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437)
지글지글.
숯불과 석쇠 위에 놓인 돼지고기가 육즙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대촌동 번화가에 위치한 육식당(肉食堂).
탐라국의 주요 고을 시가에 기존의 식당과는 구분되는 식당, 즉 음식만 파는 게 아니라 먹을 자리도 마련한 식당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지 4, 5년이 흐른 지금, 식당의 종류도 분화되어 고기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들이 성행하고 있었다.
석삼이 감태를 마주 보고 있는 곳도 그렇게 등장한 고기 식당이었고, 그중에서도 상당히 고급스러운 곳이었다.
“한잔 더 하자.”
“예, 형님.”
석삼의 권유에 감태가 예를 차리고 아락주를 한 잔 입에 털어 넣었다.
쓰고 단맛이 교차하는 걸 느끼며 잔을 내려놓자, 석삼이 말문을 열었다.
“한 반년 정도 떠나 있었을 뿐인데, 탐라국이 뒤집어엎어진 느낌이라고 하시더라.”
“그런가요.”
석삼의 말 속 주체는 그 두 사람이 아닌 탐라공 저하였다.
“난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저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셨어. 뭐, 그분이야 작은 변화를 보고도 먼 곳을 내다보실 수 있는 분이시니까.”
“그렇게 들으니, 좀 더 자신감이 생깁니다. 저도 그런 작은 변화 중 하나라는 거 아니에요?”
“그렇지. 그러니까 나더러 널 좀 만나 보라고 하신 게고.”
석삼이 감태를 찾은 것은 탐라공의 명(?)에 의한 것이었다.
도움이 필요한 게 있으면 잘 들어오라는 명.
이미 탐라공께서 탐라섬으로 귀환하기 전에 탐라상단이 감태의 탐험을 지원하기로 결정 났고, 탐라상단으로부터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을 받아 탐험대를 한창 구성 중이긴 했지만, 그래도 돈으로 해결 안 되는 문제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미 탐라상단을 통해 얻는 지원으로도 충분합니다. 그게 다 탐라공 저하의 도움이죠.”
“근데 어쩌다 탐험대를 꾸릴 생각을 한 게냐? 나도 네가 그렇게 전격적으로 일을 벌일지 짐작도 못했다. 내가 남양으로 가기 전에 만났을 때도 그런 말은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잖아.”
“예, 그랬죠. 그때만 해도 제가 그럴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근데?”
“사실 곧 졸업할 때가 되는데 고학교에서 배운 걸로 제 남은 인생을 어찌 살아야 할지 가늠이 되질 않았어요. 관리가 되어야 할지, 회사를 차리거나 회사에 들어가야 할지, 아니면 도로 군에 들어가야 할지 애매하더라고요. 그러다 삼구도를 보았죠.”
“음.”
석삼은 감태가 삼구도를 언급하자 침음을 뱉었다.
탐라국 백성들 중 대부분이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 그 그림은 관심 있는 자들 사이에서는 최고의 화젯거리였고, 탐라공께서 남양에 다녀온 사이에 세상이 뒤집힌 것 같다는 소회를 토로하게 만든 제일의 원인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감태도 그 삼구도에 큰 인상을 받은 자였으니, 그의 인생의 경로마저 정하게 만들 정도였다.
“만약 정말 땅이 구의 형태라면 그 땅을 한 바퀴 일주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해서, 세상을 일주해 보겠다는 거냐?”
“할 수 있다면요. 물론, 무리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건 죽자고 덤비는 일일 테니까요. 저도 홀몸이 아니고, 같이 동행하는 이들의 삶도 있는데 그럴 수는 없죠.”
“…….”
석삼은 고기를 씹다가 잠시 감태를 응시하였다.
그가 처음 감태의 소식을 들었을 때, 든 생각이 있었으니, 감태가 혹여 항해와 탐험을 너무 경시하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었다.
한데 감태의 말을 듣자 하니, 그건 아닌 듯하여 다행이었지만, 그래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정말 위험할 수도 있다. 내가 향신료 제도를 다녀온 건 알지? 여송에서 연안과 섬을 따라갈 수 있는 그곳도 오가는 중에 위급한 순간이 몇 번이나 있었어. 뻔히 대략적인 위치도 알고 있었음에도 꽤 고생했지.”
“예.”
“이제껏 탐라국이 바다 밖으로 진출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디에 있고, 그곳이 대충 어떤 곳인지를 알고 갔음에도 실패가 있었고, 실수가 있었어. 그리고 그렇게 진출하여 탐라의 영역이 된 이후에도 바다로 나선다는 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야.”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지는 않지만, 탐라국은 평균적으로 매년 십여 척의 상선을 바다에서 잃고 있었고, 그 배에 타고 있던 선원들 중 상당수도 불귀의 객이 되었다.
전체적으로 백분지 일에도 못 미치는 수치였지만, 삶과 죽음이 나뉘는 확률로는 충분히 큰 수치이고, 그것이 익숙한 항로를 이용하는 중에도 그런 것임을 생각하면 감태의 탐험은 위험할 가능성이 훨씬 클 게 분명했다.
어찌 보면 겁을 주는 말이었지만, 그걸 듣는 감태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생각을 바꿀 마음은 없나 보구나.”
“지금은 생각을 바꾸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죠. 이미 서른 명 넘게 응하였는데요.”
“그래? 다들 자격은 충분하고?”
“예, 철저하게 따지고 있죠. 지금 확정된 이들을 보면, 탐라수군 출신들이 절반 이상이고, 다른 이들도 선원 출신이거나 거친 일을 해 온 자들이에요.”
“마음가짐은?”
“그네들이 얻는 수입보다 적은 보상만 보장했는데도 다들 열정을 보이고 있어요. 뭐, 더 벌 수도 있겠지만요.”
석삼은 충분히 그럴 만하다 싶었다.
탐라국의 남양 영토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그에 대한 소문 또한 고려 본토에 퍼졌으니, 이미 그곳을 방문해 보길 희망하는 자들도 많았다.
그중 부유한 자들은 큰 비용을 들여 여송 정도까지 여행을 떠나는 자들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자들은 상선의 선원이 되어 욕구를 충족하기도 하였다.
“요즘 준비를 하면서 드는 생각인데, 탐라공 저하께서는 정말 먼 곳까지 보셨다 싶습니다.”
“응? 왜 갑자기?”
“선상 규율이라는 것까지 자리매김해 두셨지 않습니까. 명나라나 왜국에서는 선원 생활이 곧 반쯤 노예 생활이라 하여, 대개 기피하는 일인 데 비해, 탐라국에서는 그저 하나의 평범한 직업이니, 그것이 바로 그 선상 규율 덕이지요.”
“아아…….”
선상 규율, 정확히 말하면 ‘선상 규율에 관한 령’은 최근에 탐라공의 이름으로 선포된 법령으로, 선상 생활에서의 안전과 인권을 보장하는 내용이었다.
선장이나 선주가 선원들을 학대하거나 사사로이 처벌하지 못하게 하고, 선원들의 선상 생활이 최소한의 인간적인 수준을 충족할 수 있도록 선내 환경이나 식량 상황을 정기적으로 점검 받도록 하는 등의 조항들로 이뤄진 것이 ‘선상규율령’이었다.
다만, 선상규율령이 법령화되기 전에도 이미 탐라상단의 내부 규정을 통해 그런 문화가 오래전부터 정착된 바 있으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탐라 상단 외의 상단이나 회사, 또한 그에 준하지 못하면 선원들을 구할 수가 없었다.
한데, 그렇게 암묵적으로 정착된 문화를 굳이 근래에 이르러 법령화한 이유가 있었으니, 선원이 되고자 하는 자들이 더 늘었고, 그 탓에 제대로 된 대우를 해 주지 않는 회사들도 선원들을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도 선원은 꽤 인기가 있는 직업이었지만, 인구도 늘고, 남양에 대한 이국적인 소문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더욱 선원이 되고자 하는 자들이 많아졌다.
상황이 돌아가는 걸 볼 줄 아는 자들이라면 미리 선상 규율에 대한 문화가 정착되고, 최근에 아예 법령화를 시키지 않았더라면, 명나라나 왜국에서 그러하듯 선장이나 선주들이 선원들을 함부로 다루는 일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 평하고 있었다.
“그 덕에 모험심이 있는 자들이 먼 곳까지 탐험을 떠남에 있어서도 선상 생활을 꺼리지 않고 도전할 수 있게 되었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 또한 탐라공께서 먼 곳까지 보고 안배하신 일이라 할 수 있겠지요.”
“후후, 말이 되는군.”
석삼이 보기에 선상 규율에 그런 목적이 있었다기보다는 그저 탐라공께서 천명하신 인본의 길을 따르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지만, 어쨌든 큰 시야에서 보자면 결국 같은 이야기였다.
“한 가지 달가운 이야기를 알려 줄까?”
“예? 뭡니까?”
“조만간 탐라공께서 탐험령을 선언하실 걸세.”
“탐험령이요?”
“그러니까 체관부의 탐험 신고를 확대한 것이라 보면 될 걸세.”
“음…….”
사실 감태가 처음으로 탐험대를 꾸리는 건 아니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탐험대가 생겼고, 아예 탐험을 주된 업무로 삼는 주식회사도 있었다.
그런 탐험대와 회사가 존재할 수 있는 배경에는 체관부에서 주관하는 탐험 신고가 있었으니, 특정 지역에 대한 탐험 보고서를 체관부에 제출하면 그에 대한 보상금을 지불하는 제도였다.
다만, 그 탐험 신고는 엄연히 특정 지역에 국한한 것으로, 감태가 꾸리는 탐험대는 무척 특별한 것이었다.
그 특별한 점은 그가 순보에 낸 광고의 첫 문장에 잘 담겨 있었다.
궁서//‘누구도 닿지 못하였고, 심지어 알지도 못하는 세상을 찾아볼 배짱이 있는 자들을 구하오.’//
이전 탐험대들의 목표는 모두 여송섬 주변에 국한되어 있었으니, 탐험 신고의 대상 지역이 그곳이기 때문이었다.
여송섬 주변 수천 개에 이르는 섬들 중에서 탐라수군이 직접 탐사한 곳은 비교적 큰 섬 수십 개에 불과했으니, 그 외의 섬들을 탐사하여 보고하는 자에게 보상함으로써 지리적인 정보를 확충하고자 했다.
그중 특히 광물 자원의 여부까지 확인하게 된다면 그 상금의 규모가 더 커졌는데, 만약 이후 채산성이 충분하다는 판정을 받는다면 상금은 경함선급 상선 두어 척을 살 수 있을 정도로 커졌다.
덕분에 사실 당대에 엄두도 내기 어려운 여송섬 주변의 수많은 섬들이 민간의 탐험가에 의해 파악되고 있었으니, 이미 그런 섬들의 수가 거의 백 곳에 이르는 중이었고, 철이나 구리 등이 제법 큰 규모로 매장된 위치 또한 몇 곳을 알아냈다.
하나, 어쨌든 그런 탐험대의 범위는 이미 탐라국이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곳인 바, 그 하나하나의 섬들을 두고 발을 디디지 않았고, 잘 알지 못하는 곳이라 할 수는 있어도, 그 지역 자체가 그런 건 아니었다.
한데, 감태는 그야말로 미지의 세상을 찾아 떠나고자 함이었던 것이다.
“이번 탐험령으로 인해 섬이나 육지의 탐사에 대한 보고는 물론, 항로지도 자체에도 상금이 생길 거야. 다만, 그 대상은 기존 항로와 다르고, 더 나은 항로여야 하겠지. 그러니 아무래도 전인미답의 지역에 대한 탐험이 주된 대상일 걸세.”
“하면, 향신료 제도 이남이나 이동 지역이라 보면 되겠군요.”
“그렇지. 더 먼 곳까지 간다면 보상금은 더욱 커질 테고.”
“하면, 아예 세상을 일주한다면 얼마나 받게 될까요?”
“하하, 그걸 해내기만 한다면 상금이 문제겠는가? 아마 탐라국 최고의 영웅으로 대우받을 텐데 말이야. 재물은 물론이고, 명예 또한 하늘에 닿고도 남겠지.”
석삼의 말에 감태의 눈이 반짝거렸다가 이내 실소와 함께 사라졌다.
“계속 탐험을 지속할 수 있을 것 같아 좋긴 한데, 자칫 너무 욕심을 부리게 할 수도 있을 것 같군요.”
“사실 그게 목적이라 봐야겠지. 사람의 욕심을 이용해서 탐라국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지.”
“갑자기 무서워집니다.”
“무섭긴…… 장차 미지의 세계로 떠나야 하는데 마음을 다스릴 정도의 각오는 되어 있어야지.”
“아니, 그 자체가 무섭다는 게 아니라, 이제 저 말고도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려는 자들이 속출할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음?”
“경쟁이 심해지면, 제가 아무리 미지의 세상을 찾고, 그래서 미지의 지식을 얻는 것에 만족과 목표를 두고자 하여도, 절로 쫓기는 마음이 들 수도 있으니까요.”
“그건…….”
치이이익.
감태가 하는 말의 의미를 깨달은 석삼은 고기를 석쇠 위에 올리다가 잠시 멈칫하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이 세상에 경쟁이 없는 곳이 있던가.”
“예, 맞는 말씀입니다. 제가 알아서 잘해야 할 일이지요.”
“대신, 이건 하나 알려 주지.”
“……?”
“처음에는 일단 향신료 제도의 남쪽에 치중하게.”
“예?”
감태가 무슨 뜻인지를 되묻고자 하였으나, 석삼은 더는 상대하지 않고 그저 고기를 굽기만 할 뿐이었다.
그건 함부로 발설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가 탐라공과 함께 태마식에 있었을 때, 저하께서 낙서한 종이를 본 바 있었으니, 연필로 대충 표기한 그 그림 같은 낙서가 아마도 향신료 제도의 남쪽이자 태마식의 동쪽 지역의 지리에 관한 것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탐라공께서 그걸 어찌 아는지는 차치하고, 지리적인 분야에 있어서 탐라공의 ‘천리안’은 거의 틀린 적이 없었으니, 석삼으로서는 쉽게 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낙서 같은 지도(?) 속 가장 아래에 커다란 원이 그러져 있었고, 그 안에 ‘大陸(대륙)’이라 적혀 있던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기에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감태는 모르쇠하는 석삼의 태도에 의아해 하다가 이내 감사를 표하였으니, 자세한 말을 해 주진 않았어도 결코 아무렇게나 나온 말이 아닐 것이라 믿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 ‘힌트’가 파감태를 지구상 최고의 탐험가로 만든 계기였을 수도 있었다.
훗날 ‘두 대륙의 발견자’, ‘항로의 왕’, ‘욕심쟁이’ 같은 여러 별칭을 얻게 된 탐험가 파감태가, 탐라상단으로부터 받은 중함선을 개조한 탐험선을 타고 떠난 건 세력 4년 10월경이었다.
* * *
높이는 1.5미 정도, 너비는 50세미 정도, 깊이는 25세미 정도였다.
가장 위에는 원형의 황동판이 있었고, 그 판 위로 원형을 이룬 12개의 큰 격자가 있었으며, 그 큰 격자 사이로 작은 격자가 새겨 있었으니, 큰 격자마다 열두 간지의 한자들, ‘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가 적혀 있었다.
황동판의 정가운데에는 침(針)형의 쇠붙이가 하나 달려 있었으니, 얼핏 가만히 있는 듯한 그 쇠붙이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그 황동판 아래로 그 ‘물건’의 높이 중 삼분지 이가량은 앞판에 의해 가려져 있었는데, 그 안에서는 ‘톡톡’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굉장하군.”
한참이나 ‘각계’라 불리는 그 물건 앞에 서 있던 몽주는 실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착안을 돕지도 않았고, 개발에 ‘힌트’를 주지도 않았는데, 반년 정도 탐라를 비운 사이에 대뜸 ‘시계’가 등장하였으니, 감탄이 나오는 건 당연했다.
물론, 그 각계는 그 반년 사이에 등장한 건 아니었다. 각계를 발명한 자들이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애쓴 끝에 만든 것이었다.
“이보게, 내 생각에 이 안을 볼 수 있을 것 같네만?”
몽주가 문득 각계에서 눈을 떼어 시선을 옮기며 말하자, 그 시선에 들어온 두 부녀 중 아비가 얼른 다가왔다.
“무, 물론입니다. 여기 잠금쇠를 풀면…….”
일단 방향이 정해지면 그 후의 ‘아이디어’는 다 비슷하기 마련이니, 눈앞의 ‘괘종시계’ 또한 앞면을 열어젖힐 수 있었다.
먼저 볼 수 있는 건 각계의 아래쪽 삼분지 이에 해당하는 공간과 그 공간을 유일하게 차지하고 있는 긴 철봉 및, 그 철봉의 끝에 매달려 있는 추였다.
물론, 그 철봉과 추는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었으니, 몽주의 시선은 이내 그 추를 흔들고 있는 동력을 찾았다.
“태엽을 이용하는군.”
“예, 그러합니다.”
“얼마나 자주 태엽을 감아야 하는가?”
“이걸로 매일 세 바퀴만 감아 주면 충분합니다.”
발명가인 아비는 뭉툭한 쇳대를 들어 보이며 말했고, 몽주는 그 쇳대를 받아 잠시 살펴본 뒤, 이내 쇳대를 든 손을 각계의 안쪽 태엽이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그곳엔 쇳대의 뭉툭하면서 각진 모양과 딱 맞아떨어지는 구멍이 있었으니, 쇳대를 넣어 맞춘 뒤 몽주가 힘들 주어 태엽을 한 바퀴 감았다.
끼이, 끼익!
강철 특유의 탄성 어린 소음에 몽주는 미소를 지었다.
“오차가 어느 정도인가?”
“하루에 반 식경 정도입니다.”
‘하루에 15분이라…….’
나쁘진 않았다. 아니, 단지 일상 속에서 시간을 알아보는 정도라면, 그리고 틈틈이 시간을 보정하는 수고를 할 수만 있다면 당대에서는 바로 사용하여도 좋을 만큼 훌륭했다.
하나, 실제로 상품화하기에는 아직은 오차가 제법 컸다.
날이 나쁜 시기만 아니라면 기존의 타종 ‘시스템’의 오차와 별 차이도 없는 수준에 불과하니, 굳이 사람들이 돈을 들여 살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몽주가 슬슬 시계의 발명을 생각한 이유인 ‘항해용 시계’가 보여야 할 오차와는 아주 큰 차이가 있었다.
항해용 시계, 크로노미터는 적어도 한 달에 10분 정도의 오차를 보여야, 그것도 흔들리는 선상에서 그 정도의 오차만을 보여야 했다.
물론, 크기도 반의반 이하로 작아져야 할 것이다.
‘하나,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이지.’
‘셋업’에 많은 공을 들여야겠지만, 그리고 몇몇 필수적인 부품도 추가로 개발해야겠지만, 이미 기계식 시계의 원리는 완성된 것이라 평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자네 이름이 생후철이라 했던가?”
“예, 저하.”
“따님의 이름은 무엇인가?”
몽주가 시선을 옮겨 묻자, 조신하게 있던 후철의 여식도 말문을 열었다.
“생희라 합니다.”
몽주는 생후철과 생희 부녀를 번갈아 한번씩 보고는 근처에 있는 사관과 비서원 관리가 그의 말을 잘 듣고 있음을 확인한 뒤 말문을 열었다.
“나는 이 물산에 시계라는 이름을 붙이고자 하네. 자네들의 생각은 어떤가?”
“아주 좋은 이름이라 생각합니다.”
“그래, 고맙군. 그리고 나는 탐라상단 휘하에 시계회사를 세우고자 하네. 자네들이 그 회사를 맡아 주었으면 좋겠어.”
“예…… 예?”
두 부녀는 놀란 눈을 크게 뜨며, 자신들이 잘못 들은 건 아닌지 귀를 의심했다.
“자네들이 들은 대로일세.”
“하나, 저희는 회사에 대해 아무것도…….”
“걱정 말게. 탐라상회에서 도울 것이네.”
몽주는 감격해 하는 두 부녀와 얼마간 더 이야기를 나눴으니, 당장 그들이 해야 하는 일이 시계를 만들어 파는 데 있지 않고, 시계의 성능을 개선하는 데 있음을 분명히 하였다.
물론, 몽주도 은근히 기술적인 ‘힌트’를 건넬 생각이었으니, 길게 잡아도 2, 3년 사이면 꽤 쓸 만한 시계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감을 가졌다.
삼구도와 시계, 그리고 파감태의 탐험대까지 몽주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세상에 도입할지를 가늠하고 있던 변화들이 몽주가 탐라섬을 떠난 사이에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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