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436)
* * *
바람 소리가 잦아들었다. 하나 스치는 기운이 바람인 듯하니, 바람이 잦아든 것이 아니라 그저 들리지 않을 뿐이리라.
어느덧 중년의 얼굴을 한 제자 지성의 슬픈 표정이 그가 눈물을 흘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지만, 그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에게 한마디 전하고 싶었다.
‘내 곁에서 고생했다. 부디 바닥을 볼 줄 아는 삶을 살아라.’
분명 입술과 혀를 움직여 말했건만, 그 목소리가 자신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다만, 지성이 오열하는 모습이 보이는 걸로 제자에게 말이 전해졌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말을 전하고 싶은 자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나, 그 모든 이들에게 말을 남길 여유가 없으니, 그중 둘에게 말을 남기고자 하였다.
‘요동공에게 전하라. 성인을 존경하고 연구하는 자를 남기고, 성인을 추종하고 복종하는 자를 버리라고.’
제자가 양손으로 세수하듯 눈물을 훔치곤 머리를 크게 끄덕였다.
‘또, 탐라공에게 전하라…….’
잠시 심호흡을 하였다. 뭔가 할 말이 많은 것 같은데, 막상 전언을 남기려니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렇게 머뭇거리길 잠시, 문득 스치는 생각이 있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저 잘 놀다 가시라 하여라.’
이제는 모르겠다. 아니, 본래도 모른다.
탐라공이 천리를 따르는 자인지, 거스르는 자인지 언젠가부터 무슨 상관이랴 싶었다.
하기야 부처의 손에서 벗어난 자를 자신이 가늠할 수 있을 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부디 잘 놀다 가길 바랄 따름이었다.
가부좌를 틀어 앉아 있던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뜸과 동시에 그가 애써 뜨고 있던 눈 위로 무거운 눈꺼풀이 떨어졌다.
그의 눈은 다시 열리지 못하였다.
세력 4년 봄날에 요동국사 무학, 입적하다.
* * *
요동국사의 입적은 요동 순보의 첫 번째 호외였다.
탐라 순보와 마찬가지로, 요동 조정의 관할하에 발간되는 순보의 창간호가 무학의 죽음 나흘 전에 나왔으니, 그사이에 다른 큰일이 있지 않는 이상 첫 호외일 수밖에 없었다.
무학 대사의 입적은 요동국 백성들에게는 큰 슬픔이었다.
고난을 자청하되 편안을 멀리하였고, 낮은 자의 곁에 서려 하되 높은 자의 뒤에 서지 않은 그의 삶은 백성들의 존경을 받아 마땅했고, 특히 거란계 요동 백성들에게는 요동공 못지않은 또 하나의 국부라 할 수 있었으니, 그들이 요동국에 정착할 수 있는 문화적인 관용을 만든 것이 바로 무학이기 때문이었다.
이는 비단 일반 백성들에게만 그런 건 아니었다.
지배적 위치에 있는 자들은 무학이 얻고 있는 백성들의 지지 때문이라도 무학을 존중해야 했으니, 심지어 부처를 불씨라 천시하던 유자들마저도 무학만큼은 인정하고 있었다.
사실 이는 무학이 진정 권력을 추구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국정에 있어 부딪칠 일이 적었던 것과 유관한 부분이었다.
다만, 그럼에도 무학은 요동국의 정치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쳤으니, 요동공이 불교적 신앙심이 깊은 덕도 있지만, 백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은 덕에 굳이 앞장서로 소리쳐 자신의 주장을 설파하려 하지 않아도 절로 그 영향력에 대한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저희에게 홍익회의 역할을 내려 주십시오.”
무학 대사의 다비식을 마친 후, 요동공의 부름을 받은 제자 지성의 청이었다.
“저희는 재단과 같이 따로 재산은 필요 없습니다. 나라의 도움이 있다면 좋을 일이나 없다면 없는 대로 백성들을 구휼할 것입니다. 중요한 건 명분과 물금첩일 따름입니다.”
요동공으로서는 마다할 일이 아니었다. 아예 무학도(無學道)라는 이름까지 지어 주며 그 권위를 세워 주기도 하였다.
그것이 홍익회와 더불어 고려의 대표적인 구휼 단체인 무학도의 탄생이었으니, 재단을 두고 그 안정적인 자산의 수익을 통해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구휼 활동을 벌이면서 훗날 세계 곳곳에 지부를 두는 초대형 단체가 된 홍익회에 비하면 규모도 작고, 그 활동도 비정기적이었지만, 무학도는 대신 구휼과 구조의 최전방에서 활약하는 ‘특공대’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무학도에 대한 윤허를 얻은 지성은 그제야 무학이 남긴 전언을 요동공에게 전하였다.
“성인을 존경하고 연구하는 자를 남기고, 성인을 추종하고 복종하는 자를 버리라…….”
요동공은 그 말을 깊이 음미하였다.
무학이 가졌던 신분을 생각하면, 일차적으로는 유자들에 대한 경계로 해석할 수 있었다.
탐라국을 비롯하여 고려의 다른 곳에서는 그 자리가 미약한 유자들에게 요동국은 그들의 세속적인 활약을 기대할 수 있는 마지막 안식처라 할 만큼 요동국의 관리들 중에는 유자 출신들이 많았다.
그들 중에는 유학의 기반에 대한 위기의식을 가지고 나름 유연한 방식으로 유자적 가치관을 실현하려는 자들도 있었지만, 때로는 오히려 더 근본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맹목적으로 공맹의 말씀을 추종하는 자들도 있었다.
이미 탐라국을 통해 그런 자들이 나라의 발전과 통치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임은 결론 내려진 사실이었고, 요동공도 그런 자들의 득세를 원치 않았다.
하나, 그런 소수의 근본주의적 유자들을 제거하는 행동이, 다른 도움이 되는 유자들과 척을 지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기에 너그러이 두고 보는 중이었다.
그렇기에 무학의 전언이자 유언은 그런 자들을 두고 보지 말라는 말처럼 해석하기에 충분했다.
하나, 동시에 단지 유자들을 대상으로 한 말만은 아님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니, 부처를 좇는 무학과 불자들도 그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신앙의 기반 위에 선 자들에게 권력을 쥐어 주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인 요동공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무학의 전언을 마음 깊이 담았다.
“과연 국사다운 말씀이시네. 자네도 스승의 뜻을 따르려는가.”
“어찌 아니 그러겠습니까. 애초에 보고 배운 것이 그뿐이라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무학의 생전에 늘 모든 걸 내려놓은 무학을 두고 몹시도 답답한 반응을 내놓던 그였지만, 당연히 그는 스승을 존경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평생 동안 스승의 곁을 지킨 것이었다.
요동공은 지성을 향해 실소를 짓다가 문득 든 생각이 있어 다시 말문을 열었다.
“혹시 대사께서 나 외에도 전언을 남기신 사람이 있는가?”
“탐라공에게도 남겼습니다.”
“그래? ……혹시 그 내용을 알 수 있겠는가?”
“본디 함부로 그 말씀을 밝히는 건 삼가야 할 일이나…….”
지성은 조심스러워하면서도 스승께서 탐라공에게 남긴 말을 요동공에게 알려 주었다.
그가 보기에 그 말씀은 굳이 감출 만큼 대단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개 그저 무학 대사께서 탐라공께 격의 없는 마지막 인사를 남긴 것이라 여겼을 것이다.
다만, 요동공에게는 뭔가 함의를 느낄 만한 말이었다.
‘그저 잘 놀다 가라라…….’
그건 자신이 어쩔 도리가 없는 누군가를 인정한다는 전제가 깔려야 나올 만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한 자가 그 어떤 권세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무학 대사임을 생각하면, 요동공이 그 말을 듣자마자 떠올린 지난날 그가 탐라공을 부처의 계시자로 여겼던 것과 맥락이 닿고 있었다.
‘하긴 탐라공이라면 충분하지.’
탐라공은 더는 작은 패배감도 느낄 수 없을 만큼 그가 인정하는 위인이었다.
그리고 그런 마음가짐이 탐라국과의 관계를 유연하게 하고, 탐라국을 따라가며 요동국을 발전시킨 원동력이었다.
하나, 그렇다고 그게 반드시 정답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어차피 탐라공도 천세를 살지 않을 것이니, 장차 요동국이 탐라국을 능가하지 못하리란 법도 없다 여겼다.
그렇기에 요동공은 그 가능성을 그의 후계자에게 걸고 있었다.
* * *
여전히 요동국의 공식적인 후계자는 공석이었으나, 이미 그 자리를 오남 방원이 차지한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공공연한 사실을 공공연하게 만든 계기는 방원의 청을 요동공이 받아들이고, 그로 인해 시작된 사업의 지휘를 방원에게 맡긴 것이었다.
[대저 서방의 대토가 요동국의 품에 들어온 지 20년이 흘렀으나, 아직 그곳이 누구의 의심도 사지 않을 만큼 완벽하게 요동국의 영토가 되지 않았으니, 이는 요동국의 백성이 그곳에 적은 탓입니다.백성들이 그곳에서 사는 것이 두렵지 않게 하려면, 치안이 안정되어야 하고, 물산을 구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어야 합니다. 치안은 요동군이 이미 장악하고 있으니, 해결해야 할 것은 물산의 유통을 원할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아주 명확하니, 일차로 귀산까지, 이차로 황금산맥까지 이어지는 도로를 건설할 것을 청합니다.]
방원의 청은 조정에서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나, 길게 이어질 논쟁거리는 아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조정 내에서도 서방의 영토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교통이 편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충분히 있었던 것이다.
사실 아예 논쟁이 없을 수도 있었던 일이 작게나마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은 방원이 올린 도로 건설안의 내용 탓이었다.
즉, 방원이 청한 도로라는 것이, 지금까지 요동국에서 건설한 도로처럼 세망과 자갈을 이용한 것이되, 그 안에 철근을 심어 보다 튼튼하게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당연히 일반적인 도로에 비해 비용이 높아지는 건 당연했고, 방원의 유덕사가 요동국 최고의 제철 회사임을 생각하면 방원이 나랏일을 빌미로 사익을 추구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에 비용 문제에 있어서 방원은 비교적 쉽게 도로의 수리와 복원이 가능한 곳과 서방의 영토처럼 도로 관리가 어려운 곳은 상황이 다르니, 처음 비용이 많이 들어도 보다 튼튼하게 지어 두는 게 오히려 비용을 아끼는 것이라 주장하여 관철시켰다.
그리고 유덕사와의 ‘정경 유착’ 문제에서는 이미 그가 유덕사의 최대 주주가 아니고 사장의 자리에서도 물러났다는 사실로서 방어하고, 비단 유덕사만이 아니라 고려 전체의 제철 회사와 철물 회사들이 참여할 수 있는 대역사(大役事)임을 강조함으로써 설득할 수 있었다.
물론, 그런 주장과 설명 이전에 그건 일종의 힘 싸움이었으니, 새롭게 후계자의 지위를 얻은 방원과 이전 후계자였던 방과의 측근들 간의 신경전이었다.
사실 관념도 희미한 정경 유착에 대한 우려는 혹여나 방과 공자가 기적처럼 건강을 회복했을 때, 방원을 이겨 낼 수 없을 만큼 큰 세력을 갖게 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변형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이미 방원을 후계자로 확정지은 요동공의 선택은 뻔했으니, 방원이 올린 계획안을 약간 수정하여 도로 건설을 개시하기로 결정하였다.
서방 대맥 도로(西方 大脈 道路).
최종적으로 27년의 공기 끝에 완성되고, 이후 개축과 확장을 통해 수백 년 동안 사용될 고려 북부의 대혈맥과 같은 도로의 이름이었다.
서방 대맥 도로, 간추려서 서방대로 내지, 서로라 불리는 그 도로는 요동국의 서방 영토를 공고히 함은 물론이고, 요동국의 산업 전반을 한 단계 상승시키는 동력이 되었다.
특히 제철 관련 산업에 국한하면, 고려 전체의 제철 산업을 양적으로든 질적으로든 ‘업그레이드’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대명 전쟁 전 명나라의 십분지 사 정도였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비슷해진 고려의 철강 생산량은 서방 대맥 도로의 건설이 마무리될 무렵에는 명나라의 철강 생산량의 거의 두 배에 이르렀으니, 그 기간 동안 명나라의 철강 생산량도 크게 증가한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폭발적인 성장을 이룬 것이었다.
다만, 그런 긍정적인 효과의 뒤로 부작용도 적지 않았으니, 요동국의 경제에서 유덕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진 탓에 요동국의 정치가 유덕사의 의중에 좌지우지되는 경향이 생겼고, 엄청나게 몸집을 풀린 철강 생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철강을 소비할 거리를 찾아야 하는 바, 그것이 때로는 전쟁까지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탐라공 석몽린의 생전에는 어느 정도 제어가 되었지만, 그 후에는 적어도 한 번은 크게 몸살을 앓아야 할 일이었던 것이다.
* * *
“크크크, 난 이 친구가 참 맘에 들어.”
“흐흐, 재밌는 친구지.”
재상과 두신이 웃음을 보이는 이유는 몽주가 준 보고서의 내용에 있었다.
탐라국 현 익문 1대의 대장이자, 연나라 대사관의 공사인 소선구가 몽주에게 올린 장계의 내용을 그대로 전한 것인데, 그자는 과거 어사 시절부터 은근히 재밌는 표현을 장계에 담곤 하였다.
이번에도 여인네의 가슴처럼 말랑말랑하다느니, 배앓이를 하는 아이의 똥과 같다느니 하는 표현이 있었는데, 뭔가 엄격한 품위를 지켜야 할 것 같은 자의 장계임을 감안하면 충분히 웃음이 터질 만했다.
“그게 그렇게 웃겨요?”
“그렇죠. 지금이야 이 친구라 부르지만, 사실 우리 선조님 되실 분 아닌가요? 그것도 고관이신 분이 이렇게 스스럼없는 표현을 쓰는 게 재밌고 신기하죠.”
몽주의 입장에서는 가끔 소선구가 장난을 거는 건가 싶을 뿐이었다.
어쨌거나 그 표현이 이상하든 아니든, 그 표현에 담긴 내용만큼은 몽주가 원하던 바였다.
그가 여인네의 가슴처럼 말랑말랑하고, 배앓이를 하는 아이의 똥 같다는 건 연나라와 명나라에서 사용하는 세망의 경화 결과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즉, 고려에서 수출된 세망이든, 중국 측이 나름 따라서 만든 세망이든, 그 세망을 사용한 연나라와 명나라의 요새 건설을 익문대가 방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방법은 간단했다. 그저 공사 현장에 사람을 침투시켜 경화 중인 세망에 설탕물을 조금 뿌려 주면 충분했다.
미량의 설탕만 스며들어도 석회의 경화 속도가 확연히 느려지기 때문에 경화가 끝났다고 여기고 세망틀을 뜯다가는 건물의 전부, 혹은 일부가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덕분에 연나라와 명나라 사이의 국경에서 양측의 요새 건설 속도는 굉장히 느린 상태였으니, 이유를 짐작하지 못하는 양국은 아예 세망에 대한 신뢰를 접고 도로 석성을 구축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쨌든 웃음 속에서 몽주와 재상, 그리고 두신의 회의는 시작되었고, 그날의 주된 주제는 공병함대였다.
“쉽게 말해서 인도 쪽 항로 개척의 중심으로 삼으려는 거죠?”
“예.”
“일종의 군산복합체?”
“군산(軍産)…… 보다는 군상(軍商)복합체겠죠.”
몽주의 수정에 재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솔직히 그 시절에서 더 먼 곳은 상행일지라도 민간에 맡길 수 있는 일이 아니죠.”
“예, 그러니까 국가가 앞장서야 하고, 당연히 군력도 필수죠. 항구를 빼앗든 얻든, 이전과 달리 항구의 역할에서 민항보다는 군항이 더 핵심이 될 테고요.”
“자칫 지금 중국군처럼 돈벌이에 빠진 군대 꼴이 될 수도 있는 거 아시죠?”
“네, 그래서 해군 자체가 그렇게 되기 전에 함대 하나를 따로 특임하려는 거죠.”
몽주의 말에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였다.
현대적 시선에서 보자면, 군대가 경제적인 단위로 움직이는 것은 경계해야 마땅하지만, 역사에선 군대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오히려 적었고, 현대에서도 군대가 마치 기업처럼 움직이는 나라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 걸 생각하면, 불가능한 현대적 가치를 천몽 속에서 실현하려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숨통’을 남겨 군대가 독자적인 이익을 위해 나라의 이익을 저해하는 경우를 제어하는 데 집중할 수 있는 체계를 확실히 만들어 두는 게 나았다.
“서쪽은 그렇다 치고, 남쪽과 동쪽은 어쩔 생각이십니까? 호주 대륙도 그렇고, 태평양과 그 건너의 아메리카 대륙까지 그저 멀다고 모른 척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곳이 많잖아요.”
“그쪽은 민간의 역량에 맡길 생각입니다. 나라는 민간의 뒤를 따르고요. 엄청난 세력이 존재하는 곳도 아니니 충분히 가능하겠죠.”
“뭐, 어떤 움직임이 있나요?”
“아뇨. 아직은 없어요.”
탐라국에서 파감태가 하는 일을 아직 알지 못하는 몽주의 대답이었고, 그 정도에서 그 이야기는 마무리되었다.
“근데 어디까지 진출하실 생각입니까?”
별 부담도 고민도 없는 회의 중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두신이 물었다.
“야…….”
재상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뭔가 못마땅한 듯 친구를 불렀지만, 두신은 상관치 않고 몽주의 답을 기다렸다.
몽주는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짓다가 말문을 열었다.
“지금은 답하기가 곤란하네요.”
“여태까지 계속 그랬죠. 그런데 그렇다고 그 답을 계속 미루면 앞으로도 계속 답할 수 없을 겁니다. 몽주 씨도 이제 쉰 살을 넘겼잖아요? 이제는 좀 더 뚜렷한 목표를 둘 때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쉰 살이 넘었다는 건 천몽 속의 몽주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나이가 많아진 만큼 목표를 설정해야 하는 필요성이 높아진 것도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저 상황을 봐서 하자는 건 몽주의 천몽 속 삶을 제대로 마무리하기 위해서라도 더는 핑계로 삼을 수 없는 시기가 온 것이다.
“두신 씨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머뭇거리던 몽주가 되묻자, 두신이 재상과 눈을 마주쳤다가 다시 몽주를 바라보았다.
“일단 저는 기한부터 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20년. 그 이상은 몽주 씨가 더 오래 살든 아니든 몽주 씨가 탐라국을 주도하는 게 옳지 않다고 보니까요.”
“20년이라, 20년…….”
몽주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20년을 중얼거리자, 두신은 몽주의 눈치를 살피다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20년이 너무 짧다고 생각하…….”
“아뇨, 짧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충분히 길죠. 그때까지 살아있으리란 보장도 없고요. 다만, 그 20년씩이나 탐라공의 지위에 있을 생각은 없어요.”
“예?”
“그 전에 내려올 거라고요. 아들에게 작위를 물려주고요. 환갑이 되기 전에요.”
“그건 너무 짧은데요, 은퇴하기에는.”
“대신 탐라상단의 수장으로서 여생 동안 열심히 일해 볼 생각입니다. 좀 더 자유롭게요.”
“아하!”
듣고 있던 재상이 손가락을 튕기며 반색하였다.
“마치 상왕처럼 말이죠? 힘은 갖추되 책임은 지지 않는 위치.”
“책임을 회피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좀 부담은 덜하겠죠.”
몽주는 천몽 속 그의 아들을 떠올리며 조금 미안한 마음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어쨌든 이제 천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계획을 고심해야 할 때임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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