 이야기를 하는 중에 태엽의 존재를 알게 된 아비는 한계가 뚜렷한 무게 추 방법을 포기하고, 그때부터 태엽을 동력원으로 한 각계를 연구하기 시작했으니, 그것도 벌써 2년이 넘은 일이었다.
지금에 이르러 각계의 완성을 방해하는 문제는 운용 시간이 너무 짧아 반 식경마다 태엽을 다시 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탈진기(脫進機)’가 없는 탓으로, 감긴 태엽이 별 저항 없이 빠르게 풀리는 걸 그저 치차(톱니바퀴) 크기의 차이로 시침의 회전을 느리게 하는 정도에 불과했기에 그런 것이었다.
그런 식으로는 각루만도 못한 ‘시계’에 불과하기에 부녀는 계속 고심하고 있는 게 지금의 상황이었으니, 차라리 무게 추를 이용한 각계 개발로 돌아갈지를 신중하게 검토하려던 참이었다.
“아버지!”
“왜?!”
딸이 아버지를 부르며 달려온 건, 시집 안 가냐고 타박한 바로 그다음 날이었다.
어린 동생이 학교 가는 걸 도와주느라 늦게 온 딸이 급하게 자신을 찾자, 아비가 무슨 큰일이라도 난 줄 알고 서둘러 대꾸하니, 과연 큰일이 있었다.
“찾았어요! 찾은 것 같아요!”
“무, 뭘?”
“각계요! 태엽을 천천히 푸는 방법이요!”
부녀가 연구하고 시험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그것이었으니, 일단은 치차에 쇠막대를 닿게 하여 마찰력으로 느리게 하는 방법을 쓰고 있었다.
하나, 태엽이 정확하게 풀릴 수 있게 적절한 힘으로 쇠막대를 치차에 닿게 하는 게 어려웠고, 무엇보다 마찰이 지속되다 보면 미세하게나마 치차와 쇠막대가 닳아 점점 더 태엽이 빨리 풀리는 문제가 있었다.
“어떤 식으로?!”
“추요, 추를 이용하면 되어요!”
“엥? 결국 다시 무게 추를 쓰자고?”
“아뇨, 제 말은 태엽이 빨리 풀리는 걸 무게 추가 흔들리는 걸로 막을 수 있다는 거예요.”
“아니, 그것도 해 봤잖니? 무게 추의 줄도 결국은 다 감겨 버리는 터라 길게 쓰지 못하는 건 매한…….”
“아뇨오! 추를 감는 게 아니라, 흔드는 거라고요!”
“……?”
아비가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자, 딸은 답답한 지 대장간 안으로 뛰듯이 들어가서는 망치를 가져왔다.
“자, 이걸 보세요.”
딸이 망치 머리를 바닥으로 내린 채, 망치의 자루 끝을 검지와 엄지로 잡고는 슬슬 좌우로 흔들었다.
당연히 망치 머리는 한 박자 느리게 흔들렸고, 몇 번 흔든 끝에 딸이 손을 고정하자, 망치 머리만 좌우로 몇 번 더 흔들리다가 멈췄다.
“보세요. 이 망치, 그러니까 무게 추는 좌로 갔으면 다시 우로 돌아가는 힘이 생기잖아요.”
“그치.”
“하면, 그 돌아가는 힘을 태엽에 가하면 그만큼 태엽이 느려질 것이고, 태엽의 푸는 힘이 도로 그 무게 추를 좌로 보낼 것이니, 무게 추는 지속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되잖아요.”
그 즈음에서 아비도 대충 여식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하나, 그렇다고 그 방법에 의문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게 가능한 방법이겠니? 그런 식으로 쓰려면 태엽에 연결을 했다가 끊었다가 해야 하…… 어어?”
딸의 착안이 가진 빈틈을 지적하던 아비는 직후에 그 빈틈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떠올렸다.
일반적인 치차와 달리 한쪽으로만 움직이게 하는 특이한 치차를 만들면 된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해 보자!”
“예, 아버지!”
아비의 딸은 동생이 학교 가는 길에 요새 남자아이들 사이에 유행이라는 새잡이용 돌팔매에 돌을 달고 흔드는 걸 보다가 얻은 그 깨달음이 각계 제작 성공의 열쇠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그 확신이 사실로 드러나기까지 약 두어 달의 시간이 필요했으니, 그 또한 설계 수정과 신부품의 제작, 그리고 정밀한 조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데, 무게추의 진동으로 태엽을 조율하는 방식은 단지 태엽을 천천히 푸는 정도의 효과뿐만 아니라, 태엽이 풀리는 속도의 오차까지 줄였으니, 각계는 각루처럼 고작 한 시진의 시간을 측정하는 걸 넘어 하루의 시간을 측정하는 것까지 넘볼 수 있었다.
두 부녀가 나름 완성하여 후에 탐라공에게 바친 그 각계의 오차는 하루에 반 식경 정도였으니, 나름 정확하다면 정확했고, 아쉽다면 아쉬운 수준이었다.
하나, 그 각계가 탐라공 앞에 등장한 순간, 아직 어설픈 수준의 ‘기계식 시계’가 그럴싸한 ‘크로노미터(Chronometer)’까지 발전하는 건 문자 그대로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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